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령들과 치리자들의 약탈 행위 (미가 3:1-7)
치리자들과 예언자들이 신실하게 맡은 바를 다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이 영광을 누린다. 그러나 그들이 신의를 저버리고 그에 반대되게 행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허물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잘못에 대한 말을 듣게 되며, 그들 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예언자는 하나님의 재판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규탄한다.
Ⅰ. 치리자들로 그들에 대한 비난과 파멸을 듣게 하라.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은" 예언자가 그들에게 고하는 말을 들으라고 소환된다(1절).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 중 가장 큰 자들에게도 책망을 가한다. 그 말씀을 섬기는 자들은 기회있는 대로 그것을 적용시켜야 한다. 여기서 예언자는 그 말씀을 숙고하는 중에 평안을 누린다. 그래서 그 성공이 어떻든 간에 그는 신실하게 신의를 다했다. "청컨대 들으라. 치리자들아!" 그는 사람의 얼굴이 두려워 의무를 피하는 비겁자는 아님을 증거했다. 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그들로부터 무엇이 기대되었는가? "공의는 너희가 알아야 될 것이 아니냐?" 그는 공의가 실행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행해지지 않는다면 공의를 아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공정히 공의를 행함이 네 할 일이 아닌가. 그리고 얼굴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불공정하게 대하는 것을 뜻한다), "공의를 알고, 모든 송사 공과를 아는 일이 아닌가?" 또는 두령들과 치리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공의의 법규들을 익히 알고 있음을 인정하는 말일 수도 있다. 이는 그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있어서, 가난하고 어리석은 다른 사람들처럼 무식을 핑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공의의 법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을 더 화나게 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도 죄를 짓기 때문이다. "네가 공의를 알 수 있지 않느냐? 그렇다. 그러므로 가만히 서서 네 자신의 판단을 들어서 만일 그것이 옳다면 그에 대해 어떤 반대가 있을 수 있는가를 판단하라."2. 공의의 법규를 알면서도 그를 어김이 얼마나 사악한가? 그들의 원칙과 성벽이 좋지 않다. 그들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선함을 증오하되, 그 선함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봐 증오한다. 그들은 선을 행하기를 꺼려하며, 선이 행해지는 것도 꺼려한다. 그리고 그들은 "악을 좋아한다." 그들은 위해를 즐거워하며 위해를 가하는 자들을 좋게 생각한다. 그들이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에 따라 실천한다. 그들은 매우 잔인하며, 자기들의 권력 아래 있는 자들에게 가혹하다. 그리고 그들의 긍휼을 기대하는 자는 아무도 그것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야만스럽게 그들이 보호해야 할 사람들을 약탈하고, 삯군 목자처럼 먹일 양무리로부터 떠난다. 아니 오히려 먹이는 대신 그들을 잡아 먹는다(겔 34:2). 양떼를 먹이는 자가 "그 양떼의 젖을 먹는" 것은 참으로 정당한 일이다(고전 9:7). 그러나 이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내 백성의 살을 먹는다. 그들이 털옷을 입어야 마땅한 데,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로부터 가죽을 벗긴다" (3절).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혹독히 징세함으로써, 그리고 벌금을 과하고 체형을 가하되 죄를 뒤집어 씌워서, 그들은 백성들의 영토와 가족들을 파멸시켰으며, 어떤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어떤 이들의 생계를 박탈하는 행위들은 목자라기보다는 그들의 백성들에게 마치 맹수같이 행하는 것이다. "그들은 골수까지 이르도록 그 뼈를 깎고 그 살을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이는 그들이 다음과 같음을 알려 주고 있다.
(1) 그들은 백성들에 대해 매우 탐욕스러우며 약탈적이며, 그들 자신은 사치와 음탕에 빠진다.
(2) 그들은 수하에 있는 자들에게 매우 야만스럽고 잔인하며 그들이 가난하게 만든 자들을 보살피지 않고 단지 스스로를 부하게 할 뿐이었다. 그러한 악은 만악의 뿌리인 돈에 대한 사랑이다.
3. 그들이 백성들에게 이토록 잔인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실까? 그 법칙은 뻔하다. 그들은 긍휼을 베풀지 않았으므로(4절) 긍휼없이 심판당하리라.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되 가난한 자가 그들이 잘 살 때에 그들에게 호소했으나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비탄의 날에도 그러하리라." 가장 교만하고 뻐기는 죄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일찍이 중요하지도 않게 생각하고 본받지도 않았던 그 긍휼을 애걸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헛될 뿐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얼굴을 가리우실 것인데, 특히 그들이 그의 선의를 필요로 하며 자기들이 이 선의없이 파멸되는 것을 볼 때에 그럴 것이다. 또 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에게 등을 돌렸으나, 그 때에는 그가 그들에게 등을 돌리시기를, "마치 그들의 행위가 악하던" 것처럼 하실 것이다. 사람들은 나쁘고, 좋게 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으나, 아도니베섹처럼 그들이 남들에게 행한 대로 그들에게 되어지리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복수하시는 이는 공의롭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완고하심을 보이시사 잔인하고 무자비한 자들의 손에 맡기시기를, 그들이 이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것처럼 하신다." 이는 잠언 21장 13절 말씀과 상통한다.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그러나 긍휼있는 자들은 긍휼을 얻을 희망을 지닐 이유를 가지고 있다.
Ⅱ. 예언자들로 하여금 그들에게 내려진 책망과 파멸의 운명에 대하여 듣게 하라. 그들은 거짓되게 예언했으며, 치리자들은 그들을 써서 통치를 유지했다.
다음 사실들을 관찰하라.
1. 무엇이 그들의 죄인가?(1) 그들은 백성에게 아첨하고 그들을 속이는 것을 전문으로 삼았다. "그들은 내 백성을 죄짓게 하고" (한글 개역과 다름) 그들로 실수하게 하되, 그들이 해야 할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실 것에 관해서 잘못을 범하게 한다. 지도자들이 그들을 잘못 행하게 하며, 앞서서 인도해야 할 길에서 그들을 이탈시키는 때, 그것은 그 백성에게는 불행이다. "그들은 평화를 외침으로써 그들로 잘못되게 하며 그들이 잘 한다고, 또 모든 것이 잘 되리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오도한다. 그러나 그들은 죄의 길에 있으며, 파멸의 일보 직전에 놓여 있다.
그들은 "평강을 외치나," "그들의 이로 문다." 아마도 이 말의 뜻은 마치 우리가 막 말하려고 하는 것을 참을 때 흔히 그렇듯이 그들 자신의 입술을 문다는 뜻일 것이다. 그들이 "평강" 을 외쳤을 때 그들의 마음은 거짓을 말하였고, 그들은 자신의 말을 삼켜 자기를 모순에 빠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이를 물고, 그것을 안에 간직했다. 그들은 소경의 눈먼 인도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앞의 웅덩이를 보고도 따라 오는 자들을 그 속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2) 그들은 포식하고 그들 자신의 배를 섬기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이는 바울의 시대에 유혹자들이 했던 것과 같다(롬 16:18). "저들의 신은 저들의 배요" (빌 3:19), 그들은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친다." 즉 그들은 좋은 음식으로 그들을 먹이는 자들에게 아첨하며 그들을 치하할 것이다. 그러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 즉 끊임없이 그들을 먹이지 아니하는 자에 대해서는 원수같이 여긴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후원자들에게 하듯이 "평강을 외치지" 않고 오히려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며, 마치 로마 교회의 간교한 사제들이 봉납자들의 봉헌물에 따라서 그들의 신상을 미소짓게도 하고 찡그리게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들의 태도보다는 자기 자신들에게 대한 태도에 따라서 평안을 선포하거나 공포를 선포한다.
사역자의 필수적인 자격에 "부정한 돈을 탐하지 않는" 것을 넣은 것은 정당한 주장이다(딤전 3:3; 딛 1:7).
2. 이 죄에 대한 판결은 무엇인가?(6,7절) 다음과 같이 경고되었다.(1) 그들은 평강을 외친 자들과 함께 환난과 불행에 빠질 것이다. "밤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한글 개역과 다름). 이는 그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아첨을 떨며 결코 오지 않으리라 희망하게 했던 흑암과 추위로 가득한 그 환난의 밤이다. "너희는 흑암을 만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보다 너희에게 더욱 어두울 것이다.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한 낮에도), 모든 평안이 그들로부터 떠나며, 그로 인한 모든 소망을 빼앗길 것이다. 그들에게는 "낮도 캄캄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빛을 약속했었다.
이러한 외적 환난으로 둘러싸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에는 혼란이 가득할 것이며, 그들의 잔재주가 결국 막힐 것이다. 그들의 머리는 흐려지고 그들 자신의 생각이 그들을 괴롭힐 것이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흑암 중에 있게 했으니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흑암으로 이끄실 것이다.
(2) 그로 인해 그들은 말문이 막힐 것이고, 그들의 모든 그럴싸한 예언들이 영원히 수치가 되리라. 그들은 참된 이상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사건이 그들의 평강의 예언이 가짜임을 드러냈으므로, 그들이 전혀 이상을 보지 못했다는 것과 그들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그것은 전부 사기였고, 그들은 거짓말장이요 사기꾼들이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명성은 아주 땅에 떨어지고 그들의 확신도 물론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이 산란하고 혼란하여 그들의 꾸며낸 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 흑암 때문에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그들이 점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가짜 이상조차 보지 못할 것이요, "수치를 당하여" 당황해서 "입술을 가리울 것이니" 마치 좌절되어 아무 말도 할 말이 없는 사람과 같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은 단지 그들 자신의 얼굴에 당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치리자들과 선지자들의 죄악상 (미가 3:8-12)
여기서 우리는 다음 사실들을 살필 수 있다.
Ⅰ. 예언자는 그가 일함에 있어서 그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엄숙하게 선포하고 주장하되, 그것을 치리자들과 통치자들을 솔직하게 다루는 데 있어서 그 자신이 정당하게 수행해야 할 일로서 감당한다. 그는 높은 사람들에게 이처럼 담대히 할 수 없었으나, 예언자적인 충동과 감동에 의해 그 일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것을 말한 것은 그가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하셨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입에 넣어 주신 말씀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그것은 거짓 예언자에 반대되게 되었다. 그들은 거짓말장이로 입증될 때까지 살아서, 수치로 가득한 생을 보낸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한 번도 신실하게 대해 줄 용기를 못가지며 단지 그들의 죄에 대하여 아첨만 했다. 그들은 "음탕하고 여호와의 신이 함께 하지 않으니," 진실로 (미가는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으로 채움을 얻었다" (8절). 그의 속에서 그가 말한 것이 진리임을 확신했으므로 그는 그것을 단호하게 말했다. 만일 그를 저 거짓 예언자들과 비교해 본다면 그들 사이는 비교가 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렘 23:28) 거짓 불과 참 불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여기서 다음 사실을 살펴 보라.
1. 이 예언자가 갖춘 자격이 무엇이었나. 그는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의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가졌고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들의 구원에 대한 관심과 죄에 대한 불타는 듯한 적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그는 높은 자나 많은 군중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책망하고 증언할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어떠한 환난이나 낙담될 일을 당했어도, 그들이 그를 단념시키거나 그의 일을 못하도록 만들지 못했다. "이것들 중에 어떤 것도 그를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이 모두는 공의와 신중에 의해 인도되었다. 그는 담대할 뿐만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선포 속에는 열뿐만 아니라 빛이 있었고, 열망의 정신뿐만 아니라 지혜의 정신도 있었다. 이처럼 이 하나님의 사람은 그가 말해야 할 모든 선한 말과 그가 행해야 할 모든 선한 사업에 대해서 "전적으로 갖춰진" 사람이었다. 그의 선포를 들은 사람들은 그가 "권능" 과 "공의" 로 가득함을 지각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말들로 인한 권능과 확증과 실증으로 그들의 "깨달음이 열렸고," 그들의 "심장이 타오르는" 듯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2. 그는 이 자격을 어디로부터 획득했는가? 그 자신으로부터나 그 자신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가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으로 채움을" 받았던 것이다. 그의 속에 있었던 것과 그가 말한 것은 실로 "여호와의 신" 이었음을 알 수 있고, 그가 전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말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반드시 실행되리라는 것을 알고, 담대하고 권위있는 자답게 말했으며,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사 1:7, 8).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담대히 행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위엄을 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인간들로부터의 반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아니다.
그는 담대함의 근거였던 예언의 신(영)을 모시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부여한 성결의 영도 모시고 있었다. 그가 강했던 것은 그 자신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누가 이 일들에 있어서 충분한가?" 오직 "여호와와 그의 재능의 권능에" 있다. 이는 "그로부터" 모든 "우리의 능력" 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선한 권능으로 가득한가? 그것은 순전히 "여호와의 신" 에 의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으로는 물처럼 약하기 때문이다. 그의 백성과 사역자들에게 힘과 권능을 주시는 분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
3. 그는 이들 자격(공의와 권능)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그는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고했다. 만일 허물이 야곱과 이스라엘에게서 발견된다면, 그들에게 그 허물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그들에게 그것을 말하고 "크게 소리질러" "지체하지 않는" 것이 임무이다(사 58:1).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온 자는 기꺼이 그들의 잘못에 대한 말을 들어야 하며, 그들의 사역자로 하여금 솔직하고 신실하게 그들을 다루는 것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친절하게 받아들여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책망을 잘 받아들일 만큼 온유한 자가 별로 없으므로, 책망할 사람은 충분한 용기를 필요로 하며, 지혜와 권능의 신에게 기도해야 한다.Ⅱ. 예언자는 그가 본장의 앞부분에서 치리자와 선지자, 곧 "야곱 족속의 두령" 을 대하여 말했던 바를 다시금 늘어놓는다. 이번에는 그는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에게로 자기 몸을 향하게 했다. 1절에서처럼 그들의 참석과 주의에 대한 호소를 되풀이한다(9절). 그러나 이들은 "유다" 의 칠재들을 뜻하리라. 왜냐하면(렘 26:18, 19, 여기서 21절이 인용된다) 이는 히스기아의 통치 중에 말해졌으나 열 지파가 다 잡혀가고 유다가 야곱과 이스라엘에서 지금 남은 자들 전부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특별히 그들에게 말하며 ("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두령과 치리자의 칭호를 그들에게 준다. 사역자는 높은 자들의 죄를 책망하는데 있어서 신실해야 하지만, 무엄하거나 무례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이제 다음 사실들을 살피자.
1. 이 야곱 족속의 두령들이 범한 커다란 사악함(곧 치리자, 제사장, 예언자들의 죄)을 보자.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탐욕스러웠고, 그들의 직책을 금전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남용했다.(1) "치리자는 공의를 미워했다." 그들은 그 법에 의해 지배받으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들 자신의 행실에 있어서나 그들에게 제출되는 재판 사건 때도 그러했다. 그들은 "모든 평등을 왜곡시켰으며" 정의로운 지도와 징계를 비웃었으니, 특히 그것이 그들의 세속적 이익과 배치될 때 그러했다. 의를 행한다는 구실 아래 가장 명확한 잘못을 행할 때, 그것은 평등을 왜곡하고, 치리권의 설립자와 권력의 원천이신 자의 의도에 반대되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들이 시온을 피로 건축하는도다" 라고 책망되었다(10절). "그들은 자기들의 착취와 박해의 정당한 구실로서 시온과 예루살렘을 건축한다고 가장한다. 그들은 거룩한 성읍에 거리와 광장을 더하고 그들을 장식한다. 그들은 교회와 국가에 공익을 확립하며 증진하고, 생각하기를 그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에게 선한 봉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피" 와 "죄악" 으로 함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번성할 수 없다. 또한 하나님의 성읍에 대한 그들의 선한 의도가 하나님의 법에 대한 그들의 모반을 변호해 줄 수는 없다. 거룩한 교회에 대한 불타는 듯한 열정과 신앙의 전파가 강도질과 살인, 그리고 학살과 약탈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시온의 성벽들은 그들을 피와 죄로 구축한 자들의 덕분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의를 가져오지 못한다. "방백들의 직책은 그들에게 올려진 청원을 재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한다(11절). 그들은 뇌물을 주는 자들 편에서 재판을 한다. 가장 공의로운 사유도 사례금없이는 관철되지 않고, 사례금만 있으면 가장 불공정한 사유도 관철될 것이다." 사유에 대한 재판관의 심문이 "그것에서 무엇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일 때 그러한 백성의 소송은 비참한 것이다.
(2) 제사장의 할 일은 백성을 가르치는 일이었고, 이를 위해 법은 그들에게 매우 명예롭고 안정된 생계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은 무엇보다도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하나님의 계시로서 무엇이든지 삯을 받으면 가르칠 것이다. 이는 그들이 알기에는 그들에게 이익을 주고 그들을 즐겁게 할 것이다.
(3) 예언자는 사례금으로 주어진 명예로운 급여가 있었던 것 같다(삼상 9:7, 8). 그러나 이 예언자들은 현세적인 이익을 기대하고 예언했으며 그것이 그들 눈에는 중요한 것이었다. 그들은 "돈을 위하여 점쳤다." 그들의 혀는 돈에 고용되었고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에 최선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데 따라서 예언하든지 안하든지 했다. 그리고 돈을 낸다면, 원하는 계시를 그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그들은 "불의의 삯을 탐했던" 발람의 어울리는 후계자들이었다. 사악한 것이 교회에 대한 열정에 의해 성화될 수 없지만, 거룩한 것이 세상에 대한 사랑에 의해 더럽혀질 수는 있으며, 또 흔히 더럽혀진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 자체로서는 선한 것을 행하나 더러운 정욕으로 할 때에 그것이 그 뛰어남을 잃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증오거리가 된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들의 헛된 가정과 세속적인 확신을 보자. 그들은 "여호와를 의뢰하며," 신앙 고백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그들의 이 사악한 실행 속에 해악이나 위험이 없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여호와께 기초를 두며 그 안에 거하며, 그를 영혼의 터전으로 의지한다. 반면 허세는 "여호와를 의뢰하며" 있는 척 할 뿐이요, 세상을 터전으로 하여 세웠으면서도 하나님을 아전인수 격으로 이용한다. 그들은 큰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1) 그들의 영예에 관해서.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우리가 우리 중에 그의 현존에 대한 증거를 갖고 있으니 곧 그의 성전, 그의 법궤, 그리고 그의 역사하시는 신탁이 아닌가?" 그들은 "성산에서" 그의 위엄으로 "교만하니" (습 3:11), 마치 그들의 교회의 특권이 사악한 행위를 완화하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현존이 그들의 행위를 팔아서 제사장과 백성을 부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그러하다. 여호와께서 그의 계시를 통해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는 그들을 교만으로 부풀어 올렸다. 그러나 만일 여호와께서 그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 그들 가운데 계시다고 상상했다면 그들은 오해했다. 인생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그들과 함께 하신 분으로 생각하나, 실상은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을 그들로부터 떠나시게 하고 마는 자기 기만에 흔히 빠진다.
(2) 그들은 자신의 안전을 확신한다.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교회라는 그들의 특권에 의해 치명적인 안일이라는 잠에 빠진다. 이는 마치 이 특권이 그들을 죄에서 보호하고 벌로부터 보호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인데 이런 생각은 그들의 죄와 그들의 벌에 대한 최대의 가중책이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 인간이 여호와를 모시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죄를 못짓게 하지 못하듯, 그것이 결코 벌로부터 그들을 안전하게 할 수 없다. 그리고 죄인들이 자기들의 교만을 자기들의 안전책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매우 어이없는 일이다.
3. 그들이 상상했던 보호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진정한 사악함 때문에 환난이 그들 위에 임했다(12절).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같이 갊을 당할 것이다." 이것은 미가가 한 담대한 말이라고 인용되는 구절이다(렘 26:18). 다른 통치 기간이었다면 목숨을 잃게까지 되었겠으나, 히스기야와 그의 신하들은 이를 잘 받아들였다. 아니, 그들은 회개하고 돌이켜, 이 경고가 시행되지 않았고, 당시에는 오지 않았다.
(1) 여기에 예언된 것은 거룩한 처소의 황폐이다. 그 처소는 하나님의 현존의 증거와 그에 대한 예배의 처소로서 높이 영광을 받아 왔다. 그런데 밭같이 갊을 당할 것은 시온이다. 그 성은 불타서 허물어질 것이며 땅과 같이 평평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시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 때 그 성읍이 서 있던 땅은 완전한 황폐의 증거로서 갈아 엎는 것처럼 되었고, 황제의 허가없이는 어떤 성읍도 그 위에 세워질 수 없게 되었다. 성도인 예루살렘까지도 황폐의 무더기가 될 것이며, 성전이 있던 "성전의 산은" 찔레와 가시나무가 무성하여서 "숲의 산당과 같이 되리라." 거룩한 처소라도 죄로 인해 더럽혀진다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황폐하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2) 거기 거하는 자들의 사악함이 파멸을 가져온다. "너희로 인하여 시온이 밭같이 갊을 당할 것이다. 너희는 시온을 세우려고 했으나, 피와 허물로 했으므로 그것을 파괴하는도다." 제사장과 방백들의 죄는 흔히 국가와 교회의 황폐임을 명심하자. Delirant reges, plectuntur Achivi-즉 제왕이 어리석게 행하면, 백성이 그로 인해 고통을 겪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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