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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바울에 합당한 존경(고린도 전서 4:1-6)

Ⅰ. 바울은 여기에서 자기의 자격과 직책에 합당한 존경을 촉구한다. 이 점에서 많을 고린도 교인들이 그렇지 못하였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 어떤 사람들은 사역자들을 너무 높이고 당의 우두머리로 놓고 추종하였다. 다른 일에 있어서와 같이 사역자들에게, 극단적인 생각을 피하여야 한다. 사도들은 이런 사람이다.

1. 과대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주인이 아니고 하인이며 주가 아니고 청지기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종일 뿐이다. 그들이 최고의 종이고 하나님의 집을 맡고 양식은 나누어 주며 일을 지휘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종 이상이 아니다. 아래의 점을 주목하자. 동료 사역자들을 지배하고 그들의 신앙과 행위에 권위을 주장하는 것은 사역자들에 주어진 권력 남용이요 죄악이다. 사도들이라도 그리스도의 일에 고용되고 그의 심부름을 하며 지난 여러 세대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을 전파하는 주님의 종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기의 상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앙을 선언하여야 한다.

2. 사도들은 과소평가 되어도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종이라도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생의 자격과 위엄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 그들이 청지기이지만 이 세상의 일상의 일의 청지기가 아니고 신령한 비밀의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대한 위탁을 받았기 때문에 명예로운 직책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이며 은혜로운 하늘 나라의 종들이다. 그들이 선생이나 주로 세움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 명예로운 봉사에 있어서 존경과 높임을 받을 자격이 있다.

Ⅱ. 사역자들이 그들의 의무를 행하고 충성할 때에 더욱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2절). 믿을 만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집의 청지기는 주인이 정한 일을 하여야 한다. 동료 청지기가 자기를 위하여 일하도록 시키면 안 된다. 주님의 허락이 없으면 어떠한 것도 동료 청지기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기독교의 교리나 진리의 좋은 양식 대신에 자신의 상상적인 등겨로써 먹이면 안 된다. 사역자들은 인간의 교리나 명령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명한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주님의 관심을 귀히 여기고 그의 명예를 고려해야 한다. 다음 점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자신들을 신실하게 나타내도록 계속 노력하여야 한다. 양심과 주님의 증거를 받으면 그들의 동료 사역자들의 의견이나 비난을 경시해도 좋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다"(3절). 참으로 사람들의 경의와 명성이 사역에 있어서 유용한 일이다. 이 제목에 대한 바울의 전체적인 주장은 자신의 명성에 대한 바늘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 증거하기가 어렵다(갈 1:10).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인간의 비난을 이겨야 한다. 그의 주님이 인정만 한다면 사람의 비난을 무시하고 그들의 판단을 초월해야 한다. 주의 종이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안에 사람들은 그를 나쁘게 평가할 수 있다. 그가 서고 넘어 지는 것은 그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역자들보다 더 온당하게 판단해 준다면 다행한 일이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인간의 부족을 알고 불쌍히 여기는 자는 행복하다. "사람의 손에 빠지는 것보다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 더 낫다(삼하 24:14).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무모하게 부당하게 판단받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항상 진실하다. 인간이 우리의 최후의 심판자자가 아님은 위로가 된다. 아니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이와 같이 판단하면 안 된다.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라. 내 자신을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것이 나의 책망을 없이하는 것은 아니며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나를 결정하는 것은 주의 판단이다. 그의 판단으로 내가 살아야 한다. 나는 주님이 발견하고 판단할 그런 존재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보증하는 것은 우리의 판단이나 타당화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권위있는 심판자만이 하실 수 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창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시니라"(고후 10:18)

Ⅲ. 바울은 남들을 뻔뻔스럽게 그리고 흑심하게 판단하는 검열관과 같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의를 주고 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5절). 그것은 시기에 맞지 않는 판단이요 모험적인 판단이다. 사람은 권위있는 사람이나 나쁜 소문으로 판단되면 안 되고 행동의 깊은 근원과 원리와 알 수 없는 사실과 장래의 상태에 의하여 판단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남을 결정적으로 판단하는 일은 하나님의 자리를 떠맡고 그의 특권을 요구하는 일이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죄인이 흑심한 비난을 하다니 얼마나 거만한 일인가? 그의 비난이 얼마나 때에 맞지 아니하고 교만한가! 비난자와 비난받는 사람들을 심판할 분이 있으니 편견과 감정과 치우침 없이 한다.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서 자기와 남을 바르게 판단할 때가 있도다. 이 사실이 남을 판단하는 일을 깊이 생각하도록 한다. "주께서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때가" 온다. 즉 비밀히 행하는 일과 모든 은밀한 경향과 목적과 의향이다. 어두움을 몰아내고 깊은 것을 나타내며 은밀한 죄와 마음의 비밀을 폭로할 날이 온다. "그 날이 그것을 공포하리라." 재판관이 이것들을 드러낸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라. 다음을 주목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는 마음의 뜻을 아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드러낼수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권이다(렘 12:10).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요청하시는 것이다(계 2:23). "모든 교회는 내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감출 수 없는 재판관과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남을 판단할 때에 주의해야 한다. 남들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에게 모두 나타난다. 그가 심판하러 오실 때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즉 칭찬받을 모든 사람이 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종들이 무엇을 받을 자격이 없고 그들의 봉사에 많은 잘못이 있더라도 그러나 그의 충성은 칭찬받고 보답될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동료들로부터 저주와 비난과 무시를 받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부당한 비난을 청산하시고 잘 받아 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날이 다가오며 그들의 양심이 그들의 충성을 증거해 줄 때에 부당한 비난을 인내할 수 있다. 이 후에 재판장께서 칭찬할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Ⅳ. 바울은 여기에서 자기와 아볼로의 이름을 왜 사용하는가를 밝힌다.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본을 보였다." 바울은 그들을 분노케 하지 않으며 그의 충고를 잘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당파의 당수 이름을 들지 않고 자신과 충실한 동역자의 이름을 언급한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사역자들은 충고나 경고를 할 때에 목적을 상실하지 않도록 책망에 신중해야 한다. 바울이 이런 수단을 통하여 가르치고자 한 교훈은 "그들이 기록한 말씀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것을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였다(6절). 사도들은 다만 하나님의 농장에 심는 자요, 물을 주는 자며 하나님의 대 건축자며 그리고 비밀을 맡은 청지기이며 그리스도의 종 이상일 수가 없다. 일반 사역자들은 사도들이 가지는 것과 같은 자격을 가질 수가 없다. 다음 점을 주목하자. 우리는 주의 명예와 권위를 종에게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을 선생이라 칭하지 말아야 한다. 한 분이 우리의 선생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마 23:8, 9). 우리는 사람을 쓰여진 것 이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판단할 가장 좋은 척도이다. 사람에 관하여 바로 판단하고 지나치게 높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 교회에서 일어나는 싸움과 다툼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보통 교만이 모든 싸움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자만이 우리들 자신이나 교사들을 지나치게 존경하도록 한다. 우리들의 기호나 판단이 과분한 칭찬을 하고 동등하고 충실하고 자격이 있는 선생들에 반대하고 어떤 한 선생에게 집착하게 한다. 우리들 자신과 선생들을 겸손하게 그리고 기록된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이 교회 안에서 싸움과 다툼과 분당을 저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우리가 만일 교사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채용된 기계이며 여러 재능과 자질로써 능력을 얻은 일군임을 인식한다면 어떤 한 사람을 뽐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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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인들의 축복과 사도들의 고난(고린도 전서 4:7-13)

여기에서 바울은 앞의 암시를 전개하여 교만과 자만에 대한 주의을 하고 각각 다른 형편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가지는 바울에 대한 경멸을 가지고자 하는 유혹을 지적한다.

Ⅰ. 바울은 그들의 차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진 것으로 생각하여 교만과 자만을 책망한다 .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7절). 여기에서 바울은 그의 말을 각 당파의 우두머리가 된 사역자들에게 돌린다. 이들은 사람들을 충동하여 분당을 짓게 하였다. 그들의 모든 은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는데 자랑할 것이 무엇일까? 그들은 그것들을 다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고는 자기의 것으로 자랑할 수가 없다. 그들이 그들의 허영을 채우기 위하여 은사들을 생각했을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에 대한 많은 빚과 의무로써 생각했어야만 옳았다. 우리는 일반적인 격언으로 받아도 좋겠다. 즉 우리는 우리의 업적과 즐거움과 수행을 자랑할 수가 없다. 좋은 우리의 소유와 인격이 하나님의 값없이 풍부하게 주시는 은혜로 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모든 것을 받은 사람은 아무 것도 자랑할 수 없다(시 115:1). 거지와 의존자는 그들의 후원자를 자랑할 수 있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비천함과 무능과 결핍을 자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적당히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거만과 자만을 치료해 준다는 점을 주목하자.

Ⅱ. 바울은 묘한 말로써 겸손을 가르치고 혹은 그들의 교만과 자만을 견책한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하였도다. 너희들은 영적인 은사를 충분할 뿐만 아니라 부요하게 가지고 있다. 너희들은 우리 없이 그들을 자랑거리로 만들 수 있다. 즉 내가 없는 동안 나의 필요 없은 이 자랑할 수 있다." 매우 품위있는 표현이다. 충분에서 부요로 그곳에서 왕의 지위로 나간다. 고린도 교인들이 그들의 지혜와 영적 은사 때문에 얼마나 의기양양했는지를 암시한다. 바울이 없는 동안 바울이 이 모든 일에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잊어버렸다. 교만은 이익을 지극히 귀히 여기나 은인은 잊어 버리고, 소유를 깊이 생각하나 그것을 준사람은 잊어버린다. 아니 소유물을 확대경으로 본다. "너희가 왕노릇 하였도다. 즉 너희의 자만심 가운데서 그렇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나는 너희가 하나님의 영광을 횡령하는 만큼 그 만큼 기독교의 참다운 영광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러면 나도 함께 명예를 나누겠다. 너희와 왕노릇 하기를 원하노라. 현재처럼 내가 무시될 수 없고 그리스도의 사역자로 귀히 여겨져야 한다." 다음을 주목하자. 자기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자기를 바로 깨달을수 없다. 만약 고린도 교인들이 망상적인 왕으로 교만하지 않았더라면 사도와 함께 왕노릇 하였으리라. 교만은 개선의 큰 방해물이다. 자기 자신을 높이는 즉 충분하며 부하여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현명하여지거나 더 선량하여질 수 없다.

Ⅲ. 바울은 자기와 사들의 처지를 고린도 교인들의 처지와 비교한다.

1. 사도들의 경우. "내가 생각컨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바울과 그의 동료 사도들은 곤경에 처했다. "하나님의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다"(9절). 로마의 원형극장에서 피흘리는 사람들을 암시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나운 맹수와 싸우거나 서로 찌르면서 싸운다. 다만 구경군들을 즐겁게 하기 위함이다. 승리자는 생명을 구출하지도 못한다. 상대방을 이기면 다른 싸움자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잡아먹히거나 찔리어서 죽는다. 이와 같이 비참한 죄인들은 보통 사형수인데 아마 (evpiqana,tioi)은 죽기로 작정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남겨둔다. 서로 싸우는 검투사들은 오후에 싸우며 나체로 싸우기로 되어 있었다. 세네카(Seneca)가 말했듯이 이것은 완전한 도살장이었다. 이들은 오전에 맹수들과 싸우는 사람들보다 더 비참하였다고 일반적 의미는 사도들은 그들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함에 있어서 죽음의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다. 로마의 황제들이 투사들을 경기장에 노출시키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사도들을 세상에 보이도록 노출시켰다. 투사들은 대중의 즐거움과 허영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과 그들의 사명과 교리의 진리를 나타내며 이 세상에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나타난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한 가치있는 목적이요 고상한 이상이요, 하나님은 그들을 싸우도록 생기를 준다. 그러나 이들도 비참한 로마의 투사들과 같이 어려움이 있고 드러나게 된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영예로운 사도직은 동시에 어렵고 위험한 직책이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9절). 하나의 연극이 되었다. 우리는 극장으로 들어가서 세상의 대중 앞에 선다. 천사들과 사람들이 우리의 박해와 고통과 인내와 관용을 구경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 위하여 어떻게 고난을 당하는가를 그들은 본다. 우리의 위험이 얼마나 크고 절박하며 얼마나 용감하게 그것을 대하며 우리의 고통이 얼마나 날카로우며 하나님의 은혜와 기독교의 정신으로 어떻게 견디고 있는가를 그들은 구경한다. 우리의 일은 어려우나 명예롭다. 위험하나 영광스럽다.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영광을 거두시고 기독교가 우리에 의하여 인정된다. 세상은 우리의 과감한 결단과 꺽을 수 없는 인내와 끈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의 명예를 위하여 얼마나 만족스럽게 고통과 능욕을 받는가! 다음을 주목하자. 충성스러운 종들과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주님을 위하여 어떠한 일도 당한다.

2. 바울은 자기의 처지와 고린도 교인들의 처지를 비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도다"(10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다." 우리는 그런 취급을 만족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복음의 명예가 나타나도록 우리는 세상에서 바보 취급을 받고 멸시를 당하다. 충성스러운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그의 은혜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멸시당함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다. 너희는 현명하고 학문이 있는 기독교인으로 유명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너희는 귀중하게 여긴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를 소박하게 전하여 멸시를 받는다. 너희는 웅변과 인간의 지혜 때문에 명성을 얻고 그래서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현명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한다"(고후 12:10). "너희는 안위하고 좋은 형편에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똑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같은 싸움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더 고난을 당한다. 군의 기수는 가장 심하게 공격을 받는다. 박해 때의 사역자들은 가장 큰 고난을 당한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고 졸렬한 사람으로 통하나 너희들은 성장하고 강하게 힘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접도 받는다." 기독교에 있어서는 참으로 유능한 사람은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나타내는 실수를 저지른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를 보다 더 현명하고 강하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큰 잘못인가!

Ⅳ. 바울은 사도들의 고난을 상술한다. 우리가 너희와 다른 교회에서 일한 후에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11절) 아니 그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이"되었다. "만물의 찌기같이 되었다"(13절). 그들은 생계를 위하여 손수 일을 하여야 했고, 그들은 너무나 많은 일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없고 배고프며 목마르며 헐벗어야 했다. 여러번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없었다. 그들은 정처없이 배회했고 일정한 주거가 없었다. 구주의 천국의 장관들이 이런 형편으로 식량과 의복이 부족하다니 어쩐 일인가! 그러나 머리 둘 곳이 없는 주님보다는 덜 가난하다(눅 9:58). 이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나가도록 하는 그들의 사랑과 헌신이 아름답도다! 그들은 엄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영혼의 구원을 얼마나 갈망하는가? 그들은 자원하며 즐거운 가난을 겪는다. 그리스도만 섬기고 영혼만 구원한다면 외부의 결핍을 보상할 보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세상의 더러움과 만물의 찌기가 되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같이 취급을 받았다.(perikaqarmata). 비평가들은 이 은유가 역병이나 흑심한 재난 때 행하는 이방 나라의 관습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들을 제물로 바쳤다. 이 사람들은 가장 나쁘고 천하고 악한 사람들이었다. 성난 신들을 달래는 것 이외에 초대 기도교인들은 모든 공공의 재난의 원인으로 간주되고 사람들의 분노의 제물이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제물이 될 만큼 가장 나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혹은 없애야 할 세상의 찌끼로 생각했다. 그들은 세상의 비난을 쏟을 하수구였다. 모든 일들의 찌끼가 되는 것이 얼마나 나쁜 일인가. 사도들은 그들의 스승을 얼마나 닮았는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주님을 본받아 고난을 당했다. 주님은 그의 일생과 사역 동안에 가난하고 멸시를 당했다고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같은 가난과 능욕을 각오해야 한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세상의 오물과 찌끼로 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가깝고 그에 의하여 명예를 받을 수 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리라"(삼상 16:7).

Ⅴ.여기에 사도들의 행위가 전부 나타나 있다. 나쁜 취급에 대한 그들의 보답이 이러하다.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 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한다"(12,13절). 그들은 비난을 받고 축복을 돌려 주며 거치른 중상과 불명예에 대하여 간구와 친절한 권면으로 대하고 무서운 핍박 중에도 인내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특히 그의 사역자들은 충성과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하고 어떠한 반대와 곤경에 부닥쳐도 그래야 한다. 사도들은 사람으로부터 어떠한 고난은 당하여도 주님의 본을 받아서 그의 뜻과 교훈을 수행해야 한다. 그들은 멸시와 능욕을 당해도 주님을 위해서 주님과 함께 만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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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아버지로서 바울(고린도 전서 4:14-16)

여기에서 바울은 아버지로서 생각해 줄 것을 요청한다.

1. 지금까지 쓴 것이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고 충고하기 위함이다. 적의 마음이 아니고 아버지의 심정이다(14절).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우리가 죄를 책망할 때에 죄인의 개선과 함께 명예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죄인과 죄를 구별하여야 하고 죄인에 대하여 원한을 품거나 세상에서 경멸을 받거나 비난을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 친절하게 그리고 사랑을 가지고 책망하는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으나 죄를 폭로하는 사람은 격노케 하기 쉽다. 아버지의 애정과 사역자의 충고가 조화된다면 죄인들이 녹아서 개과천선하나 적이나 사형수같이 채찍을 휘두르면 분노를 일으켜 완고하게 만든다. 수치를 폭로시키면 수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 만든다.

2. 바울은 어떠한 기초 위에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는지 밝힌다. 고린도 교인들은 다른 교사나 학자들을 가지고 있을는지 모르나 바울은 그들의 아버지였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그가 그들을 낳았음이라"(15절). 그에 의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그들의 교회에 기초를 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위에 세웠다. 그들이 어떤 다른 교사들을 가졌더라도 바울은 그들의 영적 아버지였다. 그가 그들을 이방인의 우상에서 끌어내어 복음의 신앙과 참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하였다. 바울은 그들의 신생의 도구였다.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아버지의 심정을 소유했다. 항상 사역자과 복음을 통하여 예수 안에서 태어난 신자 사이에는 친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부자와 같이 사랑해야 한다.

3. 바울이 여기에서 특별한 충고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되라"(16절). 이것을 다른 곳에서 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되라(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정도로 나를 따르라. 내가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역자요 제자인 것과 같이 너희는 나의 제자가 되어라. 그래서 너희를 나의 제자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고 싶다.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인 것과 같이 나의 주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이 되어라. 나를 따르라." 사역자들은 그의 양떼같이 교인들을 지도해야 하며 단지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들의 앞에서 솔선해서 천국으로 나가야 한다. 사역자들은 본을 보이고 교인들은 본을 받아야 한다. 신앙과 실행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한에 있어서 사역자들을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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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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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교인들을 방문함(고린도 전서 4:17-21)

Ⅰ. 여기에서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냄을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의 행사 곧 그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친 것은 생각나게 하기 위함이다"(17절). 즉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행사를 상기시키고 그의 설교와 행위와 가르친 것과 어떻게 생활했는가를 새롭게 하기 위함이었다. 아래를 주목하자.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잊어버리기 쉬워 그들의 기억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되풀이하여 가르치는 진리가 새로운 빛을 주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감명을 줄 수가 있다. "그의 가르침이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교회에서 같음을" 알린다. 여러 곳에서 가르칠 여러 교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바울은 배운 것을 고수하였다. "그가 저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었다"(11:23). 이것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복음의 계시이다. 그 자체에 변화가 없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에서 같은 것을 항상 가르쳤다. 그리스도인들이 다르게 이해하더라도 기독교의 진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히 13:8). 디모데도 고린도 교인들과 같이 바울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영적 형제는 공통점과 함께 애정을가져야 한다. 한 아버지의 자녀들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그는 주안에서 신실하니" 주님을 경외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다. 그는 주제로 받은 특별한 직책에 충실할 것이다. 디모데는 나의 가르침과 뜻을 잘 알므로 너희들은 그를 신뢰해도 된다. 주안에서 신실하다는 것은 아주 좋은 추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Ⅱ. 비록 디모데를 보내지만 바울이 그들에게 가고자 함을 알려 그가 오지 않으리라는 허영심을 견책한다.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리라. 비록 너희들 중에 얼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다. 사도들의 일상 생활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모르는 것 같고 영감도 받지 않았다. 바울이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섭리에 의존해야 함을 주목하자.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약 4:15).

Ⅲ. 바울은 그의 방문과 함께 무엇이 따라올 것인가 알린다. "내가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라"(19절). 바울은 교만한 자들을 시험해 볼 것이다. 그들이 수사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가르침의 효능과 권위에 의하여 기적 같은 역사와 신령한 영향과 효력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는지 알아 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음이라." 믿을 만한 추리와 호화스러운 말이 아니고 성령의 외적 역사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신령한 진리의 능력있는 영향과 역사에 의하여 천국은 세워지고 전파되고 사람의 마음에 심어진다. 아래를 주목하자. 사람의 마음에 주는 영향이 신령한지 보는 것은 설교자의 교리를 판단하는 좋은 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내고 경견과 덕을 넓히며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생활 태도를 고치는 것이다.

Ⅳ. 바울이 어떻게 방문할까 선택하라고 촉구한다.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21절). 그들의 처신에 따라 바울이 대할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이 계속 잘못을 범하면 매를 가지고 가야 한다. 즉 그들을 훈계하기 위하여 사도의 권한을 사용해야 한다. 육체적인 형벌을 주든지 혹은 책망하든지 할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짖궂은 사람들은 엄하게 다루어야 한다. 가정에서나 기독교 공동체에서나 부모의 동정심과 온정은 때때로 매를 사용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피할 수만 있으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가 매를 가지고 갈지 그와 반대로 마음으로 갈지 결정하라고 한다.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이와 같이 말한 것 같기도 하다. "경고를 명심하여라. 비기독교인 당쟁을 그나 두고 잘못을 수정하고 의무를 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원하는 대로 온순하고 은혜로운 사람으로 갈 것이다. 엄한 마음으로 가는 것이 나의 뜻이 아니다. 권위를 사용하는 것보다 아버지의 심정으로 가기를 원한다. 자기의 일을 마땅히 행하라. 내가 속히 가리라." 정당한 권위를 유지하면서 사랑과 온유의 정신을 가지는 것은 사역자의 좋은 기질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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