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성전의 영광 약속 (학개 2:1-9)
Ⅰ. 먼저 이 소식이 전해진 날짜를 보자(1절). 그것은 7월 21일이었다. 건축자들이 공사를 약 일개월 간 했을 때였다. 하나님의 사업에 성실한 자들은 그 일에 전진하라는 새로운 격려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것이다. 수레 바퀴를 움직이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거기에 기름을 치실 것이다.
Ⅱ. 이 소식의 방향은 어디인가?(2절)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라." 즉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한" 바로 그 사람들(1:12), 하나님이 그 마음을 분발시키셨던 바로 그들(1:14), 그리고 위로의 말씀을 받은 바로 그들에게이다.
Ⅲ. 그 소식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들을 의기소침케 했던 것, 그것은 그 기초를 놓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그들에게 방해거리였다-그들이 솔로몬이 세웠던 그런 화려한 성전을 지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3절). 그 칫수를 정하여 놓았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은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스 3:12). 이제 솔로몬 성전이 무너진 지 70년이 지났으므로, 그들 중에는 솔로몬 성전을 목격하고 그 모습을 기억하는 자들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어떤 자는 그 성전에 입혀진 황금을 추억했을 것이고, 또 어떤 자는 보석과 현관과 기둥들을 기억했을 것이다-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 어디 있는가? 노인들은 이전 시대의 찬란했던 업적을 자꾸만 들추어 냄으로써, 현시대인들의 사업을 방해하는 잘못을 범하는 수가 있다. "예전이 지금보다 낫다는 말을 하지 말지니라" (전 7:10). 오직 예전에도 나쁜 점이 있었고, 지금에도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니, 그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라.
외형적 초라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을 계속하라는 격려가 왔다(4절). "그러나 지금," 이 집이 이전 것만 못해 보이지만, "스룹바벨아, 굳세어라. 여호수아야 굳세어라." 지도자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만큼 잘 할 수는 없는 때라도,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은 잘 해야 한다.
이 같은 격려의 근거가 있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두려워 말라" (5절). 우리에게 같이 계신 하나님은 "만군의 주님" 이시니, 우리의 모든 두려움을 무찌르시기에 넉넉하시다. 유대인들에게는 저들을 치려 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만군의 주님이 함께 계셨다. "그가 채찍으로 저들의 범죄를 징책하시나," 그의 신실성은 결코 좌절되지 아니한다. 그들로 바벨론에게서 나올 마음을 먹게 만드신 이는 성령이시다(스 1:5). 그리고 그 성령이 지금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주신 것이다(1:14).
멀지않아 그들에게 메시야가 있게 되리라. "오실 자" 가 오시리라(6,7절). 인자(人子)가 오실 때, 땅에서 믿는 자(믿음)를 보게 하자. 그가 오실 때는 총괄적인 충격이 먼저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여기에 나와 있다(6절).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자기 나라를 세우시는 일에 적용된다. 하나님은 자기 교회를 예전에 애굽에서 구해 내실 때 하셨던 일을 다시 한 번 그 교회를 위해 행하시리라. 그는 시내 산에서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리스도의 탄생시에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리라. 헤롯왕과 모든 "예루살렘 사람이 떨었다" 고 했다(마 2:3). 그리고 그는 "많은 자들을 넘어뜨리며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오셨다. 그의 나라의 건립은 열국들에게 충격을 준다. 열국들의 요동은 때로 교회의 건립과 흔들릴 수 없는 것을 세우기 위해서 생겨난다.
그들이 지금 짓고 있는 그 집은 솔로몬의 성전이 가졌던 것보다 뛰어난 영광을 가지게 되리라 했다. 그것을 영광으로 채우는 것은 하나님만의 대권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내용이 있는 것이니, 결코 헛 것이 아니다. 모세의 초막과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이 그것들을 점유하셨을 때 영광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 집(성전)은 그와는 다른 성질의 영광으로 충만해지리라. 이 집이 솔로몬의 성전처럼 금은으로 장식되지 못했다 해서 염려하지 말게 하라(8절). 이 집에는 금붙이가 별로 없지만 솔로몬의 성전보다 더 큰 영광을 가지게 될 것이니, 그것으로 만족해하라(9절). "이 나중 전의 영광이 이전 전의 영광보다 더하리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거기에서 봉헌되며, 12살 때 거기에 참례하고, 나중에는 거기에서 설교하고 기적을 행하며, 장사꾼들을 쫓아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메시야가 오시기까지는 그 성전이 서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파괴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렸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주 그리스도이시며, "오실 분이 그분" 이며, "다른 자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이 전에는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이 없었다는 점이 "이 나중 전의 영광" 이다. 교회의 순결성과 하나님의 의식에의 철저한 봉행이야말로 외형적 찬란보다 더 큰 영광이다. 그리스도 이후에는, 이 생명의 말씀, 복음이 사도들을 통해서 거기에서 전해졌다(행 5:20). 그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날마다 설교했다(행 5:42).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계시니," 그가 거하는 마음, 곧 산 성전은 솔로몬의 성전보다 그 영광이 더하다. 그 영광은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성전이 있을 때의 유대인들은 너무나 많은 곤란을 지냈으므로, 이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신자들에게 내려 주시는 영적 평화에서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요 14:27). 하나님이 "이 곳에 평화를 주시리라." 그는 그의 아들을 평화로 주실 것이다(엡 2:14).
격려와 위로의 설교 (학개 2:10-19)
이 설교는 앞의 설교가 있은 지 두 달 후에 있었다. 사람들이 이제는 성전 건축에 열을 다하고 있었다.
Ⅰ. 그들 중에는 부정한 마음과 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선한 사업을 망치는 자들이 있음을 하나님은 보셨다. 그래서 그 일에 임하는 모든 사람은 손을 정결케 하라는 경고가 내렸다. 신령한 용도는 의식법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에게 신성한 의식(儀式)으로서만 있을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의의 교훈" 이 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예언자에게 그 일에 대하여 제사장들에게 물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11절). 학개 자신도 제사장이었지만, "율법에 관해서는 제사장에게 물어야" 한다. 하나님의 규례를 해설하고, 그 준행을 위한 일반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저들의 의무였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법칙은, 자기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싼 사람이 그 옷자락을 다른 곳에다 접촉케 함으로써 그 거룩성을 전가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12절). 그러나 시체로 인해서 의식법상 부정해진 자는 다른 것을 만지면 그것도 부정해진다는 것이다. 그 율법은 명시되어 있었다(민 19:22). 이 두 율법의 요체는 더러움은 성결함보다 더 쉽게 옮겨진다는 사실이다. 그 율법이 여기에서 적용되었다(14절).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렇고, 이 나라가 그러니라."
저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이 제단에 드린 희생 제물이 자기들을 거룩하게 해 준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성전 건축을 안해도 죄가 안될 것이라고 구실을 붙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렇지 않다. 너희의 거룩한 고기와 제단이 너희의 음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절대로 거룩케 할 수 없다. 따라서 너희는 세속의 연락뿐 아니라 희생 제물로도, 하나님의 성전을 멸시한 부정을 막을 수 없느니라." 관능적이고 부도덕하면, 성전 건립에 열중하더라도, 성전이 지어지는 동안 아무리 값비싼 제물을 바치더라도, 그것이 저들의 음식과 음료수를 성결케 하지 못한다. 마음과 생활의 부정함은 저들의 손과 제물까지도 부정하고 가증한 것으로 만든다.
Ⅱ. 격려와 위로의 말씀이 있다. 저들의 마음이 바르고, 눈이 한 곳을 본다면, 하나님은 기근 심판을 제거하시고, 큰 풍년을 되찾게 해 주실 것이다. 그들은 6월 24일부터 재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다(1:15). 이제 9월 2일이 되자 "성전에 돌을 쌓기" 시작했다. 이 날이 오기 전에는 조용히 지냈다. 이제 성전이 온전히 황무지였던 때를 기억케 하라(16절).
"한 사람이 곡식 스무 석" 을 보리라고 기대하고 낟가리장에 나갔으나 그 양이 엄청나게 적은 것을 보고는, 그것을 달아 본다. 그랬더니 "열 석" 뿐이었다. 마르는 동안에 줄었거나 해충이 먹어버렸거나, 도난당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도즙틀에 나가서 포도주 "50통" 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평상시만큼도 나오지 않는다. 겨우 "20통" 밖에 안 된다. "내가 너를 풍풍으로 쳤다." 곧 모든 푸른 식물을 시들게 하는 바람과 서리, 그리고 곡식을 썩히는 "곰팡이로," 또 막 익을 무렵에 떨어뜨리는 "우박으로" 너를 쳤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에 태만하고 있는 동안은, "하는 일에서 모조리" 실망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 사업을 팽개치고 있는 한, 그들의 사업을 퇴보한다. 그러나 이 날부터는 하나님이 그것들을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18,19절). "이제 생각하라. 너희가 하나님께 대한 태도를 바꾸었을 때 과연 하나님이 너희에 대해 그 태도를 바꾸셨는지 아닌지 생각하라." 하나님은 그들이 어떻게 되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단지 일반적인 말로, "내가 너희를 축복하리라" 고 말했다. 이 이상 저들을 행복케 해 주는 것을 바랄 수 없기 때문이다.
원대한 약속 (학개 2:20-23)
" 백성에게" 설교한 다음, 같은 날에 또 하나의 설교를 했다. 그것은 "치리자들," 특히 "스룹바벨에게" 한 설교이다(21절).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하라." 네가 직접 고하라. 스룹바벨은 그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고, 이웃 나라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정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 소수의 약소 민족의 장래와 가련한 임군으로서 자기가 이 나라를 보존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에 말씀하셨다. "그에게 가서, 그와 그의 남은 자에게 일이 잘 될것이라고 일러 주어라."
Ⅰ. 나라들의 큰 소요에 대한 소식을 들을 채비를 하라(21,22절). "내가 천지를 진동케 하리라." 세상이 바다나 수레 바퀴와 같이 항상 움직이고 있으나, 때로는 특별히 요동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라. 천지가 동요함은, "그 가운데서 악인을 제거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라(욥 38:13). 묵시문학적 환상에서는, 지진이 교회에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못한다. 열국의 보좌였던 갈대아 군주국은 이미 정복되었다. 아직 멸망하지 아니한 열강들도 그와 비슷하게 전복되리라. 그들이 멸망할 날이 오고야 말리라. 그들은 "병거와 말을 믿었다" (시 20:7). 그러나 그들의 "병거가 전복되고," "그 위에 탄자들" 도 그리되리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원수들의 운명을 읽을 수 있다. 또한 흑암 권세를 이길 교회의 승리에 대한 약속도 엿볼 수 있다. 교회는 "나라들의 보좌" 인 사탄의 보좌를 전복시킬 것이다. 그를 적대하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자와 권력자" 가 전복되리니, 그것은 "나라가 하나님 곧 성부에게로 구원되기" 위해서이다.
Ⅱ. 이 모든 요동 속에서도 그는 안전하게 하나님의 가호를 받으리라(23절).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집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는데 적극적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윗에게 했던 것과 꼭 같은 약속을 해 주신다. 하나님이 "그에게 집을 세워 주시리라." 그리고 천지가 요동하는 날에도 그 집을 견고케 해 주시리라. 이와 같이 유다 왕국의 그의 후계자들도 여기에서 위로의 말씀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스룹바벨의 직계 후손이고 복음 성전의 건축자인 그리스도를 특별히 가리키는 것이다. 스룹바벨은 여기서 "하나님의 종" 이라고 시인되고 있다. "내가 너를 선택하여" 그 직임을 맡기겠느니라.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사 "인(印)으로" 삼으리라고 약속했다. 여고니야는 "하나님의 오른손의 인장" 이었으나 "거기서 뽑혀졌다" (렘 22:24). 스룹바벨은 하나님께 가까이 갈 것이요, 귀중히 되리라. 그의 집안은 "하나님의 오른손의 인장" 이신 메시야가 나오기까지 존속되리라. 제왕들은 자기들의 칙령, 인허, 사령을 인장으로 서명한다(에 3: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오른손의 인장이시니, 모든 권세가 그에게 주어져 있고, 또 그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서 복음의 위대한 특성이 서명되고 비준되었으며,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와 아멘이 된 것도 바로 그에게 있어서이다.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