창 43:1,2
그 때에 야곱의 가족은 우리가 아는대로 70 여명이었으니, 식량이 많이 수요될 것은 명백하다.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 외에, 물론 부식물로는 가나안 땅의 소산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땅에는 곡식이 극히 핍절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다(8 절). 그러므로 이제 야곱은 자시 그 아들들더러 애굽으로 가라고 한다.
창 43:3-5
그 때에 야곱의 가족은 우리가 아는대로 70 여명이었으니, 식량이 많이 수요될 것은 명백하다.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 외에, 물론 부식물로는 가나안 땅의 소산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땅에는 곡식이 극히 핍절하였던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사람은 죽을 수 밖에 없다(8 절). 그러므로 이제 야곱은 자시 그 아들들더러 애굽으로 가라고 한다.
창 43:6,7
이스라엘 - 본장에서는 야곱이란 이름 대신에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두차례(6,11) 나온다. 고등 비평가들(Wellhausen Dillmann)은 이런 것을 보고, 앞장의 저자와 다른 사람이 본장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말이, 앞장에는 "이스라엘"이란 말이 없고 그 대신 "야곱"이란 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42:4, 36, 38). 그러나 이와 같은 이론은 옳지 않다. 동일한 저자가 본장도 계속 기록하면서 자기의 어떤 필요에 의하여 이와 같이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바꾸어 썼을 것이다(W. Green, The Unity of The Book of Genesis, p. 451). "야곱"은 개인의 이름이고, "이스라엘"은 그 민족의 머리됨을 의미한다.
야곱이 그들더러, "어찌하여...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고하여 나를 해롭게 하였느냐" 하며 문책(問責)할 때에, 그들은 함께(7 절의 "그들"이란 말은 여러 사람을 가리킴) 답변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일찌기 요셉을 죽이려고 계획하였던 그 사건(37:18-20) 때문에 언제나 부친 앞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개인적으로 나타나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겠다고 말할 용기는 없었을 것이지만, 그들이 개인의 얼굴을 나타내지 않고 이렇게 무리를 이루어 말하는 것쯤은 할 수 있었다. 양심에 부끄러움이 있는 자는, 언제나 이와 같이 할 말을 개인적으로 당돌하게 못하고 군중속에 숨어서 발언한다. "조조이 그에게 대답"하였다는 것은, 요셉의 묻는 말에 따라서 대답하였다는 것이다.
창 43:8-10
유다는,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가기 위하여 두 번째 발언한다. 그의 말은, 일찌기 이와 같은 문제로 간청했던 르우벤의 말과 다르다. 르우벤은 지나치게 부당한 말을 하였으니, 곧, 베냐민을 부친께로 데리고 오지 못할 경우 자기의 두 아들을 죽여 달라고 하였다(42;37). 이렇게 진리에 합당치 않는 말은 실행될 수도 없는 공연한 말이다. 그러나 유다의 말은 진실미가 있다. 곧, "내가 그의 몸을 담보하오리니...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9 절)라고 하었다. 이런 진언(進言)은 역시 설득력(說得力)도 있어서 일을 해결할 만하였다.
창 43:11-14
야곱은 유다의 설복력(說服力)있는 말을 듣고 베냐민을 그들과 함께 보내기로 결심하면서, 그 아들들의 할 일을 지시하였다. (1) "예물"을 가지고 가라는 것(11 절). 이것은, 사람으로 더불어 화목하기를 힘쓰는 야곱의 성격을 보여 준다. 그는 일찌기 에서를 만나러 갈 때에도 이렇게 예물을 보냈었다(33:8). "비자"는 호도나 밤(栗)같은열매이고, "파단행"은 살구의 일종이다. (2)일찌기 애굽에서 곡식을 사 올 때에 자루에서 발견된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고 함(12 절). 이것은, 야곱의 결백한 성품을 보여 준다. 그는, 남의 재전(財錢)을 이유없이 취하기 원치 않았다. 그 뿐 아니라, 야곱의 이와 같은 처사는 역시 앞날의 올무를 피하기 위한 지혜로운 것이다. 빌 4:8 참조. 그리고 그는, 최후적으로 모든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다(14 절). 이것은 그의 신앙이다.
창 43:15-17
그들은, 그 부친의 지시를 따라 준비한 것을 가지고 애굽으로 가서 요셉을 대면하게 되었다. 그 때에 요셉은, 그들과 함께 식사하기 위하여 청직이에게 식사 준비를 시켰다. 요셉은 아직도 그들에게 실토는 하지 않고 조금씩 그의 친절을 그들에게 나타내고자 한다. 하나님도 범죄한 자들을 먼저 괴롭혀 반성시킨 다음에 그들과 광명한 화해(和解)를 하신다. 이 때에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대로 행동한 것 같다.
창 43:18-21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집으로 인도함이 되었을 때에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전에 자루에서 발견된 돈 때문에 이제 트집 잡히는 줄 알고 걱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청직이에게 그 돈 문제에 대하여 낱낱이 변명하였다.
그들은 전번에 왔을 때에 정탐이란 혐의를 받았으니 만큼, 그 시대의 일대 강국이었던 애굽 땅에서 저희의 마음은 초조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찌기 자루에서 발견된 돈 때문에도 이렇게 걱정할 만하다. 우리가 여기서 또 한가지 주목하는 것은, 요셉의 꿈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그 꿈에 그의 형들이 모두 다 굴복하였던 것이다(37:7-9).
창 43:23,24
청직이는, 두려워 하는 그들에게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하며 위로하기를, (1)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고함(23 절 상반). 이 말은 사실 그대로이다. 요셉이 그들의 자루에 돈을 도로 넣도록 한 것도, 그들을 놀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그들을 돕는 은밀한 친절이었다.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대로 하였던 것이다. (2)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데려옴(23 절 하반). 이것도 그들을 어느 정도 안심케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어떤 때에 염려하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시기 위하여 조금씩 위로와 평안을 주신다. (3)그들에게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 나귀에게 먹이를 줌" - (24 절). 이것도 그들을 위로하기 위한 접대 행위이다.
창 43:25-28
이 귀절들을 보면, 그 형들이 요셉에게 "예물을...드리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 였고, 또 그들이 요셉의 묻는 말에 대답한 뒤에도 다시 "머리 숙여 절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오래 전에 있었던 요셉의 꿈(37:7-9)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창 43:29-31
요셉은,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소자여 하나님이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사는 진실한 신자의 행동 원리이다. 그는, 범사를 하나님에게서 해결 받고자 한다. 요셉은, 베냐민으로 인하여 정서(情緖)의 움직임을 금할 수 없어서 "안방으로 들어 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 였다. 이것은 그의 지도자 자격이다. 지도자는 정서가 없는 목석도 아니거니와, 정서의 지배를 받고마는 나약한 자도 아니다. 그는 필요치 않은 때에 정서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멀리 목표를 정하고 의지적(意志的)으로 달음질한다.
창 43:32-34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하고 - 요셉은, 이제 그 형제들과 함께 식사함에 있어서 형제들과 좌석을 달리 한다. 이것도 역시 그가 아직까지 그들에게 실토하지 않으려는 의지적인 행동이다. 요셉은 그들을 "장유(長幼)의 차서(次序)대로 앉히" 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자기의 정체를 조금 나타내려는 표시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형제들이 이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으나 그를 요셉으로 알아 보는데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요셉은 조금씩 그들에게 자기의 정체(正體)를 알리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우리에게 알리심에 있어서 이렇게 점진적으로 조금씩 하시는 원리도 가지셨다. 그러나 그는 필경 성도들에게 자기를 완전히 알리신다. 요셉이 그들에게 식물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오배"나 주었으니, 그것이 역시 자기의 정체를 그들에게 조금 나타낸 표라고 할 수 있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