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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이스라엘의 죄와 벌 (호세아 8:1-7)

견책과 경고는 선지자에게 나팔을 그 입에 대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다(1절). 그것은 엄숙한 집회를 열어 모두가 그의 전언을 주목하고 거기서 경고를 받도록 하자는 부름이었다. 선지자는 경종과 경적을 울려야 했다. 그는 이 패역한 민족에게 대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전을 포고해야 했다. 적군이 그들의 땅을 점령하기 위해 신속하고도 맹렬히 다가오고 있으며 그는 그들에게 그것을 각오하라고 일깨워야 했다. 이와 같이 선지자는 파숫군의 역할을 해내야 했다. 그것은 포위된 자들에게 병기를 잡고 일어서서 성을 수비하도록 나팔소리로 부르는 일이었다. 그 때 선지자는 포위자들이 공격을 개시하는 것을 본 때문이다(겔 33:3). 선지자는 자기 목소리를 나팔이 같이 날려야 했고(사 58:1) 백성을 그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렘 6:17).

Ⅰ. 여기에는 그들에게 대한 전체적 책망이 나온다. 그들은 지엄하신 주권자 여호와께 대한 죄인이었고 반역자였다.

1.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다(1절). 그들은 명령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죄가 다 그렇지만) 언약도 어겼다. 그들은 원래의 계약을 파기하는 죄를 범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충성에서 돌이켜 반역했고 영적 간음으로써 혼인언약을 깨뜨렸다. 그들은 사실상 자기들이 그 이상 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그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셈이다. 언약을 어겼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들은 미련하게 행했을 뿐만 아니라 기만 행위도 한 것이다.

2. 그들은 많은 구체적 사례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준행해야 할 규칙이다. 죄가 나쁜 것은 바로 그 율법이 우리에게 정해 준 영역을 침범한다는 데 있다.

3. 그들은 선한 것을 버렸다. 그들은 선, 즉 하나님을 싫어하여 배격하였다. 어떤 이는 그렇게 이해하며 그것은 매우 적절하다. 하나님은 선하시며 선을 행하시며 또한 우리의 선이신 까닭이다. 하나님 한 분밖에는 선한 이가 아무도 없다. 그는 모든 선의 근원이시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과 관계 맺기를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를 버렸다.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셔서 파멸에 내어 주려고 하셨는데 여기서 그 이유를 제시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먼저 자기를 버리시기까지는 결코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데 주목하자. 또는 우리가 읽는 대로(흠정역) 그들은 선한 일을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봉사를 버렸고 이것은 하나님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사람들을 선하다고 칭하는 것을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과 인간 존중 사상 그리고 미덕과 정직에 대한 온갖 인식을 버렸다. "저희가 내 언약을 어겼다." 는 말을 관찰하자. 그것은 드디어 예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그들이 "내 언약" 을 어긴 때문이다. 명령 위반은 언약 위반의 길을 예비했다. 그들은 명령을 깨뜨림으로써 언약을 어기게 되었다. 이는 그들이 선을 싫어 버렸기 때문이다. 시작은 선을 버린 데서부터이다. 그들이 지혜와 선행을 중단하자 모든 것이 오유화되었다(시 36:3). 타락의 과정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맨 처음 선한 것을 버린다. 그러고 나면 그 태만(omission)은 범죄(commission)의 길을 예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실제로 자주 범하다 보면 결국 그의 언약을 상습적으로 부인하게 된다. 사람이 기도와 말씀의 청취와 안식일 성수 그리고 기타 선한 일들을 싫어 버릴 때는 하나님을 완전히 포기하는 첩경에 서게 된다.

Ⅱ. 여기에는 그들의 죄에 대한 진노와 파멸의 일반적 위협이 나온다. "대적이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칠 것이며 (1절) 저를 따를 것이다(3절)." 우리가 만일 여호와의 집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을 덮치러 오는 독수리는 산헤립이나 느부갓네살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산헤립은 유다의 모든 성곽 도시들을 석권했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었는데 이것은 의심할 나위도 없이 여호와의 집을 노리고 한 짓이었다. 그는 다른 국가의 잡신들의 집들을 황폐시켰듯이 여호와의 전도 폐허로 만들려고 예루살렘을 공격했을 것이다. 한 편 느부갓네살은 성전을 불지르고 성전의 기명들을 약탈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이것이 앗수르 왕에 의한 열지파 왕국의 멸망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백성의 무리로 간주해야만 한다. 이 백성의 무리는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이 있는 (롬 9:4)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여기서는 여호와의 집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그런 지위가 자기들을 보호해 줄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들이 비록 자기들의 종료의 이름과 모양을 계속 보유하더라도 그 신앙의 생명과 정신은 이미 상실했다는 것을 그들에게 고하도록 지시를 받는다. 그들은 독수리와 다른 새 떼가 모여드는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대적은 독수리처럼 신속하고 강력하고 맹렬히 그들을 추격할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우호의 언약을 깨뜨리는 자들은 스스로 주위 모든 자의 미움과 원한을 사게 된다는 데 주목하자. 그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쉽사리 먹이가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집과 그의 살아 있는 성전이었지만 그것도 그들을 위한 변명이나 피난처가 되지 못할 것이다(암 3:2).

Ⅲ. 백성들은 환난과 고통 중에 있게 되자 표리 부동하게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주장하고 나섰다(2절). "이스라엘이 내게 부르짖으리라" (흠정역). 그들은 이런 심판의 위험을 받을 때 면제해 주실 것을 주장하고자 하여 부르짖거나 또는 심판이 내릴 때 하나님께 구원해 달으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면 그들은 간절히 기도하며(사 26:16) 그들 중에 하나님이 알려져 있고 그의 이름이 크다고 (시 76:1) 주장할 것이다. 그들은 형통할 때 바라지도 않고 멸시했던 하나님의 행사에 대한 지식을 고통 중에는 주장할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그를 자기들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후안무치한 거지처럼) 자기들이 하나님을 잘 알며 그를 안 지가 오래된다고 말할 것이다. 행위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부인하며 그와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다가 사정이 변하면 그를 알며 이웃 사람보다 그를 더 잘 안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많다는 데 주목하자. 그러나 "내 하나님, 내가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내 하나님, 내가 당신을 섬기며 당신께만 매달리나이다" 라고 말할 수 없을 때 "내가 당신을 아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도움이 될 것인가?

Ⅳ. 선지자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권면한다(5절). "저희가 어느 때에야 능히 무죄하겠느냐?(직역하면 그렇다)" 이것은 절대적 결백을 의미하지 않는다(결백은 죄인이 아무리 해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때에야 능히 회개하여 개선하며 이 일에 결백할 수 있으며 우상 숭배의 죄를 면할 수 있는가 ?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과 결합하였다. 얼마나 오래 가야 그들은 그 우상을 뗄 수 있으며 제할 수 있는가? 이것은 죄의 관습을 떨쳐 버리기란 여간 어려운 노릇이 아님을 암시해 준다. 오래도록 빠져 있던 육의 더러움이나 영의 오염을 정화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이 자기 불의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하시기라도 하는 듯이 말씀하신다. 그는 그들의 완고함을 불만으로 여겨 말씀하신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타오르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들이 만약 그 죄로부터 무죄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타오르는 그의 노는 곧 돌이켜질 터였다. 그들은 환난 가운데서 부르짖기를 "어느 때에 야 하나님이 자비의 길로 우리에게 돌아오실 것인가?" 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어느 때에야 너희가 의무의 길로 내게 돌아오려는가?" 라는 물음을 듣지 못한다.

Ⅴ. 여기에는 그들이 책망 받은 몇 가지 특수 사례가 나온다. 그들은 이 일들로 해서 어리석다고 정죄받으며 그 일이 치명적 결과를 경고받는다. 이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노는 그들을 향해 타올랐던 것이다.

1. 정치적 문제.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왕들을 세웠다(4절) 그들이 사무엘을 배척하고 (사무엘 안에서 여호와는 그들의 왕이 되셨는데) 열방과 같아지기 위해 (삼상 8:5) 사울을 택한 것이 바로 그러했다. 또 그들이 다윗가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운 때도 그러했다. 그들은 비록 여로보암의 옹립으로 하나님의 은밀하신 계획을 성취시키긴 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진 않았고 그의 뜻을 도모하려고 묻지도 않았으며 기도로 그의 지시를 구하지도 않았고 그의 섭리를 존중히 여기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기 기분에 이끌렸으며 자기 감정의 충동에 좌우되었다. 호세아가 예언하던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들을 세우고 다시 폐위시키는 일은 왕권 도전자들이 득세하는 데 따라 유행 현상을 일으켰던 것처럼 보인다(왕하 15:8 이하 참조).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우리의 모든 행사에서 하나님을 인정치 않으면서 일에 착수하고 종사할 때는 위안과 성공을 기대할 수가 없다는데 유의하자. "저희가 방백들을 세웠으나 나는 모르는 바다. 즉 나는 그들로부터 그 일을 들어서 아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는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선지자가 있었고 신탁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합법적인지 아니면 최선의 방법인지 내 입의 교훈을 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쳐다보지 않았다(사 31:1). 방백들도 입다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입다는 정권을 떠맡기 전에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자기 말을 다 고하였던 것이다(삿 11:11). 공직 특히 관리의 선출과 임명을 위탁받는 자는 하나님의 지시를 원하고 그의 존귀를 도모함으로써 하나님을 그 일에 참여시켜야 한다.

2. 종교적 문제에서는 그들이 더욱 악하게 행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송아지를 세워 하나님을 대적시킨 때문이다. 그들은 송아지를 세워 하나님과 경쟁시키며 그를 대항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많은 은과 금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존귀하게 해드릴 수도 있었는데 그것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신들이라고 부르지만 (왕상 12:28) 하나님은 우상이라고 부르신다. 우상이란 단어는 슬픔 또는 환난을 뜻한다. 이는 우상이 하나님을 노엽게 하며 자기의 숭배자들을 파멸로 몰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은과 금으로 우상을 만들었다.

이것은 주로 그들이 은과 금으로 만든 신상 특히 단과 벧엘에 있던 금송아지 상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탐욕자의 영적 우상숭배에 적용함직하다. 그 은과 금은 그들이 행복의 근원으로 삼고 열중하는 신이다. 그들은 그 물신에 충성을 바치며 신뢰를 둔다. 선지자는 그들이 우상 숭배가 어리석은 짓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1) 그들의 신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 신들의 근본을 추적해 보라. 그러면 그들이 자신의 상상의 산물이며 자기 손의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6절). 그들이 섬긴 송아지는 사마리아의 송아지로 불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 아합 당시 사마리아가 이스라엘의 수도로 되자 단과 벧엘에 있던 송아지 외에 궁궐 가까이에도 송아지가 세워졌거나 아니면 단과 벧엘의 송아지 중 하나를 사마리아로 옮겼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신들을 좇는 자들은 계속해서 더욱 새로운 신을 찾을 것이다. 그들은 이 신이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됐는지 그 연원을 살펴 생각해 봐야 했다.

[1] 그 신은 그들 자신이 안출하여 세운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났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하나님은 명백히 그것을 금하셨다) 이스라엘에서 났다. 그것은 인접국가들로부터, 아니 애굽인들에게서 차용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고안품이었다. 애굽인들은 살아있는 암소를 아피스 신으로 숭배했지만 금송아지를 숭배하진 않았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죄였다. 그들 자신이 안출해 낸 것이 그들의 숭배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에서 난 것이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금은으로 만들어졌고 그 금은은 이스라엘 백성한테서 갹출되었다. 그것은 기부에 의해 만들어진 가난한 신이었다.

[2] 그 신은 장인의 기술과 수고로 생겨났다(신 27:15). "이것은 공장이 만든 것이라서 참 신이 아니다" (6절). 이 논증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결정적이며 추론은 너무나 간명하여 그들 자신의 생각으로도 자기들의 우상 숭배가 부끄럽게 여겨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 자신이 존재(재료와 형체)를 부여했으면서 생명은 부여할 수가 없던 것을 신으로, 즉 존재와 복을 주는 신으로서 숭배한다는 것보다 불합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만들어진 신은 하나님이 아니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전파했다. 하여 범죄인으로 기소당했다(행 19:26). 그런데 그들은 이 논증에 당연히 우상 숭배로부터 돌이켜야 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것은 그들이 왜 우상과 불가분리하게 결합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로서 등장하고 있다. 송아지 우상은 그들 자신에게서 나왔으므로 그들은 무죄에 도달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기들의 신으로 하여금 자기들이 원하는 행동을 하게 했다.

(2) 그들의 신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들이 신이 아니라면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것들이 신으로 자처한다면 셈을 치르게 될 것이다.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부숴뜨리우리라." 앞에 나온 논증의 힘에 굴복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것이 참 하나님이 아니며 무익한 우상(갈대아 주석의 평대로)이란 말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비록 금송아지일지라도 토기장이의 그릇처럼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그것은 톱밥처럼 될 것이며 거미집이 될 것이다(성 제롬은 그렇게 해석한다). 이것은 모세가 금송아지를 빻아 가루로 만든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모세 때의 금송아지처럼 이 송아지도 같은 수난을 겪을 것이다. 산헤립은 자기가 사마리아와 우상에게 행한 일을 자랑했다(사 10:11). 피조물을 신성시하는 그것은 그 피조물을 파멸시키는 첩경이 된다는 데 주목하자. 그들이 만약 자기들의 금과 은으로 그릇과 장식품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금과 은을 신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3) 그 신들은 그들을 어디로 인도할 것인가? 신들의 분쇄는 그 신들을 신뢰하던 자들에게 실망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저희가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파멸을 이루리라" (4절). 그들은 멸절되기 위해 우상을 만들었다(흠정역). 그것은 그들이 남용했던 은과 금이 끊어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과 그들 자신의 땅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지기 위해서 한 짓이었다. 그들의 우상 숭배는 마치 그들이 의도적으로 그것을 계획하기라도 한양 그들의 멸절로 끝나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죄의 결과로 나타날 때는 그들이 스스로 신뢰하던 신들로부터 어떤 위안을 얻을 것인가? 아무런 위안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너를 버렸느니라(흠정역). 네 송아지는 고통 당하는 네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다.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도 사라질 것이며 네게 아무런 즐거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택한 신들에게로 보냄을 받은 자들은 그 신들이 번뇌케 하는 안위자(욥 16:2)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삿 10:14). 사람들이 죄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기필코 죄의 모든 즐거움과 이득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사마리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계속 고수하며 그에게 신실했더라면 그도 사마리아에게 즉시 도와주는 강력한 조력자가 되셨을 것이다. 그러나 사마리아는 하나님 보다 송아지를 우선시했지만 그 송아지는 상한 갈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정은 금과 은으로 자기 신을 삼는 자들의 경우와 같을 것이다. 송아지는 그들을 버릴 것이며 진노의 날에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겔 7:12). 스스로 우상숭배의 미혹을 받는 자들은 틀림없이 자기가 우상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월시 추기경은 자기가 만일 군주를 섬기듯 하나님을 섬겼더라면 하나님이 노년에 자기 군주가 그를 버리듯 내던져 버리시지는 않으셨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우상에게 대한 그들의 실망이 비유로 설명되고 있다(7절). 이 직유는 하나님이 그들의 우상 숭배에 대해 내리시는 일과 파멸을 암시한다.

[1] 그들은 우상을 경배함으로써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했다. "저희는 바람을 심었다." 그들은 우상 제조와 경배를 위해 아주 많은 수고와 비용을 스스로 감당했고 또 그것을 본업으로 삼았다. 그들은 농부가 곡식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대하듯 우상 숭배에서 어느 정도 막대한 이익을 기대했다. 따라서 그들은 우상을 섬기듯 이웃 나라들처럼 번영과 승리를 구가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기만이다. 그것은 바람을 심는 것처럼 아무런 소출을 낼 수가 없다. 그들의 수고를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여서 아무 유익이 없다(전 5:16). 그들은 크게 수고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는 수고를 하며 헛된 일로 곤비하게 될 뿐이다(합 2:13). 이 세상을 우상으로 삼는 자들 역시 그러하다. 그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바람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이요 소리만 클 뿐 그 알맹이는 없는 것이다.

[2] 그들은 파멸을 자초했다. 그들은 광풍 곧 큰 회리바람을 거둘 것이다. 그 바람은 그들을 급히 몰아가 버리고 그들을 박살낼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거짓 신을 모실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으로 하여금 자기들과 대적하게 한다. 그들의 은총은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 소용이 없을 것이며 그의 진노는 그들에게 광풍보다 더 큰 화를 입힐 것이다. 사람은 심는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포코크 박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사람이 바람을 심고 흙으로 그것을 덮거나 잠시 가둘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렇게 밀폐시킴으로 해서 그 바람이 올라 올 때는 그 힘이 증강되어 보다 맹렬히 그리고 보다 많은 공기가 돌출하리라는 것밖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그들은 우상을 섬김으로써 풍요와 평화와 승리를 기대하나 그들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들이 심은 것은 결코 싹이 돋아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줄기도 잎도 없거나 설혹 있다고 해도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왕이 꿈에 본 가느다란 이삭과 같을 것이다. 바로왕이 본 그 이삭은 동풍에 마르고 그 안에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또는 설혹 그 이삭이 열매를 맺을지라도, 그들이 설령 우상 숭배의 행로 속에서 잠간 동안은 번영하더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긴커녕 이방 사람의 침략을 불러들이는 미끼에 지나지 않으며 이방인을 부유케 하고 그들로 하여금 더욱 많은 해를 끼치게 하는 약탈물이 될 것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무익한 봉사이며 흑암의 일은 열매 맺지 못하는 일이라는 데 주목하자. 아니, 그런 것은 결국 유해할 것이다. 이런 일들의 종말은 죽음이다(롬 6:21). 불의를 심는 자들은 헛 것을 거둔다. 아니, 육을 따라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둔다. 죄인의 희망을 기만이 될 것이며 죄인의 소득은 올무가 될 것이다.

 

8:2 없음.

 

8:3 없음.

 

8:4 없음.

 

8:5 없음.

 

8:6 없음.

 

8:7 없음.

 

8:8

이스라엘의 죄 (호세아 8:8-14)

이스라엘이 오직 한 분 하나님께 의뢰하며 그 하나님을 온갖 곤경에서 전능하신 분이었고 또 이스라엘이 오직 한 분 하나님을 섬기며 그는 그들이 온갖 헌신을 받을 만하셨다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행복이자 명예였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들의 유복한 때를 알지 못하고 거짓된 허영을 위해 자기들의 자비를 버린 것은 곧 그들의 죄요 어리석음이요 치욕이였다.

Ⅰ. 그들은 동맹국의 수를 증가시켰다(9절). 그들은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다. 또는 그들은 사람을 삯내었다. 그들은 이웃 열방의 우호를 사기 위해 큰 비용을 들였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인근 열방은 그들을 존중하거나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들과 관계 맺기를 탐탁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열방은 세겜인의 원리로만 행동했다(저희 생축과 재산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창 34:25). 이스라엘이 선민의 특수한 명예를 보존했더라면 주변 여러 나라들은 계속해서 그들을 지혜롭고 명철한 백성으로 찬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면류관을 더럽히자 그 이웃 들은 그들을 멸시했고 그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도 이전만큼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사람도 연인도 없어서 삯을 주고 얻을 수밖에 없는 자들은 그 이웃 가운데에서 품행이 좋지 못 했음에 틀림없다. 다음 사실을 주시하자.

1.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서 멸시를 당하고 있었다(8절). 이스라엘은 이미 삼키웠다. 그들은 이방 사람에게 삼키웠고 그 땅은 먹혔다(7절). 그들 자신도 삼키워 가난해졌으므로 파산한 장사꾼처럼 명성과 신용을 상실했다. 그들은 열국 중에 있는 것이 기뻐하지 않는 그릇, 천히 쓰이는 그릇(딤후 2:20), 천한 파기(렘 22:28) 같았다. 어떤 이웃도 그들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그들과 관계 맺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이 타락하고 속화되면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천한 자가 된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아무 데도 쓸모가 없어 사람들의 발에 밟힐 뿐이다. 또는 이것은 그들이 열국 가운데서 가난한 포로가 될 것이다. 그런 자를 기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2.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열국에게 추파를 던졌다(9절). 그들은 앗수르로 갔다. 그들은 앗수르 왕의 원조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점에서 그들은 홀로 처한 들나귀 곧 어리석고 완고하며 다루기 힘든 들나귀 같았다. 그들은 제멋대로 할 것이며 아무것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재갈도 그들을 돌이키지 못하며 하나님의 진노의 칼도 그들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저 혼자 행로를 취하며 그 결과는 홀로 처한 들나귀 같아서 그들은 사자에게 보다 손쉽고 확실한 먹이가 될 것이다(욥 11:12; 렘 2:24). 하나님께로서만 얻을 수 있는 구원과 만족을 피조물한테서 구하는 사람은 들나귀 새끼나 다름없다는 것임을 명심하자.

3. 그들은 이웃 나라들과의 동맹에서 낭패를 맛보기 쉬웠다(10절). "그들이 열방 사람에게 값을 줌으로써 파멸을 방지하려고 희망했을지라도 이제 내가 곡식단을 타작마당에 모음같이(미 4:12) 저희를 모으리라."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도모한 일이 도리어 그들을 원수들의 먹이가 되기 쉽게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사명을 띠고 올 때는 막을 울타리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아니, 사람들이 왕왕 자신의 보존을 위해 삯주고 하는 일은 자신의 파멸에 기여하기도 한다(사 7:20 참조). 그들은 앗수르 왕의 호의를 구했지만 그는 스스로 방백들의 왕이라고 자칭했다(나의 방백들은 다 왕이 아니냐? 사 10:8). 그는 이스라엘에 중한 짐을 지우며 중세를 부과했다(왕하 15:19, 20). 그리고 이로 인해 그들은 조금 근심하게 될 것이다(개역:쇠하기 시작하리라). 이것은 그들이 장차 예기할 것에 비하면 그들에게 작은 짐이 될 것이다. 또는 그들은 이 괴로움을 조금밖에 깨닫지 못하며 유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다 중한 심판을 예상해야 한다. 그들은 모든 방백의 임금이 지워 준 짐을 인하여 쇠하기 시작하리라. 그렇기에 이것은 재난의 시작(마 24:8)과 복수의 서막(신 32:42)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왕왕 패역한 백성에게 대한 심판을 점차적으로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지를 나타내 보이시고 그들을 일깨워 회개시키고자 하심이다. 그러나 조금 근심하게 된 자들이 만약 이로써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되지 않는다면 저 다른 날에는 크게 근심하게 될 것이며 영원히 근심하게 될 것이다.

Ⅱ. 그들은 자기들의 제단과 전을 많이 만들었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그들은 경건의 능력을 부정하며 그것을 전적으로 배격했다(12절). "내가 저를 위하여 내 율법의 큰 것을 기록하였다" (흠정역). 이것은 그들이 향유한 특권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자기 율례와 심판을 그들에게 알리시고 살아 있는 신탁을 그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1) 하나님의 율법에 속한 것들은 magnalia Dei-즉 하나의 큰 것들이다. 그것들은 율법 제정자의 위대성을 선포하는 것들 님이며 우리에게 용도와 중요성이 큰 일들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영원한 복리는 그 율법의 준수와 복종에 달려 있다. 우리가 율법을 올바로 사용한다면 그 율법은 우리를 크게 만들 것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크다고 하시며 존귀하게 만드시는 것들이다.

(2)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것은 큰 특혜이다. 이렇게 하여 율법은 입으로만 전해졌을 경우보다 부패와 변용의 위험이 훨씬 감소되었다기보다 확실성이 증가하며 보다 널리 퍼지며 보다 오래 지속하게 되었다.

(3) 하나님의 율법은 그가 손수 기록하셨다. 모세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서기였고 성도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기록한 때문이다.

(4) 이런 큰 것들이 보이는 교회의 지체가 되는 자들을 위해 기록되고 그들의 교훈을 의도하고 있다는 것은 여간 큰 유익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전 시대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해 기록되었고 또 우리에게 유익하다. 하나님의 율법의 큰 것이 기록되었다. 하여 그들이 행복하다면 복음의 보다 큰 것을 기록받은 우리는 얼마나 더 복된 존재들인가! 그러나 이런 특혜가 얼마나 경시당하는지 살펴보자. 이들 율법의 큰 것들은 이상한 것(관계없는 것:한글 개역), 이해할 수 없는 것, 비이성적인 것(측량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경시당할 수도 있었다) 또는 이방인 것, 그들과 관계가 없거나 그들의 규제를 받지 않기에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그 율법을 이방인처럼, 수줍어하는 낯선 자들처럼 사용했고 어떻게 환영해야 할지를 몰랐다. "우리는 주의 도리를 알기를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욥 21:15). 다음을 주목하자.

[1]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 율법을 만가지로 기록하셨으므로 우리는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는 자로서 그 율법과 친숙해야 한다(잠 7:3, 4). 우리가 그 율법을 기록한 것은 우리로 더불어 말하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잠 6:22).

[2]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기라도 하듯 그것을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며 낯선 것으로 간주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하찮은 것으로 만드는 셈이다.

2. 그들은 그러면서도 경건의 모양은 유지했지만 그것은 전혀 쓸모가 없었다.

(1) 그들은 제단을 많이 만들었다(11절) "에브라임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었다." 하나님은 희생 제사를 위해서 단 하나의 제단을 두어야 한다고 지정하셨다(신 12:3, 5). 그러나 열 지파는 그 제단을 버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신앙이 돈독하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열성적인 자들로 생각되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제단에 가한 모욕을 변상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제단을 많이 만들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봉헌했다. 그들은 이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의도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러는 척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지상 명령에 대한 위반을 합리화시키지 못할 것이며 모세 율법이전에 제단을 많이 만들었던 족장들의 선례도 그들의 행위에 대한 변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아니, 그들은 죄를 위하여 제단을 많이 만들었고 (즉 그들은 죄로 변할 일을 행했다). 이 제단들은 그들로 범죄케 하는 것이 되었다. 하나님은 그것을 흉악한 죄로 정죄하실 것이며 그들이 자기 범죄의 사면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그들의 범죄 기록에 첨가될 것이다. 또는 그 제단들은 그들에게 또 다른 범죄의 빌미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봉헌하는 제단의 증가가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의 증가를 뜻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부패시키는 것은 크나큰 죄악이며 그렇게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변명이 아무리 그럴 듯 하더라도 그것이 죄로 규탄될 것이다. 이 죄의 길은 다른 죄와 마찬가지로 내리받이 길이다. 일단 고정된 하나님의 명령의 규칙을 어긋나게 하는 자들은 끝없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2) 그들은 제물을 많이 바쳤다(13절). 그들의 제단은 연기가 나는 제단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고기로 제사를 드리고 그 제물로 그들의 잔치를 벌였다. 그들은 큰 비용을 들여 신앙 생활을 영위했다. 그들은(흔히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의 방에 자신이 고안한 영조물을 세우는 자들처럼) 자기들의 길에 매우 열심이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 비용을 많이 들임으로써 큰 속죄에 대한 멸시를 속량 받으려는 듯했고 그들 자신의 의식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의 모든 도덕적 교훈의 의무를 면제받으려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 되었는가 ?

[1]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중시하지 않으셨다. "여호와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드리는 것을 거룩하게 하는 단 하나의 제단 위에서 그들의 제물을 드리지 않으며 고기만 드릴 뿐 참회하고 믿는 마음의 영적 제사를 드리지 않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열납하시겠는가? 말씀의 규례대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리는 예배만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하자(벧전 2:5).

[2] 하나님은 이를 기화로 그들의 죄에 대해 그들과 계산하신다. 그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불의를 사면하시거나 그들의 죄를 도말하시긴 커녕 그들의 죄악을 기억하셔서 그 죄를 벌하실 것이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 너무나 가중한 것이어서 그들의 모든 다른 가증한 것에 대한 계산까지도 초래 할 것이다. 악인이 천지의 대심판관을 제사로 매수하여 자기들의 악을 묵과시키려고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최대의 모욕으로 여겨 분개하실 것이며 그것은 자기들의 죄의 양을 채우는 죄가 될 것이다. 범죄의 허가를 받으려는 청원은 죄에 대한 저주의 기원에 이르게 되며 그것은 우상의 많음을 따라 그렇게 보응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죄를 벌하리니 이는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돌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포로가 되어 앗수르로 끌려갈 것이다. 애굽이 그들의 열조에게 종살이하는 집이었듯 앗수르는 그들에게 속박의 집이 될 것이다. 또는 이것은 신명기 28장 68절을 가리킨다. 즉 다시 애굽으로 돌아 간다는 것은 죄 많은 민족의 불행을 완성시키고 절정에 이르게 하는 것을 이름이다.

(3) 그들은 전각들을 많이 지었다. 이 역시 참 하나님의 존영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실은 그가 예루살렘을 택하사 자기 이름을 거기 두겠다고 하신 의사를 무시한 처사였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렸다(14절). 그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주장하면서 실은 그를 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 한 때문이다(롬 1:28). 하나님께 대한 기억은 그들의 정욕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지으신 분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잊은 그의 죄를 더욱 악화시켰다(신 32:15, 18; 욥 35:10). 그가 우리의 창조주라는 것보다 우리의 하나님 기억을 더 의무화시키는 것도 없다(전 12:1).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은 자를 잊어버리고 전각들을 세웠다. 그들은 전각의 건조로 자기 창조주를 기억하며 그들을 여전히 마음에 두고 싶어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를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를 버렸기 때문이다." 혹자는 전각을 궁궐로 해석하는데 그 이유는 그 단어가 때로는 궁궐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기 지은 자를 잊어버리면서 너무나 태평하고 거만하여 '이 큰 바벨론은 내가 건설한 게 아니냐?' (단 4:30)고 한 느부갓네살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였다." 마찬가지로 유다도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을 때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아 자기 안전을 거기 의존하였다는 이유로 책망 받고 있다. 자기들의 성읍을 강화시키는 것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부속하는 것으로 아주 족했는데도 그들은 하나님과 대립하면서 까지 성읍들을 요새화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이나 그의 섭리에 대한 존중심이 없었다(사 22:11). 이것은 그들의 마음이 거짓된 죄로 말미암아 극히 완악해진 것을 나타낸다. 그러나 자기 마음을 하나님께 대해 강퍅히하여 형통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역시 그럴 것이다. 하나님은 그 고을들 즉 유다와 이스라엘의 고을들에 불을 보내실 것이다. 수도인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양국의 모든 다른 도시에도 불을 보내실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은 어염집 뿐만 아니라 그 궁궐들도 삼킬 것이다.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불은 그것들을 삼킬 것이다. 그 성읍들이 아무리 화려하고 장려하다 해도 불은 그것들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제성들이 앗수르 왕에 의해 회신되고 유다 성읍들이 바벨론 왕에게 소각되었을 때 성취되었다. 이 두 나라를 소멸시킨 불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그는 이기실 것이다.

 

8:9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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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 없음.

 

8:1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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