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35장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35:1

에돔의 타락 (에스겔 35:1-9)

세일산은 우리가 이미 본 위협을 모압과 같이 당하는 상대자로서 언급되었었다(25:8). 그러나 여기서는 그 자체 때문에 정죄된다. 예언자는 대담하게 "그의 얼굴을 에돔으로 향하고," 특히 "그것을 쳐서 예언해야" 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오 세일산아! 내가 너를 치리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치는 자들은 자기들을 치는 말씀을 듣게 될 것이요, 사역자들도 얼굴을 올릴 것이며, 오직 악만을 공포하리라. 예언자는 하나님이 에돔인들과 싸우신다는 것을 일러 주었어야 했다.

Ⅰ. 이 같은 다툼의 원인은 무엇인가?(5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명분을 지지하실 것이다. 그들에게 가해진 피해는 자신에게 대한 것으로 간주하시고, 심판하실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애돔인들과 다투시는 것이다.

1. 그들이 하나님 백성에게 보인 적대감 때문이다. 그 적대감은 심중에 뿌리 박고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인에게, 아니 그 이름에조차 항구적인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에돔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사무친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야곱이 장자권을 빼앗았다 해서 가졌던 에서의 원한 같은 것이었다. 에서는 야곱과 화해하고, 포옹하고 입 맞추었다(창 33장). 그리고 다시 싸웠다는 이야기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에서의 후예들은 야곱의 자손들과 화해하려 들지 않았다. 그들을 언제나 미워했다. 자식은 어버이들의 덕성보다는 부덕을 더 잘 닮는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따라서 어버이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 자식들에게 나쁜 본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때때로 민족간의 반감이 얼마나 깊고 지속적인가를 알고 놀라게 된다. 속된 에돔인이 경건한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여인의 후손" 과 뱀의 후손 사이에 일어난 적대감(창 3:15)은 종말 때까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2, 에돔인들이 하나님 백성에게 가한 침해 때문이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한난 때에 칼의 권능으로 저들의 피를 흘렸다." 즉 저들은 이스라엘을 정정당당히 대적한 것이 아니라, 기다렸다가 도망치는 자들을 죽이거나(욥 14), 그들을 추적자의 칼로 되돌아보내어 죽게 만들었다. 상대방의 비탄을 기화로 삼는 것은 비겁하고 잔인한 것이다. 외국인이 전쟁을 일으킨 틈에 이웃을 몰래치는 것은 치사한 일이다. 또 파멸이 온 것은 "그들의 죄악이 끝나가고" 있을 때였다. 비록 죄 때문에 정당하게 고난을 받는 자라도 동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 두자. 아버지가 한 자식을 징계하더라도 그 아버지는 다른 자식이 그것을 보고 겁내기를 바라는 것이지 쾌재를 부르기를 바라지 않는다.

Ⅱ. 이같은 다툼의 결과를 보자. 하나님이 에돔국(國)을 치려고 손을 뻗으셨다면, 그는 "그 나라를 심히 황폐케 하리라" (3절).

1. 그 주민은 칼로 살해되리라. "내가 너로 피를 만나게 (맞을 준비를 하게) 하리라" (6절). 에돔은 점점 약해져서 그만큼 정복되기 쉬워지며, 적은 강성해져서 보다 실효 있게 전복시키리라. 파멸이 다가 오기 전에 오랜 준비가 이미 있었다.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않았음이라." 이것은 "그들이 피를 즐거워하고 목말라 했다" 는 것을 뜻한다. 죄악에 뿌리 깊은 증오를 조정시키지 아니하는 자는, 유혹이 강하게 오면 거기에 정복될 위험이 있다.

혹자는 본문을 이렇게 읽는다. "네가 피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즉 "회개하고 잔인한 행위를 청산하지 않으면") "피가 너를 추적하리라." 또한 본문이 암시하는 바는 이렇다. 철저한 개혁이 있으면 심판은 방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그는 칼을 가신다" (시 7:12). 그러나 돌이키면 그는 칼을 도로 꽂으리라. "피가 너를 따르리라." 네가 흘린 피의 "죄책" 과 피흘림은 "심판" 이 너를 따르리라. 또 피에 굶주린 대적이 너를 좇아, 네가 피할 수 없게 하리라. 예언된 바대로(사 34:6) 이두메인들에게 대량 학살이 감행 될 것이다. 산과 언덕, 골짜기와 강들이 피살자로 가득차게 되리라(8절). 추적자가 도망자를 따라잡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피를 흘린 자에게 하나님이 심판을 가하러 오시면, 피흘린 자들은 피를 마시게 되리라. 그들은 그래야 마땅하리라.

2. 시골도 황무해지리라. 도회지도 파괴되고(4절) "산간도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 (7절). 하나님은 그곳에 왕래하는 자들은 모두 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성을 지키고 수리해야 할 사람들이 없어지면, 그 도성은 황폐해진다. 마찬가지로 땅을 경작할 사람들이 사라지면 땅도 가시와 엉겅퀴로 뒤덮혀 결국 못쓰게 된다. 이스라엘을 황무하게 만드는 일에 합세했던 자들은 자기들도 황무하게 될 것을 각오해야 된다.

또한 이 심판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에돔이 "영원한 황무지" 가 된다는 데 있다(9절). 그리고 도회지도 이전 상태로 복구되지 못하고 주민들도 되돌아와 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 백성에게 영원한 적개심을 지닌 자들은 영원한 황무지가 될 것밖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원한은 마땅히 복구할 수 없는 패망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

 

35:2 없음.

 

35:3 없음.

 

35:4 없음.

 

35:5 없음.

 

35:6 없음.

 

35:7 없음.

 

35:8 없음.

 

35:9 없음.

 

35:10

죄의 결과 (에스겔 35:10-15)

Ⅰ. 에돔인들의 죄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대한 악행에 대한 설명이 계속된다. 교회가,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훼파하라, 훼파하라" 하면서 바벨론에 대해서는 "세우라, 세우라" 고 말한 에돔인들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는 것을 보게 된다(시 137:7). 여기에도 에돔인들이 예루살렘의 패망과 그 시골의 황폐를 보고 개선가를 불렀다 해서 비난하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그들은 "이스라엘 산지" 를 향하여 교만한 태도로 "저것들이 황무하게 되었다" 고 말하면서 "불경한 말" 을 많이 했다(12장). 하나님의 교회의 고난은 그 친구들에게는 항구여일한 신의를 입증해 주듯이, 그 대적의 부패상을 드러나게 만든다. 그리하여 교회의 대적들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악의에 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예루살렘의 파멸을 즐거워한 자들에 대한 말을 계속 보자.

1.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치려는 죄악된 감정에서 출발했다. "노" 와 "질투," "그들에 대한 증오" (11절)에서부터 "옛부터 품어온 한" (5절)을 발설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는 적수가 아니었고, 따라서 자기들에게 피해를 줄 리가 없는 처지였으나, 갈대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못살게 구는 것을 보고 좋아했다.

2. 이스라엘 땅에 대한 죄악된 욕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저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으면, 자기들이 그 땅을 소유하게 되리라고, 그토록 부러워하던 그 땅의 주인이 되리라고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ob defectum sanguinis - 즉 다른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땅에 대한 권리를 다소 주장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야곱에게서 자손이 끊기면, 그 권리는 자기들 차지며, 자기들은 야곱의 형제의 후손임을 주장하려 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이 두 민족은 내것이로다. 지금이 내가 그들을 대신할 때로다." 적어도 그들은 자기들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니까 그 땅의 첫 주인이 되리라 희망했다. 그 땅에 사람이 안 살게 되면, "내 기업이 되리라."

자기들의 권한을 확보하려고 남들이 죽기를 바라는 자들이 있다면, 바로 그들이 에돔의 정신적 후예들이다. 실망과 상실과 십자가 등등 세상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겪는 허무를 우리가 보게 되면 그것을 기회로 세상에 대한 애착을 더 가질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좀 더 자유해야 하며 거기에 대한 우리의 애착을 떨쳐 버리고 기대감도 떨어 버려야 마땅하다. 그러나 에돔인들이 이스라엘 땅을 탐낸 이 경우는 하나님께 대한 특별한 도전이었으니, 그들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 땅이 우리에게 붙이워서 삼키게 되었도다. 이제 우리는 이 땅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리라."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응수하신다. "너희가 나를 대적하여 자랑하며, 여러 가지를 말하였도다." 저들은 이스라엘이 쫓겨난 그 공지를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려 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여전히 "거기에 계시도다" (10절). 사실 그의 성전은 불탔고, 그의 존재를 상징하던 다른 표징들도 사라졌다. 그러나 야곱의 자손에게 그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고 하던 그의 약속은 헛되기 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효력을 갖추고 있다. 그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그 땅을 이스라엘을 위해서 확보하고 계시며, 때가 오면 소유권을 이스라엘에게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것은 임마누엘의 땅이었다(사 8:8). 임마누엘은 그 땅에서 태어나야 했으며, 때문에 그가 태어나는 모체 역할을 할 사람들은 계속해서 거기에 살아야 했다. "주 여호와가 거기 계시도다." 즉 예수께서도 거기에 계셔야 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소유 중단이 저들의 권한에 방해물이 될 수 없었다. 그 땅의 소유권은 그들을 위해 간직되어야 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허락에 의해서 그 땅을 차지해야 했다. 그리고 이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은 메시야를 통해서 더 위대한 약속으로 갱신되었다. 에돔인들이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에게만 귀속된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지극히 모독적인 허위 주장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산들을 가리켜 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산들이 지금은 이방인들의 발에 짓밟히고 있으며(계 11:2), 노획물이 되었으며, "거룩한 도성" 까지도 그리되었으며 그래서 "여호와가 그것들을 버렸" 고, 저들의 "하나님이 저들을 잊었다" 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 고 한 사도 바울도 결코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롬 11:1). 그들이 잠시 버림받으나, 영구히 버림받지는 않는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자들은 "여호와를 욕하는" 것이다.

Ⅱ. 하나님은 에돔인들의 만행을 주시하시고 그들에게 파멸을 선고하셨다. "네가 욕하는 모든 말을 내가 들었다" (12절). 전에도 "네가 나를 대적하여 여러 가지로 한 말을 내가 들었다" 고 했다. 아무리 많은 말이라도 하나님은 빼놓지 않고 아신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말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자신들을 잊어버린다 해도 하나님은 어느 한 마디도 빼먹지 않고, 기억하신다는 것을 알자. 건방진 말, 특히 하나님의 백성을 치는 말은 그 말수가 많듯이 또한 "과장되어 있다" 는 사실을 하나님이 주지하신다. 아무리 하찮은 말이라도 기억하시듯, 아무리 건방진 말이라도 책망을 듣게 된다. "나는 네가 욕하는 것을 다 들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가 욕을 당하더라도 못들은 척해야 한다. "하나님이 들으실 것이기 "때문이다(시 38:13, 15). 하나님은 에돔인들의 모독적 언사를 들으셨다. 따라서 이제 그들의 운명의 소리를 들려 주라(14,15절). 그것은 민족적 죄였으므로 나라 전체가 심판을 받게 된다.

1. 그것은 뚜렷한 형벌이 되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는 특별한 은총을 가지고 있듯이, 에돔에 대해서는 특별한 혐오를 품고 계신다. 따라서 "내가 너를 황폐케 할 때 온 땅이 즐거워하리라." "다른 나라의 황폐는 복구되어 즐거움을 줄 수 있으나, 너희는 영원히 황폐되리라" (9절).

2. 벌이 죄에 상응하리라. "네가 이스라엘 족속의 황무함을 즐거워하였은 즉, 하나님은 네게 풍부한 황폐를 주리라. 네가 그렇게 좋아하니, 내가 네게 황폐함을 주리라."

애도자와 함께 우는 대신 오히려 그들의 근심을 농담삼아 말하는 자들은 역시 애도자와 같이 울게 되고 말 것이며, 그들이 그렇게 경시하던 그 근심의 중한 고통을 맛보게 되리라.

혹자는 14절을 죄와 벌 사이의 유사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내가 너를 황무케 할 때 온 땅이 즐거워하리니, 그것은 네가 이스라엘이 황무케 될 때 즐거워했음이라." 남의 죽음과 파멸을 즐거워하던 자들은 남들도 자기들의 죽음과 파멸을 즐거워하던 날이 오고 말 것을 각오해야 한다.

3. 교회의 적을 파멸시킴으로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도모하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은 결코 생각이 모자라는 일이 없다는 것을 확신케 해 준다.

(1) 거기서 하나님이 도모하는 것은 그가 의롭고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며, 약속과 그 백성에 대한 책임적이며 그들의 권리 침해를 용납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이려 함이다. "내가 너를 심판할 때, 그들로 나를 알게 하리라(11절)." 주님은 그가 행사하시는 심판을 통해서도 알려지신다.

(2) 그의 뜻은 충실히 실현된다. 그의 백성이 거기에서 자기들의 위로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에돔인들과 그밖의 모든 원수들이 "그가 여호와이신 줄 알게" 된다(4,9,15절). 창조와 일반 섭리가 하나님이 계심을 실증해 주듯이, 이스라엘에 대한 돌보심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분만이 참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실증해 준다.

 

35:11 없음.

 

35:12 없음.

 

35:13 없음.

 

35:14 없음.

 

35:15 없음.




































 


Article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