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에스겔 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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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이스라엘과 그들의 우상의 파멸 예고(에스겔 6:1-7)

Ⅰ. "이스라엘의 산들" 을 향한 예언이 있다(1, 2절). 예언자는 "얼굴을 산으로 향해야" 했다. 만약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먼 땅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먼저 "산들" 이 저멀리 보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재판관이 그의 판결문을 읽을 때 죄인들을 바라보듯, 에스겔은 산들을 바라보아야 하며, 대담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스라엘 산들" 이 그렇게 높고 강할지라도 에스겔은 마치 그 산들의 근거를 흔들며 탄핵할 수 있는 심판권을 가진 자처럼, "얼굴을" 그들에게 "향하여야" 했다. "이스라엘 산들" 은 "거룩한 산들" 이었다. 그러나 이제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대항해서 얼굴을 두셨고, 따라서 예언자도 그래야 한다.

여기에서의 이스라엘은 다른 때처럼 10지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 영토를 가르킨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는 거주민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산들" 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는 요청을 받았다. 예언자들은 "패역하고 부정한 백성" 들에게서처럼 주의를 곧 받을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예언자들은 패역한 백성들을 향해서 오랫동안 "손을 폈었으나 헛되고 말았다." "오 산들아! 여호와의 논박을 들어라" (미 6:1, 2). 우리가 듣든 안듣든 하나님의 주장은 들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들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이 작은 산과 시내와 골짜기로" 울려 퍼진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 은 역시 그들에게도 말씀하시며, 이것을 온 땅이 이 백성을 고발하는 증인이 될 것이요 또 지금 전하여지는 것과 관계되어 있음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산들은, 백성들이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증언해 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했으며, 말씀의 사자들을 박해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예언자들은 그들에게 말하는 것보다 "산들" 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더 안전했을 것이다.

Ⅱ. 이 예언에서 경고되고 있는 바는 모든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이 전쟁의 검에 의해서 완전 멸망을 당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이스라엘 산들" 을 치는 이 원정대의 총사령관이다. "보라, 나 곧 내가 칼로 너희에게 임할 것이다" (3절)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갈대아 사람들의 검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며, 그가 보내는 곳에 가고, 그가 오라는 곳에 오며, 그가 가리키는 곳을 비추어서 그 전쟁을 황폐하게 만든다.

1. 우상들과 그 모든 부속물들이 파괴될 것이다. 산 꼭대기에 있는 "산당들" (높은 곳" -원뜻)이 평평해지고(3절) "황무하게 될" 것이다(6절). 그 산당들은 이전처럼 아름답게 되거나 사람들의 출입이 잦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낯선 신들에게 희생제를 드리고 향을 피우던 "제단들" 은 조각조각 "파괴될" 것이다. "형상들과 우상들" 이 말살되며 "파괴당하고 소멸될 것이며," 그들을 위한 값비싼 모든 노력들이 무효로 돌아갈 것이다(4, 6절).

(1) 모든 사람, 장소, 또 가장 신성하게 여겨졌던 것까지도 황폐케 하는 이 전쟁을 아무 것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칼은 모든 것을 하나같이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때때로, 갈대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상 숭배자들의 손은 통해서 우상 숭배를 멸망시킨다. 그러나 신(神)이란 지방에 따르는 문제라면, 자기 나라의 신을 최대로 경배하는 자는 다른 나라의 신에 대해서는 최대의 멸시자가 될 것이다.

(3) 우리가 우상으로 삼는 것을 하나님이 황폐케 하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공정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4) 만약에 사람들이 우상 숭배를 파괴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언제든 그것을 파괴하는 길을 모색할 것이다. 요시야 왕이 정의의 검으로써 산당들과 제단들과 우상들을 파괴했을 때, 백성들은 그것들을 다시 세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전쟁의 검으로써 그것들을 파괴할 것이다. 누가 감히 그것들을 다시 세울는지 보자.

2. 우상 숭배자들과 그들이 수고하는 모든 것들은 이와 마찬가지로 파괴당할 것이다. "그들의 모든 산당들이 황폐해지는 것" 처럼, "그들의 거주하는 처소," 즉 "모든 성읍들" 도 황폐해질 것이다(6절). 하나님의 거처를 모독하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5:11).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고전 3:17). 또한 여기에서 "너희 중에서 살륙을 당하여 엎드러지리라" (7절)란 말로써 경고되고 있다. 가장 안전하리라고 생각되었던 곳에서도 많은 자들이 살륙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우상 앞에서" (4절) 엎드러지며(그들의 "죽은 시체들" 이 그 우상 앞에 "놓여지고"), 그들의 "뼈를 그들의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5절)는 말씀이 그때의 사정을 잘 부언해 주고 있다.

(1)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의 우상들은 더럽혀질 것이며, 그들이 존경해왔던 곳들이 죽은 시체들에 의해서 모욕당할 것이다. 만약에 그들 자신이 "그들이 새겨 만든 형상들의 덮게를 자신이 더럽히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친히 하실 것이다(사 30:2). 거름더미 위에 던지는 것처럼, 우상들 가운데에 죽은 시체들을 던지는 것은 그 우상들이 거름더미에 불과한 신이었음을 말해 준다.

(2) 그러므로 이것은, 우상들은 죽은 것들이며, "살아계신 하나님" 과 경쟁하기에는 부적당하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우상처럼,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해서," 우상의 친구로서 매우 적합하다.

(3) 이리하여 우상은 저들을 예배하는 자를 돕지 못한다는 무능력 때문에 비난받으며, 우상 숭배자들은 우상들을 신임하는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비난받았다. 왜냐하면 우상 숭배자들이 실지로 우상들 앞에서 그들의 소원을 탄원하고 그들 자신을 우상들의 보호 아래에 맡겼을 때, 그들은 적의 칼에 엎드러졌기 때문이다. 산헤립은 "우상의 집에서 경배하다가" 그의 아들에 의해서 살해당했다.

(4) 이런 징벌의 주위 사정 속에서 죄악을 읽어낼 수 있다. "살해당한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살해되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 "우상 앞에 던져졌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런 우상들을 경배했기 때문이다(렘 8:1, 2 참조). 생존자에게 그 시체를 살펴 보게 하고, 우상을 경배하지 않도록 경고하자. 그들에게 그것을 보여 주고 "하나님은 여호와이시요," "여호와 하나님만이 홀로 존재한다" 는 사실을 알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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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에 대한 약속 (에스겔 6:8-10)

지금까지는 심판이 승리해 왔으나, 이 대목에서는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 이런 백성들의 범죄에 의해서 슬픈 종말이 발생했으나, 아직 완전한 끝장은 오지 않았다. 파멸은 보편적 현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나는" 백성에게서 구별된 소수의 "남은 자를 남겨 둘 것이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사람들이 멸망당할 때에도 살아남은 자들이다. 그들을 남기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쓰러졌어야 할 사람들이며, 만약에 하나님이 그들을 남겨두지 않았다면 멸절되었을 것임을 나타내 준다(사 1:9 참조) (그들을 관대하게 보아 주는 눈을 가지고 그들에게 은혜로이 역사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Ⅰ.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체를 휩쓸었던 패망으로부터 구원받고, 보호받은 남은 자들이다(8절). "내가 칼을 피하는 사람들을 남겨 둘 것이다." 하나님은 "흩어진" 사람들의 "뒤를 쫓아 칼을 빼며," 흩어진 그들의 멸망을 추적하리라고 말씀하셨었다(5:12). 그러나 여기에서는 "자비가 진노 중에서 기억된 바 되고," -나중에 그들이 이렇게 불리우듯이 - "흩어진 유대인들" 중 약간의 사람들은 "검은 피할" 것이라 하신다. 예루살렘 주변의 "사방에서는 칼에 의해서 엎드러졌던" 사람들 중 누구도 "도망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그들을 안전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런 헛된 신뢰로 인해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중 얼마는 "열방 중에서 칼을 피하리라." 모든 곳이 박탈당하더라도 그곳에서는 그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칼을 "피할" 사람들이 "있으리라" 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이 다시 번창할 다른 세대를 낳는 씨앗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Ⅱ. 그들은 참회하는 남은 자이다(9절). "너희 중 피한 자들이 나를 기억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생명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 의 심정을 주실 것이다. 유예를 받아 "칼을 피하리니," 저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내는 회개의 여지를 주며, 또한 죄인들에게 회개를 격려해 준다. 하나님은 그가 회개의 은혜를 베풀려 하는 곳에다가 또한 회개의 여지를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 같은 여지를 가진 많은 사람들 중에는 그러한 은혜를 받지 못한 자가 있으며, "칼을 피한" 많은 사람들 중에는 죄를 버리지 아니하는 자들도 있다. 여기에 약속된 것과 같다.

본문에 나오는 남은 자는 구원을 위한 표적을 받았으며, 인간들중에서 자비의 기념비를 삼기 위해서 남겨둔 남은 자들의 한 모형이다. 사람들은 회개함으로써 여기에 남은 자들과 동일한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제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저들의 회개의 이유가 나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심판과 자비의 혼합물이다. 심판은 그들이 "사로잡혀 갔던" 것을 말하며, 자비란 그들이 포로의 땅에서 "검을 피한" 사실을 말한다. 그들은 고향 땅에서 쫓겨났었으나, 산 자들의 땅에서는 쫓겨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고 그들도 응당 그랬어야 했지만, 그들은 "세상의 밖으로 쫓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닥친 십자가의 견책과 그 가운데 섞여 있는 자비를 생각하고 우리는 회개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징책과 자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 비록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참된 회개는 하나님이 받아 주신다. 성화된 고난은 때때로 므나세의 경우처럼 회심의 방편이 된다.

2. 저들의 회개의 근거와 원리를 보자. "그들은 열방 중에서 나를 기억하리라." 평화와 번영의 땅에서는 "하나님을 잊었던" 사람들, "살이 찌매, 발로 차버린" (신 32:15) 사람들이 사로잡힌 포로의 땅에서는 하나님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방탕한 아들은, 그가 먼 나라에서 굶어죽게 되기 전까지는 그의 아버지의 집을 깊이 숙고하지 않았다. 그들의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이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첫걸음이 된다. 그들이 거슬러 죄를 행했던 그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내 주 하나님이여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 하고 묻기 시작했을 때) 어떤 희망이 그들에게서 태동하기 시작했다. 죄악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데서 발생한다(렘 3:21). 회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들이 나를 기억하리라" 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은혜를 베풀 것이다" 라는 뜻이다.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은혜가 그들을 찾아 낼 것이며, 하나님을 그들 마음속에 모시게 함으로써 올바른 마음을 갖도록 할 것이다. 탕자가 그의 아버지를 기억했을 때, 그가 어떻게 "하늘과" 아버지 "앞에서 죄를 범했던가" 를 기억했다. 이 회개자들도 그와 같이 행했다.



(1) 그들은 우상 숭배를 행함으로써 하나님에게 끼쳤던 기본적인 모욕 행위를 기억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게 굳게 참회하고 통애하는 행위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우상들에게 갔으며,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인간의 공상으로 창조된 거짓 신들에게다가 이스라엘 하나님에게 바쳐야 되었을 영예를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 곧 그의 말씀을 "멀리 떠났다." 그들은 이것을 그들의 활동 원칙으로 삼고, 그들의 업무로 삼았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다." 그 마음, 곧 하나님이 요구하고 원했던 것, 그리고 이것 없이는 "육체의 연습이 무익하게 되는" 그 "마음," 그것은 하나님에게 향해 있었어야 했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되자" 그 마음은 남편을 저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는 여인의 마음과 같이 방탕해졌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복종을 거역하는 배신적 마음이 되었다.

"그들의 눈도" 역시 "그들의 우상을 섬긴다." 그 눈은 우상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들의 마음은 우상들을 선택한 그들의 눈을 따랐으며, 그 다음에는 우상들을 경배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눈이 그들의 마음을 따랐다. 그러므로 이런 죄악의 사악성은 그것이 영적인 음행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음란한 마음" 이며, "음란하게 그들의 우상을 섬기는 것" 이 그들의 "눈" 이다. 우상 숭배는 영적인 음행이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결혼계약을 파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적수인 우상들에게 애정을 주는 것이며, 영혼을 더럽히고 배반하는 속된 욕망의 방종이고, 하나님의 명예를 크게 더럽히는 죄악이다.



(2) 그들은 이런 행위가 하나님을 얼마나 통탄케 할 일인가를 기억한다. 그들은 이런 영적인 간음으로 가득 찬 "그들의 음란한 마음과 눈으로 나(하나님)를 근심케 했다" 는 것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은 그것에 대히 진노할 뿐만 아니라, 참으로 사랑했던 아내의 음탕한 행위에 대해서 남편이 근심하는 것과 같이, 그것에 대해서 근심했다. 하나님은 자기가 그런 불순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서 마음이 상했다. 반역적이고 불순종하는 아들의 행동으로 상심하는 노아버지처럼 그는 상심했다. "내가 40년을 이 세대로 인하여 근심했다" (시 95:10).

혹자는 "나를 근심케 했다" 를 "하나님의 자가 부셔졌다" 고 읽는다.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물줄기가 멈추어졌으며, 하나님은 심지어 그들을 징벌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들이 이런 사실을 회개의 날에 기억할 것이며, 이것은 어떤 것보다도 더욱 그들을 겸손하게 할 것이다. 그들의 죄로 인해서 깨어진 것은 그들의 평화나 그들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며, 그를 위해서 애통하리라" (슥 12:10). 진실한 참회자에게는 자기의 죄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했다는 생각보다 더 괴로운 것이 없다.

3. 그들의 참회의 결과와 증거를 보자. "그들은 모두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한 것을 인해서 스스로 한탄하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그들이 용서받고 구원받기에 합당케 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그들의 음란한 마음 때문에 근심" 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아직 그들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사 57:17, 18; 호 2:13, 14 참조). 하나님의 선이 그들의 악한 행위 때문에 더욱 빛난다. 다음 사실을 명심해 두자.

(1) 진실한 참회자들은 죄가 가증한 것임을 안다. 즉 죄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가증한 것이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예배조차도 추악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예배조차도 추악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안다(렘 44:4; 사 1:11). 만약에 죄인이 그 자신에 대해 가증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죄는 죄인들 자신의 양심을 더럽히며, 그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 우상은 특히 "가증한 것" 이라 했다(사 44:19). 죄인들의 마음은 즐거운 일에서 만족감을 가지며, 참회자의 마음은 가증한 일을 떠남으로써 만족을 갖는다.

(2) "이런 가증한 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 많다. 즉 거기에 많은 자가 동참해 있다. 또 한 가지 죄를 여러 번 범한다(레 16:21). 그들은 우상 숭배를 하면서 때때로 죄를 범했다. 즉 브올을 예배할 때는 음행을 범했고, 몰록을 예배할 때는 살인을 범했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가증한 일로 범해진 죄악들" 이다.

또한 이 말은 죄 안에 들어 있는 큰 사악성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그 속에 악이 많이 들어 있는 가증한 일이다.



(3) 참으로 죄를 한탄하는 사람들은 죄로 인해서 자기 자신들을 한탄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항상 진정한 회개의 반려자이다. 참회자들은 자기 자신과 싸움을 계속하며, 하나님의 그들과 화해하신다는 희망을 가질 때까지 결코 자신과 화해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에 대한 진노를 풀고 평화를 회복할 때, "그때"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16:63).

4. 그들의 회개가 하나님께 되돌려 줄 영광을 보자(10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들은 경험에 의해서 그런 사실을 깨달을 것으며, 공인할 것이다. 또 내가 이런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했고, 하나님이 말한 것은 이루어지며 선을 위해서 역사하고, 또 그들이 이와 같이 경고를 받고 징벌받는 것은죄악 때문이었음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다음 사실을 기억해 두자.

(1)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자기가 하나님임을 알리실 것이다. 즉 회개를 통해서거나 혹은 그들을 멸망시킴으로써이다.

(2) 모든 진정한 참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공평성과 효능을 깨닫게 될 것이며, 특히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의 효능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그 같은 경고와 또 그 실현 속에서 하나님을 의롭다고 시인하게 될 것이다.

 

6:9 없음.

 

6:10 없음.

 

6:11

예언자여 슬퍼하라(에스겔 6:11-14)

앞의 제5장과 본장의 앞에서 이미 보았던 것과 동일한 경고가 여기에 되풀이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예언자 에스겔에게 통애 하라는 지시가 나와 있다. 그것은 그의 예언을 듣을 사람들로 더욱 감동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Ⅰ. 에스겔은 설교하는 중에 몸짓으로써 그 자신이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과 재앙에 대해 느낀 깊은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너의 손뼉을 치며, 발을 구르라" (11절). 이와 같이 함으로써 에스겔은 그가 그들에게 말한 것의 진지성을 나타내고, 그가 그 사실을 확고하게 믿는다는 것을 밝혀야 했다. 이처럼 에스겔은 그들의 죄에 대해서 품었던 불쾌함과 그들 위에 임박한 심판의 두려움을 몸짓으로 표현해야 했다. 혹자는 이런 몸짓을 사용하는 일을 괴상하고 우스꽝스런 것이라 하여 거부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런 것들을 사용할 것을 명령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말씀을 더욱 강화하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영혼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약한 자를 교화시키기 위해서라면 이런 기거를 사용함으로써 조롱받는 것조차도 만족해할 것이다.

예언자는 두 가지를 통애해야 했다.

1. 첫째, 민족적인 죄악이다. "오호라! 이스라엘 족속이 가증한 악을 행했도다." 죄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의 슬픔거리이며, 특히 "이스라엘 족속의 가증한 악" 은 더욱 그러하고, 그들의 죄악은 다른 사람들의 죄악보다 더욱 가증하고 더욱 악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오호라! "그 결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2. 둘째, 민족적인 심판이다. 이런 가증함을 인해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그들을 검과 기근과 온역에 의해서 멸망케 할 것이다." 우리의 죄와 고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와 고난도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리고 또한 사악한 사람들이 죄 때문에 당하는 재난에 대해서도 동정을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다."

Ⅱ. 에스겔은(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한 파괴에 관해서) 그가 이전에 말했던 사실을 다시금 되풀이해서 강권해야 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로 가든지 그들을 쫓아오며 추격하는 여러 가지 심판에 의해서 멸망받을 것이다(12절). "먼 데 있는 자" 는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갈대아 사람들의 화살의 사정권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밤과 낮으로 날고 있는 하나님의 화살의 사정권을 벗어난 것이 아님을 깨달을 것이다(시 91:5). "그는 온역으로 죽으리라."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여 요새 "근처에 있는 자" 도 피난하기도 전에 "칼에 의해서 멸망할 것이다." 위험에 처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며 성읍에 "남아 있는 자들은" "기근에 의해서 죽을 것이니," 그 죽음은 모든 죽음 중에서 가장 슬픈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진노를 완성할 것이며," 그들에 대해서 그가 행하고자 목적했던 바를 모두 이루리라.

2.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징벌을 통해서 자기들의 죄악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에 경고했던 것처럼(5-7절), "그들의 죽은 시체들이 그들의 제단 주위에 있는 우상들 중에 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기들의 우상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굴복했던 그곳에다, 하나님은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그들의 우상들도 치욕스럽게 하는 그들의 죽은 시체들을 둘 것이다. 그들은 우상들 사이에서 살았으니, 또한 그것들 가운데서 죽으리라.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에게 향기로운 향을 피웠었으나, 그곳에는 그들의 죽은 시체들이 불쾌한 냄새를 풍기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잘못된 분향이 봉향되는 셈이다.

3. 이스라엘 촌락도 앞에서 말한 "성읍들" 처럼(6절) 황폐해질 것이다. "내가 그 땅을 황폐하게 하리라." 비옥하고, 쾌적하며 인구 조밀했고, 그래서 여호와의 뜰과 같았던 땅, 모든 땅의 영광이었던 그 땅이 "황폐하게" 될 것이며 "디블랴에 이르는 광야보다 더 황무케" 되리라(14절)(한글 성경과 다소 다름). 그곳은 디블라다임이라 불리웠다(민 33:46; 렘 48:22). 그리고 신명기 8장 15절에서는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라고 했고, 그곳에는 "불뱀과 전갈" 이 있었다. 가나안 땅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황폐한 불모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모든 성읍과 촌락에 인구가 감소되고, 모든 "제단들이 깨어지고 황폐하게 될" 것이다(6절). 그들의 우상들을 숭배하는 제단들을 그대로 남겨두기보다는 오히려 성읍과 촌락을 모두 폐허시킬 것이다. 죄악은 황폐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으로 행하여,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6:12 없음.

 

6:13 없음.

 

6:1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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