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의 동쪽문 (에스겔 44:1-3)
에스겔은 이미 측량하였던 곳으로 다시 왔다. 하나님의 일은 본 것을 다시 한 번 볼 풍부한 가치가 있어서 종종 다시 보게 된다. 우리도 배운 과목을 다시 한 번 복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거룩한 건축물을 볼 적마다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였던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에스겔이 세 번째로 동편문으로 나갔을 때는 그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나머지 다른 문들은 예배자들을 위하여 내내 열려 있음을 말해 준다. 그 문이 닫혀 있다는 말은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즉
1.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영광. 안뜰의 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었다.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찼을 때 그 전을 점유하신 것이었다. 그 후에는 문이 닫혀져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후로부터 그 문과 다른 문들 사이에는 구별을 하였는데 다른 문들이 열려 있을 때도 이 문은 닫혀 있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그 집으로 들어오신 것을 영구히 기념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경외를 갖게 하여 주고, 하나님의 초월적인 영광에 대한 외경의 생각을 갖게 하여 주기 위함이었다. 모세가 타는 가시 떨기나무 앞에서 그의 신발을 벗어야 했던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길을 정하셨던 것이다.2. 이스라엘의 방백에게 영광이다(3절). 이스라엘의 왕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문을 들어 올 수는 없었으나,
(1) 그는 "그 문곁에 앉아서"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다.
(2) 왕은 "안 길로 이 문 현관에 들어 올 수가" 있었다. 아마 다른 작은 문을 통하여 문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인데, 그것은 "현관의 길" 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의 영광을 주의 나라와 백성들의 왕 위에 내리신 증거였다. 그는 "너는 신이다" 고 말씀하셨었다. 어떤 주석자는 여기의 왕은 대제사장이나 현자나 부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그들만이 그 문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고 본다. 왜냐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을 대리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는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은 홀로 거룩한 장소에 들어가실 수 있으며,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 나라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 (에스겔 44:4-9)
위의 말씀은 43장의 처음 부분의 목적과 유사하다. 에스겔은 전에 보았던 것을 다시 보고, 전에 들었던 것을 다시 들어야만 하였다. 여기서 전과 같이 에스겔은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찬" 것을 보았다. 그 영광이 에스겔을 땅에 엎드러지게 하였고, 그는 땅에 엎드린 채 그 광경을 보았다. 땅에 엎드리는 것은 거룩한 두려움에 대한 경외를 표현하는 가장 겸손한 태도인 것이다.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나이다" (4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더 많이 볼수록 우리의 얼굴을 점점 더 깊이 땅에 대게 됨을 명심하자.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것을 알 수 있다.
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그가 본 모든 것과 그가 들은 모든 것에 대하여 특별히 주의를 하라고 당부하셨다. "너는 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말하라." (5절).
1. "여호와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특히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네 눈으로 주목하고, 모든 지성소의 입구와 출구를 주의하라." 에스겔은 특별히 이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다. 우리가 거룩한 일에 익숙하여 질 때는 그런 일들에 관하여 추상적인 감상에 젖어선 안 되며, 거기에서 들려지는 메시지에 주목하며, "들어오며 나가며 꼴을 발견하게 "되어야 한다.2.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 전의 모든 규례와 율례를 네 귀로 들으라." 그는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했다. 선생이 되도록 임명받을 사람은 부지런하고 주의 깊은 학생이 먼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것을 잊어서도 안 되며 실수가 있어서도 안 될 것이다.
Ⅱ.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백성들에게 심부름 보내셨다. 곧 "패역한 자들,"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내셨다(6절).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패역한 자라고 불리운다는 사실은 생각해 볼 만하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패역하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패역한다면 누가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인가?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풍부한 자비의 본보기였다. 비록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대하여 패역하였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기하시지 않으시고 사자를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충성으로 돌아오도록 초대하시며, 용기를 주셨던 것이다. 만약 그들을 죽이시기를 기뻐하셨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인류 전체가 이스라엘 족속과 똑같은 패역함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인간들에게 은사를 내리셨다. "패역한 자들에게 일지라도, 주 하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 거하시리라" (시 68:18).
에스겔은 백성들의 잘못을 이야기 해 주어야만 할 것이다. 또한 그들의 패역함을 알려 주고, 야곱의 자손들에게 죄를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기 위하여 보내진 사람은 먼저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여 주고, 그리하여 그들이 위로를 받을 준비를 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너희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6절). 오랫동안 계속 하여온그들의 죄가 너무 길고 너무나 많으므로 이제부터 그들이 죄를 떠나 그만둘 때가 된 것이다. "너희들은 이제 과거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부터 너희들의 가증함을 떠나야 할 것이다" (벧전 4:3). 그들이 저지른 되는 다음과 같다.
(1) 성소에 들어올 자격이 없었던 사람들은 들어오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방인이 성소에 들어오면 죽이라" 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이방인의 출입을 묵인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스스로 데려왔던 것이다.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왔다" (7절). 이방인들은 율법으로 성소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성전에 들어오게 하는 것은 "언약을 깨뜨리는 것" 이며, 스스로의 특성을 버려 자기들을 세상적인 것과 동일하게 취급한 결과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방인들이 경건하고 선했다면, 그들이 할례받지 않았을지라도 그 죄가 그리 무겁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으로 할례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만하고 회개하지 아니하였던 고로, 하나님과 모든 선(善)에 대하여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희생을 드리러 왔을 때도 희생제물 위에 그런 죄악들을 함께 가져왔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짝하던 것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의 가증함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고," "개에게 거룩한 것을 던져 주었던" 것이다(마 6:6). 사악하고 죄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진노하게 만드는 일이다.
(2) 그들은 성전의 예배에 적당치 않은 사람을 고용하였다. 성소에서 수종드는 일은 제사장과 레위인 이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었다. 또 제사장과 레위인이라 하여 모두 그 일에 관여할 수는 없었고, 그들 중에 선택된 사람만 수종들 수 있었다. 그들은 가장 자격이 있고, 가장 현명하고, 양심적이고 사려 깊으며, 거룩한 일을 주의 깊게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일에 종사할 사람을 선택함에 있어서 자질을 보지 않았다.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는 자를 두었다. 그러나 그 거룩한 직분을 맡도록 선택된 사람들은, 너희에게 세상적인 이익을 줄 만한 사람들, 너희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니라. 그러므로 내 성물을 지키는 일을 다하지는 못하였느니라." 거룩한 일에 종사하는 자들 선택에 이기적이고 속된 목적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져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말하여야만 하였다.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9절). 들어오려면 먼저 율법을 지켜야 하리라." 이것을 보고 회개하고 신앙을 가진 이방인도 교회에 못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이방인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아니하고 언약에 대하여 성실성이 없으며 육신의 더려움을 버리지 아니한 자들인 것이다. 믿음을 가진 이방인들은 "손에 의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은 것이다" (골 2:11). 마음의 할례는 "영적인" 것이며 "문자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유대인들도 이방인인 것이며,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대하여 분노한 것은 "성전에 헬라인을 데리고 들어갔기" 때문이었다(행 21:28).
타락한 제사장들 (에스겔 44:10-16)
성전의 주인이 그 집을 다시 지으려고, 자기의 종 제사장들을 다시 조사하며, 그들이 자기 직분에 적당한가를 보고, 법도를 따라 그들이 일을 하도록 하신다.
Ⅰ. 그릇 행한 사람들은 타락한 레위인들이다. 곧 이스라엘의 죄를 따라 행하였고, 자신들도 역시 그릇하여 "우상을 좇아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18절) 제사장들이다. 그들은 유대와 이스라엘의 우상을 섬기는 왕들의 명령에 따랐던 것이다. 레위인들이 왕들과 함께 우상에게 수종들고 림몬의 집에서 그들과 함께 우상에게 절하고,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죄악 가운데 떨어지게 하였다." 우리야가 아하스 왕을 위해 한 것과 같다. 만약 제사장이 길을 잃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그릇된 길" 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바벨론에서도 아마 유대인의 몇몇 제사장들이 그곳의 우상에게 수종을 들어서 그들 종교에 대단한 추문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얼버무렸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 만약 그들이 죽었다면,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그 자손에게까지 벌을 주게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아비아달의 족속 전부가 그 죄악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들이 여기서 문책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1. 이제 그들은 자기들의 직능을 박탈당하고, 제사장의 직위를 빼앗기고, 일반 레위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게 하셨다" (12절). 그들은 그 일로 고통을 당하고 그 치욕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13절). 비록 그들이 자기의 죄를 뉘우쳤다 할지라도, "제사장의 직분에는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맡은 바 일은 특별하였다. 이제 그들은 "성소에서 거룩한 성물에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13절).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자는 자기의 명예를 박탈당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들에게 하나님께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은 가장 큰 벌이 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한 번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기에 적당치 않으며 영원히 멀리 있게 될 것이다.2. 이러한 말씀 속에도 여전히 은혜가 함께 있다. 하나님께서는 엄격함으로만 다스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가르치셔서 선고를 감하셨던 것이다(11,14절). 그러나 그들은 부분적으로만, ab officio - 즉 그들의 직능상으로만 박탈당하였다. 그래서 a beneficio - 즉 봉급을 완전히 못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제물을 잡는 일을 도왔을 것이다. 그 일은 레위인에게 허락된 일인데, 성전 안에서 행하는 일이나 제단에서 행하는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상 위에서" (40:39)하는 일이었다. 또 그들은 문을 수직하는 자가 될 것이며, 그 전에서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일을 맡게 될 것이다. 예배에 고용되기에 적당치 않은 사람들이라도 다른 일에는 고용되기에 알맞는 것을 유의하라. 제사를 드리는 데 종사하였던 사람은 아주 멀리, 완전히 제외되지는 않는다.
Ⅱ. 신실했던 사람은 영광을 받고 지위를 얻을 것이다(15,16절).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 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라" (15절). 하나님께서는 고난 때에 신실성과 끈기있음이 증명될 때 사람들에게 명예의 표징을 주시고, 다른 사람들은 멀리 하실 때에도 그들을 자기 제단에 가까이 부르셔서 일하도록 하여 주시는 것이다. 또한 그 지위에 맞는 참 보수를 주시고, 커다란 보상을 주시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가까이 불러 주실 것이다.
제사장들에게 주는 훈시 (에스겔 44:17-31)
하나님의 제사장은 "속화되지" 말며 "규례대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례에 따라 행하고, 그 규례대로 생활하도록 스스로 힘써야 할 것이다. 여기에 그들이 지켜야 할 바른 길이 주어졌다.
Ⅰ. 제사장들의 의복에 관하여. 제사 드리기 위하여 "성소와 성전 안뜰에" 있을 때는 반드시 "가는 베옷" 을 입어야만 할 것이며, "털로 만든 옷" 을 입어서는 안 될 것이다. 털옷은 "땀을 나게 하기" 때문이다(17,18절). 제사장들은 서늘하게 옷을 입어야 하며, 그들이 직무를 수행하기에 적당하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제단 곁에서 끊임없이 불을 피우는 일에 종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제사장들은 자기 옷을 정결하게 유지하여야 하며, 땀나거나 때묻게 되는 일을 피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옷은 하나님 예배에 대한 정결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땀은 죄와 더불어 들어왔고, 저주의 일부분이다. 의복도 죄와 더불어 들어왔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가능한 한 옷을 적게, 가볍게 입을 것이며, 땀이 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끝낸 후에는 반드시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그들은 탈의용 작은 방에서 베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19절, 42:14). 제사장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백성들 앞에 나아갈 수 없다. 사람들이 그 옷을 만지면 자기들도 거룩하게 될까 공상함이다. 제사장들은 백성들 앞에 나갈 때는 보통의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Ⅱ. 제사장들의 머리에 관하여. 그들은 두 가지의 일을 피하여야 할 것이다. 머리를 미는 것은 이방의 제관들을 모방한 것이고, 또 머리를 "길게 자라게 하지도" 말 것이다. 나실인도 아니면서 나실인으로 오해를 받아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정해야 한다. "머리를 깎아" 단정히 해야 한다. 남자, 특히 사역자가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전 11:14). 그것은 사내답지 못한 용모이다.
Ⅲ. 제사장들의 음식에 관하여. 그들은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다. 과음하여, 집무 중에 율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21절). "왕들도 포도주를 마시지 않도록" 하였는데, 제사장들이랴!
Ⅳ. 제사장들의 결혼에 관하여.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것이다(22절). 부정하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다. 사역자들이 해서는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제사장 집안의 관습이었다. 제사장들은 성격상 극기해야 했었다. 또 제사장들의 아내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좋은 평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Ⅴ. 제사장들의 설교와 교회 행정에 대하여.
1.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이 제사장의 주요 의무 중의 하나였다. 이 일에 있어서도 유능하고 신실하여야 할 것이다.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23절), 선과 악을 구별하며 바른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고 올바른 것을 주저하지 아니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감히 저지르지 아니하도록 해야 한다. 또 그들이 거룩한 것을 더럽히거나 죄악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역자들은 성도들이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분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수고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옳고 그름 사이의 구별을 혼동하지 아니하고, 그 일에 관하여 잘못을 저지르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어둠을 빛이라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들 자신의 행하는 바에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갖게 해야 할 것이다.2. 고소를 받아 재판하는 일도 주요 임무였다(신 17:8, 9). "송사가 있을 때는 재판정에 서야 한다" (24절). 제사장들은 올바른 것을 세우기 위하여 정직하게 행하고, 올바른 것을 세우기 위하여 용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제사장들은 자기 자신의 편견이나 공상이나 세속적인 이익을 따라서 재판하지 말고, "여호와의 법도대로" 재판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표준과 법칙이다.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율법과 그 증거에 따라서" 분쟁을 해결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Sit liber judex - 즉 편견없이 재판하게 하라. 제사장들의 할 일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법정을 개설하고, 그의 백성의 회중을 사회하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정한 절기에 내 법도를 지킬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의 절기를 자기의 절기라고 부르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역자들은 그 절기의 주인들이다. 그들의 의장이 되고, 그들의 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법도대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제사장들의 또 다른 의무는, 교회 행정이다. 행정관으로서 "안식일을 거룩케 하여야" 한다. 그 날의 공적인 일을 하되, 주의 깊고 경건하게 행할 것이다. 거룩한 날의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날을 거룩히 더럽히는 일을 하지 아니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이다.
Ⅵ. 죽은 자들에 대해 애도함에 관하여. 이 구절의 법은 모세의 율법과 동일하다. 제사장은 자기의 가까운 친척을 제외하고는 죽은 시체에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25절). 자기의 친척들이 죽었을 때 깊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은 사역자들에게 수치가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까운 친척이 죽었을 때 가까이 가면 부정을 입게 된다. 그래서 "속죄제" 를 드려 그 부정을 씻은 후에야 다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할 수 있게 된다(26,27절). 죽은 자를 위한 슬픔이 허락된 것이며 칭찬할 만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지나치면 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Ⅶ. 제사장들의 기업에 관하여 제사장들은 자기들이 종사하는 제단 곁에서 편안하게 살 것이다.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내가 그 산업이 됨이라(28절). 땅이나 주택을 주지 말라. 그들이 그런 생활에 얽혀들지 않도록 하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들의 산업이 될지라" 하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들이 다른 기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기업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약간의 땅이 그들에게 허용된다고 하여도(48:10) 제사장들의 주된 생계는 그들의 직능에서 온다. 하나님의 몫을 제사장들이 받아쓰게 된다. 그들은 거룩한 것을 먹고산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고 그들의 잔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그들의 기업과 산업으로 받은 사람은 적은 것으로 만족할 것이며, 이 땅에서 많은 것을 기업으로 받기 위하여 탐욕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충분히 가진 것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을 유의하라.
1. 제사장들이 백성들로부터 그들의 기업으로서 무엇을 받았는가?(1) 그들은 속죄물과 속건제의 제물의 고기를 먹을 수 있었으며, 그것으로 자기 가족들에게 고기를 제공하였으며, 그들의 양식을 삼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 것이 우리의 유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2) 그들은 시원한 것을 헌납하여야 할 것이며, 그것은 돈으로 바꾸거나 제사장들에게 드렸다(30절에 설명된다). "봉헌물" 곧 자유로 드린 "낙헌 제물," 또는 이스라엘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은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레 27장 참조).
(3) 제사장은 과실의 첫 물과 마찬가지로 굽기 전의 "밀가루 첫 술" 을 받아야 했다. 하나님은 처음이시므로 처음 것을 받으셔야만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우리의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것 중 처음 것은 경건하고 자비로운 사업에 쓰도록 떼어놓아야 할 것이다. 한 주일의 첫날에 경건한 일을 하는 것은 한 비유가 될 것이다(고전 16:2). 제사장들은 이렇게 잘 준비된 것을 먹어야 하며, 저절로 죽은 것이나 찢겨 죽은 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31절). 가난한 제사장들은 그런 유혹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제사장은 그래선 안 된다.
2. 백성들은 그들의 보상에 대하여 제사장에게 무엇을 기대하였는가? 예언자나 제사장들에게 축복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들로 네 집에 복을 빌게 하라" (30절).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령하시고 제사장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제사장의 몸든 믿은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중에게 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정에도 축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모든 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그 평안가운데 거하도록 축복하는 것이 제사장의 한 일이다. 우리들의 재산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은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또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우리의 재산을 사용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축복하여 주실 것이다. 또한 사역자들은 그 가정을 위하여 기도하고 가르치며, "이 집에 평안이 있으라" 하고 축복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