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데살로니가후서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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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문(데살로니가 후서 1:1-4)

우리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

Ⅰ. 서문(1,2절). 그 내용은 앞의 서신과 같은 말로 표현되었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설교로 전한 내용을 그의 서신들 가운데서 글로 다시 쓰는 것을 수고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였음을 살펴 보았었다(빌 3:1). 마찬가지로 그는 어떤 교회에게 썼던 내용을 또 다른 교회에 써서 보내는 것을 기꺼이 하였다. 전서와 똑 같은 말이 후서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역자들이 그들이 전하는 가르침의 진리됨이나 유익성보다 문체의 다양한 표현이나 우아함에 비중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을 보여 준다. 고상한 설교를 하려는 욕심 때문에 자연 종교(역주: 저자는 자연 종교를 오늘날 우리들이 쓰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즉 계시 종교에 반하는 종교라는 뜻으로 보다는 계시 종교를 보완해 주는 인간의 깊은 종교성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나 계시 종교의 원칙과는 반대되는 새로운 개념이나 교훈을 도입해 드리지 않도록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다른 모든 참된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호도 참 신앙의 기초 위에 즉 다른 말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세워진 교회였다.

Ⅱ. 바울의 데살로니가인들에 대한 높은 존경의 표현, 바울은 그들을 매우 사랑했을 뿐 아니라(그러므로 그가 전사에서 표현한 바와 같이 여기서도 다시 그들의 은혜와 평강에 대한 경건한 염원을 표현하였다) 그들은 대단히 존경하였다.

1. 그의 그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 방법.

(1) 바울은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라고 말하였다(3절). 바울은 그들을 칭찬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훌륭함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말한 것을 그의 즐거움으로 여긴 동시에 그는 그것을 또한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조건으로 여겼다. 그가 그렇게 행한 것을 매우 당연한 처사였다. 우리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모든 좋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림은 우리의 의무이다. 또한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들에 대한 친절한 행위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기도 한 것이다.

(2) 바울은 그들을 여러 교회에게 자랑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너희를 자랑한다"고 하였다(4절). 바울은 결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아첨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이들을 고무시키고 용기를 북돋기 위해 그들을 높이 칭찬하고 좋게 평하기를 즐겨하였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와 자기의 그들에 대한 노고에는 영광을 돌리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는 영광을 돌렸다. 그의 영광을 돌림은 훌륭한 처사였다. 왜냐하면 그의 그들에 대한 칭찬과 그들로 인한 즐거움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영광을 중심으로 한것이기 때문이다.

2. 바울이 그들을 존경하고 또 하나님께 감사한 조건. 그것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인내가 더욱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전기 서신에서 바울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 대하여 감사를 했고(1:3) 여기서 그는 이 모든 은사의 증가에 대하여 감사한다. 즉 그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일뿐 아니라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음을 기억하자. "의인의 행위는 빛나는 태양과 같아 완전한 날(대낮)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빛나는 법이다." 그리고 은혜가 증대하는 곳에서 하나님을 반드시 그 은혜에 대한 모든 영광을 받으셔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은혜의 첫 번째 역사(役事)와 그 시작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듯이 그 은혜의 진보와 선한 사업의 성장에 있어서도 그의 덕을 입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악했을 때는 우리 자신을 선하게 만들 수 없지만 우리가 선할 때는 우리가 쉽게 자신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을 받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지 못했을 때 은혜를 처음 받으려면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야 하듯이 우리가 갖고 있는 은혜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도 더욱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야 한다. 데살로니가인들을 위한 바울의 감사와 영광의 이유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그들의 신앙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한 것이 그 이유였다(3절). 그들은 복음에 계시된 진리 안에서 더욱 견고하게 되었고 복음의 약속을 믿으며 저 세상에 대한 산 소망을 가졌다. 그들의 신앙의 성장은 믿음의 역사(役事)에 의해 나타냈다. 신앙이 자라는 곳에서는 다른 은혜로 이에 비례하여 성장한다.

(2) 그들의 사랑이 풍성해진 점이 그 이유였다. 즉 그들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풍성해진 점이 그 이유였다. 믿음이 자라는 곳에 사랑은 풍성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믿음은 사랑에 의해 역사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몇만 사랑이 풍성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서로에 대한 사랑에 풍성했다.

(3) 그들의 믿음과 마찬가지로 인내가 모든 핍박과 시련 가운데 자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시련에 처했을 때에 비로소 그 인내 완전함을 알게 된다. 데살로니가인들은 이 재난으로 가득 찬 삶 가운데서 직면하는 다른 고난을 참아냈을 뿐 아니라 의를 위해서도 많은 핍박을 견디어 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주님을 볼 수 있는" 믿음과 "보상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이 모든 것을 참았다. 그들은 인내로 모든 핍박을 견디었다. 그들이 참을 수 있었던 것은 핍박과 고난에 대해 그들이 둔감하여서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와지는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앙에서 오는 이 인내의 힘이 그들을 조용히 견딜 수 있게 하였고 그들에게 내적 힘과 용기를 공급해 주었던 것이다.

 

1:2 없음.

 

1:3 없음.

 

1:4 없음.

 

1:5

심판날에 있을 하나님의 상벌(데살로니가 후서 1:5-10)

그리스도를 위해 데살로니가인들이 인내하였던 핍박과 고난에 대하여 언급한 후 바울은 계속해서 핍박과 고난을 받고 있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였다.

Ⅰ. 바울은 그들이 당하는 고난으로 인한 현재의 행복과 이로움을 그들에게 설명한다(5절). 이같이 고난 가운데서 그들의 믿음이 시련을 받고 인내심이 성장하므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보장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합당할 자로 여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고난을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격이 있고 그렇게 여겨질 만하다는 증거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독교를 위하여 고난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리 즉 신앙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박해를 견디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전혀 신앙이 없거나 신앙의 가치를 찾아 내지 못하였거나 그것을 바로 평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고난 받아야 될 하등의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반면 데살로니가인들은 그들의 고난에 대한 인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하늘 나라의 영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로 여기어짐을 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그 영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에서가 아니고 합당한 자로 간주된다는 말이요, 그들이 하늘 나라를 갈 수 있는 공로를 쌓았다는 말이 아니고 천국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나 또는 우리의 모든 고난에 의해 채무를 받듯이 의당히 하늘 나라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에 대한 인내에 의하여 하나님을 위해 고통을 참는 자들에게 약속된 즐거움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Ⅱ. 그는 다음에 박해자와 피박해자가 받을 장래의 보상에 대해 그들에게 설명한다.

1. 미래에는 상벌이 있게 될 것이다.

(1) 박해자에게는 형벌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은 너희로 환란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란으로 갚으실 것이다"(6절)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이름과 성도들에 대한 박해와 적대적인 행위보다 더 지을 수 없는 영원한 파멸의 표적을 인간에게 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도들이 믿음과 인내와 순결이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과 즐거움의 징조가 되듯이 박해자들의 자만과 악의와 악랄함은 그들에게 영원한 불행의 징조가 된다. 이로 보건대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천당이나 지옥의 표적을 지니고 살고 또 그것을 지니고 세상을 떠난다. 하나님은 반드시 보답하시고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괴롭히실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들을 심판하신다. 이 사실은 많은 박해자들의 무서운 말로에서 입증된다. 그러나 특히 그는 이 징벌을 저 세상에서 내리시는데 그곳에서 받을 사악한 자들의 운명은 "울며 통곡하며, 이를 가는 것"이 될 것이다.

(2) 피박해자들이 받을 보상. 하나님은 안식으로 그들의 고난을 보상하실 것이다(7절).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는 안식이 있는데 곧 죄와 슬픔으로부터의 안식이다. 비록 현재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로 의한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거기서 모두 구해 주실 것이다. 장래의 안식은 지금의 모든 고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될 것이다. 지금의 고난은 앞으로 나타날 영광과 비교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우리 가 잃거나 고난을 겪기도 하는 모든 것들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것이 천국에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환난받는 너희에게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말한다. 천당에서는 이 세상에서 함께 고난을 받는 사역자와 회중들이 함께 안식하고 함께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가장 천한 그리스도인도 가장 훌륭한 사도와 함께 안식하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면 또한 그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이다(딤후 2:12)

2. 미래의 상벌에 대한 그 외의 문제들

(1) 그것의 확실성. 그 확실성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에 의해 입증된다. 그러므로 본문에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각각 갚아 주심이 "하나님의 공의시니"라고 하였다(6절). 장차 상벌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악인들과 박해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의로운 자와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그 사실은 큰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공의로운 하나님이 계시다면 공의로운 보상이 있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고난받는 백성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고난에 의해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것이나, 적대자들은 성도들에 대하여 행한 의기양양한 박해에 의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2) 이런 공의로운 상벌이 시행될 시기. 그것은 "예수로서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이다(7절). 그 날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나는" 날이 될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그가 예정하신 사람 곧 의로우신 재판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공의로 판단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섭리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던 때에는 자신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시지 않았으나 대 심판날에는 자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성경은 다가올 심판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에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주어진 다음과 같은 계시를 볼 수 있다.

[1] 주 예수께서 그날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 하늘은 주를 그 품에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때에 그는 분명하게 모습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는 "우리가 구세주를 바라는 곳인"하늘 나라의 영광과 권세 가운데서 나타나실 것이다.

[2]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또는 그의 권능의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실 것이라는 것이다(7절). 이 천사들은 그를 옹위할 것이요. 그러므로 그가 나타나시는 날의 엄숙함을 더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그 날에 예수의 정의와 자비의 집행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죄지은 자들을 법정으로 소환하여 심판의 주님 앞에 모으고 그가 형을 선고하는 대로 형을 집행할 것이다.

[3] 그가 불꽃 중에 나타나실 것이라는 것이다(8절). 그에게서 불꽃이 나와 그의 원수들을 태울 것이다.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탈 것이고 모든 물체가 강렬한 열에 녹을 것이다. 그 불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에 참여하며 그 순결함이 참여하게 될 성도들을 순결케 하며 정결케 하는 불이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사악한 자들에게는 소명하는 불이 될 것이다. 그의 빛은 그 날에 쭉정이로 발견될 모든 사람들을 관통할 것이고 그의 능력은 그것들을 태워버릴 것이다.

[4] 그의 나타나심의 결과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서운 것이 될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첫째, 그의 나타남의 결과는 어떤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될 것이다. a. 자연 종교의 원리에 거슬려 죄를 짓고 본성의 빛에 적대하고 그의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들 가운데 나타났음에도 하나님을 모른 자들에게 그의 나타남은 두려움이 될 것이다(8절). b. 계시의 빛에 거역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순종치 않은 자들에게 그의 나타남은 두려움이 될 것이다. 빛이 세상에 왔으나 빛보다도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은 저주받을 만한 사실이다. 이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범하는 죄이다. 복음이 그들에게 주어졌으나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또는 그들이 그것을 믿는 척 한다 해도 그것에 복종하지는 않으려 한다. 복음의 진리를 믿는 것은 복음의 교훈에 복종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믿음에는 복종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두려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9절에 언급된 내용이 그들이 처할 운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사실들을 좀 더 살펴 보자.

(a) 그때 그들은 처벌될 것이다. 비록 죄인들의 형 집행이 오랫동안 연기될지는 모르나 결국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당할 고통은 죄에 대한 당연한 형벌일 것이고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한 형벌은 죄에 대한 업보이고 죄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b) 그들에 대한 형벌은 그들의 존재를 파멸시킬 뿐 아니라 그들의 행복도 파괴할 것이다. 또한 육신만이 멸망하지 않고 육신과 영혼이 같이 멸망할 것이다.

(c) 이 멸망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항상 죽어가고 있을 것이나 결코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고통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흑암의 쇠사슬은 영속적인 쇠사슬이며 그 불은 영속적인 불이다. 그 형벌은 영원한 하나님이 신의 자비와 은혜를 벗어난 불명의 영혼에게 가한 형벌이기 때문에 영속적인 모습을 띠고 계속될 것이다.

(d) 이런 멸망은 "여호와 앞에서" 즉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자기의 피조물과 도구에 의한 간접적 방법에 의해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나 그 때에는 손수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나와 나답과 아비후를 태웠던 소명하는 불보다 더 무섭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와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다.

(e) 이 파멸은 "그의 힘의 영광" 또는 그의 영광스러운 권능에서 나올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뿐만 아니라 그의 전능하신 힘이 죄인들을 멸망시킴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 누가 주님의 진노의 힘을 알겠는가! 그는 죄인을 지옥에 떨어뜨릴 수도 있는 분이신 것이다. 둘?, 그 날은 어떤 사람들 곧 복음서를 믿고 순종한 성도들에게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 때에 이 날에 대한 사도의 증거가 확실히 입증되고 또 신앙될 것이다(10절). 밝고 영광된 그 날에 마음의 일이 있을 것이다.

a.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에게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 그들은 주의 영광을 보고 즐겁게 그것을 찬양할 것이다. 그들은 그의 은혜에 대하여 영광을 돌릴 것이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힘과 선함의 기이함을 찬양하고 주님이 승리하신 그 날에 그들의 완전한 승리와 행복을 인하여 할렐루야로 그에게 노래 부를 것이다.

b. 그리스도는 그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찬양을 받으실 것이다. 그가 대가를 치르시고 무엇을 사셨으며 또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셨는지가 나타날 때에 그의 은혜와 능력은 나타나고 확대될 것이다. 그의 진노와 권능이 적들의 파멸에 의해 알려지듯이 또한 그의 은혜와 권능은 성도들을 구원하심으로 확대될 것이다. 믿는 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태도를 보고 언젠가 세상이 놀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지금도 그들은 많은 점들에 대하여 기이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크고 영광된 날에는 그들이 더욱 놀랄 것이다. 하나님의 신비가 성취될 때 그 이름이 "기묘"이신 그리스도는 얼마나 찬양을 받으시게 될 것이가.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함께 데리고 올 천사들이 드리는 영광의 찬양 이상으로 그가 영광 가운데로 인도할 많은 성도들에게서 더욱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1:6 없음.

 

1:7 없음.

 

1:8 없음.

 

1:9 없음.

 

1:10 없음.

 

1:11

사도의 기도(데살로니가 후서 1:11,12)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그들을 위한 자기의 전지하고도 꾸준한 기도에 대해서 다시 말한다. 그는 그들과 함께 있을 수는 없었으나 그들을 늘 기억했다. 그들은 늘 그의 머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잘되길 소망했으며 그들에 대한 그 꾸준한 기도 이외의 방법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그는 "우리도 항상 기도하나니"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믿는 마음과 소망을 가질 때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다.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구세주는 그의 제자들에게(눅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다음을 살펴 보자.

Ⅰ. 사도가 위하여 기도한 내용(11절).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를 잘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가르침이 없이는 우리는 무엇이라고 기도할지 모른다. 우리가 신의로움이 없이는 갖추어야 할 바른 자세로 기도할 수 없듯이 말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소망하는 바와 어울려야 한다. 바울은 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1.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그의 훌륭하신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기를 기도한다. 본문에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한 말씀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높고 성스러운 부르심으로 부름을 받았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에 부르심을 받았다. 성도들의 받을 기업이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이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나타나실 때 나타날 그 영광과 행복의 즐거움도 그못지 않는 우리의 부르심을 소망인 것이다. 우리에 대한 부르심이 이러한 것이라면 우리의 생각도 이 영광에 못하지 않게 가치있는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영광을 맞을 준비를 갖추는 데 집중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영광을 받을 아무런 가치도 없기 때문에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도 이런 영광을 감당하게 해 주시고 또 우리를 이러한 영광에 합당한 자로 여겨 주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또한 우리를 빛 가운데서 성도들의 유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골 1:12).

2. 하나님이 이미 시작하신 선한 사업을 계속 이루어 주시고 "그의 모든 선을 기뻐함을 이루어 주시기를"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은혜를 베푸시는 목적은 그의 선하신 기쁨을 위해서이다. 그의 은혜로우신 목적은 그의 선하심에서부터 흘러나오며 그들에 대한 선한 뜻으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서 모든 선한 일들이 우리에게 흘러나온다. 우리에게 어떠한 선함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의 열매이며 그의 선은 기뻐하심의 공로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은혜라 불리운다. 하나님의 그의 백성들을 향한 은혜와 선한 의지에는 다양한 여러 가지 목적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이 이 목적들이 데살로니가인들 위해 이루어지고 성취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슴 속에는 시작된 여러 가지 선하신 역사들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위대한 기쁨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완성되고 완전해지도록 소망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바울은 하나님의 그들 안에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성취하시기를 기도한다.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자.

(1) 믿음의 행위를 이루는 것은 모든 다른 착한 행위를 이루려 함이라는 사실이다.

(2) 믿음의 역사를 시작하실 뿐 아니라 또한 수행하시고, 완전하게 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Ⅱ. 바울이 이런 것들을 그들에게 주시기를 위한 이유(12절). 그것을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모든일 가운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우리가 행하고 바라는 모든 것 중에서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은 이 궁극적인 목적 다음에 추구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행이 사람들 앞에서 빛남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하며 또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서 또 우리에 의해서 영광을 받으시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영광에 동참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또 우리 안에 있게 하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목적이며 계획이신 것이다. 또는 바꾸어 말해서 우리가 모든 일을 우리의 창조주와 구속자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한 것으로 이러한 행위는 그들에 의해 우리에게 나나내졌고 또 수여된 은혜에 부응하는 태도인 것이다.

 

1:1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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