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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하나님을 의지하다 (스가랴 10:1-4)

몹시도 괴로움을 겪어야 했던 그 백성들에게 굉장히 영광스럽고도 은혜스러운 일들이 이미 앞 장에서 약속된 바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그 모든 일을 하나님께 구하게" 될 것과 모든 행실 속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을 하나님이 바라신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넌지시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적인 우상에게서 번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Ⅰ. 이 예언자는 때를 맞추어,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로써 간구하라고 그들에게 명령했다. 몇 해 동안은 불순한 일기로 인해서 굉장한 기근이 들었지만, 결국 많은 양의 곡식과 포도주를 거두게 되리라는 것을 앞 장 끝부분에서 약속하였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땅은 그 소산을 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땅의 기름진 소산과 수확을 위하여, 하나님께 "하늘의 이슬" 을 구할 도리밖에 없었다(1절). "너희는 주께 비를 구하라," 구름이나 별에게 비를 구하지 말고, 오직 주께만 구하라는 것이다. 호세아 2장 21절에서처럼, "하늘이 땅에 응할 때, 주는 하늘에 응하시기" 때문이다. 때에 알맞은 비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넓으신 자비이며, 아주 긴요할 때는 "늦은 비" 가 온다. 먼저 오는 비는 가을철 파종기에 내리는 비이며, 늦은 비는 곡식의 이삭이 패어 영글 무렵인 3월부터 5월 사이의 봄철에 내리는 비이다. 그런데 만일 어느 한 때라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 땅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어버리고 만다. 왜냐하면, 3월 하순부터 9월까지는 비 한방울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에 살았던 제롬(Jerome)은 6월이나 7월에는 비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비를 유용하게 써야 하는 "바로 그 시기에 곧바로 비가 내리기를 구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기도할 적에, 하나님의 섭리가 인도하시는 바에 대하여 충성스럽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일상적인 방법으로 하시리라고 예상해서는 안 되고, 단지 우리는 적절한 시기에 그의 자비를 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노의 징표로 어느 때는 비를 내리지 않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막연하게 기도를 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돌보신다는 징표로서 비가 내리기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얻으리라. 곧 주께서 환한 구름을 알게 하시리라" (이것은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미 비가 오리라는 징조였던 것이다.) 그것은 (따라서 달리 해석하자면) "하나님께서 비를 부르는 번개를 번뜩이게 하셨기 때문에 일어난 번개의 섬광이었다."

하나님은 넘치도록 많은 "소나기를 그들에게 내리실" 것이다. 그럼으로 해서 "들에 있는 모든 풀포기에까지라도" 비를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한없이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의인이나 악인에게도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은 그들의 선조들이 행한, 우상 섬기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그들에게 알리셨다(2절). 우상은 헛된 것만을 말할 뿐이다. 곤경 가운에 있을 때 그들이 찾아갔었고 그들의 의논 상대자가 되었던 테라빔은 비를 갈구하는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던 것만큼, 그들에게 비를 내리게 하는 일은 더구나 못한다. 그 우상은 그 당시에 그들에게 비를 약속해 주는 체하였으나, 비는 계속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우상의 예언자였던 "복술가들은 거짓을 꾸며대었다" (그들의 환상은 모두가 기만이요 속임수였다). 또한 "그들은 거짓된 꿈을 늘어놓았는데," 그와 같은 일들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들임을 증명하는 대답을 줄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거짓된 계시의 말을 듣는 자들에게 "헛된 위로를 주었던" 것이다. "열방의 허무한 것" 들 중에 그 어떤 것도 "비를 내리게" 할 수 없다(렘 14:22).

그러나 이것이 최악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짓 우상들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하였을 뿐더러, 참되신 하나님의 돌보심도 잃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 안으로 들어간 "양의 무리처럼" 노예 생활을 향하여 "제 갈 길을 가고 말았다." 그들은 뿔뿔이 흩어진 양떼처럼, 또다른 괴로움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들을 지켜주며 보살필 자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을 위하여 제사를 올려야 하는 제사장이라든지, 그들을 다스릴 임금이 없었기 때문이며, 더욱이 "목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방의 우상을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던 사람들은 결국 이방나라로 가서 길을 잃게 되고 말았다.

Ⅲ. 그는 그들이 관여했던 바, 그들을 거스르는 일이나 추켜 세우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손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3절). 다음을 생각해 보자.

1. 그들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시는 하나님께서 과연 언제부터 모든 일을 엇갈려 가게 하시었던가? "무리를 먹이긴 먹이되, 게으르고, 때로 굶기는 모든 목자들에게 내가 노여움을 발하였다(3절). 나는 사악한 방백들과 우상 숭배자들에게 노하였다." 바벨론의 포로 생활은 그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였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부정하고 해악한 무리들 곧 "염소의 무리를 벌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벌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왼편 자리에 앉게 되었으며, 나라 전체가 포로 생활의 고난을 겪었다지만, 그것은 사실 염소의 무리와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벌을 내리셨던 목자들에 불과했다. 그 이외의 사람들에게 대한 괴로움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당한 괴로움은 공정한 형벌이었고,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자애로운 응징이었던 것이다.

2. 사태가 매우 호전되었던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된 전환의 계기를 베풀어 주셨던 때부터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을 찾으시려고 자애스러움을 가지고 주의 무리에게 찾아오셨으며, 그들에게 선한 것을 베푸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마치 전쟁의 준마처럼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므로 자기가 타고 다니는 말처럼 그들을 치장하시고 돌보시고 가꾸시고 사용하셨으며, 또한 자기의 아끼는 준마처럼 그들을 매우 중하고 값지게 여기셨다." 오늘날 우리들을 이처럼 살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가 정하신 바대로 우리는 살게 된다.

Ⅳ.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그들에게 나타남을 보여 주신다(4절). 즉, "모퉁이 돌이 그에게로부터 나왔고 못도 그에게로부터 나왔다."

1. 그들과 겨루어 다툼을 벌였던 모든 권세자들까지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하나로 단결된 대적의 권세들도 모두 "그로부터" 왔다. "권세 잡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권세 잡은 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지시하셨던 바, 이전에 미리 결정해 놓았던 것을 행할 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 권세가 위로부터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과 대적하는 권세는 결코 가지지 못하였을 것이다.

2. 그들을 위하여 사용되었던 모든 능력들도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또 그에게 의지하였던 힘이었다. 나라 전체를 다스리는 권세 잡은 자들의 힘, 곧 집의 "모퉁이 돌" 도 그들에게로서 왔다.

때로 사람들은 왕자를 가리켜 "백성의 모퉁이" 라고 부르기도 하였다(삼상 14:38), 나라를 견고하게 한 못도 그에게로부터 왔는데, 그것은 "단단한 곳에 박힌 못" (사 22:23)이요,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 (스 9:8)이었다. "싸우는 활" 곧 군대의 힘이나 그 손으로 백성의 힘을 쥐고 있는 권세 잡은 자들이나 강제력을 잡고 있는 자들도 역시 그에게로서 왔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눈을 들어 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돌려야만 하며, 그에게로부터 오는 모든 인간에 대한 심판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10:2 없음.

 

10:3 없음.

 

10:4 없음.

 

10:5

복음적인 약속 (스가랴 10:5-12)

이 대목에서는 몇가지 귀중한 언약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데, 그들은 성전이 세워진 훨씬 이후의 유다 백성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내다보고 있는 약속들이었다. 따라서 그것들은 영적인 이스라엘인 복음의 교회와 많은 참된 신앙인을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Ⅰ. 하나님의 돌보심과 임재를 받게 될 것이요, 하나님은 그들을 용납하실 것이다. 이것이 모든 남은 자들의 근거인 것이다. 5절에서는, "주가 그들과 함께 하신다" 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이유를 들어 주시며, 그들의 집을 담당하시고, 그들의 편에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시면 누가 감히 그들을 대적할 것인가? 또다시 6절에서,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긴다" 고 하셨다. 그들의 모든 품위와 열락은 순전히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덕분이다.

그들은 추방되었었고, 그 결과는 비극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버림받게 된 것은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적도 내세울 수 없었다. 단지 진노와 저주가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을 버리지 않는 것같이 되리라" 는 약속이 주어졌던 것이다. 그들이 저버림 당한 원인이 되었던 조상의 죄는 이제 그들에게 거듭하여 찾아 오지 못할 뿐 아니라, 다시는 그들에게 불리하게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다. 하나님은 마치 그들과 불화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완전히 그들과 화목해 주신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하는 자들의 넘어짐은 그 사랑을 연약하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화목하셨다는 그처럼 충분한 확증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 위에다가 그들 자신들도 서로 화해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그러한 화해는 마치 그들이 이전에 버림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손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돌보심 안으로 다시 되돌아온 이후에는, 이전 버림 받음으로 인하여 겪은 상처 자국이 깨끗이 지워질 정도로 그들의 생활 조건이 행복스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돌보심은 본래부터 멀리 떨어져나간 죄인들과 진노의 자녀들이 회개하고 되돌아올 적에 그들에게 나타나게 된다. 그러한 교제는 그들에게 허용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마치 이전에 버림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그들과 더불어 자유를 누리시는 것이다.

1. 그들에게 새로 맺어진 계약은 이전의 계약과 동일한 것이다. 그들의 조상과 맺어진 계약, 즉 본래의 계약에 의한다면, "나는 여호와요, 그들의 하나님이니라" 는 것이었다.

2. 그들에게 허용된 하나님과의 교제도 이전 것과 동일한데, 그것은 "내가 그들의 말을 들을 것이라" 는 것이었다. 그들은 주께 말씀드리기를 기꺼이 여길 것이며, 주께로부터 평화의 말씀을 듣고 확신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헛되이 나를 찾으리라" 고 야곱의 자손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이며, 결코 그처럼 행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Ⅱ.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나 하나님의 평안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였던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을 것이다(5절). 그들은 담대한 마음과 강인한 육체를 지닌 "용사처럼 될 것이며," 활기에 찬 사람과, 용감한 사람, 유능한 사람이 될 것이다. 유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에브라임 사람들도 용사같이" 될 것인데(7절). 그들은 어려운 모험을 무릅쓰고 그 일을 헤쳐나갈 것이다. 용사와 같은 그들은 "싸움에서 대적을 쳐서 짓밟을" 것이다. 마치 집 밖으로 내던져진 흙덩이가 "길거리의 진흙 속에서" 다른 흙덩이에 의해 짓밟히듯이 될 것이다.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들도 싸울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주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이유를 내세워,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를 도우시려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재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노력을 대신하여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도우시기 위하여 우리의 노력을 재촉하시고, 활기 차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야 한다."

그들은 미리 준비할 것이며, 이미 단호한 결의로써 싸움을 벌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 자기들이 반드시 승리자 그 이상 가리라고 확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말을 탄 자들이 당황케(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대적의 기병들은 유대의 보병에 의하여 당황하여 패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선한 싸움을 싸우러 나선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용감하게 대적과 대결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약하고 어리석은 것들을 들어서 지혜롭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때문에," 그들을 대적하려고 "말에 올라탄 자" 들은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과연 언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인가? 과연 그들은 어떻게 그러한 일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처럼 행동할 수 있는가? 그들이 그처럼 되는 것은 오로지 주 안에서, 곧 주의 능력 안에서 가능하다(6절). 말하자면,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할 것이며 요셉의 족속을 구원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강하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며, 의무를 행하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기쁨을 성취케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강건함을 발휘하는 데에 정성을 다해서 참여해야 한다. 모든 일이 이루어질 적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함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노래요 우리의 구원이시다.

Ⅲ. 뿔뿔이 흩어졌던 자들은 모두 한 집단으로 서로 모여들게 될 것이다(6절). 곧, 내가 그들을 그들의 고향 땅에서 살게 하려고, 이방 나라에서 그들을 보낼 것이며, "그들을 돌아 오게 하리라" 고 하셨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옛날에 지녔던 특권을 다시 완전하게 회복하였다는 징표이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 땅을 다시 소유하게 될 것이다. "이방으로 흩어졌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다시 말씀의 교회로 화합하게 되는 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무리" (요 10:10)로 되는 날, 이러한 일이 성취될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서(8절), "내가 그들에게 휘파람 소리를 낼 것이라" 고 하셨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어떤 목자가 피리를 불어 "그 소리에 귀가 익은" 양들을 불러모으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모으리라" 고 하셨던 것이다. 복음의 가르침은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오게 하기 위하여 인간 영혼을 향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휘파람 소리이며, 그의 흩어진 양의 무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음성인 것이다.

" 내가 그들을 모으려는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은 자들은 "암탉이 날개로 병아리를 품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불러모으실 것이다. 이러한 언약은 10절에서 부연된다. 곧 "내가 그들을 다시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리라" 고 말씀하신 것이다. 혹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즉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의 아들이었던 알렉산더가 유대 백성을 앗수르에서부터 빼내어 모으리라고 했던 약속처럼, 이 언약은 애굽왕 톨레미우스 필라델푸스가 12만 명의 유대인을 가나안 땅으로 보내었을 적에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애굽이나 앗수르보다도 더 악한 속박에서 고귀한 영혼들을 불러모음으로써 그 약속은 영적인 의미로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 해방은 "길르앗과 레바논 땅" 의 아름답고 풍성한 초장과도 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기쁨과 영광을 주었다. 심지어 최북단에 있는 레바논이나 동쪽 끝에 놓인 길르앗까지도 모두 그들의 약속된 땅이다.

그러나,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인가? 뿔뿔이 흩어진 백성들이 어떻게 하여 서로 모일 수 있는가? 약속의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이 어떻게 또다시 그리로 갈 수 있는가? 진실로 그러한 어려움은 극복될 수 없는 것같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오는 도상에 있었던 난관을 잘 타개할 수 있었듯이 그렇게 손쉽게 그 땅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는 고초를 겪으며 바다를 건널 것인데," 그것은 마치 바로와 그의 방백들이 쓰라린 고초와 바다의 힘든 곤경에 "맞서서" 그 옛날 홍해를 건넌 것과 마찬가지의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가 그를 보고 도망간" 것처럼(시 114:3) 그가 쳐부술 파도는 "뒤로 물러갈"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요단강이 마른 것처럼, 하나님이 주신 기쁨의 땅으로 가는 이스라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강의 모든 깊은 곳" 이(모든 강이 이전에 그토록 깊었다할지라도) "마를 것이다." "앗수르의 교만" 이 그들의 해방의 길을 막아설 것인가? 그는 "성난 바다의 물결" 을 일으키는 자를 억누르시겠고, "그 물결은 곧 낮아질 것이다." 애굽의 홀이 그것을 방해하는가?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적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모으는 것을 방해하지 못할 정도로 그것은 "없어질 것이다." 복음의 전파로 말미암아 말씀의 교회가 한데 모이는 날에는, 지상과 음부의 모든 강한 권세가 거세게 그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들이 그곳에 있는 것같이 보이리라.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역사하는 거룩한 힘으로 말미암아 그 교회는 힘차게 "거센 방해를 물리치게" 되며, 많은 사람들의 회개와 구원을 힘있게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다가 도망하였고, 요단강도 "주의 임재하심으로 물러갔던" 것이다.

Ⅳ. 그들은 굉장하게 번성하겠고, 세계적인 새 교회는 다시 가득 채워질 것이다(8절). "그들은 이전에 애굽에서 번성한 것같이 번창할 것이며,"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보다 더욱 번성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속하신 자들을 불러모으실 적에는, 다른 사람들도 같이 불러모으게 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눈덩이가 뭉쳐지는 것과도 흡사하게 될 것이다." Crescit eundo - 즉 갈수록 가속적으로 더욱 크게 된다. "내가 그들을 모을 것이며, 그들을 번성케 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현재 적은 무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리스도의 충만하신 분량의 정도에" 이르기까지 계속 자라나는 지체인 것이다. 거기에 또한 "매일같이 모여지는 것" 이 더하여지는 것이다.

1. 그것은 멀리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여백이 없을 정도로 가나안, 심지어는 길르앗과 레바논의 땅까지 가득 채울 것이다(10절). 하나님은 단지 "유다에서만 알려졌던" 것이고 그의 "이름은 오직 이스라엘 안에서만 위대한 이름으로 통했다." 그는 단지 이스라엘 안에서만 자신의 "모습과 심판" 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시대가 올 때는, 이스라엘은 지극히 협소한 곳이 될 것이다. 성전의 장막은 더 넓게 펼쳐져야 했으며, 그 장막의 "끈은 더욱 길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9절에서 "내가 그들을 열방 중에 뿌리리라" 고 하셨다. 그들은 마치 씨가 땅에 흩어짐같이 흩어질 것이나, 묻히기 위함이 아니요 자라나기 위함이며 더 많은 열매를 내기 위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천하 각국으로" 흩어졌다고들 했다(행 2:5). 어떤 자들은 매우 어려워서 흩어졌고,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이주를 갔다. 이스라엘 땅이 그들에게는 너무 황량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이방 나라 출생인들도 종교는 유대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열방 중에 심기워졌던" 것이다(호 2:23). 그러므로, 그것은 복음을 전파하는데 대단히 공헌하게 되었다. 여러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모인 유대인들은 사도행전 8장의 내시나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자기 나라에 복음의 빛을 비추게 되었던 것이다. 이방인의 도시에 있던 유대인의 회당은 애초에 사도들의 피난처가 되었으며 그들이 간 곳은 어디나 사도의 설교를 저장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 중에 흩으셨을" 적에도 이방인은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고 도리어 그들에게 선을 행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을 기억하게 하셨으며, "먼 나라에서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구약에 계시하셨던 대로 그들 가운데서 당신을 깨닫도록 하심으로 인하여 그들은 신약에서 하나님이 계시하던 바처럼 그리스도를 깨닫는데 이미 더 많은 준비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2. 그러한 일은 앞으로의 "세대" 에도 계속될 것이다. 교회는 res unius aetatis - 즉 일시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7절에서처럼 그 안에 있는 씨가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이다." "진실로 그들의 자녀들은 그것을 볼 것이요, 기뻐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동하여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9절).

그리스도께 회개한 자들은 주를 깨닫도록 가르칠 자녀들을 갖게 될 것이며, 또한 그들과 함께 거룩한 땅과 거룩한 길에 들어설 것이다. 바로 그들에게 복음이 제일 먼저 전파되었다고 했다.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들에게 한 것이라" 고 하였다(행 2:39). 그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도록 "열방에 흩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권속들이 결코 땅 위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가 구해 놓은 소유물이 상속자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Ⅴ. 하나님은 그들의 강함이 되시고, 그들의 노래가 될 것이다.

1. 그 안에서 그들은 위로를 받게 될 것이며 넘치는 만족을 누릴 것이다(7절). "포도주를 마심같이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쁨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은 "포도주보다 더 좋은 것" 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용사들처럼" 될 것이며 "그들의 마음은 즐거울 것이다." 우리가 단호히 우리의 영적인 대적들과 싸워서 승리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즐거움에 넘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싸움에서 약해지면 우리의 기쁨은 사라질 것이며, 우리는 사람의 시험에 걸려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즐거울 것이며," 그들은 "용사" 처럼 될 것이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은 그러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의 자녀는 그것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도 또한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신앙의 기쁨을 자녀들에게 때를 따라 알게 하는 것은 그야말로 선한 일이다. 그리하면 일찍부터 주 안에서 기뻐하기를 알게 되었기에,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주께 매어달리리라는 것이다.

2. 그에 의하여, 그들은 그를 섬기는 일에 큰 힘과 너그러운 마음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12절). "내가 그들을 여호와 안에서 견고케 할 것이며," 싸움에서와 마찬가지로 걸어다니거나 일하는데서도 강건케 할 것이다. "자기 백성에게 강건함과 능력을 주시는 자" 는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본성이 타락된 채로 있는 그들에게 영적인 일을 위한 모든 힘과 능력을 더하여 그들을 강건케 하시는 분이시다.

(1) 좀더 분명하게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과연 어떻게 각자의 의무에 활기를 띠고 실행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이다 "나" 여호와는 "너희 의로움이시며," 동시에 "강함이 되시는" 여호와이신 주 메시야 안에서 "너희를 강건하게 할 것이다." 그 강건함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 인데, 또한 그에게서 우리에게로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그가 없이는 결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의 "견고함" 은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그에게 "부여된 것이었다" (시 68:28).

(2) 그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경건함을 그들은 얼마나 선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그들은 그의 이름으로 걷기도 하며, 앉기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건케 하신다면, 우리는 스스로 분발하여야 하며, 신앙 생활의 모든 의무의 길로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해야 하며,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분주하게 활동하여야 하며, 시간을 잃지 말며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한 자들처럼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해야 한다. 따라서 그의 말씀을 우리의 규칙으로 삼고 그의 영광을 우리의 목표로 삼아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서 사명을 받아 해야 한다. 우리에게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언행심사 모든 것은 우리를 강건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여기지 말며, 오직 주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시 130:17, 18 참조).

 

10:6 없음.

 

10:7 없음.

 

10:8 없음.

 

10:9 없음.

 

10:10 없음.

 

10:11 없음.

 

10:1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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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1장
13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2장
12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3장
11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4장
10 스가랴 메튜 헨리 주석, 스가랴 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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