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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예레미야에게 내리시는 몇몇 금지(예레미야 16:1-9)

선지자는 여기에서 백성에게 표적이 되고 있다. 그들은 선지자가 한 말씀을 중시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행동을 백성들이 눈여겨보지 않을지 시험해 봐야 했다. 전체적으로 그는 매사에 있어서 자기 조국이 아주 곧 패망하리라는 것을 예기하는 자답게 처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이것을 예언하였지만 그 예언을 중시하는 자는 드물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예언의 진실성에 완전히 만족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되었다. 딴 사람들은 자기들의 평상 일과를 계속하지만 이런 슬픈 시기를 전망하는 그에게는 그런 일이 금지되었다. 그는 결혼이나 죽은 자를 위한 애곡이나 환락을 생략하고 지내야 했다. 타인을 뉘우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감동시키고자 하는 자들은 아주 극기하는 사례 가운데서 자기를 스스로가 그 말씀을 믿으며 그 말씀에 감동받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만일 태평한 가운에 있는 자들을 분기시키려 하며 그들을 타일러서 이 세상에 대해 무관심하게 만들려면 우리들 스스로가 현재적 사물에 대한 욕심을 억눌러야 하며 우리는 세상의 와해를 예기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Ⅰ. 예레미야는 결혼해서는 안 되며 가족을 가진다거나 가장이 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너는 아내를 취하지 말며 이 땅에서 자녀를 두지 말지니라" (2절). 유다 땅이나 예루살렘에서나 아나돗에서도 그래서는 아니 되었다. 유대인은 딴 어느 민족보다 조혼과 많은 자손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동정을 명예롭게 여겨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처녀가 줄었으므로 독신 생활을 해야 했다. 이로써 미루어 보건데 독신은 재난의 때나 환란이 임박한 때에만 권할 만 하고 알맞은 일이었던 것 같다(고전 7:26). 또 이런 일 자체가 재난의 한 부분이다. "해산하지 못하는 배가 복이 있다" (눅 23:29)고 말할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시기가 임박한 것을 보게 될 때 누구든지 특히 선지자는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생활(흠정역:이 생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딤후 2:4) 이 세상 일에 부대끼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우리에게 소중하면 소중한 일일수록 그런 재난의 때에는 우리에게 더욱 많은 걱정한 불안과 슬픔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제시되는 이유는 아비와 어미나 자녀가 비통한 죽음을 당할 것이란 사실 때문이다(한글 개역 성서:독한 병으로 죽으리라, 3,4절).

1. 아내나 자녀를 둔 자들은 그들이 너무나 방해가 되어 죽음에서 도망칠 수가 없을 것이다. 단신이면 탈출할 수도 있고 임기응변으로 안전을 도모할 수도 있지만 처자식이 딸린 자는 식구를 다 데리고 갈 재간도 없으며 그들을 나두고 갈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2. 그들은 이런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끊임없는 두려움 가운데 있게 될 것이다.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죽음이 도처에서 의기양양하게 뽐내고 위세를 부를 때는 공포와 경악을 더욱 크게 느낄 것이다.

3. 모든 자녀의 죽음과 설상가상의 형편은 그 부모에게 새로운 죽음의 시작이 될 것이다. 자녀를 곱게 길렀다가 살인하는 자에게로 끌어내느니 보다 자식을 두지 않는 게 더 나으며(호 9:13, 14) 자식이 불행 속에서 살다가 불행 중에 죽는 것을 보느니 자식없는 게 더 낫다. 죽음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죽는 자나 살아남는 친척에게 보다 많은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같이 큰 사망" 이란 말씀을 읽는다(고후 1:10). 이 세상 죽음에 대한 공포를 다소나마 완화시키고 경감시키기 위해 두 가지 사탕발림이 사용되는데 그것은 곧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고 매장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죽음을 참으로 비통하게 하기 위해 이런 일들이 부인되고 있다. "그들은 슬퍼함을 입지 못하며" 은 세상이 진절머리를 내던 자처럼 데려감을 당할 것이다. 아니, 그들은 "매장함을 얻지 못할 것이며" 마치 공의의 기념물로 내정된 자처럼 버려둠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지면의 분토와 같을 것이다." 그들은 땅의 비료가 되는 것밖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자처럼 될 것이며 인분처럼 보잘 것 없고 혐오스런 존재가 될 것이다. 더러는 칼로, 더러는 기근으로 망하므로 말미암아 그 시체는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이 밥이 되리라. 누구라도 "그 자녀가 이같은 꼴이 되는 것을 보고 사느니 자식없는 게 더 낫겠다" 고 말하지 않겠는가? 최대의 위안을 약속하던 자식이 가장 무거운 근심덩어리와 가장 쓰라린 십자가로 판명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라고 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

Ⅱ. 예레미야는 친구나 친척이 죽어도 상가에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5절). "너는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상을 입은 자에게 조문하고 애곡하며 죽은자를 위해 자기 몸을 베거나 대머리 되게 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율법에는 금지되어 있었으나(신 14:1) 자해행위는 애통의 표시로 흔히 행해지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아니, 때로는 비탄의 감정이 격해져서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떼내는 자도 있었다(6,7절). 그들은 일부는 고인에 대한 존경심에서, 또 일부는 살아남은 자에게 대한 동정심에서 이렇게 행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고인의 죽음을 큰 손실로 생각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남은 자들에게는 슬픔에의 동참이 비탄의 짐을 더 가볍게 해 주었다는 것을 뜻한다. 욥의 친구들이 욥에게 한 것이나 유대인들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한 것처럼 함께 통곡하고 위로의 잔을 그들에게 마시우며 강장제를 준비하여 원기를 복돋우기 위해서라도 마셔야 한다고 열심히 강권하며 아비나 어미를 위하여 마음이 무거운 자들에게 포도주를 준다는 것은 친구로서 해야 할 도리였다. 이것은 그들이 부모를 잃었지만 그래도 자기들에게 관심을 갖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소 위안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때는 이런 관례가 통용되고 있었으며 또 그것은 훌륭한 관례였다. 상가에 가는 것은 우리들 자신에게 유익할 뿐더러 남에게도 좋은 일이다. 예레미야 선지는 이런 종류의 선한 일이라면 흔히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 경우는 지천으로 흔했을 것이며 이런 일은 경건한 사람으로서나 선지자로서의 그의 특성에 잘 어울리는 일이었다. 그는 이런 일로 인해서 자기 백성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아 마땅하다고 누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선지자에게 전처럼 그의 친구의 죽음을 애통해 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자기 조국 전체의 멸망에 대한 그의 슬픔은 개개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모든 눈물을 다 쏟아도 모자랄 일이 닫아 오는 것이다.

2. 그는 심판이 문 앞에 이르른 것을 보았다. 그 심판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죽은 자를 위해 그는 애통해 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도리어 그는 "화액 전에 마치 맞게 취하여 감을 입은" (사 57:1) 자를 복되다고 생각할 만하였다.

3. 이것은 장차 임할 일의 애표였다. 모든 이웃 사람들이 친구의 도리를 소홀히 할 정도로 그 재난의 때에는 모든 사람이 당황과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사람이 죽는 경우는 너무나 흔하여 날마다 죽어 나갈 것이며 예레미야 선지는 전처럼 장례식을 거행할 시간도 장소도 마음의 여유도 갖지 못할 것이다. 슬픔은 너무나 지극하여 털어 줄 도리가 없을 것이며 모든 사람이 자기들의 환난에 대한 비탄으로 가득 차서 자기 이웃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모두가 애곡자가 될 것이며 위로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짐을 지고 견디기에도 모자란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와 평강을 빼앗으며 그들의 번영에 종지부를 찍고 그들에게서 건강과 재산과 안녕과 친구 등등 자신이나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서 박탈하리라" 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평화를 누리든 간에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리고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실 때에 누가 감히 잘못하신다 하겠느냐?(욥 34:29)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의 평강을 선용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평강을 가져가 버리실 수 있으며 빼앗으실 것이다. "내가 나의 평강을 빼앗으며 인자와 긍휼을 제함이라." 그들의 모든 신선한 냇물은 이들 인자와 긍휼의 샘에서 흘러나오는데 이 인자와 긍휼의 샘이 폐쇄되고 제한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들의 모든 좋은 것도 끝장이 나게 되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밖으로 몸을 내던지는 자들은 진정한 모든 평강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자기의 인자와 긍휼을 거둬가실 때에는 모든 것이 끝장이다. 그 다음 6절에는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 곧 산 자의 땅이라고 불리우는 가나안 땅에서 죽으리라" 는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의 은총은 우리의 생명이다. 그것을 가져가 버리시면 "우리는 죽게 되며 망하게 되며 다 망하게 되나이다" (민 17:12).

Ⅲ. 예레미야는 상가에 들어가서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잔치집에 들어가서도 안 되었다(8절). 그의 친구 중 어느 누구가 집에 잔치상을 배설하고 그에게 초대했을 때 그는 으례이 그 잔치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앉아 마시기만 할 뿐만 아니라 술취하는 일이 없이 즐거이 먹거나 마셨다. 그것은 그의 습관이었으며 조금도 흠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자유를 누려서는 안 되었으니 그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그런 행위는 시기에 맞지 않으며 그 땅과 그 민족에게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 모순된 행동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울며 애곡하며 금식하라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그들을 치러 나오고 계셨다. 그래서 이 때는 그들이 스스로를 낮춰야 할 때였던 것이다. 백성에게 심판을 경고한 선지자로서는 자기 자신부터 심판에 대한 경고를 받아들이고 그 경고에 따른다는 본을 보여서 자기가 그 경고를 믿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게 아주 당연하였다. 목사들은 자기 부인과 극기의 본을 보여야 하며 남에게 여호와의 두려우심을 느끼게 하려면 먼저 자기들부터 하나님의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마땅하다. 시온이 환난 중에 있을 때 시온의 모든 아들로서는 시온과 같은 느낌을 가지며 시온이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즐거워하지 않는 것이 어울리는 행동이다(암 6:6 참조).

2. 그는 얼마나 처참한 시기가 임박하고 있는지를 백성에게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전처럼 잔치집에 나타나려 하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이같은 행동이 모든 잔치의 종식에 대한 암시라는 것을 그들에게 주지시킨다. "내가 기뻐하는 소리를 끊어지게 하리라(9절). 즉 이 말씀은 "너희가 잔치를 벌일 재료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며 즐거워할 일도 없을 것이고 도리어 너희의 기쁜 마음을 잡치게 하고 심기를 언짢게 할 일에 휩싸이게 되리라." 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극히 쾌활한 자라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는 길을 아신다. 이 일이 이곳에서 즉 언제나 즐겁던 고을(사 22:2) 그 모든 기쁨이 그 성의 모든 안전 보장으로 생각되던 예루살렘에서 행해질 것이다. 이 일은 지금 사뭇 거만하고 즐겁게 보이는 "네 목전" 에서 "네가 보는 앞에서" 행해질 것이며 "네 괴로움" 이 될 것이다. 이 일은 "네 시대" 에 일어날 것이다. 즉 "너" 는 살아서 이 일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불의와 우상 숭배로써 찬미의 소리를 끊어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를 끊어지게 하시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지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고 주의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에서는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 곧 혼례식을 장식하던 축가 소리가 그 이상 들리지 않게 될 것이다(7:34 참조).

 

16:2 없음.

 

16:3 없음.

 

16:4 없음.

 

16:5 없음.

 

16:6 없음.

 

16:7 없음.

 

16:8 없음.

 

16:9 없음.

 

16:10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이유(예레미야 16:10-13)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 하나님께서 왜 그들에게 이런 심판을 내리려고 하시는지 그 이유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네가 이 모든 말로 즉 이 저주의 말을 백성에게 고할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큰 재앙을 공포하심은 어찜이냐?'고 네게 물을 것이다" (10절). 우리는 개중에 겸손하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이렇게 물어본 자들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기들의 죄악을 내던져버림으로써 심판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불만으로 삼으시는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한 나가 있었을 것이다. 즉 "폭풍을 일으키는 요나를 우리에게 지적해 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그것을 배 밖으로 던져 버리겠나이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본문은 하나님 말씀에 시비를 걸고 자기들이 그토록 엄한 심판을 받을 어떤 짓을 했는지 보여 달라고 도전하는 자들의 말인 것 같다. "우리의 죄악은 무엇이며 우리 죄는 무엇이뇨? 우리가 그런 판에 해당하는 어떤 죄를 범했단 말인가?" 그들은 자기를 낮추고 정죄하기는 커녕 자기들의 옳음을 고집하며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이런 재앙을 선포하심으로써 잘못을 저지르셨으며 자기들에게 부당한 일을 부과하셨기에 자기들이 하나님을 심문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넌지시 말하고 있다(욥 34:33 참조, 우리 한글 개역 성서와 다름). 어려움에 빠질 때 하나님을 옳다고 인정하고 자신을 심판하며 그 어려움을 유발한 것은 바로 자기의 죄와 불의라고 고백하는 죄인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2. 이 질문에 대한 간명하고도 완전한 답변이 제시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무슨 이유로 자기들을 노여워하시는지 선지자에게 묻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입을 막지 않으실 것이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결코 까닭없이, 선한 이유없이 노하시진 않으신다는 것을 그들이 충분히 믿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말씀해 주실 것이다. 그들이 깨달음을 얻고 겸손해지거나 아니면 최소한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노여워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상세히 말씀하셔야 했다. 그들은 다음 사실을 알아야 했다.

(1)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그들에게 벌을 내리셨다. "너희 열조가 나를 버리고 내 법을 지키지 아니하였음이라" (11절). 그들은 신의 규례를 떨쳐 버렸고 하나님의 율례에 싫증을 냈으며(그들은 하나님의 규례가 너무 평범하고 초라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서는 다른 신들을 쫓아갔다. 다른 신들에게 대한 예배는 보다 즐겁고 화려하였다. 그들은 다채로운 것과 진기한 것을 좋아하여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제 2계명에 수업서 그 자손을 벌하시겠다고 말씀하신 죄악이었다. 그 자손들은 저희 조상의 유전한 것을 받았으므로(벧전 1:18) 이 우상 숭배의 관행을 계속 행했던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그들 자신의 죄악을 그들에게 갚으셨다(12절). "너희는 너희 조상의 죄악을 너희 자신의 죄로 삼고 너희 조상의 시기에는 연기되었던 형벌을 면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너희가 너희 열조보다 더욱 악을 행했음이라." 만일 그들이 자기 열조의 집행 유예를 잘 할용하고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통해 회개에 이르게 되었더라면 그들은 그로 인해 형편이 더 나아지고 심판을 예방했을 것이며 진행 유예는 국민적 사면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조상의 집행 유예를 남용하고 자기 죄 중에서 더욱 완악하게 되었으므로 형편은 더욱 악화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집행 유예의 시효는 소멸되었으며 형은 더욱 가중되어 보다 엄격히 집행되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 보다 죄를 범하는 데 더 뻔뻔스러웠고 완악하였으며 각기 악한 마음의 강퍅함을 따라 행하였고 그것을 자기들의 안내자와 기준으로 삼았으며 하나님과 선지자를 청종치 않으려고 고의로 악의 추구를 다짐하였다. 그들은 일부러 자기 양심의 소리를 지우기 위해 욕망과 정욕의 소음을 더 크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대해 이런 결심을 하셨다고 하여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다(13절). "내가 저희를 이 땅에서 곧 이 광명의 땅, 이 (vision)의 골짜기에서 쫓아내리라. 너희는 나를 청종치 않았으므로 내 말도 듣지 못하게 되리라. 너희는 급히 데려감을 당하리라. 너희가 이전에 다소 알고 통신하던 이웃 나라가 아닌 먼 나라로 너희는 데려감을 당하리라. 그 땅은 너희와 너희 열조의 알지 못하던 땅이다. 너희는 그 땅에 대해 아무런 세력도 행사하지 못하며 너희의 불행을 경감시켜 줄 사람이나 위안물을 만날 줄로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나 자기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이방신 즉 낯선 신들에게 빠졌으니 낯선 이방 땅에 추방되는 것은 당연하다(신 32:17). 두 가지 일이 이방 땅에 있는 그들의 형편을 더욱 비참하게 할 것인데 그 두 가지는 다 더 나은 부분인 영혼에 관련된 것이다. 프로 생활 중 최대의 재난은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며 영혼의 행복을 막는 일들이었다.

[1] "영혼의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라. 즉 너희는 다른 신들을 섬기고 싶은 유혹을 끊임없이 받을 것이며 너희의 잔인한 주인들에게서 이 일을 강요당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가 우상숭배를 강요당할 때는 너희의 경건한 왕들이 금지했을 때 너희가 우상 숭배를 좋아한 만큼이나 그런 숭배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그들의 벌로 삼으시며 마음이 패려한 자를 그 자신의 행위로 가득 채우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주목하자(잠 14:14 참조). "너희는 우상 숭배 이외에는 공중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희는 참되신 하나님의 예배에 얼마나 소홀했던가를 유감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2] "영혼의 행복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표적을 다소라도 얻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할 낯선 땅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라도 했다면 그 때문에라도 그 포로된 땅은 즐거운 땅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면 그들의 억압의 멍에는 참을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16:11 없음.

 

16:12 없음.

 

16:13 없음.

 

16:14

심판과 자비(예레미야 16:14-21)

이 문단에는 자비와 심판이 혼합되어 있어서 본문 말씀을 어디 다 적용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그토록 이 두 가지는 뒤섞여 있으며 그 중 일부 말씀은 복음 시대까지 멀리 전망하고 있는 것 같다.

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우상 숭배 때문에 기필코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그들이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은 법령이 이미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1. 그들이 제 아무리 은밀히 범죄하고 자기 죄를 아무리 교묘하게 발라 맞추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죄를 다 보신다. "내 눈이 그들의 모든 행위를 감찰하느니라" (17절). 그들은 자기 눈을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주시하지 않았으며 그를 경외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들도 그들의 죄도 그의 얼굴 앞에서, 그의 목전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은폐되지 못한다. 죄인들의 그 어떤 죄도 하나님께로부터 은폐될 수 없고 간과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잠 5:21; 욥 34:21; 시 90:8).

2. 하나님께서는 특히 그들의 우상 숭배에 몹시 노여워하신다(18절). 하나님의 전지하심이 그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시듯 그의 공의는 그들을 정죄하신다. "내가 위선 그들의 악과 죄를 배나 갚으리라." 이것은 그들이 죄값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의 배가 아니라 그들이 각오하는 것의 배이며 하나님이 이전에 행하신 것의 배를 말한다. 또는 "내가 그들의 악과 죄를 풍성히 갚으리라" 는 말씀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오랜 인내와 집행 유이를 남용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루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따지시는 죄악은 그들이 우상 숭배로 "하나님의 땅을 더럽혔다" 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기업으로서 이 권리를 획득해 놓은 땅을 소외시켰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 기업으로서 그 안에 살기를 기뻐하던 땅을 오염시키기까지 했다. 그들은 그 미운 물건의 시체로 그 땅을 하나님께 역겨운 곳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섬기던 신들이나 그 형상은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우리가 사람이나 짐승의 부패한 시체를 싫어하듯 하나님께서도 우상을 싫어하시는 것이었다. 우상은 미운 물건의 시체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상을 미워하시며 우리도 그와 같이 미워해야 마땅하다. 또는 이들 우상에게 바치던 재물을 가리키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땅은 이런 재물로 가득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딴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분격시킨 죄였다.

3. 하나님은 자기 진노의 도구들을 찾아내실 것이며 모으실 것이니 그 도구들을 그들에게 내려진 판결대로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 낼 것이다(16절). "내가 많은 아부와 포수를 부를 것이라." 즉 갈데아 군대는 어부같은 사술과 사냥꾼같은 힘으로써 그들을 꾀어들여 멸망시키는 방법을 많이 가지게 될 것이다. 갈데아 군사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든 간에 그들을 찾아낼 것이며 그들을 부지런히 추격하고 좇아가서 파멸시킬 것이다. 그 군대는 그들이 작은 산이나 암혈 등 어디에 숨어 있든지 그들을 찾아낼 것이며 함께 그들을 거기서 몰아낼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말씀의 유죄 판결을 피하려고 드는 백성에게 실시할 심판 방법은 다양하다. 그는 사람들을 자기 목적에 적합하도록 조종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부르면 들을 수 있는 범위 안에 그들을 장악하고 계셔서 원하실 때면 언제든지 그들 불러오실 수 있으시다.

4. 그들의 바벨론 노예 생활은 애굽에서의 종살이보다 더 쓰라리고 비참할 것이다. 그들의 주인은 더욱 잔혹할 것이며 그들의 삶은 더욱 쓰디 쓸 것이다. 이것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이 아주 혁혁할 것이며 게다가 애굽에서의 해방보다도 그들에게 더욱 환영받는 것이 도리라는 약속(14,15절)에 암시되어 있다.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은 그들에게 점차로 거의 부지불식간에 다가와서 그들을 노예로 만든 것이었지만 바벨론에서의 종살이는 돌연히 그들에게 임했으며 온갖 두려움과 약화된 상황을 가져 온 것이다. 애굽에서는 그들에게 고센이란 소유지가 있었으나 바벨론에서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애굽에서는 그들이 쓸모없는 종으로 부립을 받았으나 바벨론에서는 미움받는 포로로 혹사당하였다.

5. 그들은 경고를 받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들에게 내려진 이 심판으로 영화롭게 되실 것이다. 이들 심판에는 목소리가 있어서 다음 두 가지를 소리 높여 말한다.

(1) 그들에게 대해 교훈. 하나님이 그들을 징계하시는 때는 그들을 가르치시는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채찍으로 그들을 타이르고 계신다(20절).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는가? 도대체 자기가 만든 신이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모든 이성과 지각이 결여된 자가 있겠는가? 너희에게는 신이 있다. 너희는 그를 너희의 신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그런데도 너희는 과거처럼 신아닌 것을 너희의 신으로 삼을 만큼 어리석은 존재가 또 되려느냐?"

(2) 하나님께 대한 영광. 하나님은 자기가 집행하시는 심판에 의해 알려지실 것이다. 그는 먼저 그들의 죄악을 갚으실 것이며(18절) 그런 뒤 이번에 즉 이 한 번에 단연코 그들에게 그 손과 능을 알게 하실 것이다. 그들의 평화를 몇 번이고 중단시킨다는 게 아니라 이 한 번으로 내가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 즉 벌주는 내 손의 길이와 무게를 알리며 내 손이 얼마나 멀리 미칠 수 있으며 얼마나 깊이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알게 하리라. 그리고 그들은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 것이다." 그들은 그가 감히 다툴 수 없는 하나님이시며 모든 존재를 위협에 내어 주시며 약속과 함께 생명도 그들 속에 넣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Ⅱ.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자비를 예비하고 계신다. 선지자 자신과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소수 무리들을 격려하기 위해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암시가 여기에 나오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낯선 이방 땅으로 추방하시겠다는 말씀이 가혹한 투로 개진되었었다(13절). 그러나 그들이 이로써 자포자기에 몰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즉시 위로의 말씀이 뒤따른다.

1.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 날은 기쁜 날이요 그 때에는 그들을 흩었던 바로 그 손이 그들을 다시 모을 것이다(14,15절). 그들은 내쫓김을 당하나 포기되지 않으며 표류되지 않는다. 그들은 북방 땅 곧 강한 손으로 역류되고 포로되었던 땅과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 그들이 무리 속에 파묻혀 없어진 것같이 보이던 나라에서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아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며 그들을 거기에 정착시키리라." 앞에 나온 경고가 율법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약속과 일치한다. "그런즉 내가 그들이 싫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레 26:44).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라" (신 30:4). 그리고 그 다음 말씀(16절)은 하나의 약속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부와 포수 즉 메데인과 파사인들을 불러다가 뭇나라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을 찾아내어 고국으로 돌려보내게 하실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스룹바벨이나 다른 유대인을 가리킬 것이다. 이들은 유대인들을 낚고 사냥하여 귀환을 설득하였던 것이다. 아니면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사 그들이 올라가도록 하시기 위해 사용하신 모든 도구와 수단을 의미하였으니(대하 32:22 이하)유대인들도 처음에는 돌아오기를 꺼려했던 것이다. 그들은 바벨론에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여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는 것같이(신 32:11)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행하셨다(슥 2:7).

2. 그들의 바벨론으로부터의 석방은 몇 가지 이유에서 애굽에서의 해방보다 더 빛나고 기념할 만한 것이었다. 이 두 가지 해방은 다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었고 그들이 보기에 기이하였다. 이 두 가지가 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신다는 증거였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으로서 그에게 존귀와 영광을 드리며 영원히 기억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자비는 너무나 놀랍고 반가운 것이어서 전자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릴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자비는 다만 우리에게 옛 자비를 상기시켜 주고 그 일에 대한 우리의 감사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뿐이다. 자비가 일반 섭리의 모습으로 행해질 때 우리는 옛날이 오늘보다 더 나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의 팔이 짧아지기라도 한양(민 11:23)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말하던 기사가 어디 있느냐?" 고 묻고 싶어지며 나중시대 보다 월등한 기적의 시대를 소리 높여 요구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애굽 구출을 바벨론 구출보다 못한 것으로 잊으라고 비유적인 암시를 주고 있다. 전자는 능과 힘으로 행해졌고 이 후자는 만군의 여호와의 신으로 행해졌다(슥 4:6). 후자에는 전자보다 사유하시는 자비가 더욱 많았다. 왜냐하면 애굽의 노예 생활 보다 바벨론 포로 생활에는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는 시온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다는 것이다(사 40:2). 기적이 포함되는 자비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기적을 수반하지 않는 자비의 행위로서도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영화롭게 되시며 우리는 그를 영화롭게 해드려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우리 조상에게 베푸신 은총을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된다고 할지라도 특별히 오늘날 우리에게 내리시는 은총에 대해서도 우리는 감사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3.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에는 복된 개혁이 뒤따를 것이며 그들은 우상 숭배심을 효과적으로 치료받고 돌아올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해방을 완성시켜 줄 것이며 그들의 구원을 참으로 자비로운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땅을 미운 물건으로 더럽혔었다(18절).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그런 행동으로 말미암아 따끔한 맛을 보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겸손하게 될 것이다(19-21절).

(1)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걸 고백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곤궁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곤궁시의 친구가 참 친구인 고로). 여호와는 "나를 지탱시키고 위로하시는 나의 힘이시며 나를 보호하고 숨겨 주시는 나의 보장이시며 환난날에 내가 도망해 들어 갈 수 있는 나의 피난처시다" (19절). 스스로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많은 사람들이 필요(곤궁)때문에 하나님께로 물리게 된다는 사실을 주시하자. 형통하던 날에는 하나님을 무시하던 자들도 환난날에는 하나님께로 기꺼이 도망하게 될 것이다.

(2) 그들은 이방인의 회개로 인해 하나님께 돌아가고 싶은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열방이 땅 끝에서 주께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라는 각성이 일어날 것이다. 아니면 자기들의 우상 숭배로 스스로 이방인같이 되었던 유대인들이(나는 차라리 이렇게 이해한다)회개와 개심을 통해 땅 끝에서 주께 이르를 것이며 그들이 쫓겨갔던 모든 나라에서 자기 의무와 충성으로 돌아 설 것이다. 선지자는 이런 희망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기쁨을 이기지 못해 하나님께 자기의 견해를 되돌려 드린다. "여호와 나의 힘 나의 보장이시여! 주께서 땅 끝으로부터 주께 돌아 올 무수한 자들 곧 유대인 참회자와 이방 개종자들을 나로 하여금 전망케 하셨으니 나는 이제 편안하나이다" 라고 고백한다.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은 딴 사람이 하나님께 이르고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되면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하자.

(3) 그들은 선조들의 어리석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자기 조상들의 죄 때문에 아픔을 당하고 있는 자들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울린다. "우리 열조의 계승한 바는 그들 스스로가 기대하고 자손에게 호언장담했던 만족이 아니라 허무하고 망탄하고 무익한 것 뿐이다. 우리는 우리 조상이 자기들의 우상 숭배로 기만당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우상 숭배는 겉보기와 달리 그 약속을 책임지지 못하였고 보증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우리가 우상숭배와 이 이상 더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고 그들이 고백하는 것은 적절하다. 어떤 자들이 죄를 섬기는 중에 맛본 실망과 나쁜 결과가 다른 사람들이 행악의 발걸음을 멈추는데 도움을 준다면 다행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4) 그들은 자기들의 우상 숭배에서 스스로 추론하게 될 것이다. 죄에는 큰 불합리성이 있는데 그것을 이성적으로 각성하는 데서 유래하는 회개는 진지하고 영속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이렇게 추론할 것이다(그리고 그것은 잘하는 추론이다). "인생이 어찌 신 아닌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겠나이까? 실제로는 신이 아니며 자기 공상의 소산물과 자기 손의 제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을 자기의 신으로 삼을 만큼 어리석고 이성이 결여된 인간이 있겠나이까? 인간으로부터 먼저 받기만 했을 뿐 결코 신이라고 자부할 수 없는 것한테서 신적 축복과 은총을 기대할 정도로 인간이 망녕될 수 있으며 오성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겠나이까?"

(5) 그들은 그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서 그의 손길을, 그의 말씀 속에서 그의 이름을 알게 된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은 그의 손에 대해 알게 되며 이 일로써 그의 이름을 알게 되고 이 모든 사실을 표명하게 될 것이다(21절). 이번에 즉 드디어 그들은 선지자들의 모든 수고로 알게 되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우둔하여 실험적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은혜의 강력한 손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이름을 계시된 대로 올바로 알 수 있다.

4. 그들이 포로 생활에서 구출되는 일은 메시아께서 행하실 큰 구원의 예표와 상징이 될 것이다. 메시야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실 것이다(요 11:52). 그리고 이것은 출애굽의 구원을 무색케 하고 심지어 그 구원을 까마득히 잊게 할 정도로 아주 뛰어난 구원이다. 흑자는 많은 아부와 포수를 여기에다 적요하여 복음 설교가로 해석한다. 복음 전도자는 복음의 그물로 영혼을 에워싸며 모든 산과 모든 작은 산에서 영혼을 찾아내며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확보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였다. 그 때에는 열방이 하나님께 이르렀으며 그 중 일부는 땅 끝에서 이르렀고 말 못하는 우상의 섬김에서 하나님의 예배로 전향하였다.

 

16:15 없음.

 

16:16 없음.

 

16:17 없음.

 

16:18 없음.

 

16:19 없음.

 

16:20 없음.

 

16:21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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