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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그룹들의 환상(에스겔 10:1-7)

거룩한 경외감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우리 자신을 고무시키며, 그의 두려움이 우리 안에 가득차게 하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간취해야 한다.

Ⅰ. 하나님의 엄위의 영광스런 현현을 보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속한 것이 여기에

서는 볼 수 있게 나타났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밝음과 아름다움을 말해 주는 희미한 표현이며, 그림자이다. 그러나 그것 자체는 그림이 실물에 비교될 수 없듯이 진리와 실체에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받을 인상만이라도 받아들이려 한다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생각과 그 앞에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발견하기에는 이것으로도 충분하다.

1. 여기에 보면 하나님이 "그룹들 머리 위에 있는 궁창 가운데" 있다(1절).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윗 세계 가운데서 나타내며, 그곳에서는 순결함과 밝음이 극치를 이룬다. 궁창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하나님이 그곳이 무한히 거하신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망과 "그의 능력이 궁창" 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부터 "하나님" 은 모든 "인간 족속들을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본성은 천사의 본능을 무한히 능가하며, 하나님은 "그룹들의 머리 위에" 계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존엄이 그들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한다. 그룹들도 큰 능력과 지혜와 권세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복종한다.

2. 하나님을 보좌 위, 곧 "보좌의 형상과 같은" 것 위에 계신다. 왜나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은 우리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빛나는 이상을 무한히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순수하고 빛나는 "남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런 보좌를 "하늘에 준비하셨는데," 그 보좌는 이 땅의 어떤 군주의 보좌보다도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3. 하나님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스런 대열을 거느리고 있다. 하나님이 그의 전으로 들어왔을 때, "그룹들은 성전 우편에 서 있었다" (3절). 그런데 그들은 왕의 궁전 문을 지키는 친위대와도 같았다. 그리스도께서도 그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천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그리스도를 경배하라" 는 것이다. 혹자는, 천사들이 "성전의 우편에 서 있었다" 는 것은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투기의 우상과 다른 우상 숭배의 형상은 북쪽에 있었으므로 천사들은 그런 우상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위치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 여호와의 영광스런 모습이 구름으로 가려져 있으며, 그 구름으로부터 빛나는 광채가 방사(放射)되고 있었다. "성전과 안 뜰에" "구름" 과 어둠이 가득차 있었다. 그러나 바깥 뜰과 안 뜰은 종종 "여호와의 영광의 광채로" 가득 차 있었다(3, 4절). 그곳에는 빛과 광채가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에 어떤 사람이 호기심이 강한 눈으로 그 안을 살펴 본다면, 빛과 광채 그 자체는 구름 가운데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여호와의 정의는 "높은 산들처럼" 뚜렷하며, 그 정의의 빛은 "뜰에 가득하지" 만, "그의 심판은 매우 깊은 곳에 있기에" 우리가 추측할 수 없고, "구름" 을 뛔뚫어서 볼 수도 없다.

"광채" 는 큰 두려움을 뜻하며 우리의 양심을 감찰한다. 그러나 "구름" 은 호기심을 만족시킬 생각을 우리에게서 금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흑암의 이성(理性)으로써 우리의 말을 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광선이 그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니, 그의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합 3:4). 하나님의 "존재" 보다 더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그가 하시는 "일" 보다 더 모호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은 "빛으로 그 자신을 감싸며," 우리에게 대해서는 "흑암으로 그의 거처를 삼으신다." 하나님은 구름 가운데 성전과 거처를 두고 계시며, 구름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하늘 위에 있는 성전에는 구름이 없으며,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5. 그룹들은 그들의 날개로 무서운 소리를 냈다(5절). 악기의 현처럼, 그 날개들의 진동은 묘한 선율을 이루었다. 벌이나 그밖의 날개를 가진 다른 곤충들은 날개로 소리를 낸다.

아마도 이것은 그룹들이 움직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나타내리라. 그래서 그들은 날개를 앞으로 펼쳐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날개들은 마치 이동을 알리는 경고처럼 소리를 냈다. 이 소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같이" 들렸으며, 뇌성과도 같았다. 그런데 뇌성은 "여호와의 음성" 이라 불리어진다(시 29:3). 혹은 시내 산 위에 있던 이스라엘인들에게 말한 "여호와의 음성 같기도"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많은 율법을 주실 때 크게 두려워하는 중에 주신 것은, 그 율법을 위반하는 자에게 내릴 두려움이 어떠할까를 알리신 것이요, 이제 하나님은 그것에 따라서 행하신다. 그들의 "날개" 가 내는 소리는, 백성들의 뜰인, "바깥 뜰에까지 들렸다." 왜냐하면 심판 중에 여호와의 음성은 "성읍 가운데에 울려 퍼지므로" 성읍의 사람들이 에스겔처럼 심판의 환상은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 소리는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의 진노를 알리는 무서운 지시가 있다. 이 환상은 단지 하나님의 장엄한 위엄을 말하는 것 이상의 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위해서 주어진 명령이다. 최대의 황폐가 불과 검에 의해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거민에 대해 전반적인 살륙을 시행하라는 명령은 앞 장에서 이미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서는 그 성읍 위에다 "숯불을 흩어" 성읍을 잿더미로 만들라는 명령이 나온다. 이 숯불은 환상 중에 "그룹들 사이에서" 가져온 것이다.

1. 이런 심판을 시행하라는 명령을 발표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들에게 위로" 올라갔으며(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앞 장에서 행했던 것처럼, 3절) "성전 문지방" 위에 "임했다." 이것은 재판정을 모방한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성읍 문 안에 재판 뜰이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성전에서 그들에게 전해 준 신탁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했다. 그러므로 그때부터 그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운명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2.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들 이마 위에 표를 해 주었던 "가는 배옷을 입은 사람" 이 이 일에 임용된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자요 보호자인 "바로 그 예수가 모든 심판" 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사면권뿐만 아니라 심판권도 가지고 있기에, 그는 "그의 복음에 복종치 않은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 타오르는 불가운데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보좌 위에 앉으신 자가 "가는 베옷 입은 사람에게, 바퀴 사이로 들어가서, 그룹 가운데로부터 숯불을 두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고 말한다. 이것은 다음 사실을 암시한다.

(1) 갈대아인들에 의해서 불붙기 시작한 예루살렘 성읍과 성전은 완히 소멸시키기로 결정되었으며, 그것으로써 갈대아인들은 하나님께서 전에 행하려고 계획했던 바를 수행한다.

(2) 거룩한 진노의 불은 백성들 위에 심판 불붙이며, 또 공정하고 거룩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룹들 사이에서" 가져온 불이기 때문이다. 속죄를 행하던 하나님의 제단 위 불을 멸시하여, 다른 불로 예배드리다가 제단 불에 의해서 살해당했던 나답과 아비후처럼, 이 제단의 불은 복수하기 위해서 하늘에게 꺼내온 것이다. 만약에 성읍이나 도시에, 집이 고의로든지 아니하면 사고에 의해서든지 불에 타버린 경우, 그 불의 기원을 추적해 보면, 그것이 "바퀴들 사이에서" 가져온 "숯불" 임을 발견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읍안에는 그런 일을 행할 부류의 재앙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여호와께서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명령에 의해서 행동한다. 왜냐하면 "그는 인자(人子)이기에," 아버지로부터 "심판을 수행할 권한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불을 보내기 위해서" 왔으며(눅 12:49), 또 심판날에는 이 세상이 재로 변한다는 사실을 말하러 오신 것이다. 그의 손에서 나온 불에 의해서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업적들이 불에 탈 것이다.

3. "가는 베옷을 입은" 이 "사람은" 이런 임무를 수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는 베옷을 입은" 그가 타는 "숯불" 가운데로 가는 것은 매우 적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명을 받은 그는, "보소서, 내가 왔나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이런 명령을 받고, 그것을 성취했다.

예언자는 그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2절). "그는 들어가, 바퀴들 곁에 섰다." 그곳에서 그는 그가 흩을 숯불을 받으려고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주려고 하는 것은 자비이든 심판이든, 그가 먼저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불을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가 얼마나 더디게 심판을 수행하며,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참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 그불이 그에게 주어질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4. 그룹들 중의 하나가 생물들의 중앙으로부터 두 손 가득히 불을 움켜가지고 그 베옷 입은 자에게 다가왔다. 에스겔이 최초로 이런 환상을 보았을 때는, "타는 숯불과 횃불이 생물들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했던" 것을 보았었다(1:13). 그러므로 이 불은 생물들 사이에서 취해진 것이다(7절). "태우는 영," 곧 "정화하는 자의 불" 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요, 이것으로써 그리스도는 교회를 정화시킨다. "그룹들 사이로부터" 온 "불," 곧 하늘의 불에 의해서 놀라운 일(기사)들이 일어난다. "그룹들은 그 불을" 베옷 입은 자의 "손에 주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주 그리스도에 의해서 교용되어지며, 그리스도의 모든 목적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5. 가는 배옷을 입은 자는 불을 취하고, 그가 받은 지시대로 "성읍" 여기저기에 그 불을 "흩기" 위해서 "나갔다."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에 누가 머물 수 있겠는가?" 그가 진노 증에 나갈 때 누가 그 앞에 설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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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에스겔 10:8-22)

여기에서는 에스겔이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즉,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떠남에 대한 비참한 징조가 소개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가오고 있는 패망에 대해서 문호를 개방하게 될 것이다.

Ⅰ. 에스겔은, 그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것처럼, 성소에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영광에 대한 설명을 한다. 자신들의 사악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격분시켜, 결국 저들에게서 떠나게 만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이 모든 것을 잃었음을 알게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떠나신 후에야 애곡하고, "영광이 어디에 있느냐?" 고 외치며 통탄할 것이다. 에스겔은 이 세상의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역사하는 것을 여기에서 본다. 그 섭리는 "네 개의 바퀴들" 에 의해서 표상되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거주민들인 거룩한 천사들의 완전성과 그들의 임무는 "네 개의 생물들" 에 의해서 표상되었고, 네 생물은 "각각 얼굴" 을 가졌다. 이 세상의 사건을 지휘하는 천사들의 행위는 "생물들" 과 "바퀴들" 사이의 밀접한 교통에 의하여 표상된다. 바퀴들은, 마치 마차가 운전하는 사람에 의하여 움직이듯, 생물들에 의하여 인도된다. 그러나 "생물들" 과 "바퀴들" 안에 있는 동일한 성령은 이 세상이 모든 사건과 천사들의 활동에 의해서 그 자체의 목적을 이루는 무한한 지혜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 환상은 주께서 "하늘에 예비하신" 바 그 보좌를 신앙으로써 보게 한다. 그리고 "만유를 통치하시는" 그의 나라를 보게 한다(시 103:19). 예언자는 이 환상이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환상" 이었음을 진술한다(15, 22절). 그러나 한 가지 것에서 실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차이점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환상에서는 "좌편에 황소의 얼굴" 을 가졌던 것(1:10)이 여기에서는 "첫면에 그룹의 얼굴" 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14절). 그러므로 혹자는 그룹 들 중의 하나의 얼굴이 - 이스라엘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유의해서 보았었던 - 바로 황소의 얼굴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이 후자의 환상에서 본 모습을 에스겔이 여호와의 전에서 보았고(그는 제사장이었다. 왕상 6:29), 그래서 잘 알고 있는 그룹들의 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그것에 대해서 분명히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에스겔은 이것을 보고 추측하기 이전에, 다음을 잘 알고 있었다. 즉 그들이 비록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룹들이었다는 점을 그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20절). 또한 그룹들의 본래의 모습 - 그러나 넷이라는 숫자에 제한되어 있다 - 은 황소의 얼굴이었는데, 그것이 우상 숭배로 이용되기 때문에 바뀌었다 하겠다.

때때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타났던 것처럼 이제 그는 그의 백성들을 떠나기 위해서 나타났으며, "그는 그룹위에 올라타서," "날아가 버렸다."

여기서 다음을 살펴보자.

1. 이 세상은 돌고 돌며, 다양한 혁명을 치른다.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추이는 "바퀴" 로 표상되어 있다(9절). 때로는 이 살이 때로는 (바퀴의) 저 살이 위에 올라간다. 그것들은 또 바다물과 같이 줄기도 하고 불기도 하며, 달(月)과 같이 차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한다(삼상 2:4, 참조). 아니 오히려 그것들의 모습은 마치 "바퀴 가운데 있는 바퀴" 와 같다(10절). 그 바퀴들의 움직임은 서로 얽혀있고 복잡하며, 외관상으로는 서로 대립되는 것 같으나, 그들 모두의 움직임의 추세는 하나의 공동의 목적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 바퀴들의 모습은 서로서로에 대한 섭리의 상호관련과 서로서로에 대한 상호의존을 나타낸다.

2. 그런데 섭리의 다양한 사건들 안에는 놀랄 만한 조화와 통일성이 있다(13절). 비록 그 바퀴들이 여러 길로 움직일지라도, "바퀴들에 관하여, 오 바퀴여 ! 하는 소리가 들리더라" (우리 성경과는 다름 - 역주). 그것은 그들 바퀴가 모두 하나같이 한 성령에 의해서 하나의 목표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요, 그의 뜻도 하나이며, 하나님은 자신의 뜻의 계획에 따라서 모든 것을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의 배열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며, 경이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처럼, 낱낱으로도 "선하지만," 통틀어 생각하면, "더욱 선하다." 이렇듯 섭리의 바퀴들도 각각 훌륭한 것이지만, 그들을 서로 결합시켜보면 더욱 훌륭하다. "오, 바퀴여 !"

3. 하나님의 섭리의 운행은 부단하고 규칙적이다. 여호와는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시며, 결코 새로운 계획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바퀴들이 움직일 때는 사방으로 마구 돌아가지 않았다" (11절). "생물들은 각기 곧게 앞으로 나아갔다" (22절). 생물들이 가는 길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어려움을 극복했으며, 결코 한 곳에 머물러 서지도 않았고, 옆길로 가지도 않으며 뒤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일이 매우 잘 알려져 있으므로 결코 새로운 계획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4.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이 지상 세계의 통치에 천사들을 이용한다. "그룹들 곁에 네 바퀴가 있는데 이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고, 저 그룹 곁에도 한 바퀴가 있었다" (9절).

혹자는 여기에서 저 윗 세계에 관한 상상을 한다. 그들에 의하면, 윗 세계의 모든 구체(球體)에는 그것을 이끌어나가는 지성(知性)이 있으며, 그 사실은 본 환상에 나오는 바퀴에 각각 그것을 이끄는 그룹이 있는 것으로 표상되었다 한다. 하나님의 현명하신 섭리하에서 세상 일과 교회 일을 관할해 나가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족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사람들이 있든지 없든지, "각각의 바퀴에 하나의 그룹" 곧 각 바퀴를 운용하는 현명한 천사들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말해 주는 것같다.

5. 섭리자의 모든 운행과 천사들의 모든 관리는 위대하신 하나님 통치 하에 있다. 그룹들에게는 "눈이 가득하다." 이런 눈들은 지구의 이곳 저곳을 살펴 보는 여호와의 눈인데, 천사들은 항상 이 눈을 가지고 있다(12절). "생물들" 과 "바퀴들" 은 같이 움직이고 멈춘다(17절).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읽은 것처럼, "생명의 영" 곧 "생물들의 영이 바퀴들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은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을 지휘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한다. 만사는 눈먼 "운명의 바퀴" 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이 가득한 "하나님의 섭리의 바퀴들" 에 의해서 결정된다.

Ⅱ.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이 오랫동안 거주했던 성소를 떠나는 것을 본다. 이것은 매우 슬픈 광경이다. 하나님이 "이 땅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것이었다(우상 숭배자들이 추측했던 것처럼, 9:9).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성소를 버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매우 슬픈 일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문지방 위에 머물러 있었다" (4절). 그러나 이제 그 영광은 "문지방을 떠나갔으며" 그때부터 성읍의 파괴를 위한 명령이 내렸다. 그리고 그 영광은 "그룹들 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그룹들은 지정소에 있는 그룹들이 아니라 에스겔이 지금 환상으로 보는 그룹들이다(18절). 그 영광은 재판관이 법정을 떠나 마차로 나가듯이 장엄하게 마차 위에 올랐다. 그러자 즉시 "그룹들은," 마치 지시를 받은 것처럼, "날개를 들고," 새들이 날개를 펴고 올라가듯이, "땅에서 올라가셨으며" (19절), "그들이 나갈 때에," 이 마차의 바퀴들은 끌려간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잘 굴러갔다. "그룹들 곁에서" 바퀴들도 함께 움직였다. 이 그룹들은 "생물들의 영이 바퀴들 안에 있음" 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진노하사 백성들을 떠날 때는, 위에 있는 천사들과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하나님의 떠남에 일치할 것이며, 그것과 동시에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면, 성전 뜰에서 자기들의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멍에를 팽게쳐 버렸다. 그러나 축복받은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마차를 끌며,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이 당신의 뜻을 얼마나 어겼는가를 예언자에게 보여 주었었다(8장). 그러나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천사들과 열등한 피조물들은 당신의 뜻을 얼마나 신속하게 준행하고 있는가를 에스겔에게 보여 준다. 우리가 악한 자의 죄악을 위해서 슬퍼할 때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신속히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인다" 는 것을 생각하고 위로를 삼자(시 103:20).

1.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의기당당하게 타고 있는 수레를 살펴보자. 이스라엘 하나님인 그는 하늘과 땅의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잡고 있다. 신실한 이스라엘인들은 이런 사실로써 자신들을 위로한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그분은 모든 그룹들 위에 계신 분이며, 그들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그와 같으니(벧전 3:22), 모든 사건들을 처리할 통치권을 갖고 계신다. "생물들" 과 "바퀴들" 은 그를 섬기는데 일치하므로, 그는 "교회에 대한 만물의 머리가 되신다.

유대 랍비들은 에스겔이 보았던 이 환상을 Mercabah - 즉 수레의 환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이 랍비들은 하나님과 영들에 관계된 보다 난해한 부분을 Opus curres - 즉 수레의 역사(役事)라 부르고, 보다 이해하기 쉬운 다른 부분은 Opus bere shith - 즉 창조의 역사라고 부른다.

2. 이 수레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룹들과 그들위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의 동쪽 문에 머물렀는데," 이것은 그 전을 떠나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다(19절).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기를 꺼려하는 듯이, 그리고 혹시 거기에 하나님을 돌이키게 하는 어떤 중재자가 있는가를 보기 위한 것처럼 떠나기를 크게 지체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전과 제단 사이의 안뜰에 있는 제사장들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뜰에 머물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혹시 백성들 중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떠남을 몸소 막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서, 제사장들의 안 뜰을 떠나, "백성들의 뜰" 로 들어가는 "동쪽 문" 에 서 있었다. 하나님은 죄악을 범하는 사람에게서 점차적으로 떠나간다는 사실를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진노하사 떠나려고 할 때, 만약에 회개하는 기도를 하는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은 자비로써 그들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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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스겔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42장
6 에스겔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43장
5 에스겔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44장
4 에스겔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45장
3 에스겔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46장
2 에스겔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47장
1 에스겔 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4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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