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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썩은 허리띠의 뜻(예레미야 13:1-11)

Ⅰ. 여기에는 선지자가 얼마간 착용하던 허리띠를 유브라데 강 근처의 암굴에 숨겨 둠으로써 못쓰게 만든 표적이 나온다. 선지자가 표적을 들어 가르치는 일은 항용있는 일이었는데 이는 우준하고 생각없는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 앞에 제시된 일을 깊이 생각하고 믿게 하며 감동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1. 그는 일정 기간 동안 베띠를 착용하도록 지시받았다(1,2절). 그것이 아마포였고 또 허리에 속했다(원뜻:허리에 꼭 부착되다)고 하기 때문에(11절) 그가 옷아래 띠를 매었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허리띠는 이름과 찬미를 위해 착용되던 터였으므로 옷 위에 매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그 띠는 장교들이나 오늘날 동방 국가에서 흔히 매는 장식띠였을 것이다. 그는 그 띠를 물에 두어서는 안 되었고 그대로 매어야 했는데 이것은 그 띠가 더 강해지도록 하여 부패의 가능성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아마포는 빨면 입는 것 못지 않게 많이 닳는다. 아마 이 때는 빨지 않으면 상당히 오래 갈 매우 양질의 세마포였을 것이다. 젖지 않았으므로 이 띠는 더 빳빳하고 굽지 않았을테지만 그는 그럭저럭 이 때를 착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선지자는 세례 요한과 마찬가지로 결코 부드러운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마포 띠를 맨 모습은 아주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는 아마 가죽띠를 매곤 하였을 것이다.

2. 이 베띠를 얼마간 착용한 뒤 그는 가서 바위틈에 그것을 감추어야 했다. 그 바위는 물가에 있었기에 물이 차면 베띠는 물에 젖을 것이고 물이 빠지면 다시 건조해 질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베띠는 언제나 젖어 있든지 언제나 마른 상태로 있는 것보다 더 빨리 썩게 될 터였다.

3. 여러 날 뒤에 그는 그 띠를 찾아 봐야 했고 그 띠가 아주 삭아서 넝마가 되버려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된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7절). 백성들이 보고 관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더 나아가지 않게끔 꿈이나 환상으로 행해진 것인지에 대해 옛부터 해석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어 왔다. 예레미야 늘리알 가 유브라데 강에 이르는 긴 여행을 두 번씩이나 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번 왕복에만 수주일씩 걸리고 그렇게 다녀온다 하더라도 집에 오면 병이 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개의 해석가들은 갈데아 포로지에서 예루살렘까지(겔 8:3) 거기서 다시 갈데아까지(겔 11:24) 왕래한 에스겔의 경우처럼 이 여행이 환상에 의한 것이란 생각에 기울어진다. 그리고 이 표적의 설명도 공시된 것이 아니어서 백성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선지자에게만 주어졌다(8절)는 점을 간과 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예루살렘과 바벨론 간의 교통이 무척 편리했을 것이란 점과 유브라데스 강 유역의 일부 지방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약속의 땅의 변경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수 1:4)을 감안하면 선지자가 이 두 여행을 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도 별 무리가 없을 줄 안다. 왜냐하면 "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불순종하는 백성의 고집을 수치스럽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자기 하나님께 대한 그의 순종심을 표징으로 입증하였을 것이다. 그가 여행하면서 겪은 신고(신고)는 그들이 우상 숭배로 자기들을 타락시키면서 취한 수고와 그들의 슬픈 포로 생활을 상징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바벨론은 이스라엘 민족의 노예의 굴레를 쓰게 될 곳이었고 유브라데는 바벨론의 강이었으므로 이 표적에서는 구체적인 하나의 상황이 되어 있다.

Ⅱ. 이 표적이 의미하는 것. 예레미야는 어떤 희생과 수고를 들여서라도 이 백성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감동감화시키려고 하였다. 목사들은 영혼들의 유익을 위하여 소비하고 소비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표적의 설명에 접하게 된다(9-11절).

1. 두 가지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대하여 이 띠와 같았다.

(1) 하나님은 그들과 언약을 맺으셨고 고제하셨다. "띠가 사람의 허리에 꼭 접착되어서 그를 두르고 있듯이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잡으로 내게 속하게 하였노라." 그들은 하나님께 친근한 백성이었다(시 48:14).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였고 그의 특수한 백성 곧 제사장으로 나라로서 딴 어떤 민족보다 우선적으로 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집 뜰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것과 자기와 맺은 그들의 언약을 제사에 의하여 자주 인준할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셨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누가 생각해도 하나님께서로부터 이탈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 밀착되게 되었다.

(2) 하나님께서는 이 일로써 그 자신의 명예를 의도하셨었다. 하나님이 그들로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신 것은 허리띠가 사람에게 장식물이 되며 특히 에봇의 경교한 띠가 대제사장에게 영화로움과 아름다움이 되었듯이(출 28:39 이하; 39:2 이하), 그들로 하여금 자기의 이름과 칭예와 영광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백성으로 삼는 자들 자신의 찬미가 되도록 하시려는 의도를 지니고 계신다는 데 유의하자.

[1]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며 그러는 가운데 그의 영광을 도모하고 따라서 자기들의 신앙 고백을 장식함으로써 그에게 영예를 들려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된 의무이다.

[2]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가운데에서, 또 자기 백성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존귀케 되었다고 여기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행복이 된다. 그들에 하나님 자신의 백성답게 처신하는 한 그는 그들을 기뻐하시며 그들과의 관계를 자랑으로 여기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예로운 칭호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는 칭호를 즐겨 택하겼던 것이다(대상 17:24). 우리가 하나님께 찬미가 되지 않으면서 그의 백성으로 자처한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짓이 아닐 수 없다.

2. 그들은 우상 숭배와 여타 범죄로써 하나님에게서 스스로 떨어져 나왔고 멀찍이 물러나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께 갚아드려야 할 존귀를 그에게서 강탈하였고 스스로 자신을 진토 속에 또 이방의 땅에 매장해 버렸으며 열방 속에 뒤섞여 버렸다. 그들은 너무나 훼손되고 후패하여 쓸데없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와는 달리, 그 이상 더 하나님의 이름과 칭예가 되지 못하였다. 그들은 행하라는 의무와 존중하라는 특권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로 하여금 계속하여 하나님께 긴밀히 속하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였고 그 생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그들은 자기들이 마음에 두던 만족 특히 예배에서의 만족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려고 하지 않고 딴 신들을 좇아 그를 섬기며 그에게 절하였다. 그들은 유브라데 강쪽에 있는 이방 나라의 잡신들에게 홀딱 빠져서 자기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전혀 쓸모없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이 때 즉 이 썩은 띠와 같이 되어 자신의 신앙에 장식이 아닌 수치가 되었다. 그런 띠가 이토록 못쓰게 되고 그런 민족의 비참하리 만치 타락하였다는 것은 유감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심판으로써 이들 백성을 자신으로부터 떼놓으려고 하셨으며 그들을 포로로 잡혀 가게 하려고 하셨다. 그는 그들의 모든 아름다움을 지워버리시고 그들의 우수성을 말살시켜셔서 그들을 다 헤진 세마포 띠같이 되게 하시려고 하였다.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비참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이 같은 모양으로 썩게 하실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교만의 요체가 되는 것을 박탈하시고자 하였다. 그들이 자랑하고 신뢰하는 것을 그들에게 빼앗으려고 하신 것이다. 그들이 자랑하던 것을 손상시키고 더럽히실 뿐만 아니라 이 세마포 띠같이 완전히 훼멸시키실 터였다.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교만을 말씀하시며(지방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지, 낙토를 자랑하였다)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는 성전과 왕궁이 있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민은 딴 어느 성읍의 백성보다 한층 삐겼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갖는 교만의 정도를 주목하신다. 이런 자의 교만과 저런 자의 큰 교만을 다 주시하신다. 그리고 그는 그 교만을 썩게 하실 것이며 더럽히실 것이다. 교만한 자가 넘어질 것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이다(벧전 5:5).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교만을 썩게 하실 것이다. 즉 자기의 은혜로써 우리의 교만심을 억제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자만심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만드시고 히스기야처럼 우리 마음의 교만 즉 교만을 인하여 우리를 낮추시며 그 교만이 아무리 크더라도 치료해 주신다. 이와 같이 교만을 썩게 하심은 영혼을 만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낮추시는 섭리로써 우리 마음이 겸손하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복이다.

또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랑하는 것을 썩게 하실 것이다. 우리가 재주이라 자질이나 지식이나 권세 따위의 외적 특권을 자랑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못쓰게 만드신다고 해도 그는 공정하시다. 성전조차도 예루살렘의 자랑꺼리가 되자 손상되고 회신되었던 것이다. 모든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낱낱이 낮추는 것은 하나님의 명예가 된다(욥 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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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 병의 뜻(예레미야 13:12-21)

Ⅰ. 여기에는 이 백성을 아주 취하게 만들 심판이 위협적으로 경고되어 있다. 이 숙명은 비유로서 그들에게 선언되고 있는데 이는 백성들이 보다 주목하고 보다 많은 감동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12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모든 병이 포도주로 차리라 하셨느니라." 즉 죄악으로써 자신을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으로 삼은(롬 9:22) 자들은 병이 포도주로 넘치듯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영광을 위해 예비된 자비의 모든 그릇이 자비와 영화로 가득 차게 될 것에 반하여 그들은 여호와의 분노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사 51:20). 그리고 그들은 병과 같이 터져서 산산조각이 나게 될 것이다(마 9:17). 또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들의 머리는 병이 포도주로 가득 차듯 술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13절에서 "그들은 잔뜩 취하게 될 것이라" 고 설명하기 때문이다(사 51:17 과 비교해 보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통용되던 잠언으로 다양하게 적용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예레미야가 이 속담을 빌어 나타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이런 말을 하는 그에게 조소를 보냈던 것이다. "모든 병이 포도주를 찰 줄을 우리가 어찌 알지 못하리요? 이 말에 이상한 점이 어디 있느냐? 우리가 전에 알지 못하던 점이 있거든 우리에게 말해 보라" 고 그들은 비양거렸다. 그들은 이 속담을 자기들의 술취함에 대한 비난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예레미야에게 이와 같이 민감한 역정을 내었을지도 모르며 이 말씀의 의도 중 일부는 아마 그런 데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포도주 잔을 사랑하였다(우리 성서:건포도 떡을 즐겼다, 호 3:1). 그들은 자기 왕으로 하여금 술병으로 병나게 하였다(우리 성서: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호 7:5). 그들의 파숫군들은 모두가 술을 섬겼다(사 56:12). 그들이 사랑한 자들은 자기들에게 포도주에 대해 예언한 거짓 선지자들이었다(막 2:11). 이 거짓 예언자들은 쾌락의 술병이 바닥나지 않을 것이므로 즐거워하라고 염하였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는 말한다. "너희의 병은 포도주로 가득 차게 될 터이나 그것은 너희가 원하던 그런 포도주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선지자의 말씀 가운데 모종의 신비적 의미가 들어 있으며 그것은 자기들에게 대해 길조가 아닌 흉조를 예고하는 것이란 점을 눈치챘었다. 그런데 선지자는 자기의 말이 의도하는 바도 그렇다고 자인하고 있다. 그가 의미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었다.

1. 그들은 술취한 자만큼 현기증이 나게 되리라는 것. 술주정뱅이가 술통이나 술병에 비유되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술이 안에들어 갈 때에는 분별과 지혜와 덕 따위의 선한 모든 것이 밖으로 나가는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본문에서 그들로 모두 잔뜩 취하게 하실 것이라고 위협적인 경고를 하신다(13절). 그들이 하는 모든 계획은 혼란으로 뒤죽박죽이 될 것이며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은 더듬거리게 되고 그들의 모든 행동도 비틀거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이며 자기들이 해야 할 말과 해야 할 행동은 더 더구나 모를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리던 모든 향락에 염증을 느끼게 될 것이며 술취한 자들이 행동하는 것과 같이 그 모든 것을 던져 버리게 될 것이다(욥 20:15 참조). 그들은 잠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스스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숙취로 이성이 마비된 자와 같이 그들은 죽은 듯 누워 있다가 주위의 모든 자에게 경멸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일은 그들 중의 몇몇 사람이 당할 처지가 아니라-정신이 말짱한 자라도 있었다면 딴 사람이 당할 처지가 아니라-자기 조상 다윗과 같아야만 했던 다윗의 위에 앉은 왕들조차 이렇게 취하게 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자처럼 자혜로웠는데도 말이다. 거짓 선지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인도한다고 큰 소리치던 제사장과 선지자들까지도 어느 누구에 못지않게 정욕에 탐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 역시 딴 어떤 자와 마찬가지로 지각을 박탈되게 됨은 지당한 일이다. 아니, 그 땅과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취기가 상당히 심해져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멸하시려고 하시는 자를 얼빠지게 만드신다는 점을 잊지 말자.

2. 현기증이 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충돌하게 되리라는 것.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술 잔에 대취하여 혼수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며 스스로를 구하지도, 남을 돕지도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완전한 광란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자기 자신도 해치게 되고 서로 간에도 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14절). "내가 사람으로 자기 형제에게 충돌하게 하겠노라." 술먹고 저지르는 우행 뿐만 아니라 취중의 난동도 그들을 파멸시키는 데 이용될 것이다. 술취한 자들은 왕왕 다투며 그 때문에 술꾼에게는 재앙과 근심이 따른다(잠 23:29, 30). 따라서 술취하는 자의 죄는 동시에 그의 형벌이 된다. 본문에서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가정과 이웃에게 악한 영을 보내셔서(삿 9:23) 그들로 서로 투기하게 하며 악의를 품게 하셨으므로 부자간에도 다툼이 일어나서 찢어 죽일 듯이 하였으므로 그들은 자신을 공동의 적에게 손쉬운 먹이로 내어 주게 된 것이다. 그들을 대적하는 이런 칙령이 발포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면 관용치 아니하며 아끼지 아니하고 멸하리라" 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그들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관용치 않으며 아끼기 아니하고 멸하려 들기 때문이다(합 2:15, 16 참조).

Ⅱ. 여기에는 받아들이기만 하면 이런파멸을 방지할 좋은 권고가 나온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손아래서 스스로를 낮추는 일이다. 그들이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교만하지 말지어다" 란 말씀을 그들에게 말씀하시려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성토하신 죄 중의 하나였다(9절). 그들은 스스로 억제하여 이 교만의 죄를 버려야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성토의 기치를 내리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예언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만하지 말지어다" 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스스로가 너무 선하기 때문에 그런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마음은 "거만하지 말라. 고집을 부리지 말라" 는 말씀에 발끈하고 일어나거나 그 말씀을 전하는 사자를 경시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자기 섭리로 우리에게 나오셔서-하나님은 섭리를 통하여 말씀하신다-경고하실 때 우리는 태연해서도 안 되며 그가 치실 때 참지 못해서도 아니 된다. 왜냐하면 이 양자의 기저에는 교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말씀하신 분은 그 권세가 다툴 여지가 없으시고 그 능력은 당할 길이 없으신, 크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가 하시는 말씀에 허리를 굽혀야 하며 늘 하던 대로 교만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이다. 그들이 교만해서는 안 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하나님은 높여야 했으며 그를 존귀케 하는 방법을 연구해야만 하였다. "너희 우상이나 딴 잡신에게나 아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유죄한 자로 인정하며 너희 자신의 불의에 대한 형벌을 받아들임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16절). 진실된 회개와 개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것은 우리가 당위의 길에서 생활하기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돌리기 시작하고 그들의 명예를 우리의 주된 목표로 삼아 그것을 구하기 시작할 때라야 다소 훌륭한 성공을 거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 네게 아직 존속하고 있는 동안에 이 일을 속히 행하라.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그가 네게 대한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너는 이 일을 행하라. 심판이 임하는 때에는 네가 도피할 길을 찾지 못하리라." 흑암은 회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하지 않는 자들의 분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네째 천사의 대접에 의해 큰 태움에 태워진 자들이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않았을 때 그 다음 대접은 그들을 어두움으로 채워버리고 말았던 것이다(계 16:9, 10). 본문에서 경고하는 흑암을 위협적으로 악화시키는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그들이 모면하려고 시도하면 그것은 자신의 파멸을 재촉하게 될 뿐이라는 것. 그들이 흑암한 산을 넘으려고 죽자살자 서두르고 있을 때 그들의 발이 그 산에 거치게 될 것이며 그들은 넘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추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기 길이 통행 불가의 도로임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그들이 자기길을 십이분 선용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초개처럼 여긴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뒤따르고 있는 심판이 그들을 따라 잡게 될 것이다. 그들의 길은 어둡고 미끄럽다(시 35:6). 그러므로 일이 그와 같은 극단에 처하게 되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와 화해하며 그의 자비로 우심에 매달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공의로 우심으로부터 떨침을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2) 보다 나은 사태에 대한 그들의 소망은 실망을 맛보게 되리라는 것. "너희가 빛을 바라고 위안과 구원을 찾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빛을 매우 음울하고 무서운 사망의 그늘로 변하게 하시며 흑암이 되게 하실 것이다. 애굽의 흑암이 바로 이러하였으니 그 흑암은 바로왕이 자기 마음을 계속 강퍅하게 하였을 때 혼줄이 나도록 하기위한 흑암이었다. 회개치 않는 죄인의 기대는 그들이 죽으면 소멸되고 말며 그들이 만족을 얻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데 사라지는 것이다.

2. 그들은 스스로를 비하시키며 참괴스러워해야 했다. 왕과 왕후가 대권을 소유한다고 하나 이 일로부터 면제되지는 않을 것이다(18절). "왕과 왕후에게 고하라. 그들이 비록 큰 자라 하나 진정한 회개에 의하여 스스로 낮추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백성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하라." 세상에서 남보다 높임을 받고 있는 자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스스로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가장 높은 자 보다 더 높이시며 왕들과 왕후들이라도 그에게 책임적인 존재에 불과한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 낮추어 앉지 않으면 안 된다. 앉아서 무엇이 임하고 있는지 살펴 생각해야 하며 티끌에 앉아서 애곡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낯출 효과적 조치를 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관은 내려질 것이며 네가 자랑하고 의뢰하던 존귀와 권력이 박탈될 것이며 네 영광의 면류관 곧 네 아름다운 관 또는 영화로운 면류관이 내려질 것이다. 네가 포로로 끌려가게 되면 네 주권과 그 모든 표징이 어디 있겠는가?" 스스로 낮추는 자는 결코 내려지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며 그런 면류관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은 송축받을 분이시다.

Ⅲ. 그들이 계속하여 교만하고 겸비치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몇 가지 논증으로 이 교훈의 시행을 뒷받침하고 있다.

1. 그들의 교만은 선지자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슬픔이 될 것이다(17절). "너희가 이를 듣지 않으며 말씀에 순복하지 않고 교만을 계속 고집하면 내 눈 뿐만 아니라 나의 심령도 은근한 데서 곡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백성의 외고집은 하나님의 두려우심과 영혼의 가치를 다소나마 알고 있는 목사들의 가슴을 찢어놓는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사랑 많은 목사들은 죄인의 죽음을 바라기는 커녕 생각하기만 해도 전율을 금치 못한다.

선지자의 슬픔은 숨길 수 없었으며(그의 심령이 곡하였다) 가식이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살피시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할 은밀한 곳에서 통곡하기를 바랐다. 그는 자기의 공중 설교뿐만 아니라 개인적 기도에도 운물을 뒤섞었고 저들의 형편을 생각만 해도 우울해져서 완전히 은둔자가 되어 버리고만 싶었다. 그를 슬프게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1) 그들의 불회개를 목도하는 것. "내 심령이 너희 교만 즉 거만과 외고집과 헛된 자만심을 인하여 곡할 것이다." 타인의 죄는 우리가 슬퍼할 재료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우리가 고칠 수 없는 일을 인하여 애곡해야 하며 우리가 그 일을 고칠수 없기 때문에 더 더욱 슬퍼해야 한다.

(2) 그들의 재난을 시정하고 구제할 가망이 없게 됨을 보는 것. "내 친척과 친구와 이웃이 고통 중에 있다고 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양무리 즉 그의 백성과 그 총장의 양떼가 사로 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우리는 항시 하나님의 영예가 수난을 받고 그의 나라가 약화되는 일을 극히 슬퍼해야 한다.

2. 그들의 교만은 자신의 불가피한 파멸이 될 것이다(19-20절).

(1) 그 땅은 황폐케 될 것이다. "남방의 성읍들은 봉쇄될 것이다." 유다 성읍들은 가나안 땅 남부 지역에 놓여 있었다. 이 성읍들은 적국의 물샐 틈없는 포위를 받아 아무도 출입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또는 이 성읍들은 그 주민에게 완전히 유기되어 들어가고 나오는 자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혹자는 이 말씀을 유다 남방에 있던 애굽의 성읍에 대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그들이 원군을 기대하던 지역들도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며 그들에게 접근해 오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2) 그 주민들은 이국 땅에 급송되어서 노예로 살게 될 것이다. "유다는 잡혀가게 될 것이다." 일부 백성은 이미 끌려다 있었으며 그들은 이로써 예언이 응한 것으로 치고 나머지는 계속 본토에 남게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유다는 다 잡혀가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과 완전히 끝맺음을 하려고 하셨다. "온전히 잡혀 가도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으므로 시드기야 치세시에 있은 마지막 포로 때에는 이 일이 사실화되었다.

(3) 이 일을 행할 적군은 이제 목첩에 있었다(20절). "너희 눈을 들어라. 내게는 그들의 행군이 보인다. 너도 원한다면 북방에서 즉 갈데아 땅에서 오는 자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얼마나 신속히 행진하며 그 모습은 얼마나 흉맹한지 보아라." 이 말씀에서 그는 왕 또는(대명사가 여성형이므로) 성읍이나 국가를 상대로 말씀하고 계신다.

[1] "네 책임으로 위탁되었고 또 네가 의당 보호해야 할 백성을 너는 어찌 하려느냐?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너는 그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어디로 데려 갈 수 있으냐? 그들은 이 굶주린 늑대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느냐?" 위정자들은 자신을 목자로 간주하고 자기 책임 하에 있는 자들을 양떼로 여겨야 한다. 그들은 백성을 보살피는 일을 맡은 자들이므로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민중을 아름다운 양떼로서 즐거워해야 하며 국가적 위난시에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심사숙고 해야 한다. 자녀를 소홀하게 내버려두어서 선한 교육의 결핍으로 멸망당하게 하는 가장이나 교인들을 돌보는 일에 소홀한 목사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시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하며 그 물음을 들어야 한다. "먹이라고 네게 준 떼 곧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네가 받았던 양떼는 굶주려있고 야수에게 노출된 채로 있지 않느냐? 목자장이 나타날 때 너는 그들에게 대한 설명을 어떻게 하려느냐?"

[2] "하나님의 처사가 공평치 못하다고 반대할 말을 너는 가지고 있느냐? 그가 너를 벌하실 때(우리 성서와 다름:역주)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21절) 하나님께서 네게 내리시는 모든 일로도 공의로우시다는 말 외에 아무 것도 너는 말할 수 없다." 벌받지 않으리란 희망에서 우쭐거린던 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벌하심을 보고 자기들이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들의 얼굴은 얼마나 당혹감으로 뒤덮이겠는가!

[3] "너는 네 자신이 어리석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것이냐? 너는 갈데아 인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들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그들에게 너를 지배할 수 있는 권세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너는 그들이 네 자신의 수령과 머리가 되도록 가르쳐 주었다(흠정역)." 히스기야가 바벨론 왕더러 와서 약탈하라고 유혹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믿고 의지할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데도 구태여 외국에 동맹을 구하고 그 동맹국을 의뢰하는 자들은 자신을 위해 채찍을 준비하고 자기 인방에서 자기의 지배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 줄 뿐이다.

[4] "너는 문 앞에 이르른 환난을 어떻게 견디려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그 고통은 네가 피할 수도, 떨쳐버릴 수도 없는 지극한 고통이요 슬픔이다. 이 고통은 전에 예기치도 못한 것이며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는 고통이다. 출산의 기쁨은 나중에 해산의 고통을 잊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너의 고통은 구로하는 여인의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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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계속되는 이유(예레미야 13:22-27)

Ⅰ. 여기에는 앞에서와 같은 파멸이 경고되고 있다. 유대인은 포로가 될 것이며 구걸과 속박은 온갖 불행 속에 떨어지게 될 것이란 말씀이다. 그들은 의복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들의 치마는 덮을 웃옷이 없어서 드러날 것이며 그들의 발뒤꿈치는 신발이 없어 드러날 것이다. 당시에는 전쟁 포로를 그와 같이 취급하였다. 유대인들은 벗은 몸 벗은 발로 끌려갔었다(사 20:4). 이렇게 낯선 나라로 끌려가서도 그들은 사막 바람에 불려 가는 초개같이 흩어지게 될 테지만 아무도 그들을 모아 다시 데려오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초개는 불 아궁이에 들어가는 신세를 면하더라도 바람에 날려 가게 된다. 죄로써 스스로를 초개와 같이 만드는 자들은 한 가지 심판에 겨우 살아남더라도 또 다른 심판에 날려 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모든 장신구를 빼앗기게 될 것이며 수레 위에 실린 창녀처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26절). 그들은 자기들의 교만을 드러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수치를 드러내실 것이어서 교만을 열애하였던 자들은 바로 그것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Ⅱ백성들이 이 파멸의 원인에 대해 제기하는 물음(22절)이 여기에 나온다.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 적절한 대답을 할 줄 아신다. 비록 사람들이 끝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그 심중의 말에 적절한 대답을 하신다. 예수께서는 저희 생각을 아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던 것이다(마 9:4).

1. 이런 의문은 하나님과 언쟁을 벌이며 그의 징계를 받지 않으려고 거부하는 죄인의 마음에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동 속에서 하나님을 이토록 격노케 할 만한 이유를 찾아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감히 하나님을 격노케 할 말조차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자기들을 정도이상으로 벌하시기라도 하셨다는 듯이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탓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당하는 재단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러 눈감으려 들지 않는 이상 환히할 수 있는 문제였다.

2. 이 의문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죄인의 마음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언제고 간에 회개의 생각이 마음속에 일어나기만 하면 ["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8:6) 어째서 내가 고난 중에 있는가? 하나님께서 왜 나와 다투시는가?" 하고 말하면서]-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주목하시고 성령에 의하여 즉시 깨달음을 얻게 해 주신다. 하나님은 죄를 발견하게 하셔서 회개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다.

Ⅲ. 이 물음에 대한 해답. 하나님의 말씀은 의로우시며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그가 의로우시다고 인정치 않을 수 없게 만드신다. 그러므로 그는 죄인의 죄악을 차례로 그들 앞에 나열하신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는고? 하고 묻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 모든 일이 자기들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1. 그것은 그들의 큰 죄악 때문이다(22절). 하나님께서는 사소한 잘못을 기화로 그들을 치시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이제 그들을 벌하시게 된 그들의 죄는 특급 범죄이며 그 죄질이 매우 악하였다. 그 점이 그들의 죄를 더욱 악화시켰다. "네 죄악이 많으므로"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들이 온갖 종류의 죄악을 범했으며 자주 반복하고 자주 빠져 든 범죄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흑자는 보다 크고 극악한 죄보다, 작더라도 많은 죄를 더 위험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경우에든지 우리는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가 누구냐?" 고 말할 수 있다(시 19:12).

2. 그들은 그들이 죄를 고집한 때문이다. 죄악은 너무 오래도록 그들의 몸에 베어 있어서 그들이 죄를 청산할 희망은 거의 없었다(23절). 에디오피아 인은 날 때부터 검으로 표범은 그 껍질이 얼룩무늬로 짜여져 있다. 때는 묻어도 빨아서 없앨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발색도 변하게 할 수 없는 터에(마 5:36) 피부색은 더욱이나 어찌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이 백성을 교화시키고 개심시킨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1) 그들은 오래도록 악에 익숙하였다. 그들은 악한 일을 행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죄 중에서 교육받고 양육되었다. 그들은 악행의 견습 기간과 수련 기간을 채우고 악행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들은 너무나 변함없이 악행을 지속하였으므로 악은 제 2의 천성이 되어 버렸다.

(2)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선행을 하도록 시키는 일은 포기하였고 그것은 그들이 노리던 바였다. 선지자들은 백성에게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라고 설득하였으나 성공을 이루지 못하였다. 죄의 관습은 죄로부터 회심하는 데 매우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뿌리 깊은 고질병은 치료가 어렵다고 대게 생각하는데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행악에 익숙해왔으므로 그들이 회개하고 개과천선하여 선을 행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죄에 장기간 길들여진 자들은 두려움과 수치감이란 속박마저도 떨쳐버린 자들이다. 양심이 마비되는 반면에 죄의 습관은 확고해진다. 악습은 명령권자로 자처하고 나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은혜에 투신하기를 장기간 거절해 온 자들을 그들 자신의 정욕에 투신하도록 던져두시더라도 그것은 공정하신 처사이다. 죄는 영혼을 검게 하는 것이요 영혼을 기형으로 만드는 원흉이다. 죄는 영혼의 반점이며 영혼을 퇴색시키는 것이다. 죄는 우리에게 자연스런 것이다. 우리는 죄 중에서 형성되고 죄 중에서 낳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을 깨끗게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구스인의 피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전능하신 은혜이다.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신실하게 그 은혜를 활용하는 자들에게는 그 은혜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3. 그것은 그들이 진리의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헛된 것을 의지한 때문이다(25절). "흩어 버리고 몰아내는 이것이 바로 네 응득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 곧 내가 줄과 자로 제어서 네게 할당한 형벌이다. 이것은 이 세상의 불행 중 네가 받을 몫이다. 이 형벌을 얘기하고 각오하라. 그것을 모면하려고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네가 나를 잊어버린 때문이다. 네가 나한테 받은 은총과 내게 대한 의무를 망각한 때문이다. 너는 이들을 인식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았다. "일찍부터 우리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이 희망과 행곱의 시작이요 거룩한 생활의 출발이듯이, 모든 죄의 밑바닥에는 하나님께 대한 망각이 깔려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였으며 우상과 육신의 완력과 애굽과 앗수르와 네 거짓된 마음의 자화자찬을 믿고 의지하였다." 하나님을 버리는 자들이 무엇을 신뢰하든지 간에 그들은 자기들의 신뢰하던 것이 상한 갈대, 터진 웅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4. 그것은 그들의 우상 숭배 즉 영적 간음 때문이었다. 이 영적인 음행의 죄는 질투의 하나님을 가장 격노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수치스런 죄를 범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므로(27절). 치욕적인 재난을 당하게 되었다(26절). "나는 너의 간음을 보았노라. 네가 이방신들을 터무니없이 애호하며 그 신들에게서 만족을 얻고 싶어 어쩔줄을 모르며 심지어 그것들에게 야릇한 소리를 발하기까지 하는 것을 보았노라. 그리고 네 음행의 비루한 것을 보았노라. 네가 뻔뻔스럽게 음행을 하고서도 마음에 흡족해하지 못하여 들의 작은 산위와 높은 산당에서 열심히 우상 숭배하는 것을 보았노라. 이것이 바로 너 예루살렘에 대하여 화 아니 많은 양화를 통고하게 된 이유이다."

Ⅳ. 이 마지막 절에는 전반적인 문제에 대한 자애어린 충고가 나온다. 이 백성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행하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판정이 내려졌다곤 하나(23절)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으므로 그는 여전히 그들을 설득하여 회개시키려고 하신다(27절).

1. 그는 일 그 자체에 대하여 그들과 논하고 있다. "네개 정결하게 되겠느뇨?" 회개와 믿음과 전체적인 개혁에 의하여 정결히 된다는 것은 죄로 더렵혀진 자들의 큰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자. 죄인들이 깨끗하게 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깨끗히 되지 않으려는 데 있다. 이 점에서 그들의 행동은 극히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너는 정결하게 되지 않겠는뇨? 정녕코 너는 결국 설득을 받아들여 씻김을 받고 정결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하는 것이 네 자신을 위해 지혜로울 것이다." 이 같은 그의 권면이 자애롭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2. 그 시기에 관하여 논하고 계신다.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하나님께서 죄인의 참회와 회심을 갈망하시며 그들의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게 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나타내는 실례이다. 그러나 언젠가 하지 않으면 영영 망하게 될 정도로 꼭 필요한 일을 차일피일 미룬다는 것은 죄인의 놀라운 어리석음에 대한 본보기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결코 깨끗해지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아직은 안 된다고 한다. 그들은 보다 편리한 시기로 그것을 미루면서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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