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요엘 0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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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스라엘의 대적에게 경고함 (요엘 3:1-8)

우리는 구속할 해와 시온의 송시를 위한 신원의 해라는 말씀을 가끔 들었다. 이제 여기에는 그 해의 조치가 묘사되고 그 해가 올 때 또 올 때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이는 그 해는 가끔 오기 때문이며 종국에는 유일회적으로 단연코 올 것이기 때문이다.

Ⅰ. 그 때는 구속자의 해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1절). 하나님의 백성의 예속은 괴롭고 매우 오래 계속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애굽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결국 구원을 받아 영광스러운 자유를 획득하였던 것이다. "내 아들을 놓아서 그로 나를 섬기게 하라" (출 4:23)는 것이 하나님의 요구였다. 바벨론에서도 그 일은 무사히 끝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와 사탄의 지배하에서 비참하게 종노릇하는 불쌍한 영혼의 효과적 구속을 마련하실 것이며 은혜의 해 곧 부채를 탕감하고 종을 놓아 주며 매인 자에게 옥문을 열어 주는 희년(jubilee)을 선포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사로잡힌 자녀들을 다시 데려 오고 그들을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는 데에는 정해진 날, 정해진 시기가 있다. 그리고 그 날은 마지막 날, 모든 때의 끝이 될 것이다.

Ⅱ. 그 때는 시온의 송사를 위한 신원의 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대적들이 그 백성을 아주 오랫동안 매우 심히 구박하도록 허용하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끝내 그들과 그에 대해 계산하실 것이며, 사로잡는 자를 포로로 끌고 오실 것이며 자기 백성을 포로한 자들을 포로로 끌고 가실 것이다(시 68:18; 계 13:10).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회계 자리에 부름받고 나올 자들은 모든 나라들이다(2절).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암시한다.

(1) 모든 나라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한 부당 행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박해는 온 세상이 부르짖는 죄며 왕노릇하는 죄다. 악에 누워 있음은 경건을 대적하는 것이다. 여인의 후손에게 대한 이 세상의 신 곧 옛 뱀 의적의는 많게든 적게든 이 세상 자녀들에게서 나타난다. 세상이 너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2) 하나님의 민족을 해한 나라가 어떤 나라든지 간에 그들은 결코 형벌없이 무사히 넘어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손대는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의 눈동자를 아프게 다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될 것이다(슥 12:3). 그러나 인근 나라들 즉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 사방은 각기 회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성가시게 하던 나라들이었다(4절). 이스라엘을 황폐시킨 원방의 강력한 기본들이 회계하게 될 때에는 가까이에 있어 이스라엘의 고난을 도와 촉진하며 거기에 한 몫 거들던(슥 1:15; 겔 26:2) 자들도 간과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박해도 큰 박해와 함께 회계 자리에 나오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설사 능력 부족으로 많은 화를 입히지 못했더라도 그들은 행하고자 했던 악과 악한 노력대로 셈하게 될 것이다.

2. 심판을 위한 법정의 개설. 하나님은 그 모두를 모으실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항하기 위해 일심으로(시 83:5) 연합한자들로 하여금 함께 자기 운명의 선고를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예루살렘 근처의 여호사밧 골짜기에 내려가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실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죄인은 범행한 그 장소에서 심판을 받는 것이 마땅한 때문이다.

(2) 그들을 더욱 낭패시키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파멸시키려고 노력해 왔고 그것을 바랐다. 그러나 그들의 온갖 격노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땅에서 칭송거리가 될 것이며 그것을 보게 되는 때 그들은 무척 당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예루살렘을 크게 위로하고 존귀하게 하기 위함이다. 즉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위해 신원해 주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때에는 큰 위로를 받고 크게 존귀하게 될 것이다.

(4) 그 때에는 하나님이 여호사밧을 위해 행하신 일이 재연될 것이다. 하나님은 암몬과 모압과 세일산 사람들이 여호사밧을 침공했을 때 여호사밧에게 승리를 주셨고 브라가 골짜기에서 그와 그 백성에게 찬송과 기쁨의 제목을 주셨던 것이다(대하 20:26).

(5) 산헤립의 대군 또는 그 일부가 천사들에게 멸망받은 것도 이 여호사밧 골짜기에서였던 것이다(라이트푸트 박사의 견해). 그들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고 함께 올라왔으나 하나님께서 곡식을 타작 마당에 모음같이(미 4:12) 그들 자신을 멸망시키기 위해 모아서 데리고 온 것인 줄을 몰랐다.

3. 원고가 호출되고 있다. 이 재판은 그들을 위해 베풀어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 백성 곧 내 기업인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라" 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투기로 변호하려고 하시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입장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의 기업이요, 특별한 성민이요, 택한 보물이요, 분깃이어서 다른 모든 백성을 능가한다는 데 주목하자(출 19:5; 신 32:9). 그들은 하나님의 영지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영토를 침입한 자들에게 정당한 고소를 제기하시는 것이다.

4. 그들에게 대한 기소가 나온다. 그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그들은 우상 숭배로써 하나님을 많이 모독하였지만 하나님이 여기서 그들과 쟁변하시는 것은 자기에게 대한 모독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자기 성소의 기물에 대한 모욕이다.

(1)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몹시 학대하여 열국 중에 이산시켰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피난처를 구하여 떠나도록 강제하였거나 각기 자기 나라로 끌어가 부지런히 흩었을 것이다. 이렇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연합하여 공동의 안전을 도모할 까봐 두려워했던 때문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땅 아니 하나님의 땅을 나누며 각기 제 몫으로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제비를 뽑아 "내 백성" 을 취하고 그들을 팔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취했을 때 다음과 같은 행동을 했다.

[1] 놀리며 아무 쓸모없는 자로 조롱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석방하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붙잡아 둘 만한 가치가 없는 자로 생각했다. 그들은 주사위 노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날려 버리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또는 그들은 로마 병정들이 그리스도의 옷을 제비 뽑았듯이 포로들을 제비로 분배했다.

[2]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권물로 삼았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손에 넣자 팔아 버렸다(한글 개역:바꾸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값으로 자기 재물을 많이 불린다는 것을 무척 경멸하면서 팔았다. 그들은 이익보다 쾌락을 위해 팔았던 것이다. 그들은 전쟁에서조차 붙잡은 소년을 기생과 바꾸며 한 자리에서 앉아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술을 소녀와 바꾸었다. 그들은 술을 오히려 값비싼 것으로 중히 여겼고 이스라엘의 아들딸이 주막이나 매음굴의 종과 막벌이꾼으로 되는 것을 출세로 여겼다. 한 범죄로 얻어진 것을 다른 죄에 소비된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불의와 폭력으로 거두어들인 노략물을 음주와 음행에 마구 뿌리며 낭비하였다. 이것은 왕왕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고 대적하는 원수들의 특성이자 행동이다. 두로인과 블레셋인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자녀를 붙잡으면(전쟁에서 사로잡든, 유괴하든)그들을 헬라인에게 팔아 넘겼다. 두로인은 헬라인과 사람 장사를 했던 것이다(겔 27:13). 그들은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들의 지경에서 멀리 제거시키려 했다. 이처럼 열국 중에서 사고 파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장자 이스라엘에게 대한 큰 수치였다(6절).

(2) 그들은 부당하게도 하나님의 은과 금을 취하였다(5절). 혹자는 이것을 이스라엘의 부로 해석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가진 은과 금을 자기 것이라고 부르시는데 이는 은금이 하나님께로서 나왔고 또 그에게 바쳐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들을 약탈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약탈로 간주하고 그에 상응한 보복을 하실 것이다. 선량한 자들의 재산을 탈취하는 자는 독신죄의 판결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오히려 성전의 금은 기명과 보물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자기의 진기한 보물이라고 부르신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대한 승리의 전리품으로서 이들을 자기들의 신궁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이로써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이 이스라엘의 신을 이겼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법궤도 이와 같이 다곤의 전에 안치되었다. 그들은 이같이 부당한 일을 행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내 백성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 백성이 너희에게 무슨 잘못을 행했으며 무슨 도발을 했느냐? 너희는 그들과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들에게 이런 모든 일을 행하였다." 땅에서 조용한 자에게 궤계가 베풀어지며 무해하고 악의가 없는 자들이 해를 입고 악한 대접을 받는다. "너희가 내게 보복하겠느냐?" 그들은 하나님이나 그의 백성이 자기들에게 가해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같이 행한 것이 보복법에 의한 것이라고 정당화시킬 수가 없다. 아니, 그들은 그럴 만한 구실이 없다. 이웃에게 매우 정중하고 고맙게 했던 자들이 불친절하고 비우호적인 갚음을 당하며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자들이 많은 고난을 당하는 일은 별로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유의하자.

5. 그들에게 판결이 내려진다. 일반적 판결은 이렇다. "너희가 만일 내게 보복하면, 너희가 나와 시비하겠다고 나선다면, 너희가 나를 격동시켜 이렇게 질투하게 한다면, 너희가 내 눈동자를 다친다면 너희가 보복하는 것을 내가 속속히 너희 머리에 돌리리라." 하나님과 다투는 자들은 자기들이 그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는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도 못할 때에 갑자기 보복하실 것이며 그들은 예방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 그가 그들을 책망하신다면 그들의 파멸을 속히 이루실 것이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위협이 나온다.

(1)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한 위해의 도모에서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유대 민족을 본 지경에서 멀리 옮겨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생각했다(6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보라, 너희가 그들을 팔아서 이르게 한곳에서 내가 그들을 일으켜 나오게 하리니 그들은 너희가 의도한 대로 그곳에 생매장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팔아 넘긴다 해도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박탈하진 못한다.

(2) 그들은 아도니베섹처럼(삿 1:5) 자기들의 행위대로 갚음을 당할 것이다(8절). "내가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라. 너희는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수중에 좌우될 것이다." (사 60:14).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자기를 미워하던 자들을 제어하게 되었다(에 9:1). 그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의 손에 팔리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것이 마카비의 승리에서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며 다른 자들은 이것이 정직한 자가 다스리고 (시 49:14) 성도가 세상을 심판하게 될 마지막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나 그의 교회를 대적하여 마음을 강퍅히 한 자 치고 오래 번영한 자가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바로조차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고난받는 자기의 모든 종들을 위로하기 위해, 복수는 자기에게 속하며 자기가 반드시 갚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신 때문이다.

 

3:2 없음.

 

3:3 없음.

 

3:4 없음.

 

3:5 없음.

 

3:6 없음.

 

3:7 없음.

 

3:8 없음.

 

3:9

대적들에게 대한 위협 (요엘 3:9-17)

시편 기자는 오래 전에 여호와의 통치를 열방 중에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시 96:10). 요엘 선지도 여기서 여호와가 통치하시며 그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을 만국에 광포해야 한다. 물론 그는 줄곧 세상을 심판해 오셨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는 그의 열국에 대한 심판은 산헤립과 느부갓네살과 안티오커스 그리고 특히 적그리스도와 기독교회의 모든 교만한 대적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고금을 막론하고 일부 극히 훌륭한 해석가들(특히 포코크 박사)은 본 성구의 목적이 최후의 심판 일을 나타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 심판은 직유로 표현되고 있다. 즉 하나님은 그의 왕국의 대적들에게 선전 포고를 하고 땅의 수확물을 모아 들이신다. 우리는 이 직유가 요한계시록 19장 11절 14장 18절에 사용됨을 볼 수 있다. 다음 내용을 주목하자.

Ⅰ. 하나님의 왕국에 대적하는 모든 원수들에게 제 할 대로 최악을 다해 보라는 도전장이 주어진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려고 전쟁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는 자기에게 대한 전쟁 준비를 하라고 그들에게 촉구하신다(9-11절). 하나님의 심판 시각이 올 때에는 천하만방을 모으기 위한 효과적 방법이 취해질 것이다(계 16:14; 20:8). 여기에 나오는 말씀은 반어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너희는 열국에 이렇게 광포할지어다. 열국의 모든 군대를 소집케 하여 하나님과 그 백성에게 연합 전선을 펴게 하라. 너희 민족들아 연합하라(훤화하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너희는 필경 패망하리라(사 8:9).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라. 네 모든 힘을 다 내라. 용사들을 격려하라. 그들로 너희 일에 진력하게 하며, 그들을 고무하여 경계와 결의를 굳게 하도록 하라. 모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오게 하라. 그들로 용기가 있으면 나아와서 전능자와 결투하게 하라. 그들로 무기가 없다고 불평하지 않게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게 하며 낫을 쳐서 창을 만들게 하라. 하려고만 한다면 그들로 다시는 농구를 잡지 않고 이기든지 아니면 죽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라. 병기를 잡기에 적합치 않다고 주장하는 자가 없게 하라. 약한 자도 '나는 강하니 감히 전장으로 나가겠다'고 말하게 하라." 이와 같이 전능의 신이 모든 흑암의 반대 세력에게 도전하고 있다. 열방으로 분노하게 하며, 세상의 군왕들로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게 하라. 그들로 모이게 하며 나아오게 하며 함께 모이게 하라. 그러나 하늘에 계신 자는 그들을 비웃으실 것이다. 그가 이처럼 부르시는 동안에는 그들을 조소하고 계신 것이다(시 2:1, 4). 열방은 깨어나 죽은 자로부터 일어나야 했다. 이는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와 자기 운명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12절). 그들로 무덤에서 나오며 공중으로 올라 가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심판이란 의미이다. 그들로 하나님의 심판 장소로 나아오게 하라. 이것이 아마 여호사밧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주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관찰한 대로 여호사밧이란 곳을 가리키기 위해 고유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그들로 하나님께서 앉아서 심판하실 그곳으로 오게 하라. 모든 민족이 모여들 영광의 보좌로 나아오게 하라(마 25:32).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도전(9절)은 소집(12절)으로 바뀐다. 이것은 "감히 올테면 와 봐라" 는 것에서 "너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너희로 오게 하리라" 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가 없다.

Ⅱ. 하나님의 정의의 사자들에게 세상에서 그의 왕국을 대적하는 이들 대담한 원수들을 향해 작전을 계시하라는 명령이 하달되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소서(11절). 그들이 병력을 전장으로 인솔할 때 하나님도 그의 병력을 데려 오시며 그의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용사들 즉 그의 천사들을 소집하는 나팔을 불게 하소서." 아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말일에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신다는 것(살후 1:7)을 가리킬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든 반대 세력 즉 정사와 권세를 무너뜨리시며 열방을 심판하시게 될 때 그의 싸움을 싸워줄 자들은 여호와의 천군천사들이다(시 110:6). 어떤 자들은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라" (9, 10절)는 말씀이 원수의 무리들에게 대한 도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군천사에 대한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그들로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하나님께서 법으로나 칼로 신원하실 때는 효과적으로 신원할 자들을 준비해 두셔서 증인들도 심판의 법정에 나아와 그를 위해 증언하려고 대기하며 군인들도 그를 위해 출전 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13절은 분명히 천군천사에게 주시는 명령이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즉 그들의 악은 크며 죄의 양이 차서 그들의 멸망이 무르익었다. 우리구주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여 "추수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라" (마 13:39)고 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이러한 낫을 휘둘러 곡식과 포도송이를 거두라는 명령을 받는다(계 14:15, 18). 인간의 큰 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성숙시킨다는 것을 명심하자.

Ⅲ. 그 크고 엄숙한 날에는 무수한 자가 나타날 것이다(14절).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는 앞에서 말한 여호사밧의 골짜기 또는 여호와의 심판의 골짜기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날이 그 골짜기에 가까이 온 때문이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심판일 곧 여호와의 날은 줄곧 가까이 온 것으로 주목되며 그렇게 운위되었다. 에녹은 마치 대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시기라도 하듯 "보라. 여호와께서 오시느니라" 고 말했다. 모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날이 정녕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은 약속대로 올 것이며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다. 사태는 그 날을 향해 급속히 무르익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그 날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판이 가깝기 때문이다.

2. 심판날은 판결의 날이 될 것이다. 즉 그 때는 각자의 영원한 형편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과 사탄의 왕국 사이에 오랫동안 유예되어 왔던 논쟁이 최종적으로 판결될 것이며 분쟁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이다. 그곳은 판결을 나누어주는 골짜기가 될 것이다. 각자는 육으로 행한 일을 따라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그곳은 타작의 골짜기가 된다. 이것은 추수의 은유를 근거로 하는 풀이이다(13절). 그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던 교만한 원수들에 분쇄될 것이며 산산조각이 나서 여름 타작마당의 티끌같이 될 것이다.

3. 그 날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최종 운명을 판결받기 위해 모일 것이다. 우리는 곡의 멸망을 읽다가 하몬 곡의 골짜기와 하모나 섬 얘기를 보게 되는데(겔 39:15, 16) 이 두 말은 다 정복당한 대적들의 많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hamonim, hamonim 으로서 중복 사용은 경탄을 나타낸다. 그 날에 하나님의 공의는 무수한 죄인의 멸망으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산 사람의 많음이여, 죽은 사람의 많음이여" (랍비중 하나는 그렇게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Ⅳ. 그 때에는 자연계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15절). 그 때에는 해와 달이 캄캄하게 될 것이다(2:31 참조). 일월의 영광과 광택도 대심판관의 훨씬 더 찬란한 영광의 빛으로 무색하게 될 것이다. 아니, 해와 달은 만물의 분해로 말미암아 그 사용이 보류될 것이다. 왜냐하면 지옥에서 저주받은 죄인은 완전한 흑암속으로 던져져서 광명이 허여되지 않을 것이며 천국에서 영화롭게 된 성도들은 일월의 광선이 필요치 않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영원한 빛이 되시는 때문이다(사 60:19). 진노의 날에 하나님의 진노하심 아래서 엎드러지는 자들은 모든 위로와 기쁨으로부터 단절될 것이다. 해와 달의 캄캄해짐뿐만 아니라 별들의 어두워짐도 바로 이것을 의미한다.

Ⅴ. 그 날은 이 세상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에게 각각 상이한 인상을 줄 것이다.

1. 악인에게는 그 날이 두려운 날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여호와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으로부터 말씀하실 것이다. 그는 영광의 보좌에서 하늘에서 말씀하실 것이다. 그는 때때로 자기 성소의 높고 영화로운 보좌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그 날의 영광에 비하면 희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하늘에서 특수하신 방법으로 자기를 나타내신다. 그는 하늘에서 성도와 천사들 가운데에서 말씀하신다. 이것은 거룩한 무리이기에 시온과 예루살렘이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가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를 때에는 천군 천사들과 만난다(히 12:22, 25). 그 날에 하시는 말씀이 악인들에게는 부르짖음 같을 것이며 사자의 부르짖음같이 두려울 것이다(단어의 의미는 그렇다). 그는 오래도록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하나님께서 오실 것이며 잠잠하지 않으실 것이다(시 50:3, 21). 저 큰 날의 심판은 하나님 나라에 계속 대적하는 원수들의 귀를 따갑게 울릴 것이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며(사 2:21). 또 한 번 더 그렇게 하실 것이다(학 2:6; 히 12:26). 이것은 저 큰 날에 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악인에게는 하늘과 땅을 경악시키기에 족할 정도로 두려움을 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대적들을 쓰러뜨리고 멸하러 오실 때에는 그들을 자기 발등상으로 만드는 때이다. 그 때에는 하늘과 땅이 비록 그들을 지켜 주려고 일어서며 그들의 보호를 자청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다투러 오시는 대상자들에게는 하늘과 땅조차 그 앞에서 진동할 것이며 그들에게 불충분한 피난처가 될 것이다. 시온에서 나오는 축복이 극히 복되어서 하늘과 땅으로 하여금 노래하게 하기에 족하듯 시온에서 나오는 두려움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극히 쓰라린 두려움이다.

2. 의인에게는 기쁜 날이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타서 녹아버릴 때 여호와께서는 자기백성의 피난처가 되실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실 것이다(16절). 그 때에는 예루살렘이 거룩할 것이다(17절).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그의 백성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으며 교제를 맺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예루살렘이다.

(1) 그 큰 날에는 그들이 동경이 충족될 것이다.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흠정역:소망)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그들의 소망의 창설자요 기초이셨듯이 그 때에는 그들의 희망의 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서의 항구(원의는 그렇다)가 될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의 저장소와 피난처와 본향이 되실 것이다. 성도들은 그 큰 날에 바라던 항구에 도착하게 될 것이며 폭풍의 항해 끝에 뭍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집에 있을 것이며 아버지의 집 곧 손으로 짓지 아니한 집에 있을 것이다.

(2) 그들의 행복은 확증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이스라엘 자손의 힘이 되시며 산성이 되셔서 그 날을 반가이 맞이할 수 있게 하시며 그 날의 영광과 기쁨의 무게 밑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자기 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죄인들이 그 아래서 거꾸러질 때 자기 백성의 피난처와 힘이 되시며,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으로 기진맥진할 때에도 자기 백성의 마음에 힘이 되어 주시며 그들의 분깃이 되어 주신다.

(3) 그들의 거룩함은 완성될 것이다(17절). 그 때에는 예루살렘이 거룩할 것이며 참으로 거룩한 도성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하늘 예루살렘이 거룩하게 될 것이며 영광스러운 교회는 홈이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거룩함이 될 것이라(직역하면 그렇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거룩하게 된다. 그 안에는 죄의 찌꺼기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복음 교회는 투쟁하는 상태에 있을 때조차 거룩한 집단이어서 그 자체가 성결해야 비로소 승리하게 된다. 그 때에는 이방 사람이 다시는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할 것이다. 새 예루살렘에는 더럽히는 것이나 불의를 행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있을 권리를 지닌 자 외에는 아무도 거기있지 못할 것이며 그곳의 시민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혼합되지 않을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밝히 드러날 것이며 칭송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리라." 교회를 성화시키고 영화롭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과 영광으로 알려지실 것이다. 그는 그의 성산에 거하시며 그 성산에 거하심으로써 그것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알려지실 것이다. 그리고 성화되며 영광 받는 자들은 자기들을 부르신 이를 완전히 알게 된다. 진정한 신자들이 하나님께 대해 갖는 지식은 다음과 같다.

[1] 공동 사용의 지식이다. 그들은 그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그를 자기들만의 하나님으로 알지 않고 전체 교회의 하나님으로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며 그가 그의 성산에 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믿음은 충당하며 사용하긴 하나 언약의 특권을 독점하거나 전유물로 삼지는 않기 때문이다.

[2] 경험적 지식이다. 그들은 그가 극히 악한 시기에 자기들의 피난처요 산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그가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맛보고 경험하며 그가 자기들에게 선하시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가장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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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심판과 자비 (요엘 3:18-21)

이 예언의 종결 부분을 형성하고 있는 약속들은 은혜의 나라에서 부분적인 성취를 보게 된다. 그 나라에 속한 모든 신실한 백성은 위로와 은혜를 얻는다. 그러나 이것은 영광의 나라에서 완전히 성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유대 교회에 대해서는 여기의 약속에 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평강과 번영으로 축복받은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여기에 나온 약속과 일치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 약속은 과장법에 의한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이들은 우리를 위하여 예비된 좋은 것의 예표에 불과하며 그것은 가장 좋은 상태에 있더라도 우리가 아니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신 것이다(히 11:40).

Ⅰ. 교회의 대적들은 정복되고 전복되리라는 것이 약속되고 있다(19절). 이스라엘의 오랜 원수인 애굽과 이스라엘에게 묵은 원한과 적의를 품은 에돔은 에서의 자손들이었다. 이들은 황무지가 될 것이며 황무한 들이 되어 더 이상 사람의 거주지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저주하신 백성이 되었다. 바로 이두메아인들이 그러했다(사 34:5; 겔 35:15). 한 나라의 재력도 견고한 국력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진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들 강대국들과 다투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다 자손에게 행한 그들의 강포와 가해 행위 때문이다(겔 25:3, 8, 12, 15; 26:2 참조). 그들은 도피하기 위해 자기들에게로 도망친 유대인이나 그들의 나라를 통과하여 도피하던 유대인의 무죄한 피를 흘렸던 것이다. 하나님 백성의 무죄한 피는 하나님께서 매우 귀중하게 여기시며 한 방울의 무죄한 피를 흘려도 반드시 계산을 받게 되리라는 것에 주목하자.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한 강포로 가득 찬 이 땅은 황무지가 될 것이며 그 때에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타서 없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핍박하는 자들은 조만간 파멸을 당할 것이며 티끌 속에 딩굴게 될 것이다. 아니, 그들은 결국 파멸을 당하며 불꽃 속에서 딩굴게 될 것이다.

Ⅱ. 교회는 매우 행복해지리라는 것이 약속되고 있다. 교회는 전투하는 상태에서도 신령한 특권을 누린다는 점에서 참으로 행복하다. 하물며 승리하는 상태의 교회가 될 때에랴! 여기서 약속되고 있는 것은 세 가지다.

1. 순결. 이것은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한 이유로서 맨 나중에 나온다(21절).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흘림 당한 것을 정결케 해 주지 않았거니와 이제는 정결케 해 주리라" (흠정역).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나머지 두 가지의 기초와 근거로 해석하여 맨 먼저 참작할 수 있다. 즉 그들은 극악한 유혈의 죄를 범했다. 특히 무죄한 피를 흘렸다. 그들은 그 죄로 인해 오욕과 죄악을 얻었으며 그 죄는 그들을 하나님과의 교제에 부적합한 자로 만들었고 그의 거룩함에 오명을 남기게 했으며 그의 공의에 유해한 자로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열린 샘에서 그들을 이 죄로부터 씻기실 것이다(슥 13:1). 의식법의 희생 제사와 정결로도 씻기지 않던 이 죄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될 것이다. 또는 우리가 만일 이것을 장래의 행복에 적용한다면 이것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규례나 섭리로 깨끗이 씻김을 받을 수 없던 모든 부패로부터 정결케 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거기서는 그들에게 극히 작은 죄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들이 날마다 씻을지라도 깨끗이 씻기지 않는 것이 여전히 남는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그 나머지 것도 정결케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시며 자기 교회와 함께 거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천국에서 자기 교회와 함께 더욱 더 영광스럽게 거하시며 그의 거룩하심은 그 집에 합당하여 영원하다(시 93:5). 이 때문에 그가 거하시는 곳에는 완전한 거룩함이 있어야 하며 또 있을 것이다. 교회의 순화와 개혁은 완만하게 진행되는 작업이며 정결케 되지 않았다고 불평할 만한 것이 상존해 있지만 잘못된 모든 것이 교정되고 교회는 아주 정결하게 되어 홈도 점도 없게 될 날이 오고 있다는 데 주목하자. 그리고 우리는 그 날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

2. 풍족(18절). 이것이 먼저 나오는 이유는 이것이 앞 장에 경고된 심판의 정반대인 까닭에서이다.

(1) 이 풍요의 시냇물이 그 땅을 흐르며 부요하게 한다.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다." 그들은 젖먹이와 용사에게 다 알맞은 양식을 매우 풍족하게 얻을 것이다. 이것은 포도원이 풍부하고 매우 비옥하며 초장에는 소떼가 충만하여 우유로 가득 채우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경작지를 비옥하게 하기 위해 유다의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어서 국토는 에덴 동산같이 어디에나 물의 공급이 풍부하고 부요하게 될 것이다(시 65:9). 그러나 이것은 영적인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새 언약의 위로와 은혜는 포도주와 젖에 비유되며(사 55:1), 성령은 생수의 강에 비유된다(요 7:38). 그리고 이런 은사들은 구약 교회보다 신약 교회에서 훨씬 더 풍성하다.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충만한 데서 은혜를 받으며 영원한 위로로 부유하게 되고 믿음 안에서 희락과 평강으로 가득차게 될 때는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리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린다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자여, 풍족히 마시라." 성령의 은혜가 풍성히 흘러나올 때는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리고 우리 하나님의 도성뿐만 아니라 온 땅을 기쁘게 한다(시 46:4).

(2) 이 풍족의 샘은 하나님의 집에 있다. 그 시내는 에스겔서 성소의 물들처럼(겔 47:1) 그 집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며 생명의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온다(계 22:1). 시편 기자는 시온에 대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주께 있나이다" (시 7:7)라고 18절 전반부를 현세적 축복으로 해석하는 자들도 여호와의 전에서 흘러나오는 이 샘만큼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필요로 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그 축복을 남용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이 샘은 곧 그리스도 자신이다. 그의 공로와 은혜는 우리를 깨끗이 씻기시며 우리에게 원기와 새 힘을 주시며 우리로 결실을 많이 맺게 한다. 이 샘은 싯딤 골짜기에 급수를 한다고 한다. 싯딤 골짜기는 예루살렘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고 요단강 왼편에 있었다. 그곳은 건조한 볼모지였다. 이것은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오는 복음의 은혜가 멀리 이방 세계에까지 미치며 극히 먼 지방에도 찾아가 오랫동안 황무지처럼 놓여 있던 자들로 하여금 의의 열매를 풍성히 맺게 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 은혜는 넘치게 흐르며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흐르는 샘이어서 우리는 거기서 부단히 끌어 쓸 수 있고 그 샘이 고갈될까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이 샘은 여호와의 전에서 흘러나온다. 왜냐하면 약속된 은혜와 위로에 동참하려는 자들은 부지런히 그리고 끊임없이 신앙의 규례에 참여해야 하는 때문이다. 그리고 위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서, 천국에 있는 그의 성전에서는 우리가 여기서 날마다 맛보고 있는 온갖 선한 것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그 시내물의 발원지에서 곧 마시게 되기를 소망하며 영원히 마시기를 희망한다.

3. 영속성. 이것은 여타 모든 약속을 능가하는 가장 빼어난 약속이다(20절). 유다는 영원히 있을 것이다. 애굽과 에돔이 황무지가 될 때에도 유다는 영원히 거하게 될 것이며, 예루살렘은 대대로 존속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귀중한 약속을 나타낸다.

(1) 그리스도의 교회는 이 세상에서 시간의 종말까지 존속할 것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의 한 세대가 사라지면 또 다른 세대가 나타날 것이며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의 보좌는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이고 음부의 권세가 결코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2) 그 교회의 모든 산 지체들은(유다와 예루살렘은 지명이 아니라 그 거민을 나타낸다. 마 3:5), 영원무궁토록 그들의 행복이 확립될 것이다. 이 새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도성은 사람의 손으로 기초를 짓지 않고 그 기초를 영원한 천국에 둔 도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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