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압과 유다의 심판 (아모스 2:1-8)
Ⅰ. 이스라엘의 또 다른 인접 국가 중 하나인 모압의 심판이 예고된다. 오늘은 전처럼 서너 가지 죄악으로 결산받고 처벌받게 될 것이다. 다음을 살피자.
1. 모압의 네 번째 죄는 앞서 재판에 회부된 자들과 마찬가지로 잔인이었다. 여기에서 언급되는 사례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지 않고 다른 이방인과 관계된 것이다. 모압왕은 에돔왕의 뼈를 불살라 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에돔인과 모압인 간에 전쟁이 있었고 모압왕은 고뇌와 분노 중에서 자기 신을 달래려고 자기 아들을 법제로 드렸다는 기사를 읽는다(왕하 3:26, 27). 그러므로 나중에 그 모압 왕이나 아니면 그의 계승자들 중 누군가가 그토록 궁지로 몰아넣은 에돔인에게 대한 복수로 에돔인을 치고 왕을 사로잡아 화형시켰거나 아니면 죽여서 그 뼈를 태웠거나 아니면 이미 죽은 에돔왕의 분묘를 파헤쳐 그 뼈를 불태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모압 왕을 구박하던 에돔왕의 뼈를 파내어 분노의 표시로 불살라 회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그 뼈가루를 자기 궁전의 벽과 천장의 회칠에 사용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복수의 기념물로 자기 눈을 즐기려 했을 것이다. Est vindicta bonum vit jucundius ips - 즉 복수는 생명 그 자체보다 더 감미롭다. 인체를 학대하는 것은 야만스런 짓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몸으로 있기 때문이다. 시체를 학대하는 것은 무분별한 짓이다. 아니, 그것은 불경건한 짓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고 기대하는 까닭이다. 왕의 시신을 학대한다는 것은 위엄에 대한 모독이다. 왕의 몸과 이름은 특별히 존중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자를 짓밟는 자는 자기의 비열한 성품을 웅변으로 입증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 사자가 만일 살았다면 그는 그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2. 이 죄악으로 인한 모압의 운명은 다음과 같다.
(1) 죽음의 심판. 잔인하게 취급하는 자는 잔인하게 취급될 것이다. 모압은 죽을 것이다(2절). 모압인들은 전쟁에서 칼로 멸절당할 것이다. 전쟁의 칼은 요란함과 외침과 나팔소리 중에서 죽인다. 그런 상황은 사자의 포효가 그의 찢음을 더욱 악화시키듯 그 살륙을 더욱 두렵게 할 것이다. 군인의 모든 싸움에는 어지러운 소리가 함께 한다(사 9:5).
(2) 그것은 모압의 재판관에게 대한 심판이다. 그들은 재판장을 에돔왕의 뼈에 대해 불살라 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그들 중에서 재판장을 멸하리라. 그는 자기보다 높은 재판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고 말씀하신다(3절). 대재판장인 왕과 모든 하급 재판관인 방백들이 함께 멸망받게 될 것이다. 백성이 통치자의 죄로 말미암아 수난당하게 될 때에는 통치자들도 피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렘 48장 참조).
Ⅱ. 유다도 이스라엘의 가까운 이웃이었다. 그러므로 공의가 순회하고 있는 이상 유다를 그저 지나치지 않을 터였다. 유다는 스스로 이방인화 되어 그들과 섞였다. 그러므로 기소 양식은 다른 민족의 경우와 같다.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일으키지 아니하리라." 유다의 죄는 다른 열방의 죄만큼 많았다. 우리는 유다가 열방과 꼭 같은 비난속에 묶여 있음을 알수 있다(렘 9:26). 그들이 모두 매 한가지라는 판결은 여기에도 나온다(5절). "비록 하나님이 알려진 땅이지만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비록 그것이 거룩한 도성이며 내가 그 궁중에서 자기를 피난처로 알리셨을지라도 내가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시 48:3). 그러나 유다가 여기서 책망받는 죄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 다르다. 열방은 인간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치르지만 유다는 하나님께 대한 불의에 대해 추궁을 받고 있다(4절).
1.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무시하고 불복종을 고집했다.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였다. 그들은 마치 여호와의 율법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고 그 안에는 소중한 것이 없기라도 한 듯 여겼다. 이 점에서 그들은 율법을 제정한 분의 권위와 주권뿐만 아니라 지혜와 공의와 선하심도 멸시했다.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지 않을 때는 사실상 양심에 거리낌도 없었고 전혀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2. 그들은 여호와의 경쟁자들 곧 그들의 우상을(본문:거짓 것)존경하였다. 그 거짓 것은 그들을 미혹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왜냐하면 우상은 거짓 스승이기 때문이다(합 2:18). 우상 숭배의 미혹에로 인도받는 자들은 그 미혹 때문에 다른 무수한 미혹에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 Uno dato absurdo mille Sequuntur-즉 한가지 불합리는 천 가지 불합리를 끌고 온다. 하나님은 무한하고 영원하신 영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가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거짓 것으로 바뀌게 될 때에는 그의 다른 모든 진리도 거짓 것으로 변화될 위험에 놓인다. 이와 같이 우상은 그들을 미혹케 했다. 그래서 정당하게도 하나님은 그들을 강한 미혹에 내 주신 것이다. 그들이 그 "열조가 따라가던" 거짓을 따른다는 것이 그들의 범죄에 변명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편에 놓인 거짓 것과 함께 멸망당할 열조의 선례를 경고로 삼아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Ⅲ. 우리는 드디어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해 묵시받은 말씀과 접하게 된다. 견책과 경고는 한 바퀴 돌아와서 여기서 이스라엘에 집중되고 정착하게 된다. 그는 다른 열방과 마찬가지로 서두를 시작한다(6절). 이 모든 나라들이 불의 때문에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이스라엘인들은 무사히 넘어갈 것인가? 여기서 그들의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은 어떻게 따지려 하시는지 살펴보자.
1. 공의의 왜곡. 이것은 행정과 사법을 위탁받은 재판관과 행정관과 관계 당국자들의 죄였다. 그들은 한 조각의 은을 위해서는 의인과 의인의 송사를 예사로 팔았다. 판결은 사건의 공과를 따라 내려지지 않고 뇌물에 좌우되었다. 판결은 가장 많은 금액을 부르는 자에게 낙찰되었다. 그들은 신 한 켤레 즉 자기들에게 제안된 최소의 이익에도 가난한 자의 생명과 생계를 팔아 넘기려고 했다. 그들에게 신 한 켤레만 주어 보라. 그러면 그나마 신 한 짝도 줄 수 없는 가난한 자의 사건은 매수될 것이며 인정사정 보지 않는 자들의 수중에 넘겨 버릴 것이다. 그들은 그냥 파리만 날리느니 보다 작은 사냥감이라도 좇아 갈 것이다. 그런 자들은 떡 한 덩이를 위해 범죄할 것이다. 어떤 일로 자기 양심을 굽히려는 자는 결국 형편없는 것에도 자기 양심을 굽히게 된다는 데 유의하자. 은을 위해 공의를 팔기 시작하는 자는 이윽고 신 한 켤레, 헌옷 한 벌에도 넘어갈 만큼 지저분하게 될 것이다.2. 빈자의 학대. 그들은 빈민에게 해를 끼침으로써 이득을 보려고 노력했다. "저희가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낸다." 그들은 극도의 탐욕으로 가난한 자들을 삼키며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슬픔 중에 있는 자들과 돌아가신 부모로 인해 애곡하는 고아들을 먹이로 삼는다. 그들은 그런 불행을 당한 자들에게 달려들어 그 재산을 삼킨다. 그들은 티끌 중에 있는 가난한 자의 머리를 짓밟기까지는 결코 쉬지 않는다. 또는, 그들은 땅의 티끌 즉 희고 누런 티끌인 은과 금을 탐낸다. 그들은 그것을 간절히 탐내어 부당한 강요로 가난한 자의 머리에 그것을 부과한다. 타인을 가난뱅이로 만들어서 자기가 부유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오래도록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할 죄다. 이것은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가 겸손하고 온화하여 피해를 입어도 참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궁리한다. 그들은 겸손한 자의 권리를 침범하며 그의 자위 수단을 짓밟고 그에게 유리한 법의 통로를 막아 그로 하여금 의로운 주장을 하도록 내버려두지 아니한다. 이것이 그의 길을 굽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에게 가해진 피해를 많이 참으면 참을수록 가해하는 자의 죄는 더욱 크며 하나님이 그 억울함을 시정하시고 그를 위해 복수해 주실 것을 각오해야 할 기회도 더욱 많아진다.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는 아니 하였사오나 주께서는 들으시리이다" (시 38:13).
3. 가증스런 음란. 이것은 이방인 중에도 없는 근친상간이다(고전 5:1).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닌다는 것은 극히 난잡하고 패륜한 음행의 본보기다. 그렇지만 이 일에는 압제와 늑탈의 죄도 발견되고 있다. 왜냐하면 정결법은 공의의 띠를 끊고 그 결박을 벗어버린 자들을 지지하는 적이 드문 까닭이다. 이 악은 거룩한 종교와 그 신도들에게 여간 추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죄를 범하는 자들은 고의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더럽히려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그런 악행을 묵인하시기라도 한 듯 이방인 사이에 그의 이름을 타기 받도록 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처하는 자들이 이런 짓을 하면 하나님은 그들과 한 패거리로 오인될 게 아닌가!
4. 그들은 압제와 늑탈로 획득한 것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척했지만 실은 자기를 만족시키며 기쁘게 했다(8절). 그들은 불의와 부정에 우상 숭배를 덧보태면서도 우상 숭배로 자기들의 불의와 부정을 속하려고 생각한다.
(1)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당하게 착취한 것으로 흥청거리며 즐거워한다. 그들은 저당잡은 옷 위에 네 활개를 펴고 편안히 당당히 눕는다. 그들은 율법대로 그 옷을 그 날 밤에 돌려주어야 했다(신 24:12, 13). 게다가 그들은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신다. 그들은 정죄받은 자에게 중한 벌금을 과하여 부정으로 얻은 것을 육욕에 탕진한다.
(2) 그들은 그 단 옆(또는 앞)에서 압제의 이득물로 잔치하며 그들의 신의 전에서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이 죄를 속하려고 생각한다. 그들은 금송아지를 섬기던 곳에서 이런 짓을 했다. 그들은 마치 신을 그들의 이익의 동업자로 만듦으로써 범죄의 공범자로 만드려는 듯이 행동한다. 거짓 신들에게는 이것이 훌륭한 예배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은 이렇게 조롱 당하진 않으실 것이다. 그는 번제를 위한 강탈(한글 개역:불의의 강탈, 사 61:8)을 미워하시며 정직하게 획득한 것으로가 아니면 기쁘게 예배받을 수가 없다고 명백히 공언하셨다.
이스라엘에게 대한 충고 (아모스 2:9-16)
Ⅰ. 하나님은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베푸신 큰 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신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하셨고 이들 십 지파는 그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9, 10절). 우리는 이전에 받은 자비를 종종 상기받을 필요가 있다. 이 자비들은 우리가 범하는 죄를 극히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끼지 않고 주시며 우리의 초라함이나 무가치성을 가지고 꾸짖지는 않으신다. 그는 그의 은사와 우리의 공로간의 불균형을 들어 우리를 책망하진 않으신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배은망덕과 그의 은총에 대한 그릇된 보답을 가지고는 우리를 꾸짖으신다. 하나님은 자기가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말씀해 주시는데 이것은 우리가 혜택받은 대로 갚지 않은 데 대해 수치감을 느끼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아들아 기억하라, 이스라엘아 다음 사실을 기억하라."
1. "하나님은 너를 노예의 집에서 이끌어 내셨고 저를 애굽땅에서 구출하셨다. 아니면 너는 종살이로 망했을 것이다."2. "하나님은 너를 사십 년 동안 광야에 인도하셨고 먹여 살리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굶주림으로 멸망당했을 것이다." 우리 조상에게 대한 자비는 곧 우리의 자비라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도 없었을 것이다.
3.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가나안에 땅을 마련하셨다. 하나님은 출애굽 시의 기적보다는 다소 열등한 일련의 기적으로 원주민을 멸절시키셨다(9절). 그들의 도중을 가로막은 대적들의 장대함을 주목하자. 이것은 이 대적들의 정복으로 하나님이 더욱 크시다고 찬송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신장은 장대하여(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았다), 키뿐만 아니라 힘도 굉장히 세어서 그들은 강하기가 상수리나무 같았다. 그들의 나라는 열방 사이에서 혁혁하였고 모든 인방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들의 방비와 후원 태세를 볼 때 공격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 나라는 장엄한 백향목같이 우뚝 서 있었고 강인한 상수리나무처럼 건강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거기에 포도나무를 심으시기 위해 이 아모리인들을 베어 넘겼을 뿐만 아니라, 뿌리채 뽑기까지 하셨다(시 80:8, 9).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다. 아모리인들은 더 이상 민족이 되지 못했고 여태껏 그 뒷 소식을 들을 수 없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토록 높이 평가하셔서 사람들을 주어 "그들과 그 백성들의 생명을 대신 하셨다" (사 43:4). 그렇다면 그런 하나님을 멸시하고 배반하는 자들은 얼마나 배은망덕한가!
4.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아모리 사람의 땅을 차지하게 하셨다. 그 땅을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하셔서 jure belli-즉 정복권에 의해 그 땅의 주인이 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보다 나은 권리를 주사 그 땅이 약속으로 그들의 소유가 되게 하셨다.
Ⅱ. 또 하나님은 거룩한 민족으로서 누렸던 영적 특권과 이익을 들어 그들을 꾸짖으신다(11절). 그들에게는 자기 영혼을 위한 보조 수단이 주어졌다. 이 수단을 통해 그들은 현세적 향유물의 사용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따라서 그것은 더욱 값진 것이었다. 열 지파가 하나님의 전과 제단과 제사직을 소유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자기들의 잘못이었다. 그들은 바로 그것들을 버리고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칠흑 같은 암흑 속에 몸담고 있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증거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며 (행 14:17), 그들에게 길을 가르치는 안내자를 두지 않으신 것도 아니다.
1. 그들에게는 선지자들이 있었다. 선지자들은 강력한 경건의 교사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위탁받았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은 무엇이며 노엽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잘못을 꾸짖고 위험을 경고하며 어려움 중에 있는 자들에게 지시하며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로하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선지자로 일으키시고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선지자의 일에 등용하셨다. 그는 그들의 아들 중에서, 그들 자신 가운데서 선지자를 일으키셨다. 모세와 그리스도는 그들의 형제 중에서 일으킴을 받았다(신 18:15). 그들 자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사자로 된다는 것은 그 민족과 그 가족에게 대한 영광이었다. 선지자는 다른 나라에서 파송된 이방인이 아니라 모국어를 사용하는 자국인이었다. 외국인이라면 그들 자신과 그 나라에 위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줄 만도 했지만 자국인들 이기에 그들은 자기들에게 복 빌어 줄 자라는 것을 알았다. 충성된 목사는 그 민족에게 큰 축복이 되며 그들을 그렇게 일으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그 가문의 영광으로 간주되어 마땅하다.2. 그들에게는 경건의 모범이 되는 나실인이 있었다. "내가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노라." 나실인은 맹세에 의해 하나님과 그에게 대한 봉사에 얽매인 자로서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나 포도를 먹는 따위의 여러 가지 합법적 즐거움도 멀리하였다. 청년들 중에는 이생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한창때에 자원해서 이런 향락을 포기하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능력으로 일으켜 세워 자기은혜와 영광의 기념물이 되게 하시며 타락한 시대의 불경건을 쳐서 증거하게 하신 자들이다. 훌륭하고 선한 목사뿐만 아니라 훌륭하고 선한 그리스도인도 그 고장의 큰 축복이 된다는 데 주목하자. 하나님께서 어느 민족 중에서든 다수의 유망한 청년을 일으키시고 청년들을 나실인 즉 경건하고 양심적이며 육욕을 극기하는 자로 만드실 때 우리는 그것이 그 민족에게 대한 길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나실인된 자들은 눈보다 깨끗하고 젖보다 희며 참으로 예의바른 청년들이다. 그들의 윤택함은 마광한 청옥 같다(애 4:7). 그런 사람들 즉 그런 청년들을 자기들 중에 두고 있는 자들은 경건의 지시와 권면을 받는 데 유리하며 만일 그들이 그런 기회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저 다른 날에 추궁을 받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기서 그들 중에서 일으킴을 받은 선지자들 뿐만 아니라. 나실인에 대해서도 추궁을 받고 있다. 하나님은 이 사실에 대해 그들에게 간곡히 호소하신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너희가 너희 중에서 일으킴을 받은 선지자와 나실인에게서 받은 이점을 깨닫지 않았느냐?" 죄인들 자신의 양심이 하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데 주목하자. 즉 하나님은 죄인에게도 은혜의 수단을 부족하게 하지 않으셨으며 그들이 망한다면 그것은 은혜의 수단을 활용하지 못한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이란 것을 죄인의 양심은 증거할 것이다.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 포도원을 위해 더 하실 것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하나님과 그의 포도원 사이를 판단하게 될 것이다(사 5:3, 4).
Ⅲ. 하나님은 그들이 은혜의 수단을 향유하면서도 이를 남용했고 그런 수단을 제공하신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를 제기했다고 하여 나무라신다(12절). 그들은 빛 가운데서 행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그 빛에 반역하며 그 빛을 소멸시키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다. 이것은 그 빛이 자기들 얼굴에 비치어 죄를 깨닫게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1.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위해 무슨 짓도 서슴치 않았고 진지한 신앙심, 엄격한 행위로부터 이탈시키려고 혈안이 되었다. "너희가 나실인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느니라." 그것은 나실인의 맹세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나실인으로 하여금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그 맹세를 깨뜨리게 하여 다른 것도 지킨다고 주장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어떤 이들에게는 놀라게 하거나 꾀이거나 하여 음주하게 하고 공교한 많은 말로 그들을 굴복시켰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강제를 하거나 겁을 주어 음주를 하게 하고 만일 남보다 더 엄격하면 그들을 비난하거나 위협하였다. 여하튼 그들은 나실인들을 음주에 끌어들임으로써 나실인의 순수성을 파괴시켰다. 사탄과 그의 부하들은 천국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마음을 타락시키기 위해 몹시 분주하다는 데 주목하자. 그들은 우리가 나실인이라고 생각한 많은 자들에게 음주와 쾌락과 환락과 술친구를 주어 정복한다.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가 될 가망을 보이던 청년들이 포도주로 인하여 곁길로 나가 영원히 파멸하는 경우는 허다하다. 음부의 세력은 나실인의 타락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2. 그들은 선한 사역자들을 침묵시키며 그 입을 막기 위해 어떤 짓도 서슴치 않았다. "또 너희는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너희는 마치 선지자가 너희 명령을 지켜야 하며 너희 허락없이는 아무 일도 못하기라도 하는 듯이 그들이 예언하면 위협하였다(7:12). 그래서 너희는 선지자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선지자 그 이름을 말하는 하나님을 최대로 모욕하였느니라." 신실한 설교에 좀이 쑤시는 자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 할 자들이다. 하물며, 그런 설교를 억압하는 자들이랴!
Ⅳ. 하나님은 그들이 범죄로 자기에게 가한 악행에 대해 호소하신다(13절). "내가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누름같이 너희 아래서 눌리고 있노라(흠정역).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곤핍을 당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노라. 나는 너희 무게에 눌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러므로 내가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노라(사 1:24). 나는 너희 아래 눌려 있으며 너희 죄의 짐아래 눌려 있으니 마치 추수의 즐거움 가운데 곡식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도다." 크신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불평하시며 특히 자기 백성의 죄를 무거운 짐이라고 호소하신다. 그는 이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며(시 95:10) 그들의 음란한 눈으로 인해 근심하신다(겔 6:9). 세상을 떠받치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온 세상의 무게 아래 눌려 있다고 불평하시지 않으시지만(그는 피곤하지도 낙심하지도 않으시기에) 이스라엘의 죄와 위선적 예배에 대해서는 지기에 곤비하다고 호소하신다(사 1:14). 창조주가 "내가 그들 아래 눌리고 있다" 고 말씀하실 때 피조물이 탄식하며 고통하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롬 8:22).
Ⅴ. 하나님은 피할 수 없는 파멸로 그들을 위협하신다(13절).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읽는다. "보라 곡식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라." 그들은 심판으로 지워져서 그 무게에 주저앉게 될 것이며 과도하게 실은 수레가 짜부라질 때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낼 것이다. 말씀의 확신에 복종하려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무게로 침몰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날마다 은택을 우리에게 내리시는 데도 우리가 죄로 그에게 보답한다면 그의 심판밖에 기대할 게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세 절에서는 하나님이 이 패역한 백성과 다투러 나오실 때는 그들이 그 앞에 서지 못하며 그에게서 도망할 수도 없고 그를 감당하지도 못하리라는 것이 경고되고 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이기실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의 인내가 지친다고 해도 그의 능력은 지칠 줄 모른다. 죄인은 혼줄이 나서야 그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앗수르 군대가 와서 전국을 칼로 유린하고 마구잡이고 황폐시킬 때 아무도 피하지 못할 것이며 모두가 공동의 파멸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을 것이다. 복된 도피와 재수 좋은 퇴각으로 정평이 난 자라도 그 재주가 소용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도망칠 시간도 없고 도망칠 길을 찾지도 못할 것이며 도주를 시도할 힘이나 정신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막다른 궁지에 몰려 어쩔 줄을 모를 것이다. 그들이 들노루처럼 발이 빠른 아사헬과 같은가? (삼하 2:18) 그렇더라도 그들은 아사헬처럼 자기의 파멸로 더 빨리 달리게 될 것이다.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그들이 "우리가 말을 타고 도망하여 빠른 것을 타고 도망하리라" (사 30:18)고 말하는가? 그래도 그들은 붙잡힐 것이다(말 타는 자도 피할 수 없으리라. 말은 구원함에 헛 것이다. 시 33:17).
2. 그 대적과 싸워서 이기려고 생각하는 것도 헛 일이 될 것이다. 그들과 전쟁하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신 까닭이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강한가? 전능자의 적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군대가 있는가? 없다.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다. 큰 힘을 곧잘 내던 자도 그 일을 당할 때 자기 힘을 행사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남들을 보호하고 구원해 줄 용사가 남은 커녕 자기 자신도 구할 수 없으며 자기 영혼도 구원하지 못하고 자기 생명도 건지지 못할 것이다. 그 때에는 강한 자라도 자기 힘을 자랑하거나 신뢰하지 말고 자기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그에게만 영원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체적 힘이 어떻게 해 주지 못하듯 전쟁 무기도 소용 없을 것이다. 팔(arm)과 마찬가지로 무기(arms) 도 불충분하게 될 것이다.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가 멀리 서 있을지라도 도주하지 못하며 자기의 활이 구해 주리라고 신뢰하지도 못할 것이다. 팔이 아무리 강하며 무기가 제 아무리 잘 구비되어 있더라도 간담이 떨어질 때는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16절).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고 위험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 자 곧 용사 중에 굳센 자도 그 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그는 방어용 공격용 무기를 다 내던져버리고 맨 손으로 도망하게 될 것이며 자기가 가져갈 줄로 생각했던 보화도 빼앗기고 도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는 만민의 두목들의 총명(마음:흠정역) 을 빼앗으시며 용기와 백전 경험을 자랑하는 자들로 하여금 길 없는 거친 들에서 유리하게 하시며 줄행랑치게 만드실 것이다(욥 12:24).
Previous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