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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심판의 위협 (호세아 9:1-6)

Ⅰ. 이스라엘 백성은 여기서 영적 간음을 책망받고 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났느니라" (1절).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혼약이었다. 이 언약으로써 그들은 다른 모든 신들을 부인하고 하나님과 결합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우상을 세워 섬기며 피조물에게 피신하여 구원을 바라고 그것을 신뢰했을 때 그들은 자기 하나님되신 여호와를 떠나 행음한 셈이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애정과 찬미와 신뢰를 거짓 신들에게 돌려 그들을 존귀케 했다. 다른 열국 백성들도 우상을 숭배했으나 그들에게 있어서는 그 죄가 하나님을 떠나 행음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혼인한 것은 이스라엘뿐이었던 때문이다.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형성한 자들의 죄는 다른 사람의 죄보다 하나님을 더 노엽게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들이 행음하여 하나님을 떠난 데 대한 증거로서 그들에게 질책하는 것은 그들이 각 타작 마당에서 값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1. 그들은 우상에게 보수를 주기를 좋아했다. 즉 그들은 각 타작장에서 제물과 첫 소산을 우상에게 바쳤다. 그들은 하나님께 바치라면 불만스러웠을 것으로 우상을 섬기면서 이상한 쾌감을 느꼈다. 자기들의 종교에 비용을 들이는 데는 몹시 인색하면서 욕망의 추구에는 낭비하는 자들이 비일비재하다는 데 주목하자.

2. 또는 그들은 우상에게서 보수받기를 좋아했다. 그들은 땅의 소산물을 우상의 보상으로 간주했다. 그들은 "이것은 나를 연애하는 자들이 내게 준 값이라" (2:12)고 몰랐다고 했다. 하나님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에서 얻는 값보다 타작 마당의 값을 더 좋아하는 자들은 영적 우상 숭배의 기질이 농후한 자들이다.

Ⅱ. 그들은 다른 백성처럼 기뻐하지 말라고 금지 받는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너는 환희 작약을 기대하지 말아라. 네 음행과 사술이 그렇게 많은데 네가 평강이나 기쁨과 무슨 상관냐? (왕하 9:19-22) 기뻐할 생각을 말아라. 기쁨은 네게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려고 해라(약 4:9)." 참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유다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다른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책망을 받을 리가 없으며 음행하여 그를 떠난 이스라엘처럼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으므로 기뻐해도 좋다. 혹자는 이때 그들에게 특히 기뻐할 만한 일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손실을 회복했거나 모종의 이익을 얻게 되었거나 유력한 동맹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백성들은 그런 경우 축제를 벌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도 대적으로 기뻐했을 법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그들에게 기뻐하지 말라고 하신다. 악한 백성에게는 기쁨이 금단의 열매임을 명심하자. 그들은 기뻐해서는 안 되었다. 이는 그들이 음행하여 하나님을 떠난 까닭이다.

1. 그들이 기뻐한 게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으며 그와 전쟁 상태에 있는 그것은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하며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도 못할 터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된 기쁨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피조물의 위안에서 조그마한 기쁨을 느끼기 쉽다는 데 주목하자.

2. 죄의식과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의 기쁨은 감쇄되고 그들의 모든 안락은 약화되어야 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회개의 과제를 안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돌아가며 그와 화해할 때까지 희락이 손상당한다는 점을 잊지 말자.

Ⅲ. 그들은 오래 전에 한 말씀대로 그들의 영적 간음에 대해 멸망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위협받는다.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시 73:27).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되고 있다.

1. 그들의 땅은 여느 때와 달리 소산물을 내지 않을 것이다. 비옥한 땅 가나안은 그 거민의 악함을 인하여 볼모의 땅으로 변할 것이다. 그들은 타작 마당의 값을 좋아하며 추수의 기쁨이 충만하여 자기 죄에 대해 애통할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효과적으로 낮추시기 위해 그들의 즐거움인 고량진미 뿐만 아니라 필요한 양식까지도 박탈하실 것이다(2절). "타작마당과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하리라." 하물며 흥청대는 잔치야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날려가 버리거나 사람의 손에 약탈될 것이다. 그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던 새술도 떨어질 것이다.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로 우리의 우상과 분깃을 삼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양물과 영양물을 급여하지 않으시는 것은 당연하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우리의 미련함을 보시고 우리를 바로 고치기 위해서다 타작 마당에서 자기들의 값을 찾는 자들은 거기서 자기들의 양식을 아쉬워해야 한다. 우리가 이세상의 좋은 것들을 최선의 것으로 사랑한다면 그런 것들을 상실하게 된다.

2. 그들의 땅은 양식의 급여를 중단할 뿐만 아니라 기숙과 거주의 장소도 되지 못할 것이다(3절). 그 땅은 이전에 가나안인들에게 한 것처럼 그들을 토해 낼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 더 이상 거하지 못할 것이다. 가나안 땅은 특별히 여호와의 땅이었고 쉐킨나의 땅(갈대아 주석), 세계의 주 여호와의 땅(아람어)이었다. 온 땅의 소유주이신 여호와(시 24:1)는 가나안을 자기 영지로 간주하셨다. 하나님은 "그 땅이 내 것이라" (레 25:23)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마치 그 땅이 자기들의 소유 인양 사용했거나 남용했고 지주이신 하나님께 드려야 할 임대료를 물지도 않았고 봉사를 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땅에 들어오셔서 차지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땅을 빌리는 권리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땅은 내 땅이다. 그들은 쫓겨날 것이며 나쁜 소작인으로 판명될 것이다. 그들은 자유 계약자로 생각하지만 내가 그들이 임의의 소작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하겠다"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떠나 행음하는 자들이 그의 땅에 거주할 허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의 공의와 성결의 명예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만간 악인들은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다. 또는 그 땅이 여호와의 땅으로 불리는 것은 그 땅이 성지였고 임마누엘의 땅이었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임재의 표징을 소유한 땅이었고 하나님이 알려지고 그의 이름이 큰 곳이었으며 거기에는 하나님의 선지자와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일종의 지상 낙원의 복사판이었고 천국 낙원의 예표였다. 이와 같은 땅에서 하나님을 배반하며 행음하여 하나님을 떠나며 정직한 땅에서 불의를 행한다(사 26:10)는 것은 크나 큰 죄와 어리석은 짓이었다. 이와 같은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슬프고 쓰라린 심판이었다. 그것은 우리의 첫 부모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 거의 천국 가나안에서 배제될 뻔한 것과 같았다. 여호와의 율법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의 사랑에 감화를 받으려 하지 않는 자들은 여호와의 땅에 거주할 기대를 할 수 없다는 데 주목하자. 교회의 규율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교회의 특권을 상실한 자들이다.

3.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서 쫓겨나면 다른 어느 땅에서도 안식이나 만족을 얻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의 면전에서 쫓겨난 가인은 그 후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어 놋(유리함) 땅에 거 하였다. 여기에서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은 옛 예 속의 집인 애굽으로 갈 것이며 숨어 보신하려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파멸을 당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앗수르에 포로되어 갈 것이며 거기서 강제로 더러운 것을 먹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더러운 것은 다음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1) 사람이 먹기에 적합한 것. 즉 썩거나 부패한 것을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던 탕자처럼 극히 빈궁하게 될 것을 시사한다.

(2) 유대인이 먹기에 부적합한 것. 즉 율법이 금하는 식물을 말한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 있는 동안 다른 일로는 아무리 불순종했더라도 음식의 구별은 철저히 지켰을 것이며 그것을 자랑했을 법하다. 그러나 다른 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 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음식 구별의 자유도 얻지 못하게 될 터였고 그것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음으로써 범죄한 그들에게 지당한 벌이었다 하겠다. 우리가 음식으로 고통을 받거나 양식이 없어서든 건강을 위해서든 과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먹고 마시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하나님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먹는 것으로 범죄했고 기분 좋은 것에 너무 탐닉했기 때문이다.

4. 그들은 쫓겨날 원수의 땅에서 하나님께 열납받으실 제사를 드림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려 드리거나 그에게 은총을 입을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종교 행위를 유지할 만한 능력이 없다. 그래서 (포코크 박사의 표현대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표현과 은혜의 모든 표적과 그와의 화해의 수단에서 완전히 단절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배척받고 소외됐다는 징표가 될 것이며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표지가 될 것이다."

(1) 그들은 드릴 제물도 갖지 못할 것이며 제물을 얹을 제단도, 드릴 제사장도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드릴 전제조차 없을 것이다. 하물며 다른 제물이랴!

(2) 설혹 그들이 제사를 드린다고 해도 그들도 제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무지 합법적 제물을 갖지 못하며 그 마음이 겸비치 못한 때문이다.

(3) 그들은 기쁨과 찬미의 제물대신 거상입은 자의 식물을 먹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고독하게 위안없이 살게 되며 친척들의 죽음과 자신의 불행을 슬퍼하며 지낼 것이다. 그래서 설혹 제사드릴 기회가 있다고 해도 그들은 결코 기쁨의 식물을 먹을 처지가 못될 것이다. 왜냐하면 상중에는 성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신 26:14). 무릇 거상을 입은 자의 떡을 먹는 자는 더럽혀 지며 제단에 참예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4) 그들의 식물은 자기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다. 그들은 그 식물을 먹든지 아니면 굶으면서 그것을 바쳐야 할 처지다. 그들이 생명의 유지에 필요로 하는 식물은 여호와의 집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식물을 가져갈 여호와의 집도 갖지 못할 것이며 설령 여호와의 집이 있다 해도 식물을 가져가기에는 적합치 못하거나 그들이 바로 가져갈 기분이 나지 않을 것이다.

(5) 그러므로 신성하고 엄숙한 절기가 돌아와도 그것은 그들에게 매우 우울하고 불편한 날이 될 것이다(5절). "매 주의 명절일인 안식일과 매 달의 명절일인 월삭 그리고 매 해의 절일인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을 지킬 때가 돌아오면 너희가 무엇을 하겠느냐?" 여호와의 절일은 엄숙한 날이다. 우리가 그런 절일에 초대를 받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나 그런 엄숙한 명절과 절기의 혜택과 위안을 박탈당할 자에게 "그 때에 너희가 무엇을 하겠느냐" 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너희는 그때에 그 날들을 슬픔과 애통가운데서 보내게 될 것이다. 만일 너희의 잘못만 아니었더라면 너희는 기쁨과 찬미로 지낼 수 있었을 것이다. 너희는 자비가 없어봐야 그 가치를 알게 될 것이고 영적 양식의 기근을 당해봐야 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은혜의 수단을 향유할 때는 만일의 경우 그런 것을 박탈당하거나 접근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심사숙고해 봐야 한다는 데 주의하자.

5. 그들은 흩어진 땅에서 멸망할 것이다(6절). "보라, 저희가 안식일과 다른 위안일들을 보낼 수 있던 여호와의 땅에서 나가며 멸망을 인하여 (또는 피하여) 애굽으로 가며 나라가 앗수르인에게 멸망했으므로 폭풍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리라는 희망에서 애굽으로 갔도다." 그러나 그 희망은 그들을 실망시킬 것이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의 불평과는 달리(출 14:11) 애굽에는 매장지가 있으며 그나마도 자기들을 위한 묘혈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을 모아 묘지로 옮기듯 애굽인들이 그들을 모을 것이며 멤피스(개역 성서:놉)가 그들을 장사 지낼 것이기 때문이다. 멤피스는 애굽의 도읍지 중 하나였다. 모으는 것(즉 거두는 것)과 장사하는 것은 일련 작업이다(렘 8:2; 욥 27:19).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보겠다고 망상하는 자들은 자기 생명을 구하려고 했던 곳에서 죽음을 만난다는 것을 잊지 말자.

6. 그들의 땅은 황량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땅을 뒤에 두고 떠났으며 또 그리로 돌아가는 것을 소망으로 삼았다. 장막으로 말하면 그들이 이전에 거하던 주택이었고 자기들의 재물을 간직하던 장소였다. 그것은 은보물을 위한 즐거운 곳이었다(흠정역). 그러나 그 장막들은 파괴되고 폐허가 되어 찔레로 뒤덮일 것이다. 그래서 만일 그들이 그 환난에 살아남아 고토로 다시 귀환한다고 해도 그 땅이 비옥하지 못하며 거주할 수 있는 곳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땅은 그들에게 양식도 거소도 제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그의 장막을 사랑스럽게 여기며 그의 율례를 즐거운 곳(사 64:11)으로 여기는 데 반하여 돈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들은 은보물을 두는 장소를 즐거운 곳으로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즐거움은 요행이나 변화가 미치지 않지만 은을 주고 사거나 은을 저장하거나 은으로 장식되고 미화되는 은보물의 즐거운 곳은 파괴되어 찔레로 덮이고 그와 함께 사람들의 모든 즐거움도 사라지기 십상이다.

 

9:2 없음.

 

9:3 없음.

 

9:4 없음.

 

9:5 없음.

 

9:6 없음.

 

9:7

심판의 경고 (호세아 9:7-10)

그들을 보다 더 일깨우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경고가 계속된다.

Ⅰ. 운위된 멸망은 신속히 임할 것이다. 심판은 졸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오랜 유예 기간을 바랄 만한 이유가 없다. 심판은 문 앞에 있다.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7절) 더 이상 지체함이 없을 것이다. 보응의 날이 임했으니 이것은 그들이 누차 각오하라고 경고 받은 날이다. 선지자들은 멸망이 임할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해 왔는데 이제 그 날이 온 것이다. 하나님의 인내 기간은 만료되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1. 하나님의 심판일은 형벌의 날이자 보응의 날이다. 형벌의 날에는 사람들의 죄가 조사받고 밝히 드러나며 보응의 날에는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각자의 행위대로 상벌이 주어진다. 엄격한 형벌은 공정한 보응을 위함이다.

2. 형벌과 보응의 날은 촉급하다. 그 날은 확실하며 가까워서 이미 온 것이나 다름없다.

Ⅱ. 이로써 그들은 선지자들에게 대한 자기들의 견해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형벌의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그들은 자기들이 교훈으로는 알지 못하던 것을 슬픈 체험에 의해 알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쓰라린 일이며 그의 손에 짜지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손이 들릴 때는 그들이 보지 않으려고 해도 보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1. 그들은 예언자로 자처하는 자들이 참 선지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요 미친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죄 중에 있는 자에게 아첨을 하며 그들을 안심시켜 잠자게 만들고 비록 계속해서 죄 가운데로 행할지라도 평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신에 감동된 자로 자처했다(아합의 선지자처럼, 왕상 22:24). 그들은 자신을 기만했을 뿐만 아니라 예언을 받는 자들도 기만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찌해서 자기 백성들을 이런 거짓 선지자에게 기만당하도록 내버려두시는가 ?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이는 네 죄악이 많음이니라. 너는 신의 율법을 멸시하고 죄악을 고집하였다. 또 네 원한은 컸다. 참 선지자들은 네 죄에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를 책망하였기에 그들에게 대한 네 증오는 컸다."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에 대한 미움을 품으며 그들의 많은 죄가 진리에 반항하며 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유혹을 그들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신다(살후 2:11). 그 유혹은 너무나 강하여 그들은 형벌과 보응의 날이 이르기까지 속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 강한 유혹은 그들을 미혹하던 자들의 어리석음과 광기를 그들에게 깨우쳐 줄 것이며 그들의 미혹에 넘어간 자신의 어리석음과 광기를 각성시켜 줄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참 선지자들이 어리석고 미친 자인지 아닌지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신에 감동된 자들을 어리석고 미쳤다고 간주하며 그렇게 불렀었다. 그들은 참선지자들이 어리석고 미치긴 커녕 그 시대의 현자들이며 하나님의 신실한 사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사무엘의 말 중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가 선지자로 세움을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삼상 3:20).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보응의 날들을 임하게 하심으로써 자기 사자들의 말씀을 성취시키실 때는 그들을 멸시하고 조소하며 그들에게는 베들람(Bedlam:런던 소재의 정신 병원)이 가장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하던 자들도 자기들의 그런 유의 많은 죄와 큰 원한(증오)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이유로 그들에게 신속한 파멸을 내리신다. 여호와의 사자를 조롱한 것은 그들이 벌받고 부끄러워하게 될 죄였다.

Ⅲ. 거짓 선지자들의 악이 밝히 드러나 그들을 수치스럽게 할 것이다(8절). "에브라임의 파숫군의 내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흠정역). 이전에는 그랬다. 그들에게는 한 무리의 선하고 귀한 사역자들이 있었고 그 사역자들은 하나님께 밀착하여 그와의 교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패하고 간악하더라도 박해하는 선지자의 무리가 우굴거리며 그들은 모든 해악의 원흉이다." 또는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에브라임의 파숫군은 내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주장하며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서두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행위에 새 잡는 자의 그물 같아서 교활하게도 단순한 자를 죄악에 끌어들이며 정직한 자를 환난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는 선과 선한 자에게 대한 적의와 증오가 너무나 가득차서 자기 하나님의 전에서 또는 자기 하나님의 전에 대해 원한의 화신이 되었다." 악한 선지자는 인간들 중에서 최악의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음모는 극히 위험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파숫군 또는 사색가임을 자랑한다. 사색에 관한 한 그들은 옳을 수 있으며 하나님과 더불어 그들의 머리에는 선한 생각이 가득차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그 모든 행위에 새 잡는 자 같아서 자기 자신을 잡고 남들도 먹이로 삼는다.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라. 그러면 그들은 그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고 있으며 선한 사역자들과 선한 백성에게 대해 매우 악하고 앙심을 품고 있다. "그런 파숫군을 가진 땅이여! 제게 화로다. 그런 선지자를 가진 교회여! 네게 화로다. 그들은 선견자이지만 행위자는 아니다." Corruptio optimi est pessima-즉 최선의 것이 부패할 때는 최악의 것이 된다.

Ⅳ.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들의 죄에 대해 그들과 계산하실 것이다. 그들은 자기 열조의 발자취를 따랐기 때문이다(9, 10절).

1. 그들은 자기 조상들 못지 않게 악했다. "저희는 심히 패괴하였다." 그들은 죄악에 뿌리를 박으며 거기 고착되었다. 그들은 사탄의 깊은 데까지 내려가서 다시 회복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들의 부패한 얼룩은 너무나 깊어서 지워지지 않으며 주홍같이 붉으며 표범의 반점 같다. 게다가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다. 그들은 스스로 부패하였고 스스로 제 마음을 더럽히며 완악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기브아 시대와 같이 패괴했다. 즉 레위인의 첩이 기브아인들에게 욕을 당하고 살해되었으며 베냐민 온 지파가 그 악행을 두둔하고 나섰을 때와 같았다. 그 시대는 참으로 심히 부패한 시대였는데 지금 시대도 그와 같다. 현재의 음란과 사악은 기브아 시대처럼 뻔뻔스럽고 대담하다. 그러므로 당시 기브아에 가해진 복수 같은 것밖에 달리 기대할 것이 있겠는가? 현재 각 지파는 당시 베냐민 지파처럼 낮춰질 것을 각오할 수밖에 없다.

2.. 그러므로 그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하여 셈을 치르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악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죄를 벌하실 것이다. 그 악은 전형적인 악이며 유전적인 악이고 혈통으로 흐르는 죄다. 이제 아비의 죄는 자손에게서 갚게 될 것이다(출 20:5). 하나님은 그들의 선조의 타락과 변절 그리고 패역함과 야비한 배은망덕을 들어 그들을 견책하신다(10절). 다음을 관찰하자.

(1) 하나님은 처음 그들을 민족으로 형성시키시면서 이스라엘을 크게 명예롭게 하셨다.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노라." 광야는 가난한 나그네가 몹시 갈증을 느끼면서도 포도를 발견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나그네가 광야에서 포도를 만날 때처럼 그들에게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셨다. 또는 그들이 광야에 자체가 귀중해서가 아니라 포도원 주인에게 처음으로 익은 포도가 귀중하고 기쁨이 되는 것처럼 그들이 하나님께 귀중했던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하였다(사 43:4). 그는 그들을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으셨고 손수 만드신 것과 다름없이 여기셨으며 처음 익은 좋은 포도로 간주하셨다. "내가 그들을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같이 하였다." 선량한 백성은 처음 익은 좋은 과일에 비유된다(렘 24:2). 처음 한 개는 나중의 여러 개 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선히 베풀기를 즐거워하셨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을 인해서라기보다 그들의 열조들을 사랑하신 까닭에서이다. 그는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서 가장 처음 익고 가장 훌륭한 포도를 돌보듯 그들을 조심스럽게 보존하셨다. 하나님이 이 모든 명예를 그들 위에 입히시고 그들 또한 훌륭하게 처신할 듯했으므로 누구든지 그들이 자기의 빼어난 점을 유지할 줄로 생각했을 것이다.

(2) 그러나 그들이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수치를 입혔는지 살펴보자. 하나님은 그들을 따로 세워 자기의 특수 민족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바알브올에 갔다. 그들은 모압인들과 연합하여 그 더러운 똥두더미 신에게 제사를 드렀다(민 25:2, 3). 그리고 그들은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렸다. 백성들이 모압의 딸들과 행한 음란이 바알브올에게 드리는 예배의 일부였다면 (그렇게 보인다) 바알브올은 특히 수치스런 우상이다.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이 자기 몸을 무엇에 바치든지 간에 그것은 처음이든 마지막이든 그들에게 기필코 수치가 될 것이다. 그들의 가증함은 여기서 그들의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 된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마음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었다. 또는 그들은 일단 하나님을 버리자 그들의 가증한 것 즉 그들의 우상과 가증한 우상 숭배를 제 마음대로 많게 하였다. 이것은 그들의 조상들의 행위였다.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들을 위해 좋은 일을 베푸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행동을 했다. 그와 꼭 같이 현재의 세대도 스스로 심히 패괴하였다.

 

9:8 없음.

 

9:9 없음.

 

9:10 없음.

 

9:11

심판의 위협 (호세아 9:11-17)

앞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죄가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유래했음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벌이 그 자손에게 전래됨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처음에는 사망은 죄로 말미암아 들어왔듯이 죄와 함께 상속되는 까닭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Ⅰ. 에브라임의 죄. 일부 표현은 여기서 그것을 묘사하고 있다.

1. 그들은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17절). 그들은 그의 말씀이나 채찍의 소리에 주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의 지배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에게 그들의 의무와 이익과 위험을 말했으나 그들은 그를 중시하지 않았다. 그자 자기 말씀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모든 말씀은 그들에게 이야기와 같았다.

2.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악한 행위에 대해 듣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15절). 그들의 죄에는 노골적 악의가 있었다. 그들은 나약한 게 아니라 대담하고 주제넘었다. 선행을 가르치고 설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이 악하게 행할 수밖에 있겠는가?

3. 그리고 그들의 예배가 부패했을 때 그들 중에 행위가 악했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15절). 그들의 모든 악은 길갈에 있었다. 길갈은 우상 숭배로 유명한 곳이었다(4:15; 12:11; 암 4:4; 5:5). 우상 숭배자들은 길갈이 과거에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엄숙한 거래로 유명했기 때문에 그곳을 우상 숭배의 본거지로 택한 것 같다(수 5:2, 10; 삼상 10:8; 11:10). 우상 숭배의 근원은 길갈이었고 우상 숭배는 길갈에서 전국으로 파급됐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악은 길갈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온갖 다른 악은 그 연원을 우상 숭배에다 두었던 까닭이다. 예배의 타락은 도덕의 타락을 수반한다. 음녀의 어미는 다른 모든 가증한 것의 어미이다(계 17:5). 박학한 그로티우스는 여기에 비의적 의미가 있다고 추측한다. 시리아어의 골고다는 히브리어의 길갈과 동일한 말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것이 골고다에서 처형된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리스도의 처형은 유대 민족의 최대 범죄여서 이에 대해서는 참으로 그들의 모든 악이 그것에 집약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4. 그리고 그들의 방백들이 다 패역한 자일 때 백성이 예배와 행위에서 악하게 행했다는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열지파 왕들은 연속에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리고 당시의 재판관들과 행정관들도 다 악했다. 그들은 죄 많은 곁길로 나가 그 악한 길을 고집했다.

Ⅱ. 죄 때문에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불쾌히 여기셨다. 여기서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의 순수한 눈길에 매우 도발적인 죄로 보이며 죄인을 극히 가증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여러 가지로 표현되고 있다.

1.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신다(12절).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에게 대한 복종에서 물러날 때 하나님의 떠나심과 그의 보호와 관대하심의 철회밖에 기대할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위협도 그대로 시행될 법하다. "저희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은 참으로 흉한 상태에 있는 자라는 것을 명심하자. 우리의 행복이나 앙화는 하나님이 은혜로이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셨다. 즉 그들을 핍박하며 사로잡으셨다. 사울이 자기 불평 중 이 부분에 강조점을 두고 "블레셋인들이 나를 대적하여 전쟁하여 하나님이 나를 떠났다" 로 말할 때는 이 점을 알았다.

2. 아니,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떠나실 뿐만 아니라 그들을 증오하기까지 하신다. "그들의 모든 악은 길갈에 있었다. 거기서 내가 그들을 미워하였다(개역 성서에는 없음)." 하나님께서는 가증한 죄가 자행되는 곳에서 죄인을 가증히 여기신다. 하나님은 길갈에서 그들의 선조들에게 대해 그의 은총의 표징을 많이 부여하셨으나 이제는 그곳이 그들의 야비한 배은망덕 때문에 하나님의 증오를 받는 장소가 되고 있다.

3.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그들을 그의 은총 속에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의 틈은 바다처럼 넓어서 결코 메울 수가 없다. 이 말씀은 앞서 하신 그의 말과 일치한다(1:6, 7).

4. 그는 그들을 버리실 것이며 더 이상 그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실 것이다.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가 그들을 내 집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그들을 더 이상 자기 소유로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며 세상에서 자기 가족에 속하는 것으로 인지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집세를 물지 않는 신실치 못한 거주자나 신용도 없고 일도 하지 않는 무익한 종처럼 그들을 문밖으로 쫓아내실 것이다. 하나님의 집을 모독하는 자들은 더 이상 그 집에서 기숙하거나 세들지 못하고 쫓겨나는 것밖에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을 명심하자.

5. 아니, 그는 그들을 자기 집에서 쫓아내실 뿐만 아니라 아주 멀리까지 보내실 것이다(17절). "내 하나님이 저희를 그의 집에서 버리실 뿐만 아니라 그 목전에서 쫓아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포기하며 배척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자기 집에서 쫓아 내겠다고 말씀하셨는데(15절) 선지자는 여기서 그 주인의 의사를 잘 아는 자로서 그 말씀을 후원하고 있다. "내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시리라." 선지자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얼마나 즐거워하고 편안해 하는지 주목하자. 다른 자들이 하나님을 인정치 않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할 때 선한 자들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를 기꺼이 인정할 수 있으며 그들 자신도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만족이 된다. "모든 패역자들은 다 멸망하나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시로다."

Ⅲ. 여기서 재삼재사 경고하는 심판은 곧 그들의 후손을 멸절시키며 포기한다는 것으로서 그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의 결과였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에브라임은 인구가 번창할 것처럼 보였다. 에브라임이란 이름은 "창성한다" 는 데서 유래했다(창 41:52). 요셉은 무성한 가지이다(창 49:12). 그리고 모세의 축복은 에브라임의 만만을 예언했다(신 33:17). 에브라임은 하나님의 영광이었다(11절). 에브라임은 인간 거주의 경계를 지정하시는 분에 의해 이렇게 될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도다." 이것은 에브라임의 증가를 예고하는 말이다. 누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로부터는 융성을 기대할 수 있다. 에브라임은 두로만치 강성하고 부유하며 교만하고 안심했다. 갈대아 주석은 이렇게 해석한다. "이스라엘 회중은 율법을 놓치는 동안에는 번영과 안전에 있어서 두로와 같았다."

2. 에브라임은 아주 소수로 될 것이다(11절).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같이 날아가리라." 그들의 자녀는 잡혀갈 것이며 가족에 대한 희망은 끊어질 것이다. 그들의 모든 영광은 하늘을 향해 신속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솟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날아 갈 것이다. 세상적 영광은 날아가 버리는 영광이라는 데 주목하자. 그러나 하나님으로 자기 영광을 삼는 자들은 그에게서 영원히 쇠하지 않는 영광을 얻을 것이다. 에브라임은 열매를 맺는 나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공격을 받아 날려가 버릴 것이다. 그 뿌리는 마르며 과실을 맺지 못할 것이다(16절). 뿌리가 마르면 가지가 시들어 버릴 것은 당연하다. 다음을 관찰하자.

(1) 하나님은 자녀를 멸망시키느라고 심판의 위협을 하신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손길로 자멸하게 될 것이다(11절) "해산함이나 아이뱀이나 잉태함이 없으리라." 그들의 자녀 중 일부는 낳자 마자 곧 죽을 것이다. 요람이 곧 관으로 변할 것이다. 다른 자녀들은 사산하거나 어미 뱃속이 그들의 무덤이 되며 배내 아이의 죽음은 그 어미의 죽음도 될 것이다. 또 다른 자녀는 그들의 어미가 수태하자마자 곧 유산될 것이며 익지 않고 떨어지는 열매 같을 것이다. 하나님은 타락하고 죄많고 유해한 전 인류를 쉽사리 뿌리째 뽑을 수 있으시며 하늘 아래서 도말해 마땅하다는 데 주목하자. 그것은 여기 에브라임에게 행하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그들을 무자하다고 기록하시며 그들의 모든 영광으로 날아가게 하시며 해산과 잉태를 없이 하시고 그들의 뿌리를 말리신다. 그들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그들의 사업은 수년 내 끝이 난다.

[2] 그들은 대적의 손으로 멸망할 것이다. 그들은 죽어도 혹심한 죽음을 당할 것이다(12절). "저희가 자녀를 길러 어느 정도 성숙시키며 유아기에 걸리기 쉬운 질병과 죽음을 면하게 하며 위험을 지난 것으로 생각될 만치 기를지라도 내가 이런 저런 심판으로 그들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가문을 세우거나 그 이름을 계승시키지 못할 것이다." "에브라임은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리라" (13절). 어미들은 자식을 낳는 데 큰 진통을 느낄 것이며 그 양육에는 정성과 수고와 비용이 여간 많이 들지 않을 것이지만 잔혹한 원수가 와서 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무참히 칼에 부칠 때 그들은 그 동안 살륙을 위해 키워온 어린양처럼 보일 것이다. 왜 자녀를 낳아 길렀는지 모른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서 얻는 위로를 크게 흐르게 만든다. 이는 아마 살륙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설상가상인 것은 그 세대의 화가 된 것은 그들 자신이라는 것이다. 16절에서 그 위협은 또 다시 나온다. "비록 저희가 아이를 낳을 지라도 내가 그 사랑하는 태의 열매 곧 그들이 극히 사랑하는 자녀들을 죽이리라." 부모의 사랑도 자녀의 생명을 안전히 놓치지 못한다는 데 주목하자. 아니. 때로 죽음은 한 가정의 귀염둥이를 데려가서 비관을 남기라는 사명을 부여받기까지 않는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그들 모두의 파멸이 선고되었을 때는 그래도 진노에 자비가 뒤섞여 있어서 부조의 세대는 불신앙 때문에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쓰러진다는 것이었으나 그 자녀들은 부조가 들어가지 못하는 안식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예고되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전면적 최종적 배척이 선고되고 있다. 그들의 자녀조차 멸절될 것이며 그 땅은 ob defectum sanquinis-즉 상속자가 없어 국가에 귀속될 것이다. 갈대아 주석과 많은 랍비들은 자식들을 몰록에게 제사드리는 자들이 본문에서 말하는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에게 끌어내는 자라고 이해한다. 그 죄는 동시에 벌이 되기도 하는 죄였다. 이것은 인정머리라곤 추호도 없는 부모를 증명하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축복이 끊겨 마땅하다.

[3] 피해에서 남은 소수의 무리는 흩어지게 될 것이다(17절). 그들은 열국 가운데 유리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남은 유대인은 오늘날까지도 유리 방랑하며 세상에서 그들이 독립국가로 행세할 곳은 없는 형편이다.

(2) 이에 대한 선지자의 기도가 나온다(14절). "여호와여 저희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이렇게 파멸이 내정된 백성을 위해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것은 이렇습니다. 그들로 태에서부터 죽게 하거나 살인하는 자 앞으로 굳어가게 하신다는 명령을 이미 발하셨은즉 그 두 가지 중에서 차라리 태에서 죽게 하소서."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민족에게 전체적 멸망이 임박하고 있을 때도 같은 이유로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눅 23:29)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저희에게 배지 못하는 태와 젖없는 유방을 주소서. 사람의 손에 떨어지기보다 자비가 크신 여호와의 손에 빠지는 것이 더 나은 때문입니다." 자식이 없는 자들은 이로써 하나님의 뜻에 화합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하자. 즉 그들에게 자녀가 있었다면 차라리 무자하면 좋겠다고 할 때가 올지 모르는 때문이다.

 

9:1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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