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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고무적 전망 (스가랴 8:1-8)

예언자는 지난 설교에서 그의 청문자들에게 죄에 대한 심한 고발과 진노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들을 아름다운 그들의 나라의 황폐에 대한 음울한 관망 속에 남겨 두었었다. 이것은 그들의 선조의 불순종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절망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로 이끌기로 계획하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그는 그들 앞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비장해 두신 위대한 일들을 설명한다. 이로 인해 그들이 질문을 했던 양심의 문제가 곧 스스로 해결되며, 하나님의 섭리가 그들에게 "금식과 애통을" 호소했던 어떤 때보다도 더 크게 "기쁨과 환희" 에로 그들을 부르신다고 희망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여기서 약속되는 것은,

Ⅰ.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위해 나타나실 것이며, 그녀(예루살렘)의 상황을 지지하고 변호하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1. 그는 시온의 원수들을 보복하실 것이다(2절). "내가 시온을 위하여, 혹은 시온을 질투하였다." 즉, "나는 근래에 진심으로 그녀(시온)의 영예와 이익에 큰 질투심을 가지고 관심해 왔다. 그녀에 대한 큰 진노는(7:12) 이제 그녀의 원수들에게 돌리리라. 나는 이제 그녀를 위해 크게 질투하며, 더 이상 그녀가 당하는 고통을 - 내가 그녀의 분격에 의해 받는 비난을 참을 수 없듯이 - 참을 수 없다." 이것은 전에도 나온 말이다(1:14, 15). 즉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을 치고 있을 때 그들이 느꼈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진노의 권능이 그들을 위해서 역사하시면, 다시금 많은 기대를 가져도 좋다는 것이다. 시온의 죄는 그녀의 죄의 원수였고 그녀에게 가장 많은 재난를 행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영예와 안위에 대한 그의 질투심에서 "그녀의 죄를 도말하실" 것이니, 그후 다른 원수들이 그녀를 상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이 될 것이다.

2. 그는 시온의 궁중에 거할 것이다(3절). "내가 시온에 돌아왔으니, 오랫동안 멀리 서 있는 듯한 후에 내가 다시 이전처럼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라." 이는 그들에게 그의 규례를 통한 그의 임재의 증거와 그의 섭리를 통한 그의 은혜의 본보기를 확증한다.

Ⅱ. 예루살렘에 놀라운 개혁이 있을 것이며, 그 세력 안에서 종교가 다시 거기에 퍼지고 흥왕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에게 배신적으로 대했던 예루살렘이 충성과 정직으로 유명하게 되어, 진리의 성읍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알려지며, 그 거주민은 거짓말하지 않는 자녀라고 일컬어질 것이다. 신실한 성읍이 창기가 되었으나(사 1:21), 이제 다시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오직 그에 대한 예배에 충실한, 신실한 성읍이 될 것이다." 이것은 실현되었다. 왜냐하면 포로 이후 유다인들은 비록 그들 중에 많은 잘못이 있었으나, 결코 우상 숭배의 죄는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그를 소유하고 또 그에 의해 소유되어, "만군의 여호와의 산" 이라고 불려질 것이며, 따라서 우상에서 깨끗하고 하나님에 의해 정화된 "성산" 이 될 것이며, 과거처럼 "멸망산" 이라고 불리지 않을 것이다(왕하 23:13). 하나님의 성읍은 "진리의 성읍" 이 되어야 마땅하며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 되어야 마땅하다.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는 자들은 모든 경건과 정직의 예로써 그들의 고백을 장식하기를 배워야 한다.

Ⅲ. 예루살렘에 백성이 크게 증가할 것이며, 깊은 평정의 징표와 증거가 있게 되리라는 사실이 약속되어 있다. 그것이 "진리의 성읍" 이요, "성산" 이 되었을 때, 그것은 평화스럽고 번성하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밝고 즐겁게 보인다.

1. 너희는 무대를 물러가는 세대를 즐거이 바라볼 수 있으며, 그들이 자연의 일상 과정에서 공평하게 물러간다고 생각하게 되며, 전쟁이나 기근, 혹은 역병에 의해 강제로 밀려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되리라(4절). 살해된 시체로 가득했거나, 황폐하여 버림받았던 "예루살렘 길거리에," 이제 불시적 죽음에 의해 단절되지 있고(그들 자신의 무절제나 하나님의 보복을 통해) 그들의 나날의 평탄한 수명을 충분히 장수한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 가 거할 것이다. 그들은 질병이 아니라 자연적 소멸을 받을 것이며, "그 절기를 만난 알곡의 가리(다발)" 처럼 때가 다 차서 그들의 무덤으로 갈 것이다. 그들은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던" 야곱처럼 "모든 사람이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그를 지탱할 "지팡이를 잡을 것이다" (히 11:21). 늙은 나이는 지팡이를 필요로 하며, 그것을 사용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손에 잡는 지팡이보다도 더 나은 지지물이며 마음의 힘이 될 하나님의 은총을 갖추어야 한다. 백발이 된 머리카락은 본인에게 영광의 면류관이듯이, 그들이 사는 곳에서도 그러하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 속에 노인들이 많은 것은 한 성읍에 은혜스러운 일이 된다. 그것은 공기의 쾌적함 뿐만 아니라, 미덕의 우세, 연한을 그 중도에서 끊어 버리는 저 많은 악덕의 억제와 추방의 징표가 된다. 그것은 기후가 알맞다는 것 뿐 아니라 백성도 그렇다는 사실의 징표이다.

2. 너희는 기쁨을 가지고 그들의 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세대를 볼 수 있다(5절). "그 성읍 거리에 동남과 동녀가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 이는 다음을 암시한다.

(1) 그들은 많은 자녀들의 축복을 받으리라. 그들의 가족은 증가하고 번식할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의 초기 산물이었던 그 성읍을 채울것이다(창 1:28). 화살통에 그 화살들(자녀)로 가득한 사람에게 복이 있으며, 또 그 나라가 복되도다! 그들은 "동남과 동녀" 를 가질 것이니, 그들 안에서 가족들은 결합되어, 또 하나의 세대가 일어나게 되리라.

(2) 그들의 자녀들은 건강하고, 강하며 활동적일 것이다. 그들의 소년들과 소녀들은 병상에 눕거나, 궁지에서 파리해 있지 않고, (그 부모들에게 즐거운 광경인) 튼튼하고 활기있을 것이며, 거리에서 놀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즐거이 노는 나이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 일을 허락하기를 아까와하지 말자. 그것은 그들에게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으며 해는 끼치지 않는다. "악한 날들" 이 충분히 올 것이며, "그 안에서 즐거움은 없다" 고 말하며 그 일에 대한 숙고에서 그들의 모든 시간을 노는 데 쓰지 않고 창조주를 기억하는데 관심하는 "해(年)들" 이 올 것이다.

(3) 그들은 그들의 모든 입들을 채우기에 충분한 다량의 음식을 가질 것이다. 기근의 때는 우리는 그 자녀들이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는 것을 발견한다(애 2:11, 12). 만일 그들이 거리에서 장난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아무 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좋은 표징이다.

(4) 그들은 전쟁의 놀라움에 두려워 하지 않고, 완벽한 안전을 즐길 것이다. 침입자의 "침입이 없을" 것이며 황폐케 하는 자들의 "출현이나 거리에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 것이다(시 144:14). 왜냐하면, 거리에서 노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것은 거기 걱정이나 두려움이 별로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원수가 그들의 발걸음을 면밀히 탐색하여 그들이 거리에 다닐 수 없었던 때가 있었으나(애 4:18), 이제는 그들이 "거리에서 장난하며" 악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5) 그들은 그들 중에 사랑과 평화를 소유하리라. 동남들과 동녀들은, 가끔 파당과 패거리들로 나누어진 성읍들에서 부모들이 서로 개탄하는 것에 동화하여 그들처럼 거리에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순진하고 사랑스럽게 "거리에서 장난할 것이며," 서로 물어 뜯지 않고 즐겁게 놀 것이다.

(6) 사용되는 운동과 놀이는 모두 해롭지 않고 싸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소년들과 소녀들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보아서 마땅한 놀이를 할 것이며, 곤경을 추구하는 놀이, 어리석은 놀이, 음탕한 놀이를 하지 않으리니, 그것은 여호와의 산이요, 곧 "성산" 이기 때문이며, 오히려 그들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는 정직하고 얌전한 오락을 즐길 것이다.

(7) 어린이다운 젊음의 운동들은 아이들 때와 소년시절에 국한될 것이다. "소년들과 소녀들이 거리에서 노는 것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일과 사업으로 시간을 채워야 할 어른들이 거기서 노는 것을 보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다.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질문을 서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니(마 11:16, 17),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거기서 "온 종일 놀고 섰는" 것은 전혀 합당하지 않다(마 20:3).

Ⅳ. 흩어진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이 살던 모든 지역으로부터 다시 올 것이다(7절).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하여 내리라. 나는 그들을 쫓겨간 바벨론이나 애굽, 혹은 다른 나라들에서 잃어버려진 데로부터 구하여 내리라." 그들은 그 가운데 거주하는 나라들에 의해 붙잡히거나 그들과 연합하지 않으리라. 나는 "그들을 구할" 것이며, 그들을 구별할 것이며, 그들을 다시 그들 자신의 나라로 데려올 것이다. 그들의 땅의 번영에 의해 나는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며, 동시에 그들에게 돌아올 마음이 내키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며, 비록 그들이 많은 다른 이유로 시골에 거하는 것이 더 적당하였으나, 그것이 거룩한 성읍이므로 뽑혀서 거기 거하게 될 것이다. 그에 따라서 우리는 "무릇 예루살렘에 거하기를 자원하는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느 11:2).

Ⅴ.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언약을 새롭게 하시려 했으며, 그들에게 신실하시고 그들이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만드셨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이 이 모든 언약들의 기초요 면류관이며, 모든 행복을 포함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이익을 확보하고 증진시킬 것이다. 혹자는 전자가 언약에 대한 하나님의 역할을 뜻하며(그는 "진실로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그들에 대한 모든 은혜의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후자는 언약에 대한 인간의 역할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 그들은 "정의에" 있어서 그의 백성이 될 것이며, 그들은 의로운 백성이 되어 "의의 열매" 를 풍성히 맺으며, 그들이 행하였듯이 그들의 하나님을 배신적으로 불의하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호 2:19, 20 참조).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약속하였듯이, 긍휼의 길에서 그들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 약속들은 포로기와 그리스도의 때 사이의 여러 시대 동안 유대 교회의 흥왕 상태 속에서 성취되었다. 그들은 복음의 교회에서 이루어진 더 완성된 성취를 가질 것이었으니, 위로부터 오는 "하늘의 예루살렘" 은 자유롭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 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의 완전한 성취는 미래 상태에 존재할 것이다.

이 모든 귀한 약속들이 여기서 재가 되며, 하나님의 백성의 의심은 다음과 같은 질문과 함께 침묵된다(6절). "이 일이 그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예루살렘이 이처럼 수리되며 회복되는 것이 너에게 가망없이 보이고,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에게도 불가능한가?" "이 백성의 남은 자" 는(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오직 남은 자일 뿐이다) 수가 적고 약하여서 이 모든 것이 특히 "이 날들에" 즉 이 어려운 날들, 이 구름이 가득한 어두운 날들에 있어서 실현되기엔 너무 좋은 소식들이라고 생각했다. 시대가 얼마나 악한가를 생각하면, 그들이 예언자들의 말처럼 선하게 되리라는 것은 매우 어려워 보이고,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일들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눈에도 그렇게 보여야 하는가?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를" 때, 그도 역시 그렇고, 우리가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자신에게 크게 잘못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사람들에게는 이 일이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과는 아주 다르다.

 

8: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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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푸실 은혜 (스가랴 8:9-17)

하나님은 예언자에 의해 여기서 그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위해 비축하셨던 긍휼에 대해 더욱 확신을 제시한다. 여기, 이전에 그들의 확신을 위해 있었듯이 그들의 위로를 위한 말씀이 있다. 이 대목은 그들이 지금 짓눌려 있는 환난들과 관계되는 강한 격려를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을 살필 수 있다.

Ⅰ. 이 격려가 해당되는 주인공들. 그들은 예언자들에 의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신실하게 성전의 건축에 지원했던 자들이다(9절).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그 손은 하나님을 위한 일에 분주하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때에 들으라. 이전에 그들에게 보내졌던 저 예언자들의 말에 너희 선조들이 그랬듯이, 그 말에 청종치 않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너희는 그 약속의 위로를 취할 수 있다. 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들은 계율을 지키라. 즉 그것을 완성시키라.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그것을 계속해야 하며, 얼마동안 하늘의 환상에 순종하여 그 일을 열심히 너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 귀한 약속과 함께 그 손이 강하게 되어야 하며, 그 마음이 위로받아야 할 자들이다. 너희에게 이 위로의 말씀이 보내졌다." 저들, 그리고 저들만이 하나님을 위해 기용되었고, 그에 의해 격려될 것이 기대된다. 의무의 경작에 그들의 손을 대는 자들은 긍휼의 약속으로 그 손이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잘못을 피하는 자들은 저주의 상속을 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변화시켜 축복이 되게 한다.

Ⅱ. 그들이 이제까지 그 아래서 괴로워하던 낙담들이 무엇이었는가?(10절)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에게 부여하시려고 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그들을 더 기이하게 보이게 했고, 그들의 위로에 더 흐뭇하게 했던 그 축복에 대한 장식으로서 언급되었다. 그 시대가 오랫동안 매우 나빴었고, 재난과 환난이 매우 많았고 컸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1. 무역이 종식되었다. 할 일이 없었고, 따라서 얻을 것도 없었다. 개혁의 "이 날들이" 시작되기 전에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다." 땅의 소산은(비록 그것이 오랫동안 묵혀져서 더 비옥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빈약하여서, 농부는 그의 곡식을 거둘 추수꾼을 고용할 기회와 그것을 집으로 운반할 무리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니, 가진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인들은 매매할 상품들이 없어서, 사람들이나 짐승들을 고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리하여 그 노동으로 먹고 사는 가난한 백성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을 위한 양식을 구할 길이 없었다.

2. 여행이 위험하여, 바다와 땅에서의 모든 상업이 단절되었다. 아니, 아무도 해외로 그들의 친구들을 방문하러 나갈 수도 없었으니, "해받음으로 인하여 출입이 평안치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마리아인들과 암몬인들, 그리고 그들의 다른 악한 이웃들은 작은 패거리로 그들에게 침입하여, 손댈 수 있는 모든 것을 채갔다. 도로는 강도로 가득했고, 도시와 시골에도 집도둑들이 가득했다. 그리하여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 재물도 집 안과 집 밖에서 안전하지 못했다.

3. 우정이나 좋은 이웃이 그들에게 없었다.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라." 이 일에는 큰 죄가 작용하고 있었다. 이 전쟁과 분쟁이 인간의 정욕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이다. 그러나 그 안에 또한 큰 불행이 작용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 안에서 그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에 적당한 보복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에 대한 "악한 영" 을 가지고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악한 영을 보내사 서로 괴롭히도록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던져 버리는 자는 이웃 사랑의 위로를 상실한다.

Ⅲ. 그들이 이제 막 하려고 하는 선행을 진행하기 위해, 그리고 아직 그들이 잘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기 위해 어떤 격려가 있는가를 보자. "이리하여 너희는 괴롭힘과 상함을 당해 왔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를 향한 길을 바꾸시리라(11절). 이제 너희가 의무로 돌이키니 하나님께서도 너희를 상하게 하셨던 날수에 따라 너희를 위로하리라. 썰물이 다시 넘치리라."

1.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변론을 계속하지 않으실 것이다. "내가 그들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잘 대하시냐 못대하시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그가 되도록 만드신 그대로 우리에게 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전 날들처럼 하나님에게 거역하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이전 날들처럼 우리에게 거역하시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싸우는 자들은 완고한 자들"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은 모든 선한 일들을 풍부하게 경험할 것이다(12절). 뿌려진 "씨앗은 번식할 것이며" 큰 수확을 거둘 것이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리니," 이는 마음의 기쁨이 될 것이요, "땅이" 산물을 내리니, 이는 마음을 강건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필요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장식과 기쁨을 위해서도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되리라.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라." 그것 없이는 땅이 수확을 내지 못한다. 이 사실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그들이 그분에게 의존해야 함을 끊임없이 암시해 준다. "곡식을 남기지 않는 폭우" 라는 말이 있으나(잠 28:3), 여기서는 "부드러운 이슬이" 땅을 적셔 "추수꾼에게 씨앗과 먹는 자에게 식량을" 주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그들은 사람들이 돌아 볼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남은 자, 잔여자" 로서 매우 적은 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므로, 그는 그들에게 알맞은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도록 보살피실 것이다. 이는 조금 전에 이 예언자의 동료가 말한 것을 확인해 준다(학 2:16, 19).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은 많은 소유물을 가지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3. 그들은 이웃에게서 그들의 신용을 회복할 것이다(13절). "너희는 이방 가운데서 저주거리가 되었었다." 모든 사람이 그들을 비방하고 저주했으며, 욕을 퍼붓고, 그들이 당하던 큰 치욕을 이유로 그들에게 재앙을 기원했다. 혹자는 그들이 저주받은 자의 모형이어서, 만일 사람이 그의 원수에게 가장 심한 저주를 할라치면 "신이 너를 유다인처럼 만들리라" 하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라. 너희의 황폐와 분산이 너희의 멸시에 끼쳤던 것만큼, 너희의 회복은 너희의 영예를 위하여 빛나게 될 것이다. 너희는 욕먹고 짓밟힌 만큼 칭찬받고 존경받을 것이며, 멸시받고 버림받은 만큼 보호받고 사랑받을 것이다." 섭리가 그들에게 미소짓느냐 얼굴을 찌푸리느냐에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이웃에게 미소짓거나 얼굴을 찌푸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것으로 삼으사 명백히 축복하여, 호의를 보이시고 영예를 입히시는 자들은 우리도 역시 존경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호와의 축복받은 자는 땅의 축복을 받을 자요, 우리도 그렇게 여겨야 한다.

여기서 이것이 이스라엘과 유다에 약속되었다. 왜냐하면 열 지파의 많은 사람들이 두 지파와 함께 포로 생활에서 돌아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에 왔던 자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 매우 많은 사람들이 후에 그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사태가 이렇게 바뀌는 것을 보았던 때문이다.

4.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선을 행하시기로 결심할 것이다(14,15절). 그들의 모든 위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가졌던 사랑의 생각으로부터 기인된다(렘 29:11). 이 약속들을 이전의 위협들과 비교해 보라.

(1) 그들이 "죄로 그를 격분시켜" 분노를 발하게 하였을 때, 그는 "그들을 징벌하리라" 고 말했고, 또 그렇게 하셨다. 그들에게 멸망의 심판을 가져오는 것이 그의 선포된 의도였으며, 그들이 그에 대한 반역을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들에 대한 경고를 돌이키지 않고, 율법의 조문이 시행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벌하시는 것은 결코 급작스럽고 성급한 결정이 아니라, 항상 생각의 산물이며, 그 하나님의 뜻 쪽에는 의논이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만일 죄인이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돌이키시지 않을 것이다.

(2) 이제 그들이 봉사로 그를 기쁘게 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선을 행하리라" 고 말했다. 그러면 그는 그가 위협에 있어서처럼 그 약속에 진실하지 않을 것인가? 의심없이 그는 진실하리라.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으니," 너희가 예언자들이 하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생각들 역시 이루어질 것이다.

Ⅳ. 그들이 이 격려를 활용할 방도를 보자.

1. 그들로 하여금 이 약속들이 그들에게 주는 위로를 취하게 하라. "너희는 두려워 말지니라" (15절).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지어다" (9절). 함께(13절) "두려워 말지니라. 손을 견고히 할지니라."

(1) 그들이 일에서 곤란들을 겪는다하여 그 일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 또 그 일이 계속 어렵게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가 잘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일이 그들을 일으켜 활력과 원기를 가지고 나아가게 하라.

(2) 그들이 원수에게 노출된 위험이 그들을 두렵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자기 편에 두어 자기들을 위해 선을 행하시도록 하는 자들은 "인간이 그들을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든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 그들로 하여금 저 약속들이 그들로부터 요청하는 의무를 행하게 하라(16,17절). 이전 예언자들이 위협된 진노를 고려하여 그들의 선조들에게 재촉했던 동일한 의무들을(7:9, 10) - 이 예언자는 약속된 긍휼을 고려하여 - 그들에게 재촉한다.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방식과 시기에 너희를 위해 행하실 것을 행하시리니,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되, 너희가 의무를 양심적으로 이행한다는 조건에 근거하여 그리하라.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이것은 계약에서 너희가 지킬 역할이다. 이들은 너희가 완수하고 성취하며 지켜야 할 것이다. 너희의 문에 빗장을 지르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의 조류가 멈추지 않게 된다."

(1) "너희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말고 항상 너희가 생각하는 대로 사리가 그런 대로, 너의 지식이 미치는 대로 말해야 한다.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라. 곧 매매할 때나 일상 담화시에 거짓말처럼 보이는 모든 말을 두려워하라." 이 훈계를 사도가 인용하며(엡 4:25), 이유를 이렇게 뒷받침한다.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 공공의 정의를 집행하도록 위임된 자들은 아무도 그것에 의해 그릇되지 않도록 주의할 뿐만 아니라, 피해입은 자들이 그것에 의해 시정되도록 주의해야 한다.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라." 성문에 앉은 재판관들로 하여금 모든 재판 진행에 있어서 진리와 화평의 두 가지를 관여하도록 하라. 그들로 하여금 정의를 수행하고, 불화를 조정하고 귀찮은 청원을 이끌 수 있도록 주의시키라. 그것은 평화를 위해, 불화한 자들을 화목하게 하는 진리의 재판이며, 진리와 일치되며, 그 이상을 나아가지 않는 평화의 재판이 되어야 한다.

(3) 아무런 이유없이 그의 이웃에게 원한을 품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가 7장 10절에서 살핀 것과 동일하다. 우리는 악을 행하는 데로부터 우리의 손을 지켜야 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살펴 심중에 우리의 이웃에게 "악을 도모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잠 3:29). 상해와 악심은 생각 속에서 즉 그 배태에서부터 박멸되어야 한다.

(4) 큰 경이가 맹세에 대해 표해져야 하며, 그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거짓 맹세를 결코 하지 말라. 아니,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즉 그것을 증오하고, 두려워하고, 그것에서 멀리 떨어지라. 다른 사람에게 맹세를 부과하여, 그들로 하여금 거짓 맹세를 하도록 하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너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거짓 맹세하도록 하고, 너에게 친절을 베풀기 위해 거짓 맹세하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모든 타락하고 사악한 행실들에 대해 매우 충분한 이유가 부가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임이라. 따라서 하나님께서 너희의 친구가 되시기를 기대한다면 너희는 그들을 미워해야만 한다."

여기서 금지된 이 일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 것들" 가운데서 발견된다(잠 6:16-19).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에 대해 진노하시며, 그것이 우리에게 위험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그것을 미워하시며, 그러므로 그것이 우리에게 나쁘게 되고 매우 배은망덕한 것이기 때문에 죄를 금해야 한다.

 

8:10 없음.

 

8:11 없음.

 

8:12 없음.

 

8:13 없음.

 

8:14 없음.

 

8:15 없음.

 

8:16 없음.

 

8:17 없음.

 

8:18

여호와의 날 (스가랴 8:18-23)

이 대목은 열심히 성전을 건축하는 경건한 유다인들에 대해 격려를 더해 주는 두 가지 귀한 약속을 포함한다.

Ⅰ. 그들의 금식에 행복한 종말이 올 것이며, 더 이상 금식의 기회가 없으며, 감사의 날들로 전환되리라는 것이다(19절). 이는 그들의 금식에 관한 물음에 대한 직접적 대답이다(7:3). 위선 중에 금식했던 자들은 앞 장에서 그들의 운명을 맞았으나,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그의 얼굴을 구했던 자들은 여기서 다가 오는 행복한 시기를 크게 차지하게 될 위로의 확신을 가진다. 그들이 종교적으로 지켰던 네 번의 "연례 금식" 은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될 것이다." 환난의 시대 이후에 기쁨의 시대가 교회에 올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애통이 한밤 이상 계속되며, 기쁨이 다음날 아침엔 오지 않지만, 마침내는 기쁨을 가져올 아침이 올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긍휼의 길로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는 기쁨과 감사로 그를 맞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긍휼로 바꾸실 때, 우리는 금식을 절기(잔치)로 바꿔야 하며, 이렇게 하여 "여호와를 따를" 것이다. 그리고 시온과 함께 "눈물로 씨뿌리는 자는 그녀와 함께 기쁨으로 거두리라." 그녀(시온)의 엄숙한 금식의 제약에 계속 굴종한 자들은 그들이 올 때 그녀의 유쾌한 절기의 승리에 참여할 것이다(사 66:10). 이 약속으로부터 이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실과 화평을 사랑하라. 너희의 모든 행위에 있어서 신실하고 정직하며, 그렇게 하는 것을 너희의 기쁨으로 삼을 것이니, 비록 그것에 의해 너희가 다른 사람이 취하는 부정직한 이득은 얻지 못하더라도 그리하라. 그리고, 너희의 속에 거하는 만큼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게 살며, 자비를 베풀 때 최선을 다하라. 하나님의 진리가 너희의 머리 속을 지배하도록 하며, 하나님의 화평이 너희의 마음속을 지배하게 하라."

Ⅱ. 많은 이방인들의 개종에 의해 교회에 수적 증가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20-23절). 이는 유다 교회의 후기에 주변의 모든 나라들로부터 온 많은 개종자들이 있었을 때에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는데, 그들 중 몇몇은 매우 멀리서 매년마다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 이는 그 성읍의 웅장과 부요를 크게 더해 주었다. 비록 지금은 단지 그 폐허를 살필 수밖에 없으나, 우리의 구세주 시대 이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귀중한 역할에 기여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신앙으로 개종할 때 더욱 완전하게 성취될 것이었고, 그들과 유다인 신도들의 한 큰 몸으로서의 연합은, 머리되신 그리스도 아래, "예언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된 신비" 였다(롬 16:26). 그리고 이에 대해 무엇보다 그것을 기이하게 만든 것은 그것이 성취되었을 때 유다인들에게 큰 놀라움이며 걸림돌이었다는 사실이다. 다음을 살피자.

1. 교회에 첨가될 그들은 누구인가.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 (20절), 쉽게 속아 넘어 갈 수 있는 무식한 소수의 촌민들, 혹은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 몇몇 게으른 백성들 뿐만 아니라, 지적이며 호기심 많은 시민들, 사업인과 세상에 익숙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 (22절) 그리고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들" (23절)이 올 것이다. 그들은 인간적 설득에 의해서나(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으므로), 외적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왜냐하면 그들은 강대한 나라들로서, 만일 공격을 당한다 해도 그들의 기초를 지킬 수 있으므로), 순전히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의 효과적인 역사에 의해 교회로 인도된다는 것이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역에 그의 남은 자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고 장자들의 교회의 총회에서는 "각 나라와 각 족속에서" 나온 자들이 발견될 것이다(계 7:9)

2. 그들이 어떻게 교회에 들어오는가가 묘사된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러" 올 것이다(21절).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개종이 뜻하는 주요 문제임을 보이려고, 되풀이된다(22절).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러 오리라."

그들이 희생 제물을 드린다는 말은 없다. 그 까닭은 성문의 개종자들로부터는 그런 것이 기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들어올 때는 희생과 제물이 완전히 폐지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가 하나님께로의 개종자며 교회의 구성원들로 여겨지는지를 보라.



(1)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를 찾는" 자들, 곧 "그들의 조물주 하나님을" 찾고, 그의 은혜를 갈망하며, 참으로 그의 마음과 뜻을 알고자 하며 진지하게 그의 영예와 영광에 헌신하는 자들이었다. "이는 그를 찾는 자들의 세대이다."

(2)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기도하는(구하는) 자들" 이다 - 기도의 의무를 양심대로 행하며 그것 없이는 모든 세계를 주어도 감히 살 수 없고, 살려고 하지 않는 자들 - 기도에 의해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에 대한 그들의 의존을 고백하고, 그와의 교제를 유지하고 그로부터 긍휼과 은총을 받는 자들이다.

(3) 그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계시와 제도에 눈을 돌리는 자들이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 그의 말씀이 있는 곳, 그의 성전이 있는 곳, 그리스도와 그의 중재의 모형, 모든 신실한 예배자들이 믿음을 가질 "예루살렘에서" 이를 행함으로써 의미있게 된다.

3. 그들이 하나 같이 교회에 들어올 것이며, 서로 개종을 열심히 북돋울 것이다(21절). 이전에 그들이 매년 절기 때마다 자기의 각 고장으로부터 예배하러 올라왔을 때처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리라."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속히 가서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1)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된 자들은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어 그와 교제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리하여 안드레는 베드로를, 빌립은 나다나엘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했다. 참된 은총은 독점을 미워한다.

(2) 그리스도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절실히 감지하고, 그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감지한 자들은 지체없이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재촉하여 그에게 나아가게 할 것이다. "우리가 속히 가서 은혜를 구하자. 우리가 탄원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과 우리 영혼의 생명을 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체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즉각적 문제에 있어서 지체는 위험한 것이다."

(3)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는 성도의 교제에 의해 큰 도움을 받고 향상된다는 사실. "동류와 함께 하여(시 55:14), 무리를 동행하여(시 42:4), 하나님의 집에" 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그렇게 하기 위해 서로 빨리 갈 것을 재촉하고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하는 자들에게 이것은 매우 유용하다. 우리는 "갑시다" (시 122:1)하는 말을 들을 때 기뻐해야 한다. 쇠가 쇠를 날카롭게 하듯이, 선한 사람들은 선한 일에 있어서 서로 그 양태와 정신을 날카롭게 할 수 있다.

(4) 선한 일을 하도록 남을 격려하는 자들은 낙심하거나, 피곤하거나 물러서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갑시다" 라고 말하는 자는 "나도 갈 겁니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남들로 좋은 일을 하게 만들 때, 언제나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행하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입에서 나온 말로 심판될 것이다. "너희는 가고, 나는 집에 머물겠다" 가 아니라, "너희는 가고, 나도 너희와 함께 갈 것이다." "열렬한 자선의 독특한 유형(펨블씨의 말에 의하면)은 아무도 남들을 뒤에 남겨놓지 않으며, 아무도 앞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4. 그들이 어떤 권고에 근거하여 교회에 연합할 것인가?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를 위해(23절),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열 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고" 자기들을 추방하지 말고 그와 함께 있도록 해달라고 애걸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즉 하나님의 선민의 하나로서, 따라서 그들이 누릴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큰 영예를 암시한다. 그들 모두가 손으로 그를 잡거나, 팔로 그를 안을 수는 없고, 그의 옷을 잡으려고 열망하며,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당신과 함께 가려 한다" 고 말하며, 그의 옷자락에 닿으려고 다가 온다. 복음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고(사도들이 이 민족에 속했으므로) 그들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전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성 바울을 "하나님의 사자" 로 환영하고, 자기들을 그와 함께 그리스도에게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을 때, 바로 그들이 그 옷자락을 잡았던 유대인이었다. 이와 같이 그 헬라인들은 빌립의 옷을 잡고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요 12:21)라고 말하였다. 성도들의 특권은 그들이 하나님을 그들과 함께 계시도록 하며, 그들 중에 두는 것이다 - 그를 알고, 경외하고 예배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의 총애와 은혜스러운 현존을 경험하며, 이는 우리를 그들과의 교제에 초청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것은 좋는 일이며, "여호와와 연합하는" 자들은 "그의 제자들과 연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그의 백성을 우리의 백성으로 삼으며, 그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

 

8:19 없음.

 

8:20 없음.

 

8:21 없음.

 

8:22 없음.

 

8:2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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