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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

하나님의 백서에 대한 격려 (이사야 43:1-7)

본장은 앞 장의 끝 부분과 여백하게 연결되어 있으나 매우 놀랄 만한 것이다. 앞에서는 야곱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길로 행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과, 그가 그들의 불순종을 징계하셨을 때 그들이 완악하여 그것에 유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이제 흑자는 하나님께서 완전히 그들을 버리고 멸하시는 일이 뒤따르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다음 말은 그렇지 않다. "야곱아! 이스라엘아!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비록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길들여지지 않고 선도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은 계속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돌보시려 할 것이며, 그 나라 전체는 계속 긍휼 아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사람의 악함으로 인해 한층 더 혁혁하게 나타나게 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느니라" (롬 5:20). 그리고 긍휼이 승리를 거두었을 때,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 2:13). 고 어두운 구름을 뚫고 갑자기 나온 해가 더욱 더 밝으며 즐거운 놀라움을 안겨 준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선한 의지가 여기에서 매우 숭고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이것은 정직한 야곱의 영적인 모든 후손과 기도하는 이스라엘에게 풍성한 위안을 주고 있다. 바벨론의 포로였던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기" 때문이다(히 4:2).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다.

Ⅰ.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관심의 근거와, 사람들 중에 있는 그의 교회와 나라의 세력. 야곱과 이스라엘은 비록 비참한 죄악 상태에 있을지라도 돌보심을 받을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하나님의 "만드신 바이며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는 자" 이다(엡 2:10). 그는 그들을 지으셨고 만드셨다. 그들에게 존재를 부여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로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들의 정부를 구성하셨으며 그의 언약의 헌장에 의해 그들이 그 구성원이 되게 하셨다. 그 새로운 피조물은 무엇이 되든지간에, 하나님이 만드신 바이다. 그리고 "그가 자기 손으로 지으신 것을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2. 그들은 그가 사신 백성이다. 즉 그가 그들을 구속하셨다. 애굽 땅에서 그가 제일 먼저 그들을 구속하셨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속박에서 "그의 사랑과 그의 긍휼로" 구속하셨다(63:9). 또한 그는 그의 아들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을 더욱 더 돌보실 것이다.

3. 그들은 그의 고유한 백성이다. 그는 그들을 다른백성과 구별하셨고 그 자신을 위해 따로 두셨다. 즉 그는 그가 특별한 친분과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로서 그들을 지명하여 부르신다. 그들의 그의 것이고 그에게 전유되며, 그는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신다.

4. 그는 언약 속에서 그들의 하나님이시다(3절). "나는" 네게 숭배받으며 약속으로써 너와 관계를 맺고 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니라. 참되신 하나님은 거룩한 자인 것이며, 거룩함이 그의 집에 울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우에 대해 당연히 그는 "너는 두려워 말라" (1절), 그리고 다시 "두려워 말라" (5절)고 말씀하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자기를 위하시는 하나님을 가진 자들은, 누가 또는 무엇이 그들을 치든지간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Ⅱ. 이러한 배려에 대한 예전의 사례들.

1. 하나님은 그들을 값비싸게 사셨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주었노라." 왜냐하면 애굽은 잇달은 재앙에 의해 황폐케 되었고 그들의 모든 장자는 죽음을 당했으며 그들의 용사는 익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을 그들로부터 건지시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들의 해방의 시기가 왔을 때 이스라엘이 계속 노예 상태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애굽이 희생될 것이다. 구스 사람들이 아사 시대에 그들을 침임했다. 그러나 그때에 이스라엘이 혼란에 빠지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멸망당했다. 애굽을 그들의 속량물로 준 이 사건이 매우 큰 일로 간주되었다면, 그의 아들을 "우리의 속량물" 로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얼마나 경탄해야 하는가! (요일 4:10) 그리스도의 보혈에 비하면, 구스와 스바, 그들의 모든 생명과 모든 보물은 무엇인가?

2. 따라서 그는 그들을 중히 여기셨고, 그들은 그에게 매우 소중했다(4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겼노라."

참된 신자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보배롭다. 그들은 그의 보석, 그의 특별한 보물이다(출 19:5). 다른 어느 백성보다도 그들을 사랑하시며 그의 기쁨은 그들에게 있다. 그의 교회는 그의 포도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하나님의 백성을 진실로 존귀하게 만들며 그들의 이름을 크게 만든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공격하려는 산헤립의 군대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애굽, 구스 그리고 스바를 공격하도록 지시했을때,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그 나라들을 주셨고 그의 백성을 그가 얼마나 보배롭게 여기시는가를 보여 주셨다. "혹자는 그것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Ⅲ. 하나님께서 더욱 그들을 돌보시고 친절을 베풀어 주시려 했던 사례들.

1. 그는 그들이 가장 큰 역경과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들과 함께 하시곤 했다(2절). "네가 물과 바다 가운데로, 불과 불꽃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며, 그것은 너를 안전케 할 것이라. 위험이 매우 절박하고 긴급할 때, 너는 그 중에서 건지울 것이다." 그들은 노정 중에 깊은 강을 지났는가? 그들은 그 길에서 멸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 그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계속 신봉한다는 이유로 그 핍박자들이 그들을 맹렬한 용광로에 던져 버린다 할지라도 그 때에 그 불꽃이 그들을 태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세 청년이 놀랍게 보존된 일에서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다(단 3장). 비록 그들이 그들에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와 같았던 불과 물 가운데로 행할지라도,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한 그들은 재앙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주께서 그들을 부축하실 것이며 그들을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실" 것이다(시 66:12).

2.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생들의 권익이 그의 자녀들의 권익에 길을 내어 주도록 하시곤 했다. "내가 사람들을 주어 큰 사람과 강한 사람과 용사를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적대적인 사람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라. 열방이 네 번영의 제물이 되리라."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끊기 보다는 모든 민족이 끊어지게 될 정도로 이스라엘은 그가 보시기에 보배롭다. 세상의 일들을 모두 교회에게 가장 유익하도록 명령되고 지시될 것이다(대하 16:9).

3. 그들 가운데 다른 나라로 흩어지고 분산되었던 자들은 모여지고 그 공적인 축복을 함께 나눌 것이다(5-7절). 이스라엘의 자손들 중 일부는 동서남북의 모든 나라로, 또는 바벨론 나라의 모든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가도록 하나님께서 그 심령을 자극하신 자들은 모든 지역에서부터 이끌려 올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멀리 있는 자들에게, 그리고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각 사람에게도 미칠 것이다. 그리고 때가 이르렀을 때, 그 어느 것도 그들이 돌아와서 함께 한무리를 이루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열방 중에서 모으소서" (시 106:47) 하는 그 기도의 응답이며 너의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다" (신 30:4) 라는 그 약속의 이행인데, 우리는 포로된 자들의 자손을 위해 이것이 탄원된 것을 볼 수 있다(느 1:9). 그러나 이처럼 정성들여 모아지게 될 이스라엘 자손은 누구인가? 그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기로 지정해 두신 그러한 자들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데(7절)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그들은 그의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그들은 신앙 고백을 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와 그로부터 받은 그들의 명칭에 의해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된다.

(2) 그들은 그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신은 그들 가운데서 형성되며,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들이 모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은혜로 창조된 자들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게 합당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부르신 자들은 이제 그들의 대장이신 그리스도께로 모일 것이며, 그후에는 그들의 집인 천국으로 모일 것이다. 그는 "그의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약속은 분산된 이방인들과 흩어진 나그네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모아지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스도는 밖으로 흩어진 하나님의 자손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죽으셨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 약속은 멀리 있었던 모든 사라들, 곧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창조하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회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교회는 두려워하지 말라. 교회에 속한 그 누구도 버림 받지 않을 것이다.

 

43:2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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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자에 대한 도전 (이사야 43:8-13)

하나님은 여기에서 우상 숭배자들에게 그들의 거짓된 신의 신성에 대한 증거를 대도록, 바벨론으로부터의 유대인을 구속해낸 바로 이 일례와 같은 증거를 대도록 도전하고 계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그리고 그 하나님만이 참되며 살아있는 하나님임을 입증하도록 도전하고 계신다.

Ⅰ. 여기에서 우상 숭배의 후원자들을 출두하여 그들이 그 우상을 옹호하기 위해 해야 할 말을 하도록 요청받고 있다(8,9절). 그들의 신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신을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도 그러하다. 다윗도 그렇게 말한 바 있으며(시 115:8) 여기에서 선지자가 우상 숭배자들을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 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인간의 모습과 역량과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이성과 일반 상식이 결여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결코 그들 자신이 만든 신을 숭배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방은 모이고, 서로 도우며 힘을 합하여 그들의 더러운 신의 송사를 변론하라. 그리고 그들이 그들 자신을 정당화할 말이 없다면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렐의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깨우치고 논박하기 위해 하실 말씀을 듣게 하라."

Ⅱ. 하나님의 중언이 소환되고, 또는 나타나서 그를 위해 증거하도록 호출받고 있다(10절). "너희 이스라엘아! 내 이름으로 일컫는 너희 모든 사람들아,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느니라." 그리스도 자신도 "나의 종, 나의 택한 사람" 이라 묘사된 바 있다(42:1). 다음을 살펴보자.

1. 그리스도를 입증한 모든 선지자들과 그 위대한 선지자 그리스도 자신이 여기에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상고받고 있다.

(1) 하나님의 백성은 그를 위한 증인이며, 그의 은혜의 능력과 위로의 달콤함, 그의 섭리의 온유함, 그리고 그의 약속의 진실함에 관하여 그들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입증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가 은혜로우시며 그의 어느 말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증명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특히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다. 그들은 그의 비밀을 맡은 자이며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알고 있다. 그러나 특히 메시야는 그 백성들에게 그를 위한 증인이 되도록 보내어지신다. 영원부터 그의 품속에 있었으므로 그가 하나님을 알리셨던 것이다.

2. 이 증인들이 증거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자(12절).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인정하는 자들은 그들이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하여 그들도 그것을 인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내가 믿었은즉 말하였노라." 특히 "너희는 알고 믿고 깨닫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증언할 준비를 해야 한다."



(1) "내가 유일한 참 하나님이며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풍족한 자라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두려워하고 경배하고 의지해야 할 자이다. 더구나 태초로부터(시간의 처음부터, 빛의 창조 전부터, 따라서 영원부터) 나는 그이다(13절)." 우상들은 불과 얼마 전에 생긴 것이다. 즉 "근래에 일어난 새 신" 이다(신 32:17).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영원부터 계셨다.

(2)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는 것이다. 우상은 지음을 받은 신이었다(dii facti----즉 만든 신, 또는 오히려 fictitii----즉 가상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본질상 하나님이 아니다" (갈 4:8).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부터 존재하셨고 우상이나 우상 숭배자가 있기 전부터 이 세상에 있었다(진실이 허위보다 먼저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영원까지 존재하실 것이며 우상들이 굶주리고 폐지당하며 우상 숭배자들이 다시는 없게 될 때에도 숭배받고 영광받으실 것이다. 참된 신앙은 그 터전을 지킬 것이며 모든 저항과 경쟁을 이길 것이다. "큰 진리가 승리하리라."

(3) "나 곧 나는 여호와라는 것이다. 지금도 있으며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위대한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11절).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보라. 그것은 그가 유일하신 치리자라는 사실보다는 그가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이다. 그는 "선을 행하기를 기뻐하시며,"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의 구주" 이시다(딤전 4:10).

3. 이 취지를 확증하기 위한 증거들이 무엇인가 살펴보자.

(1)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증거에 의해 나타나고 있다.

[1] 그는 무한하고 오류가 없는 지식을 갖고 계시며 그것은 "그의 말씀의 예언" 에 의해 명백히 나타난다(12절). "내가 틀림없이 이루어진 일을 고하였으며 보였느니라. 뿐만 아니라 성취되지 않은 것은 결코 고하지 않았으며 보이지도 않았다.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을 때, 즉 너희가 나의 신탁 이외에 다른 신탁에 또는 나의 선지자 이외에 다른 선지자들에게 의논하는 척하지 않았을 때, 내가 보였다."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신 32:12)라고 알려져 있다.

[2] 그는 무한하고 불가항력적인 능력을 갖고 계시며 이것은 그의 섭리의 성취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그는 "내가 보였다" 는 사실 뿐만 아니라 "내가 구원하였다" 는 사실을, 즉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것을 예언하셨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진술하신다. 따라서 "내가 멸하려는 자를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도다. 사람 뿐만 아니라 이방의 모든 신들도 그를 보호할 수 없었도다." 이와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떨어지는 것은 두려운 일" 이다. 거기에서 능히 건질 자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계획한 일을 긍휼과 심판으로 행하리라. 누가 그것을 대적하거나 지체시킬 수 있으리요?"

(2) 하나님과 겨루는 이방신들은 그보다 열할 뿐만 아니라 전혀 신이 될 수도 없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9절). "지금 내가 고한 이 일을 그들 중에 누가 능히 고하겠느냐? 누가 능히 장래사를 말하겠느냐? 더구나 그들 중에 누가 능히 이전 일을 고하겠느냐?" (41:22) 그들은 역사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없고 더욱이 선지자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들은 다음 문제에 대해 논박하도록 도전받고 있다. "그들로 증인을 세워서" 그들의 전지전능함을 증명하게 하라.

[1] 만일 그들이 그것을 증명한다면, 그들은 옳다함을 들을 것이다. 즉 그 우상들이 숭배를 요구하는 것과 우상 숭배자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옳다함을 얻게 될 것이다.

[2] 만일 그들이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들로 옳다 말하게 하라." 그들로 참 하나님을 시인하게 하고 그에 관한 진리를, 즉 그가 홀로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게 하라. 하나님의 송사는 공명정대한 심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무신앙을 정당화할 수 없는 자들은 마땅히 진리와 참 신앙의 힘에 복종하게 될 것이다.

 

43:9 없음.

 

43:10 없음.

 

43:11 없음.

 

43:12 없음.

 

43:13 없음.

 

43:14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약속 (이사야 43:14-21)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과 소망이 매우 침체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포로 상태에서 해방되리라는 것을 점차적으로 확신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강한 위로를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것에 대한 확언이 자주 반복되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매우 자세히 그리고 격려하면서 되풀이되어 있다.

Ⅰ.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우 격려가 되었던 그 존귀한 칭호를 여기에서 친히 취하시고 있다. 그는 "여호와 그들의 구속자" 이시다. 따라서 그들을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을 그의 직분으로 여기시고 그의 과업으로 삼으실 것이다. 만일 그가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속박당할 때, 그들의 구속자가 되어주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시며(14절), "그들의 거룩한 자" 이시다(15절). 그러므로 그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모두 지키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창조자" 로서 그들로 하여금 무(無)에서 백성으로 되게 하셨다(그것이 곧 창조이다). 아니, 무보다도 못한 것에서 그렇게 만드셨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왕" 으로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그들을 주관하신다.

Ⅱ. 그는 그들은 계속 포로로 잡아두려 하고 그들을 결코 놓아 보내지 않을 결심을 함으로써(14:17) 자신의 죄악의 한도를 채운 그들의 압제자들의(14:17) 힘을 꺾으실 길을 모색하실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의기양양한 방백과 군대를 바벨론으로 보낼 궁리를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 방백과 군대는 "존귀한자 곧 갈대아 사람으로 자기들의 연락하던" (선원들은 떠들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는 성읍이 함락되었을 때 큰 강을 이용하여 피신하기 위해 소리쳐 도움을 구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의백성들이 증대케 될 길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신약의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에서도 선원들의 외침과 탄식을 볼 수 있다(계 18:17, 18). 그리고 바벨론이 멸망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위한 것임을, 그들의 구원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임을 주목하라.

Ⅲ. 그는 그들의 열조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실 때 그가 행하신 큰 일들을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계신다. 즉 그것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다(16,17절). "바다 가운데, 홍해 가운데 길을 내고 바로의 병거와 말을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바다 밑바닥에 엎드러져 결코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게 한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렇게 행하신 그가 원하신다면, 너희가 바벨론에서 돌아 올때 바다 가운데 너희를 위한 길을 만드실 수 있으며, 너희를 거기에 남겨두기 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을 격려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옛날에 그의 백성을 위해 그와 그들의 원수에게 대적하여 행하신 것을 자주 회상해 보는 것이 좋다. 특히 그가 홍해에서 행하신 것과 그것을 어떻게 이루셨는가를 생각하라.

1. 그는 그것이 그의 백성에게 길이, 즉 곧은 길이며 가까운 길이 되게 하셨다. 뿐만 아니라 강물은 그들에게 벽이 되어 그들이 안전하게 도망했던 피난처가 되게 하셨다.

2. 그의 원수에게는 그것이 음부가 되게 하셨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그는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지게 하기 위해 병거와 말을 이끌어내시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했느니라" (미 4:11, 12).

Ⅳ. 그는 그들을 위해 그가 옛날에 행하셨던 것보다 더 큰 일을 앞으로도 행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이른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하고 말한 기드온처럼 불평하는 투로 이유를 따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이 반복되는 것을, 그것이 열조 시대의 것을 능가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과 같이 마치 이전 일이 이것들보다 더 나은 것처럼 그때 일을 끄집어 내어 현재의 일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아니, 원한다면 어느 정도 그 일을 잊어도 좋다. 그러나 너희에게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할 너희 시대의 사건에 의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과 같이 마치 이전 일이 이것들보다 더 나은 것처럼 그때 일을 끄집어 내어 현재의 일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아니, 원한다면 어느 정도 그 일을 잊어도 좋다. 그러나 너희에게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할 너희 시대의 사건에 의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보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리니, 그것은 이적과 긍휼의 행위로서 옛날의 것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설은 예레미야(렘 16:14, 15, 23:7, 8)에 있다. "다시는 이스라엘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리라." 그것은 옛 일이며 그가 "이스라엘을 북방에서 인도하여 내신" 일에 대한 추억은 새로운 일을, 여호와께서 살아 계신다는 새로운 증거를 어느 정도 소멸시킬 것이다. 비록 옛날의 긍휼이 잊혀져서는 안 될지라도 새로운 긍휼을 특별히 증진되어야만 한다. "이제" 너희에게 놀라움이 될 것을 나타낼 것이다. 너희는 꿈꾸는 자들과 같다.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그리고 너희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손을 시인하지 않겠느냐?

Ⅴ. 그는 그들을 바벨론에게서 건지실 뿐만 아니라 안전하고 편안하게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19,20절).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 바벨론에서 가나안에 이르는 길은 애굽에서의 길과 마찬가지로 사막이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귀환하는 포로들이 그곳을 지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므로, 그들의 진영은 식량을 잘 공급받고 훌륭한 지휘를 받게 될 것이다. "바다 가운데 길" 을 낸(16절) 바로 그 능력이 "광야에 길" 을 낼 수 있으며, 그 길은 가장 큰 역경을 뚫고 행군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메마른 땅을 물로 만드신 그가 가장 메마른 땅에 물을 대실 수 있다. "그의 백성, 그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뿐만 아니라 "들짐승 곧 사람과 및 타조도 마시게" 할 정도로 풍성히 물을 대실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다. 그것은 이처럼 유쾌한 청량제이며 그들에게 이처럼 큰 막족감을 안겨다 주기 때문에, 그들이 찬미할 능력만 있다면 그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미할 것이며, 자기의 은인을 찬미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을 수치스럽게 할 것이다.

1. 이것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실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나게 하신 그 일을 되돌아보고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기 때문에 옛날에 그들을 위해 행하신 것을 다시 행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적이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다시 일어났던 것을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긍휼은 일반적인 섭리의 과정 속에 있었다. 따라서 그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께 해야 할 감사를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았다.

2. 그것은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것과 그리스도께서 오신 시기 사이에 하나님께서 유대 교회를 돌보신 모든 사례들 뿐만 아니라 복음의 은혜도 내다보고 있다. 특히 복음의 은혜가 이방 세계에 나타났을 때 그것에 의해 광야에 길이 열렸고 사막에 강이 생겼다. 즉 무지와 불모로 인해 사막과 같았던 세상은 거룩한 교훈과 거룩한 위안으로 축복받았고, 이러한 것을 위해 성령이 풍성히 내려졌다. 이방인의 죄인들은 거칠게 날뛰는 들짐승 같았고 이리떼처럼 사나왔으며 부엉이나 타조처럼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의 폭을 넓혀 그들을 택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존경할 것이다.

Ⅵ. 하나님께서는 약속된 이 모든 축복을 그들의 큰 기원으로 곧,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한 목적과 의도에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그들이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행하리라.

1.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며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도 그가 지으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사람은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며, 그것들은 그가 만드신 것보다 더 하지도 더 못하지도 않다. 그것들은 그의 뜻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2. 그는 그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지으신다. 제일 원인이신 그가 처음 창조와 새 창조의 최고의 목적이시다. "여호와는 자기를 위하여 만물을 만드셨고," 특히 그의 이스라엘로 "그의 백성이 되게 하며 그의 이름과 찬양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거나 그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없는 것이다(렘 13:11; 엡 1:6, 12, 14).

3.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헌신하여 그를 섬김으로써 우리의 입술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애 동안 그를 찬미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는 우리를 만드셨고 동시에 우리를 먹이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그 모든 것을 위해 그 자신을 위해 행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그의 선하심을 나타내는 모든 일에서 그를 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가 부여받은 존재의 목적과 축복에 응하지 않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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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책망 (이사야 43:22-28)

이 책망(그것은 하나님을 고백하는 백성인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한 큰 책망으로 여기에 나와 있다)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1. 그들을 포로가 되게 하신 것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입증하고 그것을 변호하기 위해서 그들은 그와 언약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그의 성소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뇨?" (신 29:24) 여기에 좋은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소홀히 여겼고 그를 저버렸다. 그러므로 그도 당연히 그들을 거절하셨고 "그들로 저주를 입게 하셨다" (28절). 그리고 그들은 구원을 위한 준비가 갖추어지기 전에 이것을 시인하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단 9:5; 느 9:33).

2. 그들의 구원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향상시키고, 그것이 더 영광스럽게 나타나도록 함. 여러 가지 일들이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앞에서 관찰되고 있다. 더구나 그를 매우 격노케 했으므로 그 죄악에 대한 마땅한 형벌을 겪고 있던 한 백성을 위해, 그가 그처럼 크고 친절한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은 그의 선하심을 높이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죄사함은 그들의 포로의 멍에를 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큰 일례였다(모세는 그것을 그렇게 간주하고 있다, 민 14:17 이하).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Ⅰ. 그들이 여기에서 문책당하는 죄는 무엇인가?

1. 하나님께서 명하신 선에 대한 태만 이것에 대한 책망이 여기에서 매우 강조되어 있다. 어떻게 그것이 "그러나" 라는 말과 제시되고 있는가를 보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어떠한 은총을 베푸셨으며 그들에게 당연히 어떤것을 기대하셨는가를 그들에게 말씀하신 21절과 비교하라. 그는 자기를 위하여, 즉 그들이 그를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지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좌절시켰으며 그의 은총에 전혀 보답하지 않았다.

(1) 그들은 기도를 집어치웠다. "야곱아!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느니라." 야곱은 기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호 12:4). 그러나 그의 자손은 그의 이름을 지녔으나, 그의 자취를 밟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으로 힐책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경건한 선조들의 자손들이 그들의 선조들의 덕과 믿음에서 떠나 타락할 때 그것을 나쁘게 여기실 것이다. 야곱의 이름을 자랑하나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우리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야곱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면, 누가 부르겠는가?

(2) 그들은 그들의 신앙에 점차 싫증이 났다. "너는 이스라엘로서 기도의 자손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방백이었던, 형통하는 아비의 자손이다. 그러나 그의 본보기 뿐만 아니라 그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서 너는 나를 괴로워하였다." 선조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오면서 그를 섬기고 그와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나 자손들은 그것에 냉소하면서, "보라,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부르기를 소홀히 하는 자들은 사실상 그들이 그에게 실증이 나 있으며 그들의 주인을 바꾸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3) 그들은 그들의 헌신의 내용을 아까와했고 그 일을 인색하고 궁색하게 행하였다. 그들은 신앙에 인색했다. 그리고 이처럼 값비싼 믿음의 행위로부터 면제받기를 원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번제의 양을," 어린 양과 염소를 "가져오지 아니하였느니라" (23절). 더욱이 그들은 그들의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저장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보다 더 큰 짐승을 바칠 수 없는 척하면서 그것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에게 은혜입은 것을 거의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비록 그가 양을 요구하시고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려 할지라도, 그의 영예를 위해 그들의 가축 우리에서 어린 양을 바칠 마음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달콤한 나무 줄기" 나 "창포" 는 거룩한 기름으로, 향품과 향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부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24절). 그들은 가진 것으로 봉사해야 했다. 비록 그것이 낡어서 쓸모없는 것일지라도 그들은 새로운 것을 사려하지 않았다. 믿음이 깊고 경건한 자들은 아마도 보통 제물 뿐만 아니라 유향도 자진하여 바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처럼 관후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제단을 채우지도 않았으며, 마땅히 그렇게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희생의 기름으로" 그것을 촉촉히 적시지도 않았다. 그들이 가져온 제물은 여위고 쓸모없는 짐승, 즉 제단을 융숭하게 할 만한 기름이 없는 짐승이었다.

(4) 그들이 어떤 제물을 바치든지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고, 사실상 제물을 바치지 않는 것과 같았다(23절). "너는 네 제물로 나를 공격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 중에는 거짓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참된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던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바치는 일에 부주의하거나 그 의도에 위선이 들어있었으므로, 그들은 사실상 그것으로 하나님을 공경한다기 보다는 차라리 그를 모욕했다고 말할 수 있다.

(5) 그들이 제물을 드리는 일에 소홀히 한 죄를 더욱 무겁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 그들에게 그렇게 짐스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불평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봉사였다. "나는 예물로 인하여 너를 수고롭게 아니하였느니라. 너희가 너희 성품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것이 네 자신에게 고역이 되게 했을지언정 나는 그것을 너희에게 짐스럽게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유향으로 인하여 너를 괴롭게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계명 중 그 어느 것도 무거운 이처럼 풍족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 바칠 수 있는 한도를 넘지 않았고, 그들이 그 시중을 드는 것도 그들이 할애할 수 있는 이사의 시간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괴로운 수고" 라 부르는 것을 특히 금한 것은, 그들이 유쾌하고 즐겁게 행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마다 그의 앞에서 즐거워하도록 요청되었기 때문이다(신 12:12). 많은 명절과 좋은 날들을 가진 그들이 그들의 영혼을 괴롭게해야 할 날은 일 년에 단 하루 뿐이었다. 의식사의 율법의 예식은 그리스도의 쉬운 멍에에 비해 무거운 것으로 언급되어 있을지라도(행 15:10) 우상 숭배자들이 그들의 거짓된 신에게 행한 봉사에 비해 가벼웠으므로, 수고라 불리워서도 안 되었고 괴로운 것으로 여겨져서도 안 되었다.

2. 하나님께서 금하신 죄악. 태만은 흔히 죄악을 낳는다. "네가 네 죄악으로 나로 괴롭게 하였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 정욕의 약식과 연료로 만들고 그의 섭리를 우리 악한 계획의 후원자로 만들 때, 특히, 은혜가 충만하다고 해서 계속 죄를 범하도록 우리 스스로를 장려할 때, 그때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또는 그것은 죄가 하나님께 얼마나 슬프고 무거운 것인가를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죄는 사람을 괴롭게 하며 피조물로 탄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며" (7:13)창조자로 하여금 그가 "근심한" 것(시 95:10)과 "상한" 것(겔 6:9)을 원망하시도록 만든다. 또한 "곡식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그가 죄인들에게 눌려(암 2:13)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리라" (1:24) 하고 외치면서 원망하시도록 한다.

그 대조는 주목할 만하다. 즉 하나님은 제물로 그들을 수고롭게 하시지 않았으나 그들은 그들의 죄로 그를 수고롭게 했다. 주인은 명령으로 종들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았으나 그들은 불복종으로 그를 피곤하게 했다. 이처럼 선한 주인에게 이처럼 악하게 행하는 자들을 정말 악한 종들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데 자상하나 우리는 그를 공경하는 데 태만하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우리는 우리 의무에 철저하도록 하자. 그것은 쉽고 도리에 합당하며 그것이 우리의 명예를 해치거나 우리에게 너무 힘들지 않는 것이다.

Ⅱ. 그들의 죄를 악화시킨 것은 무엇인가? (27절)

1. 그들은 불순종의 자손이었다. 즉 그들의 "시조(즉 그들의 조상)가 범죄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뱃속에서, 그들처럼 죄를 범하였다. 에스라는 이렇게 자백하고 있다. "우리의 열조 때로 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나이다" (스 9:7). 그러나 그들의 선조는 우리의 마음속에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배신과 반역을 넣어준, "시조" 라 불리우고 있다. 우리 범죄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담에게서 그 타락의 나감으로써 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2. 그들은 또한 불순종의 학자였다. "그들의 교사가 하나님을 배역하였고" 불명예스러운잡다한 죄를 범했으며, 백성들은 의심할것도 없이 그들이 행한 것을 배우곤 했기 때문이다. 인도자가 백성들을 그릇가게 만들고 그들을 개혁해야 할 그들의 교사가 그들을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백성들에게 불행스러운 일이다.

Ⅲ.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이 그들에게 노하셨다는 표적은 무엇인가?(28절) 그는 교회와 나라를 멸망케 하였다.

1. 그들의 교회의 존귀는 티끌 속에 묻혀 짓밟혔다. "내가 성소의 어른들로" 즉 성전 봉사를 큰 위엄과 능력으로써 주관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욕을 보게 하리라." 그들은 그들의 극악무도함에 의해 그들 자신을 더럽히고 매우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그들로 멸시를 당하게 하심으로써(말 2:9)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고 비천하게 만드셨다.

2. 그들 나라의 존귀도 마찬가지로 무너질 것이다. "네가 야곱으로 저주를 입게 하며, 즉 모든 이웃에게 저주와 미움을 받고 능욕당하게 하며 이스라엘로 비방거리가 되어 그 원수들에게 모욕당하고 조롱당하며 짓밟히게 하리라." 그 원수들은 아마도 그들의 선한 일에 대해 비방했을 것이다. 그 원수들은 "그들의 안식일을 비웃었다" (애 1:7, 우리 성경과 다름;역주).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잘못할 것을 바로잡기 위해 그들을 비방당하게 만드셨던 것이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굴욕을 가할 때는 언제나, 우리가 하나님께 행한 무례함을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겸손케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그것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참을성있게 견디어야 하며 수치가 우리의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Ⅳ.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은 그들에게 풍성한 긍휼을 베푸셨는가?(25절) "나 곧 나는"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라."

1. 하나님께서 사유하실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이 은혜로운 선언은 매우 이상하게 제시되어 있다. 책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즉 "네가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24절)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곧 나는 너를 멸하고 더 이상 너를 돌봄으로써 나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을 자니라. 그러나 "나 곧 나는 너를 용서할자니라" 라고 언급되어 있다. 이 말은 무례함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편케만들고 우리가 그것으로 괴롭지 않도록 하는 최선에 길임을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려는 것같이 보인다. 이것이 여기에 적힌 것은 그들의 회개를 장려하고(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한 긍휼의 관후함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죄가 매우 죄악된 곳에서 은혜를 매우 은혜롭게 나타난다. 이것을 다음과 같은 사항에 적용시켜 보자.

(1) 민족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는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함. 하나님께서 위협적인 심판의 진노를 중단하시고 그들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실 때, 심지어 그가 그들을 혹독하게 책망하실 때, 그때에도 그가 "그들의 허물을 도말하셨다" 고 말할 수 있다. 비록 그가 그들을 징계하셨을지라도 그는 그들과 다시 화해하셨으며 그들로 하여금 백성이되지 못하게 끊어버리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는 여러 번 어떻게 하셨으나 결국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거부했으며, 그것은 구제할 수 없는 죄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더 이상 민족으로서 용서하시지 않고 완전히 멸하실 수도 있었던 것이다.

(2) 믿고 회개하는 각 개인의 죄. 즉 "허물과 죄." 매우 무수한 결함과 매우 극악한 타락까지도 용서하심.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1] 죄사함이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 그는 "그것을 도말하실" 것이다. 구름이 햇살에 의해 사라지듯이(44:22), 빚이 도말되어 다시는 빚진 자를 괴롭히지 않듯이(마치 빚이 갚아진 것처럼 장부가 말살된다. 그리하여 보증한 지불액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또는 형이 취소될 때 그것이 말소되듯이, 쓴 물에 빨아 없애버렸으므로 무죄한 자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그 저주처럼(민 5:23) 그는 "그것을 도말하실" 것이다. 그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실 것이다." 이것은 그가 지나간 벌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미래의 그의 사랑을 감소시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용서하실 때 잊으신다.

[2] 그 용서의 근거와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안의 어떤 것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 그의 긍휼, 그의 약속 그리고 특히 그의 아들을 위한 것이며, 그가 친히 그것으로 영광받으시기 위함이다.

[3] 어떻게 하나님은 그것을 자랑하시는가? "나 곧 내가 그자라." 그는 그것을 그의 대권으로써 자랑하신다. 하나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죄를 사할 수 없으며 그가 사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의 확정된 결의안이다. 그가 자진해서 그리고 기쁘게 그것을 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의 즐거움이고 그의 명예이며, 그는 그것을 그렇게 간주하시기를 기뻐하신다.

2. "너는 나로 기억이 나게 하라" 는 이 말씀(26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1) 교만한 바리새인에 대한 책망으로서.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를 의롭다 하며 거저 주시는 은혜를 입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공로로 은총을 얻게 되기를 기대한다. "네가 네 자신을 의롭게 하기 위해 할 말이 있다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네가 용서함 받기 위해 제시할 어떤 것이 있다면, 나로 기억이 나게 하라. 내게 네 자신의 송사를 변호하도록 허락해 주겠다. 네 공로를 밝혀서 네가 그것으로 인해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게 하라." 그러나 이처럼 도전받는 자들을 유구무언일 것이다.

(2) 또는 회개하는 세리에 대한 지시와 격려로써. 하나님은 이처럼 죄를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가 용서하실 때, 다시는 기억지 않으실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그로 기억나시게 하고 그가 사하신 죄를 그의 앞에서 언급하도록 하자. 비록 죄를 용서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언제나 우리 앞에 두어 우리를 겸손케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시 51:3).

그로 하여금 그가 회개자들에게 하신 약속과 그의 아들이 그들을 위해 이루신 속죄를 기억하시게 하자. 죄사함을 위해 그와 씨름할 때 이러한 사실을 진술하고 밝히도록 하자. 그리하여 그의 은혜에 의해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도록 하자. 이것이 화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확실한 길이다.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43:2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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