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1) (요한 계시록 21:1-8)
미래에 나타날 하나님의 교회의 행복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이 나타나 있다. 이 말씀은 하늘에서 실현될 교회의 모습이라고 봄이 옳을 것으로 여겨진다.
Ⅰ. 새로운 세계의 전개(1절).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곧 새 우주를 말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하늘과 땅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새 땅이란 말씀은 사람의 육체가 새로운 형태를 입는다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세계는 이재 새롭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전개된 것으로 새로운 세계의 후계자들로 채워져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성도들의 육체 곧 그들의 영화롭게 된 몸은 영적이며 거룩한 것이 될 것이며 깨끗하고 밝은 대저택에 어울리는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 새 세계의 개시를 위해 모든 고통과 소란으로 가득한 묵은 세계는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Ⅱ. 이 새로운 세계에서 사도 요한은 부분적이 아닌 원래의 "하늘로부터 내려온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다. " 이 새 예루살렘은 새롭고 온전하게 된 하나님의 교회이다. 이 교회는 "남편을 위해 단장한 신부와 같이 성장을 하고" 모든 지혜와 거룩함으로 꾸미고 영광 중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에 부끄러움이 없게 할 것이다.
Ⅲ.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복된 임재에 대한 선포와 찬양. 본문에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3절)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유의해 보자.
1. 하나님이 교회에 함께 하심은 교회의 영광이 된다.2. 거룩하신 하나님이 평범한 사람들의 자녀와 영원히 거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3. 하나님의 그 백성들에 대한 임재는 지상에서와 같이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4. 하나님과 그의 백성간에 맺은 언약과 이권 그리고 상호관계는 하늘에서 온전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될 것이다. " 곧 그들의 영혼은 하나님과 흡사하게 되어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사랑과 존귀와 기쁨으로 충만 되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 하나님이 직접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의 사랑은 그들에게 온전히 나타날 것이요 그의 영광이 그들에게 임하므로 그들은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의 의무를 다할 것이고 하나님은 자신의 임무를 또한 충실히 수행하실 것이다.
Ⅳ. 이 새롭고 복된 나라에서는 모든 고통과 슬픔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이전의 모든 고통의 효력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그들은 죄와 또한 교회의 고난과 재난 때문에 눈물을 종종 흘리었다. 그러나 모든 눈물은 거두어질 것이다. 오늘의 행복이 지난날의 슬픔보다 더 큼으로 이전의 슬픔의 흔적과 기억이 모두 사라질 것이다. 그들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이 "손수 그의 자녀의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 하나님이 오셔서 눈물을 씻어 주실 때 그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2. 미래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의 근원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즉 "죽음이나 고통이 사라지므로 슬픔도 애통도 없게 된다. "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이 이전에 맛보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전의 모든 것이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Ⅴ. 이 축복 받는 상태에 대한 진실성과 확실성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의해 보장된 것으로 영원히 보관해 놓도록 기록하라고 지시된다(5,6절). 이 환상의 주제가 너무나 위대하고 또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므로 그들은 이 환상에 대해 충분한 확신을 지니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부터 하나님은 이 사실을 반복하고 그 진실성을 보장하신다. 이 환상이 주어진 후 성취되기까지 또한 많은 세월이 지나가야만 할 것이요 또한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할 것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랜 기억과 그의 백성들의 계속적인 사용을 위해 이 환상의 내용을 기록하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다음을 유의하자.
1. 약속의 확실성이 고조되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실하고 참되다"라고 하였고 또 다시 "다 이루었다"라고 하신다. 즉 다 이루었다 하심은 이 약속이 이미 시행된 사실만큼이나 확실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현찰과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만 한다. 만일 그가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2. 하나님은 충분한 시행에 관한 서약과 확신으로써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과 같은 그의 영광스러운 칭호를 우리에게 주셨다. 세계와 그의 교회를 지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셨듯이 이제 시작한 일을 미루며 아무리 짓지 아니한 상태로 내버려 두시지 않음으로 그는 영광 받으실 것이다. 그의 능력과 의지가 모든 만물의 제일 원인(the first cause)이 됨 같이 그의 기쁨과 영광이 최후의 목적이 될 것이며 그는 당신의 목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루지 못하신다면 결코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 없으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계획을 세울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성취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은 그의 기뻐하시는 바 모든 것을 시행하실 것이다.
3. 이 복된 상태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굳건한 소망이 이 복된 상태가 진실하고 확실하다는 또 다른 증거이다. 그들은 죄없는 완전한 상태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갈구한다. 하나님은 그들 안에 이러한 소망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 소망은 그 어느 대용물에 의해 충족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들의 영혼은 슬픔에 빠지고 말 것이다. 또한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선하심,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사랑, 거룩한 하늘의 소망을 그들 안에 창조하심은 모두 거짓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이 현재의 고난을 극복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생명의 샘물을 값없이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Ⅵ. 크나큰 미래의 행복이 선포되고 설명되어지고 있다.
1. 값없는 선물. 이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는 "값없이 생명의 물을 주신다." 값없이 주신다고 하여 조금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 더욱 넘치게 주신다.2. 이 선물의 풍족함.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축복의 샘가에 거하게 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게 된다(7절). 그들은 하나님을 기뻐하였으므로 모든 것을 즐기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 가운데 모든 것이다.
3. 그들에게 주어진 유산과 칭호. 이 칭호와 유산을 얻었기 때문에 그들은 이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들이 받은 칭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유산 상속권을 얻게 된 것이다. 이 칭호는 가장 영예로운 칭호로 하나님과의 가장 가깝고 밀접한 관계에서 얻어진 것이요 또한 가장 확실하고 취소할 수 없는 칭호인 것이다.
4. 이와는 전혀 다른 악한 자의 처지. 그들의 비참함은 성도들의 영광과 행복, 그리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돋보여 준다(8절). 여기에서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멸망하는 자들의 죄. 그 죄 중 먼저 비겁과 불신이 언급되었다.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이 저주의 책에 기록되게 되었다. 그들은 신당으로 인한 어려움에 맞부딪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비겁한 공포심은 그들의 불신앙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데 비겁하고 그에 대한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자들은 "살인, 간음, 마법, 우상 그리고 거짓" 등 온갖 가증한 행위에 자기를 맡기게 된다.
(2) 그들의 심판. 이에 대한 본문에 "그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고 하였다.
[1] 그들은 유사시에 그리스도를 위해 화형을 당하는 일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죄로 인해 지옥에서 화형을 당해야만 한다.
[2] 그들은 자연어도 육신의 죽음 후에 또 하나의 죽음을 당해야 만 한다. 일반적 죽음의 고통과 공포는 그들을 항상 죽이는 영원한 죽음의 보다 큰 공포와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3] 이 비참한 운명이 그들의 몫이 될 것이다. 이 운명은 그들이 받아 마땅한 것이며 또 그들이 선택한 것이요,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그들 스스로가 예비한 것이다. 이와 같이 저주받은 자의 비극은 구원받은 자들의 축복을 말해 주며 구원받은 자의 축복은 저주받은 자들의 비참함을 더하게 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2) (요한 계시록 21:9-27)
새 예루살렘의 환상에 대한 서언에서 우리는 이미 하늘나라의 개괄적인 개념을 고찰하여 보았다. 이제 우리는 환상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대하게 된다.
Ⅰ. 사도에게 환상을 보여준 자. 그는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대접을 가지고 있던 일곱 천사 중에 하나였다"(9절). 하나님은 거룩한 천사들을 다양하게 쓰시고 또 그들을 통해 여러 일을 이루신다. 때때로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의 나팔을 불어 깨어 있지 못한 세상에 경고를 주기도 한다. 때로 그들은 회개할 줄 모르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을 쏟기도 한다. 또한 그들은 때로는 구원받을 후예들에게 하늘에 속한 것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모든 사명을 수행한다. 그리고 세상에 종말이 오게 될 때에도 천사들은 크신 하나님에게 채용되어 그의 영원한 역사를 수행할 것이다.
Ⅱ. 사도가 이 영광스러운 장면과 전경을 본 장소. 그는 환상 중에 "높은 산에" 올리워졌다. 사람들은 이러한 자리에 올라가면서 인접한 도시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게 된다. 하늘에 맑은 정경을 보고자 하자들은 할 수 있는 대로 하늘과 가까운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그들은 환상의 산으로 명상과 믿음의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그들은 모세가 비스가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듯이 하늘의 가나안의 옥토를 볼 수 있는 것이다.
Ⅲ. 환상의 주제. 그것은 "어린양의 아내 곧 신부였다"(9절). 즉 그것은 영광스럽고 완전한 승리의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킨다. 이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과 흡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의 광체로 후광에 쌓여 있다. 그 모습은 마치 uxor splendit radiis mariti-즉 그녀의 남편이 마련해 준 단아한 치장으로 단장한 아름다운 신부와 같았다. 즉 이 교회는 그의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인하여 영광을 입었으며 그리스도의 영상에 의해 완전하여졌으며 그의 은총을 입어 빛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부귀와 영화로 찬란한 이 세상의 모든 도성을 초월하는 한 성으로 상징되는 교회의 승리에 대한 놀라운 내용을 볼 수 있다. 이 새 예루살렘의 외부와 내부의 모습을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1. 성의 외부면. 그것은 성곽과 문을 말한다. 즉 성의 외부는 안전을 위한 성곽과 출입을 위한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1) 안전을 위한 성곽. 천국은 안전한 국가이다. 천국에 있는 것들은 모든 악과 대적으로부터 그들을 분리하고 보호하는 성곽으로 감싸여 있다. 자 그러면 여기에서 성곽에 대한 이야기에 유의해 보자.
[1] 성곽의 높이는 치장과 안전에 충분한 70야드로 나타나 있다(17절).
[2] 성곽의 재료. 그것은 "백옥"이었다. 성곽 전체가 가장 귀중한 보석으로 세워졌는데 그 이유는 그 성곽이 견고하고 또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해서였다(11절). 이 성은 귀할 뿐만 아니라 난공불락의 튼튼한 성곽을 가지고 있다.
[3] 성곽의 형태. 이 성곽은 조화와 균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았다"고 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정결과 온전함에 있어서 동일할 것이다. 승리한 교회 안에서는 절대적인 일치가 이루어지며 지상에서는 우리에게 결핍이 있고 소망하는 것이 있으나 하늘나라에서는 이러한 부족이나 또는 바램이 없을 것이다.
[4] 성곽의 척량(15,16절). 길이와 폭이 각각 12,000퍼올롱(역자주, 영국의 척도. 1퍼올롱은 ⅛마일)이요 전체 둘레가 48,000퍼올롱 혹은 독일 척도로 15,000마일이었다. 이곳에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충분한 처소가 있었으니 곧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는 말씀대로이다.
[5] 성곽의 기초. 왜냐하면 천국은 위에 세워진 성이기 때문이다(19절).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함은 교회의 안정과 행복에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된다. 기초는 기초석의 수와 재료에 의하여 언급되어 있다. 이 기초석의 수는 12개였다. 이는 사도를 의미한다. 그들이 전한 복음이 교회가 세워질 기초가 되었다. 고로 "그리스도 자신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다." 이 기초에 사용된 재료는 다양하고도 귀한 것이었다. 그 재료는 12종류의 보석이었다. 그것은 복음의 교훈 또는 성령의 은사의 다양성과 탁월성을 의미하며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탁월성을 의미한다.
(2) 출입을 위한 문. 천국은 가까이 하기 어려운 곳이 아니다. 가장 거룩한 곳으로 통하는 길은 있다. 또한 성결된 모든 자들에게는 이 길로의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된다. 그들은 결코 외면 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 문에 대해 살펴보자.
[1] 문의 수. "12개로써" 이는 이스라엘의 12족속을 말한다. 진실한 모든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이다. 지상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가 지상의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과 같이 말이다.
[2]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 그들은 "12명의 천사들"로서 영적인 이스라엘 지파의 출입만을 용납하여 받아들이고 다른 자들을 막기 위해 서 있다.
[3] 문 위에 쓰어져 문패.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그들이 생명나무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와 성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4] 문의 현황. 성은 동서남북을 각각 마주 보도록 정사각형으로 세워져 있다. 성이 네 방위를 향하게 한 것은 세상의 사방(四方)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각 면마다 세 개의 문이 있는데 이는 세상 어디에서나 하늘나라를 가고자 하는 자들은 거기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고 영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곳에 안전하게 출입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시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나라와 모든 방언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 가운데 지금 그리고 장차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것이다.
[5] 문들의 재료. 문들의 재료는 모두 진주였다. 그러나 그 색깔은 다양하였다. 본문에 보면 "문마다 한 진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였다. 한 진주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문마다 대단히 큰 한 개의 진주알로 이루어졌다는 말로 볼 수도 있고 또는 문마다 같은 색의 진주로 이루어졌다는 말로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는 가장 값나가는 진주요,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이다. 하늘의 영광을 충분히 나타내 줄 만큼 장려한 것은 이 세상에는 없다. 가장 깊은 상상력을 통해 여기에 묘사된 성의 외부 곧 성벽과 문들을 연상해 볼 수 있다면 그 정경이야말로 얼마나 놀랍고 영화로울 것인가! 그러나 아직도 이러한 것은 하늘나라의 본체에 대한 희미하고 어렴풋한 묘사에 불과한 것이다.
2. 새 예루살렘의 내부(22-27절). 우리는 새 예루살렘의 견고한 성벽과 장엄한 문, 그리고 영광스러운 문지기들을 보았다. 지금 문을 들어가 새 예루살렘 내부의 모습을 살펴보자.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맑은 유리 같은 순전한 금으로 이루어진" 거리이다(21절). 하늘나라의 성도들은 금을 밟고 다닌다. 새 예루살렘에는 몇 개의 거리가 있다. 하늘나라의 설계는 질서 정연히 이루어져 있다. 또한 성도들마다 자기에게 적절한 맨션 을 소유하고 있다. 또한 하늘나라에도 성도간의 사귐이 있다. 또한 성도들은 휴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수동적 휴식이 아니다. 잠이나 자거나 빈둥거리는 휴식이 아니라 기쁨에 넘치는 동적인 휴식이다. 즉 "구원받은 백성들은 빛 가운데로 행진하게 되며" 흰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활보하며 하나님과 성도들 모두가 사귐을 갖는다. 그들의 모든 발걸음은 확고하며 깨끗하다 그들은 금과 깨끗한 유리와 같이 순전하고 정결하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새 예루살렘의 안의 성전. 이 성전은 솔로몬이나 스룹바벨이 지은 성전과 같이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물질적인 성전이 아니라 온전히 영적이며 거룩한 성전이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는 하늘나라에 가는 데 예비적 수단이었던 예배 의식이 필요 없게 된다. 목적이 성취된 이상 수단은 불필요한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과의 온전하고도 직접적인 사귐이 복음적 제정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2) 이 성의 빛. 빛이 없는 곳에는 어떠한 광채도 환희도 있을 수 없다. 하늘나라는 "빛 가운데 있는 성도들의 유산"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빛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곳에는 해도 없고 달도 없다(23절). 빛은 감미로우매 밝은 날을 보는 일은 기쁜 일이다. 만일 하늘나라에 빛이 없다고 하면 얼마나 음침한 세상일까? 그렇다면 하늘나라에는 태양을 대신하는 무슨 빛이 있을까? 그곳에는 해의 빛이 필요 없다. 그 이유는 그곳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을 비취며 어린양의 등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하늘나라에 있는 성도들에게 지혜와 기쁨의 영원한 샘물이 될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햇빛이 강하게 비취는 정오에 촛불을 켜놓을 필요가 없는 것 이상으로 그 곳에는 해나 달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3) 이 성의 거민들. 그들에 대하여 여기에서 몇 가지로 묘사되어 있다.
[1] 거민들의 수. 그 수는 모든 나라의 구원받은 영혼들로 이루어졌다. 어느 나라에서는 여러 명이 또 어느 나라에서는 적은 수가 모여 하늘 백성을 구성하였다. 땅 위에서 인치심을 받은 모든 무리들은 하늘나라에서 구원을 받는다.
[2] 거민들의 지위. 그들 중에는 지상의 왕들과 군주들 곧 위대한 왕들이 있다. 하나님은 각양각층의 사람들 곧 높고 낮은 자들로 거룩한 맨션 을 채우실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왕들도 하늘나라에 와서는 그들의 이전의 존귀와 영광이 하늘의 훌륭한 이 거룩한 영광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3] 그들의 자유로운 성의 출입. 본문에 "성문들은 결코 닫히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거기에는 밤이 없으므로 문을 닫을 필요가 없게 된다. 누구나 수시로 들어올 수 있으며 성결된 자들은 항상 열려 있음을 보게 된다. 그들은 "천국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다."
(4) 이 성의 수용력. "모든 만국의 존귀와 영광이 이 성에 도착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탁월하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이 거기서는 더 세련되고 고귀한 모습을 갖추고 있을 것이요, 사람들은 그것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빛나는 면류관보다 좋고, 보다 지속적인 재물, 맛있고 만족할 만한 잔치 보다 영광스러운 시종 존귀와 높은 영광의 다리에 대한 보다 진실한 감정 영광스러운 성품,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일찍이 알려진 바 그 어느 것보다 더욱 영광스러운 형태와 용모를 즐기게 될 것이다.
(5) 새 예루살렘의 속한 모든 자들의 순결함(27절).
[1] 새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가증한 것이 없다. 임종할 때 그들은 부정한 모든 성품으로부터 정결함을 얻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며 그와의 교제를 방해하며 그의 얼굴로부터 오는 빛을 막는 타락된 본성이 은혜와 함께 공존해 있음을 경험한다. 그러나 거룩한 성에 들어와서는 그리스도의 의로 씻음을 받고 흠없이 "아버지" 앞에 서게 된다.
[2] 가증한 자들은 그들 가운데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땅 위의 예루살렘에서는 아무리 주의를 해도 여러 잡무리가 섞여들 수밖에 없다. 때로는 독초의 뿌리가 돋아 기독교 공동체를 괴롭히고 더럽힐 것이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 안에는 온전히 순수한 공동체가 이루어진다.
첫째,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한 자유가 이루어진다. 가증한 일을 행한 자들은 아무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말세가 되면 지상의 교회 안에서는 때때로 가증한 일들이 행해지며 교회의 법령이 간혹 사람들을 남용하며 악용한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이러한 가증한 일이 있을 수 없다.
둘째,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나 유대인이 아닌 거짓말하는 위선자들로부터 해방을 얻는다. 이들은 지상의 교회에 기어 들어와 숨어서 오래 있으며 항상 거짓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는 교회에 등록되었을 뿐 아니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부름을 받고 선택되었으며 신실한 자들을 위해 온전히 예비된 이 새 예루살렘에는 끼어들지 못한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