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충고 (예레미야 44:1-14)
애굽에 있는 유대인들은 이제 애굽의 여러 지방 즉 "믹돌과 놉" 기타 지역으로 흩어졌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사명을 부여하여 그들에게 그들을 보내셨다. 그는 그들 대부분이 "바드로스" 에 함께 모여 있을 때에도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였고(15절) 또는 이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설교하며 다녔다. 그는 이 메시지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의 이름으로 전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의 폐허를 상기시키셨다. "바벨론 강변에 있었던" 포로들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매일 생각하였지만(시 137:1) 애굽의 성들로 피난온 무리들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잊어버릴 만큼 오랫동안 그곳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건만 그곳을 잊고 있었고 그래서 상기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2절). "너희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이 되었는지를 보았도다." 이 황폐함이 어떻게 닥친 것인지 너희들은 기억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진노하심 때문이었다.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을 황폐케 한" 불은 그의 분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도다(6절). 그들을 파멸할 도구가 누구였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다만 도구일 뿐이요 진정 그곳을 멸하신 분은 전능하신 분이시라" 고 하신다.
Ⅱ.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이 이렇게 폐허가 된 원인은 죄 때문이었음을 그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것은 "악행을 인함이라" 고 하였다. 이 악행이야말로 하나님의 노를 격동케 한 것이며 특히 우상 숭배 즉 그들이 "다른 신을 섬기고" 인간들의 상상의 소산이요 그들의 손으로 만든 사이비 신들에게 명예를 돌린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명예는 오직 참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고 그의 이름이 위대하신 하나님을 버렸다. 그것도 그 유래가 불분명하고 또 알아야 할 가치도 없는 그래서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얼치기 신들을 위해서 참 하나님을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열조도 왜 이스라엘의 하나님대신 이 협잡배 신들을 섬겨야 하는지 어떤 타당한 설명도 할 수 없는 짓을 하는도다" 라고 하신다. 그들은 그것들이 신들인지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들이 신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했던 것이다.
Ⅲ.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 것을 그의 말씀으로 자주 그들에게 경고하셨던 것을 상기시키신다. 그는 이 경고를 멸시하는 것은 큰 화를 자초하는 것임을 알라고 하였다(4절). 예언자들이 그들을 세심한 배려로 구출해 내라는 소명을 받고 그들에게 보냄을 받았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치 말라" 고 하셨다. 우리가 죄에 대하여 말할 때 가증한 것처럼 두려움과 혐오를 느껴야 한다는 말씀이다. 확실히 그렇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요 "그의 심판은 행한 대로 보살피는 것" 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죄는 극악하고도 추악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죄에 대한 사랑에서 빠져나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말씀은 죄의 위험과 죄의 치명적인 영향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쳐 주고 있다. 본문은 신중하고도 진지하게 이 사실을 말하여 준다. "이를 행치 말라. 만일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리하지 말라. 죄는 하나님을 격노케 해드리기 때문이다. 또 만일 너희가 너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그리하지 말라. 왜냐하면 죄는 영혼을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한다. 유혹의 순간 우리가 굴복당할 것 같을 때 양심으로 하여금 이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양심에게 이렇게 깨우쳐야 한다.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싫어하시는 이 가증한 일을 행치 말라. 하나님이 증오하는 것이라면 너도 그것을 증오해야 하느니라" 고 양심을 깨우쳐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한 것에 관심을 가졌었는가" 천만에! 그러지 못하였다.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5절) 계속 우상을 숭배하였도다. 그 결과 하나님의 노가 그들에게 임하여서 오늘날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였음을 너희가 보는도다. 이 사실은 너희에게도 경고가 되는 것이로다. 너희도 그들이 한 것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의 말씀을 듣지 않을 뿐아니라 이미 그 손의 심판을 경험하는도다. 이를 맛보고서 너희가 놀라 깨우칠 줄 알아야 하겠도다. 그들이 공포를 맛보았듯이 너희도 맛보지 않도록 그들이 행하였듯이 하지 말고 순종하고 두려워하며 바르게 행해야 하는 것이라" 고 말씀한다.
Ⅳ.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제 애굽에 와서까지 계속 우상을 섬기는데 대하여 그들을 책망하셨다(8절). 그러므로 본문에 "너희가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을 금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그의 말을 뒷등으로 흘려버릴 것을 아셨다. 하나님이 갈대아 땅으로 보낸 사람들은 그곳도 우상이 만연한 지방이기는 하였어도 하나님의 은총의 힘에 의하여 그곳에 거하였으므로 우상 숭배에서 떠났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서 애굽인들의 땅으로 간 사람들은 자신의 타락한 힘을 의지하여 그곳에 있었으므로 전보다 더욱 우상 숭배에 몰두하였다. 우리가 조심함이 없이 또는 어떤 소명도 없이 자신을 유혹의 장소에 맡겨버리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자신에게 의탁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가족들에게 상당한 해를 초래하였다. 그러므로 본문에 이렇게 말씀되고 있다.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는가?(7절) 너희가 거짓된 것으로 너희 영혼을 속이고 잘못을 행하였도다. 너희는 결국 너희 영혼을 파멸시키고 말았도다. 왜냐하면 영혼에게 있어서 악은 치명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 하신다. 하나님을 대항하여 죄를 짓는 것은 "우리 자신의 영혼에게" 죄를 짓는 것과 같음을 기억하자. 예언의 말씀은 다시 계속된다. "악을 행함은 모든 위로와 소망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것이라(8절). 또한 너희의 명예와 이름마저 끊어지게 하는 것이라. 너희가 너희 죄로 인하여 또한 비참한 몰골 때문에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능욕거리가 되려 하는도다. 악은 너희를 유대인들처럼 파멸하리라는 속담거리가 되게 할 것이라. 또한 죄악은 너희로 모든 친척들과 결별하게 하며 너희가 기뻐하던 모든 것 그리고 너희 가족들이 이루어 놓은 모든 것에서 결별하게 하리라. 뿐만 아니라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먹이는 자를 멸절하려 하는도다. 결국 유다는 상속할 백성이 없으므로 그 땅을 잃게 될 것이라" 하신다.2. 그들은 열조의 불법의 남은 분량을 가득 채웠다.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는 그들에게 너무 적기나 한 듯이 거기에 죄악을 더하였다(9절). 그러므로 본문에 다음과 같이 말씀된다. "너희가 너희 앞서 간 자들의 악을 잊었도다. 너희가 마땅히 너희 열조의 죄 때문에 겸비해야 할터인데 겸비하지 않는도다. 그리고 악의 결과에 대하여 두려워하지도 않는도다" 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은 9절의 말씀을 "너희가 너희 열조가 받은 형벌을 잊었느냐" 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예언의 말씀은 계속된다. "너희는 너희 열조들이 우상을 숭배하였으므로 얼마나 비싼 대가를 지불하였는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도 어찌하여 너희는 너희 열조로부터 받은 구습을 따라 감히 헛된 짓을 되풀이하는가? 너희가 악으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으면서도 말이다" 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유다왕들의 우상 숭배 때문에 주어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우상 숭배하도록 유혹한 "그들의 아내들의 악을" 인하여 깨달아야 했었다. 이 말씀이 원문에는 "그리고 그의 아내들에 대하여(And of his wives)" 라고 기록되어 있다. 라이트푸드 박사(Dr. Lightfoot)는 이 말을 솔로몬의 아내를 특별히 그가 애굽에서 취한 애굽의 아내들을 뜻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바로 유다 왕들의 우상 숭배는 애굽에서 취한 아내들에게서 그 기원이 비롯된 것이라고 그는 본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경고된다. "그래 너희가 이 사실을 잊었는가? 그리고 너희가 똑같은 악한 과정을 되풀이하여 밟고자 하다니 이 어찌된 일이냐?" 고 한다(느 13:18, 26 참조). 예언의 말씀은 다시 계속된다. "너희 대에 이르러 너희가 너희의 악과 너희 아내들의 악을 잊었도다.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번영을 누리며 살던 때 행한 악이 너희에게 어떠한 파멸을 가져왔는가? 그러나 슬프도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10절에서 하나님은 계속 예언자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지금까지 겸비하도록 매를 맞으면서도 오늘까지 겸비치 아니하도다. 또한 그들이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나의 법을 준행치 아니하느니라" 고 하신다. 하나님의 율법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행위로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Ⅴ.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에 있으면서 계속하는 우상 숭배 때문에 철저히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전에처럼(42:22)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요, 그래서 그들은 애굽에서 멸망할 것이라 하신다. 이 형벌의 선고가 일단 내려진 이상 기각되지 않으리라 하신다. "그들은 애굽 땅에 우거하기로 고집하였다." 그리고 고의로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들에게 벌을 내릴 결심을 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 향하여 재앙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라" 고 하신다(11절). 전능하신 하나님과 맞서서 대적하려는 마음을 품는 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내침받고 말았음을 알게 되리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기 때문이다" (시 34:16). 본문에 애굽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유다인들에게 대한 경고가 다음과 같이 주어지고 있다.
1. 그들이 예외없이 다 멸망하리라고 하신다. 그들 가운데 신분이 높은 자들도 이를 피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그들이 망하되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망할 것이요(12절) 높은 자나 낮은 자나 부자나 빈민이나 다 망하리라" 고 하셨다.2.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벌할 때에 내려졌던 같은 심판을 받아 망하리라고 하신다. 즉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망하리라고 하신다(12,13절). 그들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인들처럼 자연사(自然死)함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뼈를 깎는 아픈 심판을 받아 망하리라고 하신다. 그들은 애굽으로 피신함으로 그 심판을 면하게 될 줄로 생각했던 것이다.
3. 아무도(즉 겨우 심판을 모면한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시는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고 하신다(14절). 그들은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간 자들보다 그들의 조국에 빨리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벨론에 있던 자들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나, 그들은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로를 베푸시는 방법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하여 계획 세우시는 것보다 더욱 확실하기 때문이다. 불만투성이요 안달뱅이인 자들은 그들이 어디 있든지 편안히 여기지를 못하고 변화만을 바란다. 이스라엘 족속들도 그들이 유다 땅에 있었을 때는 애굽으로 가기를 바랐다(42:22). 그러나 그들이 애굽에 있게 되나 다시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어떤 난외주의 기록을 보면) 그들이 고국을 향하여 "그들의 영혼을 높이 들었다" 고 하였다. 이 말은 그들의 간절한 염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셨을 때 그들이 거기에 있으려 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정작 그들이 바라더라도 거기 거하게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거슬러서 행하면 그도 우리를 거슬러서 치리하신다. 정작 그래야 할 때 하나님을 알려하지 않던 자들이 어떻게 잘 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때는 하나님이 직접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백성들의 오만무례한 답변 (예레미야 44:15-19)
우리는 본문에서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복종하기를 무례히 거절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이같이 하나님에 대하여 감히 노골적인 대항을 한 실례(實例)를 일찍이 찾아보지 못하였다. 또한 육적인 정신소유자가 이같이 단단한 각오를 한 반역도 찾아보지 못하였다.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Ⅰ.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무시한 백성들. 이같이 오만한 무리가 소수였던 것이 아니고 유다인들 대부분이 그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과 자기 아내들이 예레미야가 공박한 우상 숭배의 죄에 해당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15절). 우리는 그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1. 여인들이 우상 숭배나 미신을 섬기는 데 있어서 남자들보다 죄가 더 컸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참 하나님, 참 신앙에 더 밀착하여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무신론자들이어서 하나님이고 신앙이고 전혀 개의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아내가 거짓된 신앙을 갖고 거짓 신들을 섬기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허락한 것이다.2. 그들이 예레미야의 책망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는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것을 알았다." 또한 그들도 여자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호의를 보여왔었음을 시인하였다. 또한 곁에 섰던 여인들도 남자들의 그들과 함께 우상 숭배하는 관습에 관여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가 말한 것은 그들의 아픈 곳을 찌른 효과가 있었다. 그들은 어려운 일은 조금도 지지 않으려는 건달들처럼 바른 충고를 배척하였다.
Ⅱ. 무리들이 예레미야에게 한 답변. 그러나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한 말은 곧 그의 속에 계시는 하나님 자신에게 한 말과 같았다. 이들의 말은 실상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당신의 도리를 알기 원하지 않나이다" 하고 전능하신 분에게 대답한 거만한 무리들의 답변과 같은 것이었다.
1.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나타냈다. 그들이 스스로 행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계속하여 달을 숭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본문에서는 "하늘 여신" 이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어떤 이들은 이것을 태양으로 이해한다. 애굽에서는 태양이 더 많이 숭상되었다(43:13). 또한 예루살렘에서도 그러하였다(왕하 23:11). 이 사람들은 태양을 가리키는 히브리어가 여성이므로 태양을 "하늘 여신" 이라고 불렀다고 잘못된 것은 없다고 본다. 또 어떤 이들은 이것을 "하늘의 성군" (星群) 또는 "우주" 를 말하는 것으로 본다(7:18). 이 대담한 죄인들은 그들이 복종을 거부한 사실에 대하여 변명하려 하지도 않았고 또(43:2 절에서처럼) 예레미야가 말한 것은 자신의 말이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라고 둘러대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거침없이 여러 말로 그에게 "우리가 네 말을 듣지 아니하겠노라" 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금지된 바를 행하고 경고된 바를 위험을 무릅쓰고 행하리라" 고 한다. 하나님께 불복종하며 살아가는 무리들은 일반적으로 점점 더 악해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한 그들은 "죄의 기만성에 의하여" 더욱 마음이 강퍅하여지게 된다. 본문에 패역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전형적인 답변이 나오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정녕히 실행하리라" 고 한다. 하나님과 예언자들의 자기들과는 반대로 말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한다. 이같이 잔뜩 지껄여댄 무리들은 그들이 말한 만큼 그들이 불의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이는 젊은 이들이 "그의 청년 시절에" 흔히 범하는 실수이다. 젊은 이는 "마음에 원하는 길과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한다." 그는 그가 하고 싶은대로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다(전 11:9).2. 그들은 자기들이 이같이 결심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어리석고 또 무턱대고 악을 저지르는 자들도 대부분 자기들에 대하여 변명할 말은 있는 법이다. 그들은 "모든 입이 닫힐 때까지" 변명을 하리라만은 그때가 되면 아무 말도 못하게 되리라.
(1) 그들은 카톨릭 교도들의 교회가 참 교회인 것처럼 증거를 대며 자기들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자기들의 위엄을 내세우듯이 많은 사실들을 주어대고 있다. 로마교도들이 그러하듯이 이들 유대인들도 많은 이유를 들고 있다.
[1] 그들을 전통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 선조들이 하던 대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겠노라. 이 행사는 전례를 찾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조들보다 더 현명한 척할 필요가 어디 있겠느뇨?" 라고 말한다.
[2] 그들은 권력을 빙자하고 있다. 즉 권력을 지닌 자들이 이러한 일을 행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기 때문에 자기들도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본문에 "우리 왕들과 우리 방백들이 이를 행하는도다. 이들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 위에 세운자들이요, 다윗의 자손들이라" 고 말한다.
[3] 그들은 단합을 이유로 들고 있다. 즉 이를 행하는 자가 혹 하나씩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일치하여 하고 있노라고 한다. 즉 "큰 무리" (15절)가 이를 행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4] 그 일은 보편성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 일은 몇 곳에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유다 성읍들에서" 행하여지고 있다고 한다.
[5] 그들은 이 일이 공개성을 띠고 있음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 일이 모퉁이나 어두운 데서 그리고 음침한 숲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거리에서 보라는 듯이 공개적으로 행하여지고 있다고 한다.
[6] 그들은 이 일이 모교회 즉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하여졌음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 일은 이제 애굽에서 처음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행하여졌던 것이라고 한다.
[7] 그들은 번영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때에는 우리가 식물이 풍부하며 많은 귀중한 물품들을 소유하였고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말한다. 그들이 앞에 열거한 이유들은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 편의 반증들은 대개 감추어져 있었고 그 수도 빈약하였다.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엘리야도 홀로 남아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이유로 들고 있는 내용(7번의 번영을 빙자하고 있는 것을 말함)은 모두에게 적용된 것은 아니고 몇몇 특정인들에게만 적용할 수 있던 것으로 보여진다. 민족적으로 그들은 아직 그들의 반역으로 인한 채찍 아래 처래 있었고 "사람의 출입이 평안치 못하였다" (대하 15:5). 그러나 설사 그들이 열거한 모든 이유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들로 우상 숭배를 정당화시킬 이유는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배를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이지 인간의 관습은 아니다.
(2) 그들은 자기들이 최근에 당한 심판이 "하늘 여신에 대한 분향을 폐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임하였다고 말하였다(18절).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 이유를 자주 그들에게 설명하셨으며 또 이루어진 일들 자체가 웅변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었지만 그들은 섭리를 역으로 잘못 해석하였다. 그들은 섬기던 우상을 끊어버리니 "우리가 모든 것이 핍절하고 칼로 멸망을 당하였노라" 고 본문을 통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망한 참된 이유는 아직도 그들의 마음속에 우상을 지니고 있고 또 옛날에 행하던 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유가 그들이 죄의 행위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그들의 번영을 위하여 또한 그들로 죄에서 떠나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재난들을 그들이 잘못 해석함으로 결과적으로 그들의 죄에 대한 애착을 더욱 강렬하게 하였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 시대에서도 국가들이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금하고 또 그들을 박해함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공적 재난을 내리시면 불신자들은 그 재난을 역으로 해석하여 그들이 기독교들을 관용하고 못본 체하였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Christians ad leones-즉 기독교인들을 사자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다. 그들이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참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그분을 돌이켜 섬김으로 궁핍과 곤경을 겪었다고 하여 그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배반할 이유가 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곤경을 겪은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신들의 배를 섬겼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을 알고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가 그들을 굶주리게 하시며 생명을 앗으시고 또 이 세상에서 그가 허락하신 좋은 시절을 누리지 못한다 하여도 그가 결국은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그를 섬긴다.
(3) 여인들은 그들이 우상 숭배하는 데 있어서는 남자들보다 앞서 있고 또 능동적이지만 남편들의 승락과 인정을 받아서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인들은 "하늘 여신에게 바치는 소제물" 에 필요한 "과자를 만들고" "전제에 부을" 술을 마련하기에 분주하였다(19절). 우리는 전에도 그들이 이러한 짓들을 하였음을 기억하게 된다(7:18). 그들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없이 그들이 알지 못하게 은밀히 우리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로 우리에게 혐의를 품게 하겠느냐? 여인들이 가루를 반죽할 동안 남자들은 불을 지폈도다. 남자들은 곧 우리의 주장자들이니 우리가 그들에게 배우고 복종할 수밖에 없도다. 그들이 본을 보이므로 이 일하는 법을 우리가 배운 것이라" 한다. 가장 가까운 친척끼리 가깝기 때문에 서로 좋은 일은 권하며 또 하늘나라에 이르도록 서로 격려해야 될터인데 죄 속에서 서로 마음이 굳어져 피차 지옥 자식이 되게 하기나 한다면 참으로 슬픈 일임을 기억하자. 어떤 이들은 이 말은 남자들이 한 것이라고 한다. "남자들 없이 우리가 그 일을 행하였겠느냐?" 는 말은 (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 개역에는 남편들 없이로 되어 있음:역주) 그들이 장로들이나 지배자들 또는 높은 자들이나 권력자들의 허락없이 하였겠느냐는 말로 해석한다. 그러나 과자를 만드는 일과 전제를 위하여 부을 술을 만드는 것이 여자의 임무로 특별히 명시된 것을 보아(7:18) 이 말은 여자들의 변명으로 이해함이 옳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말은 어쨌든 어리석은 변명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 일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줄 자신들이 알고 있었는데 남편들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여 자기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는가? 다 어리석음에서 오는 소치이다.
예레미야의 집요한 설득 (예레미야 44:20-30)
대담한 죄인들이 되먹지 않은 거창한 말을 아무리 지껄여댄다고 하더라도 결국 최종적인 옳은 말을 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시면 그의 정당성이 입증될 것이요, 모든 육신을 입은 인간들은 아무리 거만한 자일지라도 그 앞에서 잠잠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혹시 예언자들은 굴복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굴복당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예언자도 굴복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Ⅰ. 예레미야는 자신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의 영이 없이도 그들이 당하는 재난에 관하여 또한 재난의 참된 취지와 의미에 대하여 그들에게 말하며 그들의 잘못을 교정할 수 있었다(그들의 잘못은 고의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이 곤경들이 그들에게 임한 것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이라" 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한다. "아니다. 너희가 재난을 당하는 것은 지금 너희가 우상 숭배를 멈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우상 숭배를 하였기 때문이라" 고 한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답변하자 그는 즉시 그들에게 응수한다. 즉 그들과 그들의 선조들이 다른 신들에게 태워 올린 분향이 하나님이 그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한동안 처벌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한다. 그가 참으시던 기간 중에는 그들의 말대로 무사하였고 사나운 꼴을 당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끝내는 여호와께서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은 그를 격노케 하였다(22절). 그러자 그들 중에 자각 운동이 일어나 그들 중의 몇은 개정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버린 것이라기보다 은총에 의해 죄가 그들에게서 떠난 것이라 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에게는 아직도 옛 죄악이 남아 있었고 그들의 부패한 경향은 여전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선조들과 왕들과 방백들이 예루살렘 거리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것을 기억하시고 그들을 치셨다. 그렇지만 그들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들이 우상 숭배하던 것을 정당화하고 우상을 찬양하였다. 이 모든 일들을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21절). 또한 그들이 저지른 모든 가중한 일들과(22절) 또한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불복종하던 모든 일도 기억하셨다(23절).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셨고 이 일 때문에 그들을 벌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의 땅이 "오늘과 같이 황무하며 저주거리가 된 것이다" (22절). 그러므로 재앙은 그들의 최근의 회개 때문은 아니었고 그들의 옛 범죄로 인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모든 "재앙이 오늘과 같이 그들에게 미친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을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고통의 원인을 바르게 이해한다고 해서 우리의 잘못이 고쳐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떠한 경우든지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은 "여호와께 우리가 범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을 품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Ⅱ. 예레미야는 그들 그리고 특별히 여인들에게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으로부터 주어진 말씀을 전해야 했다. 그들이 답변을 하였으니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대답을 들어야 할 차례였던 것이다(24절). 그러므로 본문에 "애굽 땅에서 사는 모든 유다여" 라고 호칭되고 있다. 애굽에서라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었다. 또한 그가 말씀한 것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들의 의무였다(26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답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백히 말씀하신다.
1. 그들이 철저히 우상 숭배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쟁론하시기를 그만 두지 않기로 작정하셨다고 한다. 즉 만일 그들이 계속 그를 격동시킨다면 하나님도 그들을 처벌하시기를 계속하시어 그들로 결국은 어떤 길이 그들에게 유익한 것이었는지를 보이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전에 그들이 말했던 것을 반복해 말씀하신다(25절). "너희와 너희 아내들이 완강히 고집을 부리며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는 일을 이루려 하였도다. 너희가 직접 그것을 말했고 그 입장을 고수하였으며 말한 것을 실행하였노라.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서원한 대로 반드시 이행하여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전제를 드리리라 하였도다" 라고 하신다.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는 일이 죄악인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행하겠노라 서언하는 일은 죄악을 합리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하나님께서 이미 죄로 규정하신 것을 서약을 통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합법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일은 인간의 영역 밖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좋다. 너희 악한 서원을 성립하며 이행하라. 그대신 너희는 내가 나의 큰 이름으로 행하는 바 나의 서원을 들으라" 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서원하고 서원한 것을 뉘우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맹세하시고" 그 맹세한 것을 "뉘우치지 아니하리라" 신다. 그러므로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름을 보이시나니" (시 18:26)라고 하셨다.(1)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신앙적인 행위도 그들 가운데서 제하여 버리겠다고 맹세하신다(26절). 그들은 애굽인들과 합세하여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한편 그들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경우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특별히 엄숙한 서약을 맺을 때 그렇게 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심으로" 또는 "살아계신 하나님" 이름으로 맹세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은 우상들을 숭배하면서도 하나님이 자기들의 것인 양 행동하였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심으로" (2절) 맹세한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그들이 이러한 서약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던 것은 그들의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라기보다 그들의 민족의 영예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 온 땅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의 입에서 다시는 내 이름으로 일컬어서" 맹세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 말은 그들의 본국에서 사용하던 서약의 관습을 따르는 유다인들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다. 또한 만일 맹세할 일이 있어도 그들은 본래 사용하던 관습을 잊어버리고 애굽인들이 하듯이 여호와의 이름이 아니라 "바로의 생명을 걸어" 맹세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떠나사 신앙도 잊어버리고 훌륭한 교육을 통하여 배운 모든 것도 상실한다는 일은 매우 비참한 일이다. 또는 이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처럼 고백하는 것을 자신에게 대한 대적 행위로 보고 분개하시겠다는 말씀이다.
(2) 하나님께서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멸절되고 남는 자가 없을 것을 맹세하신다(27절). 그러므로 본문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다. 그들에게 내릴 심판이 그들이 거기서 멸절되기까지 그래서 그들이 뿌리째 뽑히기 전까지는 하나도 감면되는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완고한 죄인들을 발견하실 때는 추호도 용서없이 다스리신다. 그리고 사태가 이렇게 되고 나서야 그들이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하늘 여신을 예배하는 일을 다시 계속하면 원상으로 회복될 것처럼 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말할 것이요, 누구의 말이 옳은지는 나타날 일들이 입증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에서 하나님과 죄인들 사이에 이루어진 싸움은 누구의 말이 맞느냐, 또 누구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냐, 누가 더 잘 할 것이냐하는 것이었다. 죄인들은 그들이 죄를 계속 지을지라도 평화를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평화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면 그는 그대로 이루고야 마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있을 것이나 죄인들의 말은 없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들 가운데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칼을 피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시간이 경과하면 "소수의 사람이 유다 땅으로 돌아가리라" 고 하신다(28절). 그리고 그 수효는 갈대아 땅에서 돌아오는 많은 수효의 사람들에 비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죄를 일삼는 자들이 그들의 수효를 자랑하는데 대하여 꾸짖기 위하여 계획된 말씀이다.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우상 숭배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좋다, 그렇다면 칼과 기근을 피할 자는 소수에 불과할 것이라" 고 말씀하신다.
3.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경고들이 그들이 살아서 성취될 것을 예고하는 예표를 그들에게 제시하신다. 즉 그들이 애굽에서 멸절하되 완전히 망할 예표를 제시하신다. 그 예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즉 현재의 애굽왕인 "바로 호브라" 는 그의 생명을 구하는 적들의 수중에 넘겨지겠고 또 내적으로는 아마시스를 주동으로 한 반역적인 신하들이 그의 왕위를 찬탈하겠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이 침략하여 그의 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하신다. 앞의 사실은 역사가 해로도투스(Herodotus)가, 후자의 사실은 요세푸스(Josephus)가 전해주고 있다. 이 애굽 왕 바로가 유다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겠다고 유혹하여 우상을 섬기도록 한 장본인인 것으로 여겨진다. 여하간 유다인들은 그의 보호만을 믿고 있었고 따라서 그의 멸망은 그들의 멸망에 대한 예고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바로가 없어졌다는 것은 그들의 멸망을 향한 일보 전진의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들은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바랐던 이상의 것을 바로에게 바라고 있었다. 바로는 시드기야보다 수완이 있고 정치에 뛰어난 군주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를 적에게 넘겨 주었듯이 바로도 그 원수들의 손에 넘겨 주리라" 고 하신다. 우리가 스스로 의지할 수 있다고 믿는 피조물이 베푸는 위로나 그에 대한 신뢰는 우리가 의지하는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에 같이 없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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