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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방인의 사도로 임명된 바울(에베소서 3:1-13)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자신에 관한 설명을 에베소인들에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Ⅰ. 우리는 바울이 사도됨을 인하여 당한 재난과 시련을 에베소인들에게 알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1절). 첫 번 구절은 앞장과 연결되는 말씀으로 그 의미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1. 우선 "이러하므로"라는 말씀은 다음과 같이 볼 수 있겠다. "앞 장에 있는 기독교의 교리를 전하였으므로 또한 복음의 위대한 특권이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비록 할례받지는 않았으나 이방인들 중의 믿는 자들에게까지도 속하여 있음을 주장하였으므로"라는 뜻의 말씀인 것이다. 즉 바로 이러한 일로 인하여 다음의 아래의 말씀이 계속된다. "나는 죄수가 되었으되 곧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갇힌 자가 되었도다. 그리고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도다. 그러나 내가 주를 위하여 고통을 받은 동안에도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이 도기를 그치지 않았고 그러므로 그의 특별한 보호와 배려를 받았노라"고 말한다. 만약 그리스도의 종들이 감옥에 갇힌다면 그들은 주를 위하여 갇힌 바 된 자들이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위하여 갇힌 바 된 자들을 경멸하시지 않는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위하여 갇힌 바 된 자들을 경멸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그를 위하여 갇힌 바 된 자를 경멸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세상이 그들을 악평한다고 해서 그들을 더욱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으신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추종하였고 그리스도는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도 그를 돌보시었다. 또한 본문에 보면 "너희 이방을 위하여"라고 되어 있다. 유대인들은 바로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이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그를 박해하고 감옥에 가두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실한 그리스도의 종은 자기의 전하는 진리가 일부 사람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또한 복음을 전함으로 어떤 고통을 받더라도 그리스도의 거룩한 진리를 전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2. 또한 "이로 인하여"란 말씀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도 있다. "너희가 더 이상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며(2:19),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의 교회와 더불어 하나가 되었으므로"란 말씀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바 된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 그러한 특권에 동참하는 자로서 손색이 없는 행동을 할 것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그의 취지가 14절에서 바울 자신에 의해 표현된 것을 읽을 수 있다. 그는 1절 이후 주제에서 이탈하여 다른 것을 말한 후 14절에서는 첫절에서 시작한 것을 연결시킨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은 앞으로 전진하고 그들에게 요구된 바를 계속 수행하기 위해 기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바울이 감옥에 갇힌 동안에도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한 것을 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열심히 하기를 태만히 하며 핑계할 만큼 특별한 고난을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그는 다시 그가 받은 고난에 대하여 말한다. 이에 대하여 그는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라"(13절)고 말한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 곳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다. 비록 바울이 당하는 고통이 그들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그늘 하나님께서 그의 전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볼 때, 이 일로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낙심시키게 하려 하지 않았다. 에베소인들은 이 얼마나 따뜻한 관심을 받았던 것인가! 바울은 자신이 그 고난을 참기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에베소인들이 자신의 고난을 보고 약해지거나 실망하게 될 것을 더 염려할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결과를 막기 위하여, 바울은 자기의 고난이 그들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에베소인들이 이 문제를 바르게 보고 이 고난으로 인하여 그들이 영광을 돌리고 기쁨을 지닌다면 낙심할 이유가 없노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그들을 향하신 큰 관심과 염려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주기 위하여 사도들을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게 하셨고 그들이 박해까지 견디며 진리를 전하였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진리를 확고히 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 자들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의 백성들까지도 그들이 복음의 섭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 기뻐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함을 생각하자.

Ⅱ. 바울은 에베소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하여 자기를 임명하셨으며, 그 일을 위하여 특별한 계시를 자기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자기를 선택하기고 자격을 주셨음을 말한다.

1.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바울을 임명하셨다. 이에 대하여 그는 본문에서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다"(2절)고 말한다. 그들은 전에 이것에 대하여 들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문제를 의심스러운 투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Ei;ne"는 때때로 확신을 나타내는 접속사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너희가 이미 들었다"라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복음을 (다른 곳에서처럼) "하나님의 은혜"라고 규정한다. 왜냐하면 복음이 죄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인 까닭이다. 복음에는 모든 은혜스러운 제안이 담겨 있고 또 복음에는 기쁜 소식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풍부하신 은혜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 안에서 그것에 의하여 은혜로 역사하시는 바로 그 복음은 또한 성령에게는 위대한 도구가 된다. 바울은 이러한 은혜의 분배가 자기에게로 주어졌음을 말한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에 의해 복음의 교훈을 분배하도록 인정을 받았고 또 위탁을 받았음을 이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위임과 권위는 주로 이방인 곧 "너희들을" 위한 봉사를 위하여 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그는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는 복음에 대하여 말하면서 다시 "이를 위하여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7절)고 하였다. 여기서도 그는 다시 그의 권위를 주장하였다. 바울은 사역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바울이 스스로 일군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사도의 영광을 취하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시는 경륜의 은사를 따라" 일군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위하여 바울을 택하시고 자격을 주셨다.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모든 필요한 선물과 은혜로써 그를 도우셨다. 즉 때로는 평범하게, 때로는 비범하게, "그의 힘의 능력있는 역사에 의하여" 그를 도우셨다. 이 은혜는 특별히 그에게 역사하였고 또한 그가 전한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역사하셨다. 바로 이 은혜에 의하여 에베소서인들을 위한 바울의 수고가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 일에 적절한 사람을 부르시며 또 전능하심으로 그의 일을 행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하나님의 능력의 효율적인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수반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사도직에 임명하신 동시에 그에게 주신 특별한 계시에 의하여 바울에게 뛰어난 자격을 부여하셨다. 바울은 계시된 신비한 내용과 진리를 계시에 관하여 설명한다.

(1) 계시된 신비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리라"는 것이다(6절). 즉 다시 말하면 그들이 믿음을 갖게 된 유대인들과 함께 하늘 유업의 동일한 후사가 되고 유대인들과 같이 신비한 몸의 지체가 되며 그리스도 교회에 영접하며 복음의 약속에 참여자가 되며 특별히 성령의 대 약속에 참여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곧 "그안에서 모든 약속이 예가 되고 아멘이 되는"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어떤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일은 복음의 시대에는 "복음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또는 "복음에 의하여"라는 말은 그들에게 전파된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복음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시는 도구요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2) 다음 이러한 진리의 계시에 대하여 바울은 언급한다(3-5절).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복음 교회 안에서 하나로 연합한 것은 대단히 큰 신비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섭리하셨으나 그 일이 성취됨으로써 그것에 대한 예언에 밝혀지기까지는 여러 세대를 지나도록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둘의 연합이 본문에서 신비라고 불리워지고 있다(그 연합이 이루어질 시기, 방법, 수단이 숨겨져 있다). 왜냐하면 그 신비에 관한 몇 가지 요소와 특성이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에게 직접적으로 계시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의 가슴속에 숨겨져 있었고 비밀로 지켜졌기 때문이었다. 사도행전 26장 16-18절을 보라. 이 둘의 연함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계시되었으며, 그리스도에 관련이 깊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라고 불리운다. 이것에 관하여 바울은 앞에서 즉 앞장에서 몇 가지 암시를 주었다. 그러므로 본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또 한 원문을 보다 충실하게 해석한다면, 이것을 주위 깊게 읽으면(우리가 성경을 겨우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성경 내용을 주의 깊게 일고 면밀히 검토하고 읽은 것을 마음에 간직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을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의 이방인의 사도로서 어떻게 선택하시고 자격을 주셨는가를 에베소인들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이 사실은 그들에게 바울이 거룩한 권위를 받은 증거를 명백히 깨닫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계속 말한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나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않으셨으니"(5절) 이말은 다음과 같은 뜻이다. "성령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가르침과 영감을 받은 현 시대의 선지자들에게 복음이 계시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 이전의 세대에서는 그렇게 충분하고 명백하게 밝혀지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방인들이 회심한 것은 존경할 만한 신비임을 생각해 보고 지나가자. 우리는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누가 이전에 그렇게 오랜동안 어둠 가운데 거하고 그렇게도 먼 곳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운 빛을 받고 가까이로 나오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최악의 실패를 당하거나, 최악의 사람들에 직면하여서나 최악의 상태에 있는 국가들에 대하여도 실망하지 않는 것을 배워야 하겠다. 하나님의 은총 앞에는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서 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위대한 은사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 역사에 의해 얼마나 큰 혜택을 받았는가! 우리가 비밀이 계시된 시대 안에서 살고 이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특별히 전에 우리는 외인이며 손이었던 나라에 속하여서 엄청난 우상의 세계 가운데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영원한 복음으로 새로워지고 그 약속에 동참자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Ⅲ. 바울은 자기가 어떻게 하여 이방인은 위한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한 사도의 직분을 위임받게 되었는가에 대하여 그들에게 설명한다.

1. 이방인들에게 그가 전한 것부터 생각해 보자. 바울은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그들에게 전하였다(8절). 본 절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는 겸손히 표현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존귀하게 표현하였다.

(1) 바울은 자신에 대하여 겸손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말하였다. 사도들 중의 으뜸이 되는 성 바울이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 말씀에는 그가 이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자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바울은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낮추어 평가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기시는 자들에게 스스로는 겸손히 행하게 하며 자기를 낮추게 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하나님께서는 낮아지는 은사를 주신 자에게는 모든 다른 은혜를 함께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는 찬미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서는 낮게 평가하였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역자는 비록 그가 자신의 거룩한 직분을 행한 데 대하여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도 자신에 관하여서는 대단히 겸손해야 하고 자신을 낮추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얼마나 높게 표현하였다는가를 생각해 보자. 그는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8절)이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자비와 은혜와 사랑의 풍성한 보물이 있다. 이 보물이 유대인과 이방인 양편을 다 위한 것이다. 또는 복음의 풍성함이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이라고 표현되었다. 이 풍성함은 그리스도가 값 주고 사신 것이요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또한 그 풍성함은 헤아릴수 없는 풍성함으로 우리가 그 한계를 알 수 없고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으며, 다만 계시에 의하지 않고는 복음에 관한 지식을 결코 알 수 없는 그러한 풍성함이다. 이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이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전하는 것이"바울의 사명이요 직책이었다. 또한 그 직분은 바울이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고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표현한 은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이라는 말에는 "나같이 무가치한 사람에게 이같이 특별한 은총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다니!"라는 감격이 서려있음을 보게 된다. 이방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전하게 하심"은 이방 세계에 주시는 무한한 은총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풍성함을 알지 못하고 빈곤한 상태로 남아 있지만 그 풍성함이 우리들 가운데 전하여지고, 우리로 하여금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잘못이다.

2.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전한 말씀의 내용(9절). 바울의 맡은바 직분은 모든 사람에게(전 세계에 공포하여 알림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그의 목적 안에 감추었던) 비밀의 교제가(지금까지 교회에 대하여는 외인들이었던 이방인들이 교회와는 사귐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었다." 이 하나님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었다"라고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이방인을 구원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못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의 위대한 사업을 수행하신 것을 볼 때 그가 모든 인류의 구원의 사업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첫번? 창조나, 회개하게 하는 은사로 말미암아 죄인들은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한 새 창조의 역사나 둘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창조라는 것은 진리이다. 바울은 덧붙여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되어 결국 하늘에 있는 권세의 천신들과 세력의 천신들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10절). 하나님께서 숨겨져 있는 비밀을 계시하여 주신 목적 중의 하나는 천사들에게 이 신비를 알리시려는 것이었다. 즉 이 세상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알리시려는 것이었다. 즉 이 세상의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 권력을 부여받았고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한 위대한 권능을 부여 받은 천사들이(보통 때 그들은 주로 하늘에 거하지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다는 말씀이며 또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그가 지혜로 나누어 주신 여러 가지 일들과 또는 그가 여러 세대를 걸쳐서 그의 교회에서 지시하시던 여러 방법을 통해 나타난 지혜와 그리고 특별히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실을 통하여 복음을 천사들에게 알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우리의 구원의 비밀을 알고 있는 거룩한 천사들은 이방인들 가운데도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성함이 전파되었다는 이 신비의 단면을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에 의한 것임을" 그들은 알았다(11절). 어떤 주석자는 katav pro,qesin tw/n aivw,nwn-즉 그가 미리 정해 놓으신 매시대에 따라라고 번역한다. 휘트비(Dr. Whitby) 박사 등이 이에 속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태초의 시대에서는 구세주에 대한 약속을 타락한 아담에게 주는 것이 합당하다고 지혜의 하나님은 생각하셨다." 두번째 시대에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구세주를 성도들, 의식, 희생 제사를 통하여 유형으로 보여 주셨다. 그리고 메시야의 시대 즉 마지막 시대에서는 "유대인들에게 구속자를 나타내 보이시고 그들도 이방인들에게 구속자에 대하여 전하게 하셨다"고 본다. 또 다른 주석자는 현재 영역 성경의 번역을 따라 본문을 이해한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구원이라는 큰 사업을 이루신 것이라고 본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한 후 이 예수에 관하여 덧붙여 말하기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12절)고 하였다. 이 말은 다른 말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에게 자유로이 마음을 열 자유를 받았으며 그리고 듣는 자들을 설득한 확실한 근거를 얻었으며 하나님에게 용납될 확실한 근거를 얻었다. 또한 우리가 이것을 믿음의 방법에 의하여 우리의 대 중재자시오 변호자로서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것이다"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무서운 저주가 폐지된 것을 알게 됨으로써 하나님께 겸손함과 담대함으로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며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좋은 말씀과 위로를 들으리라고 기대하여도 좋다. 하나님과 우리의 사이에 중보자를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에 대한 대변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담대히 말씀드리러 나아가게 된다.

 

3:2 없음.

 

3:3 없음.

 

3:4 없음.

 

3:5 없음.

 

3:6 없음.

 

3:7 없음.

 

3:8 없음.

 

3:9 없음.

 

3:10 없음.

 

3:11 없음.

 

3:12 없음.

 

3:13 없음.

 

3:14

사도의 기도(에베소서 3:14-21)

이제 우리는 본장의 두번째 단원을 대하게 된다. 본문에는 사랑하는 에베소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바울이 경건하고 열렬한 기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러하므로"란 접속사는 "너희를 위한...... 낙심치 말라"는 바로 앞 절과 연결시키는 말씀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하므로"란 말을 사도는 1절에다 연결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즉 이로써 그는 이탈하여 중간에 삽입하였던 내용을 마무리하고 다시 본론으로 이탈하여 중간에 삽입하였던 내용을 마무리하고 다시 본론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다음 사실을 생각하여 보자.

Ⅰ. 그가 기도를 올린 대상. 그는 1장 3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Ⅱ. 바울의 기도드리던 자세. 그것은 겸손하고 경건한 것이었다. 본문에 "내가 무릎 굻고 비노니"라고 되어 있다(15절).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을 때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그를 경외해야 하며 또 가장 적합하고 알맞는 행동과 자세로 우리의 경외함을 표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영광스러운 찬송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15절). 보편적인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한다. "그에게서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은 이름을 부여받은 것이다"(15절).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자랑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다 그리스도로부터 이름을 받았다. 어떤 이들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을 영광의 면류관을 쓴 하늘 나라에 거하는 성도들과 이 세상에서 은혜의 역사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여하간 이 둘은 한 가족을 이루게 되며 그들이 실제로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또한 그리스도와 관계 맺음을 고백함으로 둘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부여 받았다.

Ⅲ. 바울이 자기의 형제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구한 것. 그것은 영적인 축복이었다. 이는 가장 최선의 복으로 우리 모두 각자가 자신과 동료들을 위하여 열심히 구하며 기도해야 할 복인 것이다.

1. 그들에게 영적인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이 영적인 힘은 그들이 부름을 받고 종사하기 위하여 위임받은 일과 의무를 위한 힘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본문에서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6절)라고 기도하였다. "속 사람"이란 현재 있는 상태보다 더욱 강력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높은 경지의 은혜와 의무를 수행하고 유혹을 물리치며 박해를 견디는 영적인 능력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바울은 "주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이 일은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였다. 또는 그의 영광스러운 풍요함에 의지하여 기도하였다. 그 풍성함은 하나님 안에 있는 권능과 자비와 은혜의 풍성함을 말하는 것으로 곧 그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풍성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혼 가운데 은혜로서 직접적인 역사를 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주어진다. 이런 모든 일을 살펴 볼 때 인간의 속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오는 강함은 가장 최선의 바람직한 힘이며 영원 안에 있는 힘 곧 믿음과 모든 은혜의 힘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봉사하게 하고 우리의 의무를 다하게 하며 활력과 즐거움으로 그리스도인의 해야 할 바를 수행하게 해주는 힘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은혜의 역사가 먼저 시작되면 복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지속되며 수행된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성도들의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가 거하실 것을 기원하였다(17절). 그리스도께서는 은혜로운 역사와 영향력을 통하여 주의 백성들과 더불어 항상 현존하여 계시기 때문에 그들 안에 거하시라고 그는 기원한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함께 거하심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만약 그리스도의 법도가 마음에 새겨져 있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거기서 흘러넘치면 곧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거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선한 기독교인들의 영혼을 거주지로 삼으신다. 거기 주의 성령이 거하시며 또한 그리스도께서도 거기 거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이 있는 마음에 거하시며 그 믿음을 끊임없이 훈련시키신다. 믿음은 영혼의 문을 열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한다. 믿음은 그리스도를 인정하게 하며 그에게 순종하게 한다. 또한 믿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안에서 유업을 얻게 된다.

3. 저희 마음 가운데 경건하고 열심어린 사랑을 확고히 해줄 것을 기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18)라고 기도하였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받는 자들인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 확고해져야 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의 종들에 대한 얼마의 사랑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궁이에 던져진 가시덤불 같아서 소리만 요란할 뿐 곧 사그러지고 만다. 우리는 마음 가운데 사랑이 굳어져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기를" 열심히 소망하여야 한다. 어떤이는 이 말씀을 그들이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앎에 있어서 굳건히 세워졌다는 말로 이해한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앎이 그와 다른 사람을 향한 거룩한 사랑에 열심히 나게 고무하였다고 본다. 우리의 영혼 가운데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확고히 함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그렇게 함으로써 언제나 우리는 바울처럼 "주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성취하는 가장 최선의 길을 우리의 영혼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끊임없는 사랑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또한 그를 사랑하려는 노력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것은 주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4. 이 사랑을 갖기 위하여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들이 경험하여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우리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친숙하게 알면 알수록 그로 인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와 주위 백성들을 위한 사랑에 더욱 더 열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위하여 본문에서 기도한다(18,19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그의 백성들을 향한 놀라운 사랑을 좀 더 분명히 이해하고 확고히 믿게 되기를 바라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도들이 어느 정도 알고 믿으면 이를 통하여 앞으로 더욱더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성도들보다 뛰어난 이해를 갖는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된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역사하시는 것과 같이 그들도 같이 취급하시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한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깨닫게 되기를 바라야 하며 성도들에게 이 세상 안에서 갖도록 허락된 만큼의 지식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는 성도들이 도달한 정도 이상을 넘어섰다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하여 얼마나 우아하게 표현하였는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구원의 사랑의 차원을 표현하기를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고 말하였다. 이렇게 여러 각도로 묘사함으로써 바울은 그리스도 사랑의 놀라운 위대함과 헤아릴 수 없는 풍부함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사랑에 대하여 욥은 "하늘보다 높고 음부보다 깊고 땅보다 크며 바다보다 넓다"고 고백한다(욥 11:8, 9). 어떤 이는 이 세부적으로 묘사된 말씀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 사랑의 넓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그 사랑이 모든 세대와 사회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또 그 사랑의 길이라는 말에서 그 사랑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속됨을 볼 수 있고 그 깊이라는 말에서 그 사랑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속됨을 볼 수 있고 그 깊이라는 말에서 그 사랑이 죄와 비참함의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고 자유케 하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까지 미치셨음을 볼 수 있으며 그 사랑의 높이라는 말에는 그 사랑이 우리를 하늘 나라에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을 알도록 소망하여야 할 것이다. 이 사랑을 알려는 태도가 모든 성도들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만족을 얻고 신뢰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를" 또한 기도하였다. 만약 사랑에 지식이 수반된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완전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하며 알면 알수록 그 지식을 더욱 더 알고자 애써야 한다. 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보다 그리스도인들이 더 잘 인식하고 또 알고 있다고 하지만 하늘 이편의 이 세상에서는 그것이 완전히 이해될 수은 없을 것이다.

5. 바울은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한다. 이 말씀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표현이다. 만약 성경 안에 이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감히 이 말씀을 염두에 두려고 흉내도 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 말씀은 다름 표현을 빌리자면 "신의 본질의 참여자가 되며" "하늘 나라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완전하게 됨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있는 그대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의 백성들의 하나님으로서 그가 우리와 더불어 언약을 맺으신 범위 내에서 부분적으로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충만함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하나님의 충만함을 채우고자 소망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은혜와 은사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주시고자 하신다. 그리스도의 충만함으로부터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들의 역량만큼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케 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이 이것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기쁨과 지식의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고 그와 완전히 일치되는 경지에 도달하기 위하여서인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본장을 끝맺는다(20,21절).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께 대한 영광을 돌림으로 끝맺는 것은 당연하다. 바울이 어떻게 하나님을 표현하고 어떻게 영광을 돌렸는가에 주의를 기울여 보라.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히 하실 이"라고 표현한다. 하나님에게는 은혜와 자비의 헤아릴 수 없는 충만하심이 있으며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한 이 충만함은 결코 다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주시며 또한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시며 또한 지극히 풍성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너희의 입은 크게 벌려 보라. 우리가 하나님께 간청하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것에 풍족하심과 전능하신 능력을 생각하게 되고 이로써 우리의 믿음이 용기를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본문에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라고 말하였다(20절). 이 말씀을 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증거를 이미 받았고 그 증거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셨으며 그의 은혜로 우리를 소생 시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에게 돌아오게 하셨음을 나타내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성도들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권능은 그들의 그 능력에 대한 수용력에 따라 좌우된다. 그의 충만하심을 주신 모든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능력을 그들로 경험하게 하신다. 바울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시는 은혜를 구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만 할 것이다. 그에 대한 영광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돌려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우리는 그의 모든 뛰어남과 완전함을 고백하고 그의 뛰어남과 완전함의 광채와 그 귀한 결과를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리는 교회 안에 있음을 명심하자. 하님께서는 이 세상으로부터 드려지는 작은 영광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받으신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세워진 거룩한 사회이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모든 개개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모여진 사회이다. 이 찬양에 대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모든 은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와진다. 또 우리로부터 하나님께서 드리는 영광도 같은 손을 통하여 드려진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영원무궁하도록 세상이 지속되는 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주께 영광 돌리는 교회를 언제나 갖고 계실 것이며 주의 교회로부터 드리는 영광의 찬송을 영원히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멘. 그렇게 이루소서! 그리고 이 일은 확실히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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