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고린도전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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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유대인의 역사적 교훈(고린도 전서 10:1-5)

고린도 교인들이 우상과 교제하지 않으며 나쁜 죄의 길에서 안주하지 않도록 바울은 유대인의 보기와 구약의 교회를 제시한다. 그들은 특권을 향유하였으나 무서운 죄를 범하여 벌을 받아 쓸어졌다. 여기에서 바울은 우리의 은혜와 같은 유대인들의 특별한 은혜를 열거한다.

Ⅰ. 바울은 먼저 주목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일에 대하여 너희가 무지하기를 원치 아니한다. 너희가 알고 주의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교훈적이며 훈계가 되는 역사이다." 유대교는 베일에 쌓인 기독교이며 모형과 어두운 암시에 덮여 있는 것이다. 복음이 그들에게 율법적인 의식과 희생의 형태로써 전하여졌다.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섭리나 사건들이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한다.

Ⅱ. 바울은 그들의 특권을 상술한다.

1. 애굽으로부터 구원. "우리 조상들이 즉 우리 유대인들의 선조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두가 하나님의 보호와 행위 아래에 있었다." 구름은 두 가지로 봉사하였다. 때때로 구름 기둥이 되어 한편에는 빛으로써 길을 인도하고 다른 한편에는 어두워서 추적하지 못하였다. 때때로는 이스라엘 백성 위에 덮여져서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을 가리워 주었다(시 105:39). 그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지났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장사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길이요, 애굽 사람들에게는 공동 묘지의 길이었다. 하나님과 우리의 적을 타도하여 우리를 구원시키는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좋은 모형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은총 가운데 있었으며 하나님은 기적과 인도와 보호로써 그들을 구원하였다.

2. 유대인들도 우리와 같이 성찬을 가졌다.

(1)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2절) 모세에게 세례를 받고 즉 모세의 율법과 계약 아래에서 세례를 받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율법과 계약 아래에서 세례를 받는다. 그들에게는 모형적인 세례이다.

(2) 우리와 같이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그들이 먹은 만나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즉 먹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의 모형이다. 그들의 음료는 광야의 여행 중에 그들을 동반한 바위로부터 나오는 흐름이었다. 이 바위는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는 교회가 설 반석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모든 신자들은 새롭게 된다. 모든 유대인들은 이 신령한 고기를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이것이 그들의 특권이었다. 이것이 그들을 구원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신령한 고기를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는 모든 사람들은 거룩하고 하나님에게 용납되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다음을 주목하자.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많을 특권을 누릴 수가 있으나 그러나 영생은 취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적에 의하여 확인된 신령한 사명을 믿었으나 광야에서 쓸어졌고 약속된 땅을 보지 못했다. 누구도 자기의 특별한 은혜나 진리에 대한 고백을 뽐내지 말도록 하라. 우리안에 일의 뿌리가 없다면 천국의 행복도 지상의 심판도 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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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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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거울(고린도 전서 10:6-14)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특권을 서술하고서 그들의 결점과 형벌과 죄와 패역을 설명한다. 이것들은 우리의 거울이 되도록 기록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 당한 형벌을 피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행한 죄를 피하여야 한다.

Ⅰ. 유대인들의 몇 가지 죄가 우리에게 경고가 된다.

1. 우리는 육욕적인 것들을 피하여야 한다.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니"(6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로 먹이셨으나 그들은 고기를 먹어야 했다(민 11:4). 그들은 양식의 공급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욕심을 따라서 고기를 구했다(시 106:14). 육욕은 질길 수록 고개를 든다. 그러므로 시초에 억제해야 한다. 육욕이 왕성해지면 우리를 휩쓸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이 경고가 앞에 나와 있다. 왜냐하면 탐닉한 육욕은 많은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우상에 대하여 경고한다(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금송아지의 죄가 언급된다(출 32:6). 그들은 제물을 우상에게 드리고 그 제물을 먹고 그리고 그 우상 앞에서 춤을 췄다. 다만 먹고 마시는 것만이 언급되었으나 제물도 가정된다. 비록 자신들이 제물을 우상에게 바치지는 않았더라도 이방인의 제물을 먹고 즐기는 고린도 교인들의 경우를 바울은 언급한다. 우상 앞에서 제물을 먹고 마시면 그것은 우상 숭배이기에 이것을 피하도록 경고한다.

3. 바울은 간음에 대하여 경고한다. 이 죄는 고린도 사람들이 빠졌던 특별한 죄이다. 그들은 비너스(정욕을 가진다는 뜻) 신에게 바친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천명이 넘는 공창인 여자 사제가 있었다. 이와 같이 부패한 도시에 살며 타락한 생할에 익숙하며 우상 숭배에 유혹을 받는 이들에게 간음에 대한 충고가 얼마나 필요했던가! 정신적인 간음은 육체적인 음행으로 나간다. 이방인이 섬기는 대부분의 신은 음란하다. 이방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음행이 행해졌다. 많을 유대 작가들이나 많을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예배가 바알브올에게 행해졌다고 생각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중에서 모압의 딸들과 음행이 이뤄졌다. 그들은 이 여자에 의하여 영적이며 육체적인 음행을 하도록 유혹을 받았다. 짐승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우상 앞에서 제물을 먹고 그리고 몸을 더럽히었다(민 25). 염병이 일어나서 하루에 2만 3천 명이 죽었다. 정의의 칼날에 죽은 자도 많았다. 다음을 주목하자. 어떠한 관계나 특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은 음행하는 자를 심판하신다. 이스라엘의 염병을 피하려 그들의 죄를 피하자.

4.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9절) 혹은 그를 노여워하게 만들었다(22절). 주는 광야에 있는 교회에 계셨고 그들 앞에서 행한 계약을 주시는 천사였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일로 슬퍼했고 노여워하게 되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민 21:5, 6)이 이유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셨고 많은 사람이 물려 죽었다. 오늘에도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사람들은 옛 불뱀에게 넘겨진다.

5. 바울은 원망에 대하여 경고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10절). 하나님의 복수의 집행자인 멸망시키는 천사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그들에게 닥칠 때에 그들의 목자인 모세에게 원망하고 하나님과 다투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 실망을 할 때마다 지도자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대치하고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와 같은 사례가 고린도 교인들의 일이었다. 그들은 바울에게 원망하고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며 다른 교사들을 세우고 자기들에게 맞으며 우상에게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방인들의 비난과 악의를 받기보다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지도했다. 그러한 일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증스러운 일이고 빠른 파멸을 부르고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사람의 경우와 같았다(민 14:37). 원망이 신령한 명령과 처분에 반대해서 비신앙과 배교가 될 때에는 무서운 죄가 된다.

Ⅱ. 바울은 특이한 주의에 일반적인 주의을 첨가시킨다(11절).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의 율법과 규례뿐만 아니라 그들에 때한 하나님의 섭리가 다 모형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죄나 믿음의 후퇴가 복음 아래에 있는 많은 불경건한 사람들의 모형이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오늘날 영적인 심판의 모형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은 불신앙 때문에 하늘 나라에 못들어가는 모형이다. 그들의 역사는 오늘날 교회의 충고자가 된다. 인간의 마지막 때를 당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성경의 기록이 무용인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은혜 중에서 유대인의 역사를 남겨 두셨다. 그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지혜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경고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다른 사람이 당한 해가 우리에게 경고가 된다.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지고 안심하지 말고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믿고 안심하여 방심할 때에 가장 잘 넘어진다. 자기를 불신하고 경계하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죄를 막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넘어짐을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의 걸음을 삼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약속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 자신의 주의를 먼저 필요로 한다.

Ⅲ. 경고의 말씀 위에 위로의 말씀을 첨가한다(13절). 우리가 교만한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지만 우리가 실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 전자가 죄라면 후자가 죄없지 않다. 비록 우리가 경외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공포에 질려서도 안 된다. 우리의 시험이 우리의 힘에 적응되던지 시험에 따라서 우리에게 능력이 주어진다. 우리는 큰 위로를 가지고 있다.

1.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즉 인간적인 시험, 이방인들이 당하는 그런 시험이다. 혹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그런 시험이다. 인간의 결심과 정신이 견디어나갈 수 있는 그런 시험이다. 그리스도인의 시험은 보통의 시험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시험을 당한다. 남들이 견디어나가는 시험을 우리도 견디어 나갈 수가 있다.

2.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사탄은 사기자이나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인간과 세상은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어 우리의 능력과 안전은 그의 안에 있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약을 지키시고 자녀들의 희망과 신뢰를 실망시키시지 않는다.

3.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현명하시다. 그래서 우리의 짐을 우리의 능력에 맞도록 만드신다.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을 조정하시거나 우리의 능력을 조정하신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신다. 우리가 그를 의지하며 그에게 성실하다면 우리가 정복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돌보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면 인생 길에 있어서 어려움에 당황하여서는 안 된다.

4. 특히 유종의 미가 되도록 역사하신다.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즉 시험 자체나 시험이 주는 재난을 면케 하신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못할 어두운 골짜기도 없고 하나님이 막지 못할 너무 슬픈 괴로움도 없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사 유익하게 되도록 도우신다.

Ⅳ. 여기에서 바울은 우상 숭배에 다른 주의를 준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다음을 관찰하자.

1. 말하는 태도.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이 충고를 함은 깊은 애정에서 나왔다.

2. 충고의 내용.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즉 모든 접근을 피하라. 우상 숭배는 하나님에게 행하는 무서운 죄요 도전이다. 경배와 존경을 적에게 바치는 일이다.

3. 충고의 기초. "하나님을 믿으며 신실하여야 할 격려를 받았으니 자신을 증명하여 흔들리지 말고 적이 주는 실망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께서 구하시고 도우시니 우상의 추종을 금하라." 우리는 세상에서 죄를 피하며 하나님에게 대해서 성실해야 할 격려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붙어 있으면 유혹으로 넘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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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성찬에 대하여(고린도 전서 10:15-22)

이 절에서 바울은 우상 숭배에 대하여 일반적인 주의를 주고 이방인들이 제물을 바친 우상에게 존경과 종교적인 생각으로 제물을 먹는 것에 경고한다.

Ⅰ. 바울은 그들의 이성과 판단에 호소하면서 그의 주장을 전개한다.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15절). 너희들은 날카로운 이성과 토론을 하면서 지혜로운 자로 자랑한다. 내가 온당하게 말하는지 너희 이성과 양심으로 판단하라." 다음을 주목하자. 청중의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여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 영감을 받은 교사에게 불명예스럽거나 불리하지 않다. 확신으로 주어질 때 더 강하게 역사할 수가 있다. 영감을 받은 바울은 어떤 경우에는 자기의 가르침이 그들의 이성의 빛과 지각에 일치하지 않는가 스스로 판단하라고 한다.

Ⅱ.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자기의 주장을 결론짓는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이 신성한 예식이 하나님과 교통함이 아니냐. 하나님과 친구와 같이 교제함이 아니냐. 우리의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와 교제함이 아니냐. 그에게 우리가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겠는가. 간단히 말하여 주의 만찬은 우리 주의 희생된 몸과 피에 대한 잔치이다(epulum exoblatis). 잔치에 참예하는 것은 그의 희생에 참예하여 희생에 초대되어 우정을 나타내게 된다. 주의 식탁에 참예함은 그의 손님과 계약의 백성이 됨을 고백하는 일이다. 이것이 상징적인 먹음과 마심의 의향이요, 목적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특별한 은혜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에서 나오는 의무를 수락함이다. 여기에서 전 그리스도인이 연합된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17절). 이렇게 번역하면 더 좋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유일의 참 떡인 구주의 찢어진 떡의 상징인 떡을 떼어서 한 몸에 연합하고 서로 서로가 지체가 된다." 믿음으로 참예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서로서로 교제하게 된다. 외부적인 물질을 먹은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하여 그의 백성과 형제와 연합하게 된다. 이것이 거룩한 의식의 의미이다.

Ⅲ. 바울은 유대인의 예배와 관습에서 이 주장을 확정한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은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즉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다. 제물을 먹은 사람은 제물에 참예하여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와 연합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징이요 표시이다.

Ⅳ. 바울은 이 이론을 적용하여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제물을 먹는 사람은 우상 숭배자가 된다고 한다.

1.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들의 주장을 인정한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안에 신성이 없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도 아무것이 아니고 변함이 없으며 일반적인 음식이 된다. 그들은 우상과 그 제물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없이 먹는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바울도 우상에게 바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변함없이 일반 음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2. 이방인의 제물로써 먹는 것은 다르다.

(1)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 이방인이 바친 제물은 귀신에게 바친 것이고 그 제물을 먹는 것은 교제하며 귀신을 경배하는 일이다. 이것은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자는 주의 희생에 참여하고 유대인의 제물을 먹는 사람은 그 제물에 참예함과 같은 일이다. 이방인들은 귀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그러므로 그들의 제물을 먹지 말라. 먹으면 제물이 바쳐진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 그것은 기독교를 실제로 포기하는 일이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21절). 그리스도인의 식탁에 참예함을 그리스도와 교제이다. 우상에게 바쳐지고 그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과 교제함이다. 모순되는 일이며 용납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 우상과의 교제와 동시에 이뤄질 수가 없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사람은 우상과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 우상과 교제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제를 끊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식탁과 우상의 식탁에 서로서로 참예함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고 하나님과 사탄을 동시에 교제할 수 없다. 귀신과 교통하는 사람은 실제상 그리스도를 버린 것이다. 탐욕과 음주로 귀신의 식탁에서 즐기는 사람은 고의적인 사악과 귀신과의 교제를 함으로써 주의 식탁에 참예할 수 없다. 사탄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를 교회에 섬길 수가 없다. 우리가 주의 식탁에 임할 때에 모든 죄와 우상을 버려야 함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Ⅴ. 바울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상에 대해서 경고한다(22절).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많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방인들의 식탁에 앉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고 아무런 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주의하라고 명한다. 제 이 계명이 강조되는 이유는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이다. 하나님은 경배에 있어서 경쟁자를 허용하시지 않는다. 자기의 영광을 양보하실 수가 없다.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신 32:16). 이런 일을 하기 전에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강한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그의 능력을 감당할 수 없다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나 1:6) 이 사실은 그리스도와 교제하면서 죄와 연합하여 즐기는 모든 사람이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우리가 그의 질투와 분노를 일으키지 않도록 깨우쳐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할 것인가, 그의 능력을 저항하며 조종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채찍을 자초할 것인가, 그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노엽게 함을 피하도록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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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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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하나(고린도 전서 10:23-33)

여기에서 바울은 어떠한 경우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종교적인 의식이나 우상의 제물임을 알고 신전에서 잔치에 참여할 수는 없으나 우상에게 바쳐진 것도 죄없이 먹을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Ⅰ. 바울은 먼저 합법적인 일에 있어서도 우리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유익하지 않고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일도 가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가한가를 생각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유익하며 덕을 세우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생활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웃을 해치지 않고 그의 유익을 높이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을 도와서 거룩함과 위로와 구원에 방해가 안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 가한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 우연히 악을 행하여 남에게 피해를 준다. 자체가 합법적인일도 합법적으로 수행되지 못하는 예가 있다. 형편이 죄 아닌 것을 죄로 만든다. 행하기 전에 유익과 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을 잘 하려면 우리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도 고려해야 한다.

Ⅱ. 바울을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한다. 이방인의 제물은 제관을 통하여 시장으로 나왔다. 시장의 고기 파는 사람에게 그것이 제물인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일반 음식물로 팔리니 그것으로 사서 사용하여야 한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26절). 이 땅의 모든 열매와 산물은 대 주인인 주의 것이며 인간의 사용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고 특히 하나님의 자녀와 종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 4:4, 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딛 1:15) 비록 어떤 음식을 우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면 죄이나 보통으로 용도와 거룩한 방법으로 쓰면 가하다.

Ⅲ. 만약 이방인 친지로부터 초대를 받았다면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27절). 비록 그들이 우상에 바쳐진 것이 차려졌으며 시장에서 팔려지는 것을 알더라도 문제가 아니다. 바울은 불신자의 초대에 가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이방인이나 불경건한 사람에게도 해야할 예의가 있다. 기독교는 우리와 아무리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의 제도나 그들을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불신자의 잔치에 앉았을 때에는 묻지 말고 앞에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불필요한 질문은 마음과 양심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피해야 한다. 일반 열회석에 있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제물에 바친 것인지 아닌지 물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일반 잔치이며 종교적인 잔치가 아니다.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를 하고서 잔치를 열었는데 바울은 이것을 정죄하였다. 보통의 연회석에서는 일반의 음식을 기대하고 양심의 가책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의무를 알고 깨닫도록 주의하여야 하지만 불필요한 질문으로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Ⅳ. 그러한 연회석에서도 어떤 사람이 그것이 제물이라고 말하면 삼가해야 한다.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주인이나 손님이나 공공연하게나 비밀리나 불신자나 연약한 그리스도인이나 누가 말하여도 삼가하라. 양심을 위하여서 삼가하라. 전과 같이 이론을 전개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주의 것이다." 주님에 의하여 제공된 식물이 많이 있다. 이것을 가책없이 먹을수 있다. 같은 교리가 적용된다. 이 땅은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음식으로 주어진 무엇이나 양심의 가책없이 먹을 수 있다. 이 땅은 주의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걸림이 되는 것은 먹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을 우상으로 인도하고 가하지 않는 것을 먹도록 유혹하고 죄를 짓고 상처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양심을 아프게 하고 그들의 권위를 손상시킬 것을 주의해서 금해야 함을 주목하자.

Ⅴ. 비록 제물이었던 것을 일반 식물로 제공할 때에 먹어도 가하나 남을 넘어지게 하는 일은 삼가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양심이 우리의 행위에 척도는 아니다. 그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도 불법이 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자유에 속한 일이다. 하나님을 식물의 제공자로 고백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면 음식을 사용함에 대하여 비난할 수가 없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상황에서 먹음으로 생긴 비난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이해하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사용하여 나를 욕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겠는가." 바울의 충고에 의하면(롬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그리스도인은 남을 해롭게 하거나 자기가 비난을 받도록 자기의 자유를 사용해서는 안 됨을 명심하자.

Ⅵ. 바울은 이 경우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한 일반적인 규칙을 정하고 특별한 경우에 적용한다(31,32절). 즉 먹든지 마시든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고 그를 기쁘시고 명예롭게 해야한다. 이것이 실제적인 경건의 근본적인 원리이다. 모든 실제적인 신앙의 목표가 특별한 규칙이 없는 곳에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배치되는 일은 할 수 없다. 이웃의 유익을 해치는 일을 금해야 한다. 어떠한 사람도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32절) 우상을 그렇게나 혐오하여 우상에 바친 모든 것은 불결하며 그것을 먹는 사람도 죄가 있다고 믿는 유대인을 불필요하게 근심스럽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행위가 우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를 지지해 주는 결과가 되어도 안 된다. 이방 종교에서 개종한 연약한 신자들이 그들이 버린 우상 숭배를 계속해서 하도록 해도 안 된다. 교회의 어떠한 성도들의 신앙을 잘못 인도해도 안 된다. 우리의 기질과 기호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과 덕이 결정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흥미나 쾌락을 생각하지 말고 천국의 확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헌신한 사람이며 공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Ⅶ. 바울은 자기의 본보기를 말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33절). 설교자는 자기의 본보기로 강조할 때에 더욱 권위있게 충고할 수 있다. 스스로 실천하는 일은 가장 감동을 줄 수 있다. 목사가 청중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은 그의 기능에 알맞는 정신이다. 좁은 마음이나 이기심으로써는 할 수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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