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과 위협 (호세아 13:1-4)
포로기 이후까지도 우상숭배는 유대 민족이 쉽사리 빠져드는 죄였다. 열 지파는 처음부터 그 죄를 범했고 아합시대 이후로는 특히 그러했다. 여기서 그들이 책망받는 것도 바로 그 죄 때문이다.
Ⅰ. 하나님은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규정을 만드셨다(4절).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 곁에 붙잡아 두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셨다. 그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1. 그는 자기를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알리셨고 특수한 방법으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 애굽 땅에서부터 그는 자기 말씀과 그 동안의 행위를 통해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 공언하셨다. 그는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신 여호와였고 그들의 하나님이셨다. 그는 시내산에서도 그 사실을 하늘로부터 선포하셨다. 또 그는 선지자와 섭리를 통해서도 계속 해서 이 사실을 그들에게 선언하시며 증명하셨다.2. 하나님은 다른 신에 대한 숭배를 금지하는 율법도 그들에게 내리셨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알지 말라 너는 다른 신을 인지하거나 숭배하지 말 것이요, 다른 신을 알지도 말 것이며 이방의 관례와 의식에 친숙하지 말지니라" 고 그는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끼어들어서는 안 될 일은 모르는 것이 복되며 그것은 행복한 무지라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는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한 자들이 칭찬 받는다(계 2:24)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하나님은 그들에게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셨다.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우리는 무엇을 우리 신으로 삼든지 간에 그가 우리 구원자가 되어 금생과 내생에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인간은 보호를 얻는 곳에 충성을 바치며 구원을 얻는 곳, 구원을 바라는 곳에 찬양을 돌린다.
Ⅱ. 에브라임은 우상 숭배에서 초연한 동안에는 명예를 얻었다(1절). "에브라임이 떨면서 말할 동안에는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였도다" (흠정역). 포코크 박사는 이렇게 이해한다. 즉 에브라임이 하나님께 자기 조상 야곱처럼 행동하여 울며 간구하고 하나님과 그 선지자들에게 교만히 말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건한 두려움 가운데서 그를 섬기는 동안에는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를 높였다. 즉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서 두각을 나타내고 매우 괄목할 만한 존재가 되었다. 이 지파에 속한 여로보암은 그 자신과 자기 가문을 높였던 것이다. 그가 말을 발하면 사람이 떨었으며 그 주위에 선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하였다. 스스로 낮추는 자 특히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는 자는 높임을 받게 된다는 데 주목하자. 사람이 자신의 판단을 겸양하며 남을 존중하고 겸손히 말하면 자기를 높이게 되어 명성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은 곧 자기를 상실하였다. "저가 바알로 인하여 범죄하므로 망하였다." 즉 에브라임은 명성을 잃고 그의 명예는 곧 사라지며 감소하여 밑바닥까지 내려 왔다. 여기서 바알은 우상 숭배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에브라임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에 몰두하자. 그 나라는 치명상을 입고 그 뒤 다시는 흥왕하지 못하였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은 개인에게든 단체에게든 죽음을 의미한다.
Ⅲ. 그들 사이에는 우상 숭배가 비탄스러울 정도로 만연하였다(2절). "이제도 저희가 더욱 범죄한다." 일단 에브라임이 바알로 인하여 범죄했을 때 일은 벌어진 것이다. 그들은 더욱 더 악해졌고 더 많은 우상을 탐냈으며 더욱 거기에 혹했고 우상 숭배는 더욱 꼴사납게 되었다. 우상 숭배의 길은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내리막 길이어서 사람들이 스스로 쉽사리 멈출 수가 없다. 더욱 더 많은 죄를 범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자의 슬픈 현상이다. 그들의 타락을 추적해 보자.
1. 그들은 우상을 부어만들었다. 그들은 원하는 신상을 주조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아마 이 우상들은 다이아나 여신을 위한 은사당과 마찬가지로 축소판 송아지 상이었을 것이다. 송아지 숭배에 열심인 자들은 자기들을 위해 그 신상을 만들어 가지고 휴대했을 법도 하다.2. 그들은 우상을 은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그 우상으로 형통하게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들은 돈으로 우상을 구입했거나 아니며 자기들의 은 대접을 녹여 만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우상 숭배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였는지 주목하자. 그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으로 우상을 영화롭게 했고 그러기에 은을 부어 우상을 만들었다.
3. 그들은 자기의 공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신의 명철(흠정역)을 따라, 자기 상상대로 우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우상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 할지 상의를 했고 그에 따라 가장 선한 판단 대로 신을 제조하였다. 또는 그들은 자기들의 형상대로 우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과 유사한 형태의 우상을 만들자 실제로 그들도 우상처럼 나무 둥걸이나 돌같이 되었다. 우상을 만드는 자는 우상처럼 되며 무릇 우상을 신뢰하는 자도 그렇다.
4. 그것은 다 장색이 만든 작품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다이아나 신상처럼 쥬피터에게서 내려왔다고 주장하지 않았다(행 19:35). 아마 장색은 자기가 만든 신상에다 낙관을 찍었으리라. 모모한 우상은 모모 장색의 작품이라고 말이다(사 44:9 이하; 호 8:6 참조). 우상은 이와 같이 장색의 손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그들의 영혼에게 사랑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의 입을 맞출 것이라" 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마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그렇게 말했거나 아니면 우상 가까이 접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제사 드리는 자나 제사장에게 자기를 대신 그렇게 해달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들은 우상에 대해 경의를 갖도록 교육을 받았으므로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싶어서 못 견디었을 것이다. 그 우상은 비록 송아지였지만 그들은 신들로 간주하고 본인이 직업으로든 대리인을 통해서든 이토록 공경을 하였다. 그들은 송아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것은 찬미와 애정과 충성의 표시였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들에게 입맞추고 그를 우리 주와 하나님으로 모시라는 지시를 받는다.
Ⅳ. 우상 숭배에 대한 진노의 위협이 나온다. 여호와의 이름은 질투이며 그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자기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무릇 신상을 섬기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며(시 97:7) 에브라임이 우상을 숭배하면 특히 그러할 것이다. 그들은 송아지와의 입맞춤을 너무나 좋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실 것이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서 아주 많은 만족과 안전을 기대하며 번영이 확보될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실망을 당하며 악한 가운데서 쫓겨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네 가지 비유로 설명되고 있다.
1. 그들은 아침 구름 같을 것이다. 아침 구름은 목마른 대지에 비를 한바탕 내려 줄 듯한 기대를 불러일으킨다.2. 그들은 아침 이슬 같을 것이다. 이슬은 소나기의 징조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기 두 가지는 다 쉽게 사라지며 날은 여전히 가물고 덥다. 그들이 고백하는 경건은 그런 구름이나 이슬처럼 일시적이며 잠간이어서(6:4) 하나님의 기대를 그와 같이 실망시켰다. 그러므로 그들의 후손도 그렇게 되어 마땅하며 우상에게 대한 그들의 기대도 그렇게 되어 마땅하다. 이 세상으로 우상을 삼는 자들의 모든 것도 그렇게 될 것이다.
3. 그들은 쭉정이같이 가볍고 무가치할 것이다. 그들은 타작 마당에서 광풍이 날리는 쭉정이 같이 쫓겨날 것이다(시 1:4; 35:5; 욥 21:18).
4. 그들은 해롭고 성가신 연기 같을 것이다(사 65:2). 그들은 굴뚝의 연기처럼 곧 무산되고 사라질 것이다(시 68:2). 확고하고 영속적인 위안은 하나님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기대하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스라엘의 배은망덕 (호세아 13:5-8)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관찰할 수 있다.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풍족한 양식을 마련해 주셨고 알맞은 공급물로 저희를 축복하셨다(5절).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다(권고했다:한글 개역). 나는 광야 곧 극히 마른 땅에서 네 형편을 인지하고 너를 위해 양식을 마련해 주었다. 그때 너는 극심한 곤경에 처하였고 보통 방법으로는 구원을 결코 기대할 수 없었다" (신 8:15; 렘 2:6). 그들을 알고 인정하고 거기서 먹여 주신 하나님은 진정한 친구이셨다. 왜냐하면 그는 곤궁할 때의 친구였으며 모든 경우에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는 전능한 친구셨던 때문이다. 그는 정상적 공급 방법이 전부 단절된 때에 그리고 기적만 아니었던들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던 장소에서 그토록 많은 무리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실 수 있는 분이셨다. 급박한 때의 도움은 특별한 의무와 감사를 낳으며 결코 잊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2. 그들은 배은망덕하게도 하나님의 은총을 몰가치하게 남용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에서 돌보셨을 뿐만 아니라 크고 비옥한 초장이자 낙토인 가나안을 소유하게 하셨다. 그들은 초장을 따라 배불렀다(흠정역, 6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풍족하게 주시고 고량진미도 주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오래도록 만나밖에 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가나안에 들어가자 그들은 포식하였다. 이것은 좋은 조짐이 아니었다. 그들이 풍족한 것을 사용하는 데 좀 절제하고 적당히 하며 자기 부정을 터득했더라면 보기에도 낫고 희망도 엿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풍요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배부름으로 마음이 교만해졌던 것이다. 그들은 사치와 육욕으로 마음이 교만해지고 거만해지며 태평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최상의 논평은 모세의 입에서 나왔다(신 32:13-15). "여수룬이 쌀찌매 발로 찼도다." 몸이 풍요로 살찌자 영혼은 교만으로 채워졌다. 그들은 종교가 자기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예배를 굴종으로 확신했다. 악인은 그 교만한 용모로 하나님을 찾지 아니할 것이다(시 10:4, 흠정역). 그들은 광야에서 빈궁하고 부족할 때에는 하나님과 사이 좋게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에 정착한 뒤 형편이 넉넉해지고 기반이 확립되자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희가 마음이 교만하며 이로 인하여 나를 잊었느니라." 세상적 번영이 인간의 교만을 배부르게 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잊게 된다는 데 주의하자. 인간은 하나님이 소용될 때에만 그를 기억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배부를 때 전능자가 그들을 위해 더 이상 무엇을 해 주실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우리를 떠나소서" (욥 22:17)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 때문에 마땅히 그를 잊지 않아야 하고 어떻게 하면 그에게 보답해야 할지 궁리해야 하는데 반대로 그 은총 때문에 오히려 그를 잊으며 그에게 대한 적대 행위를 예사로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활 근거임을 알아야 한다. 비록 광야의 이스라엘인처럼 기적의 양식을 먹고 살진 않더라도 일반 섭리를 통해 사는 것 역시 하나님을 생활 근거로 하는 것이다.
3. 그들의 배은망덕에 대한 하나님의 분개는 지당하다(7, 8절). 심판의 위협은 그들에게서 모든 선한 것이 떠나가는 것을 암시했다(3절). 여기에 나오는 위협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악이 그들에게 개입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친근하고 우호적이셨는데 이제는 원수로 화하셔서 그들과 대적하여 싸우시는 때문이다. 이 점은 매우 격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내가 저희에게 사자 같고 표범 같으리라." 사자는 강하다. 그래서 그에게 항거할 수가 없다. 표범은 여기서 교활하여 경계할 만한 야수로 표현되고 있다. "내가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같이 저희를 지켜 볼 것이라" (흠정역). 표범이 길가에 매복했다가 길 가는 사람을 덮쳐 삼키듯 하나님도 그의 심판을 통해 그들을 해치려고 엿보실 것이다. 이전에는 그가 그들을 선대하기 위해 엿보셨지만(렘 44:27) 이제는 그 반대이다. 그들의 파멸을 촉진하거나 가중시킬 수 있는 기회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이용될 것이다. 표범이 그들의 성읍을 엿볼 것이다(렘 5:6). 삵괭이나 반점이 있는 짐승(표범이 대표적이다)은 어떤 동물이든 눈치 빠른 것으로 유명하다(lynyvisu-삵괭이의 눈). 그래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가 쟁변하는 자를 대적하는 데 그 능력 뿐만 아니라 지혜도 이용하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혹자는 "내가 앗수르의 길에서 표범 같을 것이다" 고 읽는다. 그들이 보호와 원조를 구하러 앗수르로 가고 있는 중에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을 기습할 것이다. "내가 새끼 잃은 곰같이 저희를 만나리라." 새끼 잃은 곰은 화가 잔뜩 나서 매우 잔인해진다(삼하 17:8; 잠 28:15).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격노하셨으며 그들에게 얼마나 혼내 주시려고 하는지를 암시하고 있다. 그는 그들의 염통을 찢을 것이다. 사자는 먹이의 가슴을 노린다고 한다. 하나님도 그와 같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 그가 보내시는 심판은 그들의 심령을 움키며 급소를 격멸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자고하며 교만했다(6절). 그러나 하나님은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마음을 꺾어 비하시키실 것이다. 들짐승이 그들을 찢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사자와 표범 같으실 뿐만 아니라 비유는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나운 짐승은 하나님이 패역한 백성을 멸하시는 데 사용하실 네 가지 쓰라린 심판 중 하나인 때문이다(겔 14:15).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가르쳐 준다.
1. 인자를 남용하면 보다 엄한 것으로 변한다. 하나님이 자상하고 친절한 목자 같을 때 그를 멸시하고 모욕하는 자들은 그가 자기 양떼에게 사자 같고 표범 같이 되신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며 많은 사랑으로 초대하셨으나 이를 헛되게 하는 자들에게는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들을 진노의 그릇으로 삼으실 것이다(롬 9:22). Patienta loesa fitfuror-즉 멸시받는 인내는 맹분으로 화할 것이다.2. 하나님의 심판이 회개하지 않는 죄인에게 대해 사명을 띠고 올 때는 항거가 불가능할 것이며 몹시 두려울 것이다. 그 심판들은 염통 꺼풀을 찢을 것이며 영혼을 혼란으로 채워 갈갈이 찢어 놓을 것이다. 우리는 마치 어린 양이 사자를 어찌할 수 없듯 그 일을 처리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능력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기에 우리는 여호와의 두려우심을 알고 그와 화해하자. 우리는 하나님보다 강하지 못한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우매 (호세아 13:9-16)
9절 말씀은 나머지 모든 말씀의 요약이자 내용이다.
1.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다. 네 패망은 제게서 말미암으며 너로부터 유래한다. 네가 앞에서 책망받았던 모든 죄와 어리석음이 너를 패망시켰다. 네 자신의 악이 너를 여러 번 징계했듯이 이제는 드디어 너를 멸망시켰구나." 고의적 죄인은 스스로를 망치는 자임을 명심하자. 완고한 불회개는 최대의 자살이다. 멸망자에게 멸망당하는 자들은 그 피를 자기 머리 위로 돌려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멸망한 것이기 때문이다.2. 이스라엘의 구원의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그러나 네 도움은 내게 있다" (흠정역).
(1)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너를 돕고자 하며 치료하고자 했지만 네가 도움과 치료를 원치 않았다. 너는 네 자신의 패망을 고집하였다." 이것은 죄인의 정죄를 가중시킬 것이다. 즉 그들은 자신의 파멸로 향하는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제의와 조처를 반대하기까지 했다. "내가 저희를 모으고자 하였으나 저희가 원하지 않았도다." 그들은 쉽사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도움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도움을 배척하였다.
(2) 그럴 수도 있다. "네 형편은 악하다. 그러나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너는 스스로 패망하였다. 그러나 내게로 오라. 그러면 내가 너를 돕겠다." 이것은 난파당한 자에게 던져 주는 널판지와 같다. 사태가 최악의 경우에까지 다달았을 때에도 하나님이 도우실 수 있으며 스스로 도울 수 없는 자들을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무한함을 나타내며 스스로 패망했기에 멸망할 수밖에 없는 자들을 구조하려 하시며 오랫동안 그의 도움을 거절해 왔던 자들도 구조하려 하신다는 것은 그의 은혜가 부요함을 찬양하게 해 준다. 포코크 박사는 이 구절을 달리 읽고 해석한다. "이스라엘아! 네 도움이 내게 있다는 것이 너를 패망시켰도다." 즉 하나님과 그의 은총에 대한 가정이 그들을 대담하게 악한 길로 행하게 했고 그것이 그들을 파멸시켰다는 것이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Ⅰ. 이스라엘은 스스로 패망하였다. 사마리아는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한다(16절).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서 돌이키며 그의 대적들과 연합하고 무기를 들고 그에게 대적하였다. 그들이 패망한 것은 이 때문이다. 스스로 강퍅케 하여 하나님을 거스린 자 치고 번영한 자는 아무도 없었던 때문이다. 모든 자기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는 스스로 패망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분을 원수로 삼는 셈이기 때문이다.
1. 그들은 진노의 날에 대비하여 진노를 쌓아 두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패망한다. 그들이 날마다 행하고 있는 일은 저 심판의 날에 불리한 것들뿐이다. "에브라임의 불의가 봉함되었고 그 죄가 저장되었다" (12절). 하나님은 그것을 주목하시고 기록해 두셨다. 그는 나중에 그것을 다시 꺼내어 그를 치는 자료로 삼으시며 그와 회계하실 것이다. 그들의 이전 죄악이 현재의 멸망에 이바지하였다. 그들의 이전 죄는 하나님께 쌓이고 그의 곡간에 봉해져 있다(신 32:34, 35; 욥 14:17). 그것은 안전히 보관되어 있으며 잊혀지지도 않을 것이다. 그에 대한 증거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비밀리에 저장되어 있고 숨겨져 있다. 죄인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죄인 자신의 양심 속에 봉함되어 있다. 인간의 죄는 용서를 받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으며 정확히 계산되어 있다가 적당한 시기에는 개봉될 것이다.2. 그들은 하나님의 견책을 받아도 서둘러 회개하는 법이 없으며 스스로 돕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 자신의 구원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려 하지 않으므로 그들 자신이 파멸의 원인이 되고 있다(13절).
(1) 그들은 죄로 인해 곤란과 고통 속으로 빠져든다. "해산하는 여인의 어려움이 저에게 임하리라." 그들은 죄로 인해 쓰라림을 당하며 그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죄로 인해 고통과 고뇌 속으로 던져질 것이며 그 고통은 매우 예리하고 가혹할 터이나 구로하는 여인의 고통처럼 희망적이고 유망할 것이니 이는 구원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비록 인간을 징계하시지만 그들의 유익을 의도하신다. 그들이 징계를 받음은 멸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2) 그들은 이런 고난을 통해 마땅히 회개와 개혁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어려움과 슬픔은 참 기쁨으로 귀착했을 것이다. "저는 어리석은 자식이로다. 때가 임하였나니 산문에서 지체할 것이 아니니라." 자식은 해산하는 여인의 산문에서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태어나야 한다. 산문은 태아가 태어나오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태아가 질식하여 사산되지 않으려면 힘써 앞으로 나와야 한다. 출생하는 아이가 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가정해서 말한다면 우리는 해산 중에 오래 머물고자 하는 아이를 어리석은 자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결박된 포로는 구덩이에서 죽지 않기 위해 속히 놓여 나려고 하기 때문이다(사 52:14). 회개에 의해서만 스스로 도울 수 있는데도 그 회개를 연기하며 유예하는 자는 자멸자로 간주되어 마땅하다. 회개를 지체하는 자들은 회심에 실패할 위험이 있으며 회개 작업을 촉진시켜 종결짓지 못할 것이다.
3. 그들은 자기들의 파멸을 확실하게 할 일만 행하고 자기들의 구원이 될 일은 태만히 했기 때문에 패망을 당한다. 여기에는 그들이 처하게 될 운명의 파멸이 슬프게 묘사되고 있다(15, 16절). 에브라임이 형제 중에서 결실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간주되고 있다. 그의 이름은 열매 많음을 뜻한다. 에브라임은 풍부한 산물로, 또 무수한 인구로 인해 열매가 많다. 그는 이전의 예언대로 부요하고 인구 많은 지파였다. 그러나 이 지파는 죄로 말미암아 열매 맺지 못하는 지파로 변한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였으나 죄로 인해 시들고 말았다. 그 도구는 동풍인데 이것은 침입할 외적을 상징한다. 동풍은 여호와의 바람이라고 불리우는데 이유는 그것이 매우 크고 강한 바람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로 파견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바람이 번영하던 에브라임 지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전쟁은 얼마나 황폐시킬 것인지 살펴보자.
(1) 에브라임은 부요한 지파인가? 외적은 그 지파를 알거지로 만들 것이다. 여호와의 바람은 광야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 바람은 차고 매서워서 에브라임 나무에 수분을 공급하는 샘과 근원을 말릴 것이며 그 부의 재원을 고갈시킬 것이다. 침략자들은 국토를 황폐시킬 것이며 농부를 약탈하여 가난하게 만들고 상품을 탈취하여 상인을 무일푼으로 만들 것이다. 그 재산이 고가의 가장 집물에 있는 권문세가라 하여 이 심판을 면하게 될 줄로 생각하지 말 것은 모든 보배의 그릇도 약탈될 것이기 때문이다. 보물을 땅에 쌓아두며 재물을 모든 보배 그릇(욕망의 그릇:원의는 그렇다) 으로 저축해 놓고 거기에 애정을 쏟고 그것을 위로와 만족으로 삼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주목하자. 이것은 약탈되기 위한 보물이며, 좀이나 녹이 슬고 도둑과 군인들이 훔쳐가고 탈취해 갈 수 있는 보물이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저 세상의 보배로 저축해 둔 자들은 지혜롭고 복이 있다. 그 보물은 약탈당하지 않으며 탈취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는 자들은 무척 슬기롭고 참으로 지혜롭다.
(2) 에브라임은 인구가 많고 얼마나 중다한 지파인가? 적군은 그 인구를 줄일 것이며 희소하게 만들 것이다. 사마리아는 황폐할 것이니(흠정역) 그 거민이 없어질 것이다.
[1] 현 세대의 방패요 기쁨인 자들이 멸절당할 것이다. 병기를 잡는 자들도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은 그들이 칼에 엎드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복자의 분노에 항거할 자도 없을 것이며 공사간에 백성의 이익과 안전을 돌봐 줄 자도 없을 것이다.
[2]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자 희망인 자들도 멸절될 것이다. 칼에 엎드러지는 자들 대신 일어날 어린 세대가 박살이 날 것이다. 전 민족이 뿌리째 뽑혀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극히 잔인하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죽일 것이다. 더욱 비인간적인 것은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가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마리아의 영광은 새같이 날아가 해산함이나 잉태함이 없을 것이다(9:11; 10:14). 이런 잔인한 사례는 열왕기하 8장 12절, 15장 16절, 아모스 1장 13절에도 나온다.
Ⅱ. 하나님은 이 자멸하는 백성의 도움이셨으니 그들의 유일한 조력자이셨다(10절). "내가 네 왕이 되리라" (흠정역). 이 왕은 구원하며 다스리는 왕이다. 비록 그들이 그의 백성이 되기를 거절하고 그를 배반했지만 그는 여전히 그들의 왕이 되고자 하셨으며 그들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선한 왕의 본분은 자기 백성을 외적의 파멸뿐만 아니라 자멸로부터도 지키고 보호하는 데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옛적 왕이셨듯 아직도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자신들보다 더 낫지 못하다면 우리의 형편은 말이 아닐 것이다.
1.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른 왕이 없을 때 그들의 왕이 되실 것이다. 그는 그들의 구원자와 보호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멸절되고 없어질 때 그들을 보호하고 구원하실 것이다. "내가 곧 너를 도울 자니라(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네 왕이 이제 어디 있느냐? 네 성읍들이 외세의 침략을 받을 때 네 앞에서 출입하며 네 싸움을 싸워 주고 네 성민의 위험한 분쟁을 해결할 자 네 왕이 어디 있느냐? 공중 법도를 다스리며 공안을 유지할 재판장들은 어디 있느냐? 왜냐하면 의와 화평은 서로 입맞추기 때문이다(시 85:10). 네가 그토록 소원하고 의지하던 네 재판장들은 어디 있느냐? 네가 내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라고 말하던 자들은 어디 있느냐?"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1) 그들의 소원은 어리석고 악했다. 온 백성은 신정 곧 신적 통치를 싫어하며 왕정을 원했다. 신정은 사사 시대의 통치를 말한다. 그들에게는 신정이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사무엘을 배척했다. 이것은 사무엘을 대리자로 부리신 여호와를 배척하는 셈이었다. 여호와가 자기들의 왕인데도 그들은 열방처럼 자기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했다.
(2) 열 지파는 다윗가가 아닌 다른 왕의 통치를 소원했다. 그 이유는 다윗가의 왕들이 너무 전체적이어서 학정을 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다음과 같은 인간의 성향에 대한 사례이다.
[1] 인간은 자신에 대한 선견지명이 없다. 현재의 상태에서 불편을 느끼면 인간은 진기한 것을 좋아하며 변화에 의해 더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그들은 흔히 실망을 당하며 변개에서 기대했던 이익을 얻지 못한다.
[2] 인간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것을 개량하겠다는 불경한 생각을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인도를 위해 사사와 선지자들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싫증을 느끼고 "우리에게 왕과 방백들을 주소서" 라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윗가를 재왕의 언약으로 확립시켜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도 싫증을 느껴 "다윗에게는 우리 분깃이 없다" 고 외쳤다.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들 스스로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스스로 패망하는 자들이다. 이 두 가지 요청에 대해 하나님은 그들의 뜻에 응하여 먼저 사울을 주시고 그 다음에는 여로보암을 주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나아진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분노 중에(우뢰 중에, 삼상 12; 18, 19) 사울을 주셨고 얼마 뒤 길보아산에서 진노 중에 폐하셨다. 열 지파의 왕정은 타락한 솔로몬에 대한 분노에서 뿐만 아니라 왕을 원한 열 지파에 대한 분노에서도 주어질 것이다. 그들은 다윗가에 대한 불평 불만에서 이반(離反)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제 앗수르 왕의 힘으로 진노 중에 그 왕정을 폐하려고 하신다. 그러고 나면 "네 왕은 어디에 있는가? 네 왕은 없어진다. 너는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방백도 없이 지내게 될 것이다(3:4). 그때에는 너를 구해줄 자도, 다스릴 자도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을 주목하자.
첫째, 하나님은 왕왕 우리가 죄스럽고 부당하게 바라는 것을 분노하신 가운데, 또 그것과 함께 주시며 그것과 함께 우리를 정욕 가운데 내버려두신다. 이와 같이 그는 이스라엘에게 메추라기를 주셨다.
둘째, 우리는 흔히 터무니없이 소원하던 것에서 실망을 느끼며 그것은 우리가 기대하던 대로 우리를 구하지 못한다.
셋째, 하나님은 분노 중에서 주시는 것을 진노 중에 폐하신다. 그는 우리가 옳게 바라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 중에 주시는 것이고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진노 중에 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든 폐하든, 모든 것이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우리의 찬송 제목이 된다는 것은 성도의 행복이다. 깨끗한 자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딛 1:15). 하나님이 주시든 빼앗든 그 모든 것이 진노 중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악인의 불행이다. 악인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하지 못하며 편안하지 못하다.
2. 하나님은 다른 어떤 왕도 해 줄 수 없는 일을 그들에게 해 주실 것이다(14절).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리라." 육적 이스라엘은 비록 파멸하도록 내버려 두실지라도 영적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자비를 쌓아 두실 것이다. 모든 약속은 이 영적 이스라엘에게서 성취될 것이다. 사도는 이를 가리킨다(고전 15:55). 이것은 특히 저 큰 날에 있을 신자의 복된 부활을 가리킨다. 그렇지만 영적 부활 즉 죄된 죽음의 생활로부터 거룩한 신적 생활로의 부활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 삶은 천적, 영적, 신적 생활을 말한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이 약속되고 있다.(1) 포로는 해방된다. 그들의 해방은 속량에 의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보석금을 지불할 자가 누구며 그 보석금은 무엇인지를 안다. 왜냐하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준 분은 예수였기 때문이다(마 20:28). 그는 이와 같이 그들을 속량하셨던 것이다. 회개하고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인하여 죄에서 방면되고 죄의 삯인 사망과 음부에서 구원을 받는다. 그들은 여호와의 구속을 받는 자들이다. 그들은 저 큰 날에 무덤에서 의기양양하게 나오게 될 것이다. 주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망의 띠가 그들을 얽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2) 정복자는 멸망을 당한다. "사망아 내가 네 재앙이 되리라" (흠정역).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가진 자를 사망에 의해 멸하셨고 자신의 부활로 음부를 이기셨다. 그때 그는 사망의 재앙과 음부의 멸망이 되셨던 것이다. 그러나 죽음과 무덤에 대한 완전한 멸망은 신자들이 부활하는 저 큰 날에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죽음이 영원히 이김에 삼킨 바가 될 것이며 멸망받을 마지막 원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되리라" 고 번역하는 단어는 ubi nunc-즉 지금 어디 있느냐? 로 해석될 수도 있다.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사도는 그렇게 해석했다. "사망아, 그토록 오랫동안 세상을 괴롭힌 네 재앙 또는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인류를 멸망시켜 온 너의 이기는 것 또는 죽음을 철폐하셨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다. 그는 사망의 성질을 변개시켜 우리로 하여금 사망에게 승리할 수 있게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하신 약속으로서 그에게 속하는 모든 신도에게 유효할 것이다. 왜냐하면 "뉘우침은 그의 목전에서 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망과 음부에게 내릴 이 판결을 결코 취소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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