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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인사말(데살로니가 전서 1:1)

인사의 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 보자.

Ⅰ. 서문.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이 서신의 저자. 바울은 성령을 받은 사도로서 이 서신의 저자였다. 비록 그가 자기의 사도직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들 가운데 거짓 사도들이 있어서 이 사실을 부인하지도 않았다.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연명으로 인사를 하였다(실라와 디모데는 바울에게 돌아와 마게도냐 교회의 발전을 설명하였다). 이 사실에서 우리는 위대한 사도의 겸손을 볼 수 있으며 그가 자기보다 못한 사역자들을 높이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가 하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교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나은 명성을 얻고 더 나은 명성을 얻고 더 나은 능력을 지닌 사역자들에게 좀 더 나은 명성을 얻고 더 나은 능력을 지닌 사역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2. 이 서신은 주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즉 데살로니가 교회의 개심한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 씌여진 것이다. 이 교회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씀된 사실을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졌다(요일 1:3). 그들은 기독교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문이었다. 그들은 자연적 계시적 신앙의 원리들을 믿었다. 그들 중의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왔고 또 유대인들은 약속된 메시야로서 예수를 믿었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헌신하였다. 하나님께는 그들의 최고로 선하시며 존귀하신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또한 그들의 구세주로서 믿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연 종교의 근원이며 중심이 되신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계시 종교의 창시자이며 구심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구세주 예수는 "너희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요한 14:1)고 말씀하였다.

Ⅱ. 인사말 또는 사도의 축복. 이에 대하여 사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다른 서신 안에서의 요지와 같다. 은혜와 평강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나 은총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모든 평화와 행복의 근원이며 원천이기 때문이다. 은혜가 거하는곳에 평화가 깃드는 법이다. 은혜와 평강 또한 모든 영적인 축복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도 오는 것이다. 즉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대가로 지불하시고 모든 좋은 것을 확보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므로 이 사실은 가능한 것이다. 모든 좋은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 계신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모든 죄인들에게 아무런 희망이 있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가장 최고의 것은 그리스도의 은덕으로 우리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으로부터 만이 기대되어 질 수 있는 것이다.

 

1:2

하나님에 대한 감사(데살로니가 전서 1:2-5)

Ⅰ.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시작한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그에게 기쁨이 되었고 또 그들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었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 좋은 것이었기에 사도는 우리에게 오는 모든 선한 것들의 주재자이시며 영원히 우리에게 감사받으셔야 할 분이신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으로 이 점들을 택하였다. 하나님은 모든 예배와 기도와 찬송의 목적이 되신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우리의 가장 큰 의무이며 우리는 항상 변함없이 그 의무를 수행 하여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써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못할 때라도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감사는 자주 반복 하여야 한다. 또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즉 우리 이외의 피조물과 나 이외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은사에 대하여도 감사하여야 할 것이다. 바울은 자기와 가장 친절한 동역자들이나 하나님이 내리신 크신 은총에 대하여 감사했을 뿐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하여서도 감사하였던 것이다.

Ⅱ. 그는 그이 찬송 또는 감사에 기도를 더하였다. 우리가 기도와 기원함으로 하나님께 대해 우리의 요구를 알리고자 할 때에도 우리는 거기에 감사를 더해야 하며(빌 4:6), 반면 우리가 받은 은사에 대하여 감사하고자 할 때 거기에 기도를 덧붙여야 한다. 우리는 쉬임없이 언제나 기도해야 하며 우리 자신을 위하여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곧 우리의 친구를 위해서도 기도 하여야 한다. 우리는 기도 가운데 그들에 대하여 언급하여야 한다. 때로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도 하고 또 그들의 형편과 처지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서 그들의 인격과 환경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그들을 기억하여야 한다. 우리가 우리와 우리 친구들에 대하여 감사할 것이 많이 있듯이 또한 좋은 것들을 더욱 공급해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할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Ⅲ. 그는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 사실들을 언급한다.

1. 그는 그들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사들에 대하여 감사한다. 이러한 것들이 그의 감사의 동기요 이유였다.

(1) 그들의 은사 가운데 한 가지는 그들의 믿음과 신앙의 역사였다. 바울이 8절에서 말한 그들의 신앙은 매우 유명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다. 신앙과 그 역사는 본질적인 은혜이다. 그들의 신앙은 진실하고 살아 있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역사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진실한 믿음이 있는 곳에는 믿음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진실한 믿음은 마음과 실생활에 영향을 준다. 진실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를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믿음과 타인들의 믿음에 의해서 위로를 받게 된다(약 2:18).

(2) 그들의 은사 가운데 다른 하나는 그들의 사랑과 사랑의 수고였다. 사랑은 가장 중요한 은혜 중의 하나이다. 사랑은 현재의 삶에 대단히 유익한 것이다. "믿음은 사랑과 더불어 일한다." 즉 믿음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서 자신을 나타내 보여 준다.

(3) 그들이 받은 또 다른 은혜는 그들의 소망에 대한 인내였다. "우리는 소망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다." 이 은혜는 군인의 철모나 선원들의 닻과도 비교될 수 있다. 즉 이 은혜는 위험할 때에 대단히 유익하다. 영생에 대한 굳건한 소망은 인내에 의하여 지탱된다. 즉 현재의 고통을 견디며 계시되어진 영광을 기다리는 인내가 있어야 소망은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하였다(롬 8:25).

2.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즉 기본적인 주요한 은혜에 대하여 언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음의 것들도 서술하였다.

(1) 이러한 은혜들의 목적과 또 원인의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한다.

(2) 그들의 신실함에 대하여 말한다.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신실하였다. 우리가 신실해야 할 커다란 동기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지켜 보신다는 사실이 그 동기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애쓰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게 보이려고 애쓰면 그것이 곧 우리의 신실함의 증표가 된다. 우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하나님이 보시는 아래에서도 떳떳이 행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신실하다고 할 수 있겠다.

(3) 바울은 이러한 은혜가 흘러나오는 샘 즉 하나님의 사랑의 선택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그는 은혜의 근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근원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회개하여 불신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서 일시적으로 분별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 선택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영원한 선택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다(엡 1:11). 그들의 선택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바울은 그들을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사이의 형제애의 기원과 그들 피차간에 형성된 관계의 기원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좋은 이유가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사랑받은 자들이며 그분의 섭리를 따라 주시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이렇게 선택되었다는 사실은 사도들에게도 알려졌다. 따라서 이 사실은 그들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자신에게도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복음이 성공적으로 전파되어서 또는 그 전파의 결과로 신실한 믿음과 소망, 사랑이 열매 맺어졌던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여 보자.

[1] 때가 차서 부름을 받고 성별된 사람들은 사실 영원전서부터 구원받은 자로 선택된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의 선택은 그분 자신의 기쁨을 위해 순전히 은혜로 주어진 것이지 선택받은 자들 속에 어떤 공로가 있어서인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3] 하나님의 선택은 그 열매로 인하여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4] 우리가 우리 또는 따른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는 우리는 언제나 그 은혜에 근원으로 더듬어 올라가 그의 선별하신 사랑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바로 그 선별에 의하여 우리는 구별되어진 것이다.

3. 바울이 감사드린 또 다른 근거와 이유는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대한 그의 성공적인 전도 때문이었다. 그는 그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에도 감사하였다. 즉 그가 헛되이 수고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데 대하여 그는 감사하였다. 이로써 그는 자기의 사도직에 대한 확신과 확증을 갖게 되었고 그의 노력과 고난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로 인하여 커다란 용기를 얻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그들이 받아들이고 환영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사랑받고 선택받은 존재라는 증거였다. 이 사실을 통하여 바울은 그들이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삼층천까지 올라갔었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러나 그는 거기서 영원한 생명책을 보지 못하였고 따라서 그들이 선택의 선택된 사실을 그들 가운데서의 복음의 승리을 보고 알게 되었다(5절). 그리고 그는 감사함으로 다음 사실에 대하여 말한다.

(1) 복음이 말씀으로 뿐만 아니라 권능으로 그들에게 임하였다. 복음은 단순히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거나 환상을 즐겁게 해 준 것이거나 그들의 마음속을 잠시동안 즐겁게 해 주었다거나 단순히 어떤 관념으로 그들의 머리를 채워 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켰다. 거룩한 권능이 말씀과 함께 하므로 그들로 깨닫게 하고 그들의 삶을 수정하여 주었다. 만약 우리가 앵무새처럼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에 그러한 것들이 영향을 가해서 우리의 욕망을 억제케 하여 세상에 대하여 우리를 단념케 하고 하늘 나라의 일들을 위하여 우리를 봉기하게 한다면 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음을 기억하자.

(2) 복음이 성령 안에서 즉 성령의 능력있는 힘과 더불어 그들에게 임하였음을 말한다. 복음이 권능으로 임할 때는 언제나 그것이 성령의 역사하시는 까닭임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말씀에 동반하여 그의 권능에 의하여 말씀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복음은 우리에게 있어서 단순히 죽은 글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자는 죽이는 일을 하나 생명을 주시는 이는 성령인 것이다.

(3) 복음은 그들에게 확신으로 임하였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그들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복음을 영접하였다. 그들은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확신을 갖고 있었으므로 어떠한 장애나 의심에도 그들의 마음이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기꺼이 모든 것에서 떠나고 영혼을 내걸고 복음이 주는 계시의 진실성 위에 영원히 자신을 투신하였다. 그 말씀은 회의적인 사변으로 이루어진 철학으로써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고 다만 그들의 믿음과 확신의 대상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들의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였다." 그리고 데살로니가인들은 이와 같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그들에게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또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또 어떻게 열매를 거두었는지를 알고 있었다.

 

1:3 없음.

 

1:4 없음.

 

1:5 없음.

 

1:6

사도의 전도가 성공된 증거(데살로니가 전서 1:6-10)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인들 사이에서 열매를 거둔 확증을 얻는다. 이 사실은 여러 곳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

Ⅰ.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와 사역자들의 본을 따르기 위하여 거룩한 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증거이다(6절). 뿐만 아니라 타인들의 유익을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생활을 함으로 한 손으로 복음을 세우고 다른 손으로는 부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데살로니가인들도 그들에게 온 사람들(사역자들)의 태도를 관찰하여 보고 그들의 설교나 그들의 삶이 서로 일치하는 것을 알고는 그들을 본받으려고 노력하였고 또한 사도들을 좋은 본보기로 삼아 모방하였다. 이로써 그들도 주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리스도의 우리가 모방하여야 하는 가장 완전한 본이시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뒤를 따를 때 그들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들인 한에서 그들을 따라야 한다(고전 11:1). 데살로니가인들은 그들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행동하였다.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그들은 기독교를 고백하고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따르는 고통 가운데 기꺼이 동참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복음 설교자들과 고백자들에게 수반되는 고난과 역경을 무릅쓰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아마도 복음을 이렇게 비싼 값을 치르고 샀으므로 말씀이 그들에게 더 귀중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고 사도들의 본은 그들의 고통으로 더욱 더 빛났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인들은 그 말씀을 기쁨으로 포용하고 고난받은 사도들의 본을 "성령의 기쁨으로" 기쁘게 본받았다. 이와 같이 확고하여 영적이며, 궁극적인 기쁨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으로 우리의 고난이 극심할 때 우리의 위로도 더욱 풍성케 하시기 위하여 그는 이러한 기쁨을 주신다.

Ⅱ. 그들의 열심히 이같이 뛰어난 것이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본이 되었다는 것이 또 다른 증거이다(7,8절). 이 사실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그들의 본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데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그들은 gupoi.-즉 인장 또는 표적을 형성시키는 도구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설교와 생활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아 그대로 행하였고, 그들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본을 보이므로 타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함을 명심하자.

2. 그것은 데살로니가의 변경을 넘어서 대단히 넓게 퍼져 나갔다. 심지어 아가야와 마게도냐의 신자들에게까지 그 소식은 전파되었다. 빌립보 교인들과 데살로니가인들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들도 그들은 본받아 감화를 받았다. 포도원에 마지막으로 고용된 자가 자기보다 먼저 온 자들을 앞질러서 그들의 본이 되었음을 기억하자.

3. 이 사실은 매우 유명하게 되었다. 주의 말씀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준 놀라운 변화는 그 도시의 변경에 그리고 "각처에"까지 두루 알려졌다. 정확히 말한다면 모든 지역에 알려졌다는 것은 아니고 간헐적으로 띄엄띄엄 도처에 알려졌다는 말이다. 그들에게서 거둔 복음의 좋은 성공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또 복음을 위한 고난에 불리움을 받았을 때 기꺼이 거기에 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같이 그들의 믿음 널리 퍼졌다.

(1) 그들의 믿음을 즉각 받아들이는 태도가 널리 퍼졌다. 데살로니가인들은 복음이 그들에게 설교되자마자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누구나 다 그들처럼 신속히 사도들이 전해 준 복음을 받아들었고 빌립보에서처럼 지체되는 일은 없게 되었다. 빌립보에서는 상당한 성과가 거두어지기까지에는 오랜 기간이 경과되었던 것이다.

(2) 그들의 신앙의 결과가 유명하여졌다.

[1] 그들은 우상으로부터 떠났다. 그들은 그들 우상에게 돌아서서 그들이 이제까지 배워온 모든 그릇된 숭배를 버렸다.

[2] 그들은 자기 자신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 드렸고 그를 섬기기 위해 자신을 헌신하였다.

[3]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렸다(10절). 그리고 그리스도와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신앙의 독특성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오실 것을 믿고 또 그가 오셔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실 것을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기다림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구약 아래서의 신자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렸다. 그러나 현재의 신자들은 그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분은 이미 오셨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오실 것이라는 좋은 이유가 된다. 그의 부활은 모든 사람에게 그가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확증이 되었다(행 17:31). 그리고 그의 오심을 바라고 기다려야 하는 좋은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진노로부터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는 오셔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위하여 구원을 사셨고 다시 오실 때에는 구원을 실현시키실 것이다. 즉 우리로 하여금 죄와 죽음, 지옥과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진노로부터 완전하고 궁극적인 구원을 얻게 하실 것이다. 한 번 발하여졌던 그의 진노는 장차에도 있어질 것인데 왜냐하면 사탄과 그의 무리들을 위하여 "영원한 불"이 준비 되어 있기 때문이다(마 25:41).

 

1:7 없음.

 

1:8 없음.

 

1:9 없음.

 

1:1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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