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데살로니가후서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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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경고에 대한 주의(데살로니가 후서 2:1-3)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전서에서 바울이 쓴 것을 오해하여 데살로니가 사람들 중 일부가 주의 재림이 눈 앞에 다가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즉 그리스도가 곧 오셔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그들을 생각하였다. 또는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그들이 성령으로부터의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처럼 말하거나 또는 사도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가 쓴 편지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으며, 또한 그가 그들에게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다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까닭에 사도는 이러한 과오를 시정하고 주의를 기울였다. 만약 그런 잘못과 실수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나온다면 우리는 그러한 잘못들을 수정하고 그것이 파급되지 못하도록 시급히 서둘러야 한다. 선한 사람들은 그들이 말하고 행한 것이 결백하고 또 좋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오해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잘못을 막기 위해 특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회만 있으면 악을 자행하려는 교활한 적이 있다. 그는 때때로 성경의 말씀에 근거하여 오류를 정당화시키려고 한다.

Ⅰ. 이 오해를 막기 위한 바울의 염려와 진지한 태도. 그러므로 그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라고 간절히 말한다(1절). 그는 그들을 형제로 여겨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책망하듯이 그들을 책망한다. 그는 친절과 정중함을 그들에게 나타냈고 그들의 환심을 얻고자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잘못으로부터 보호하거나 회복시킬 때 그들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즉 정중하게 사랑으로 그들을 다루는 것이 효과가 있는 방법이다. 거칠고 엄격한 대우는 그들을 화나게 할 뿐이다. 또한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권유하는 내용에 대해 오해를 갖게 할 뿐이다. 바울은 가장 정중한 태도로 그들에게 간청하고 권유한다.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심과"라고 되어 있는데 이말은 서원의 형태를 띠고 있다. 바울이 뜻하는 바는 만약 그들이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는다면, 또 그리스도가 재림하심을 바라고 주의 재림에 희망을 품고 즐거워한다면 바울이 지금 그들에게 주의 주었던 여러 가지 잘못이나 그 잘못의 나쁜 결과를 피하도록 조심하라는 뜻이다. 바울이 사용한 이러한 간청의 형태에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다.

1.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고, 모든 것에 대해 심판하기 위해 최후의 날 하늘 나라의 모든 영광과 권능 가운데서 주께서 나타나실 것이라는 것은 아주 확실하다. 그의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 우리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또한 무슨 오류가 생길지 모른다 해도 주님의 재림은 확실하다. 주님의 재림은 교회의 모든 시대를 걸쳐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소망이었다. 아담의 칠대손 에녹이 "보라 주께서 임하셨나니"(유14)라고 말한 이래로 그것은 구약 성도들의 믿음이며 소망이기도 하였다.

2.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에게 모여든다는 이말은 바울은 최후의 날에 심판을 위해 그리스도가 재림하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 그가 재림하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 날 재림으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과 같이 그의 성도들의 행복 또한 완전케 될 것이다(1절). 그 날에 성도들 모두가 모일 것이다. 그 날 모든 성도들의 전체적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며 여기에는 성도가 아니고는 아무도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율법의 어두운 그림자를 통해 그리스도와 알게 되고 멀리서 이 날을 보았던 모든 구약의 성도들과 복음서에 의하여 생명과 영원 불멸의 빛을 받은 신약의 모든 성도들, 그들 모두가 함께 모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사면 각처에서 현존하는 그리고 과거에 있었고, 또 미래에 있을 그러니까 태초부터 종말까지 살았던 모든 생명이 모일 것이다. 모두가 함께 모이게 될 것이다.

(2) 그 날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모이게 될 것이다. 주께서 성도들의 단체에 그 중심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를 중심으로 모여서 그를 시중들고 그의 보좌관이 되고 그에 의해 아버지께 소개되며 영원히 그와 함께 거하며 끝날까지 주의 앞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 앞에 우리 모두가 모인다는 가르침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바울이 그렇게 중요한 간청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믿고 또한 그 문제를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하고 우리가 깊은 관심을 쏟을 문제로 여겨야 할 것이다.

Ⅱ.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경고한 점은 그들이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시기에 관해 속아서는 안 되고 마음 속으로 흔들리거나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잘못된 이해는 우리 믿음을 매우 약하게 하며 우리를 괴롭히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러한 자들은 믿음이 약하며 또 마음에 갈등을 느끼는 자들은 때때로 속기 쉽고 유혹자의 먹이가 되기 쉬운 법이다.

1. 바울은 그들로 속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3절)고 하였다. 속이기 위해 숨어서 기다리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많은 속임수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떤 사기군들은 새로운 계시가 있는 체하고 어떤 무리들은 성경을 오역하고 또 다른 자들은 야비한 사기죄를 음모하여 속이려 한다. 그들은 가지각색의 속임수와 책략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우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경고한 특별한 문제는 마치 그리스도의 재림이 사도 시대에 있을 것 같이 생각하는 태도였다. 이런 과오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해롭지 않은 것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견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던 것이다.

2. 그러므로 사도는 그들에게 경고하고 그들로 하여금 마음이 쉬 동요되어서 괴로움을 당하지 않도록 하려고 하였다.

(1) 그는 그들의 믿음은 약하게 되지 않게 하려고 하였다. 우리들은 확고하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이것에 관한 믿음에 굳게 서야만 한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인들에게는 그들 또는 그들 이 존경하는 다른 사람들이 그 시기에 대해서 잘못 생각함으로써(그리스도의 재림이 마치 가까이 온 것으로 그들이 이해하게 된다면) 데살로니가인들이 그 사건 자체에 대한 진실성 또는 확실성을 의심하게 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든 성도들의 믿음과 소망인 이 위대한 사실에 대해 마음이 동요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거짓 가르침은 물을 이리 저리 흔드는 바람과 같아서 때때로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시키며 그리하여 때때로 그들을 물처럼 동요하게 한다.

(2) 바울은 그들의 위로가 약화되지 않게 하며 그들이 고난을 당하지도 않고 거짓 경보에 놀라지도 않게 하려고 하였다. 비록 그리스도의 재림은 믿는 자의 소망과 즐거움이긴 하지만 주의 재림은 그들 중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이 되어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이 날이 얼마나 놀라울 것인가 하는 생각이나 그들이 준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그리스도의 재림 시기에 대한 그들의 잘못 생각 때문에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항상 주의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생각으로 낙담해서도 안 되고 불안해서도 안 된다.

 

2:2 없음.

 

2:3 없음.

 

2:4

배교에 대한 예언(데살로니가 후서 2:4-12)

이 구절에서는 바울은 그가 그들에게 경고했었던 잘못된 견해들을 논박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임박한 것으로 기다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여러 가지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특히 그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을 것을 말한다.

Ⅰ. 배교. 그러므로 본문에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3절)라고 하였다. 이 배교라는 것은 국가에 대한 의무 불이행이나 정부에서의 이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이고 신앙적인 영역 문제로써 건전한 가르침, 규정된 예배, 교회기구, 거룩한 생활 등에서의 이탈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대대적인 배교에 대해 말한다. 개종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배교가 점진적인 것이긴 하나 광범위하게 있을 것이고 "적 그리스도" 즉 "죄인들"이 발흥하고 그들의 거짓 계시가 있을 것을 사도는 말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에게 이 사실에 대하여 말해주었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가 그때 말한 의도는 그들로 그것에 의해 범죄하거나 넘어지지 않게 하려는 뜻에서였다(5절). 기독교가 세상에 시작되어서 뿌리를 내리던 초기에도 이미 교회 내에는 배교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그것은 구약 교회에서도 그랬다. 신앙에 주목할 만한 발전이 있자 곧 이어 변절이 뒤따랐다. 약속에 뒤이어 곧 거역이 있었다. 예를들면 인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리기 시작하자 곧 모든 육체의 타락이 있었다. 노아와의 계약이 있은 후 곧 바벨탑을 세워서 하늘에 도전하였다. 아브라함과의 계약이 있은 후 곧 그의 자손은 애굽에서 타락의 생활을 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그 당대인들이 사라지자,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다. 하나님이 다윗과 맹약을 한 후 그의 자손은 반역하여 다른 신을 섬겼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얘기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포로 생활에서 귀환하고 나자 경건성이 점차로 타락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가 세워진 후 배교하는 일이 생긴 것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Ⅱ. 불법의 사람의 출현(3절). 이러한 전반적인 배교의 분위기 가운데 적 그리스도가 출현할 것이다. 바울은 다음 절(8절)에서도 불법한 자의 출현에 대해 말한다. 그 내용은 그의 불법이 발견되어 중국에는 그가 파멸되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절에서도(3절) 그의 첫 출현에 대하여 말하려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그가 언급했던 광범한 배교에 의하여 계가 된 것으로 모든 거짓 가르침과 타락이 그를 중심으로 발생함을 타나내려고 한 것같이 보인다. 이 불법의 사람과 멸망의 아들이 누구이며 그가 의도했던 것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커다란 논쟁이 있었다. 이것이 교황권이나 교황청의 독재를 의미하는 것 이라고 분명히 말해지고 있지 않으므로 확실히 말할 수 없으나 본문에서는 언급되는 내용이 로마 교황권 제도와 정확하게 일치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점을 고찰해 볼 때 나타난다.

1. 본문에는 이 사람의 이름 또는 다른 말로 그의 권력이 어떠한가가 언급되고 있다. 그는 불법의 사람으로 불리워지며 이로써 그의 뛰어난 악함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사악함을 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죄와 사악함을 고무하고 장려하고 강요한다. 또한 그는 명망의 아들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틀림 없는 멸망의 일에 몰두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영과 육을 파괴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이러한 이름들은 정확히 로마 교황권에 적응시키는 것이 적당하게 생각된다. 또한 다음 점에도 일치한다.

2. 본문에는 그의 특징들이 제시되고 있다(4절).

(1)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분 위에 뛰어나 자존(自尊)한다"고 하였다. 이같이 로마의 주교들도 하나님의 권위와 신과 대등하게 존엄한 각 국가의 집권자들의 권위를 대적하고 하나님과 세상의 집권자들보다 높은 위치에 서서 하나님이나 집권자들의 명령보다 자기들이 명령을 더 존귀하게 여겨 줄 것을 요구한다(역주: 구교와 갈등이 심각하던 영국에서 활동한 저자이기에 이러한 논리를 전개한 것 같고 더구나 왕권이 강력하던 당 시대의 모습을 우리는 여기서 엿볼 수 있다)

(2) 또한 "하나님같이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구약에는 성전에 계셔 거기서 숭배받았고 지금은 그의 교회 안에서 교회와 함께 하신다. 그러나 여기 말한 적 그리스도는 기독교 교회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찬탈하여 신의 명예를 누리려고 주장한다. 바로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곧 로마의 주교들은 가리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한 로마 주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신성 모독적인 호칭들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Dominus. Deus noster Papa - 즉 우리 주 하나님이신 교황이라든가 Deus alter interra - 즉 지상에 계시는 또 다른 하나님 Idem

est dominium Dei et Papa - 즉 하나님과 교황의 통치는 동등하다. 이 얼마나 신성 모독적인 말들인가!

3. 적 그리스도의 출현이 언급되었다(6,7절). 이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 것을 관찰할 수 있다.

(1) "자기 때가 될 때까지." 그것은 출현의 제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적 그리스도의 출현을 제지하고 있는 세력은 로마제국의 권력이라고 가정되고 있다. 바울은 당시에 그것이 로마 제국의 권력임을 명백히 말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권력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그것으로 로마 주교들이 최대의 독재권을 누리지 못하도록 저지한 사실을 유명하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쇠퇴와 함께 그 독재권은 곧 획득되었던 것이다.

(2) 이 불법의 비밀은 점차적으로 정상에 예배도 점차로 광범위하게 부패되었고 로마 주교들의 권력 쟁취도 단번에 된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같이 불법의 비밀은 쉽게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세력을 확대하였다. 바울은 그것을 "불법의 비밀"이라고 바르게 부른다. 왜냐하면 나쁜 흉계와 행동이 거짓 위장과 가면 속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이러한 로마교 불법들은 일반의 관찰로는 알 수 없게 가리워져 있었다. 위장된 열심에 의하여 미신과 우상 숭배는 조장된다. 또한 하나님과 그의 영광에 대한 거짓된 열심에 의하여 편협과 박해는 또한 조장된다. 그리고 그는 이 불법의 비밀이 그때 벌써 시작되었거나 이미 역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도들이 살아있는 동안 "원수들이 나타나 가리지를 뿌렸다." 그 때 "니골라당의 소행"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열심히 있는 척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이었다. 디오드레베와 다른 사람들의 경우와 같이 교회지도자들의 자만과 야망과 세상적인 이해가 불법의 비밀로 처음부터 역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로 증대하여져 로마 교회에서 볼 수 있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4. 적 그리스도인들의 나라의 몰락과 파멸이 언급되었다(8절). 적 그리스도의 왕국의 우두머리를 "불법의 사람"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통치와 권능에 겨루고 대적하여 인간의 권력을 세우려는 무법자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불법의 사람으로 나타내려고 하므로 그의 진모가 드러났고 이러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곧 그가 명망과 전조와 기회가 되는 것이다. 바울은 주께서 그를 소멸시키고 파멸시킬 것임을 데살로니가인들에게 확증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파멸당하기 전에 "그 입의 기운" 즉 그의 명령에 의해오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수반된 적 그리스도의 힘을 소멸하고 황폐하게 하실 것이다. 때가 되면 그것은 모두 완전히 파멸될 것이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광채에 의하여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가 불법한 자를 폐하시러 오실 때에 특별한 영광과 뛰어난 광채와 광명이 함께 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5. 다음으로 사도는 이 불법의 사람의 통치와 지배를 묘사한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적 그리스도의 출현과 통치와 역사의 방법. 일반적으로 적 그리스도는 성령의 커다란 적이며 하나님과 인류의 커다란 적대자인 사탄의 본을 따라 행세한다. 이 적 그리스도는 오류와 거짓의 커다란 후원자며 예수와 예수를 믿는 모든 자 중에 있는 진리에 대한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특별히 그것은 사탄의 힘과 거짓으로 역사한다. 신의 힘이 이 왕국을 지지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단지 사단의 역사에 의거한 것이다. 표적과 이적 환영과 기적으로 그것은 위장을 하고 나타난다. 이것들로 인해서 교황 왕국이 처음으로 세워졌고 계속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가르침을 지원하기 위하여 거짓 표적을 행할 뿐인 것이다. 거짓된 기적이나 위장된 기적이 그들의 입장을 지지한다. 그들은 사실을 은폐하고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을 강요한다. 적 그리스도의 국가가 그것으로 지지를 받는 악마적인 속임수는 악명 높은 것이다. 바울은 이것을 "불의의 모든 속임수"라고 부른다(10절). 다른 이들은 그것을 경건한 속임으로 부를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바울은 불의하고 악한 속임수로 말했다.(진리를 거역한) 모든 속임은 불경건한 것이다. 불법의 사람이 쓰는 교묘한 술책은 많으며 또한 부주의하고 불안정한 영혼을 속여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게 하고 그의 찬탈해서 누리는 지배권에 복종하도록 위장을 하는 그럴싸한 거짓이 너무나 많다.

(2) 적 그리스도의 종이 되거나 그렇게 되기가 쉬운 사람들이 묘사되고 있다(10절).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함을 얻지 못할 자들이다" 저희는(아마도) 진리는 들었지만 그것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진정한 가르침을 감당할 수 없어 쉽게 거짓 교리에 넘어갔다. 그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추상적인 지식은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강력한 편견에 몰두되어 결국 유혹자의 먹이가 된다. 그들이 진리를 사랑했다면 진리 안에서 보호를 받고 진리에 의해 보호받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니 놀라운 일이 못된다. 이들에 대해서 버림을 받으리라고 말씀되고 있다. 그들은 추방 상태에 놓여 있고 영원히 추방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6. 반 기독교 왕국에 속한 그 부하들의 죄와 파멸이 언급되고 있다(11,12절)

(1) 그들의 죄는 이렇다. 즉 "그들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했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믿지 않았다. 또한 진리를 믿지 않았으므로 불의나 불법한 행동을 좋아했고 거짓된 개념들을 좋아했다. 잘못된 지식과 부도덕한 생활은 가끔 조화하여 서로를 부추겨 준다는 것을 기억하자.

(2) 그들의 파멸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실 것이다." 이 같이 하나님은 그들이 불신하였으며 진리를 증오하고, 죄와 불의를 사랑한 이유로 그들을 형벌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아니사고 여기에 언급된 것과 같은 죄인들로부터 그의 은혜를 공의에 의거하여 거두어 들이시는 분이시다. 그는 그들을 사탄에 빠뜨리시거나 사탄의 도구로 유혹받게 내버려 두신다. 그는 그들을 마음 속의 욕망에 빠지게 하시고 그들을 홀로 내버려 두신다. 그 결과는 물론 죄가 따르고 결국 최악의 악행까지 행하게 되어 마침내는 영원한 파멸로 끝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는 영적으로 심판을 하시고 이후 세상에서는 영원한 형벌을 내리시는데 곧 복음의 진리를 전혀 사랑하지 않고, 믿지도 않고, 그것에 따라 살지도 않으며 다만 그들 마음속에 있는 거짓 가르침을 탐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과 생활 속에 불의를 자행하는 자들에게 내리신다.

 

2:5 없음.

 

2:6 없음.

 

2:7 없음.

 

2:8 없음.

 

2:9 없음.

 

2:10 없음.

 

2:11 없음.

 

2:12 없음.

 

2:13

택함받는 자들에 대한 부탁(데살로니가 후서 2:13-15)

여기에서는 다음의 내용을 고찰하여 보자.

Ⅰ. 데살로니가인들은 이 배도의 두려움에서 탈피하여 위로를 얻을 자격을 얻었다(13,14절). 왜냐하면 그들의 구원을 얻도록 선택되었고 영광을 얻을 수 있도록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은 사람의 배도에 관하여 듣게 될 때 은혜의 선택에 따라 끝까지 보존받을 남은 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위로와 즐거움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특히 우리가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리라고 바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기뻐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 때문에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드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함은"이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가끔 데살로니가인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었고 지금도 그들에 대해 감사가 풍성하였다. 그들이 배도하는 것과 무관하였다는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충분한 감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같이 성도들을 보존하심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이다.

1. 은혜로 선택하심의 불변함에 힘입어서이다(13절).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셨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1) 그의 선택은 영원 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선택은 태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복음서의 처음이 아니라 세상이 세워지기 전 곧 태초에 이루어진 것이었다(엡 1:4).

(2) 그들을 선택하신 목적. 그것은 구원을 위해서였다. 즉 죄와 비참함에서의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과 모든 선한 것의 완성을 위해서였다.

(3) 이 목적을 쟁취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 그것은 "성령의 거룩하게 함과 진리를 믿음"으로써였다. 그러므로 선택의 포고는 그 목적과 방법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은 분리되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은 우리가 성스러워서가 아니고 성스러워지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으므로 우리 임의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목적하는 구원을 위해서 선택받았다면 우리는 그 목적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방편인 거룩함을 입으므로 그것을 위해 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하게 됨은 거룩함의 주관자이신 성령의 역사와 우리 편에서는 믿음을 갖춤으로 가능한 것이다. 거기엔 진리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 우리는 진실로 거룩하게 될 수 없고 은혜를 보전할 수도 없고 구원을 얻을 수도 없다. 거룩함이 축복과 연결되듯이 믿음과 거룩함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구주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고(눅 22:32) 그의 제자들을 위해서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기도하셨던 것이다(요 17:17).]

2. 복음의 소명이 갖는 유효성에 힘입어서이다. (14절) 그들이 구원을 위해 선택되었고 또한 따라서 복음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그는 또한 부르셨다(롬 8:30). 하나님의 외적인 소명은 복음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성령의 내적 작용에 의해 효력을 나타낸다. 복음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영광을 얻는 곳으로의 부르심과 초청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것은 존귀와 행복에로의 부르심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로의 부르심이다. 그 영광은 그가 대가를 치루고 사셨고 소유하셨는데 이는 그를 믿고 주의 복음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시기 위해서였다. 이 영광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므로 그의 영광을 바라봄으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며 그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에 근거하여 다음의 사실이 주장되고 있다.

Ⅱ. 굳건함과 인내에 대한 권고. 본문에서 그는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라"고 한다(15절). "너희는 구원을 위해 선택되었으니 부주의하고 안심해도 좋다"고 그는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니까 "굳게 서라"고 하신다. 우리를 선택하려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신실함과 노력을 폐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장 큰 결심과 부지런함을 일깨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기가 편지했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주께 받음 바 기름부음이 그들안에 거하니 그들도 그 안에(곧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할 것을 말씀한 후 또한 "주 안에 거하라"는 권면을 더하였다(요일 2:27, 28). 데살로니가인들은 그들의 기독교 신앙 안에 굳게 서고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굳게 지키며" 사도에 의하여 즉 그의 말씀이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복음의 교리를 굳게 지키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아직 성경의 경전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틀림이 없으신 성령의 인도 하에 사도들에 의하여 얼마의 내용들이 전달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알고 마땅히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사도는 말하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데살로니가 전서를 썼었던 때처럼 그들에게 서신을 보낼 또 다른 필요성이 생기어 후서를 썼던 것이다. 그리고 이 편지들은 글쓴 이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거룩한 것이므로 그들이 지킬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본문에 보면 "말로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은 사도의 유전은 다 성경에 포함되었고 이제 경전이 완성된 오늘날에는 성서와 대등한 권위를 지닌 유전은 없다(역주: 로마 카톨릭의 경전 이외의 전승에 대한 존중 사상을 배격하려는 의도로 보임). 영감을 받은 사도들에 의하여 가르쳐진 교훈이나 의무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착실히 지켜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에 포함된 것 이외에 사도들이 전한 것이라고 증명되는 어떤 것도 현재는 소유하고 있지 않고 있다.

 

2:14 없음.

 

2:15 없음.

 

2:16

바울의 기원(데살로니가 후서 2:16,17)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데살로니가인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볼 수 있다.

Ⅰ. 그가 기도 드린 대상.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기도드린다"고 본문에서 말한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직접 기도를 드릴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에게 기도할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하여 또 그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게 기도드려야 하는 것이다.

Ⅱ. 바울이 기도 중에서 용기를 얻은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과 그들을 위해 이미 행하신 것을 생각함으로부터였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선에 대한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을 본문에서 말한다(16절). 여기서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소유하고 또 소망하는 모든 선함의 샘이며 분수이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성화하시고 구원하신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서이다.

2. 특히 모든 위로는 이 분수에서 흘러 나온다. 그리고 성도들이 받을 위로는 영원한 위로이다. 성도들이 받을 위로는 시들어 버리는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성도들과 함께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위로를 그들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취하여 가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시므로 그들은 영원한 위로를 얻을 것이다.

3. 그들의 위로는 영생에 대한 소망에 근거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망으로 기뻐한다. 그것이 있으므로 그들은 환란 중에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가운데서도 기쁨을 누린다. 이러한 강한 위로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성도들이 좋은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소망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선함과 신실하심에 대해 체험한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그것은 은혜에 의한 선한 소망이다.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와 자비는 그들이 소망하던 것이고 그들의 소망이 근거를 두고 있는 곳이다. 그들은 그들의 소망을 자신이 지닌 공로에 의존하지 않는다.

Ⅲ. 데살로니가인들을 위해 바울이 하나님께 청한 것. 그것은 "그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는 것이었다"(17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위로를 주셨다. 또한 그는 그들이 좀더 풍성한 위로를 얻도록 기도했다. 그는 은혜를 통하여 그들이 보존하기를 소망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굳게 되기를 기도했다. 위로와 굳게 됨이 여기서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있었나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위로는 확고하게 되는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사업과 법도에서 즐거움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 안에서 인내하기가 더욱 쉬어지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법도 가운데 굳게 섬은 위로받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이다. 반면 믿음이 흔들리고 의혹된 마음을 갖거나, 우리의 의무를 멈추고 우물거릴 때, 우리가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과 거리가 떨어진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불안의 밑에 깔려있는 것은 곧 신앙에의 불확고함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든 선한 사업과 말에, 진리의 말씀과 의로운 일에 굳게 되어져야 한다. 우리의 선한 행위와 말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신실한 자들은 이 두가지를 다 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며 그러는 중에 그들은 위로와 확고하게 됨을 소망하게 되며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의 거룩함과 축복이 완성되는 것이다.

 

2:17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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