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몬 자손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 49:1-6)
다음은 모압과 같은 계통이며 그 인접 국가인 암몬 자손의 차례이다. 그들이 이제 심판을 당한다. 그들의 나라는 요단 동편에 있었던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과 경계를 접하며 존속하여 왔다. 그러나 그들은 나쁜 이웃이었다. 어쨌든 인접 국가로서 그들은 열국에 대한 예언에 한 몫을 배당받는다.
1. 하나님의 이름으로 암몬 자손에 대한 소송이 본문에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에 인접되어 있는 땅인 갓 지파의 유업을 불법으로 점유한데 대한 고소이다(1절). 그들이 무슨 명목으로 이 땅을 점령했는지를 알려 주는 질문의 말씀이 본문에 있다. 앗수르 왕이 길르앗 자손들을 사로잡아 가자 이 땅은 거의 백성들도 없는 채로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음 침략자에게 손쉬운 먹이가 되고만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힐문한다. "이 무슨 일인가? oh defectum sanguinis-즉 상속자가 없어서 너희가 그것을 너희 것으로 삼았는가? 이스라엘이 무자하냐? 상속자가 없느냐? 유산을 마땅히 물려받아야 할 갓 자손들이 없었단 말인가? 설령 없었다고 하자. 그래도 너희보다는 그들과 가까운 이스라엘 자손이 없으며 유다인의 남은 자들은 없었던가? 어찌하여 그들의 왕이 몰수당한 재산의 상속자인 것처럼 행세하는가? 또는 그들의 우상인 밀감이 이 땅을 자기의 숭배자들에게 처분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 중 그 지파들에게 주어져야 할 성읍들에 거함은 어찜이뇨? 그들에게도 한 en ventre desa more-즉 모태에서 나온 아들과 상속자들이 있도다. 그런데 암몬 자손들이 그들의 권리를 늑탈하기 위하여 가장 야만스럽게 그들을 살해하였도다(암 1:13). 저희가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저희가 그 땅을 점령하고는 길르앗의 후손들이 일어나서 그 땅을 다시 차지하지 못하도록 있는 수단을 다 동원하였도다. 그들이 스스로 커서 그 경계를 침범하고 그 땅이 자기의 것이라고 자랑하는도다(습 2:8)" 라고 하신다. 인간들 가운데는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자주 있다. 그러나 "보좌에 앉으셔서 공의로 심판하시는" 전능자에 의하여 인간들의 행위는 다스려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저희가 손을 대는 것은 무엇이든지 또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손대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지 자기의 것이 될 줄로 아는 자들은 자기들이 큰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재산은 그 소유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그들이 죽으면 상속자가 물려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속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모른다고 해서 또는 어떤 방법으로 유산을 상속받는지 모른다고 해서 횡령하려고 하는 것은 큰 죄이다. 이러한 유의 침해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해질 때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일을 염두에 두사 갚으신다.2. 이 불의에 대한 심판이 본문에서 암몬 자손에게 주어진다.
(1)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하나님께서 "전쟁 소리로" 암몬 사람들의 수도이며 매우 강한 요새인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고 하신다(2절). 모든 군대를 그의 지휘아래 두시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라" (5절)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두려움이 되는 자들을 두렵게 하시는 여러 방법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그들의 성들이 파멸에 처할 것이다. 중심이 되는 성인 "랍바는 거친 무더기가 되겠고 그 촌락들" 곧 랍바에 의지하고 있으며 그의 지시를 받고 있는 다른 성들은 "불에 탈것이라" 고 하신다. 그러므로 그 거민들은 성들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들은 울부짖으며, 가진 모든 것을 잃었으므로 어떻게 할 줄을 몰라 "굵은 베를 감는다."
(3)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마음들도 황폐할 것이다(4절). 그러므로 본문에 "타락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어찌하여 네가 너의 재물을 의뢰하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를 섬기는 일에서 돌아선데 대하여 또는 뒷걸음질친데 대하여 문책을 받는다. 그들도 의인 롯의 후예였으므로 하나님을 섬길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처럼 그들이 하나님과 무슨 계약을 맺은 일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모든 우상 숭배자들은 타락자들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왜냐하면 참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거짓 신들에 대한 숭배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본문을 "그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고 완고하였도다" 로 번역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게 되니까 다음은 "그들의 골짜기를 자랑하였다." 특별히 골짜기를 한 번은 칭하기를 "흐르는 골짜기" 라 하였다. 이 말은 그 골짜기가 온갖 좋은 것들을 싣고 흐른다는 말이다. 그들은 이 골짜기들을 자기들 것인 양 자랑하였다. 그들은 접근하기 어렵도록 산들로 둘러싸인 그들의 난공불락의 골짜기를 자랑하였고 그 소산물들과 거기서 얻는 보물들을 자랑하여 "누가 내게 오리요" 라고 호언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나라가 주는 쾌락을 만끽하면서 그 즐거움이 결코 방해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그들은 "내일도 오늘과 같이 무사하리라" 고 말하였다. 이같이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교만하고 주색에 잠겨 있었고 안일주의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정녕 해야 할 일은 돌보지 않았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에게서 돌아서는 자들은 어떠한 세속적인 쾌락일지라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호 9:1).
(4) 그들의 백성은 가장 적은 자에서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강제로 그 나라에서 쫓겨날 것이다. 어떤 자들은 피신처를 찾아 도주할 것이요, 다른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나라는 텅비게 될 것이다. "그들의 왕과 방백들이 또 그들의 신인 말감과 그의 제사장들이 다 사로잡혀 갈 것이다" (3절). "각 사람이 쫓겨서 바로 나갈 것이요" (5절) 이제는 그들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골짜기들 곧 흐르는 골짜기들" 은 잊어버리고 전력을 다해 도망갈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도 없을 것이다." 야엘이 시스라를 영접하였듯이 그들을 맞기 위하여 문을 열어 줄 자들도 없을 것이다. 도망하는 자들은 자기 살기에 급급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조차 없을 것이다. 어찌나 급하던지 그들은 바로 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도 모른 체할 것이라고 한다(47:3).
(5) 암몬 자손들의 땅은 남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중에 넘겨지게 될 것이다(2절). 그러므로 본문에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하였다. 즉 보복의 수단으로 마땅히 자기들의 것이었어야 할 땅을 차지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에 공평하심은 억울하게 소유를 잃은 자가 불의로 강탈해 간 자에게서 자기의 것을 보상받을 때 나타남을 기억하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원수들이 잠시 동안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노략할지라도 곧 상황은 변하고 말았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도 전에 모압에게서와 같이 긍휼을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주어진다(6절). 그러므로 본문에 "그후에 내가 암몬 자손이 포로로 돌아오게 하리라" 고 하신다. 돌고 도는 것이 인간사가 아닌가!
에돔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 49:7-22)
다음에는 에돔 자손들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그들의 운명에 대한 선고를 받는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숙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날도 계수되고 말았다. 이제 끝날이 가까웠고 여기서는 그 끝날이 예언되고 있다. 이 말씀은 그들을 경고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로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고난을 매우 의기양양하게 받아들였고 이스라엘이 당하는 재난을 기뻐하였다(시 137:7). "에돔에 관하여" 이 예언에서 사용되고 있는 많은 표현 양식은 에돔에 관한 오바댜의 예언에서 유래된 것들이다. 왜냐하면 모든 선지자들은 한 분 같은 성령에 의하여 영감을 받기 때문이다. 성령에 의해 주어진 것이므로 그들의 예언에는 놀라운 조화와 일치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Ⅰ. 에돔 나라가 폐허가 되고 황무지가 되겠고 "에서의 재난이 그에게 임하게 하겠다" 고 하신다. 에돔은 그의 옛죄 때문에 이 재난을 받아야만 했고 하나님은 오랫동안 이를 준비하고 계셨다(8절). 하나님이 그들을 방문하시며 송사하실 때가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칼을 피하여 도망하며 전쟁에서 달아나며 은폐된 굴에 은거하여 몸을 숨길 것이다.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은 정복자들이 약탈하여 갈 것이다. 포도를 거두는 자들도 약간의 열매는 남길 줄 알고 도적도 가질 만큼 가지면 더 이상 파괴하지는 않는 법이지만 그들을 파괴하는 자들은 만족을 모를 것이다(9,10절). 약탈자들은 "에서로 적신이 되게 하며" 에돔 자손에게서 그 가진 모든 것은 벗겨갈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깊이 감춰둔 보물일지라도 찾아내는 방법과 수단을 알고 그것들을 약탈할 것이요, 그러기에 아무도 그들의 재물을 보존치 못하게 될 것이다. 골방에 숨어 있는다고 하여도 그들은 자신들도 또한 자식들도 구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겠고 그의 자손 또한 없어지리라" 하였다. 그가 구원을 요청할 수 있었고 아니면 적어도 피신처라도 삼을 수 있었던 그의 형제 모압 자손도 그의 이웃인 블레셋도 에돔처럼 노략을 당하여 에돔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이 되었다. 에돔이 끊어졌으며 또한 "네 고아들을 남겨 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 두리라" 고 말해 줄 사람도 한 사람 없었다. 그들은 도망갔든지 죽든지 하였고 또 그들이 남겨 두고 떠난 아내들이나 아이들을 돌볼 친척도 형제도 또 국가의 말단 관리들도 없었다. 에돔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끊어짐을 입어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네 고아를 남겨두라" 고 말할 사람도 없었다. 한 가족의 가장이 죽거나 행방이 묘연할 때 그가 신임하여서 자기 가족을 맡길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다 재난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친구를 갖지 못하였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갈대아인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루어지게 하였다. 갈대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재난을 당한 에돔 자손들에서 구별하고 있다. 그들은 본문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변형시켜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너 이스라엘 집이여! 너희 고아들을 너희가 아주 잃어버리지 않으리니 내가 그들을 보호하고 너희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에돔 자손들의 과부들이나 고아들이야 어떻게 되든 내가 너희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리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으면서 그들의 남은 생존자를 하나님에게 맡기며 신앙으로 그들을 그에게 의탁하며 그들로 그를 믿도록 격려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비록 그들이 이 세상에서는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것을 약속해 주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보존하시며 믿는 대로 이루어 주실 것을 바랄 수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돔 자손들에게는 슬픔과 수치밖에는 바랄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심판이 이미 선포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심판을 맹세하였기 때문이다(13절). 그 심판의 내용은 그들의 "성읍들이 황폐케 되되 영영히 황폐하게 되리라" 는 것이다. 그들은 천덕꾸러기와 비웃음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이 힘있는 자 행세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 중에서 작게 하리라" 고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을 멸시하는 자들은 오히려 사람들 가운데서 멸시를 당한다(15절; 옵 1:2). 또한 그들이 놀람의 대상이 될 것이다(17절). 그러므로 "에돔이 이같이 황폐하므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경악하리라" 고 한다. 더욱 나쁜 것은 그들이 경계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즉 에돔이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될 것이며 그 파멸이 임박한 것을 보고 염려하지 않으며 "거기 거하는 사람도 없다" (18절). 이같이 놀라운 곳으로 그들의 거처가 변모될 것이라고 한다.
Ⅱ. 그들을 파멸시킬 도구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엄청난 것이라고 한다. 그들을 파멸시킬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위탁받고 있었다. 그들을 이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르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었다(14절). 그러므로 본문은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내가 여호와에게서부터 오는 소식을 들었노라." 즉 오바댜의 예언을 통하여 소식을 들었다는 말이요, 은밀한 속삭임을 통하여 들었다는 말이다. 그 내용은 "사자" 또는 전령 또는 대사를 에돔을 칠 열방에 보내어 "너희는 모여와서" 즉 할 수 있는 대로 모두 군사를 동원하여 "그를 치며 일어나 싸우라" 는 것이었다. 이것은 "에돔을 향한 여호와의 뜻이었다" (20절). 일은 이미 결정되었고 형이 선포되었으니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돔이 황폐하도록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또한 그가 에돔을 황폐케 할 자로 속히 오게 하셨으며 강력하게 힘을 더하셨다. 본문에서 예언되고 있는 도구는 바로 느부갓네살이었다.
1. 그가 "사자처럼" 무서운 모습으로 미친 듯이 쳐들어오리라고 한다. 요단강 물이 범람하므로 그가 물가에 있는 자기의 거처를 보다 높은 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게 되어 성이 난 사자처럼 닥치리라는 말이다(19절). 그가 울부짖으며 올라와서 그의 앞에 닥치는 것마다 먹어치울 것이다. 또한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다." 즉 그들의 요새와 성을 치게 하겠다고 하신다. 또 "내가 그로 갑자기 이 땅에 이르게 하여" 미처 그들로 방어할 준비조차 갖추지 못하게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워" 곧 이 목적을 이루는데 합당한 자를 백성 가운데서 선택하여 뜻하신 것을 집행하게 하신다고 한다. 하나님이 일을 하고자 하실 때 그 일을 이루는데 가장 적절한 도구를 꼭 찾아내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부릴 자를 찾는데 또한 그들에게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부여하는데 있어서 나와 같은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나로 더불어 다툴 자가 누구인가? 누가 내게 도전하며 나를 만날 장소와 시간을 감히 정하려 하겠느뇨? 누가 전쟁에서 나와 겨루자 하겠느뇨? 내가 사자를 양무리 가운데로 보내면 나와 맞서서 나를 대적하여 양떼를 구하고자 사자와 맞설 목자가 누구이뇨" 하신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든 할 일을 발견하시면 곧 그 일에 종사할 능력 있는 자도 찾아내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이 하시면 비록 온 세상이 나서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항할 자를 찾는다고 하여도 찾지 못할 수 밖에 없다. 아니 하나님께서 에돔을 멸하고 그 백성을 흩으시고자 하시면 그 일을 이루는데 무서운 사자까지도 필요하지 않다. "양떼 중의 적은 새끼일지라도 그들은 반드시 끌어갈 것이라" 하신다(20절) (한글 개역과 틀림, 한글 개역에는 양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끌고 가리라로 되어 있음:역주). 즉 느부갓네살의 수행원 가운데 가장 미천한 종일지라도, 그의 진영의 제일 나약한 자일지라도 그들을 도살장으로 끌고 갈 것이요, 피할 수 밖에 없게 할 것이며, 항복할 수 밖에 없도록 하리라" 고 하신다. 또한 그들이 그 처소로 황무케 하리라" 고 하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미천한 도구를 통하여 가장 큰 역사를 이루실 수도 있다. 갈대아인들이 에돔 자손들을 향하여 쳐들어 올 때 갈대아 군에 속한 모든 자가 동원되었고 그 중에 제일 못난 자일지라도 에돔을 치는데 단단히 한 몫을 하였다.2. 느부갓네살이 백수의 왕인 사자처럼 올 뿐만 아니라 조류의 왕인 독수리 같이 임할 것이라고 한다(22절). 그러므로 본문에 그가 먹이를 향하여 달려드는 "독수리처럼" 그렇게 빠르고 힘있게 달려와서 보스라(지명) 위에서 날개를 치며 그곳을 노략하리라고 한다(48:40 절에서와 같이). 그러므로 용사일지라도 상대방이 도저히 싸워 물리칠 수 없는 상대임을 알고 낙담할 것이라고 한다.
Ⅲ. 에돔 자손들이 믿던 모든 것이 그들이 고통을 겪는 날에 아무런 도움도 못될 것이라고 하신다.
1. 그들은 자기들의 지혜를 믿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을 수호하지 못한다. 에돔을 치는 예언에서 이 지혜가 첫 번째로 그들을 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들의 국가는 지혜로 명성을 떨치곤 하였었다. 그들의 정치가들은 정치에 뛰어난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그들이 그 모든 경영에 있어서 이러한 잘못을 저지름으로 그들의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에돔 자손이 어찌된 일인가?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동방의 현자들이 모두 바보가 되었단 말이냐?(왕상 4:30) 분별력에 있어 우리를 따를 자가 없다던 그들의 "지략이 끊어졌는가?" "명철한 자들에게 모략이 끊어졌는가?" 라고 묻는다. 하나님이 한 백성을 멸하고자 하시면 인간의 모든 지혜가 이렇게 허사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그 멸하고자 하시는 바의 얼을 빼놓으신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혜가 없어졌느냐? 지혜가 곤비케 되었는가? 다 소진되고 말았는가? 아니면 지혜가 쓸모없이 된 것인가?" 등의 말로 조롱된다. 하나님이 그들과 겨루고자 오시면 지혜도 그들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2.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믿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16절). 과거에 그들은 이웃 국가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었다. 누구나 그들을 두려워하였고 그들에게 굽실거렸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만해졌고 스스로 힘이 센 줄로, 또 안전한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웃 국가 중에 어떤 국가도 감히 그들과 분쟁을 일으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계에서 자기를 당할 국가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의 국토는 험준한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많은 통로들은 침략자를 방어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여러 가지 그들이 갖고 있는 강점이 그들을 속여 안심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생각한 것처럼 강하지도 않았고 또 안전하지도 않았다. 그들이 높은 곳에 처하여도 하나님은 그들을 끌어내리신다. 하나님을 대항할 지혜가 없듯이 그를 대적할 힘도 없는 것이다(욥 3,4,8장 참조).
Ⅳ. 그들은 파멸을 피치 못할 것이며 그 파멸은 주목할 만한 것이 되리라고 하신다.
1. 그들을 파멸하기로 결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12절). 그가 그 사실을 말씀하셨다. 말씀했을 뿐 아니라 "에돔 자손들이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을 맹세하셨다." 그들은" 두려움의 잔을 마셔야 한다." 이 잔은 모든 인접 국가들에게도 주어진 것이었다. 이들 인접 국가들 중에는 그 잔을 꼭 마셔야 할 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행한 대로라면 그런 처벌은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에돔이 그랬던 것처럼 이스라엘에게 적대 행위를 하지 않은 국가들도 있었고 또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까지 이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파멸의 잔을 마셔야 했던 것이다. 이스라엘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이 파멸의 잔을 면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이 쓴 잔을 마셔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에돔 자손들이 이 잔을 면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천만에! 그들도 이 잔을 꼭 마셔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보다 가벼운 죄에 대해서도 처벌하시는데 더 무거운 죄를 지고서도 처벌을 면하리라고 스스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짓임을 기억하자.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되면 그것은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고 만다는 사실을 또한 기억하자.2. 모든 세상이 에돔 자손이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21절). 그러므로 본문에 "그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였다" 하였다. 또한 열국들이 그 넘어지는 소리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한다. 에돔 파멸의 소식이 열국으로 떨게 만들 것이다. 또한 "그 부르짖는 소리는" 에돔의 해안을 따라 "홍해에 들리리라" 고 한다. 정복자의 환호성과 정복당한 자의 비명이 너무도 커서 이 큰 소음이 곧 이두메아가 파멸한 사실을 열국에 알리는 소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그 소리는 홍해에서 정박 중에 있는 선박들에게도 들린 것이요(왕상 9:26), 그들은 이 사실을 가장 먼 곳의 해안 지방에까지 전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힘이 있다고 큰 소리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넘어지는 소리는 더욱 크게 울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다메섹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 49:23-27)
에돔이 가나안 서편에 위치한데 비해 수리아 왕국은 가나안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에돔에서 떠나 수리아에게 닥쳐 올 운명을 생각해 보자. 수리아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히곤 하였었다. 이 나라의 수도는 다메색이었다. 그러므로 다메섹의 파멸은 곧 전 국토의 파멸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성들인 하맛과 아르밧도 이름이 나와 있다. 또한 벤하닷이 세운 그의 궁전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27절에 특별히 언급되고 있다(암 1:4 참조). 어떤 이들은 벤하닷이 애굽 왕들의 이름이 모두 바로인 것처럼 수리아 왕들에게 공통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이 이름은 하닷의 아들이란 뜻으로 하닷은 그들의 우상들 중 하나의 명칭이거나 그들의 옛 왕들 중 한 사람의 이름으로 그의 이름을 그들이 물려받은 것이라고 본다). 이제 다메섹의 심판에 관하여 고찰하여 보자.
1. 파멸이 시작되자 그들은 무서워서 놀라며 낙담한다. "그들은 흉한 소문을 듣는다." 곧 바벨론 왕이 그의 온 군대를 이끌고 그들을 향하여 쳐들어온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에 그들은 당황한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안전할 수 있는지를 몰라 전전긍긍한다. 그들의 마음이 녹고 또 낙담한다. 그들은 모두 정신이 나간 사람과 같은 꼴을 하고 있다. 그들은 "쉼없이 요동하는 바다와 같다" (사 57:20). 또는 바다 가운데서 폭풍을 만난 사람들과 같다(시 107:26). 또한 성안에서 시작된 슬픔은 바닷가까지 퍼진다(23절). 하나님께서 얼마나 쉽사리 그 용기를 인하여 격찬을 받는 열국들의 기를 꺾으시는가 살펴보자. 본문에 "다메섹이 피곤하여" (24절)라고 하였다. 난공불락의 성으로 보일 줄 알았던 곳이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한다." 해산하는 여인이 닥친 산고와 씨름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운명을 피할 길이 없고 다만 항복하는 길뿐이라고 한다. 또한 다메섹은 "찬송의 성읍" 이었다(25절). 하나님을 찬송한 것이 아니요 스스로를 찬양하였고 그곳을 방문하는 나그네들도 이 성을 높이며 찬양했었다. 다메섹은 또한 "기쁨의 성읍" 이었다. 거기서 자녀들의 기쁨이 항상 넘쳐 있었고 청춘을 즐길 수 있는 쾌락으로 넘쳐 있었다. "나의 즐거운 성읍" 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예언자 자신이 여러 번 이 성을 방문하여 같이 기쁨을 누렸기 때문인 것처럼 보여진다. 아니면 이 말은 자기의 성의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탄식하는 왕의 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성이 이제는 슬픔과 두려움으로 압도당하고 있었다. 육적인 즐거움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섭리 가운데서 그들에게 독기를 뿜으사 종말을 당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찬양의 성" 도 변하여 비난이 되게 하시며 "즐거운 성" 도 변하여 두려움이 되게 하신다.2. 그 성은 무거운 몰락과 화염 속에서 종말을 고한다.
(1) 주민들이 살해당한다(26절). 적들과 싸워 성을 사수해야 할 젊은이들이 자기가 살던 거리에서 칼을 맞고 쓰러질 것이다. 또한 전사들, 전쟁에 익숙하며 나라에 봉사할 용사들이 "멸절될 것이다."
(2) 성이 재 가운데 눕는다(27절). 성을 포위한 자들이 "불을 놓는다." 그러므로 불이 그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삼킨다. 특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탄다. 이 곳에서 많은 불의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엘을 치고자 음모되었던 곳이었다. 이 때문에 이 궁전이 지금 파멸을 맛보는 것이다.
게달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 49:28-33)
본문에는 느부갓네살과 그의 군대가 게달 거민과 하솔 왕국들의 거민을 멸망시킬 것이 예언되고 있다. 게달은 이스마엘의 아들 게달의 후예이므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되었으며 그들은 아라비아의 일부인 바위투성이의 땅에 거하였다. 하솔 왕국에는 적은 군주국들이 연합되어 있었다. 그 중추가 되고 있는 하솔 왕국은 본래 가나안 자손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가나안 북쪽에 위치하였으며 그 나라의 왕은 야빈이었었다. 그러나 거기서 쫓겨나서 아라비아 사막에 정착하였고 이곳에서 게달 자손들과 합세하였다. 이 백성들에 관하여 본문을 통하여 고찰해 보자.
Ⅰ. 현재 그들의 입장과 형편에 대하여. 그들은 "장막" 에 거하였고 장막의 간막이는 벽이 아닌 "휘장" 이었다(29절). 또한 요세화된(즉 성벽을 쌓아올린) 성도 없었다. 또한 그들은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었다" (31절). 그들은 유목민이었고 따라서 보물도 많지 않았다. 그들은 땅을 사들일 돈도 없었다. 다만 있다면 양떼와 약대들뿐이었다. 그들은 침략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조건 속에서 살고 있었으므로 그들에게는 군대도 없었다. 또한 "홀로 거하였으므로" 상인들도 필요 없었다(31절).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그들을 방문하거나 그들과 교역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살았고 자신의 나라의 소산물들로 만족하며 살았다. 이것이 그들의 생활 방식으로서 그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생활 양식과는 전혀 달랐다. 이외의 그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매우 부유하였다. 그들은 교역도 하지 않고 보물도 없었으나 본문에 보면 그들이 "부요한 백성" 이라 하였다(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역주). 그 이유는 그들이 인간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살았으며 또 그것으로 그들이 만족하였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유한 사람은 생필품이 넉넉하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들은 왕이나 제후들의 보물이나 상인들의 현금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고 또 부유한 국민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들은 장막에 거하는 유목민의 생활로 만족하였다.2. 그들은 매우 평안히 살았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들이 염려없이 거하는 백성이라" 하였다. 그들의 재산이야 아무도 부러워할 것 없는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또 부러운 생각이 들면 가서 평화스럽게 같이 나누며 즐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순수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어도" 안전하게 살 수 있음을 기억하자.
Ⅱ. 바벨론 왕이 이들을 칠 계획을 세우고는 침략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정하였음이니라" (30절)고 하였다. 이 자부심이 강한 왕은 많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깨뜨린 그가 장막에 거하는 자들은 정복치 않고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소리를 듣기 원하지 않았다. 그것은 독수리가 피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웃기는 일이었다. 그토록 위대한 대왕이 보잘 것 없는 전쟁놀이를 하려고 하다니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탐욕적이고 자만스러운자는 그물에 들어오는 온갖 고기를 놓지 않는 법이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인간이 온갖 부당한 고통에서 반드시 안전하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느부갓네살과 같은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는다고 자구책이 되지는 않는다. 느부갓네살이 이러한 일을 행한 것이 불의롭다고 하여도 그 일을 지시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다. 이 백성들은 많은 국가들처럼 역시 인접국가들 사이에서 남을 괴롭히지 않고 지내왔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는 죄가 있었다. 그들이 처벌된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갈대아인들에게(28절)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멸하라" 고 하셨다. 갈대아인들은 자기들의 탐욕과 야망을 채우느라고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를 명하신 것은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을 고쳐 주고자 하심이었고 안일무사한 세상을 향하여 그들이 가장 안전한 것처럼 여겨질 때 고통이 숨어서 기다린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신다(31절). "너는 일어나 저 평안하고 염려없이 거하는 백성을 치라. 가서 그들에게 경고하라. 경고하기를 그들의 산이 견고히 섰으니 이를 움직일 자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라" 하신다.
Ⅲ. 갈대아인들의 침략으로 그들은 놀라고 대대적인 파괴가 그들 가운데서 행하여진다. 갈대아인들이 게달과 하솔의 거민들에게 경고를 외친다. 또한 변방에서 거하던 게달의 거민이 전국 각처로 경고를 보낸다. 이 경고로 인하여 대혼란이 야기된다. 그들은 "두려움이 사방에 있도다. 우리가 적에게 포위되었노라" 고 외친다.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므로 그들은 다리야 날 살려라 하며 도망가고 아무도 적을 막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적이 그들을 향하여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고 외친다." 구태여 무기를 들고 그들을 치지 않고 외치기만 하여도 그들은 장막 밖으로 도망한다(29절). 한 번의 경고에 그들은 에돔 자손들처럼(8절) "도망하여 멀리 가서 깊은 데 거한다." 또한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는 말이 근거없는 얘기가 아닌 것이 곧 밝혀진다. 왜냐하면 정말로 "사방에서 재난이 닥치기 때문이다" (32절).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는 말이 사방으로 적에게 둘러싸였을 때처럼 실감 있게 들리는 적도 없으리라. 본문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다음의 사실들이다.
1. 그들이 가진 것은 다 갈대아인들의 노략물이 된다. 그들은 "휘장과 모든 기구를 취하여 간다." 이 기구나 휘장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으로 갈대아인들은 더 좋은 것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짓궂게 이것들을 취한다. 즉 노략질을 위한 노략을 자행한다. 또한 "갈대아인들은 그들의 장막과 양떼를 빼앗아 간다" (29절). 갈대아인들에게 약대는 다만 장화를 만드는 데다 소요될 뿐이나 그들은 그것을 탈취한다(32절).2. 그들 중에 살해된 사람이 있다는 말은 본문에 없다. 이는 그들이 아무 저항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살려 주는 대신 그 보상으로 장막과 양떼를 갈대아인들이 가져갔다. 그러나 그들은 거주처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짐을 당한다. 그들은 구석에 쳐박혀 지내므로 즉 그들이 사는 곳이 요지가 아니므로 위험이 그들에게 닥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였다(구석진 곳에 거한다는 것이 그들의 한 특징이었다. 9:25, 26, 23). 그렇지만 그들은 흩어져 세계 각처에 거하게 된다. 알려지지 않았다고, 홀로 산다고 반드시 보호를 받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의외의 섭리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세상에 그 자태를 드러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깊이 은둔하여 사는 사람들도 세상에 자신을 맡기고 드러내 놓고 사는 사람들과 똑 같은 운명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3. 그들의 나라에는 거민이 없어진다. 외지에 있고 대로(大路)에서도 떨어져 있으며 외방인들을 유혹할 만한 성들이나 땅도 없기 때문에 아무도 이 땅에 와서 살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솔은 영원히 황무하리라" 고 한다. 변화한 곳에 사람이 없어지면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차지하고자 아귀다툼을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거기서 번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을 떠난 사람들은 안일하고 조용한 사람들이었다. 또 그들의 살던 곳은 한적한 곳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초라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던 곳에 거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엘람에 대한 심판 (예레미야 49:34-39)
이 예언은 시드기야 통치 초기에 말씀된 것이다. 앞에 있었던 이방 나라들에 대한 다른 예언들도 아마 이 때에 이루어진 것 같다. 엘람 자손들은 페르샤인을 가리키며 셈의 아들 엘람의 후손들이다(창 10:22).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엘리마이스라고도 불리우는 페르샤의 지방으로서 유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있고 메디아-엘람과 접경을 이룬 곳이라 본다. 이곳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이스라엘을 정벌하려는 전쟁에 "전통을 메고" (사 22:6) 즉 궁수들을 보내었다고 말씀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도 다른 국가들처럼 하나님의 진노의 계수하심을 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본문에는 일반적인 입장에서 "내가 재앙을 그 위에 내릴 것이라" 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예언되고 있다. 즉 "무서운 진노를 내리시겠다" 는 말씀이다(37절). 과연 그들에게는 전무후무한 재앙이 내렸던 것이다. 재앙의 내용은 아래와 같은 것이었다.
1. 그들의 군대가 무력하게 될 것이요, 국민들을 위하여 아무런 봉사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엘람 자손들은 궁술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본문에는 "내가 엘람의 활을 꺾을 것이라" 고 하셨다. 즉 그들의 궁수들을 멸절시킬 것이며 그러므로 그들의 주력 부대가 꺾일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가끔 명령으로 우리가 가장 신임하는 것이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 주도록 일을 진행시키신다. 또한 "우리가 으뜸되는 힘으로 삼는 것" 이 실상 우리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함을 입증해 보여 주신다.2. 엘람의 백성들이 흩어질 것이라고 한다. 세계 각처에서 그들을 대적하는 적들이 몰려올 것이요 그들은 모두 포로가 되어서 세계 각처로 끌려갈 것이라고 한다. 사람마다 갈 수 있는 곳이면 도주하여 생명을 보존하려고 하므로 "엘람에서 쫓겨난 자의 이르지 아니하는 나라가 없으리라" 고 하신다(36절). "사방 바람" 이 그들에게 불어올 것이다. 폭풍우가 때로는 이쪽에서 때로는 저쪽에서 불어와 그들을 이리저리로 흩어버릴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 고통의 바람이 불어올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시면 우리는 안전하고 평안할 수 있다. 폭풍우가 어디서 불어닥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또한 그들이 두려움 때문에 다른 나라로 도망갈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은 "그 원수의 앞에서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내가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를 진멸하기까지 할 것이라" 고 하신다(37절). 하나님께서는 도망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가시어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재앙은 죄인들을 쫓는 법이다."
3. 그들의 왕족들이 멸망할 것이요, 정권이 교체되리라고 한다(38절).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나의 위를 엘람에 베풀리라" 하신다. 즉 느부갓네살이 엘람의 보좌를 차지하든지 아니면 고레스가 그 보좌를 차지할 것이다. 그는 엘람을 먼저 점령한 후 다른 곳들을 쳐 부수었다. 아니면 "내가 위를 엘람에 베푼다" 는 말씀은 엘람의 보좌에 좌정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으로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즉 "땅을 심판하신다" 는 사실을 "왕과 왕족들이 그의 앞에서 직고해야" 하며 그들이 높더라도 그들보다 더 높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라셨다. 엘람 왕은 예전에도 유명하였음을 창세기를 통하여 알게 된다(창 14:1). 그돌라오멜이 바로 엘람의 왕이었다. 그는 당대의 용사였다. 짐작컨대 그의 후계자도 상당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엘람 왕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느 사람과 마찬가지인 것에 불과하였다. 하나님이 "엘람에 나의 위를 베풀리라" 하셨으니 이 말씀은 곧 그가 지금 있는 "왕과 방백들을 멸하시겠다" 는 말씀이다. 그리고 그가 기뻐하는 자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이다.
4. 그러나 엘람의 파멸이 영구할 것은 아니라고 하신다(39절). 그러므로 본문에 "끝날에 이르러는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리라" 고 하신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하고 제국을 다시 페르샤인들의 것으로 복구시켰을 때 틀림없이 엘람 자손들도 그 흩어졌던 각 지방에서 개선하여 조국에 정착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메시야의 날에 이루어졌다. 성령이 임하셨을 때 그들 중에 몇 사람은 "하나님의 큰 일이 자기 나라 방언으로" 전파됨을 들었던 것이다(행 2:9, 11). 이것이야말로 포로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귀환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인자가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고 주께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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