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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육에 속한 고린도 교인들(고린도 전서 3:1-4)

Ⅰ.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약함과 유치함에 대하여 책망한다. 성화된 사람들도 불완전하다. 은혜와 지식에 있어서 자라나고 증진될 여지가 있다(벧후 3:18). 신령한 은혜로 새로운 영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다. 바울은 그들에게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1절)고 말한다. 그들은 신령한 계시 위에 그들의 교훈과 수단을 수립하고 복음의 정신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육적이고 부패한 생각의 지배아래 있었다. 그은 아직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의 얼마를 받아들였으나 그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믿음과 거룩함도 부족하였다. 그러나 이 서신의 몇몇 절로 본다면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지혜와 지식을 대단히 자랑했다는 것이 분명하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많은 지식과 이해력이 있는 자들은 흔히 자만한다. 바울은 그들이 유치하기 때문에 깊은 지혜의 말로 그들에게 전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들은 그런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고 고기가 아니라 젖으로 먹을 필요가 있었다(2절). 청중들의 능력을 알아서 그 능력에 따라서 가르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역자의 의무이다. 어린이들이 어른으로 성장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어린 아이들은 키가 자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평범한 일이 아니고 깊은 신앙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기회와 수단을 통하여 신앙의 연조를 쌓아서 지식의 성장이 있어야 한다.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의 사역 아래 오래 있었으나 기독교 지식에 있어서 개선이 없었던 것이 책망당할 만했다. 은혜와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

Ⅱ. 바울은 그들이 육에 속함을 책망한다. 그것에 대한 증거로 사역자들에 대한 쟁투와 불화를 증거로 든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3절). 그들은 사역자들 때문에 경쟁하고 싸우고 당을 지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4절) 이것들이 육적인 관심과 생각이 지배하는 육신에 속한 증거였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신앙에 대한 경쟁과 싸움은 육적인 증거이다. 참다운 신앙은 화평하게 하고 싸우지 않는다. 당을 짓는 것은 신앙의 원리가 아니고 인간의 원리다. 그들은 자신의 교만과 정열로 인도되고 기독교의 정신으로 인도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의 수준보다 높게 살아야 할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과 너무나 같게 살며 행동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3:2 없음.

 

3:3 없음.

 

3:4 없음.

 

3:5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고린도 전서 3:5-10)

여기서 바울은 그들에게 어떻게 하여 이 잘못된 마음을 고치고 바르게 할까를 훈계한다.

Ⅰ. 고린도 교인들이 다투어 섬기는 사역자들은 어디까지나 사역자들이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5절). 사역자들은 은혜의 하나님에 의하여 사용되는 도구이다. 고린도 교회의 어떠 분당은 사역자들을 그들의 신앙의 주와 종교의 창시자로 생각하였다.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사역자들을 신성화하거나 하나님 대신에 놓지 않도록 하자. 사도들은 믿음과 종교를 계시하고 전파하도록 권위와 자질을 받았지만 그것의 창시자는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은사와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 사역자들이 신처럼 되는 것은 잘못이다. 신령한 권위는 그들이 따르는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6절). 둘은 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유용했다. 하나님은 여러 기구를 사용하시며 그들을 여러 용도에 맞도록 조정하신다. 바울은 일을 시작하는데 적당했고 아볼로는 일을 성장시키는 데 적합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신다. 사역의 성공은 하나님의 축복으로부터 와야 한다. "그런즉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7절). 비록 사도적 사역자이라도 그들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시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가장 유능하고 충실한 사역자는 자기의 부족을 알고 하나님이 그의 사역의 모든 영광을 받으시게 한다. 바울과 아볼로는 그들 홀로는 아무 것도 아니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Ⅱ.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일치성.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8절) 즉 같은 주로부터 채용되고 같은 계시를 위탁받고 같은 일을 하며 같은 계획에 종사하고 아무리 분당을 짓는 자들에 의하여 대립되더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같은 일을 하는 동역자이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그리스도의 모든 충실한 사역자들은 사역의 위대성과 의향에 있어서 하나이다. 적은 일에 있어서 감정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토론과 경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참다운 기독교를 전파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있어서는 충심으로 일치하고 있다. 모든 그런 사역자들은 충성의 영광스러운 보답을 기대할 수 있다. "각각 자기의 일하는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그들의 일은 하나이나 열심은 다르다. 그들의 목표와 계획은 같으나 그러나 어떤 이들은 더 철저히 수행한다. 그들의 주는 하나이나 이 선하시고 은혜로우신 주님은 그들의 봉사에 따라서 다르게 보답한다. "모든 사람의 일이 그의 보답을 받는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크게 성공한다. 가장 성실한 사람은 가장 큰 보답을 받는다. 모든 충실한 사역자들이 종사하는 일은 영광된 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다"(sunergoi,:동역자들)(9절). 같은 서열과 신분으로서가 아니고 그에게 복종하며 그의 도구가 됨으로써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며, 귀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들의 일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그들의 노동이 헛되지 않도록 돌보신다. 인간들은 어떤 사역자들을 찬성하나 어떤 사역자는 무시한다. 인간은 칭찬을 해야할 때에 비난하고 비난해야 할 때에 칭찬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질리에 의한 것이다. 온당한 이유없이 보답하지 않고 항상 그의 종들의 근면과 성실에 의하여 보답하신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충실한 사역자들이 인간에 의하여 나쁘게 이용된다면 하나님 안에서 자신들을 격려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 자기를 증거해야 할 대상은 복음의 위대한 사역의 지도자이며 감독자인 하나님 자신이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감독 아래 있고 농사와 건축에 고용되었다. 확실히 하나님은 그들을 주의깊게 보고 계신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의 것도 아니요 아볼로의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들은 다만 너희을 심고 물을 준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밭에 내리는 신령한 축복이다. 너희들은 우리의 밭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래에서 그와 함께 그를 위하여 일한다. 우리가 너희 중에서 일해 온 것은 하나님만 위해서다.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집이다. 바울은 앞의 은유를 전에 사용했던 적이 있으나 이제 집의 은유를 든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바울은 여기에서 자기를 지혜로운 건축자로 부르고 이것은 이중적인 명예이다. 하나님의 저택의 우두머리의 건축자가 되는 것은 명예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건축가였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자질이 갖추어 있지 못한 일에 있을 수가 있다. 바울이 자기를 그렇게 부르나 그것은 자기의 교만이나 신령한 은혜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지혜로운 건축자이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덕분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선을 말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영적 교만은 가증스럽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허영을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우상으로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높이며 그의 명예를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지적하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와 관심의 적합한 표현이다. 사역자들은 그들의 은사와 은혜를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더 좋게 자질을 갖추고 더 성공하면 할수록 이 특별한 선함에 대하여 더욱 더 감사해야 한다. "나는 터를 닦았고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웠으니" 전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는 말과 같다. 그들 중에서 교회의 기초을 놓은 것은 바울이었다. 그는 "복음으로써 그들은 낳았다(4:15)" 그 외에 어떤 스승을 가져도 "그들은 많은 아비를 가지지 않았다." 바울은 그들 중에서 봉사한 누구든지 훼손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명예나 존경을 박탈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충실한 사역자들은 자신의 명성을 지켜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일하기가 쉽다. "그러나 각각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이것은 적합한 주의이다. 좋은 터에 나쁜 건물을 세울 수가 있다. 실수하기 쉬운 점이다. 확실하고 올바른 기초를 놓을 뿐 아니라 좋은 집을 그 위에 세우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초에 적합한 건물만 세워야 한다. 금과 흙이 혼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신령한 계시의 터 위에 자신의 상상이나 그릇된 이을 세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이 전하는 것은 그들의 주님의 분명한 교리이어야 한다.

 

3:6 없음.

 

3:7 없음.

 

3:8 없음.

 

3:9 없음.

 

3:10 없음.

 

3:11

바울이 닦은 터(고린도 전서 3:11-15)

여기에서 바울은 그들 가운데에 세운 터가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되셨느니라"(엡 2:20). 이 터 위에 모든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세운다. 이 반석 위에 모든 기독교인은 소망을 둔다. 다른 터 위에 천국의 소망을 세우는 사람은 모래 위에 세우는 사람이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다음을 주목하자. 우리 주와 그의 중보의 교리는 기독교의 기본 교리이다. 그것은 기초이다. 이 기초을 떠나면 모든 위로가 무너지고 죄인의 소망이 사라진다. "죄 많은 세상을 하나님에게 화목하게 하는 것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이다"(고후 5:19). 이 기초를 잡고 그리스도의 중보를 믿는 사람 중에 두 종류가 있다.

Ⅰ. 어떤 사람은 이 터 위에 "금과 은과 보석으로" 세운다. 즉 복음의 순수한 진리를 받아들이고 전파하며 예수 안에 있는 진리만을 잡으며 그것만을 전파한다. 이것은 좋은 터 위에 잘 세운 집이다. 이 때에 사역자들은 교회의 대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만을 의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와 교사로 여기고 그리스도가 가르친 복음을 가감함이 없이 순수하게 받고 전한다.

Ⅱ. 다른 사람들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운다." 즉 그들이 이 기초 위에 세우나 여러 점에 있어서 예수의 마음을 떠나며 그리스도의 교리 대신에 그들의 상상이나 창작을 대치시키며 심판날에 견디지 못할 것과 불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드러낼 것으로 세운다. 이들은 다 타버린다. 사람들이 이 터 위에 세운 것이 밝히 드러날 때가 온다. "모든 사람의 공력이 밝히리니" 자기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어리석음 때문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하나 주의 날에는 그들의 행위가 밝히 드러날 것이다. 잘못을 범한 자와 피할 자가 밝히 드러난다. 지금은 우리가 실수를 하지만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나타날 때가 온다. 왜냐하면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13절). 최후의 날 심판의 날에는 모든 것을 나타낸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유대 국가가 멸망하고 그의 체제가 없어지는 때를 의미하며 기독교 위에 유대 교사들이 세우고자 한 피상적인 건물을 가리킨다고 보기도 한다. 그 표현은 야금술을 은유하기도 한다. 불이 금과 은과 불순물을 가르고 구별한다. 금과 은과 보석은 불을 견디고 나무와 풀과 짚은 타버린다.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불이 금을 찌꺼기로부터 구별하고 타버리는 물질과 타지 않는 금속을 구별하는 것과 같이 사람과 사람 그리고 일과 일을 구별하는 때가 온다.

1. 어떤 사람들의 일은 시험에 견디고 좋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들은 좋은 터에 잘 세웠으며, 좋은 재료를 사용하여 잘 세운 것이다. 터나 건물이 한 덩어리가 된다. 기본 진리와 그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이 함께 가르침을 받는다. 지금은 이것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날에는 완전히 드러난다. 잘 짓는 사람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 그는 명예와 칭찬을 받고 영원한 상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의 충성은 내세에 있어서 완전한 보답을 받을 것이다. 진실하고 순수한 신앙을 전파하며 그들의 일이 올바르면 보답을 받는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마나 넘치는 보답일까!

2. 그들의 공력에 "불타 버릴 사람들이 있다"(15절). 이들의 부패한 의견과 가르침이 나타나고 잘못된 경배가 거절될 때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절을 당할 것이다. 최후의 날은 모든 위장을 제거하고 사실을 밝힌다. 공력이 타버리는 사람은 큰 손해를 당한다. 좋은 터 위에 나무와 풀과 짚으로 세우는 사람은 손해를 당한다. 그가 비록 정직한 그리스도인이었더라도 그의 약함과 부패가 그의 영광을 삭감한다. 구원을 받더라도 공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다음을 관찰하자. 기독교의 터를 잡고 풀과 나무와 짚으로 세우는 사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이것은 우리의 사랑을 크게 한다. 우리는 남의 약점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그 자신은 그의 공력을 태워버리는 불에서 구출된다. 이것은 타락하고 기독교를 부패시키는 사람들의 구원이 힘드는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에서 끄집어내는 가지처럼 구원하나 그들의 공력은 태위버리신다. 이 귀절에서 카톨릭 교도들은 연옥의 교리를 세운다. 이것은 분명히 불이나 짚의 교리이다. 성경에서 온 교리가 아니고 신부들의 야망과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만들어진 교리다. 이 교리는 이 귀절에서 지지를 얻지 못한다.

(1) 왜냐하면 이것은 비유적인 불을 의미하고 실제적인 불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실제적인 불이 종교적인 의식이나 교리를 소멸할 수 있겠느냐?

(2) 왜냐하면 이 불은 인간의 공력이 어떠한 것인지 시험한다. 그러나 연옥의 불은 시험을 위하고 인간의 행동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벌을 주기 위함이다. 그들은 용서받을 죄로 가정된다. 이 세상에서 해결되지 않고 연옥의 형벌을 받아야 된다.

(3) 왜냐하면 이 불은 바울과 아볼로의 공력도 시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연옥의 불을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할 신부들은 없을 것이다.

 

3:12 없음.

 

3:13 없음.

 

3:14 없음.

 

3:15 없음.

 

3:16

하나님의 성전(고린도 전서 3:16,17)

여기에서 바울은 그가 말한 "너희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언급에 입각하여 그의 주장과 권면을 다시 시작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16,17절). 바울이 똑 같은 취지를 말하는(6:13-20 참고) 이 서신의 다른 부분에서 본다면 고린도 교인들의 거짓 선생은 방탕한 교리를 가르친 것 같다. 이러한 교리가 풀이나 짚으로 생각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세워졌고 하나님에게 바쳐진 교회를 부패시키고 파괴하려고 한다. 이런 교리를 전파시키는 사람들은 파멸을 초래하도록 하나님의 교회를 부패시켜 신성과 정결을 깨뜨리는 사람은 멸망하게 된다. 분열이 파멸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불화와 분쟁을 반대하는 주장으로 이해될 수도 있겠으나 내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 귀절의 본래 의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그것은 고린도 교회를 집합적으로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기독교의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2) 하나님은 유대인의 성전에 거하셨다. 그 성전을 소유하시고 그 안에 거하시고 영광스러운 구름이 임재의 표시였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모든 참다운 신자들 안에 거하신다. 성전은 거룩하게 하나님에게 바쳐졌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사용되었다. 그와 같이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어 그를 섬기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우리 자신을 더럽히거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을 하면 안 된다. 우리를 유혹하는 어떠한 교리나 박사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된다. 기독교인은 천직이 거룩한 것이다. 마음과 교제가 순결해야 한다. 우리는 중심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그에게 거룩하게 바칠 것을 팔지 않도록 주의하고 피하여야 한다.

 

3:17 없음.

 

3:18

겸손의 요청(고린도 전서 3:18-20)

여기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무질서와 분열과 경쟁에 대한 치료로써 겸손과 자신에 대한 겸양한 태도를 권한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18절). "학문과 웅변과 말의 유창함과 랍비들과 변사들과 철학자들에 의하여 복음의 단순성과 진리로부터 떠나지 말라."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인간의 지혜와 예술을 너무 높게 생각하면 우리 자신을 속일 위험성이 있다. 교리들을 청중의 부패한 성미에 맞도록 하고 교리를 좋은 말로 장식하며 깊고 강한 이성으로 옹호하는 사람에 의하여 복음의 단순성과 순수성이 무시 돌 수 있다. 그러나 지혜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느니라." 지혜자는 자기의 무지를 알고 그것을 슬퍼해야 한다. 그는 자기의 이해를 불신하고 그것을 의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 자신의 지혜를 과대평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고 자신의 칭찬은 자기의 기만을 낳는다. 지혜롭게 되는 길은 우리의 생각을 적당히 낮추는 일이며 하나님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진실로 철저히 지혜롭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기 위하여 인간의 이해를 버리는 사람은 참되고 영원한 지혜를 얻는다. "온유한 자를 공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 도를 가르치시리로다"(시 25:9). 자신의 지식과 권력을 경시하는 사람은 더 좋은 지식을 가지게 된다. 그러한 사람은 계시로 배우고 개선된다. 그러나 자신의 지식으로 속임을 받는 교만한 사람은 신령한 지혜도 수정하고 오류가 없는 진리와 지혜의 계시를 자기 자신의 천박한 지식보다 못하게 여긴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우리가 참으로 지혜롭고 선하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낮추어야 한다.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19절)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지혜 즉 정치와 철학과 웅변은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와 비교해도 그렇다. "하나님은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욥 4:18) 인간의 가장 현명한 자는 더 그러하다. "그 지혜가 무궁하시도다"(시 147:5).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을 우리의 것과 비교할 수 없듯이 그의 지혜와 우리의 지혜는 비교할 수가 없다. 유한과 무한을 측량할 척도가 없다. 인간의 지혜가 하나님과 비교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나님은 얼마나 인간의 지혜를 무시하고 부끄럽게 하는가?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욥 5:13) 하나님은 그들을 스스로 빠지고 얽매이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최고의 학문과 기술이 그들을 실망시키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최고의 학문과 기술이 그들을 실망시키도록 하신다. "주께서 지혜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20절) 그들은 헛것이다(시 44:11). 아래 사항을 주목하자.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아시고 지혜있는 자의 깊은 생각과 은밀한 뜻과 목적을 아신다. 하나님에게는 숨김이 없고 "오직 만물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3). 하나님은 그들이 헛 된 것임을 아신다. 이 세상의 현자의 사상은 허영과 약함과 어리석음의 혼합이다. 사람들의 가장 현명하고 좋은 사상도 하나님의 것과 비교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에게 겸양과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존중과 그의 계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에 의하여 배우고 인간의 외양적인 지혜보다 그리스도의 소박한 진리와 신령한 교리를 취하도록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현명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하고 자신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를 경쟁시켜서는 안 된다.

 

3:19 없음.

 

3:20 없음.

 

3:21

사람의 자랑을 금함(고린도 전서 3:21-23)

여기에서 바울은 교사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상술한 내용과 그들이 가지는 사역자에 대한 동등한 관심에 입각해서 권면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21절). 사역자들은 인간인 것을 잊지 말고 하나님에게만 합당한 경외를 바치며 그들에게 바치지 말며 당의 우두머리를 지나친 찬양과 존경으로 추종하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과 성령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자비를 잘 거역한다. 사역은 대단히 유용하고 은혜로운 제도이다. 충성스러운 사역자들은 누구에게나 축복이 된다. 인간의 우매와 약함은 축복을 불행으로 만든다. 그들은 사역자들과 함께 당을 만들수도 있다. 그들을 머리로 삼고 지도자에게 영광을 돌리며 방향도 모르고 따라간다. 이런 불행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겸손한 마음과 인간의 이해의 부족함과 하나님의 지혜를 존중하는 일이다. 사역자들은 서로 경쟁해서는 안 되며 모든 사역자들은 같은 목적으로 같은 주를 섬긴다. 그들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는 다 너희의 것이다." 서로서로가 대립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자신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 때에 바울은 교회 재산의 목록 즉 참다운 신자의 영적 부유함을 열거한다.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다. 여러 종류의 사역자들과 아니 이 세계도 너희의 것이다." 성도가 이 세계의 임자라는 의미가 아니고 이 세계는 성도를 위하여 존재하고 무한한 지혜가 적합한 것같이 이 세계도 그들에게 적합하다. 신령한 축복과 함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 "생명도 너희의 것이다. 천국 생명을 위하여 준비할 시간과 기회를 가지도록 함이다. 사망도 너희의 것이다. 생명을 소유하기 위하여 가야할 십자가의 길이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할 친절한 사자이다. 지금의 것도 너희의 것이다. 이것은 노자를 위함이다. 장래의 것도 너희의 것이다. 순례의 길이 끝날 때 영원히 부유하고 즐겁도록" 함이다. 아래 점을 주목하자.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으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며,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다. 시간과 영원, 이 땅과 천국 생명과 죽음 모두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좋은 것이 부족하지 않도다"(시 84:11).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임을 잊지 말자. 거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기쁘게 그의 명령에 순종하고 기쁘게 그에게 바쳐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모든 것이 우리의 것이 된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좋은 것을 받을 권리도 자격도 없다. 현재에 완전하고 영원히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 그는 하나님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고 사명을 받고 중보자의 직책을 짊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명예를 가지시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누리시도록 모든 것이 신자의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죄많은 세상을 자신에게 화해시키시고 화해된 세상에 풍부한 그의 은혜를 주시는 것이 복음의 총합이며 내용이다.

 

3:22 없음.

 

3:2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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