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창설 예언 (미가 4:1-7)
본장의 시작인 "그러나" 는(한글 개역과 다름) 매우 안정되고, 하나님의 교회의 유익을 마음 가까이 두고 그의 번영을 관심하는 자들에게는 매우 기운찬 소생을 준다. 우리가 가끔 교회의 타락을 볼 때, 특히 교회 치리자, 일반 통치자, 제사장, 예언자들이 자신의 이익들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돌보지 않는 것을 볼 때, 그리고 교회의 황폐를 볼 때, 즉 시온이 그로 인해 "밭같이 갊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한 날에 둘 다 멸절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이름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또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교회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가지지 못하리라고 결론지을 준비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믿음이 패하지 말게 하자. 교회의 잿더미에서 또 다른 불사조가 나올 것이다.
전 장의 마지막 말에서 "수풀의 산당과 같게" "성전의 산" 이 황폐하게 되었다는 것을 읽었다. 그런데 그러한 광야가 다시 열매맺는 땅으로 되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 본장의 처음 말들은 "여호와의 전의 산" 이 황폐로 인해 굴욕당한 것만큼 다시 잦은 출입에 의해 위엄의 회복을 가져온다. 비록 시온이 밭같이 갊을 당했어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흩으시지" 않으셨고, 유대인의 몰락에 의해 구원이 이방인에게 도래하여, 결국 세상의 부요함을 증진하게 된다(롬 11:11, 12). 이것이 예언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신비이다. 그리고 그는 다른 예언자가 같은 때에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말한 것과 똑같이 본장의 처음 세 절에서 말한다(사 2:2-4). 이는 "이 두 증인의 입으로부터" 이 약속이 세워졌음을 보여 준다. 그 말씀은 이미 부분적으로 성취되었고, 약속하신 이가 신실하시므로, 앞으로도 성취될 복음의 교회에 관련시켜 볼 때, 매우 귀한 약속들이다.
Ⅰ.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시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이는 유대 교회의 결점과 파멸 후에 있을 일이며, 마지막 날에 있을 일이다. 즉 몇몇 율법 학자들이 시인했듯이 "메시아의 날들에" 있으리라. 하나님의 백성은 새로운 성격에 의해 연합될 것이며, 새로운 영적 예배 방식이 시행될 것이며, 또한 새로운 체제의 직책들이 부가되리라. 이 새로운 성격에 의하여 더 좋은 특권이 인정될 것이며, 구약이 제정했던 것보다 더 나은 규정들이 인간들 사이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설립을 위해 만들어질 것이다. "여호와의 전의 산" 이 다시 하나님의 신실한 예배자들이 설 든든한 땅이 될 것이며, 그들은 가서 그 앞에 참여하여 (전을) 세울 것이다(1절).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통일의 중심이 될 것이다. 한 교회가 세상에 세워질 것인데, 여호와께서 매일 "구원받을 자를 더하실" 것이다.
Ⅱ. 이 교회는 견고하게 터를 닦고 잘 지어질 것이다. 그것은 "산들의 꼭대기에 곧게 설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친히 바위 위에 세우실 것이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기초 위에 세워진 견고한 요새여서, 음부의 권세(문)가 이를 무너뜨리거나 해치지 못할 것이다(마 16:18). 그 기초는 "거룩한 산" 에 있고(시편 87:1), 제거될 수 없고 제거되지도 않을 "영원한 산" 에 있다. 그것은 한 산 위의 성전으로서가 아니라 많은 산 위에 세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초는 확실하며 크기 때문이다.
Ⅲ. 그 교회가 높이 들려져서 뛰어나게 될 것이다.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난다." 처음에 작던 것이 크게 성장한 것을 보고 사람들이 놀랄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지상의 어떤 왕국보다도 더 빛나는 광채를 발할 것이다. 그것은 "숨기우지 못할 산 위에 있는 동네" (마 5:14)와 같이 될 것이다. 이 나중 성전의 영광이 처음 것보다 더 크다(학 2:9; 고후 3:7, 8 등).
Ⅳ. 그 교회에 허다한 회개자들이 생길 것이며, 계속 개종자가 늘어나리라.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가기를 마치 강물이 끊임없이 흐르듯할 것이니, 각처로부터 교회로 신자들의 무리가 끊임없이 흘러들어 갈 것이다." 이는 마치 유대 민족이 경배하려고 성전으로 모여들었던 것과 같다. 그 때 많은 지파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 산 위의 전으로 왔으나 복음의 시대에는 많은 민족들이 교회로 몰려들 것이며, "구름과 비둘기처럼 그들의 창으로 향해 날 것이다." 사역자들은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기 위해" 파송되되, "헛되이 힘쓰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믿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된 무리들이 복받쳐 서로 격려할 것이며,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 산은 우리 중에 솟았고, 그 영적인 전은 우리 문 앞에 와서 우리 중에 세워졌으므로, 우리가 멀리 여행할 필요가 없도다" 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백성들은 "주의 권능의 날에 즐거워" 하게 되며(시 110:3), 안드레가 베드로를, 빌립이 나다니엘을 불러 그리스도와 만나게 해 주었듯이 힘자라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줄겁게 할 것이다. 그들은 "결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할 것이니(신 33:19)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 또 각각에게 충분할 것이다. 이제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 이 개종한 사람들이 "야곱의 하나님의 전" 에서 발견되리라 기대한다. 그들은 그 곳에 와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 그 도는 우리로 그와 함께 걷게 하고 그에게 맡겨 우리로 은혜롭게 그와 만날 수 있게 하는 도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곳에서 우리는 그를 통해 가르침을 받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2. 그들이 이처럼 하나님께 대해 배울 때 그들이 하게 될 일이 있다. 즉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굳건하게 결심한 자들을 그들이 배운 대로 행하도록 가르치시리라고 안심하고 기대할 수 있다.
Ⅴ. 이 일을 위해 새로운 계시가 세상에 선포되리니 교회가 세워지고 무리들이 그리로 몰려들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복음을 여기서는 "여호와의 말씀" 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무리가 큼이라" (시 63:11 . 한글 개역과 다름). 그것은 하나님의 원뜻과 권위로 되어 있다. 그것은 주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공포되기 시작했다(히 2:3). 그리고 그것은 "율법" 이니, 곧 믿음의 율법이다. 우리는 "율법 아래 있고, 그리스도에게로 향해" 있다.
이것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온으로부터" 나가게 되었는데, 이 성읍들은 구약 율법 시대의 큰 성읍으로서, 성전, 제단, 예언이 있었고, 유대인들이 각 곳에서 예배하러 모여들던 곳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은 구약과 신약의 연관을 보여 주기 위해서 일어나야만 한다. 즉 복음은 율법에 반대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설명과 예증이며, "그것의 뿌리로부터 자라난 가지" 이다.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고 기적을 행하셨던 곳은 예루살렘에서였다. 거기서 그는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거기서 성령께서 부어지셨고, 모든 민족에게 회개와 죄의 용서를 외쳤던 사람들도 "예루살렘에서 시작하라" 는 명령을 받았으니, 그로 해서 황폐한 세계에 물줄기가 흐르게 되었다.
Ⅵ. 복음이 전파될 모든 곳에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회개케 하는 권능이 동반될 것이다(3절). "그가 많은 민족 중에서 심판하실" 것이다. 율법을 주는 분 메시야가 여기서는 심판주이시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그에게 "모든 심판을 맡기셨고," "그는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의 말씀, 즉 "그의 복음의 말씀" 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왔는데, 이는 그가 "거룩한 산 시온에 세운 왕" 으로서 앉으실 때 통치하시고 심판하실 황금 지팡이(홀)다(시 2:6). 그것을 가지고 그는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다윗의 자손이 "이방 중에서 심판하실" 것으로 약속되었으니(시 110:6), 그가 영원한 복음의 수레를 타고 나아가, "정복하고 또 정복하실" 때에 그리하실 것이다.
Ⅶ. 서로 간의 평화와 사랑의 섭리가 메시야 왕국의 설립의 복된 결과일 것이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 것이다. 즉 난폭하고 용맹스러웠던 성 잘내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놀랍게도 누그러져 온화하고 유순하게 될 것이다(딛 3:2, 3). 회개 이전에는 남에게 해를 끼치고 또 해를 못참던 자들이, 회심 이후에는 해를 참고, 반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역사하는 한 그것은 인간을 화평하게 하나니, 이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 요, "정중하고도 용이하게 권고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민족들이 복음으로 변화된다면 오직 그때에만 세계적인 평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로마 제국에는 보편적인 평화가 있었다. 최초로 복음의 교회로 인도된 자들은 모두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행 4:32). 그리고 우리는 초대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훌륭히 "서로 사랑했는가" 를 살필 수 있다. 하늘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다음과 같이 약속되었다.
1. 아무도 불화하지 않을 것이다. 전쟁의 기술이 향상되는 대신에(어떤 이는 이를 왕국의 영광이라고 한다) 잊혀져서 소용없는 것으로 폐기될 것이다. 그들은 이전처럼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니," 이는 그들이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이웃을 보호할 필요가 없고 그들의 이웃을 해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더 이상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사람을 겁장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평화롭게 할 것이다.2. 모두가 악과 악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다(4절). "그들은" 안전하게 "앉아서," 아무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것이며, 평안히 앉아서 자신들을 귀찮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그 열매를 먹고 그 잎 외에 다른 보호처를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들을 두렵게 할 아무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도 두려워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솔로몬 때처럼 "평화가 넘쳐날 것이다." 그를 따르던 자들이 세상에서 괴로움을 당했지만, 이제 그 안에서 큰 평안을 누린다. 이 말이 우리의 생각과 달리 들릴지 모르나 우리는 그 말을 믿어야 하나니,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그리고 그의 말씀은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니, 그는 그 말씀으로 이야기하신 것을 섭리와 은혜로써 행하실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이신 분께서 "평강의 하나님" 이 되시리라.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 그분께서 보호하시는 자는 평안하게 됨이 마땅하다.
Ⅷ. 교회들은 그들의 의무에 있어서 꾸준할 것이며, 그들의 평화를 선용할 것이며, 결코 여호와를 격동케 하여 여호와께서 그 평온을 빼앗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 "교회들이 안식을 누릴" (5절) 때 그들은 교화되고 확신을 얻으며, 평안을 누릴 것이다. 또 이방인들은 신도 아닌 신들에게 그렇게 하듯 그들은 하나님께 확실한 믿음을 보여 주리라.
앞 일의 예언들에 대해(사 2:2), "오 야곱의 족속아! 오라, 그리고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라는 말이 뒤따랐다(사 2:5). 그리고 여기에는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다. 평화가 고난을 뚫고 여호와께로 향하려는 우리의 결심을 굳게 할 때에 그 평화가 참으로 축복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자. 이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보자.
1. 이방인들은 얼마나 끈질기게 그들의 신들에게 매달리는가?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도다." 그들의 신을 가지고 그에게 매달려 예배와 봉사를 할 것이며 그에게 의지하여 확실히 믿을 것이다. 사람들은 무엇으로 신(神)을 삼든지, 그들은 모든 행동과 만사에 있어서 그 신의 이름으로 행한다. 사공들은 폭퐁 중에 "각각 자기의 신을 불렀다" (욘 1:5). 그리고 자기의 신들을 바꾼 나라의 예는 찾아 볼 수 없다(렘 2:11). 만일 천군이 그들의 신들이라면 그들은 그 신을 사랑하며 섬기며, "그 신들을 좇으리라(렘 8:2)."2.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얼마나 단호히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결심하는가?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리로다. 우리는 우리 모든 길에서 그를 시인하며, 끊임없이 그를 주목하며 행하리라.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 외에는 행하지 않으며 그와의 관계를 자신있게 공포하리라." 그들의 확신이 단호하여, 논쟁할 여지가 없음을 주목하자.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리라." 이는 공의롭고 이치에 맞으니, 그는 "우리의 하나님" 이시다.
또 그것은 영구한 결심이다. "우리는 영원히 그를 행하며, 결코 그를 떠나지 않으리라. 그는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실 것이며, 따라서 우리도 그의 백성으로 결코 우리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Ⅸ. 분산, 비탄, 연약함이 교회에 있지만, 교회는 형성되어 설립되고 매우 중요시될 것이다(6,7절).
1. 교회의 상태는 부분적으로 유대 민족의 부패를 통하여, 또 한편으로는 그들이 신음하던 압제를 통하여, 구약의 마지막 시대에는 비천하고 연약하고, 매우 무력하게 되었다. 그들은 "상하고, 근심하며, 흩어진" "양떼" 와 같았다(겔 34:16; 렘 1:6, 17). 그들 중에, 또는 다른 곳에 있는 선한 사람들은 흩어져서 매우 연약해졌고, 다소 잃어버려져서 멀리 보내졌다.2. 이 모든 비탄이 치유되고, 질병은 고쳐질 것이 약속된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마 15:24), "이스라엘의 잃은 양" 에게 그의 사도들을 보내실 것이다(마 10:6). 주저하며 용기가 없어서 바로 서지 못하는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모으셨나니(7절), 그들은 로마서 11장 7절에 언급된, "은혜로 택하심을 얻은 남은 자" 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였다. 또한 멀리 쫓겨난 이방인들 중에서(이방인들은 그렇게 서술되어 있다. 엡 2:13; 행 2:39) 그는 강한 나라를 일으켰으니, 그들의 대다수가 유대인보다도 더 많이 교회로 들어왔다(갈 4:27). 그리고 그와 같은 강한 나라인 복음의 교회는 지옥의 문이 결코 틈타지 못할 견고한 나라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어떤 나라보다 더 많으며 "여호와와 그의 권능 안에서 강하게 되었다."
Ⅹ. "메시야" 께서 이 왕국의 왕이 되사 그것을 보호하고 치리하시며, 그것의 만사를 최선으로 명하시기를 시대의 마지막까지 하실 것이다. 주 예수께서 말씀과 성령에 의해 "시온 산에서 그들을 치리하리라." 또 이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리니 "그의 치리와 평화의 증가에는 끝이 없을 것임이니라."
딸 시온의 승리 (미가 4:8-13)
이 대목은 시온과 예루살렘을 말하며, 여기서는 "양떼의 망대" 또는 "에돌의 망대" 라고 불렀다. 그러한 장소는 베들레헴 근처에 있다(창 35:21). 또 혹자의 추측으로는, 그것은 천사들이 목자들을 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에 접하게 했을 때, 목자들이 양 떼를 치던 바로 그 장소라 하며, 어떤 이들은 베들레헴을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다(5:2). 어떤 이들은 "양문" (느 3:32)이라고 불리우는 예루살렘 문에 있는 망대라고 생각하며, 그 문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루살렘 또는 시온, 즉 "다윗의 망대" 인 듯하다. 이스라엘의 모든 양들이 일 년에 세 번 거기로 몰려온다. 그것은 "요새" (성채)(예루살렘에 있는 한 장소의 이름도 되는 "오벨", 느 3:27), 또는 "시온의 딸" 로 호칭되는 성이었다.
Ⅰ. 양떼의 망대요 그리스도의 양들 모두가 한 목자 아래 보호되는 양의 우리인 영적 예루살렘, 곧 복음의 교회라는 영광스런 약속을 받는다. "네게로 돌아오리라. 네가 오랫동안 원하고 바랐던 것, 처음 지배까지, 즉 다윗과 솔로몬의 지배와 동등한 위엄과 권세가, 이 통치로 예루살렘이 처음 일어났고 포로되어 빼앗겼던 왕국이 예루살렘의 딸에게 다시 올 것이다. 그것은 예전처럼 위대한 자태를 나타내어 나라들 중에서 빛날 것이며, 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리니, 이는 첫 또는 으뜸되는 통치이다." 그러나 이것은 스룹바벨에게서 성취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통치는, 내적으로 영광과 주권, 그리고 외적으로 권세의 확장을 고려해 볼 때 처음 통치만 못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메시야" 의 왕국을 지칭해야 하며(갈데아 의역판은 그렇게 언급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께 "그 조상 다윗의 위" 를 주시사 "거룩한 산 시온" 의 왕으로 세우시고, "이방을 그의 유업으로 주고" (시 2:6), "장자로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할" (시 89:27; 단 7:14) 때에 그 완성을 볼 것이다. "다윗이 심령으로 그를 주(主)라고 불렀으며," 다윗은 그를 목격했고(Pocock 박사가 말한 것처럼), 이 목격은 진실하며, 그가 솔로몬보다 위대하셨고, 그들의 어떤 통치도 그 크기와 수명에 있어서 메시야의 통치와 비교가 안 됐다.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 이라고 외치며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에서 환영했으니, 이는 그것이 "시온의 딸에게" 돌아온 "첫 통치" 였음을 보여준다.
복음서 기자는 그것을 시온의 왕이 그녀(시온)에게 오시리라는 약속으로 적용한다(마 21:5; 슥 9:9).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부여한다. 시온과 양떼의 망대 예루살렘, 유대인의 나라에게 "처음 통치가 돌아왔다." 즉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처음으로 세워졌고 "왕국의 복음" 이 먼저 "선포되었고" (눅 24:47),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유대인의 왕" 이라고 불리워졌다.
Ⅱ. 이는 문자 그대로의 예루살렘의 환난에 대한 예언에 의해 설명된다. 이 환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복음의 예루살렘에 행하실 것의 일에 대한 한 모형과 상징으로서,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호의와 구원이 허락될 것이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고통 중에 놓인다. "그녀는 크게 부르짖으니, 그녀의 이웃 전부가 그녀의 (딸 시온) 슬픔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속에 왕이 없고," 그녀가 가졌던 영예와 권세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녀가 "왕비로 앉았을 때처럼" 열방을 다스리는 대신 그들에 의해 통치되고 포로가 되었다. 그녀의 "모사가 죽었으므로" 그녀는 더 이상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녀의 원수의 뜻에 맡겨져서 그 원수들의 모사에 의해 처리된다. "고통이 그녀에게 임했다" (한글 개역과 다름).(1) 그녀는 바벨론으로 잡혀가 슬픔의 고통이 있게 된다. "그녀는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하게 되었으며, 온갖 불편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바벨론까지 이르러 지겨운 70년을 불행한 포로 생활로 보내고, 구원받기를 기다려 그 때를 오랫동안 생각하며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당한다."
(2) 그녀가 바벨론에서 구원을 얻을 때, 그리고 거기서 그녀의 원수의 손으로부터 구원받을 때도 아직 두려움의 고통 중에 있었다. 한 환난의 끝이 다른 환난의 시작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역시," 곧 예루살렘은 재건되는 때에도, "많은 나라들이 그녀를 대적하여 모이기" 때문이다(11절). 그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때도 그랬듯이, 힘 자라는 대로 성전과 성벽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했다. 그들은 마카비 시대에도 그랬다. 그들은 말하기를 "그녀를 더럽히자." 그녀를 죄로 더럽혀진 곳처럼 여겨지도록 하며, 하나님과 인간에게서 버려지고 포기되도록 하자고 했다. 그녀(예루살렘)의 성고가 더럽혀지게 하고 그녀의 영예를 티끌 속에 묻어버리자. "우리의 눈을 들어 시온을 보게 하며" 그 부패를 보고 기뻐하기를 에돔에 관해 말해진 것처럼 하라(옵12. "네가 형제의 날에 방관하지 아니할 것이다"). 눈을 들어 시온에서, 오래 고대하던 그 날에 대한 우리의 소망을 보자.
그들은 이처럼 적이 자기들을 적대하여 연합하고, 자기들을 비방하는 소리를 들을 때, 의심할 바 없이 비탄에 빠져 크게 부르짖게 되리라. "밖엔 전쟁이요, 안에는 공포로다."
2.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공포가 진정되었다. "이제 네가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너의 슬픔과 두려움을 잠잠케 하며 그 속에 빠지지 말라. 이는 사태가 지금 네게 불리하나, 마침내는 잘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고통이 크지만, 그 고통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아서(9절), 애써 구로하여 낳을 것이니, 결국은 좋게 되리라."예루살렘의 고통은 죽어가는 고통이 아니라, 해산하는 진통과 같으니, 잠시 후에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기쁨 때문에 이 고통이 잊혀질 것이다. 바로 그 예루살렘이 이 일로 평안을 얻어, 어떠한 곤궁도 참음으로써, 메시야의 강림 때까지 남을 것이다. 이는 거기에서 처음 그의 나라가 세워졌고, 그녀는 그 축복을 가지고 있는 한 멸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마침내 그녀가 밭같이 경작되어 무더기가 될 때도(3:12 에서 경고된 대로) 그녀의 특권은 영적 예루살렘에 양도되어, 그녀에게 주어진 약속은 완성될 것이다. 이제 예루살렘은 안심할 것이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녀의 바벨론 포로 생활은 끝날 것이니, 복된 아침이 되리라(10절).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의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이는 하나님의 종의 구실을 한 고레스 왕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모형이었고, 영원한 복음 속에 선포된 영적 사슬로부터 해방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매인 자들에게 해방을 주셨던" (눅 4:18, 19) "여호와의 희년" 이다.
(2) 그녀의 원수들의 계획이 후에 좌절될 것이다. 아니 도리어 그들에게 덮칠 것이다(12,13절). 그들은 그 한 날을 약속했으나 그것은 "하나님의 날" 로 밝혀질 것이다. 그들이 "시온을 치려고 모여" 파괴하려 했으나, 그것은 그들 자신의 파멸의 화근임이 밝혀질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되리라.
[1] 그들이 시온을 치려고 함께 모여온 것이 그들의 파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깨뜨리려고 "연합하여 허리띠를 매지만," 오히려 그들이 "쳐서 깨뜨려질" 것이다(사 8:9).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함께 모여, 신의 섭리가 그들 속에 나타날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로 인해 무엇을 계획하시는지 거의 생각하지 않으며, 그의 권고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함께 모여 무엇을 목적으로 할는지는 알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아 무엇을 목적하시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시온의 파멸을 목표로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멸망을 목표하신다. 사람이 신의 섭리를 성취하는 도구로 쓰일 때는, 그들과 하나님의 의도는 전혀 딴판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앗수르의 왕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그의 백성의 타락을 징계할 막대기여서 그들을 개혁하는 데 쓰여진다. "그의 뜻은 이 같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생각도 이 같지 아니하다" (사 10:7). 그리고 여기서는 이렇게 된다. 열방이 마치 전장(戰場)에 모여드는 병사들처럼 시온을 치려고 모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곡식단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 그들을 모아 쳐서 깨뜨리신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시온에 대적하여 모이지" 않았더라면, 그토록 쉽고 효과적으로 파멸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를 파멸시키려는 원수들의 계획들이 흔히 그들 자신의 파멸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을 파멸을 위해 준비하고 그 길에 자신을 나아가게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손이 계획한 올무에 걸린다."
[2] 시온은 그들을 이기는 영예를 가지게 되리라(13절). "곡식단이 타작 마당에 모이면" 곡식이 소에 의해 밟히는 것처럼, 그들이 밟힐 때, "일어나서 칠지어다, 딸 시온이여! 그들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도주하는 대신에, 대담하게 그들을 공격하되 신의 섭리가 허락하신 그들을 짓밟는 기회를 취하라. 너 자신의 연약함을 핑계하지 말고 네가 그와 같은 수 많은 원수의 연합에 상대가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도록 네 뿔을 철같게 하며, 그들이 넘어질 때 그들을 밟도록 네 굽을 놋 같게 하리라! 이리하여 너는 오랫동안 너를 쳐서 깨뜨렸던 여러 백성을 쳐서 깨뜨릴 것이라."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때 "딸 바벨론은 때가 이른 타작 마당과 같은지라" (미구에 추수 때가 이르리라. 렘 51:33). 그리고 "지렁이 같은 야곱" 이 하나님께서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타작 기계" 가 된다(사 41:14, 15). 뒤바꿔진 처지가 얼마나 기이하며, 복된지! 야곱은 타작마당이었고, 바벨론은 타작 기계가 되었도다!(사 21:10)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할 정복 사업을 가지실 때, 그는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공급하시고, 그 뿔을 철 같게 하고 그 굽을 놋같게 하실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실 때 그들은 그가 주신 힘을 사용하여 맡기신 일을 수행해야 한다. 시온의 딸도 일어나 타작해야 한다.
[3] 그 승리의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질 것이다. 시온은 이 곡식단들을 타작마당에서 타작하지만, 타작된 곡식은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탈취물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며(즉 내가 그것을 성별하리라), 그들의 제물을 온 땅의 대주재께 돌리리라." 시온의 승리로 획득된 탈취물은 성소로 가져와 미디안의 경우처럼 부분적으로(민 31:28), 또는 여리고의 경우처럼 전부 하나님께 드려질 것이다(수 6:17). 하나님은 여호와시오, 만유의 원천이시니, 그는 "온 땅의 대주재" 요 힘의 원천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어떤 탈취물이나 재물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지만, 만일 기꺼워한다면 그것을 요구하실 수도 있다. 또 우리는 우리 자신과 함께 우리 가진 모든 것을 그의 영예를 위해 바쳐 그가 지시하는 대로 쓰여지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 가진 모든 것은 그 위에 "여호와께 돌리는 거룩함" 을 가져야 하며, 우리의 탈취물과 재물 모두는 "온 땅의 대주재께 구별하여 드려야" 한다(사 23:18).
그리고 예상 외의 성공은, 그것이 전쟁에서의 탈취물이든지 무역에서의 수입이든지 간에, 특별한 감사를 요한다. "우리에게 부요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정직하게 얻은 것에 대해서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어떤 이들은 이 모두를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의 그의 패배를 가리킨다고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바벨론의 멸망, 또 다른 이들은 마카비의 성공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석학한 포콕(Pocock) 박사와 몇몇 사람들은 그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룰 흑암의 세력에 대한 영적 승리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열방은 자기들이 기독교가 아직 성장하지 못했을 때에 파멸시켰다고 생각했으나, 기독교가 그들을 이기고 승리하였으니, 곧 증오에 가득 차서 대적하던 자들, 특히 유대 민족은 "깨어졌다" (마 21:44).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무리가 교회로 거두어져서 그들과 그들의 재물이 "온 땅의 대주재" 이신 주 예수께 구별되어 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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