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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여자 머리에 쓰는 것(고린도 전서 11:1-16)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건을 답하고 이 장에서는 불평스러운 일을 고친다. 이 장의 첫 절은 다음 장의 서론으로써 분리되나 오히려 앞 장의 결말을 만드는 절이 더 무난할 것 같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1절). 그의 주장을 끝맺는 것 같다. 다음 절이 다음 장으로 옮기는 것같이 보인다. 어떻든 간에 바울은 그들이 믿어야 할 교리를 가르친 후에 그들이 본받아야 할 생활로 인도했음이 분명하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즉 "나를 따라서 내가 산 대로 너희도 살도록 하여라." 목사는 자기를 본보기로 세운 때에 가장 적절하게 설교하는 것 같다. 바울은 맹목적으로 따라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맹목적인 신앙이나 복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상의 따름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본보기는 흠이 없다. 인간은 그렇지 않다. 그리스도가 표준이 되어야 한다. 사도들도 주님의 본보기와 다르면 따를 수가 없다. 바울은 부인들의 잘못을 수정하려고 책망한다.

Ⅰ. 바울은 칭찬할 일로부터 시작한다(2절).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아마 많은 고린도 교인들이 표현대로 행하였을 것이다. 교회가 좋은 소문과 그리스도의 율례와 제도를 계속해서 지켰다. 비록 어떤 일에 있어서는 탈선하고 부패하였지만은 좋은 점도 있었다. 남의 잘못을 책망할 때에 그의 장점을 칭찬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이와 같이 하여서 악의가 아니고 선의로 충고하며 그 충고에 관심을 가지도록 할 수 있다.

Ⅱ. 여자에 대한 남자의 우위를 주장하면서 책망을 전개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중보적인 인격과 영광스러운 인간성을 가진 그리스도는 인류의 머리이다. 그는 인류의 처음이며 주요, 주권자이다. 그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직책과 권위에 있어서 뛰어나신 분이나 하나님이 그의 머리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머리이신 것같이 그리스도는 인류의 머리요 남자는 두 성의 머리이다. 비록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지배는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남자는 머리이며 여자는 그에게 복종하고 남자의 위치를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여자의 위치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자기의 분수에 알맞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남자의 자리를 대신해서는 불가하다. 이와 같은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고린도 교인의 여자들이 행하여 아마 영감을 받아 모임에서 기도하고 예언을 하였던 것 같다(5절). 여자가 조용해야 함은 사도적인 정경이었다(14:34; 딤전 2:12). 어떤 이들은 성령에 감동을 받은 여자들도 조용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도의 교훈에 어울린다고 본다(14잘). 어떤 이들은 비록 여자들이 가르치고 토할 수는 없으나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에는 말할 자유가 있다고 해석한다. 혹은 여자는 성령으로 가르치지는 못하여도 공중 예배시에 기도하고 찬양할 수는 있다고 본다. 공중 예배시에 그런 행동으로 남자보다 우월함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바울이 여자들의 이런 행동을 금하지는 않았으나 방법을 책망하였다. 그러나 서신의 다른 부분에서는 여자들에게 무제한의 제약을 가했다. 이것이 모순되지는 않았다. 교회에서 반성도 없이 기도하고 예언하는 여자들의 방법을 책망한다. 일의 방법은 도덕과 관계가 있다. 우리는 선한 일에 주의해야 하며 또한 그 방법도 좋도록 주목해야 한다.

Ⅲ. 바울이 책망하는 것은 여자들이 쓰지 않고 기도하고 예언하며 남자들이 쓰고서 행하는 일이다(4,5절). 이 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동방의 나라에서는 베일을 쓰거나 덮으면 수치와 복종을 의미하나, 서양에서는 벗으면 복종이요 쓰면 권위와 지배를 의미하는 것을 관찰해서 알아야 한다. 이 사실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하도록 한다.

Ⅳ. 바울이 충고하는 이유는 이렇다.

1.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즉 모든 사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3절).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의복이나 행위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즉 남자이다(3절). 여자가 자기의 복종을 벗어버린다. 그러면 여자들도 삭발을 하여 남자와 같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은 여자가 성을 바꾸기를 원하는 행동이다.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주신 우월의 쟁취이다. 이 일이 고린도 교회 내의 여자 예언자들의 잘못이었다. 이 당시에 이런 행동은 우월의 표시이며 남자에게만 있는 것을 취하는 일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남녀의 성은 교환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 인간이나 사물의 가장 좋은 질서이다. 그것을 변경하는 것은 질서를 파괴하고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여자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를 지키고 그 머리를 욕되게 하면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만일 여자가 남자에서부터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영광으로써 지어졌다면 이 순서를 뒤엎으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2. 이 행위에 대한 또 다른 반대의 이유는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영광스럽게 다스리는 대표이다. 남자는 피조물의 머리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을 닮은 점이다. 반면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다(7절). 여자는 남자를 대표한다. 하나님을 대표하는 점에 있어서 제이의 위치에 있다. 남자의 형상인 한에 있어서 여자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8절) 남자가 먼저 창조되고 피조물의 머리가 되었으며 신령한 통치의 형상이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서 남자의 영광을 나타내며 남자에게 복종한다.

3.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그의 도움이 되고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여 남자의 이용과 도움과 안락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남자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자가 기독교 모임에서 남자와 같이 되려고 함은 잘못이다.

4.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권세는 자기의 권세가 아니고 남편과 남자와 다른 성에 복종한다는 남자의 권세이다. 리브가는 이삭을 만났을 때에 그에게 몸을 바치고 순종의 표시로 베일을 섰다(창 24:65). 이렇게 여자들이 기독교의 모임의 나타나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천사들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쁜 천사 때문에 영감을 받아 말하는 여자들이라 해석한다. 여자들이 "먼저 꾀임을 받아 범죄하였다"(딤전 2:14). 그래서 남자에게 더욱 복종해야 한다(창 3:16). 나쁜 천사들이 기독교 모임에 꼭 혼합하기에 여자들은 수치와 복종의 상장인 베일을 써야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좋은 천사로 해석한다. 유대인과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천사들이 모임에 참여하여 수종든다고 믿었다. 이들 천사들 앞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하여야 한다. 우리는 예배 때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나타내고 자기의 위치에 만족하여야 함을 주목하자.

Ⅴ. 바울은 이 주장이 너무 지나치게 나가지 않도록 주의한다(11,12절).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리라." 서로서로를 위하여 지어졌다.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 그러므로 여자는 남자를 위하고 남자는 직접적으로 여자를 위하여 지어지지 않았으나 여자를 보았고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인간은 상호의 도움과 위로를 받아야 하고 어느 한 쪽이 노예가 되고 폭군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이 한 몸이 되리라"(창 2:24). 이것은 인류의 번식을 위한다. 남자와 여자들은 상대방을 번식시켜 준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처음에 만들어졌듯이 그 이후에 남자는 여자에게서 낳아진다(12절).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요 지혜이다. 권위와 복종은 남녀의 관계에 적합해야 한다. 여자가 자기의 위치를 지켜야하는 것과 같이 남자도 자기의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명심하자.

Ⅵ. 바울은 자기의 주장을 생리적인 현상으로 입증한다(13-15절). "너희가 스스로 판단하라." 이 성에 호소하며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함이 마땅하냐." 자연이 부여한 두발을 보라. 문명된 국가에서도 남녀의 차이가 있다. 여자의 머리는 자연적인 것이다. 머리가 긴 것은 여자의 영광이다.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짐은 수치요 여자와 같은 나약함의 표시이다. 기독교와 신앙의 모임에서도 자연의 경건함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

Ⅶ. 교회의 관습에 대하여 다투는 자들을 언급하면서 결론을 내린다(16절). 관습은 경건의 규칙이다. 교회의 통례적인 관습이 저들을 다스리도록 말한다. 바울은 강제적 권위로서 모든 불평을 억압하지 않고 그 당시에 통하던 교회의 관습과 자연의 순리에 입각해서 어색한 행동을 삼가하고 다른 그리스도 교회와 같이 걸어가도록 권한다. 여자들이 쓰고서 예배에 참석함은 통례적인 관습이었다. 고린도 교회에도 그렇게 행함이 마땅하였다.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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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남용(고린도 전서 11:17-22)

이 절에서 바울은 앞의 일보다 더 혼란을 일으키는 일에 대하여 책망한다. 즉 초기에 행하여진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일이다. 애찬과 함께 무질서하게 행하여진 주의 만찬에 대하여 바울의 책망을 관찰하자.

Ⅰ. 책망을 시작하는 바울의 태도.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17절) 내가 칭찬할 수가 없고 비난하며 저주해야 한다. 이 장의 첫 부분으로 생각해 본다면 바울은 가능한한 칭찬하기를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렇게나 거룩한 예식에 그렇게나 나쁜 혼란을 벗하는 그들을 날카롭게 책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의식을 완전히 전도해 버렸다. 이 의식은 그들을 유익하게 하여 영적 유익을 위함이나 오히려 해롭게 만들었다. "이는 저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그리스도의 규례는 우리에게 유익하지 못하면 해롭게 되기 쉽다. 우리 영혼을 돕지 아니하면 해치게 된다. 우리를 부드럽게 만들지 않으면 우리를 굳어지게 한다. 바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부패가 일어나게 됨을 명심하자.

Ⅱ. 바울은 여러 일에 대하여 책망한다.

1. 모일 때마다 분쟁한다. 분쟁 즉 분열이다(sci,smata). 규례를 지킴에 있어서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서로 서로 싸웠다. 다음을 주목하다. 교제를 하면서도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분당을 지으면서 한 교회에 출석하여 같은 주의 식탁에 참여할 수가 있다. 불화하고 분쟁하며 분열을 일으킬 때에 사랑이 없고 마음이 멀어진다. 그리스도인들은 교제에서 떠나서는 미워할 수가 있고 교제를 하여도 사랑이 없을 수가 있다. 후자의 분열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분열을 듣고 믿을 만한 이유를 가졌다. 왜냐하면 이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싸울 뿐만 아니라 당파를 짓고 신앙의 터를 파괴하는 마음이 있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믿음과 양심을 파괴하면 사랑이 금가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이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꾀는 자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의 진리에 고수하는 사람은 인정함을 얻는다. 하나님의 지혜는 다른 사람들의 악함과 실수가 성도에게는 경건과 충성의 금박이 된다.

2. 바울은 분열을 책망하면서 무질서를 꾸짖는다.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이는 시장하고 어떤이는 취함이라(21절). 이방인들은 제사 후에 취하도록 먹는다. 부한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주의 식탁과 애찬에서(avga,pai) 마음껏 먹었다. 서로 기다리지 않았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었다. 부자는 취하고 가난한 사람은 시장하였다. 이 일은 거룩한 의식과 규례를 극도로 부패시켰다. 영혼을 먹이기로 된 것이 육정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었다. 화목과 사랑의 줄이 불목과 분열의 도구가 되었다. 애찬을 타락의 식탁으로 만들어 버렸다.

Ⅲ. 바울은 이 행위의 비난을 날카롭게 그들에게 던진다.

1. 그들의 행위가 그러한 제도의 목적과 용도를 파괴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20절) 모임에 못오는 것이 아니고 주의 만찬에 올 수가 없다. 차라리 주의 만찬에 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외부적인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주의 몸을 먹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는 성찬을 먹는 수가 있다. 유익이 없고 죄를 지을 뿐이다. 그런 성찬이 고린도 교회의 성찬이었다. 그들의 행위는 이 거룩한 예식의 목적에 배치되었다.

2.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경멸하였다(22절). 그들이 만약 잔치를 배설하려면 가정에서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주의 만찬에 나와서 음모와 싸움을 하여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규례를 어기고 교회의 가난한 사람을 경시하여 큰 책망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처사가 그리스도께서 부한 사람 못하지 않게 귀히 여긴 가난한 사람의 영혼을 실망시키며 부끄럽게 만들었다. 다음을 주목하자. 보통의 식사는 보통의 방법으로 해도 가하나 신앙적인 식사는 신앙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주의 식탁에서 동료 신자들을 경멸하는 것은 무서운 죄이다. 이것은 신령한 규례를 업신여기는 일이다. 그러한 거룩한 의식을 경시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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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떡과 잔을 받는 태도(고린도 전서 11:23-34)

바울은 심한 타락과 무질서를 수정하기 위하여 신성한 제도를 검토하게 한다. 이것이 모든 잘못의 개혁이 되어야 한다.

Ⅰ. 바울은 어떻게 주의 만찬을 알게 되었나를 말한다. 이 첫 주의 만찬 때에 바울은 사도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23절) 즉 바울은 성찬에 대한 지식을 계시로써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 바울은 받은 것을 전하였다. 조금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였다.

Ⅱ. 바울은 우리가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상세한 설명을 우리에게 준다.

1. 창시자에 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회의 임금만이 이 성찬을 세울 수가 있다.

2. 성찬이 시작한 때.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즉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고난을 당하게 된 때이다.

3. 그 제도 자체에 대하여. 우리 구주께서 떡을 떼사 축사하시고(마 26:26 과 같이)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였으니"(24,25절) 다음을 관찰하자 (1) 성찬의 재료에 대하여.

[1] 보이는 상징에 대하여. 떡과 잔이 있다. 교부들이 화체라고 불렀으나 여기에서 여러 번 떡이라고 하였다. 주의 몸이라고 말하여지는 먹을 수 있는 떡은 괴물과 같고 모순되는 화체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된다. 잔도 성찬의 한 부분이다. 성 마태는 우리에게 말하기를 주께서 그들에게 다 마시도록 명하였다고 한다(마 26:72). 이것은 평신도에게서 잔을 빼앗는 천주교의 신부들에 대한 항의가 된다. 떡과 잔이 다 거룩하게 이용되어야 한다. 어떠한 특이한 물질이 잔에 들어간 것이 아니다. 유대 관습에 의하면 물을 혼합하기는 한다. 마태복음 26장에 대한 라이트푸트(Lightfoot)를 참고하자. 그러나 포도주를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성찬을 가지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이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모든 성경 귀절에서 그것은 항상 상징으로 나타나 있다. 잔은 액체가 무엇인가의 언급없이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2] 외부적인 상징에 의하여 의미되는 것.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찢어진 살과 흘린 피이다. 그의 죽음과 희생과 함께 모든 은혜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그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그의 피는 새 계약의 새로운 특권의 보증이요 허락이다. 받을 만한 사람만이 받는다. 이들은 새 언약을 가지고 있으며 새 계약의 모든 축복의 권리가 그의 피로 확인된다.

(2) 성찬의 재료가 사용되는 성찬 의식.

[1] 우리 구주의 의식. 떡과 잔을 취하사 감사하시고 떡을 떼사 나누어 주시다.

[2] 수찬자의 의식. 떡을 받아 먹고 잔을 받아 마신다. 그리스도를 기념하면서 해야한다. 그러나 외부적인 행위가 전부가 아니며 거룩한 의식의 중심이 아니다.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하나님에게 헌신하신 우리 구주는 그의 죽으심으로 죄의 용서를 이루시고 복음의 은혜와 함께 제자들에게 이 예식을 행하실 때에 죽으심의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예식이 행할 때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이 은혜를 베푸신다. 이것은 영혼의 양식이다. 음식을 먹어야 양분이 되는 것과 같이 수찬자도 먹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믿음으로 영혼의 양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들은 주민을 생명으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헌신하고 그를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그는 우리의 생명이다"(골 3:4).

(3) 성찬의 목적에 대하여.

[1] "그리스도를 기념하며"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이룩하신 은혜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그리스도를 마음에 생생하게 모시기 위함이다. 가장 좋은 친구가, 가장 친절한 행위가 기억되어야 한다. 이 예식의 좌우명과 의미는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는 것이다.

[2] 그것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나타내 선언하고 알리고자 함이다. 이 예식이 세워진 것은 단지 그리스도와 그의 고통만을 기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의 영광스러운 겸비와 구속의 은총을 기억하고 축하하기 위함이다. 그러한 선포 중에서 영광을 누린다. 우리는 그의 죽으심을 나타내고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우리의 용납된 희생 제물과 속량으로 나타낸다. 우리의 위로와 소생으로서 우리 신앙 안에 세우며 세상에 고백하여 구원과 용납의 유일한 분으로 믿는다.

(4) 이 예식에 대한 암시.

[1] 자주 행해야 한다. "너희가 이 떡을 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즉 우리의 육신의 식사는 자주 먹는다. 먹지 않고 건강할 수 없다. 영적인 식사도 자주 해야 한다. 초대 교회는 모일 때마다는 아니지만 주일마다 이 예식을 거행했다.

[2] 계속해서 행해야 한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 믿는 자의 구원과 세상의 심판을 위하여 주님이 재림하실때까지 행한다. 주님이 자신과 하나님의 영광 중에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세상의 종말을 짓고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까지 이 예식을 행함이 주님의 뜻이다. 주의 만찬은 임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구적인 예식이다.

Ⅲ.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 예식의 악용과 옳지 못한 마음의 태도와 본 뜻에 어긋나는 의향으로 잔치와 분당의 목적으로 사용하여 합당하지 못하게 받는 위험을 지적한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확인하고 고백하면서 죄와 사망으로 계약을 유지하는 일은 위험하다.

1. 그런 사람들이 짓는 죄.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27절). 그의 몸과 피를 경멸하고 신성한 의식을 범하는 죄이다. 그들은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행동을 한다(히 10:29). 그들은 예식을 더럽게 하여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다. 피로 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피로써 죄를 짓는다.

2.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29절). 하나님을 노엽게 하여 벌을 자초한다. 큰 죄를 지어서 저주를 받아 영적 심판과 영원한 비참을 초대한다. 거룩한 의식을 더럽히는 죄가 이렇게 무섭다. 고린도 교인들이 범한 죄가 이런 죄이다. 준비 없이 주의 식탁에 와서 이런 심판을 받으므로 실망해서도 안 된다. 이 죄도 다른 죄와 같이 회개하면 용서 받을 여지가 있다. 악마는 선한 그리스도인에게 이 위로를 박탈하려고 하나 성령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예식에 참여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 고린도 교인들은 주의 식탁을 보통의 식사와 같이 생각했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않고 성찬과 보통 식사를 같게 취급했다. 아니 이들은 보통의 식사보다 더 불경건하게 취급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죄요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며 심판을 불렀다.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어떤 이들은 병으로 어떤 이들은 죽음으로 벌을 받았다. 다음을 주목하자. 주의 만찬을 부주의하게 무례히 받으면 현세의 형벌을 가져온다. 이런 벌을 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주께 징계를 받은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하나님께 죄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32절). 신령한 징계는 신령한 사랑이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느니라"(히 12:6). 최후의 저주를 막기 위함이다.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은 자비를 기억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때때로 심판하신다. 자녀의 파멸을 막기 위하여 채찍을 사용함을 자비이다. 죄를 짓는 자에게 매질을 하시나 사랑의 매이다. 이런 심판을 받은 자들도 하나님의 은총 중에 있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않도록 아버지의 심정으로 벌을 주었다. 영원히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고난 당하는 것이 더 좋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영원한 화를 막기 위하여 지금 벌하신다.

Ⅳ. 주의 식탁에 나오는 자들의 의무.

1. 일반적인 의무.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28절) 자기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 사람이 이 거룩한 예식의 뜻과 성격을 살피고 자기의 마음을 견주어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참예하여야 한다.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다음을 주목하자. 이해력이 약하여 자기를 살필 수 없는 사람은 이 떡과 잔을 결코 받을수 없다. 또한 자기를 살피어 무서운 죄와 불신과 나쁜 생활이 있으면 참예할 수 없다. 혼인 예식에 환영을 받을 자는 예복을 입어야 한다.

2. 이 예식을 더럽히고 아직 벌을 받지 않은 사람들의 의무.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31절) 우리가 우리 자신을 철저히 살피어 잘못을 채찍질하고 고치면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자신과 자신의 행동에 엄격한 것이 하나님의 엄한 채찍을 피하는 가장 적당한 길이다. 판단을 받지 않기 위하여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마 7:1).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과 저주를 피하기 위하여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는 비평적이어야 하고 남에게는 솔직담백해야 한다.

Ⅴ. 바울은 그들의 죄가 있는 무질서에 대해서 주의하면서 맺는다(33,34절). 주의 식탁에서 불경건을 피하라고 책망한다. 기근이나 쾌락을 위한 식사는 가정에서 해야하며 거룩한 만찬을 보통의 잔치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난하여 준비하지 못한 형제보다 먼저 먹으면 정죄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설교를 듣고 성찬에 참예하면서 죄를 짓고 무서운 심판을 받을 수도 있다. 슬프고도 신중한 진리이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심판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자! 거룩한 일은 거룩하게 수행하자. 그렇지 않으면 신성을 모독한다. 그 외의 그들의 잘못은 바울이 직접 가서 고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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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튜 헨리 주석, 고린도전서 0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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