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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히스기야의 병 (이사야 38:1-8)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훌륭한 교훈들을 살펴 볼 수 있다.

1. 사람들의 위대함이나 선함이 그들을 병과 사망의 차꼬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땅의 유력한 주권자이며 천국의 유력한 총아인 히스기야는 병에 걸렸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한 그것은 분명히 죽음을 초래하게 될 것이었다. 더구나 이것은 그의 한창 때에, 인생의 즐거움과 유용함이 한창일 때의 일이었다. "주여, 보옵소서. 주의 사랑하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이 병은 그가 앗수르 군대가 멸망한 것에 대한 한창 개가를 부르고 있었을 때에 그에게 엄습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항상 떨면서 기뻐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2.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사망이 다가오는 것을 볼 때 준비하도록 만든다. "너는 네 집에, 그리고 특히 네 마음에 유언하라. 네 감정 상태와 일의 형편을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모양으로 갖추어, 네 여호와께서 오실 때 하나님과 화목하고 네 양심이나 모든 사람들과 화목한 너를 그가 발견하실 수 있게 하고 오직 남아 있는 것은 죽는 일만이 될 수 있게 하라." 죽음에 대해 우리가 준비한다고 죽음이 결코 더 빨리 오지는 않을 것이나, 죽음을 훨씬 더 쉽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죽기에 합당한 자들은 살기에도 매우 합당한 자들인 것이다.

3. 병으로 고난당하는 자가 있는가? "저는 기도할 것이라" (약 5:13). 기도는 공적이건 사적이건 간에 모든 상처를 위한 약이다. 히스기야는 대적으로 인해 고통당할 때 기도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병들었을 때도 그는 기도했다. 어린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있을 때 그 아이가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가겠는가? 고난은 우리를 성경에게로 데리고 가서 우리의 무릎을 꿇게 만들도록 보내진 것이다. 히스기야는 건강했을 때,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기도했다. 그 당시 그것은 기도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침상에서 병들었을 때 그는 "얼굴을 벽으로" 아마도 성전으로 향했는데 이 성전은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믿음으로써 그를 바라 보아야 하는 것이다.

4.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한 삶을 살았고 하나님과 가까이 그리고 겸손하게 동행했다는 양심의 증거는, 우리가 면전에서 죽음을 대하게 될 때 우리의 큰 힘과 위로가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것에 의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중보자의 의로우심에 우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로서 그것을 겸손히 탄원할 수 있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그의 선한 봉사의 댓가를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그가 어떻게 그 나라를 개혁했고 산당을 제거했으며 성전을 정결케 하고 소홀히 여겨졌던 의식을 소생시켰는가 하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번제와 제물보다 나은" 일, 즉 탁월한 공적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거룩한 생활의 과정에서도 한 가지 눈과 정직한 마음으로 그 자신을 어떻게 하나님께 보였는가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실 것을 신중하게 간청하고 있다.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성실로, 그리고 "전심으로," 즉 의로운 마음으로 "행하였나이다." 왜냐하면 의로움이 우리 복음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5. 하나님은 그의 고난당하는 백성들의 기도에 은혜로운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라는 경고와 함께 히스기야에게 보내어졌던 바로 그 선지자는 이제 그가 회복될 뿐만 아니라 다시 확고한 건강을 되찾아 아직도 십오년을 더 살게 되리라는 약속과 함께 그에게 보내어지고 있다. 예루살렘이 환난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으므로 하나님은 이 둘을 건지시는 영광을 얻으실 수 있었고, 그 기도 또한 구원의 도구가 되는 영예를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가 병 중에 기도할 때, 비록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히스기야에게 보내신 것과 같은 응답을 우리에게 보내시지 않을지라도, 그가 그의 성령으로써 우리에게 기운을 차리도록 명한다면, 우리의 죄가 사하여졌으며 그의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할 것이고, 우리는 죽든지 살든지 그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준다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헛되다고 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하신다면" (시 138:3), 비록 그것이 육체적으로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인 것이다.

6.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의 행복과 번영을 보지 않는다면 자기의 건강과 번영 속에서도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 가까이에 있는 것을 아시고서, 그가 살게 될 뿐만 아니라 "그의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리라" (시 128:5)는 것을 그에게 약속하셨다. 그렇지 않고서는 히스기야가 편히 살 수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이제 건지워져 다시 규합하여 공격을 가하려고 위협했던 것 같은 앗수르 사람들로부터 계속 보호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히스기야로 하여금 모든 면에서 편안하도록 은혜롭게 도와 주신다.

7.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나타내시고," 그리하여 그들이 그것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과 함께 강한 위안을 얻을 수 있도록 하신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그의 은총에 대한 단언을 반복해 주셨다. 그러나 마치 그가 특별한 은총을 하나님께로부터 기대하기에는 모든 것이 극히 미소하게 생각되어졌던 것처럼 할 독특한 징조가 그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장차 몇 년을 더 살게 될는지에 관한 절대적인 약속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적을 행하여 전례에 없었던 이 은총을 확증해 주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하셨다. 그 징조는 일영표에서 해 그림자가 뒤로 물러가는 것이었다. 해는 시간을 성실하게 재며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와 같으니라." 그러나 시계를 가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그가 원하신다면 그것이 물러가게 하실 수 도 있으며 돌아오게도 하실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빛들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지시하시기 때문이다.

 

38:2 없음.

 

38: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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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감사 (이사야 38:9-22)

우리는 여기에서 히스기야의 감사의 노래를 대하게 된다. 그는 건강을 회복한 후 신적인 지시에 의해 그것을 지었다.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의 시편들 중에 일부를 취하여 그것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매우 적절한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레위 사람을 명하여 다윗의 시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다(대하 29:30). 그러나 여기의 경우는 매우 특수하다. 그의 마음이 헌신적인 감정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그는 그가 갖고 있는 악곡들이 비록 신적 영감에서 나온 것이었을지라도 그 자신을 거기에 제한시키려 하지 않고,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된 자기 자신의 말로 그의 감정을 바치려 했다. 그는 이러한 감사를 글로 적어, 섭리에 의해 그가 받은 훌륭한 느낌을 소생시켜서 후에 그것을 다시 살펴 볼 수 있게 했고, 그것이 그와 유사한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게도 했다. 우리가 병에서 회복되었을 때 기록하기에 적합한 글들이 있다. 고난에 대한 기억과 그 속에 있던 우리 마음 상태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의 사물에 대한 생각과 그때의 감정의 상태를 기록해 두고, 병상에서의 긍휼과 우리가 병에서 해방된 것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 두어 그것이 결코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기록하고 그와의 확실한 언약을 기록하며 그것에 날인하는 것이 좋으며, 우리가 결코 다시는 어리석은 길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선서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히스기야가 병상에서 회복되었을 때 남겨둔 글은 훌륭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대하 32:25). 후자는 그 감명이 결코 흐려지지 않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감사하는 것은 훌륭하나 감사의 생활은 더욱 훌륭한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록해 두고 있다.

Ⅰ.font> 그가 병에 걸렸을 때의 비탄스러운 상태와 회복하지 못하리라는 그의 절망(10-13절).

1. 그는 최악의 상태에 있었을 때 그가 그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그는 다음과 같은 의도로써 기록해 두고 있다. (1) 낙심한 그 자신에 대한, 그리고 그가 스스로를 포기한 것에 대한 책망으로서.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이 있으며 우리의 기도와 하나님의 긍휼을 위한 기회가 있다. 병을 음부에로의 소환장으로 생각하여 저 세상으로 갈 준비를 서둘러 하는 것이 좋다 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경우를 최악의 것으로 만들거나 병든 모든 사람은 곧 죽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쇠하게 하시는자께서 소생시키실 수도 있는 것이다. (2) 또는 죽음이 다가온다고 느꼈던 것을 회상시키는 것으로서. 그리하여 그는 그 자신의 연약함과 죽어야할 운명에 대해서, 그리고 십오년간 더 살게 되었을지라도 그것은 집행유예에 불과하며 그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치명적인 강타가 마침내 반드시 임하리라는 것을 항상 알고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했다.

(3) 또는 그의 상태가 절망적이었을 때 그를 소생시켜 주신 하나님의 능력과, 그가 두려워하던 것보다 훨씬 더 선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 주는 것으로서. 이와 마찬가지로 다윗도 환난에서 건져졌을 때, 그가 처한 환날의 상태를 암담하고 우울하게 단정짓고 "경겁한 중에 말한" 것을(시 31:22; 77:7-9 에서처럼)반성했다.

2. 히스기야가 그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었는가를 살펴 보기로 하자.

(1) 그는 그의 달수가 중년에 잘리워 버린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당시 삼십구세나 사십세 가량되었고 그의 해수가 매우 많이 남아 있고 매우 행복하리라는 달콤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에게 갑자기 엄습한 이 병은 그의 "중년" 을 끊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는 이제 "여년을 빼앗기게 되리라" 고 단정지었다. 자연의 추세에 따르면 그는 여년을 더 살 수도 있었다(그가 그것을 마땅히 받아야 할 빚으로서 위탁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체격의 기운을 고려해 볼 때 그가 그것을 기대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날들과 함께 생의 즐거움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세대에게 봉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취지로(12절) "나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을 걷음같이 나를 떠나 옮겼으니 이제 나는 즉시 그것을 접어서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의 거처는 목자의 장막처럼 보잘 것 없고 초라하고 추운 집이다. 우리는 의무상 거기에 있으며 그 목자처럼 그것을 책임맡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못 하나나 둘이 뽑아짐으로써 쉽게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다음 사실을 주목해 보라. 즉 그것은 우리의 종말이 아니라 단지 저 세상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무너뜨려진, 더럽고 어둡고 풍상에 시달린 게달 장막은 "솔로몬의 장막같이 아름답게" 새 예루살렘에서 다시 세워질 것이다. 그는 또 다른 비유를 첨가하고 있다. "내가 내 생명을 말기를 직공이 베를 걸어 말음같이 하였도다." 그가 그 자신의 어떤 행위로써 그의 생명의 줄을 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그의 모든 의도와 계혹은 끊어버릴 수밖에 없었고, 욥과 같이 (욥 17:11) "그의 경영, 그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진" 것이다. 우리의 날들은 한가닥 실을 뒤에 남겨두고 옷감을 짜면서 매우 날쌔게 지나가고 또 되돌아오는 베틀의 북에 비유된다(욥 7:6). 그리고 그것이 끝났을 때 그 실은 끊어지며, 짜여진 옷감은 베틀에서 꺼내어 우리 주인께 보여져서 그것이 잘 짜여졌는지 아닌지를 판단 받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육신이 행한 일대로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직공이 일을 다 마치고 수고가 끝났을 때 그 실을 끊어 버리는 것처럼, 선한 사람도 그의 생명이 끊어졌을 때 그 실을 끊어 버리는 것처럼, 선한 사람도 그의 생명이 끊어졌을 때 그의 근심과 피곤함도 그것과 더불어 끊어지며 그는 일에서 떠나 휴식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내 생명을 알았다고 하였는가? 아니다. 나의 날은 내 손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하나님 손 안에 있으며 나를 틀에서 끊으실 자도 그이시다. 그는 피륙의 길이를 정하셨다. 그리고 그 길이가 다 되었을 때, 그는 그것을 끊어 버리실 것이다"

(2) 그는 그가 음부의 문으로, 그 문이 언제나 열려 있는 음부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항상 "주시오, 주시오" 하며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음부는 여기에서 그의 열조의 묘실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거기에 그의 몸이 매우 장엄하고 화려하게 안치되었을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왕들의 묘실 중 가장 높은 곳에 장사되었고 온 "유다가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했기" 때문이다. 대하 32:33). 그러니 그는 병들었을 때, 음부에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또한 음부는 죽은 자의 나라를 위해, 즉" 스올"," 하데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데, 그는 그의 영혼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3) 그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선을 행하기 위해 그가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빼앗긴 것으로 여겼다(11절).

[1] "내가 말하기를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니, 그의 성전과 그의 신탁과 외식에서 그 자신을 명시하실 때 뵈옵지 못하리니, 생존 세계에서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라." 그는 죽을 저편에서 그를 뵈옵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가 성소에서 그를 보았던 것같이(시 63:2) 죽음 이편에서 다시 그를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다시는 생존 세계에서, 즉 주의 나라와 사단의 나라 사이에서 투쟁하고 있는 땅인 싸움의 장소에서 여호와를 뵙지(즉 섬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이것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뵈옵지 못하리라." 선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와 교제하는 것 이외의 목적을 위해 살기를 원하지 않는 것이다.

[2] "내가 말하기를 나는 한 사람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그는 그가 보호하고 공명정대하게 대하던 그의 신하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며, 그가 구제할 수 있던 신하들에게 다시는 자선을 베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쇠가 쇠에 의해 날카롭게 되는 것처럼 그의 도움에 의해 흔히 명석함을 되찾았던 그의 친구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은 대화를 끝나게 하며 우리의 천지들을 흑암으로 떠나게 한다(시 88:18).

(4) 그는 사망에 대한 번민이 매우 날카롭고 가혹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주께서 나를 병으로 끊으시리니 그 병은 나를 순식간에 쇠하게 하고 사라져 가게 할 것이다." 그 병은 쉬거나 누구러지는 기간없이 밤낮으로, 아침 저녁으로 매우 빨리 악화되어 갔다. 따라서 그는 그것이 곧 고비에 이르를 것이며 그의 생이 끝나리라 모든 병들을 종으로 다루시는 하나님께서 그것들로 뼈를 가는 고통과 함께 "사자같이 그의 모든 뼈를 꺾으시리라" 고 단정을 내렸다(1절). 그는 다음날 아침에는 극한 상황에 이르를 것이므로 이러한 고통과 비참한 속에서는 살기를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첫번째 날의 병에서 살아 남았을 때, 두번째 날에도 그의 공포는 되풀이 되었고 그날이 그의 마지막 밤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지었다. "나의 명이 조석간에 마치리이다." 우리는 병들었을 때 이런 식으로 우리의 시간을 추정하기가 매우 쉬우며, 결국 우리는 계속 반신반의하는 상태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오래 우리가 세상에 살게 되겠는가 하는 것보다는 얼마나 우리가 안전히 저 세상에 다다를 수 있는가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Ⅱ.font> 이러한 상황에서의 그의 호소(14절).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나이다. 나는 새들이 놀랐을 때 그렇게 하는 것처럼 떠들어 대 나이다." 병이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가를 보라. 전에는 매우 자유롭고 위엄있게 말하던 자가 고통의 극심함과 갈급함으로 인하여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는" 것이다. 흑자는 그가 고통 중에서 기도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기도는 발설될 수 없었던 번민으로 인해 자주 끊어지고 박혔기 때문에, 마치 제비나 학의 지저귐과도 같았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기도를 이처럼 보잘 것 없게 생각했으나 그것은 하나님께 상달되어 실효를 거두었다. "그는 비둘기같이" 슬피, 그리고 조용하고 끈기있게 "울었다." 그는 다른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 계심을 발견하기 때문에 지금도 일말의 도움을 기대하면서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것은 허사였다. 그의 "눈이 쇠하였도다." 그리고 그는 어떤 소망도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병이 나아지는 것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내가 압제를 받나이다. 매우 압도당하므로 곧 쓰러지려 합니다. 그러하오니 여호와여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 나를 체포한 검거인의 손에서 나를 빼내어 주소서.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소서(시 119:122). 내가 지금 막 들어가려 하고 있는 음부의 문과 나 사이에 오소서." 우리가 병에서 회복될 때, 거룩한 긍휼이 예전처럼 우리를 위해 하루를 간청하며, 우리 중보가 되어서 우리가 앞으로 올 때를 위해 하루를 간청하며, 우리 중보가 되어서 우리가 앞으로 올 때를 위해 준비가 되어 있도록 해 주며 충분히 빚을 갚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의 그늘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하고 우리를 죽음 저편에 있는 천국으로 흠없이 인도해 주는 중보자가 되시지 않는다면,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 우리를 심판에서 구출해 주시고 그의 아버지께로 데리고 가시어 우리가 필요로 하고 있으나 우리 스스로는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행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파멸할 것이다.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를 편케 하소서" (흑자는 이렇게 풀이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책감과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번민할 때,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가 없다면 아무것도 우리를 편케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Ⅲ.font> 그를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사함. 그는 어떻게 그 자신을 표현할지 몰라 난처해하며 이 기록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15절). "내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이 사실이 내 모든 불평을 잠잠케 하기에 충분한데 내가 어찌 불평하는 투로 말하리이까? 즉 주께서 내가 말씀하시고, 내가 병이 나아 아직도 십오년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내게 말씀하시기 위해 주의 선지자를 보내시고 또 친히 이루셨나이다. 그것은 마치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확실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을 친히 행하실 것입니다. 그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므로 그는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16절). "주여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나를 이 병에서 낫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게 지정된 해를 살게 하소서." 그리고 그가 이러한 소망을 가졌을 때,

1. 그는 고통을 당했던 느낌을 항상 기억할 것을 그 자신에게 약속하고 있다(15절). "고통 아래서 나의 죄악된 불신과 투정을 슬퍼하는 자로써, 하나님의 은총이 내게 적합하게 돌아오게 하고 또 내가 처해 있었던 섭리에 의해 내가 유익을 얻었다는 것을 나타내도록 각근히 행하리이다. 내가 각근히, 엄숙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병이 나았을 때도 이전처럼 경솔하고 방탕하게 사는 많은 사람들과는 달리 심사숙고하면서 행하리이다." 또는(흑자의 해석대로) "내가 즐겁게 행하리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건지셨을 때, 그가 은혜로으시다는 것을 체험한 자로서, 항상 거룩한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그와 즐거이 동행하리이다." 또는 "내가 각근히 행하리다. 즉 내 죄로 인하여 내 영혼이 쓰라림 속에서 슬퍼하며 행하리이다." 또는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다. "내가 내 영혼이 애통한 후에 각근히 행하리이다. 고통이 끝났을 때, 내가 그 인상을 잊지 않도록, 그리고 그 당시 내가 지녔던 것과 똑같이 사물에 대해 생각을 하도록 노력하리이다."

2.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자신이 얻었던 체험으로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격려할 것이다(16절). "사람이 사는 것이, 나라가 사는 것이 나를 위해 주께서 행하신 이 일에 있나이다(왜냐하면 이러한 왕의 생명은 그 나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해 듣는 모든 사람은 살고 위로받을 것입니다. 나를 회복시킨 바로 그 능력과 선하심에 의해 모든 사람이 자기의 영혼을 생명 안에 간직하고 있으며, 그들도 그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심령의 생명도, 즉 하나님께서 나의 자연적인 생명을 보존키 위해 행하신 것에 의해 부축되고 유지되는 내 영적 생명도 온전히 거기 있사옵나이다." 모든 섭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인애하심을 맛볼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욱 더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위해 살게 될 것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 심령의 생명이 될 것이다. 이처럼 사는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찬미할 것이다

3. 그는 여러 면에서 그를 소생시켜 주신 그 긍휼을 찬미하고 있다.

(1) 그는 극심한 곤경으로부터 일으켜 세워졌다(17절).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산헤립이 격파된 것을 계기로 하여 그 자신과 그의 정부에게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할 평안이 깃들기만을 바랐던 때, 그는 갑자기 병에 걸렸고 그것은 그의 모든 위안을 상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망 자체의 고통처럼, 오직 쓸개와 담즙처럼 쓴 고통이 될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때에 알맞는 구조를 보내셨을 때의 그의 상태였다.

(2)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왔다. 일부 사람들은 죄악의 정도가 가득찼을 때 그들이 다른 더 큰 심판을 받도록 하기 위해, 생명을 보존된 채 진노 가운데 집행 유예를 받게 된다. 그러나 현세적인 긍휼은 우리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볼 수 있을 때 정말로 달콤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기뻐하심으로 구원하셨도다" (시 18:19). 그리고 여기에서의 말은 매우 자애로운 사랑을 의미하고 있다.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원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 영혼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시기에 충분하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우리의 구속에 적용될 수 있다. 그가 우리의 영혼을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구덩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불속에서 나무조각을 끄집어 내듯이 하신 것은 우리 영혼, 멸망해 가는 불쌍한 우리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의 사랑과 긍휼로 우리를 구속하셨도다." 그리고 우리 몸을 위한 식량뿐만 아니라 그 저장은 그것이 우리 영혼에 대한 사랑 속에서 이루어졌을때, 즉 하나님께서 그 거주자에게 친절을 품고 계시기 때문에 집을 고쳐 주실 때처럼 이중으로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3) 그것은 죄를 사하신 결과였다. "주께서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 뒤에 던지셨고, 그리고는 나의 영혼을 사랑하시어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1]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하실 때 정의와 시기의 눈으로 그것을 주목하시려는 의도를 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그의 등 뒤로 던지신다. 그는 그것을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시며 그것으로 인해 벌하지 아니하신다. 용서는 죄를 없었던 것으로, 또는 죄가 아니었던 것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받을 회개하기를 등한히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의 면전에 두시고 벌하실 준비를 하신다. 그러나 다윗이 자기의 죄가 항상 그의 목전에 있을 때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것을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그것을 우리의 면전에 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의 등 뒤에 던지시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실 때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며, 비록 그것이 주홍빛같이 붉을지라도 그 모든 죄를 그의 등 뒤로 던지신다.

[3] 죄를 사함은 영혼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4] 죄를 사함으로 인해 병이 밀려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병에서 회복된다고 생각하는 일은 정말로 즐거운 것이다. 그 때의 병의 원인은 제거되며, 그것은 영혼에 대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

(4) 병의 회복은 그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기회를 연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의 과업과 즐거움으로 그리고 생의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1] 이 병이 그의 사망을 초래했다면 그것은 그가 당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던 것을 종식시켰을 것이다(18절). 천국은 실제로 하나님을 찬미한다. 그리고 충성스러운 영혼들은 그들이 죽어서 그리로 갔을 때 천사들처럼, 그리고 충성스러운 영혼들은 그들이 죽어서 그리로 갔을 때 천사들처럼, 그리고 거기에 있는 천사들과 더불어 천국의 일을 행한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이 세상이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투쟁의 상태에서 사람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후원하고 향상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음부가 하나님께 사례하지 못하며," 거기에 누워있는 시체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그의 완전하심과 은총을 선포하며 다른 사람들도 그를 섬기도록 인도하지 못한다. "구덩이에 들어간 자는" 더 이상 집행유예 상태에 있지 않고 또한 주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인해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의 신실을 바람으로써 그를 영예롭게 할 수 없다. 무덤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더 긍휼을 받을 능력이 없으며 동시에 그를 더욱 찬미할 능력도 없다. 그러나 마침내 그들이 마지막날에 일으켜질 때, 그들은 영광을 얻고 또 드리게 될 것이다.

[2] 병에서 회복되었을 때 그는 하나님을 찬미하고 섬기는 일을 계속할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이 하려고 결심하고 있다(19절).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주께 감사하리이다." 그들은 그것을 행할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기회회를 가지며, 그것은 선한 자에게 삶을 귀중하고 바람직하게 만들어 주는 주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사는 것을 기쁘게 여겼다. 그가 그의 왕권과 근래의 성고으로 인한 영예와 즐거움을 계속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계속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여겼다. 산 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생은 헛되다. 죽어가고 있으나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은 그 생명이 죽은 자에게서 나온 것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매우 깊이 깨달은 자로서 특별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히스기야는 이 병에서 회복되었으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그의 과업으로 삼을 것이다. '오늘날 내가 하리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만들겠나이다." 선한 권면을 하는 자들은 선한 본을 보여야 하며,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을 스스로가 행해야 한다.

히스기야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려 하였도다. 나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가장 큰 위기에 있었을 때, 바로 그때에 그렇게 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도움은 매우 시기에 적절했다. "그는 나를 구원하실 뜻이 있으심을 그리고 그 일에 적극적이심을 친히 보이셨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라. 곧 그 일을 행하시려했고 첫 마디에 나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첫째, "내가 그에 대한 찬양을 공포하고 선포하리라. 나와 나의 가족, 나와 나의 친구들, 나와 나의 백성이 찬양의 협주회를 열어 그에게 영광 돌리리라. 우리가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도 여호와의 전에서 가장 경건하고 진실한 상태에 있을 때, 그 일에 참여하고 그것으로 감동받을 수 있게 하리로라." 특별한 긍휼은, 특히 공적 인물에 대한 긍휼은 공적인 찬양으로 인정되어져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예와 그의 교회의 교회를 위한 일이다(시 116:18, 19).

둘째, "내가 계속 그를 찬양하고 그것을 보존하리이다." 우리는 평생토록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의 모든 날들은 그 자체가 신선한 긍휼로서, 더 많은 새로운 긍휼을 이끌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복된 긍휼이 새로운 찬양을 요청하듯이 이전의 독특한 긍휼은 찬양이 되풀이 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아있는 한, 호흡을 지니고 있는 한, 다시 말해서 우리가 논재해 있는 한 계속 그를 찬미해야 한다.

세째, "내가 그의 찬양을 전파하고 영존케 하리이다." 우리는 평생토 그를 찬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주의 신실을 아비가 그 자녀에게 알게 하여, 장차 올 모든 세대가 주의 신실함을 의지함으로써 그것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도록 해야 한다. 자기의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실함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것은 부모들의 의무이며, 그것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철저히 따르도록 만들 것이다. 의심할 것도 없이 히스기야는 손수 그렇게 했으나 그의 아들 므낫세는 그의 길로 행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부모들은 그 자녀들에게 훌륭한 것들을, 훌륭한 가르침과 훌륭한 본과 훌륭한 책들을 많이 줄 수 있으나 그들에게 은혜를 줄 수는 없는 것이다.

Ⅳ.font> 본장의 마지막 두 구절 속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와 관련된 두 가지 내용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히스기야의 담화에서는 생략되었으나 열왕기 하 20장에서 읽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단지 그것이 주고 있는 두 가지 교훈만을 살펴 보기로 하겠다.

1. 하나님의 약속은 방편을 사용하는 것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촉진시키고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히스기야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 뭉치 무화과를 취하며 종처에 붙여야 한다" (21절).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때, 우리의 노력으로써 그 기도를 후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의사나 약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과 그의 섭리에 종속된 상태에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네 자신을 도우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를 도우실 것이다.

2. 생명과 건강을 원함에 있어서 우리가 지행해야 할 주요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선을 행하는 것이며, 지식과 은혜와, 천국을 위한 모임을 활용하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내가 나을 징조가 무엇이뇨?" 하고 말했다(22절). 하나님께서 그에게 건강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그가 곧 감사제물을 가지고 성전에 올라가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도 거기에서 그가 치료하신 불구자를 발견하였던 것이다(요 5:14).

종교적 행사는 선한 사람에게 있어서 매우 큰 과제이고 기쁨이므로 그것을 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그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슬픔이 되며, 그것을 다시 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가장 큰 구원의 기쁨이 된다. "나의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러면 그것이 주를 찬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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