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 내용과 계시의 순서 (요한 계시록 1:1,2)
Ⅰ. 이 책의 유래를 말해 주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다. 모든 성서에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며, 모든 것이 그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의 아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회가 어떤 원칙과 방법에 의해 그가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지를 알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교회의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는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2. 이 책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이다. 비록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시며, 생명과 광명을 그의 안에 가지고 계셨지만,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가르치심을 받으셨다. 비록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형언할 수 없는 크나큰 지혜와 판단력, 그리고 통찰력을 받으셨지만, 그도 인간인고로 아버지께서 하시고자 원하시는 것을 다 깨닫지는 못하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귀한 하나님의 뜻은 신성한 예지로서만 알 수 있고, 하나님은 그의 펴시고자 하시는 고귀한 뜻을 계시에 의해서만 우리 피조물에게 나타내신다. 이 때 인간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교량적인 역할을 담당하시는 이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며,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우리는 오로지 우리 주 예수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3. 이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계시의 놀라운 순서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 계시하셨으며, 그리스도는 교회들에게 이 계시를 전하기 위해 천사들을 부르셨다.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며 그들은 구원받을 후사들을 위한 구원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종들이다. 이렇듯 모든 주권과 능력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를 드려야 한다.
4. 천사들은 "사도 요한에게 그것을 지시하였다."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사자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목회자들은 교회의 사자들이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받은 말씀을 교회에 전해 주어야 한다. 요한은 이러한 일을 위해 선택받은 사도였다. 그는 여러 사도들 중에서 그때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사도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다른 사도들은 그들의 증언을 피로써 보증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복음증거를 위해 순교하였다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마지막 책이 되었다. 그 때문에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의 사도에 의해 이 말씀이 교회에 전해졌다. 요한은 사랑받는 제자였다. 구약 성서에서의 선지자 다니엘과 같이 요한은 신약 성서에 있어서 "매우 사랑받는 제자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었으며, 복음서 기자요, 예언자요, 사도였다. 이렇게 그는 세 가지의 소임을 수행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겼다. 야고보는 사도였지만 예언자도 복음서 기자도 아니었다. 마태 역시 복음서 기자요, 사도이기는 했지만, 예언자는 아니었다. 누가는 복음서 기자이기는 했지만, 예언자도 사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은 세 가지의 일을 수행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는 요한을 자기의 "종 요한"이라고 부르셨다.
5. 요한은 이 계시를 교회와 모든 종들에게 전할 의무가 있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종, 다시 말해서 목회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종들과 교회의 회원들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며, 지켜나가야 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Ⅱ. 여기서 우리는 속히 이루어져야 할 계시의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복음서 기자들은 우리에게 지나간 일을 말해주지만, 예언자들은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 설명하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장래의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비쳐 주는 빛 가운데서가 아니면 밝히 볼 수 있다. 오직 그 빛 가운데서만 우리는 바르게 보며, 하나님의 지혜롭고 거룩하신 뜻에 잘 응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계시한 그대로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다면, 그러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예언이 약간 희미하게 예언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성서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보다 더 이에 대해 탐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우리는 이 계시에서 교회의 관리 방법 및 거룩한 섭리의 일반적인 생각들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좋은 교훈의 말씀도 배울 수가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반드시 일어날 뿐만 아니라, 속히" 일어날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것이 조만간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Ⅲ. 여기에는 예언의 증거가 있다(2절). 그것은 요한에게 지시된 것이었으며,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즉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다. 구약 성서의 역사적인 책들, 다시 말해서 사사기, 열왕기, 역대기 등은 그 책에 역사가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사야서, 예레미야서와 같이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책들에는 항상 쓴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
신약 성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요한이 자기의 첫 편지서에서는 자기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을 대해서는 그와 반대로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예언의 말씀의 진실성을 책임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이름뿐만 아니라, 자기의 소임까지도 밝혀 주었다. 그는 멀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즉 자기가 본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증거 하였다. 그는 목격자였으며, 자기가 본 것을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 이 계시록에 기록된 말씀은 요한 자신이 발견한 것도, 꾸며서 하는 말도 아니며, 더하거나 뺀 것이 없이, 듣고 본 그대로의 하나님의 기록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이다.
사도 요한의 축복 (요한 계시록 1:3-8)
여기서 우리는 이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을 존중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도 요한의 축복의 말씀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축복은 보다 널리 그리고 보다 특별히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Ⅰ. 예언의 말씀을 읽거나 듣는 모든 사람들을 널리 축복하였다. 이러한 축복은 우리들로 하여금 계시록의 말씀을 연구하도록 격려하여 주며, 그 말씀 안에 있는 많은 분명치 못한 것들 때문에, 그 말씀을 상고하는데 싫증감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 주고자 하시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사도 요한은 보다 세심한 주의력과 열의를 가지고 읽는 자들의 수고에 대해 보답을 하고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즐겁게 읽는다는 것은 축복받은 특권이다. 이것은 다른 이방인들은 누릴 수 없었고, 다만 유대인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중요한 이점들 중의 하나였다.2. 성서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은 복된 일이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잘 응한 사람들이다.
3. 성서의 말씀을 우리 자신이 직접 읽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읽는 것을 듣는 것조차도 커다란 특권이다. 그들은 그들이 읽는 말씀의 의미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우리들에게 그 말씀을 이해시킬 수 있는 자백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4. 성서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으로만으로는 그리 흡족한 축복이 되지 못한다. 거기 기록된 말씀을 지켜 나가는 생활을 하여야만 한다. 그 말씀들을 늘 염두에 두고, 마음에 깊이 새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실로 축복을 가져다준다.
5. 성서의 말씀이 뜻하는 바를 알고, 그 말씀에 가일층 가까이 접근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커다란 관심을 쏟게 된다. 때가 가까이 임했으므로 우리는 그날이 오는 것을 더 세심하게 주시하여야 한다.
Ⅱ. 사도 요한은 그의 축복을 특별히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전했다(4절). 일곱 교회들의 이름은 11절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교회들에 보내는 뚜렷한 메시지는 각각 2장과 3장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 요한의 축복이 특별히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전해진 것은 그 일곱 교회들이 모두 밧모라는 섬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 사도 요한은 그 교회들에 대한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사도들이 살아 있을 때,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1. 이들 교회에 있는 모든 충실한 사도들에게 주는 축복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그것은 "은혜와 평강," 거룩함과 위로의 축복이었다. "은혜"라 함은 우리에게로 향한 하나님의 친절이며, 우리 마음속에서의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이다. 그리고 "평강"이라 함은 이러한 은혜에 대한 확신을 말함이다. 진정한 은혜가 없는 곳에 진정한 평강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은혜가 앞서 가는 곳에 평강이 뒤따른다.2. 이런 축복이 언제 우리에게 오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자. 누구의 이름으로 사도 요한은 교회를 축복하는가? 그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행위이며, 하나님만이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여야만 한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맨 처음으로 일컬어졌다. 그것은 곧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제일 인격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여호와로 묘사되었다. 그것은 전에 있었던 구약 성서의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오늘의 신약 성서 시대의 교회에서도 그렇고, 또한 앞으로 올 승리하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없으신 분이심을 나타낸다.
(2) 성령은 "일곱 영"이라고 일컬어졌다. 그것은 숫자나, 본질적인 면에 있어서 일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계시는 무한하시며, 완전하신 영을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계신다. 이는 그의 영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가 만드신 모든 것을 관리하시기 때문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성령 다음에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 까닭은 요한이 그리스도의 품격에 대하여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를 육체로 나시게 하셨다. 그래서 전에는 그가 땅에 살으셨고 일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그를 볼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그리스도께 대한 요한의 특별한 기록을 살펴보자(5절).
[1] 그리스도는 "충성된 증인"이시다. 그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모든 뜻을 나타내 주시는 증인이었다(요 1:18). 그리스도는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맞은 때에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는 증인이시었다. 우리는 그의 증언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충실한 증인이시며, 속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속이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2]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부활하신 분이시며, 부활의 처음 열매가 되신 분이시다. 또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부활시킨 유일하신 분이시며, 같은 능력으로 그의 백성들을 무덤에서 이끌어 내어 영원한 영광으로 이끌어 주실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소망을 품을 수 있게 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는 이 땅의 모든 왕들의 지배자이시다. 땅의 왕들은 그리스도부터 그들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의 권세가 제한을 받으며, 그들의 분노가 제재를 받는다. 그리스도에 의해 그들의 생각이 다스림을 받으며, 그들은 그리스도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 기쁜 소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만왕의 왕이 되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해 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4] 그리스도는 교회와 백성들의 좋은 친구이시다. 그는 그들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셨으며, 이는 순전히 사랑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는 먼저 "그의 피로써 그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셨다. " 죄는 영혼에 대해 죄의 오점과 타락의 오점을 남긴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그 어느 것으로도 이 영혼의 오점을 지울 수가 없다. 그의 피가 아니고서는 이를 씻어낼 수가 없다. 그리스도는 이처럼 그들을 위해, 그들의 용서와 순결을 위해 기꺼이 피를 흘려주셨다.
다음으로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그들을 왕과 제사장으로 삼아"주셨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의롭게 여기시고, 정결케 하심으로 그들을 아버지 하나님의 왕들로 삼으셨다. 말하자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허락을 받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었다. 왕들로서 그들은 세계를 정복하며, 죄를 극복하고, 자기들의 영을 다스리며, 사탄을 정복하고, 또한 기도 중에 능력을 얻는다. 그리고는 세상을 심판하게 된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다. 이러한 모든 것에 합당하도록 제사장들에게 필요한 자격을 부여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영원 무궁하도록 능력과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5] 그는 세상의 심판자가 되실 것이다.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리로다"(7절). 요한 계시록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고 하는 예언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말씀으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자주 묵상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요한은 마치 재림의 날을 본 것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볼지어다. 그가 오시리라. 그것은 너희의 눈으로 보는 것같이 확실한 것이다. 그는 공공연히 오실 것이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볼 것이다. "그의 백성들의 눈이 보며, 그의 대적들의 눈, 너희의 눈과 나의 눈, 모든 눈들이 볼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를 찌르고도 회개하지 않고,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를 배반함으로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며, 또 믿음이 없는 이 세상에 놀라움을 주기 위해서 오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치 않은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복수를 하시기 위해 오신다.
[6] 이러한 그리스도께 대한 설명을 그리스도 자신이 확증하여 주셨다(8절). 우리 주 예수는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같은 영광과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 묘사되었다(4절). 그는 처음이며 마지막이시다. 모든 것은 그에게서 비롯되었으며, 그를 위해 있다. 또한 그는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감히 지우려고 하는 사람은 생명록에서 그 자신의 이름이 도말함을 받는다.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로부터 존중히 여김을 받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멸시하는 자들은 그의 멸시를 받을 것이다.
요한에게 보여 준 그리스도의 환상 (요한 계시록 1:9-20)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 주실 때의 영광스러운 환상을 볼 수 있다.
Ⅰ. 이런 환상을 본 사람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여기서 요한은 환상을 본 자기 자신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1. 요한의 현재의 위치와 상태를 보자. 그는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다. 또한 요한은 그 당시 다른 독실한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당하고, 추방당하고, 또는 옥에 투옥된 사람이었다. 요한이 사도이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형제"였다. 요한은 교회에 있어서의 자기 자신의 권위보다는, 오히려 교회에 대하여 형제라고 하는 관계를 더 자랑하는 것같이 보인다. 가룟 유다는 사도가 될 수는 있었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는 한 형제가 될 수 없었다.요한은 그들의 동참자였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영적인 교섭과 교제를 선택하여야만 한다. 그는 환난의 동참자였다. 박해를 받는 하나님의 종들은 어느 누구도 혼자서 환난과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환난을 함께 받고 있다. 그는 참음의 동참자였다. 요한은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거나 혹은 고난을 당하거나, 서로가 위로하여, 고통과 기쁨을 같이 나누어 가졌다. 성도들과 같이 그런 비상한 인내를 우리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당당히, 떳떳하게 그와 같은 시련에 맞설 수 있다.
그는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다. 요한은 주로 말미암아 교회와 세상을 지배하는 그리스도의 왕다운 능력을 주장하고, 또 계시의 말씀에 대하여 침해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반대하고, 계시록의 말씀을 지지하고, 신봉함으로써, 예수의 환난과 참음에 동참하려고 고난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설명으로 요한은 자기의 현재의 위치를 시인했으며, 그들의 공동 소유인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바에 따라,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그들에게 당부하였다.
2. 요한이 환상을 본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이 있다. 그는 "밧모섬"에 있었다. 그는 누가 자기를 그런 곳으로 추방했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겪는 고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있는 섬으로 알려져 있다. 그 섬은 시클라데스(Cyclades)라고 하는 군도 중의 한 섬이었으며, 둘레가 약 35마일 가량 되는 섬이었다.그러나 이러한 감금된 상태하에서도, 악을 행한 자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임마누엘이시며, 구세주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고난당한다는 사실에서 사도 요한은 크게 위안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받을 만한 고난이었다. 영광의 영광 하나님의 영은 이러한 핍박받는 사도의 머리 위에 머물러 계셨다.
3. 그가 이런 환상을 본 날과 때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주의 날"이었다. 이날은 그리스도께서 성찬식을 "주님의 만찬"이라고 하듯이, 그 자신을 위해 구분하고 성별해 놓으신 주님의 날이었다. 이날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고 지키는 한 주간의 첫날이다. 그를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하는 우리 무리들은 그의 안식일에 그를 경배해야 한다. 주님께서 그날을 제정하셨다. 그 안에서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4. 이 때에 요한의 영은 어떠한 상태에 있었던가를 볼 수 있다. 그때 요한의 영은 "성령 안에 거하고 있었다. " 요한은 환상을 보았을 때만이 아니라, 환상을 보기 전에도 놀랬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성스러우시며 인자하신 영향을 받아서, 성스럽고도 귀중한 영적인 상태 아래 있었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들의 영혼이 자기의 고귀한 계시를 알도록 해 주시기 위해 성령의 감화를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주의 날에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이 육적인 것에서부터 멀리 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영적인 것과 교제가 잘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Ⅱ. 사도 요한이 성령 안에서 들은 것을 설명하고 있다. 나팔 소리 같은 큰 소리가 있었다. 그때에 요한은 자기 스스로에 대해 "처음이요, 나중"이라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 지금부터 계시하는 것을 기록하라고 명하시고, 즉시 이 말씀을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로 보내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이처럼 구원의 으뜸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는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영광된 그의 모습을 주시하라고 사도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Ⅲ. 그가 본 것에 대해 설명한 것이 또 있다. 누구의 소리인지, 또 어디서부터 들려 오는 소리인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그가 몸을 돌이켰을 때"에 매우 놀라운 광경이 그의 앞에 전개되었다.
1. 요한은 1장 마지막 절에서 설명된 바와 같은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그것은 곧 교회를 표상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촛대로 비유되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복음의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초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빛이며, 그의 복음이 우리의 등불이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빛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 준다. 교회는 금촛대이다. 왜냐하면 순금에 필적할 수 있으리만큼 교회가 귀중하며, 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들만이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도 그래야 한다. 그 빛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밝은 빛을 비추어야 한다.2. 요한은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 세상 날 때까지, 교회를 빛과 생명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시면서, 그의 교회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교회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영이시다.
(1) 여기서 우리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1] 그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계셨다. 그것은 정의와 명예를 나타내는 제사장과 왕의 옷이다.
[2] 그는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다. 그것은 그의 백성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대제사장의 흉배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께서는 구속자로서의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3]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았다." 그는 고대의 사람이었다. 그의 서리같이 하얀 머리털은 후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면류관을 뜻하는 것이었다.
[4] "그의 눈은 불꽃같았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을 찌르며, 그들의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대적들에게는 공포심을 가지게 하는 눈이다.
[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았다." 그것은 튼튼하고, 견고하며, 자신의 유익을 유지하며, 자기의 대적들을 굴복시켜 가루처럼 만드는 것을 뜻한다.
[6]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았다." 그것은 찬 곳으로 흘러나오는 많은 냇물을 말한다. 그리하여 가까이 있는 자나 멀리 있는 자나 할 것 없이 모두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하신다. 이처럼 그의 복음의 말씀은 무한한 지혜와 지식의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물줄기와 같다.
[7]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 일곱 교회의 목사들이었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그들의 빛과 권세를 받았으며, 주님의 보호를 받아 지탱해 나가고 있다.
[8] "그 입에서 좌우에 검이 나오고"있다. 그리스도의 검은 좌우편에 날이 서서, 한 편 상처를 입히며, 동시에 치료를 하고 죄는 좌우로 쳐서 멸망시키고 있음을 뜻한다.
[9]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의 얼굴에서 비취는 광채의 밝기가 너무나 세고 찬란한 것이었다.
(2) 그리스도의 모습은 사도 요한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17절). 그는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요한 자신이 비록 전부터 다소 주님과 친숙했다고는 하나,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내는 영광과 광채가 너무나 찬란하매, 그가 압도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 통해서 말씀하시는데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뵌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베풀어주신 정중한 친절이 있다. "그가 오른손을 그에게 얹으셨다"(17절). 주께서 요한을 일으켜 주셨다. 주님은 크신 능력을 가지고 요한을 꾸짖지 않으셨다. 오히려 요한에게 힘을 북돋아 주셨으며, 그에게 친절하게 말씀해 주셨다.
[1] 우선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두려워 말라." 그는 그의 제자가 노예처럼 두려워하는 것을 쫓아 버려 주셨다.
[2] 요한에게 나타나신 이가 요한에게 첫 번째는 그의 신성에 대해 "처음이요 나중"임을 알려 주셨다. 두 번째로는 "내가 전에 죽었노라"고 하심으로 그가 앞서 당한 고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그의 제자들이 본 것과 같다. 세 번째로는 그의 부활과 생명에 대해 "나는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다"고 하심으로, 그가 죽음을 정복하시고 무덤 문을 여셨으며, 영원한 생명의 동참자가 되셨음을 알려 주셨다. 네 번째로는, 그의 직무와 권위에 대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하셨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의미한다. 그것은 닫으면 열 자가 없고, 열면 닫을 자가 없는 열쇠이다.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는 사망의 문을 여실 수도 있고, 행복과 자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여실 수도 있다. 그는 만민의 심판자이시며, 그의 선교에 대해서는 아무도 항고할 수가 없다. 다섯 번째로, 그가 원하시고 계신 뜻을 알려주기 위해,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여섯 번째로는, 일곱 별의 의미에 대해 "그것들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이라고 말씀하셨고, 일곱 촛대에 대해서는 "그것들은 일곱 교회"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해 그들에게 특별한 소식을 전하고자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