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선 주석, 창세기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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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 "구음"은 "언어"를 의미하는데, 한 조상 노아에게서 나은 자손들의 말이 처음엔 동일하였을 것이 명백하다.

  창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 "동방으로 옮"겨 간 것은, 아라랏 산지에서 떠나 "시날 평지" 곧, 바벨론으로 이동한 것을 의미하다.

  창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 여기  "서로 말하되 자..."라고 한 것은, 그들이 전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만 믿는 교만한 태도이다. "역청"은 아스팔트와 같은 것을 가리킨다. 그들이 탑을 쌓는  것이 잘못이 아니고, 이렇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 중심으로 일한 것이 죄악이었다.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 여기 이른 바 "성"은 히브리 원어로 이르(* ) "도시"를 의미하고, "대"라는 말은 믹달(* )이니 "탑"을 의미한다.  그들이 이와 이와 같은 큰 공사를 하게 된 목적이, 두 가지로 하나님을 거스렸다.   (1)"이름을 내"고자 함.  인간은 자기들이 이름을 위하여 살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였으니, 그것이 실제적인 무신론(無神論)사상이다.  (2)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려면"하려 함.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이 각기 기질(氣質)과 재능에 의해  나뉘어 사는 것을 원하신다(행 17:26).  전체주의는 적그리스도의 사상이다.  헨리 미터(Henry Meeter)는 말하기를, "여러 나라들과 민족주의 각기 차이점은, 거기 해당한 독립과 각자의 영역 안에 자주권을 요구한다.  이 자주 독립이야 말로,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문화적 임무 때문에 요청된다.  세계적 단일 제국(帝國)이    실현되려면  개체국가들은 그 특이성이 다 희생되고 통합될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제국은,    적그리스도가 세력을 얻을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는, 종교, 정치, 실업에  있어서, 자기 영토 안에 모든 세포 단체들이 단일한 표준에 일치 순응할 것을 강요한다.따라서 거기서는, 각이한 개체들이 적당히 발달될 기회의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라고 했다(칼빈주의, p.202).

  창 11: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일을  인생들로 하여금 깨닫기 쉽도록  표현한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강림하신다는 것은, 마치  위에 계시다가 아래로 내려오심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靈)이시어서 공간의 제재를  받지 않으시니 만큼, 그런 모습으로 찾아 오시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은, 획시기(劃時期)적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사람들이 깨달아 알도록 표현된 의인주의(擬人主義)의 표현이다.

  창 11: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 "이 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이  말씀은, 그들이 앞으로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계속하리라는 의미이다. 이 말씀은, 그 때의 인류의 죄악이 그 마음 속에서부터 극도로 발달되고 있음을 탄식하심이다.

  창 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 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 때 인류에게 간섭하셔서 그들의 언어를 서로 달라지게 하신  것을 가리킨다. 학자들 중에서는, 민족들의 언어 변동이 환경과 기타 자연적 조건들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하며 우리 본문의 말씀을 역사적 사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설은 옳지 않다. 우리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기적적 간섭에  의하여 그 때 사람들의 언어가  변동된 바 있음을 보여 주지만, 그렇다고 그 후에 모든  환경과 자연적 조건에 의해서 역시 민족들의 언어가 더욱 서로 달라지는 사실을 부인한 것은  아니다. 그 뿐 아니라, 그 때에 바벨탑을 쌓는 운동에 참가하지 못하였던 무리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성경에 관설되지 않았으나, 역시 노아의 자손들로서 바벨론 이외의 다른 지역에 거주하였을 것이다. 그들의 말은, 물론 환경적 조건에 따라서 족속들 사이에 달라진 바 있었을 것이다.

  창 11:8,9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바벨"(*       )이란 말은,일설에, 그 아래 하반절에서 해석한  것과 같이 "혼잡"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학설에 의하면, "혼잡"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발랄(*      )이 발벨(*         )로 변화되고, 발벨이 단축(短縮)되어 "바벨"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바벨"은 본래부터 바벨로서 "하나님의 성문"(gate  of God)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홀징겔(Holzinger)은 말하기를, "이  말의 어원적 표현인 바빌(혹은 바릴루)은 하나님의 성문을  의미한다"라고 하셨다(die  ursprungliche Aussprache  Babil, vielleicht Babilu, bedeutet Thor Gottes. -K. Marti, Hand-Commentar, I, p. 111).
   이 말이 하나님의 성문을 의미하는 경우에도, 하반절의 말씀을 그것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구약 시대에 있어서 성문은 심판의 장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탑을 심판하셨기 때문에 그 때 사람들의 언어가 혼잡되었으며,또한 그들이 다 흩어지게 된 것이다.
   바벨탑의 고적으로서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생각해 보는 학자들이 있다. 첫째는,바벨론 남쪽 유브레데강 서편 언덕에 일곱 층계의 탑이  있는데 각 층계는 각기 다른빛을 가졌다. 그 고적을    가리켜 빌스 니무루드(Birs Nimurud)라고 한다. 그리고 둘째는, 바벨론 시대에 있었던  것으로서 그 탑 이름을 에테멘안키(E-temen-an-ki)라고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위의 첫째 것을 본래의 바벨탑 유적이라고 생각한다.
   바벨탑에 대한 성경 밖의 문건(文件)으로서  몇 가지를 들수 있으나, 모두 다 후대의 것이기 때문에 고려할 바  되지 못한다. 주전 2세기에 나온 십빌린 신탁(Sibylline Oracles), 또는 주후 5세기에 나온 코레네(Chorene)의 모세란 사람의 문전, 그리고 보다 더 후에 나온 희년서(禧年書)(Ethiopic Book of Jubilees) 등이다. 이렇게 성경 이외의 문헌에는, 바벨탑에 대한 권위  있는 기사(記事)가 없다. 일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리 영광스럽지 않은 일에  대하여는 잘 기억해 두지 않는 것이 인류의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만은  모든  중요한  사건들을 극히  공정하게  기록하였다(Leupold).

  창 11:10-26
  이 부분에는,
   "셈"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보를 말하여 준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다.   (1) 그 조상들의 대수(代數)와  그들이 대대로 자녀를 낳았다는 말이 있을 뿐이고,5장에 있는 족보처럼 죽었다는 말은 기록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죽지 않은 것은 아니로되, 여기서는 자녀들을 낳았다는 사실만 강조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는 관설하지 않은 것 뿐이다. 이 조상들이 많은 자녀를 낳았으나, 그들의 이름들을 모두 다 기록하지 않았다. 이  이름 모를 자녀들이 이 때에 세계적으로 분산하여 있었을것은 확실하다. 그 이유는,  특별히 바벨탑이 심판 받은 후에 에벨을 위시하여(특별히
그의 아들  "벨렉"의 시대에-10:25) 족속들이 흩어지는  때("벨렉"의 시대, 11:18-29,10:25)부터 이 사실이 현저하게  드러난다. "벨렉"의 부친 "에벨"은 464세까지 살았는데, "벨렉"은 겨우 239년을 살았으니 양자의 차이는 현저하다. "벨렉"부터는 사람들의 수명이 200년대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였다. 이렇게 수명이 짧아진 원인에 대하여 학자들은 여러가지로 추측한다. 혹은 홍수로 말미암아 기후가 변동되었다는 것, 혹은 족속들이 다 흩어져 살게 되었다는 것 등을 원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본문이 보여 주는대로, 그들의 수명이 짧아진 원인이 바벨탑을 쌓던 죄악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그 이유는, 바벨탑 심판으로  인하여 족속들이 흩어진 사건 직후부터 그들의 수명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벨렉"은 족속들이 흩어지는 사건과 관련된 조상의 이름인데(10:25), 수명이 짧아진 역사가 바로 벨렉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11:18).
   우리는, 인간의 생명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감손(減損)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담과 하와도  범죄 때문에 사망하였다.    바벨탑 사건 전에도  죄악은 많았다(6장 참조). 그렇기 때문에 홍수가 왔다. 그러나 홍수 심판이 아직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바벨탑을 쌓는 사건이  있은 것은, 너무도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 것이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그 때 사람들의 말을 혼잡케 하셨으랴? 그야말로 그들 자신도 말이 막힐만한 기막히는 죄악을 범한 것이다.  이런 죄 값으로 인류의 수명을 짧아졌다. 잠 10:27에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라고 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며 잘 순종하면  마음이 즐겁기 때문에 오래 살수 있으나, 죄악을 범하면  근심에 사로잡혀서라도 단명(短命)하여질 수 있다. 그러므로 잠 17:22에 말하기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였다.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고 한 번 노하면 한 번 늙는다"一笑一少一怒一老)란 말도 옳은 말이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직접 벌을 내려 오래 살지 못하게도 하신다.  그 이유는, 죄인들이 너무 오래 살면 죄악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특별한 악인이 오래  사는 수도 있고, 특별한 의인이 단명한 일도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이다.  무슨 일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물론 이 예외의 사실들도 하나님의 경륜에 의하여 발생된다.

  창 11:27-30
 이 부분에서는 특별히  아브라함의 부친"데라"에 대하여  말한다. 그의 행적 중에 특별히 생각해 볼 것이 있다.  (1) 그의아들 "하란"의 조사(早死)(28절). 그의 아들이자기보다 먼저 죽은 것은, 그에게  막대한 비극이었을 것이다. (2) 그의 아들 "아브람의 아내...사래는 잉태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음(30절).  이 일도  그 가정의 걱정거리였을 것이다. (3) 멀리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던 포부를 완전히 이루지 못하고,"하란"에서 죽음(31-32).  그가"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한 것은, 물론 12장에서 알려진 것과 같이, 그의 아들 아브람의 받은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가 "갈대아우르"에서 우상을 섬겼으나(수 24:2-3), 이제 회개하는 태도로 그 아들  아브람을 따라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기 위하여  고향을 떠난 것은, 잘 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직 목적지에  가지도 못하고 중도에서 죽었다.  데라의 가정사정은 모든 면에 있어서 이렇게 만족하지 못하고 도리어 걱정스러운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가정도 회개하며 믿음으로  끝까지 나아갈 때에 가족  중에 죽은 자도 있었지만, 마침내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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