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된 예언 (예레미야 50:1-8)
Ⅰ.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어진 바벨론에 대한 경고의 말씀. 모든 일을 그가 한 말씀대로 이루어졌고 한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였다. 바벨론 왕은 예레미야에게 매우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의 파멸을 예언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지자는 사사로운 정이나 감정에 이끌려서는 아니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라할지라도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한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화평을 약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1. 본문에서 바벨론의 파멸은 이미 도래된 것처럼 말씀되고 있다(2절). 이것이야말로 열방들에게 전파되어야 할 뉴스 중의 뉴스였다. 또한 이 소식은 누구에게나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개선할 때 기를 달아 이 사실을 공포하였듯이 이제 기를 달아 바벨론이 함락한 사실을 알리도록 하자. 세계에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자. 이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자. 이로써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 받게 하자. 그러므로 이 소식은 은폐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시기 위하여 심판을 행하셨음을" 만민이 알게 하여야 하는 것이다(시 9:16).2. 바벨론의 함락은 이미 남김 없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언급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벨론의 파멸이 너무나 확실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1) 백성들이 정성을 다하여 보호하고 또 그것에게 보호를 기대하는 바벨론의 우상들이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벨과 므로닥은 바벨론의 으뜸가는 신들이었다. 그런데 이 신상들이 "수치를 당하며" "부스러질" 것이라고 한다.
(2) 국토가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3절). 북방 곧 바벨론 북쪽에 있는 메데와 고레스를 경유하여 바벨론을 공략한 앗수르로부터 민족이 일어나서 바벨론을 황폐시킬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을 칠 백성은 바벨론의 북쪽에 위치하여 있었다. 그러므로 바벨론인들은 북에서 재앙이 임하리라는 경고를 받고 있었다(그러므로 속담에 Omme malum ab aquilone-즉 모든 재앙은 북으로부터 온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훨씬 후에 하나님은 로마를 칠 민족들을 더 먼 북쪽에 예비하고 계셨다. 그들이 곧 북방 민족들인 코트족과 반달족이다. 이들에 의하여 옛 로마는 몰락하였던 것이다.
Ⅱ. 본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말씀과 그들을 위로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 위로의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을" 모두 포함하여 주어진 것이었다. 실제로 바벨론에게 귀환할 때에 유다의 두 지파에는 이스라엘 열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아래의 사실들을 생각하여 보자.
1. 먼저 그들이 하나에게 돌아올 것이며 그 다음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 약속되고 있다. 그들의 회개와 변화에 대한 약속이 다른 모든 약속들을 이루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4,5절).(1) 그들이 "울며 여호와께 구할 것" 이라고 하였다(사무엘 시대에 온 이스라엘 지파가 그리하였듯이, 삼상). "그들은 울며 그 길을 행할 것이다." 이 눈물은 그들이 포로로 잡혀갈 때 흘린 눈물처럼 세상적인 슬픔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경건한 애통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죄에 대한 회개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기쁨의 눈물이다. 그들의 해방의 날이 동터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 해방의 날에 그들은 포로가 되어 재난을 당하던 때보다 더욱 죄를 통회한 것으로 보여진다. 다른 그 무엇도 그들을 통회하게 할 수는 없었으나 이 구원이 "그들로 회개하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손을 펴사 그의 백성을 부드럽게 감싸시는 순간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오셔서 자비를 베푸시려는 좋은 징조임을 기억하자.
(2) 그들이 "여호와께 그 뜻이 무엇인지 문의할 것이라" 고 한다. 그들은 슬픔에만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서 있을 만한 곳으로 위로를 찾아나선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들이 울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 이라고 하였다.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부모가 그리스도를 찾으실 때 그리하였듯이 "애통하며 그를 구해야만" 한다(눅 2:48). 그리고 슬퍼하는 자들은 여호와를 구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들의 슬픔이 변하여 곧 기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구하는 자는 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삼고" 구하며 더 이상 우상들과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의 우상들이 "수치를 당하고 부서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들은 때마침 자기들의 하나님을 찾았고 또 영원히 사시는 분에게 돌아섰다. 거짓 신들은 인간을 기만할 뿐이므로 그들은 참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한 것이다.
(3) 그들은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조국으로의 귀향을 자비를 얻는 것으로 여길 뿐 아니라 의무로서 여길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거기 "거룩한 산 시온" 이 있고 그 위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집" 이 서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5절). 그러므로 "그들은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묻는다." 시온은 그들이 서원한 성이었다. 그들은 포로의 곤고한 생활 속에서 자주 그 곳을 생각하였다(시 137:1). 그러나 이제 바벨론이 멸망하자 그들은 어쩌면 해방될 수도 있으리라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일 때마다 시온으로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만 대화를 나눈다. 전에도 그들의 마음은 그곳에 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의 얼굴을 시온으로 향한다." 그들은 거기 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은 시온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삼으리라 굳은 결심을 한다. 여로는 멀고도 멀었고 그들은 길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시온에 꼭 도달해야 한다는 결심이 서 있으므로 "길을 물으면서라도" 앞으로 나간다. 또한 다시는 바벨론으로 돌아가지 않을 결심이었으므로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를 개의치 않고 전진하였다. 이 말씀은 가련한 영혼들이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하늘이야말로 그들이 최종 목표를 삼는 시온이다. 그곳에 그들은 마음을 두고 있으며 그곳을 향하여 그들은 "얼굴을 든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로 가는 길을 물어야만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늘가는 길을 묻지 아니하고 그들의 얼굴을 돌이켜 세상을 바라보고자 한다. 그들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도 않으며 또 길을 묻지도 않고 모험을 무릅쓰고 있다. 그러나 참으로 회개한 모든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려는 간절한 염원과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끊임없는 주의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늘을 향하여 얼굴을 들고 그리고 가는 길을 묻는 성도들의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라 하겠다.
(4) 그들은 미래에 하나님과 더욱 가까이 동행할 것이라는 뜻으로서 계약을 갱신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는 오라.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깨뜨렸었고 스스로 하나님을 멀리 하였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그의 것임을 새롭게 확인함으로 그에게 "연합할" 결심을 한다. 이같이 낙심자가 다시 돌아올 때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처음에 맺었던 계약을 갱신해야만 하는 것이다. 새 계약은 "영영한 언약" 이 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결코 파기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 계약을 결코 잊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계약을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약을 준수하는 길뿐이라 하겠다.
2. 그들의 현재의 입장이 애처롭고 또 그 기간이 너무 길었으므로 그들은 울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떼로다" 하였다(6절)(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의 것이라고 하신다). 또한 본문에 "그들이 산에서 작은 산으로 돌아다녔다" 고 하였다. 즉 그들이 이곳 저곳으로 헤매고 다녔지만 목초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향에 있는 "쉴 곳을 잊고 있었다." 또한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지도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비참함은 더욱 가중되었다.
(1)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한 것은 바로 그들의 목자였다." 곧 그들의 방백들과 제사장들이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그 의무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격노하사 그들을 조국에서 쫓아내셨다. 백성들을 잘못하도록 교사하는 지도자, 백성들의 갈 길을 지시하시고 바르게 이끌어야 함에도 그들을 속이고 유혹하는 지도자들, 백성들의 이익을 보장하고 그것을 위해 앞장서야 함에도 그들은 배신하는 지도자를 둔 백성들은 불행한 백성들이다.
(2)그들이 유리하는 중에 그들은 짐승들의 먹이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들은 주인 없는 길잃은 짐처럼 취급을 당하였다(7절). 그들은 길잃은 양의 입장에 처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켰고" 먹이로 삼았다. 그들을 쫓는 자들은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그들을 비웃으며 말하기를 "너희 선지자들이 너희가 받으리라고 수없이 말하던 대로 너희가 어려움을 당하였도다" 라고 한다. 선지자들이 그렇게 말한 대로 한 것이라고 하여도 침략자들의 잘못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희롱하며 이렇게 변명한다. 즉 "그들이 여화와께서 범죄하였음인즉 우리는 무죄하다" 고 말한다. 침략자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지 아니하였다. 여기서 살펴보고 지나가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로 그들이 거스르며 범죄한 여호와께 대하여 어떤 개념을 품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들은 여호와를 오직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여겼을뿐 아니라 "의로운 처소이시며 그 열조의 소망이신 여호와" 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성전과 자기 조상들이 지켜온 전통을 경멸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어려운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의로운 처소시며 그 열조의 소망이신 여호와를 버린 것" 은 그들의 죄를 가일층 무겁게 한 행위였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정당성을 드러내 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스라엘에 해를 끼친 침략자들의 행위가 정당성을 띨 수는 없었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유의 문이 열려 있는 지금 곧 갈 길을 떠나라고 재촉하신다(8절). 그러므로 본문에 이렇게 말씀한다. "너희는 나오라. 바벨론 가운데서 나와서 국경을 빠져나오라. 너희가 바벨론에서 안전히 정착하여 살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정착할 생각은 말고 서둘러 시온으로 가라. 양떼의 앞장을 서는 수염소 같이 앞을 다투라. 먼저 구할 것이 있고 나중 구할 것이 있는데 너희는 먼저 있어야 할 것을 애써 구하라. 그러면 만사가 순조로우리라" 고 하신다. 수염소는 앞장을 섰기 때문에 당당하게 걷는다(잠 30:31). 마찬가지로 좋은 일에 앞장 서서 다른 사람들의 본이 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바벨론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 50:9-20)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를 통하여 바벨론과 쟁론을 계속하신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경륜된 것이었다. 이제 구체적으로 고찰하여 보자.
Ⅰ. 바벨론을 멸망시킬 자들이 위임되고 책임이 하달됨. 이 일을 수행할 군대는 "큰 연합국" 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즉 메대와 페르샤와 모든 그들의 동맹국과 지원 국가들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규합된 세력을 "연합국" 이라고 한 것은 이 집단이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의하여 바벨론 파멸을 수행하기 위하여 한 국가처럼 체계있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으키사 이 일을 수행케 하고자 하시었다. 또한 그들이 이 일을 수행할 의욕을 갖게 하시며 또한 일을 수행할 만한 힘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 다음 하나님은 "그들로 일어나 나오게" 하셨다. 그들의 일거일동은 모두 그의 명령과 지시 아래서 이루어졌다. 전투개시를 명하는 분도 하나님이요, 그들로 "바벨론을 쳐 항오를 벌이게" 명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다(14절). 하나님이 명하셨으므로 그들은 항오를 벌인다(9절).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신속히 점령되고 말 것이다. 공격을 시작하면서 그들은 땅을 쉽게 점령하기 시작하여 곧 바벨론을 점령해 버린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화살을 아끼지 말고 쏘라" 고 명하셨다(14절). 또한 "그들의 화살은 연숙한 용사의 화살" 같다. 즉 활쏘는 재능, 당기는 힘, 좋은 시력, 훌륭한 팔을 그들이 모두 구비하였다(9절). 그러므로 화살이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고 한다. 위임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는 그 일을 반드시 성사케 하신다. 그는 그들에게 "바벨론을 향하여 화살을 쏘라" 고 명하셨을 뿐 아니라(14절) "소리질러 치라" 고 하신다. 이 소리는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자들의 자신에 찬 외침을 뜻한다. 하나님께 쏘라는 지시를 받은 자들은 이 일을 수행하되 함성을 지르며 하게 된다. 왜냐하면 화살이 빗나가지 않고 목표를 적중시키기 때문이다.
Ⅱ. 폐허와 파멸이 바벨론에 임함. 이 사실이 본문에서 다양스럽게 표현되고 있다.
1. 정복자들은 바벨론의 재물을 마음껏 포식하며 쉽게 탈취하리라고 한다(10절). 그러므로 본문에 침략자들에 의하여 "갈대아가 약탈을 당할 것이라" 고 하였다. 그들은 바벨론을 약탈하여 부요하게 된다. 또한 "그를 약탈하는 자마다 만족해한다." 그들은 스스로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다.2. 바벨론 땅에 거민이 없어져 무인지경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은 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 고 하였다(13절). "지나가는 자마다" 바벨론의 몰락을 보고 쾌감을 느끼겠고 바벨론의 몰락을 슬퍼하는 대신 "그 모든 재앙을 비웃으리라" 고 한다(13).
3. 바벨론 군대가 첫 번째 공격을 받고 겁이나 도망하므로 용맹스러운 조상의 얼굴에 치욕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12절). 또한 "너희의 어미" 가(이는 바벨론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치를 당하리라" 고 한다. 그 이유는 침략자들이 저지당하지 않고 와서 바벨론을 노략할 것이기 때문이다. 후대의 바벨론인들이 그 조상에게 치욕을 끼쳤듯이 후대의 기독교인들도 초대 기독교인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타락된 생활을 하여 초대 교인들에게 수치를 끼쳤던 것이다. 그들의 죄 가운데서 배교야말로 인간이나 민족을 치명적으로 파멸시키는 가장 큰 죄였다.
4. 바벨론에 아첨을 하던 자들도 바벨론이 비참하게 된 것을 볼 것이라고 한다. 열국 중 맨 끝까지 존속하였던 바벨론도 "광야와 마른땅과 사막이 된 것" 을 그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한다(12절). 많은 사람들이 살던 나라에 거민이 없을 것이요 많은 비옥한 땅들이 황무지가 될 것이라고 한다.
5. 바벨론의 중심부인 수도(서울)가 완전 파괴될 것이라고 한다. 바벨론성의 주춧돌이 내려 앉고 따라서 그 성벽도 무너진다. 신의 진노가 임하여 그 기초를 흔드는데 어찌 벽이 지탱해 낼 수 있겠는가? 여호와의 보복이 안겨지면 논리로서도 싸움으로서도 그를 당할 자는 없다.
6.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바벨론에도 포도원지기와 농부가 끊어지므로 땅이 황폐하리라고 한다(16절). 그러므로 본문에 "파종하는 자와 추수 때에 낫을 잡은 자를 바벨론에서 끊어버리라" 고 하였다. 나라 안에 백성이 없으므로 경작할 자도 추수할 자도 없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추수 때가 되어도 거둘 자가 없으며 파종 때가 되어도 심을 자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하실 일을 계속해서 하시므로 경작과 추수할 여건을 조성하시나 사람들이 없으므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추진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7. 그들이 고용한 모든 용병들은 그들을 버릴 것이라고 한다. 용병들이란 위험이 닥치면 먼저 도망갈 생각을 하는 것이 상례이다(16절). 그러므로 본문에 "사람들이 그 압박하는 칼을 두려워하여 각기 동족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고 하였다. 이러한 경고의 말씀은 애굽에 대하여도 주어졌었다(46:16).
Ⅲ. 파멸의 원인. 그것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에 원인이 있었다. 그러므로 본문에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바벨론이 "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 고 하였다(13절). 또한 그의 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여호와께서 범죄하였으므로" (14절) 그의 진노는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화살을 아끼지 말라" 고 하였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심판의 화살의 표적이 되는 것은 죄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바벨론은 우상 숭배와 타락으로 가득찬 나라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싫어하게 된 이유가 이러한 죄 때문이었다고 기록되지는 않았다. 그보다 큰 죄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한 불의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원한을 품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산업을 노략하는 자" 노릇을 하였다(11절). 하나님께서 그들을 쓰신 것은 그의 백성의 잘못을 고치는 데 그들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완전히 멸하려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행위를 무서운 범죄로 하나님께서 여기셨다.
1. 그들은 예루살렘을 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11절).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가 즐거워하며 기뻐하였다" 고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고통을 가하시기는 하셨으나 그 일이 기뻐서 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그들을 벌하기 위하여 고용한 도구에 불과한 자들이 그들을 치는 일을 기쁨으로 하였으므로 하나님은 대단히 불쾌하였다. 디도 베스파시안(Titus Vespasian)황제가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 그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울었다. 그러나 이들 갈대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개선가를 불렀다.2.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그들의 허영을 채우는 일에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가 풀을 뜯는 송아지처럼 살쪘고 숫소처럼 표효하는도다. 또한 너희가 예루살렘을 정복한 것을 자기가 잘나서 정복한 것으로 여기며 자신만만하여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겁을 주는도다.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노략을 당하리라" 고 하신다. 이와 같이 재물을 지나치게 욕심내는 자들은 언제인가는 그것들을 다시 토해내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들이 "항복하였다" 고 하였다. 그들은 정복자 앞에 무릎을 꿇었고 순순히 항복하였다. 그러므로 정복자들에게 "너희는 바벨론에게 보복하고" 그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그에게 행하여 복수하라" 고 하신다.
3. 그들이 목적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완전한 멸망이었다. 그리고 앞에서(6절) "이스라엘은 잃어버린 양떼" 라고 하였다. 이스라엘을 보고 개들이 짖고 겁을 먹게 할 뿐 아니라 가장 무서운 적인 사자들까지 이스라엘을 보고 울부짖으며 "따라온다" (17절). 앗수르의 한 왕이 이스라엘 10지파를 사로잡아가 삼켜 버렸다. 다음에는 다른 왕이 일어나 유다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가 이 가련한 양의 살과 가죽을 찢었다. 이제는 드디오 느부갓네살이 곤욕을 치를 때가 되었다. 그는 모든 이웃 국가들에게 공포를 안겨 주어 왔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낮은 위치로 전락하였다. 그는 스스로 걸려 넘어져 "뼈가 부러졌고" 완전히 망하였다. 그러므로 앗수르 왕을 벌한 것같이 바벨론 왕을 벌하리라고 하신다(18절). 자기들의 앞서간 자들의 죄를 추궁하고 기소한 자들은 바로 그들이 기소한 자들의 저주로 인하여 자기들도 추궁을 당하며 기소를 당하게 될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전임자들이 행한 대로 그들도 행한다면 전임자들이 받은 고난을 그들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Ⅳ.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자비가 약속됨. 이 약속은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과 병행하여 실현되는 것이었다.
1. 하나님께서 포로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들은 그들의 짐을 벗게 될 것이다. 그리고 흩어졌던 양떼가 다시 그들의 우리로 돌아오듯이 "다시 그 복장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고 하신다(19절). 그들은 지금까지도 가나안 땅에 대한 소유권을 지니고 있었고 따라서 그곳은 지금도 그들의 거처임에 틀림없었다. 잠시 그들의 소유지를 떠났다고 해서 소유권이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 그들의 소유를 회복하고 그것을 즐길 수 있으리라고 한다.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번영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들은 생명을 보존할 뿐 아니라 자기의 조국에서 평화로이 살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나라에서 가장 비옥하고 아름다운 곳인 "가멜과 바산에서" 소산물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양떼와 같이 그들은 그들이 흩어졌던 사막에서 돌아올 것이요, 다시 좋은 목장에 거하게 된다. 거기서 그들의 영혼은 만족을 얻게 된다. 오랜 내핍생활로 그들은 허기로 배를 움켜쥐고 돌아올 것이나 돌아와서 먹을 것이 풍부한 것을 보고 깊은 만족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예배할 수 있는 "시온으로 가는 그 길을 묻는다" (5절).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그들의 귀향의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온에 이르게 하실 뿐 아니라 그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바산과 가멜로 그들은 인도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그들의 본분을 다하는 자들에게는 그렇게 함으로 영혼의 참된 만족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 곧 거룩한 산 시온을 그들의 안식처로 삼는 자들에게는 "다른 모든 것들도" 주시겠다고 하셨다. 즉 비옥한 언덕들인 "에브라임과 길르앗" 의 위로도 주시겠다고 하신다.
3.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를 사하겠다고 하신다. 이 불의가 모든 화의 근원이었었다(20절). 그러므로 본문에 "그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다" 고 하였다. 그들의 불의에 대한 형벌을 거두실 뿐 아니라 그들의 불의로 인하여 하나님이 품으셨던 노여움도 그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친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가 전혀 없었던 것으로 여기실 것이다. 그들의 죄가 구름이 걷히듯 사라질 것이요, 빛이 말소되듯이 없어질 것이요, 다시는 기억조차 안하실 것이다. 그들의 죄는 깊은 바다에 던져진 것처럼 기억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보고에 인봉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곤란하게 다시 죄가 나타나거나 표면에 부각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그들의 죄를 사하셨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 준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고 하셨다. 죄가 용서되었다는 징표로서 고통에서 벗어남을 받는 것은 참으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사 38:17). 유다와 이스라엘은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다는" 말을 들어 왔었다(사 40:2).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의 그들은 모든 죄에 대하여 완전히 용서를 받았다. 이 말씀 속에는 죄에 대한 사면 뿐 아니라 그들의 생활과 마음이 철저하게 변화되었다는 뜻이 내포되고 있다. 그들이 귀향한 후에 혹시 누가 그들에게 우상이나 우상을 섬기는 관습이 행하여지는가를 찾으려 하여도 "없겠고" 또 "발견치 못하리라" 고 하신다. 그들이 지닌 오명이 말끔히 씻기고 죄악 또한 씻기어져 순결한 모습이 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남긴 자를 사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호의를 보일 것이라" 고 하신다. 하나님은 은혜에 풍성하시므로 그를 통해서만이 호의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사함받은 자들에게 큰 은혜를 베푼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가 의롭다 여기신 자에게 또한 영화를 얻게 하시기 때문이다."
황폐된 바벨론 (예레미야 50:21-32)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군대가 소집되고 그들에게 바벨론을 멸망시키라는 임무가 부여된다. 이들에 의하여 강력하였던 바벨론 왕국이 내리막 길에 이른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너희는 올라가서 므라다임의 땅을 치라" 고 하신다. 이 므라다임은 일부는 앗수르에 속하여 있고 일부는 알메니아에 속하여 있는 마르디 지방을 말한다. 또한 본문에 "너희는 브곳의 거민을 치라" 고 하였다. 이 곳은(겔 23:32 에도 나오는 곳) 고레스가 바벨론을 향하여 가던 중 점령한 지방이다. 고레스의 군대는 바벨론을 치라는 사명을 부여받고 있었다(21절). 그러므로 본문에 "먼 데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라" (26절)고 하였다. 그들 모두에게 해야 할 일과 또 그에 따르는 충분한 보수가 있으니 모두 오라고 한다.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고 이 일을 수행하는데 장애가 될 것은 없는 것이다. 특별히 "활 쏘는 자들이" 바벨론을 공격하는 일에 불리움을 받는다. 또한 "여호와가 그 병고를 열고 분노의 병기를 꺼내신다" (25절). 대국의 군왕들이 침략 전쟁을 일으킬 때 그들의 창고에서 군대를 위해 저장했던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꺼내듯이 하나님도 모든 것을 동원하신다. 이제 메대와 파사는 하나님의 군대이다. 그는 진노의 병기를 꺼내신다. 그 병기는 곧 고레스와 그의 용감한 장군들과 군대이다. 하나님은 이들을 바벨론을 멸하는 일에 쓰고자 하신다. 아무리 위대한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쓰여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는 여러 가지 도구를 갖고 계시며 그것들을 지휘하신다. 그는 사건이 생기면 얼마든지 물자를 댈 수 있는 병기고를 갖고 계신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병기를 내심은 그가 갈대아에 행할 일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그는 자신이 "만군의 하나님" 이심을 나타내시며 도구에 불과한 자들이 제힘인 양 날뛰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2. 고레스의 군대에서 그들이 수행해야 할 과제가 부여되고 있다. 기본적인 입장이 본문에 밝혀지고 있는데 그것은 "내가 너희에게 명한 대로 다 하라" 는 것이었다(21절). 또한 고래스에 대하여는 이사야에서 언급되기를 그가 바벨론을 정복함에 있어서 "그는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고 하였다(사 44:28). 그들에게 부여된 과제는 바벨론인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완전히 멸하고 그 땅을 초토화시키는 것이었다. 한 번 파괴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다시 쳐서 노략하고 후손들로 그 번영을 누리지 못하도록 파괴하라고 한다. 또한 그들은 바벨론 "곳간을 열어야" 만 하며(26절) 그 보고를 약탈해야 한다. 또한 바벨론의 활쏘는 자들이 자기 나라를 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바벨론을 쌓아 무더기 같게 하라" (26절)고 하신다. 바벨론의 재물과 또 그 자랑하던 것들을 잿더미로 만들라는 말씀이다. (어떤 사본의 난외주에는) "바벨론을 밟아 흙무더기가 되게 하며 완전히 섬멸하라" 고도 기록되어 있다. 인간들이 가치있게 여기는 것들 또 그것이 있으므로 자기들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들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시는가를 깨달아 알자. 살이 쪄서 몸도 못가누는 바벨론의 방백들과 존귀한 자들도 칼을 맞아 쓰러질 것이다. 이들은 전장에서 용사처럼 명예롭게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백정의 손에 의하여 죽어가는 짐승들처럼 쓰러질 것이다(27절). "그 황소를 다 죽이라" 하였는데 이는 곧 그 모든 용사들을 죽이라는 말이다. 또한 그들로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황소처럼 맥이 빠져 덤덤히 "내려가게 하라" 고 하신다. "그들에게 화 있도다." 이런 날이 닥치리라고는 꿈조차 꾸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처지가 더욱 가련하다는 말씀이다. "그들의 날이" 기울 때가 되었고 그들이 대가를 치르어야할 "때" 가 이르렀어도 그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던 것이다.
3. 고레스의 군대의 승리가 확약된다.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면 그가 바벨론에게 경고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22절에 "그 땅에 큰 파멸의 소리가 있으리라" 하였고 23절에 "바벨론이 황무지가 될 것이라" 하였으며 30절에 국토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그 날에 청년들이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군사들이 멸절되리라" 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그가 "바벨론을 잡으려고 올무를 놓으셨다" (24절).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대적하는 정벌 전쟁을 일으키셨고 그러므로 바벨론은 울무에 걸린 새처럼 놀람으로 가득찰 것이라고 하신다. 고레스의 승리는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싸우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성들 가운데 "불을 놓을 것이다" (32절). 하나님의 진노 앞에 누가 대적하겠으며 그가 붙이신 불을 누가 끌 수 있겠는가?
4. 바벨론을 엄하게 처벌하시는 이유가 제시되고 있다. 바벨론을 치기 위하여 고용된 고레스의 군사들도 이 전쟁의 이유를 알아야 했다. 또한 전쟁이 정당한 성격의 것임을 알아야 떳떳이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일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1) 바벨론은 인접 국가들에게 가시 같은 존재로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이것이 그들을 멸하는 한 가지 이유이다. 바벨론은 원근에 있는 열국들을 쳐서 산산조각으로 만드는 "온 세계에 대한 망치"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할을 바벨론은 이미 오랫동안 계속하여 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망치 자신이 "꺾여 부숴질" 차례가 된 것이다. 열국의 하나님께서는 부당하게 무력으로 다른 국가들을 침략하여 괴롭히는 국가들을 대적하심으로 피해받는 국가들의 권리를 수호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때로 시간이 많이 걸릴 때도 있지만 이 사실은 분명하다. 온 세상의 하나님은 "온 세계에게 망치 노릇을 하는 자" 를 부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2) 바벨론은 바로 하나님까지 무시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멸망의 두 번째 이유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네가 나 여호와와 다투었다" 고 하였다(24절). (이 말의 뜻은) 그들이 하나님과 불목하였다는 말이다. 그들은 국가를 통치하는 일이나 또 전쟁에서 하나님을 공공연하게 대적하였다. 또한 하나님과 경쟁하고자 하였고 그를 대적하며 반동을 일삼았다. 그러므로 "네가" 올무에 걸린 것처럼 "발견되어 잡혔다" 고 하였다. 여호와께 대적하여 싸우는 자들은 결국 그에게 굴복하고 말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자.
(3) 바벨론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파괴하였고 거기 있는 성전을 훼파하였다. 이제 그것에 대한 대가를 그들이 치르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셋째 이유이다. 바벨론이 시온을 침략하던 때에 시온에서 그들이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사실이 선언되었었다. 바벨론 멸망의 이유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복수하고자 하심 때문이다. 곧 그의 성전에 대하여 복수하신다" (28절). 성전을 불태우고 그곳의 기명(그릇)들을 약탈한 책임을 이제 바벨론에 대하여 물으신다. 바벨론이 "온세상에 대한 망치" 이지만 하나님은 성전과 그곳의 기구들을 그들보다 더 중히 여기셨다. 바벨론은 세상에 대한 망치의 역할을 하지만 시온은 온 세상의 기쁨과 영광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행하여진 모든 악행은 반드시 갚아지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하자(하나님의 교회는 곧 세상에 있는 그의 성전을 말한다). 그리고 성전을 해롭게 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보다 더 극심하고 무서운 것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 바벨론은 오만무례하였다. 그러므로 몰락당하고 만다. 그것이 네 번째 이유이다. 왜냐하면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욥 40:12). 그러므로 31절에 "오 너 교만한 자여 내가 너를 치리라" 하시고 32절에서 다시 반복하여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의 교만이 극에 도달하자 더 이상 묵인하시지 않았다. 인간들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은 하나님과 자신을 정면으로 대립케 하는 원인이며 파멸의 결과를 초래케 하는 장본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만한 자를 치시며 그들을 낮추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에도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질 것이라" 고 했다(32절). 그들이 넘어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밀쳐서라기보다 스스로 넘어지는 일이 훨씬 많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아래는 내려다보지도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밑을 보고 조심스럽게 길을 고르며 걸림돌은 피하려 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걸으므로 모든 위험을 다 감수한다. 바벨론은 교만 때문에 파멸을 피하지 못하였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다" (29절).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함으로 곧 하나님을 욕보였다. 바벨론은 하나님으로 자기 원수를 삼았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망해도 "그를 일으킬 자가 없다" (32절). 하나님께서 넘어뜨린 자를 누가 일으켜 세울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위력 (예레미야 50:33-46)
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Ⅰ. 이스라엘이 당한 수난과 그 수난에서 이스라엘이 받은 구속.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 그랬던 것처럼 바벨론에서도 그의 백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기억하셨다.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고 있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다(33절). 앗수르 왕국이 갈대아 왕국에 흡수되자 포로로 잡혀간 10지파 사람들 가운데 남은 사람들이 후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두 지파의 자손들에게 와서 함께 함으로 눈물어린 재회의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본문에 기록되기를 그들이 "함께 학대를 받는다" 고 하였다. 그들은 자유가 주어지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유를 얻으려고 모험을 감행한 것도 없었다. 그저 기다리는 것뿐 아무 것도 없었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엄히 지켜 놓아주지 아니하였고" 또 그들에게는 너무나 강한 상대였으므로 반항을 시도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곤경 중에도 그들에게 위로가 된 것은 비록 그들은 약하지만 "구속자는 강하시다" (34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그가 그들의 원한을 갚아 주시며 그들에게 공의를 베푸사 유익한 결과를 맺게 하실 것을 믿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꼼짝 못하게 쥐고 있는 원수들보다 더 강하셨다. 그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을 치실 수 있으시며 자기의 백성들이 비록 약하지만 그들에게 능력을 주실 수 있는 분이었다.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없이 행하신다. 그는 자기 백성이 부를 때 자기를 나타내시며 그들이 의지하는 바대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자기들을 대적하는 무리가 없는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자기들을 위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가 계신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는 틀림없이 그들의 원을 풀어 주실 것이다." 풀어 주시되 그가 친히 그들의 원을 풀어 주시며 기쁨으로 또 효과있게 풀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땅에 평안함을 주신다." 곧 자기 백성의 땅에 평안을 주시므로 주변에 있는 모든 적들로부터 쉼을 얻게 하신다.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 즉 죄와 부패의 지배에 대하여 근심하며 자신들의 연약함과 여러 가지 결점에 대하여 근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우리의 구속자는 강하시다" 는 사실을 알자. 그는 자기에게 그들을 맡기는 자들을 보호하실 수 있으시다. 그리고 그들의 원을 들어주신다. 또한 죄가 그들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가 그들을 자유케 하시므로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함을 얻을 것이다. 또한 그가 그들에게 쉼을 주신다. 이 휴식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준비된 것이다."
Ⅱ. 바벨론의 죄. 그리고 그 죄에 대하여 그들이 받을 형벌.
1. 본문에서 그들이 추궁을 당하고 있는 죄는 우상 숭배와 이스라엘에 대한 박해이다.(1)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붙잡아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지 아니하였다(사 14:17). 하나님이 그들과 쟁론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전에 바로와 쟁론하신 것도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바로에게 있어서 이 쟁론은 대단한 희생을 치르게 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바벨론은 경성하고자 하지 아니하였다.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불안케 하였으므로 "바벨론 거민이 불안함을 겪게 된다" (34절). 하나님은 바벨론이 받는 영광과 위로를 못마땅히 여기셨으므로 "이스라엘과 함께 환난을 받는 자들에게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 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환난을 가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신다" (살후 1:6, 7).
(2) 그들은 또한 바로 하나님에게 잘못을 범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한 분만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므로 그의 것을 도적질하였다. "그들이 거하는 땅은 조각한 신상의 땅이었다" (38절). 나라 구석구석 신앙이 안 세워진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상에 미쳐 있었다. 그들은 우상에게 애정을 품고 그것들을 헌신적으로 섬겼으며 또한 우상에게 예배하는데 어떠한 대가와 고통이 따른다고 하여도 개의치 않았다. 또한 우상에게 온갖 경의를 표하기를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비참하게도 이 모든 일들에 열중해서 마치 지각이 없는 사람들이기나 하듯이 분별없이 행하였다. 그들은 사리에 대한 판단도 없이 계속 우상을 섬겼다. 그들은 완전히 광적이었다. 본문에서 우상을 나타내는 단어는 "공포"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곧 "에님(Enim)" 이라고 하는데 이 명칭은 무시무시한 거인들에게 주어진 명칭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신상을 어리석은 자들이나 어린애들이 공포를 느끼도록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만들었다. 그들의 신상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우상들에게 흠뻑 빠져 있었다. 바벨론은 실로 "음녀들의 어미" 곧 우상 숭배의 온상이었다(계 17:5). 피조물로 하나님을 삼는 행위는 세상에서 가장 미친 행위란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대적하여 교만을 떠는 자들은 스스로 미혹에 빠져 아무 유익도 없는 우상들에게 혼을 빼앗기고 말게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없는 행위는 악이다. 죄인들은 바로 이 죄 때문에 틀림없이 그리고 가혹하게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이러한 죄에 대하여 그들에게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이렇게 가혹하므로 심판을 당하는 자들은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1)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이 칼에 의해 제거당할 것이다. 갈대아인들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칼로 쓰여졌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하여 주변에 죄를 지은 열국자들에게 형을 집행하였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도 다른 나라들처럼 악하였으므로 "칼이 바벨론 거민의 위에 임하였다." 그 칼은 전쟁의 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므로 또한 그에 의해 부러지는 것이다. 그것은 심판의 칼이다.
[1] 이 칼이 "그들의 방백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들이 칼을 맞고 쓰러질 것이다. 또한 그들의 명예와 권력과 부가 그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2] 그 칼이 바벨론의 "지혜로운 자들" 곧 바벨론의 철학자, 정치가, 왕실고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들의 학식이나 정책이 그들을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이다. 또한 질서를 유지시키지도 못할 것이다.
[3] 그 칼이 바벨론의 술사와 점성가들에게 내릴 것이다. 본문에서는 그들을 "거짓말장이" 라고 하였다(36절). 왜냐하면 그들이 바벨론의 평화와 번영을 예언하므로 백성들을 우롱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 칼이 임하므로 그들의 얼이 빠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보처럼 말하고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들처럼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혼까지 쪼개며 마음에까지 영향을 주어 인간으로 영적인 병을 앓게 만드는 칼을 지니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4] 칼이 바벨론의 용사들에게도 임할 것이다. 그들의 영혼까지 칼이 파고 들 것이다. 그들 중에 살해당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낙담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이상 용사라는 말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마음이 동요되었으니 무엇으로 그들의 용기가 지탱되겠는가?
[5] 칼이 바벨론의 군대 위에 임할 것이다(37절). 그러므로 본문에 "칼이 그들의 말들과 병거들 위에 임하리라" 고 하였다. 침략자들이 모든 군수 창고를 점령할 것이다. 또한 말과 병거들을 자기들의 것으로 삼든지 죽이든지 파괴할 것이다. 또한 바벨론에 예속되어 고용된 타 민족의 군대들은 마음이 동요될 것이다. 본문에 이들은 "잡족" 이라 하였고 이들이 "부녀같이" 겁을 먹고 약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6] 칼이 바벨론의 국고에 임하므로 재력이 탕진될 것이다. 본문에는 "칼이 보물 위에 임하리라" 고 하였다. 재력은 전쟁의 원동력이다. 그런데 "그것이 노략될 것이라" 고 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해 쓰여질 국고가 그들을 치는 적에 의해서 쓰여지게 된다.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전쟁이 임할 때 그 파괴력이 전면적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2) 국토가 황폐될 것이다(38절). 먼저 "성을 방어하기 위해 성벽 둘레에 운하를 파 흐르게 하던 물이 마를 것이다." 이는 고레스가 많은 운하를 파서 물을 자기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강물을 건드리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고레스는 그것을 행함으로 쉽게 바벨론 성벽을 공략하게 된다. 이 물은 또한 바벨론 지역을 비옥하게 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물이 마르므로 바벨론은 불모의 땅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람들이 거주하지 못하게 되겠고 다만 "사막의 들짐승이 거하게 될 것이다" (39절). 바벨론에 관한 이러한 예언은 이사야서에도 수록되어 있다(사 13:19-22). 이리하여 바벨론은 "소돔과 고모라" 와 같이 될 것이다(40절). 똑 같은 예언이 애돔에 관하여서도 다른 곳에서 말씀되고 있다(49:18). 에돔을 황폐시킨 것은 갈대아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자기들이 그 꼴을 당하게 된다.
(3) 적들이 침입하므로 왕은 당황하게 되고 나라는 수라장이 될 것이다(41-43절). 침략자들의 어마어마한 세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온갖 표현 수단이 본문에 다 동원되고 있다. 그들이 전열(戰列)을 가다듬으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다. 궁전도 나라도 모두 깊은 놀람에 사로잡힌다. 갈대아인들이 유대 땅을 공격할 때 유대인들의 정경이 이러하였음을 기억하게 된다(6:22-24). 거기서는 "오 딸 시온아 너를 치는" 전쟁이라고 하였으나 이제는 반대로 "오 딸 바벨론아 너를 치는" 전쟁이라고 사람들이 외친다. 이는 그들이 행한 대로 갚음을 받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와 파멸을 끼치는 자를 찾아내시며 그들에게 같은 공포와 파멸을 안겨 주신다. 잔악을 행하고 자비는 베풀줄 모르는 자들은 자기들도 악행을 당하고 자비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시온에 대한 말씀과 바벨론에 대한 본문의 말씀 중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다만 다음의 내용일 뿐이다. 앞에서는 "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다" 고 하였으나 본문에서는 "바벨론 왕이 그 소문을 듣고 손이 약하여졌다" 고 하였다. 이 말씀은 비열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곤경을 겪던 시절에 그러하였듯이 거만하고 자신만만한 왕도 곤난한 때가 닥치면 약해지고 혼이 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뜻하고 있다.
(4) 왕과 백성은 놀라게 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해를 입을 것이다. 침략자는 사람을 찢어 죽이는 "사자처럼" 올라 와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주거지를 파괴할 것이다(44,45절). 그 파괴의 정도가 너무도 놀라운 것이어서 주변에 있는 모든 국가들이 이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다(46절). 위의 세 절은(44-46절) 에돔 파멸에 대한 예언(49:12-21)에서도 언급되었던 것이다. 에돔을 파멸시킨 것은 바벨론이었다. 같은 예언이 바벨론 파멸에 대한 예언 속에서도 mutalis mutandis-즉 필요한 몇 가지 조항이 변경되어서 반복되고 있다. 이 예언은 갈대아인들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말았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일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하나님의 섭리가 불공평한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섭리는 균등히 베풀어진다는 사실을 나타내 준다. 그러므로 "내가 학대하기를 마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라" 고 하였다(사 33:1; 계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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