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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얻게 된 것은, 노아의 의(義)로움 때문이었다. 여기 관설된 "의"는 어떤 것인가 ? 그것은 히 11:7이 잘 보여 준다. 거기 말하기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의 믿음을 의로 간주하신 것이 분명하다.
 노아의 믿음은 다음과 같다. (1)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믿음. 다시 말하면, 그는, 120년 후에 그 때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믿었다(6:3). 믿음이란 것은, 이렇게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근거로 붙잡는다. 약속은, 하나님의 밀씀으로 나타났으니, 하나님의 권위를 배경한 것으로서 하나님 자신과 같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아는 것처럼 귀한 것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 자신과 같이 귀히 여길 줄 알아야 된다. 하나님 말씀의 약속은 아직 보이지 않으나 그것이 믿음의 발판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못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소경 헬렌 켈러(Hellen Keller)는, 눈을 뜨고도 참된 것(신령한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겼다. 그는 자기의 소경된 것이 도리어 자기로 하여금 영적(靈的)으로 깨닫게 하여 충만한 생명을 누리게 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하기를, "소경이 만일 자기의 손을 하나님의 손 가운데 맡기면, 눈 뜨고 신앙 없는 사람보다 더욱 확실히 인생의 길을 찾는다"라고 하였다. (2)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대로, 장차 홍수가 임하여 땅 위에 인류를 멸망시킬 것을 내다 본 노아는, 두려운 마음으로 방주를 예비하였다. 이것이야말로, 두려운 마음으로 내세를 위하여 준비하는 신앙이다. 이 일에 있어서, 특별히 "경외함으로"란 말이 중요하다. 내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대할 때에 경외심이 없는 태도는 망령된 자의 심리이다. 그것은, 현세만 알고 내세를 중요시하지 않는 에서의 심리이다. 우리가 경외심을 가지고야, 내세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노아는, 이렇게 장차 올 심판에 대비하는 일로서 방주를 지었다. 그의 신앙은 이렇게 실제적 행동으로 나타났다. 실제적 행동으로 움직이지 않는 믿음을 어떻게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약 2:26에 말하기를,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였다.
 믿음은 참으로 좋은 것인데(벧전 1:7), 그것이 실제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좋은 일을 가져오랴 ? 실제적 행동으로 나오지 않는 믿음이란 것은, 취미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도리어 괴로움이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는, 그의 믿음을 실행으로 옮겨 그 당시 사람들에게서 온전히 고립을 당하면서도 방주를 예비하였다(마 24:37-39).

 창 7:2,3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 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 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공중의 새도 암 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 얼른 볼 때 이 말씀은, 6:19-20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 거기는 "암 수 한 쌍", 또는 "각기 둘씩"이란 말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기는 "정결한 짐승"과 "공중의 새"에 한하여 "암 수 일곱씩"이란 말이 별달리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두 장절이 상충(相衝)되밍 아니다. 6:19-20의 것은 개괄적(槪括的)인 말씀이고, 7:2-3의 것은 자세한 설명을 붙인 것이다.

 창 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6:22에도 이같은 말씀이 있다. 이것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어서 모범이 되었다. 믿음은 순종을 열매로 가진다(히 5:8-9). 삼상 15:22-23 참조. 우리는, 특별히 노아의 순종에 있어서 명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명하신대로 다"(*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순종은 이렇게 자세하였다.

 창 7:6-9
 이 부분은, 분명히 위의 말씀(2,3,5)의 내용을 재설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거듭 말하는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되는 것이니, 그 말씀에 순종함이 얼마나 중요한가 !

 창 7:10-12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것은, 바다에서 물이 터져 올라와 육지에 넘친 것을 가리킨다. "하늘의 창들"이란 말은 여기서 비유로 사용되었으니, 마치 열린 문으로 물이 쏟아지는 것 같음을 보여 준다. 옛날에 홍수가 있은 사실은, 각국의 전설로도 추상할 수 있거니와 지질학(地質學)의 증거로 보아서도 확실하다. 동양의 예기(禮記)를 보면, "하늘의 기둥이 부러지고, 땅의 밑이 흔들리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은 그 동작을 변하고, 땅이 조각조각 깨어지니 물들이 터져 넘치니라"하였고, 또 애굽의 전설에 의하면, 신(神)들이 지상(地上)을 숙청하기 위하여 홍수를 보내매 두어 목자들이 구원을 받을 뿐이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인도의 전설에 의하면, 마누(Manu)라는 사람이 큰 고기의 지시를 받아 배를 지었다가 홍수가 나므로 그 큰 고기의 뿔에 배를 매어 그 큰 고기의 가는대로 가서 구원을 얻었다고한다. 이 밖에 홍인종의 전설, 헬라의 전설, 바벧론의 전설 등 많이 있다. 이 전설들이 정확하지는 못하나 확실한 홍수 사건에 근거를
두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지질학상 증거도 확실하다. 지질학계의 권위자 프레스트 위치(Prest Wich) 교수의 발표에 의하면, 시실리섬의 풀레모 평원(平原)을 둘러 싼 산 아래의 산 키로(San Ciro) 굴에 코끼리 뼈, 소 뼈, 사슴 뼈와 섞인 하마(河馬) 뼈의 무더기가 있다고 한다. 이 짐승들의 뼈 무더기는 반드시 홍수를 피하여 굴에 들어갔다가 죽은 것들의 뼈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뼈 무더기들이 영국과 서구(西歐)에도 많이 있으며, 프랑스 중부에는 해발 천척(千尺)이나 되는 곳에도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각국의 전설이나 지질학의 증거가 없다고 해도, 성경 말씀에 의하여 옛날에 큰 홍수가 있었음을 확신한다.

 창 7:13
 여기서도 또 다시 노아와 그 가족과 및 하나님의 지시하신 생물들이 방주에 들어간 사실을 세 번째 거듭 말한다. 히브리어 문법에 있어서 이런 중언체(重言體)는 그 글 뜻을 역설하기 위함이다. 6-9절의 해석을 참조하여라. 아직 비가 내리기 시작하지도 않았는데(홍수 시작 7 일 전)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행위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미친 것으로 보여질만도 하였을 것이다(마 24:37-39).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그렇게 움직였다. 우리 본문은, 노아의 이와 같은 신앙을 모든 사람들에게 모범으로 보여 주기 위하여 여기서 중언체로 세 번째 역설한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 가지 큰 뜻을 보여 준다. 그것은, (1) 이제부터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 방주를 주관하시며, 그 속에 있는 생명들을 보호하신다는 것. (2) 방주 속에 갇힌 자들, 이제부터 그 속에 포로와 같이 되었다는 것. 그들은 이제 밖에 나갈 자유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생명의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포로들이다.

 창 7:17-24
 이 부분은, 방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과 생물들이 모두 다 죽은 것을 알려 준다. 홍수의 깊이가 산(아라랏산 해발 16,916 영척) 위에 덮인 것만 측량하여도 15 규빗 곧, 22.5척이었으니(20절), 해면(海面)에서 측량한다면 얼마나 깊은 물이었겠는가?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위에 있는 말씀(특별히 16절)과의 대조를 볼 수 있다. 곧, 노아와 그 가족은 살려 주는 방주에 갇힌 사실에 대조하여, 그때에 회개하지 않던 무리들은 깊은 물 속에 갇혔다는 사실이다. 물로 말미암아 방주에서 구원을 얻은 자들이 있었던 반면에, 물로 멸망받은 자들이 있었다(벧전 3:20-21). 그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그를 믿지 않는 자는 멸망 받는다. 눅 2:34; 고후 3:1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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