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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사도의 그들에 대한 경건한 소청(데살로니가 후서 3:1-5)

본문에서 다음 사실들을 고찰하여 보자.

Ⅰ. 바울은 그의 친구들의 기도를 청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그는 본문에서 말한다(1절). 바울은 항상 자기 기도 가운데서 그들을 기억하였다. 또한 그는 그들에게 그와 그의 동역자들을 잊지 말고 은혜의 보좌 앞에서 그들을 마음 속으로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기도는 성도 간의 교통이 유지되는 한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함께 기도하거나 서로 같이 기도함에 의해서 뿐 아니라 서로 헤어져 있을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교통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도 은혜의 보좌 앞에서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 친절을 행하거나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이 방법을 통하여 진실하며 위대한 친절을 베풀 수도 또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2. 그들의 사역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의 의무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사역자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선하고 믿음 있는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3. 사역자들은 성도들의 기도를 필요로 하며 그러므로 간청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 자신이 능력 있는 기도인이면서 가장 비천한 그리스도인의 기도도 멸시치 않고 그것을 열망한 사도의 겸손은 얼마나 뛰어난 것이며 또 얼마나 본받을 만한 것인가. 바울이 그것을 위해 기도하도록 요구하고 지시하였나를 살펴 보자.

(1) 복음의 사역이 성공되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주의 말씀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기위해" 기도하라고 하였다(1절). 이것은 바울이 가장 염려한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일용할 양식에 대한 걱정보다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그의 왕국이 건설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대해 더욱 염려했다. 그는 주의 말씀이 달음질할 수 있고(희랍어 사본에는 그렇게 되어 있음) 근거를 얻게 되며 신앙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퇴보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고 전진할 뿐 아니라 빨리 퍼져 나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지금과 같이 그때도 지옥의 모든 군데들은 주의 말씀을 대적하고 말씀이 전해지고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려고 일어나 운집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대자들이 제거되고 복음이 사람들의 귀와 마음과 양심에 자유롭게 전달되며, 그것이 죄인들을 회개시키고 확신을 갖게 함으로 영광을 받으며, 반박하는 자들이 그것에 의해 격퇴되며, 성도들의 성스러운 생활이 복음에 의해 이루어짐으로 복음의 영광을 얻도록 기도해야 한다. 율법을 완전케 하시고 영예롭게 하신 하나님은 복음서를 영광되게 하시고 명예롭도록 하실 것이고 또한 그의 자신의 이름도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선한 사역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가 전파되고 복음이 영광을 받는다면 자기들은 보잘 것 없이 되고 어떤 자리에 처하든 설혹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해도 매우 만족스러워할 것이다. 바울은 지금 아덴에 있었다. 또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고린도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데살로니가에서 얻었던 좋은 성공을 거기서도 얻을 수 있고 그것이 그들에게 잘 수납되었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사역자들은 한 곳에서 성공을 거두면 그들이 복음을 설교하는 모든 곳에서 성공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할 것임을 기억하자.

(2) 복음의 사역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한다. 그는 그들에게 그의 높임을 위해서 보존받도록 위해서 기도할 것을 요청한다. 즉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2절)라고 기도해 달라고 한다. 복음에 대한 적들과 복음을 적대하여 사실을 기억하자. 그들은 이성과 신앙의 규칙과 법도를 적대하여 행동하고 가장 커다란 어리석음인 불경건의 죄를 짓는다. 무신론과 무신앙적인 주장들 가운데 뿐만 아니라 악과 부도덕한 짓을 실행하는 가운데도 특히 박해 가운데에는 불경건과 함께 가장 큰 어리석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피하려면 신앙이 깊고 신실한 사역자들의 도움과 성령의 보호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가장 큰 접전을 벌린 표본적인 용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일이 잘 되기를 희망하는 모든 성도들은 이러한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은 모든 사람이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지 않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려는 그들의 사도가 불안하고 악의에 차 있다 해도 놀라울 것은 없다. 우리가 안전하게 그들에게 들어갈 수 있는 보장은 없다. 우리는 양심도 명예도 무시하고 주께서 하신 말씀이나 행하신 바를 결코 존중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구출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공공연하게 대적해 오는 적보다 친구로 거짓 가장한 자들에게서 더 많고 큰 위험을 때때로 겪게 된다.

Ⅱ.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격려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그의 은혜를 신뢰하고 신임해야 한다. 그리고 겸손히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기대하여야 한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선한 것. 그것은 굳게 섬과 악으로부터의 보호이다.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유익을 필요로 한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을 굳게 하시기를 기대할 수 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 이것에 대해 기도하였고(2:17) 그리고 그들에게 이 은혜를 기대하도록 격려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지하여 주시지 않으면 버티어 설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주의 법 가운데 서도록 지지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실족하고" 추락하리라.

(2) 하나님이 그들을 악으로부터 보호하시기를 기대할 수 있다. 좋은 일의 시작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끝까지 그것을 위해 인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 죄의 악은 가장 큰 악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성도들을 그것으로부터 안전하게 보존할 또 다른 악이 있다. 그것은 세상에 뿌리 내리고 있는 악으로부터 보호이다. 즉 그는 성도들을 온갖 악에서 보호하여 하늘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할 수 있는 근거. 그것은 "주님은 신실하시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약속에 신실하시고 거짓이 없는 주님이며 자기 입에서 나온 것을 바꾸지 않으시는 주님이시다. 그는 한 번 약속하시면 반드시 실행하신다. 그는 그와의 관계 맺은 자들에게 신실하시다. 그는 그들의 신실한 하나님이요 친구시다. 우리는 그가 그의 모든 백성들과 맺으신 모든 관계를 채워 주신다는 사실에 의존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약속에 대해 진실하며 충실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러한 신실하신 하나님과 맺은 관계들에 대하여 또한 진실하고 신실해야 한다.

3.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이것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소망의 더 확고한 근거. 그것은 그들이 명령받은 것을 행하였고 또 행하려 한다는 사실이었다(4절). 바울은 그들에 관하여 이 사실을 확신했으며 또한 이러한 그들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확신에 근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더 이상의 신뢰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복종 여부는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그들에게 명령하였던 것을 행하였느냐에 따라 나타난다 또한 그와 그의 동역자들이 그들에게 명한 것은 바로 주님의 계명이기도 하였다. 사도들은 "주께서 가르쳐 지키도록 하라. 분부한 것"을 가르친 것 이외의 또 다른 계명을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다(마 28:20). 지난 날에 그들이 복종한 사실에 대한 사도의 경험은 장래에도 그들이 명령받은 바를 행하리라고 믿는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 13:22)는 말씀이 소망의 또 다른 근거가 되었다.

Ⅲ. 바울이 그들을 위해서 드린 짧은 기도(5절). 그것은 영적인 축복을 위한 기도였다. 사도가 위해서 기도한 가장 중요한 두가지 사실.

1.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모든 것 중 가장 훌륭하신 분이요, 가장 뛰어나고 자비하신 분이신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기를 바란 것이다.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은 곧 우리들의 행복 그 자체인 것이다. 하늘 나라의 행복은 곧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중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사랑은 그곳에서 완전하게 인도하시지 않는 한 우리의 사랑은 다른 것들을 좇아 방황하기 쉬우므로 우리는 결코 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수 없다. 옳지 않은 것을 사랑함으로 우리가 커다란 피해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옳지 않은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에게 죄요, 비참함이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로 올바르게 우리의 사랑을 그에게로 인도하신다면 우리의 사모함은 바르게 교정될 것이다.

2.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 안에 거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그리스도를 인내로 기다릴 수 있기를"바랐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다려야 한다. 이러한 기다림은 그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전제로 한다. 즉 우리가 그는 육신으로 오셨고 다시 영광 속에 오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해야 하고 삼가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때가 되면 그를 뵈오리라는 용기와 끈기를 가지고 인내하는 기다림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인내를 필요로 하고" 또한 이 그리스도인의 인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 곧 "그리스도의 인내"를 필요로 한다. 즉 그리스도를 위한 인내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3:2 없음.

 

3:3 없음.

 

3:4 없음.

 

3:5 없음.

 

3:6

규모없는 자들에 대한 경고(데살로니가 후서 3:6-15)

이전의 그들의 순종을 칭찬하고 장래에도 그들이 순종할 것을 확신한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울은 잘못을 범하는 자들을 그들이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명하고 지시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있는 나쁜점을 고쳐 주었다. 유의하라.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가장 훌륭한 사회일지라도 그들 중에 약간의 잘못을 범한 자가 있고 시정해야 할 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완전이란 하늘이편 세상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행위가 있기 때문에 좋은 율법이 생기는 것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 가운데 행하여진다고 들은 무질서는 이 구절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좋은 법칙이 생겨지게 하였다. 이 법칙은 우리들과 여기 관련될 수 있는 모든 다른 사람에게 계속해서 유익한 것이다.

Ⅰ. 데살로니아인들 중에 있는 나쁜 점.

1. 보다 다수인들이 범한 잘못. 본문에 의하면 "절제 없는 행하고 바울로부터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6절). 형제들 중 약간은 이런 무절제한 행위에 죄를 지었다. 그들은 규칙적으로 생활하지 않았고 기독교의 율법에 따라 자신을 다스리지 않았으며 신앙의 고백을 따르지도 않고 사도들이 설교한 계율에도 따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받고는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위장하였을 뿐이었다. 복음을 받고 복음에 복종한 것을 고백한 사람들에게는 복음에 따라 사는 것이 요구된다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절제한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2. 특히 그들 중에는 "게으르고 일만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11절). 사도는 이에 대해 확실히 전해 듣고 있었으므로 그런 사람들에 관해서 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교회는 그들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명령하고 지시할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1) 그들 가운데는 게으르며 "전혀 일을 하지 않는" 또는 아무것도 않는 자들이 몇이 있었다. 그들이 탐닉가나 술고래는 아닌 듯하나 게을렀고 무절제하게 행하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자기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있게 하신 환경과 맺어 주신 관계 가운데서 그들이 선을 행하도록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본문에 말씀된 이들은 주님의 재림에 관하여(전서에 있는 몇 구절은 잘못 이해해서)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오해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직업을 그만 두고 게으르게 생활하였다. 주의 재림을 게으름이나 어떤 다른 죄를 짓기 위한 구실로 삼는 것은 커다란 과오이며 믿음에 대한 남용임을 기억하자. 만약 우리가 심판의 날이 목전에 이른 것으로 확신한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에 해야 한다. 우리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주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일하고 있음을 보시게 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을 바르게 기다리고 종은 주님이 명하신 대로 일하고 또한 주께서 오시는 날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또는 무절제하게 행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신 그 자유가 세상 가운데 그들의 특별한 부르심과 소명에 대한 봉사와 일을 그만 두라고 해방시킨 것같이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야 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해야 하는 것이다"(고전 7:20-24). 인간으로서의 우리에게 주어진 직업에 근면한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보편적 부르심에 의하여 우리에게 요구되는 의무이다. 또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있었던 흔한 구제 행위가 어려운 형제들로 하여금 게으르게 생활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교회가 그들을 도와 줄 것으로 알고 게을렀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들의 게으름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들은 비난받아야 마땅했던 것이다.

(2) 그들 중에서 일만 만드는 자들도 있었다. 아마 게을렀던 자들이 또한 일을 저지르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모순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타당성을 띤 가정이다. 자기 자신이 할 일이 없거나 할 바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참견하는 데 바쁜 법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게으름을 부리면 악마과 부패한 마음은 곧 우리에게서 일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무언가 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특성이 있다. 좋은 일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치 않으면 그것은 악한 일을 할 것이다.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무절제한 자들로서 허영된 호기심과 그들과 관계없는 것에 주제넘게 관여하고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자기 자신과 남들을 괴롭히는 죄를 짓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바울은 디모데에게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평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는 그런 자들을 조심하라"(딤전 5:13)고 경고하였다.

Ⅱ. 이 사악한 행동들 때문에 제시된 훌륭한 규례. 그것에 관해 우리가 고찰하여 볼 것은 다음과 같다.

1. 규례를 제시한 분에 대하여 고찰해 보자. 그 규례는 우리의 주님이요, 또한 그들의 주님인 그리스도의 이름 이후 주어진 주의 사도들의 명령이었다. 즉 이것은 곧 우리 주님 자신이 하신 명령이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6절)라고 하였고 또 다시 우리가 너희에게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12절)이라고 하였다. 바울은 위엄스럽게 또는 간절하게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무질서가 고쳐지거나 방지되어야 할 곳에는 명령과 권면 두 가지 방법이 다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위엄은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을 주므로 복종하게 하시고 반면 그의 은혜와 선하심은 우리를 부드럽게 권면하신다.

2. 좋은 법도와 규례의 내용. 바울은 모든 교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다음에는 무절제한 자들에게 명령을 하고 다음에는 그들 가운데 특별히 모범적인 자들에게 권고하신다.

(1) 모든 교회에 대한 그의 명령과 지시

[1] 그들 중에 있는 규모없는 자들에 대하여 그들이 취해야 할 태도. 이에 대하여 본문에(6절) "그런 형제에게서 떠나라"하였고 그 후에(14절)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자 말므로 저로 하여금 수치를 느끼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지 말고 형제같이 권하라"고 하였다. 무절제한 자들은 대함에 있어서 우리는 바울의 권고를 주의깊게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비난받을 만한 사실을 대하여 또한 교회에서 있어야 하는 훈련에 대하여 첫째, 미심쩍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거나 또는 도전하며 적대하여 행동하는 자를 주의해야 한다. 즉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에 그의 잘못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가져야 한다. 둘째, 우리는 그를 친절한 태도로 경고해야 한다. 우리는 그로 하여금 그의 죄를 깨닫고 그의 의무를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마 18:15). 셋째, 그가 듣지 않으면 그를 떠나 그와 사귀지 말아야 한다. 즉 우리는 그런 사람과의 친절한 대화와 교제를 피해야 하는데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한가지 이유는 그의 나쁜 행위를 고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허영되고 게으른 자를 따르는 그런 자들과 사귀는 사람은 그들과 같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죄를 범하는 자로 하여금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그 행위를 고치게 하기 위해서다. 게으르고 규모없는 자들은 현명하고 선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단정치 못한 품행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것을 부끄럽게 여겨 좀더 규모있게 행동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짓는 형제들의 부도덕을 싫어하여 그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떠나게 된다고 할지라도 죄짓는 자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사람들일지라도 원수와 같이 생각치 말아야 한다(15절). 그 이유는 만일 이런 비난에 의해 그들이 교화되고 개선된다면 그들은 형제들로서 교회 특전에 대한 권리를 찾을 것이고 또한 신용과 위로를 도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의 일반적인 행동과 품행은 사도와 또한 그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에게 보여 준 훌륭한 본에 따라야 한다. 그러므로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7절)라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믿음을 심은 이들은 그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되었다. 복음의 사역자들은 자기 양떼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사도들의 그들 앞에 보여 준 훌륭한 본을 따르는 것이 즉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았듯"이 그들이 사도들을 본받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언급한 특히 훌륭한 본은 자신과 동역자들의 부지런함이었다. 그것은 규모없는 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없이 행하지 아니하였고(7절). 시간을 무익하게 즉 무익한 방문과 잡담과 헛된 놀음으로 낭비하지 않았노라"고 말한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자신들의 복음 사역과 복음을 설교하고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느라 수고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8절)라고 말한다. 그가 생활비를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복음에 의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마땅히 바랄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사역자들에게 갚아야 할 빛이다. 사도는 이것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권위를 갖고 있었다(9절).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대한 사랑 때문에 또한 복음을 위해서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본받을 만한 본이 되기 위해(9절) 그들도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 또한 그들로 항상 선한 사업에 종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리를 사양하였다.

(2) 그는 게으르게 생활하는 자들에게 그 생활을 바꾸어 자기의 작업에 다시 종사하라고 명하고 지시한다. 바울은 그들 가운데 있을 때 이런 취지로 명하고 또 좋은 본을 보였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너희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10절)라고 말하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는 말은 유대인들의 유명한 격언이다. 노동자들은 그의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빈둥빈둥 노는 자는 음식을 먹을 무슨 가치가 있는가? 모든 사람이 직업을 갖고 자기 직업을 돌보며 그것을 업으로 삼고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쓸모 없는 게으름뱅이같이 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게으른 자들은 "너희는 얼굴에 땀을 흘러 너희 빵을 지어라"라는 말을 어기는 자들이다. 바울 자신이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모든 사람도 자기처럼 행하기를 바랐다.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12절)는 교훈은 바울의 그때의 기분에 좌우된 교훈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의 생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먹지도 말아야 한다. 게으름과 반대되는 것은 일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것과 반대되는 것은 종용하게 거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용히 자신의 일에 종사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활동적이면서도 말이 없고 자신의 일에는 부지런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 종용한 태도는 말할 수 없이 귀한 생활 자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을 모두 구비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3) 그는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라. 낙심치 말 것을"권고한다(13절). "계속 선을 행하고 선한 일에 풍성하도록 하라. 너희가 하나님과 함께 있고자 하면 그도 또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가 하는 일이 선한 일이라면 그것을 끝까지 행하도록 하라. 너희의 길에서 흔들리지 말고 목표에 이를 때까지 용진하라. 너희의 일을 포기하거나 또는 싫증을 내지 말도록 하라. 너희가 하늘 나라에 이를 때 쉴 시간은 충분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영원한 안식이 있음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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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없음.

 

3:9 없음.

 

3:10 없음.

 

3:11 없음.

 

3:12 없음.

 

3:13 없음.

 

3:14 없음.

 

3:15 없음.

 

3:16

사도의 마지막 기원(데살로니가 후서 3:16-18)

본서신의 결론 부분에서 우리는 이들 데살로니가인들을 위한 바울의 축복과 기도를 대하게 된다. 이러한 축복과 기원이 우리의 친구들에게도 임하기를 사모하자. 본문에는 그들을 위하여 요구된 세 가지 축복이 기록되고 있다.

Ⅰ. 그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한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평강은 우리가 구해야 할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평안해야 우리에게 다른 번영의 축복도 뜻을 가진다. 본문에서의 평화는 특별히 하나님과의 평화와 그들 자신의 마음과 양식과의 평강과 교우들간의 평강과 모든 사람들과의 평강을 의미하고 있다.

2. 이 평강은 그들을 위하여 언제나 요구되어져야 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간구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언제나 또한 모든 일에 있어서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였다.

3. 모든 은혜들을 통하여 평강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여러 은혜를 즐기고 있을 때 그들은 또한 평강을 얻을 수 있었다. 평강을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항상 간구 되어야 한다.

4. 평강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그가 기도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필요한 평강은 간구하면 "평강의 주요, 만인의 일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것을 틀림 없이 주신다.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평안을 유지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평강을 나누지 아니하려고 할 것이다.

Ⅱ.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니라"라고 말한다. 우리와 우리의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가 함께 하시는 한 우리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다른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가 없으며 또한 우리와 우리 친구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간구할 필요도 없다. 이 임재하심이 우리의 가는 길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지켜 주실 것이다. 하늘 나라가 가치가 있는 것은 거기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세상도 하늘 나라와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또한 우리가 홀로 있을 때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문제가 없다.

Ⅲ.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에게 있을 것을"기원하였다. 이 말로써 사도는 또한 데살로니가인들에 대한 그의 첫 번째 서신도 끝맺었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즐길 수 있기를 확신을 갖고 소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이다. 왜냐하면 그가 멀리 있는 자들을 가까이로 인도해 주셨기 때문이다. 사도가 모든 일마다 영광을 돌리고 찬양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 은혜를 기뻐하고 신뢰하였다. 모든 다른 서신에서도 그러했듯이 이 문안과 축복은 그가 친필로 씀으로(나머지는 필생에게 쓰게 하였다) 그는 그의 편지를 받는 교회들이 그를 빙자한 가짜 서신들에 의하여 농락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이러한 가짜의 서신들이 위험스러운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는 우리가 완성된 경전을 갖게 된 데 대하여 감사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의 놀랍고도 특별한 보호에 의하여 계속되는 수많은 세대들을 통하여 그것이 순수하게 상함이 없이 보존되었고 또한 감히 한 마디로 거기에 더하여지지도 않고 또한 감해짐도 없이 보존되었음을 감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믿어야겠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여기에 두고 그리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충분한 또한 유일한 규례로 알고 이를 실행해야하겠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기에 충분한 말씀인 것이다. 아멘.

 

3:17 없음.

 

3:18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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