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죄악상 (미가 7:1-6)
혹자의 생각으로는, 본문은 미가 예언자가 활동했던 히스기야의 시대와는 부합되지 않는 악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히려 이를 므낫세의 통치 기간 중에 이루어진 예언으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아하스의 통치 때(그의 통치 때에도 그는 예언하였다. 1:1), 또는 히스기야를 통하여 이루어진 개혁 이전에 히스기야가 막 통치하기 시작할 때의 이야기라고 추측할 수 있다. 또는 히스기야의 전성 시대, 즉 그가 부패를 일소하려고 최선을 다하던 때의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그 시대에도 악이 많이 남아 있었다.
여하튼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추측할 따름이다. 예언자는 "재앙이로다, 나여!" 라고 외쳤다. 그는 자기가 그토록 타락한 시대에 살게 된 운명을 애통해 하며, 수많은 선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는 파멸을 촉진하던 사람들 중에 살게 된 것을 큰 불행으로 생각한다. 이와 같이 다윗도 "내가 메섹에 거했던 것이 재앙이로다!" 고 부르짖었다.
그는 다음을 애통했다.
1. 선한 사람을 찾기가 너무 힘드니,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도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의 치욕이었다.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가나안의 "땅으로부터" 끊쳤다. 그것은 "선한 땅" 이며 "정직한 땅" 이었다(사 26:10). 그러나 그 땅에는 선인이 거의 없었고, 그들에게 정직한 자가 없었다(2절). "선인" 이란 "경건한 자" 와 "자비로운 자" 이다. 그 원뜻이 두 가지를 다 포함한다. 하나님께 대해 경건하고, 사람에게 동정하며, 긍휼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완전한 선인이다. 그런데 "이들이 끊쳤다." "얼마 전에 우리의 나라를 풍부하게 하고 아름답게 했던 이들이 이제는 사멸했다. 그들을 대신하여 일어나 그들의 발자취를 쫓는 자가 없다. 정직이 사라지고, 선인과 같은 자는 만날 수 없다. 신앙으로 교육받은 자들도 타락하여, 최악의 상태가 되었다. 경건한 자가 끊어졌다" (시 12:1).이것이 비유로 설명되었다(1절). 그들은 "여름 실과를 딴 후와 같을" 것이다. 이것은 추수가 끝난 후에 여름 실과를 찾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선인을 찾기가 어려웠음을 비유한다. 예언자는 엘리야가 그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왕상 19:10), "오직 나만 남았나이다" 라고 외치려 한다. 송이송이 달려 있던 선인들은, 마치 "포도 수확 때의 이삭 줍기" 와 같이 여기 저기 한알씩 있게 되었다(사 17:6). 포도 송이처럼 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선인들을 찾아 볼 수 없고, 개개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먹을 만한 송아지가 없다." 가장 좋고 충실한 포도는 큰 송이에 붙어 자라는 법이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은 선한 자가 거의 없었음을 암시할 뿐만 아니라, 남은 자도 거의 없음을 뜻한다고 본다. 추숫군이나 이삭 줍는 자가 남겨둔 자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예언자가 이 보편적인 타락을 주목하게 되었을 때, 그는 "처음 익은 열매를 바라게" 되었다. 그는 전 시대에 살았던 훌륭한 선인을 보고 싶어했다. 그 사람들은 처음 시대의 영예였고, 모든 세대의 선인을 능가하였다. 마치 먼저 완전히 익은 과일이 나중에 완전히 성숙하지 못하는 과일보다 월등함과 같았다. 우리도 전 시대의 믿음의 고백자들의 지혜와 열심, 엄격성과 양심, 헌신과 자애(慈愛)를 읽고 들으면서, 현 시대의 그와 반대 현상을 발견할 때, 주저 앉아 한숨을 쉬게 되고, "초대 교회로 다시 돌아 간다면!" 하고 기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이전에 가 버린 자들의 솔직담백함과 청렴결백함은 지금 어디 있는가? 거짓없는 참 이스라엘은 어디 있는가? 우리 영혼은 그들을 바라지만 헛될 뿐이다. 황금 시대는 지나갔다. 추억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있는 것을 선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나간 시대들을 다시 볼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2. 그들 중에 사악하고 해로운 백성이 많았으니 전혀 선을 행치 않는 자뿐만 아니라, 할 수 있는 대로 온갖 해를 끼치는 무리도 있었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그물로 그 형제를 잡으려 한다. 부를 획득하려고, 인근의 사람들에게 온갖 악과 상해를 끼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마치 인류가 전쟁 상태에 있으며, 폭력이 유일한 권리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그 이웃에게 맹수와 같으니 마치 사자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한다. 그들은 피를 갈망하며, 사람의 목숨과 재산을 자기들을 위해 서슴없이 갈취하며, 또 그런 기회를 기다려 매복한다. 그들의 이웃은 그들에게 맹수와 같아서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한다. 그들은 마치 해로운 동물처럼 박해하며 무죄한 그들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합당한 것처럼 행동한다."우리는 무법자에 대해 Caput gerit lupinum-즉 그를 늑대처럼 사냥해야 한다고 말한다. "혹은 그들은 사람이 사냥감을 잡듯이 그들을 사냥한다." 그들은 사냥한 짐승으로 축제를 벌인다. 그들은 사람을 파멸로 빠뜨릴, 수없이 많은 저주스런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다. 이처럼 "그들은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한다." 그들의 마음은 그것을 희구하고 그들의 머리는 그것을 꾀하며, 두 손은 그 일을 실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사람이 죄의 추구를 열심히 하면 그것을 위해 더 수고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하나님의 진노를 격동케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3. 직무상 정의의 후원자요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지고 있는 치리자들이 악의 실천자요 권장자가 되었다. "그들이 두 손으로 부지런히 악을 행하도다." 그들은 악을 조정하고 고무한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니" 이 뇌물을 가지고 "두 손으로" 사악한 계획을 후원하며, 또 그것을 수행할 모든 힘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두 손으로 악을 훌륭히 행하도다" (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그들은 능숙한 기술과 재주를 사용하여 악을 행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것을 잘 한다고 자랑한다.어떤 다른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읽는다. "그들은 악을 행하는 데 두 손을 쓰지만(그들은 악을 행할 기회를 포착한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한다." 만일 그들이 어떤 선한 직무를 행한다면 용병과 같이 그 보답을 받으려고 할 것이다. 선을 행할 부와 권세를 가진 지위 높은 사람은 그를 후원할 준비를 하고 그의 옆에 서 있는 군장과 재판자와 연락을 취하여 그의 사악한 욕망을 토해내는(발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연락을 취한다." 그들은 일을 혼동시키고 자기 꾀에 빠져서 복잡하게 만들며(어떤 이들이 이렇게 이해한다), 안개 속에서처럼 공평을 잃고, 그 일을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바꿔 놓는다. 백성의 군장과 재판자와 고관이 정의를 오도할 때, 그 백성에겐 화가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에게 임한 슬픈 사정이다(4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에게는 무엇을 맡기든 위험한 일이다. "그것들을 만지는 자를 철로 받아 넘기리니" (삼하 23:6, 7), 반드시 붙잡혀 옷을 찢기우고, 눈이 뽑히우리라. 그리고 가장 선한 자와 가장 정직한 자의 형편이 이러하다면, 가장 악한 자의 형편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사태가 이처럼 되어지는 때가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사악으로 인해 계산하시는 때를 "파숫군의 날" 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파숫군으로 세우신 그들의 예언자들이 종종 그 날을 경고해왔기 때문이다. 모든 육체가 타락하여 가장 정직하고 선한 자까지도 부패한 때에, 곧 "땅이 강포로 가득찼을" 때, 저 옛 세계를 뒤덮었던 것과 같은 천벌의 날 즉 심판의 도래를 각오해야 한다.
4. 사람들에게 신의가 없었다. 사람들은 전부 믿을 수 없는 사람뿐이어서 누구를 신뢰할지를 모를 지경이었다(5절). "명예 의식이 있고 미덕이 있는 자는 우정의 법칙을 중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사적인 대화 속에서도 말한 것을 들추어내거나 비밀을 누설하여 친구를 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이제 웃음거리가 된다. 너는 감히 신뢰할 만한 친구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의 말을 믿어도 좋으며, 또 너에게 은유와 관심을 베풀 친구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자는 친구를 의지하지 말라는 말을 자기의 법칙으로 삼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거짓됨이 판명될 것이며, 네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직한 자로 통하던 사람에게서도 너는 단지 겉보기만이 그렇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니다. 너의 안내자가 되어, 너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공언하는 어떤 사업으로 너를 인도하던 자까지도 신뢰할 수 없으니, 이는 만일 이로 인해 무슨 이득만 생긴다면 틀림없이 너를 오도할 것이기 때문이다."어떤 이들은 안내자라는 말에서 "젊은 때의 인도자" 라고 불리우는 남편이라는 의미를 읽는다. 그리고 이는 다음의 구절과 잘 부합하니, 너의 아내인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그녀 앞에서는 말하는 것을 주의하라. 드릴라가 삼손에게 하였듯이 그녀가 너를 배반하지 못하게 하며, 그녀로 하여금 네가 "침방에서" 한 "그 소리를 전하는" "공중의 새" 가 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전 10:20). 그 때는 명철한 자까지도 이처럼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게 되는 진실로 악한 때이다.
5. 자녀들이 그 부모를 멸시했으며, 사람이 그의 가정과 이웃에게서 안정과 만족을 얻지 못했다(6절).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욕을 하고, 그 비밀을 폭로하고 위협하며, 아비에게 악을 행하는 법을 배우며, "딸이 일어나" 그 어미를 대적하여 스스로의 의무를 잊고, 본능적 애정도 잃어버린 때가 바로 그 악한 때이다. 그러므로 그 때는 "며느리" 가 "시어미" 와 말다툼하고, 시어미를 대적하는 것도 놀랄 만한 것이 못된다. 그들은 재산과 이권에 있어서 의견이 같을 수 없고, 그들의 웃음과 동정심은 깨어지며, 고집과 압제의 마음 때문에 "형이 아우를 넘겨 주며 아비가 자식을 넘겨 줄 것이다" (마 10:4; 눅 21:16). 배반자와 악한 원수들이 자기의 집안 사람이다. 그를 보호해 주는 최선의 친구이어야 할 자녀와 종이 바로 원수가 된다면, 이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일 것이다. 가정 의무의 규칙을 멸시하고 어기는 일은 좋은 습관이 널리 타락하리라는 슬픈 징조가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들의 부모에게 의무를 행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격노케 하고 훼방하는 것을 배우는 자들은 결코 선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오직 여호와 안에서의 평안 (미가 7:7-13)
예언자는 자기가 사는 시대의 사악함을 통탄한 연후에, 여기서는 그 자신과 친구들이 평안에 대한 고찰을 그것과 관련하여 집중적으로 말한다. 형편이 나쁘지만 절망적은 아니다. "이 일에 관하여 이스라엘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
Ⅰ. "하나님께서 지금 격노하시나 우리와 화해하시고,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7,9절).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해 매우 노하셨다. 우리가 그에게 죄를 범했으므로, 하나님의 노는 공의로운 것이다." 하나님의 분노를 격동케 하는 장본인은 하나님을 적대하는 우리의 죄라는 점을 명심하자. 또한 우리가 어떠한 하나님의 책망 아래 놓여 있든지, 그것은 우리로 회개케 하여 죄를 떠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것이므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의를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이와 같은 때에,
1. 우리는 환난 중에 있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7절).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리라." 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재앙이로다. 나여!" (1절)라고 부르짖는 기회가 많겠지만, 그럴 때에도 의지하고 나아가 그 안에서 즐기고 만족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 그에게 평안이 될 수 있다. 그의 주위에는 모든 것이 흑암으로 보이는 때에도, 그의 위에는 밝은 빛이 보일 수 있다.예언자는 땅 위에 있는 친구들과 친척들 속에서는 평안이 없고 신뢰할 것도 없다고 불평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그를 그의 하나님에게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리라." 피조물을 즐거워할 이유가 적을수록 하나님을 기뻐할 이유는 많아진다. 만일 방백을 믿을 수 없더라도, "야곱의 하나님을 그의 도움으로 삼는 사람은 행복하도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또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시면 현재의 재앙 속에서라도 "나는 행복하도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거짓되더라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나의 평안이 되며, 친척들은 불친절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며, 또 은혜로우실 것이라는 점이 내 평안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절망 위와 밖으로 향하여 여호와를 바라보자.
2. 환난 중에도 하나님의 뜻을 순복해야 한다. "나는 여호와의 노를 당하리니 인내를 가지고 참으며 중얼거리거나 투덜거림이 없이 참으리라. 왜냐하면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진실로 죄를 참회하는 자는 고통을 견딜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 때문에 사람이 그의 죄에 대한 심판을 불평하는가?" 시대의 악함을 하나님께 불평할 때는,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악함을 인해 우리 자신을 불평해야 한다.3. 우리는 하나님께 의지하여,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고, 적당한 때가 오면 우리의 환난이 선한 결과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그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에게 의탁해야 한다. "나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며 그가 우리에게 은혜로 돌이키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큰 환난 중에도,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며, 약한 자의 겸손한 간원을 들으시사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며, 가장 악한 자라도 참되게 자복하면 구하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를 바라본다면, 구원에 대해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의지한다면, 그를 기다리고, 그의 방법과 시기에 따르는 그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이제 여기서 만물이 최후에 이르렀을 때에라도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대하고 약속받은 것에 대해 어떻게 가르침을 받는지 살펴보자.
(1)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라." 만일 여호와께서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에 대한 평강의 응답을 허락하실 것이다.
(2)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또한 그로 인해 산산히 부숴질 위험에 처할지라도, 나는 일어날 것이요, 다시 회복될 것이다. 나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는다" (시 37:24).
(3) "내가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또한 울적하고 쓸쓸하며, 고독하고 착잡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떻게 구원을 요청할 줄 모를 때에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요, 내게 평안과 소생을 주시고 훈계하시사, 내 눈에 빛이요, 내 발에 빛이며, 어두운 곳의 빛처럼 나를 인도하고 안내하실 것이다."
(4) "그는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리라(9절)." 만일 우리가 진실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되, 신앙과 미덕의 공의롭고 그러나 손상된 뜻을 우리의 뜻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 자신의 뜻을 취하사 신원하실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다. 교회의 뜻은, 비록 잠시동안 그것에 반대한 듯 싶었으나, 마침내 그 원수에 대항하여 행해지는 질투와 심판으로 신원될 것이다.
(5) "그는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며, 희미한 데로부터 밝게 비취게 하시고 뛰어나게 하사, 나의 의를 비방의 검은 구름 아래에서 들어올리사 뚜렷이 비취게 하시리라(시 37:6; 사 58:10). 평안의 아침이 긴 환난의 어두운 밤을 헤치고 비쳐 나올 것이다."
(6)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내가 나에 대한 그의 역사의 공평함과 그의 약속의 수행을 보리로다."
Ⅱ. 원수들이 승리하여 비방하지만 그들은 잠잠하게 되며, 부끄럽게 될 것이다(8,10절). 여기서 다음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의 백성의 원수들이 비통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얼마나 교만하게 짓밟는가!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는가?" 라고 말했다. 마치 그들이 고통을 당했다 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린 것처럼 말하며, 또 그들은 기도로서 그가 어디 있는지를 찾아 내지 못했고 하나님은 어떻게 은혜로 그들을 도와 줄 수 있을지를 모른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는 다윗의 원수들이 그에게 한 말이었으며, 그의 뼈를 찌르는 칼이었다(시 42:10; 65:2). 이처럼 이스라엘을 버림받은 백성으로 비방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불친절하고 불신실한 하나님으로 생각했다.2.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모욕을 얼마나 평안히 견디는가!(8절)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내가 지금 낮은 데 처해 있지만 항상 이렇지는 않으리니,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시면, 내 대적이 그것을 보고 부끄러워할 것이며(교회의 전적 파멸에 대한 그의 기대가 좌절될 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공포의 잔이 그의 손에 쥐어질 것이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비통한 처지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그를 내가 목도하리니, 이제 그가 밟힐 것이다." 교회의 구원은 그의 원수들을 혼란시킬 것이며, 그들의 부끄러움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았던 것처럼 그들 자신이 밟힐 때에는 갑절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Ⅲ. 비록 그 땅이 오랫동안 계속 쓸쓸하였으나 마침내 그 구원이 임할 때, 곧 그 정한 때에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1. 그 구원은 "그것이 황무한 후까지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난외를 읽으면 그렇다, 13절). 하나님께서는 그 땅과 변론하시니 그 땅은 오랫동안 그의 책망 아래 놓여야 한다. 이는 "거기 거하는 자 때문이다." 그들의 땅을 황무케 하는 것은 그들의 허물이다(시57:34). 그것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로 인함이니" 이는 그들 자신의 악한 범죄 행위였으며, 그들의 나쁜 영향과 모범에 의해 그들을 따르는 악의 열매 즉 다른 사람들의 죄였다. 그들은 이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세상도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백성 속에 있는 죄조차도 증오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2. 구원이 임할 때, 그 구원은 완전한 구원일 것이다. 이것은 이사야가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구원의 모형으로서 이즈음에 예언했던, 고레스에 의한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을 가리키는 듯하다.
(1) "포고령이 멀리 물러날 것이다" (한글 개역과 다름, "지경이 넓혀질 것이다"). 그들의 포로됨에 대한 하나님의 포고, 그 포로 생활의 영속에 대한 느부갓네살의 포고령이니, 그의 결심은 결코 그들을 해방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었으나 "이들이 취소되고 폐지되어, 너는 더 이상 그것에 관한 말은 듣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네 목의 멍에로 임하지 않을 것이다."
(2)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은 재건될 것이다. 그 때 "네 성벽은 건축되리니," 수비를 위한 성벽, 마을 벽, 성전 벽이 건축될 것이다. 이것은 그 포고령이 폐기되었음을 나타내려는 것이다(사 44:28). 시온의 성벽이 오랫동안 파멸되어 있겠으나 그것이 보수될 날이 올 것이다.
(3) 이스라엘의 땅에 속한 모든 사람은 어디로 흩어졌든지, 아무리 비통했든지, 이 땅 전체의 어디로 널리 또 멀리 갔든지 간에 다시 그리로 떼지어 모여오리라(12절). "그는 네게로 돌아 올 것이다." 열 지파는 포로되어 갔던 앗수르로부터, 비록 멀지만, 돌아 올 수 있는 자유와 심정을 가질 것이다. 또 그들이 단단히 붙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요새였던 견고한 성으로부터, 견고한 성채로부터 돌아 올 것이다.
또 하나님의 날이 오면, 비록 "바로가 그 백성을 가게 하지" 않으려 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능하신 손으로 그들을 인도해 내실 것이다. 그들은 모든 먼 곳으로부터 오리니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 일 것이다. 그들은 너의 방해를 두려워하여 돌아 서지 않고 시온에 이르기까지 온 힘을 다해 갈 것이다. 이리하여 구원의 큰 날에, "하나님께서 사방으로부터 택하신 자를 모을 것이다."
인자하심의 회복 (미가 7:14-20)
Ⅰ. 그 자신의 백성을 보살피사 그들의 뜻과 관심을 살펴 달라는 하나님께 대한 예언자의 기도가 있다(14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려 할 때는 그들의 친구들로 하여금 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격려하시며,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신다(슥 12:10).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볼 때는, 우리도 기도로 그를 맞으러 나가야만 한다. 기도로 간구한 선에 대해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 예언자의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예언자를 통해 구하도록 지시하신 것을 의심없이 주시려고 계획하셨다.
1. 이스라엘 백성은 여기서 "하나님의 기업의 떼" 라고 불리워진다. 이는 그들이 그의 손의 양이며, 그의 초장의 양이니 세상에 있는 그의 작은 양떼임이로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기업이요 세상에서의 그의 몫이다.2. 이 때는 높은 산 "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하는" 떼이다. 이스라엘은 특수한 백성(선민)으로, 삼림 속의 양떼처럼 "홀로 거하며, 열방 중의 하나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황무한 백성으로서(13절), 길을 잃을 위험 속에 놓여 숲 속의 맹수의 밥이 될 위험을 안고 있는 숲 속의 양처럼 포로된 땅에 있었다. 그들은 "목자없는 양처럼 산 속에 흩어져" 있다.
3. 그는 하나님께서 "거기서 주의 지팡이로 그들을 먹여" 달라고 기도한다. 즉 주께서 그들의 포로 중에 그들을 보살펴 주시며 보호하사 그들을 먹여 주시며 선한 목자의 역할을 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그 어두운 계곡에서라도 그들을 평안하게 하소서. 그리고 거기서도 그들에게 선한 것이 전혀 부족하지 않게 하소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의 막대기로 다스려지며 그들의 원수의 막대기로 다스려지지 말게 하소서. 이는 당신의 백성임이니이다."
4. 그는 하나님께서 적당한 때가 되면 그들을 인도해 내사 바산과 길르앗의 초원에서 먹이시고, 더 이상 삼림과 산 중에서 먹이시지 말아 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들로 하여금 먹게 하시되," "옛적처럼" 다시 그들 자신의 나라에서 먹게 하소서.
어떤 이들은 이것을 영적으로 풀이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자의 기도나 그에 대한 아버지의 명령, 즉 양떼의 목자장으로서 그의 교회를 보살피시며, 그들이 수풀에 있듯이 이 세상에 처해 있을 동안 그들 앞에서 인도하시라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갈멜, 바산, 길르앗에서처럼 초장을 찾게 된다.
Ⅱ. 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의 기도에 대한 참된 응답으로 여겨, 그에 따라 그 약속을 간직하는 것이 당연하니 그에게는 말과 행동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먹여 달라고 기도하고 그들에게 자비로운 일들을 행해 달라고 기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사를 보이시겠다" 고 대답하신다(15절). 그는 그들이 요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을 그들에게 주시며, 그들의 희망과 기대에 넘치게 행하실 것이다. 그는 "그의 기이한 인자를 보이실" 것이다(시 17:7).
1. 그는 전 시대의 기사와 이적의 반복이 될 것들을 그들을 위해 행하시되,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하시리라. 그들을 바벨론에서 건져낸 것도, 애굽에서 건져낸 것에 못미치는 기사와 은혜는 아닐 것이다. 아니다. 그것은 그 광채를 능가할 것이니(렘 16:14, 15),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업적이 훨씬 더 클 것이다. 그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이전 은혜는 미래의 은혜의 모형이며, 기회있을 때마다 다시 되풀이될 것이다.2. 하나님은 현 시대에 경이롭고 신기로운 사건이 될 일들을, 그들을 위해 행하실 것이다(16,17절). "열방" 이 그것을 주목할 것이요, 그것이 "이방 중에" 이야기될 것이니,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도다" (시 126:2). 유대인을 바벨론으로부터 구해내신 일이 이웃 나라들에게 줄 인상은 하나님과 그의 교회의 영예를 높일 것이다.
(1) 슬픔 중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비방하며, 그들이 그 백성을 계속 낮추면서 계속 그럴 수 있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성백이 이처럼 놀랍게 일어서는 것을 보면 "매우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히 무력하리라고 생각했던 포로들이 이제 스스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세력을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들은 이제 "손으로 그 입을 막을 것이니," 그들이 말했던 것을 부끄러워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승리로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귀도 막힐 것이요," 그만큼 그 놀라운 구원을 대하여 부끄러워할 것이다. 그들은 귀를 막고, 그들이 멸시하고 비방했던 백성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기사를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2) 오만하게 하나님을 대면했던 자들은 이제 그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적어도 겉말로는 그에게 굴복하게 될 것이다(17절).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리라." 뱀이 받은 것과 같은 저주를 선고받고, 굴욕을 당할 것이다(창 3:14). "네가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그들은 최저의 멸시에 이르며, 기가 죽어서 얌전하게 그들에게 굴복할 것이다. "그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다" (시 72:9). 아니다. 그들은 교회의 발에 붙은 "티끌을 핥을" 것이다(사 49:23). 교만한 압제자들은 이제 크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이 얼마나 비천하며 작은지를 깨닫게 될 것이며, 두려움과 지극한 굴종의 자세로써 그들이 기어 들어갔던 "좁은 구멍에서 나오리니" (사 2:21), 마치 "땅에 기는 벌레처럼" 부끄러워하며, "그 머리 보이기를" 두려워할 것이다. 그들이 비천하게 될 때, 그들은 낮은 데로 이끌려서 영락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위하여 기사를 행하셨을 때 "그 땅의 많은 백성이 유다인이 되리니," 이는 "유다인에 대한 두려움" 과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 위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에 8:17). 그래서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예언된다. "그들은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주로 인하여 두려워하리이다." 강제로 된 굴복은 흔히 가장된 굴복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은 비록 위선된 자신들의 이익을 늘이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과 교회의 영광에는 기여한다.
Ⅲ. 교회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굳게 서서 이 예언자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감사에 넘치는 시인을 했다(8-10절). 우리가 여기서 배우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 베푸신 속량의 긍휼에 대해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18절).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포로 생활을 돌이키셨으므로 예언자는 그 기회에 그 돌이키심의 근저에 놓여 있던 속량의 긍휼을 찬미한다. 그들을 굴레로 이끈 것은 그들의 죄였으나, 그들을 그로부터 이끌어내신 것은 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속량이었다(시 85:1, 2; 사 33:24; 38:17; 40:1, 2). 죄의 용서는 다른 모든 계약에 따르는 긍휼의 기초이다(히 8:12). 예언자는 이에 놀라고 있는데 주변의 열방은 오직 이것의 열매에 불과한 그들의 구원에만 놀라고 있었다.(1) "그의 기업의 남은 자" 인 하나님의 백성은 많은 허물로 인해 책망을 받고 있다. 이는 오직 남은 자로서 매우 소수이니, 사람들은 자기들이 모두 매우 선하리라고 희망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자녀도 각자 허물을 가지고 있으며, 종종 그들의 아버지를 격노케 한다.
(2) 은혜스러운 하나님께서 그들이 참회하고 돌이키면 그들의 죄와 허물을 즉각 용서하시려고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용서받은 백성이니, 이 속량에 그들의 전체를 의존한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유하실 때, 그는 죄를 간과하시고 책벌하시지 않으며, 죄인을 그 죄의 부패에 따라 취급하지 않으신다.
(3) 비록 하나님께서 잠시 그의 백성을 그의 진노 아래 두시지만, 그는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실" 것이며, "비통을 일으키시나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그는 무자비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나 그의 기업의 남은 자가 아닌 용서받지 못할 자들에게는 그의 진노를 영원히 지키실 것이다.
(4) 왜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며 그의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는가 하는 이유는 모두 그 자신으로부터 작정된다. 그것은 "그가 긍휼을 기뻐하기 때문이며," 죄인의 사망과 저주가 아니라 그들의 구원이 주께서 기뻐하시는 바이기 때문이다.
(5) 죄를 사유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다른 것들에서처럼 비할 데 없이 뛰어난다. 이런 점에서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어떤 관원이나 보통 사람도 하나님께서 하시듯이 용서하지는 않는다. 이를 통하여 그의 생각과 길이 우리와는 무한히 먼 거리에 있음이 분명해지며, 그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이 아니심" 이 분명해진다.
(6) 용서의 은총을 경험한 자는 누구나 그 은혜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우리가 그 은혜의 내용을 안다면, 그것이 우리가 놀랄 만한 이유를 설명해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는가? 우리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하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사유의 은혜에 대한 우리의 거룩한 경이는 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잘 입증해 줄 것이다.
2. 그 긍휼과 거기에 함께 하는 은혜와 진리가 주는 평안을 의탁해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사유하심을 감사로 가득 차서 회상하듯, 또한 확신을 가지고 그가 그들에게 더 행하실 것을 기대한다. 그의 긍휼은 "영원히 지속하며," 그가 이미 "긍휼을 베푸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베푸실 것이다(19,20절).
(1) 그는 우리에 대한 은혜를 새롭게 할 것이다. "그는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가 이전에 베푸셨던 동정을 다시 베푸실 것이다. 그의 동정은 "매일 아침 새로워질" 것이며, 화를 내시고 우리를 떠나신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돌이키사 우리를 민망히 여길 것이다. 그는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2) 그는 우리를 새롭게 만드사, 그의 은혜에 합당하게 준비시킬 것이다. "그는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실 것이다." 그가 죄악을 도말하셔서 우리를 저주하지 않으실 때, 그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사 더 이상 그것이 우리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며, 우리로 죄를 두려워 하거나 죄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죄는 우리의 원수요, 우리를 학대하는 폭군이다. 전능한 은혜 외에는 어떤 것도 죄를 굴복시킬 수 없으니, 이는 타락한 사람 속에는 죄의 권세가 매우 강력히 작용하며, 오랫동안 그 사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범한 죄를 용서해 주신다면, 그는 우리 속에 거하는 죄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죄 사유함을 받은 모든 자는 자기들의 타락이 극복되고 허물이 제거되기를 간절히 희구하며, 또 그렇게 될 희망을 가지고 기뻐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대로 남게 된다면, 우리의 허물은 우리에게 너무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은혜가 그 허물을 제거시키기에 충분하니, 그 죄가 우리를 다스리지 못할 것이며, 우리를 파멸시키지 못할 것이다.
(3) 그가 이 선한 업적을 확인할 것이며, 효과적으로 수행하시므로 그의 은혜의 역사는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이는 마치 그가 그들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해 내사(예언자는 여기서 약속 중에 그것을 바라본다 15절), 바로와 애굽인들을 파하시고 깊은 바다에 던지셨던 때처럼 행해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를 사유하실 때는 "더 이상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며," 그 죄가 더 이상 그 죄인에게 불리하게 기억되지 않도록 보살펴 주신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겔 18:22). "그의 허물이 그에게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허물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구름처럼 말살된다." 그는 그들을 바다로 던지시되, 다시 얕은 물가에 나타날 수 있도록 바닷가 가까이에 던지시지 않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 "그들의 모든 죄" 는 예외없이 거기 던져질 것이니,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때는 모든 죄를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는 우리와 관계된 것을 완전하게 하실 것이며, 이 선한 사업을 통해, 우리의 처지가 요구하며 또 그가 약속하신 것을 우리를 위해 행하실 것이다(20절). "주께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이것은 우리의 죄를 사유하고 우리의 정욕을 극복하시리라는 언약을 이행하심이다. 그 언약의 샘물로부터 이 모든 물줄기가 흘러나오며, 이것으로 그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자유롭게 주실" 것이다. 약속을 "아브라함에게 주는 자비" 라고 했다. 그 이유는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주어질 때처럼, 이 약속은 역시 단순한 자비요, 예방적인 자비이며, 그의 처지를 고려한 자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야곱에게 대한 성실" 이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바로 그와 그의 종족인 아브라함의 후손 즉 은혜로써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모든 자들에게 선을 행하시는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1] 은혜의 약속이 얼마나 엄숙하게 우리에게 비준되었는가를 보라. 그것은 말해지고, 씌어지고, 봉해졌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확인으로서 "우리 열조에게 맹세되었다." 그것은 최근에 계획한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옛적에" 맹세되었으며, 유서 깊은 헌장이다.
[2] 그것은 얼마나 넉넉히 우리에게 적용되고 또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최대의 확신을 가지고, "당신께서 진리와 인애를 베푸실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의 일점 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약속을 주시고, 또한 그것을 행하실 이는 신실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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