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의 출현 (에스겔 43:1-6)
에스겔이 이 땅에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끈기 있게 조사하고 난 후에, 그는 더욱 더 고귀한 형상에 참여한다. 즉 윗 세계로부터 오는 거룩한 광경을 보는 영광을 누렸다. "이리로 올라오라" 는 소리를 들었다. 에스겔은 성전을 보았고, 그것이 매우 놀랍고 빛나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올 때 까지는 성전은 다만 환상 중에 보았던 저 죽은 시체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의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시기까지는 "숨을 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에스겔은 그 집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모습을 본다.
Ⅰ. 그는 "하나님의 영광" (2절).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 을 보았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셨고, 이스라엘인들이 제사와 예배를 드리는 그분이다. 이방인들의 우상은 금세공가나 화가가 지니는 영광 외에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에스겔이 본 성전에 가득한 영광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그 영광은 "동편으로부터 왔으며," 그래서 에스겔은 "동쪽으로 가는 문"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별은 동쪽에서 보였다." 그는 "동편에서 올라 온 또 다른 천사"였던 것이다(계 7:2). 그는 새벽별이시며, 의의 태양이시기 때문이다.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 가운데 두 가지 것을 살펴 볼 수 있다.
1. 에스겔이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의 권능이다. "주의 음성은 맑은 물소리" 같으며, 멀리서 들려 오는데,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감사에 넘치는 것이었고, 으르렁 거리는 바다의 소리는 두려움을 주는 것이었다(계 15; 14:2). 그리스도의 복음은 빛나는 영광 가운데서 큰 소리로 선포되는 것이다. 멀리서 들리는 그 소리는 어떤 이에게는 생명의 구원이며, 다른 사람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된다. 그들의 행위에 따라 결과도 달라진다.2. 에스겔이 보았던 형상은 밝은 빛이다. "땅은 주의 영광으로 빛났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빛의 광채를 견딜 수 없으며, "아무도 그 빛을 볼 없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세상에서도 빛난다는 것을 명심하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나타나셨을 때는, "그 앞에 있던 광채가" 구름을 흩어버렸다(시 18:12). 에스겔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영광은 그가 처음 소명을 받을 때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환상과 같은 분으로 보였다(1:4). 하나님은 꼭 같은 분이시며 하나님께서는 꼭 같은 방법으로 자신을 보여 주시기를 즐기신다.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 보던 이상과 같았다(3절). 그것은 꼭 같은 권위와 능력으로 되었으며, 예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이었다. 즉 주께서는 성읍을 멸하실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재판관으로서 에스겔은 그것을 선고했고, 그 선고는 곧 실행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심판의 말씀을 전하게 하실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그 두 가지 가운데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죽이시기도 하시며 살리기도 하시고 상하게도 하시며 낫게도 하신다. 우리는 똑같은 손에 의하여 파괴되기도 하고 구원을 소망하게도 된다.
Ⅱ. 에스겔은 이 영광이 성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이 영광을 보았을 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3절). 그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를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 영광이 전에 들어오셨을 때" (4절), "성령이 그를 일으켜 세우셔서" (5절), 그가 전에 가득찬 여호와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였다. 에스겔은 또 주의 영광이 똑같은 모습으로 성전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이미 더럽혀졌으므로 주께서 대단히 노하신 때문이었다(10:18, 19; 11:23 참조). 비록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잠시 동안 버리셨을지라도,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돌아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집을 가득 채우셨다." 마치 여호와의 영광이 모세가 세운 장막과 솔로몬의 성전에 가득찼던 것과 같았다(출 40:34; 왕상 8:10). 그러나 세키나(영광)가 제2성전에서도 그런 식으로 가득차 있는 것은 볼 수 없다. 따라서 복음의 교회 안에서 이것이 실현되었다 볼 수 있다. 여기는 전처럼 구름이 가득차 있다는 언급을 볼 수가 없는데, 이제 우리는 "주의 영광을 드러난 얼굴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얼굴은 바로 그리스도의 얼굴이며, 옛날처럼 구름에 가려진 모습이 아니었다.
Ⅲ.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보다 직접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마치 모세가 하나님의 장막에서 그랬던 것과 같았다(레 1:1). "나는 주께서 전으로부터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6절).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안에서 빛나고 있을 때, 우리는 거룩한 말씀을 받을 것을 기대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이 내 곁에 서 있었다" (6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곁에 서서 중보자로서 계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감당할 수 없듯이 또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그 사람이 천사였다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할 때 그 천사는 다만 서 있을 따름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는 에스겔 옆에서 학생처럼 학습자로 서 있었을 것이다. "권세자들과 천사들도" 이것을 보기를 바랐지만, "하나님의 많은 지혜는 교회를 통해서 알려지셨다" (엡 3:10). 그 사람은 에스겔을 인도하여, 에스겔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까지 가게 했다(44:1).
성전의 환상 (9) (에스겔 43:7-12)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사실상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갱신하셨다. 하나님은 성전을 다시 점유하시면서 그렇게 하셨고, 에스겔도 이 문제에 협상을 맺었다. 이 사건은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용기를 얻는데 대단히 큰 소용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나아가서 복음의 성전에 대한 특권을 축복으로 누릴 자들에게 주신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선한 행실에서 볼 때 에스겔보다 앞선다.
Ⅰ.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가운데 이전의 잘못을 깨닫게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오랫동안 분노해 오던 것이다.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 백성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나, "그가 용서하여 주실 때에는,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꾸짖어야 할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이제 죄악을 부끄러워하도록 하라.
1.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고," 모든 거룩한 것들을 모독하고 훼손하였다. 그런 것들은나님이 사람들에게 자기를 알리시던 상징들이었다(7절). "백성들과 왕들" 이 자기들이 공언한 종교를 멸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흘히 하였다. 그들은 영적인 간음, 우상을 섬기고, 우상에 예배하며 그것들을 자기들의 주라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실로 "왕의 시체" 이며, 생명이 없고 소용없는 물건일 뿐만 아니라 죽은 시체처럼 더럽고 혐오스런 것들이었다. 그들은 그 가증스러운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내 문지방 곁에 저들의 문지방을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둔 것이다. 즉 그들이 만든 것을 하나님의 전에 더하여 놓고, 마치도 그것들이 "인간에게 주는 계약의 교리를 가르치시는" (사 29:13) 권위와 효력이 동등한 것같이 생각하였다. 심지어는 성전의 뜰 안에까지도 우상의 제단을 꾸며 놓았던 것이다. 그러한 염치없는 행위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더 모독하는 것은 없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자기들 사이에 분리의 장벽" 을 만들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사랑의 통로를 차단했다. 죄인들이 하나님께 행한 모욕을 보라. 그들은 하나님에게 반대하여 담을 쌓고, 하나님의 의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킨다. 죄인들이 자신을 상하게 하는 것을 보라.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죄인은 자기들로부터 하나님을 멀리 떼어놓게 된다. 비록 그들의 집이 하나님의 집과 가까이 접해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그들이 표면상으로는 하나님의 이웃이므로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담 하나밖에 없더라도,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사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한다고 하여도, 아직도 그들은 이웃에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회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하나님에게서 더 멀어진다" 는 말은 너무나 자주 진리가 된다. 그들은 신앙 고백상으로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지만, 하나님의 보좌와 하나님의 발을 두는 처소를 더럽히고 있었다. 예루살렘은 "위대한 왕들의 도성" 이라고 불리우며(시 48:2) 하나님의 "발을 두시는 곳" 이라고 불리운다(시 99:5; 132:7). 하나님의 규례가 모욕을 당할 때, 그의 거룩하신 이름이 더럽혀지는 것임을 명심하라.2.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후일 그들과 다투셨다. 그들은 하나님을 비난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직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만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노하여 멸하였도다" (8절).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자는 그분의 진노 아래에 있게 됨을 명심하라.
Ⅱ.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시고 회개하라고 하신다. 그들로 그들의 죄를 부끄러워하게 하는 것도 그것을 위함이다. "이제는 그들이 음행을 내게서 멀리 제하리라" (9절). 그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가혹한 벌을 받았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비로 회복하여 주시고, 그들 가운데 성소를 마련하시려 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상을 제거하고, 이제까지 행하던 일들을 그치게 하여야 한다. 이제는 상실을 통해서 그 가치를 배우게 되었던 저 특권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그 백성들의 우상을 제거하고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나를 노하게 하는 것이다. "에스겔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의 모형을 제시하여 준 것은 시기 적절한 도움이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그들이 성전의 모형을 본다면," 그들의 죄를 부끄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10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합당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백성들을 위하여 준비하여 두신 은총을 보았을 때, 자기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정직하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인도하여 주신다. 특히 참회적 부끄러움을 알도록 하여 주시리라. 그들로 하여금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그 형상이 이전 것에 비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보고 그들을 위하여 예비하여 무신 그 은총의 위대하심을 알도록 하라. 진실로 그 형상은 그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저지른 죄를 생각하여 당황하도록 할 것이다.2. 만약 그들이 "자기 죄를 부끄러워하면," 그 형상을 더 잘 보게 될 것이다(11절). 그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보고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좀더 뚜렷한 성전의 형상을 보여서 그들에게 알도록 하라. "하나님의 선하심 보아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보고 알게 될 것임을 명심하자. 우리들이 자신의 어리석은 짓을 겸손히 알게 될 때까지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집의 모든 형상을 보이라. 그것이 얼마나 장엄한 구조인가를 보여 주어라. 그 위에 그 규례와 법도를 알게 하라." 이것은 우리들의 위로를 미리 보여 주심과 동시에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한 지식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의 특권과 더불어 우리는 그 규례를 알아야 만 할 것이다. 그 모든 규례를 알게 하고,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의무를 알고 그것을 행하면 축복을 받을 것이다.
Ⅲ.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이 행하여야 할 바대로 될 것을 약속하시고, 그 다음에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원하는 바를 그대로 하시겠다고 하신다(7절).
1. "이스라엘의 집은 더 이상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되리라" (7절). 이것이 순수한 복음이다. 복음의 교훈이 말하는 것은 "너는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 인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은혜는 "너는 더럽히지 않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언약 가운데서 요구하는 것이 이미 언약 가운데 약속되어 있다(렘 32:40).2. 그 다음에 "나는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서 거하리라" (9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역사를 확고히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 주신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다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Ⅳ. 성전에 관한 일반 법이 나와 있다(12절). 이전에는 성소만 지극히 거룩한 곳이었으나, 지금은 그 집의 모든 산이 지극히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그곳의 뜰과 작은 방들을 전부 포함한 "모든 경내" 가 거룩한 장소가 될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시대를 나타내 준다.
1. 전체 교회가 "지성소" 의 특권을 누리며, 하나님께로 이끄는 입구가 될 것이다. 복음 아래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지성소로 들어갈 수 있는 대담함을 가지고 있다(히 10:19). 제사장들은 이전에 양과 염소의 피에 의거하여 들어갈 수 있었으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 나아가게 될 것이다.2. "우리를 부르신 그분이 거룩함 같이," 모든 교회는 거룩한 완전성을 향하여 나갈 강력한 의무 아래 있게 된다. "거룩함이" 영원히 "하나님의 집이 되리라." 복음의 시대에는 그 이상일 것이다. "보라, 이 집의 규례"를! 그 법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보호받을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성전의 환상 (10) (에스겔 43:13-27)
이것은 신비한 성전의 제단에 관한 말씀이며 그 뜻 또한 신비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제단이시기 때문이다. 포로에서 돌아온 후, 유대인들은 성전을 짓기 오래 전부터 제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성전 안에 있는 제단을 말한다.
Ⅰ. 제단의 척수(13절). 그 꼭대기는 6야드 정방형이며 밑부분은 7야드 정방형이었다. 높이는 4야드 반이었다. 밑에는 선반 혹은 "밑받침" 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땅에서 1야드 떨어졌는데 그 위가 제사장이 올라서는 곳이었다. 그 위로 2야드 높은 곳에서는 또 다른 제사장이 서는 곳인데, 각각 반 야드 넓이로 떨어져 있었다. 양편에는 선반이 있었는데, 제사장들이 든든히 서도록 되어 있었다. 희생 제물은 전에 언급한 제단에서 잡도록 되어 있었다(40:39). 그 제단의 낮은 곳에서는 희생 제물을 태우고 위의 제단에 올려놓았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서 우리는 서로서로 도와야 할 것이다.
Ⅱ. 그 제단의 규례를 보자. 여기에는 다음에 관한 지시가 나와있다.
1. 먼저 그 제단을 봉헌하는 식에 대한 규례이다. "일곱 날" 이 그 봉헌식에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제단 위에다 매일같이 희생을 드려야 했다. 특히 "속죄 제물" 로 염소를 드리되(25절), 첫날에 드리는 어린 수송아지의 "속죄 제물" 외에 드려야 했다(19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위대한 속죄 제물이 되셨음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우리의 인격이나 우리의 행위로는 죄를 사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이외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피를 제단에 흘리는 것 이외에는 죄사함 받을 길이 없다(히 9:12). 또한 그 제단에서는 "수송아지" 와 어린양이 "번제 제물" 로 바쳐졌다(24절).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배에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주목해야 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살아 있는 제물로 삼아야 할 것이며, 우리의 경건함을 영적 제물로 삼아야 할 것이다.제단의 봉헌식을 여기서는 "정결케 하는 식" 이라 했다(20,26절). 우리의 제단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깨끗이 하여야 할 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제물로 드렸다(요 18:19).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의 제단을 모두 바치고, 그 위에 항상 거룩한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면, 세상에 대한 사랑이나 육의 욕망으로부터 우리 마음이 정결케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출애굽기 29장에서 기록되어 있는 봉헌식과 여기에 나온 봉헌식 사이에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의식법이 얼마나 변하기 쉬운 것인가를 설명하여 준다. 또한 그 의식법은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변화되어야 할 것이었다. 율법에 따르면 모든 희생물은 소금을 뿌려야만 하고(레 2:13) 특별히 "제사장이 제물 위에 소금을 쳐야" 했다(24절). "은총" 이 바로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에 뿌려져야 할 "소금" 이다. 영원한 언약은 "소금의 언약" 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광" 은 변하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는다. "은혜" 는 우리의 마음 가운데 숨어 있는 "소금" 이다. 그러므로 역시 "변하지 아니한다."
2. 봉헌하고 나서 그 사용법에 관한 지시가 나와 있다. "그 모든 날이 찬 후 제8일과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 번제와 감사제를 드려야 한다(27절).(1) 누가 제단에서 제물을 드리는가? "사독의 자손 제사장" 이다(19절). 그 지파는 솔로몬에 의하여 아비아달의 가문을 대신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셨다. 그의 이름은 "의로움" 을 나타내 준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이신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제사장이 된 의인들이 바로 그들이다.
(2) 어떻게 준비하는가? (26절) 그들은 "자신을 성별하고" 하나님께 봉헌한 예물을 손에 준비해야 한다.
(3) 그후에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27절).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용납하시고 우리의 제사가 하나님을 기쁘게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며, 더 다른 일이 필요치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바친 사람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여 주실 것이다. 중보자를 통하여 먼저 그들의 인격을, 다음에 그들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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