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Up Down Go comment Print
?

Shortcut

PrevPrev Article

NextNext Article

Larger Font Smaller Font Up Down Go comment Print
14:1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 (이사야 14:1-3)

이 대목은 바벨론이 전복되고 멸망되어야 하는 이유로서 여기에 나와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긍휼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이다.

1. 그러므로 그들에게 가해진 손상은 학대자들에게 갚아지고 보복되어야 한다. 야곱에 대한 긍휼은 바벨론처럼 회개할 줄 모르고 돌이킬 수 없는 야곱의 대적들에게는 분노와 멸망이 될 것이다.

2. 바벨론이 그들의 목에 오랫동안 메어 두었던 압제의 굴레는 끊어져야 하고, 그들은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을 속박의 집(애굽)에서 건질 때처럼 필연적인 것이다. 동일한 예언이,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약속이 되고 그들의 원수에게는 경고가 된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섭리가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밝은 면을, 그리고 애굽에 대해서는 암담하고 어두운 면을 돌리고 있다.

Ⅰ.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한 이 은총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친절과 선택이다(1절). "여호와께서 야곱, 곧 현재는 바벨론의 포로인 야곱의 자손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야곱의 자손들을 불쌍히 여기고 계시며, 그들을 위해 긍휼을 예비해 두셨고, 그들과 영원히 다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것을 표명하실 것이다. 비록 하나님이 잠시동안은 그들을 거절하고 거부하는 듯이 보일지라도, 그들이 그의 택한 백성이라는 것과 그 선정이 확고하리라는 것을 나타내실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가 우리에게 어떻게 보이든지 간에, 그 하나님의 긍휼은 다함이 없으며 그의 약속은 좌절되지 않는다(시 77:8).

Ⅱ. 그가 그들에게 예정하신 특별한 은총이 있다.

1. 하나님은 그들을 자기들이 있던 본국의 토양과 공기로 다시 돌려주시려 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의 옛 땅에 두시리라" 고 했다. 거룩한 땅, 약속의 땅에 정착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 곧 특별한 긍휼의 열매이다.

2.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거룩한 종교로 개종하게 될 것이요, 그들과 함께 돌아올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명백한 은총의 표적과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과 그들에 대한 그의 섭리에 의해 그들은 그러한 충동을 받게 될 것이다. "나그네 된 자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하노라" (슥 8:23)고 말하면서, "야곱 족속에게 가입될 것이다." 나그네 된 자들이 이스라엘과 연합하고, 외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영예와 힘을 크게 더한다(행 2:47). 교회의 자녀들은 외인들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영접한 자들을 받아들이고, 야곱 족속에게 가입한 자들을 인정해야 한다.

3. 이 개종자들은 이스라엘인 명분에 명예를 세워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크게 도와주며 유용하게 해 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사는 "민족들이 그들을 데리고," 그들을 돌보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 좋은 동료와 헤어지기를 싫어하는 친구들처럼 - 그들을 위해 기꺼이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종들처럼, "그들을 본토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운명(정착지)이 어느 곳에 떨어지든지, 모범적이고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모든 사례로써, 이처럼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호감을 얻도록 그리고 신앙에 대해 그들이 좋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 이루어졌다. 그때, 고레스의 선포에 준하여, 그들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애굽 사람처럼, 그들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이 이주하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스 1:4, 6).

4. 이스라엘인 고국으로 돌아오면, 개종자들의 일손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가려하지 않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비천한 위치에 있는 그들과 함께 가기를 택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호와의 땅에서 그들을 얻어 노비를 삼을 것이다" 고 했다. 그리고 그 땅의 법이 그 개종자들을 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규정함으로써, 그곳에서는 종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 마찬가지로, 그 땅의 여러 가지 장점들이 약속의 언약에 대해서는 이방인들이었던 그 종들에게 그 땅을 낙원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본국인이나 나그네에게 율법은 매한가지였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땅 곧 빛의 땅에 정주하게 된 자들은 자기들의 종들이 그 땅의 혜택을 같이 받도록 돌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다른 곳에서 지배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여호와의 땅에서 피지배자가 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5. 야곱의 족속들은 개가를 부를 것이며, 자기들과 화해하려 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이 쇠잔케 하고 미천하게 할 것이다. "그들은 전에 자기를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고 자기를 압제하던 자를 주관하리라" (2절). 그러나 그것은 보복이 아니라 정의의 대행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마도 메대와 바사 사람들의 손에서 바벨론의 포로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삼았을 것이다. 또는 이것은 마카비 시대에 그들이 그 대적들을 이길 일 속에서 성취되었을지도 모른다. 또 이 말씀은(바울처럼 복음을 가장 반대하던 자들이 그것에 순종하게 되었을 때의) 복음의 승리에 적용되며, 그리스도가 사로잡던 자를 사로잡았을 때 그들의 영적인 적들을 이기신 승리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특권에도 적용되며, 성도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이기는 권능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정직한 자가 아침에 얻게 될 주권(시 49:14)에도 적용될 수 있다.

6. 그들은 그 모든 슬픔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3절). "여호와께서 너를 슬픔과 곤고와 및 너의 수고하는 고역에서 놓으시리라." 하나님께서 친히 복된 변화를 일으키신다.

(1) 즉 그들의 형편의 변화이다. 그들은 모든 고역에서 해방될 것이다. 그들에게 환란의 날이 비록 많았을지라도, 그것은 필경 끝날 것이다. 그리고 악인의 막대기는, 비록 길더라도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있지는 않을 것이다.

(2) 그들의 심령상의 변화이다. 그들은 슬픔과 곤고에서, 그들의 현재의 부담감과 우환에 대한 두려움에서 놓일 것이다. 때로는 슬픔과 마찬가지로 공포도 영혼을 불안 속으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에서 해방시키신 자들은 스스로 매우 편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죄의 속박에서 해방된 자들은 슬픔과 두려움으로부터도 진정 휴식할 수 있는 근거를 지니게 된다.

 

14:2 없음.

 

14:3 없음.

 

14:4

바벨론 왕의 멸망 (이사야 14:4-23)

바벨론 왕들은 줄곧 하나님의 백성의 큰 원수였고 압제자였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멸망, 그 왕의 몰락, 그리고 그의 가문의 파멸은 여기에 특별히 주목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개가가 울려지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을 주시는 날에, 그들은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잠언을 지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몰락하더라도 우리 자신의 멸망처럼 생각하여 그것을 즐거워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바벨론 곧 하나님과 그의 이스라엘의 공통 적이 쓰러지는 그 때에는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계 18:20). 바벨론 왕조는 절대적이고 우주적이고 영구한 왕조가 될 것 같았고, 이러한 자만 때문에 전능자와 겨루었다. 그러므로 그 나라가 멸망 받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멸망될 때에는 모욕까지 당해야 하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다. 여기에서 그 멸망이 찬양되고 있는 왕, 바벨론이 빼앗긴 "그날 밤에 죽임을 당한" 마지막 군주 벨사살(단 5:30) 왕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몰락하고 만 전 왕조가 다 그러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느부갓네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대가 그 왕조의 절정기였었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바벨론 왕의 몰락은 즐거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본문은 매우 면밀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그의 관이나 유적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기억을 폭로하고 그에게 남은 영원한 치욕을 길이 남아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본문은 이 강대한 군주의 생애와 죽음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즉, 비록 그가 "산 자들의 세상에서 용사의 두려움이던" 자였을지라도, "음부에 내려가게" 되고만 내력을(겔 32:27)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1. 이 왕조와 왕은 막대한 재물과 권세에 달할 수 있었다. 바벨론은 "황금 성" (4절:한글 개역에는 "강폭한 성" - 역주이었다. 그것은 본래 갈대아말로서, 바벨론이 자칭 그렇게 부르곤 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 정도로 거기에는 재물이 풍성했고, 또한 금이 다른 모든 금속들을 능가하듯이, 바벨론이 다른 모든 성읍을 능가했다. 바벨론은 "황금 갈망자" 또는 (혹자의 풀이대로)" 황금을 강요하는 여인" 이다. 사람이 어떻게 재물을 그렇게 손에 넣을 수 있는가? 새 예루살렘이야말로 참으로 유일한 성이다(계 21:18, 21).

바벨론 왕은 "열방을 억압" 함으로써(6절) 그의 영토 내에서 이처럼 많은 재물을 가졌고, 또 절대적인 명령권을 가졌으므로 그들에게 법을 주었고 그들에게 형을 선고했으며 마음대로 "열국을 엎었다" (12절). 그리하여 그들이 그에게 저항할 수 없게 했다. 이처럼 막강하고 의기양양한 군대를 싸움터로 끌고 왔으므로, 그가 어느쪽을 돌아보든지,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격동시켰다" (16절). 모든 이웃은 무서워했고, 그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도 그의 개인의 힘에 의해서는 이렇게 할 수 없었고 오직 자기 뒤에 거느린 그 무수한 사람들에 의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 폭군들은 어떤 사람들에게 자유 재량권을 줌으로써, 실상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한다. 이처럼 자기 자신에게 불리하게, 그리고 자기의 권리와 자유에 불리한 동맹을 맺어, 결국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서 멸망되고 마는 인류의 상황이란 얼마나 불쌍한가!

2. 이 모든 재물과 권세는 야비하게 남용되었다. 즉 바벨론 왕은 다음 두 가지 사례에서 이러한 죄를 범했던 것이다.

(1) 크게 확대하고 잔인했다. 그는 "학대하는 자"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4절). 그는 "패권자의 홀" 을 지니고 있으며(5절), 그 주위에 있는 모든 군왕을 지휘했다. 그러나 그것은 "악인의 몽둥이," 곧 그의 사악성을 뒷받침해 주며,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치는, 악을 저지르는 몽둥이이다. "그는" 징계하고 개혁하기 위해 공의로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역정스러운 분노를 만족시키기 위해 "분내어 여러 민족을 쳤다" (6절). 그리고 그는 "치기를 그치지 아니하면서" 계속 그들은 그의 군대로 추격했고, 그들에게 잠시의 휴식 시간, 숨쉴 시간, 곧 팔을 쉴 시간도 주지 않았다. 그는 열방을 다스렸으나 "노하여" 다스렸고, 그가 말할 때, 행할 때마다 역정을 냈다. 그러므로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스린 그가 실상 자기 자신 하나를 다스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마치 그의 세대가 재앙을 당하고 그 자신이 인류에게 저주의 원인이 되는 일에서 긍지를 느끼는 자처럼 "세계를 황무케 했다" (17절). 대왕들은 흔히 성읍을 세우는 것을 자랑하나, 그는 성읍을 훼파하는 일을 자랑했다(시 9:6 참조).

그 무엇보다도 가장 악한 그의 학정의 사례가 여기에 두 가지 제시되어 있다.



[1] 그는 그의 포로에게 냉혹했다(17절). 그는 "사로잡힌 자의 집을 열지 않았다." 즉 (난외에 있는대로)"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들을 감금했으며 누구에게도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특히 유다인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바벨론 왕이 하나님의 백성을 포롤 가두고, 결코 그들을 놓아 보내려 하지 않은 것은, 그 왕의 죄악의 그릇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아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그릇들을 더럽힘으로써, 실상 그 그릇들을 예전처럼 사용될 수 없으리라고 말했다(단 5:3). 이 일 때문에, 먼저 하나님의 포로들을 귀환시키고 그 성전 그릇들을 본 곳으로 돌려보내려 했던 자에 의해 그가 속히 쫓겨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2] 그는 자기 신하를 압제했다(20절). "네가 자기 땅을 망케 하였고 자기 백성을 죽였다" 고 했다. 그 땅의 재물과 백성의 부죄함이 왕의 힘이며 영예인데, 백성의 마음과 감정을 결코 그처럼 안전하게 또 그처럼 영광스럽게 주관하지 못하는 그가 무엇을 얻었겠는가? 그러나 폭군들은 자기들의 욕망과 격정 때문에 자기들의 유익을 희생시키고 만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들의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학대한 권세자들을 반드시 헤아리실 것이다.

(2) 교만과 거만한 마음이 컸다. 여기에 그의 "영화" (pomp), 그의 사치스러운 수행원들이 주목되어 있다(11절). 그는 가장 장엄한 모습을 하고 나타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이 최악의 것은 아니었다. 최악의 것은 바로 그의 마음 자세였다. 즉 마음의 거만이었고, 그것이 그의 멸망을 재촉했다(13, 14절). "네가" 계명성처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하도다." 이것은 그의 허영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마도 그것은 천사들이 자기들의 처음 상태, 그들에게 부여된 직책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과 다투려 하여 그에게서 독립하여 그와 동등하게 되려했던, 저 타락한 천사들의 말에서 빌어온 말일 것이다. 또는 아마도 그것은 느브갓네살의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사람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했으나, 짐승으로 되어버렸던 것이다(단 4:30). 바벨론 왕은 여기에서 자기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약속하고 있다.

[1] 화려함과 그 권세에 있어서 자기는 모든 이웃 왕들을 능가할 것이며, 세상적인 영광과 지복(至福)의 최고봉에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즉 그는 이 세상이 그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크고 행복하게 될 것이다. 즉 욕정의 마음이 하늘을 원했다. 그는 거기에 오르기를 바라며, 하늘이 땅에서 무한히 높이 있는 것처럼,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자기가 매우 높게 되기를 원한다.

군왕들은 하나님의 별들로서, 이 어두운 세상에 어느 정도 빛을 비쳐 준다(마 24:29). 그러나 그는 그의 보좌를 하늘의 별들보다 더 높이 오르기를 원했다.



[2] 그는 특히 하나님의 산 시온을 모욕했다. 벨사살이 예루살렘의 성전에 있던 그릇들을 자기의 마지막 술좌석에서 요구한 것은 시온에 대해 특히 악의를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단 5:2 참조). 이와 같은 마음으로 그는 여기에서 "내가 북극 집회 (여기서 "집회" 란 원어는 "성회" 를 뜻하는 단어이다)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고 했다. 시온산은 북극 하늘에 있는 것으로 적혀 있다(시 48:2). 아마도 벨사살은 예루살렘을 원정하여 멸망시키고 개가를 부를 계획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은 그를 죽이셨다.

[3]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겨루려 했다. 그는 "가장 높은 구름 위에" 거하시는 하나님께 대해서, 그리고 그의 영광스러운 것들에 대해서 들었었다. 그러나 그는 말했다. "그곳으로 내가 올라가, 하나님처럼 위대하게 되리라. 나는 그들이 지극히 높은 자라고 부르는 자와 같이 되리라." 지극히 거룩한 자와 같이 되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름다운 야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질 것이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귀는 우리의 최초의 조상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같이 되리라는 것을 약속함으로써, 금지된 열매를 먹도록 유인했던 것이다.

[4] 그는 앗수르 왕조의 처음 창설자들이 자기 자신을 신격화하고 별들에게도 자기들의 이름을 붙였던 것처럼, 그의 사망후에 스스로를 신격화하려 했다고 그는 말한다. "내가 모든 것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그의 교만은 이러했다. 이것은 그의 멸망에 대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징조였다.

3. 그에게 완전한 멸망이 임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예고되어 있다.

(1) 그의 재물과 권세는 꺾일 것이며, 그의 위풍과 환락은 끝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남을 학대하는 자가 되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되지 못할 것이다(4절). 그가 만일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에게 한 충고를 따라 진실로 회개하고, 개혁함으로써 그런 일을 멈추었더라면, 그것은 그의 생명과 평화를 연장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범죄하기를 멈추려 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폐하실 것이다. "사람들이 영원히 존속하리라고 생각했던 황금성(한글 개역:강포한 성)이 폐하였다. 그 바벨론은 끝이 났다. 여호와께서, 곧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악한 왕의 몽둥이를 꺾으셨도다. 그에게서 그의 직책을 빼앗는 표적으로 그것을 그의 머리 위에서 꺾으셨도다. 하나님은 그로부터 권세를 빼앗으셨고,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악을 행할 수 없도록 만드셨다. 하나님은 왕의 홀을 꺾으셨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조차도 쉽사리 또 종종 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그 왕 자신도 사로잡힌다. "그는 억압당한다" (6절). 거센 손이 그의 위에 놓이나 아무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폭군들이 일단 대적의 권세 하에 떨어지면, 이전에 친구로 아첨하는 자들이 그들을 배반하는 것이 폭군의 일반적인 운명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또 하나의 대적에 대해 읽을 수 있는데, 그에 관해,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 줄 자가 없으리라" 는 사실이 예고되어 있다(단 11:45). 리베리우스와 네로는 그들 자신이 이렇게 버림받는 것을 보았다.



(3) 그는 죽임을 당할 것이며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고 살륙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같이 다시 기억되지 아니할" 것이다(시 88:5). 그는 "음부같이 연약하게 될" 것이다(10절). 그의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도다" (11절). 즉 그의 영화는 그와 함께 소멸된다. 흔히는 그렇지만, 그의 인생의 영화는 화려한 장례식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참된 영화(즉 참된 은혜)는 영혼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나, 헛된 영화는 육신과 함께 음부로 내려갈 것이다. 거기에는 끝이 있는 것이다. "비파 소리" 가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환락에 대한 작별임과 동시에 영화에 대한 작별이다.

이 권세 많은 왕은 화려한 침대에 누워있곤 했으며, 침대 아래에는 고급 양탄자가 깔려 있고, 그 위에는 극히 우아한 덮개와 차양이 있었으나, 이제는 "구더기가 그 발 아래 깔리고 지렁이가 그를 덮을 것이다. 그는 썩은 몸에서 나온 벌레가 바로 그렇게 할 것이다. 이것은 비록 그가 자기는 신(神) 이라고 상상했지만, 그도 다른 사람과 같은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했다. 우리가 우리의 몸의 욕망을 채우고, 그 몸을 치장할 때는, 그 몸이 멀지않아 벌레의 밥이 되리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4) 그는 매장되는 영예까지도 얻지 못할 것이라 했다. 더욱이 정중한 장례식을 통해 조상의 묘실에 묻히지는 못할 것이다. "열방의 왕들도 영광 중에 잔다" (18절). 즉 옛날 애굽 사람들처럼, 그들의 시체를 향료로 처리하여 썩지 않게 보존하거나, (영국 경우처럼) 무덤 위에 초상을 세워 두거나 한다. 그리하여 열방의 왕들은 마치 죽음의 모욕을 무시하는듯, 초라하고 희미한 영광 중에 "각기 자기 집에서 잔다." 즉 자기 묘지에서(무덤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정해진 집이기 때문이다), 분요함과 괴로움이 조용히 잠자고 있고 괴로운 자들과 자친 자들이 누워 휴식하고 있는 침실에서 잔다.

그러나 이 바벨론 왕은 "내어 쫓기어," 무덤을 얻지 못한다(19절). 그의 시체는 짐승의 시체처럼, 도랑에 던져지거나, 아무도 만지려 하지 않는 독이 있는 "가증한 나뭇가지처럼" 옆의 쓰레기 더미에 던져진다. 또는 죽음을 당한 악인의 옷처럼 팽게쳐진다. 그리고 정의의 손에 의해 그 시체는 "칼에 찔리고," 그 위에 돌무더기가 쌓이거나, 아니면 큰 채석장에 던져져 "돌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 나아가, 바벨론 왕의 시체는, 전장에서 살륙당하여 말과 군사들에 의해 "밟혀" 짓이겨진 자의 잔해처럼 될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기 조상과 일반으로 안장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20절). 정중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나, 만일 그것이 의를 위해 당하는 일이라면(시 79:2 에서처럼) 다른 비방과 마찬가지로 즐거워할 수도 있다(마 5:12). 이것이 바로 저 두 증인의 운명이었다(계 11:9). 그러나 여기에서처럼 그것이 불의에 대한 정당한 형벌이라면, 그것은 형벌이 회개치 않은 죄인들을 죽음 저편까지 쫓아간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들은 "영원한 수치와 치욕을 받기 위해 부활하게" 된다는 더 무서운 형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4. 많은 사람들은 그의 몰락을 보고 그것에 대해 개가를 부를 것이라고 했다.

(1) 그가 큰 폭군으로서 무섭게 대해 왔던 자들이, 이제 그에게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뻐할 것이다(7, 8절). 이제 그가 없어지자 "온 땅이 평안하고 평온했다." 왜냐하면 바벨론 왕은 평화를 크게 방해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 모두가 "소리질러 노래한다." 왜냐하면 "악인이 패망하면 성읍이 기뻐 외치기" 때문이다(잠 11:10). 향나무와 레바논 백향목은 이제야 안심이다. 이제 그들은 그의 거대한 군대가 갈길을 비켜 주기 위해서나 그에게 목재를 공급하기 위해 잘려질 위험이 없다.

바벨론 이웃 나라의 왕과 고급 관리들을 잣나무와 백향목에 비교했다(슥 11:2). 이제 그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고, 또 그들의 권리를 박탈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냐하면 "온 세계의 방망이가 꺾여 부숴졌고" (렘 50:23)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한" 도끼가(10:15) 못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2) 죽은 자의 무리가 그를 환영할 것이다. 특히 그가 잔인하게 죽음으로 몰아 넣었던 자들이 그러할 것이다(9, 10절). "아래의 음부가 너로 인하여 소동하여, 너의 몸을 영접하고 그들의 어둡고 무서운 지역에 네가 도착한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낼 것이다." "세상의 영웅들" 도 그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그를 경외하여 감히 그의 옆에 오려하지 않고 그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그들의 자리에서 일어났으며, 이제 그가 죽은 자의 나라로 들어오자 그를 비난할 것이다. 그가 자기 휘하의 성읍에 공적으로 방문할 때처럼, 그들은 그를 맞으러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렬이 대동되어 이 무서운 곳으로 들어오게 됨으로써, 그의 치욕과 고통은 더욱 극심할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 있는 자기들의 보좌와 자리에서 비웃으면서 일어나, 그가 세상에서 하던 것처럼 거기에 앉겠느냐고 그에게 물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이렇게 조롱할 것이다. "너도 우리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누가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했겠는가? 네가 매사에 우리를 가혹하게 대할 때는 감히 네 자신도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다. 네 자신을 불멸의 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던 네가, 우리처럼 불쌍하게 죽어야할 인간과 운명을 함께 하려고 왔느냐? 지금 네 영화는 어디에 있으며, 네 환락은 어디에 있느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며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는고!(11, 12절). 바벨론 왕은 새벽별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어디를 가든지 낮을 함께 지니고 오는 자 같았다. 이처럼 찬란하던 왕이 몰락했는가? 그 빛나던 별이 흙덩어리가 되었는가? 어떤 사람이 이러한 영화와 권세의 최고봉에서 이러한 치욕과 비참함의 심연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는가?"

이 대목은 흔히 새벽별과 같았던(욥 38:7) 천사들의 타락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다(그리고 그것은 암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떨어졌는고.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혀 그토록 낮아지게 되었는고!"

하나님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고 평화를 교란시킨 자들에게 보응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도들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만국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바벨론 왕을 죽은 자의 세계로 영접하는 모습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다. 그것은 분명히 단순한 상상의 비약 이상의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분명한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1] 보이지 않는 세계, 곧 영들의 세계가 있는데, 사람은 죽으면 영은 그곳으로 간다. 거기에서 영은 몸과 분리된 상태로 존재하고 행동한다.

[2] 그 분리된 영혼들은 - 비록 우리는 모른다 할지라도 - 서로 알고 대화한다.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비유담은 바로 이것을 시사한다.

[3] 사망과 음부는, 이 세상에서 지극한 영화와 그 풍성한 환락을 끊어 성별되지 못한 자들에게는 진정 사망과 음부가 될 것이다. "아들아 이것을 기억하라" (눅 16:25).

(3) 구경군들은 그의 쇠망에 놀랄 것이다. 그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지게 되어" 거기에 거할 때, "그를 보는 자가 주목하여 그를 자세히 살펴 볼 것이다" (15, 16절). 그들은 거의 그들의 눈을 믿지 않을 것이다. "그 바벨론 왕처럼, 사망이 그렇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준 사람은 결코 없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처럼 위대하고 그처럼 즐겁게 보이고 그처럼 눈부시게 숭앙받고 시종받던 자가, 이제 이처럼 기분 나쁘게, 이처럼 보잘 것 없게 보이고 이처럼 벌거숭이로 무시당한 채 누워 있게 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 사람이 땅을 진동시키며 열국을 경동시킨 자가 아니요? 그가 이렇게 되리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시 82:7)

5. 이 모든 것으로부터 이끌어 낸 추론이 있다(20절). "악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 이름이 나지 못하리로다." 바벨론 왕조의 왕들은 모두 악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백성의 압제자의 후손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치욕을 물려받았다. "그들은 영영히 이름이 나지 못하리로다." 그들이 잠시 동안은 거대해 보일지도 모르나, 모든 영화는 결국 그들의 치욕을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 것이다. 죄악의 길에는 명예로울 만한 것이 없다.

Ⅱ. 왕실의 완전한 멸망이 그 왕성의 황폐함과 함께 예고되어 있다.

1. 왕실은 완전히 근절될 것이라 했다. 이 멸망시키는 일에 고용될 메대와 바사는, 벨사살이 살해되었을 때, "그 자손 도륙하기를 예비하고" 하나도 남겨 두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21절). 바벨론의 어린 아기도 "반석에 메어쳐야" 한다(시 137:9). 이 명령은 매우 가혹하게 들린다. 그러나

(1) 그들은 "그들의 열조의 죄악을 인하여" 고난을 당해야 한다. 흔히 조상들의 죄악이 "그 자손들에게서 징벌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며, 그것을 싫어하시는가를 보여 주고 있으며, 죄인들로 하여금 죄를 범치 못하게 막고 있다. 이것이 바로 처벌의 목적이다.

느부갓네살은 시드기야의 아들을 죽였다(렘 52:10). 시도기야의 죄악으로 인해 그의 후손이 같은 보복을 받았다.



(2) 왕족들이 지금 죽임을 당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일어나 땅을 취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열조가 행한 것처럼,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날에 많은 악을 행할 수 없도록 - 그들의 열조가 성읍을 훼파함으로써 그렇게 했던 것처럼, 그들의 횡포를 지지하기 위해 성읍을 건축함으로써 세계를 괴롭히지(니므롯의 정책이 그러했다. 창 10:10, 11) 않도록 해야 한다. 바로는 성을 건축하는 일을 시켜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인들을 압제했다(출 1:11). 하나님의 섭리는, 만일 살아 있다면 악을 행했을 자들을 죽임으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민족들의 번영을 도모한다. 원수들의 후손들을 끊는 것과 마땅한 일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일어나 그들을 치리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려는 마음을 알리셨다면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진행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바벨론은 아마도 많은 왕족을 자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름과 남은 자를 끊기" 로 작정하셨다. 그러므로 왕의 아들과 손자들이 죽임을 당하여, 아무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피조물에게도 결코 피해를 주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2. 왕성이 파괴되고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23절). 그것은 한적한 곳에서 사는 소름끼치는 새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특히 당아와 부엉이와 함께 사는 "고슴도치" 의 차지가 될 것이다(34:11). 그리고 신약 성서의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도 이처럼 설명되어 있다. 곧 그것은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고 했다.

바벨론은 몰락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버림당하고, 그 땅을 정돈하는 일에 아무도 힘을 기울이지 않게 되자, 곧 악취나는 진흙 투성이의 "물 웅덩이" 가 되어, 불쾌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 해로운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곳을 "멸망의 빗자루로 쓸어버릴" 것이다. 백성들에게는 온통 더럽고 지저분한 것만 있고, 그들이 개혁의 빗자루로 깨끗케 되려하지 않을 때, 그들은 멸망의 비로 땅의 표면에서 소제되는 것 이외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14:5 없음.

 

14:6 없음.

 

14:7 없음.

 

14:8 없음.

 

14:9 없음.

 

14:10 없음.

 

14:11 없음.

 

14:12 없음.

 

14:13 없음.

 

14:14 없음.

 

14:15 없음.

 

14:16 없음.

 

14:17 없음.

 

14:18 없음.

 

14:19 없음.

 

14:20 없음.

 

14:21 없음.

 

14:22 없음.

 

14:23 없음.

 

14:24

앗수르의 멸망 (이사야 14:24-32)

바벨론과 갈대아 제국의 멸망은 요원한 이야기였다. 그 제국의 쇠망이 여기에 예고되어 있지만, 아직은 상당한 절정에 도달하지도 않은 때였다.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이 예고가 성취된 것은 거의 200년 후였다.

이제 이사야가 예언한 그 백성은 "이 예언이 우리와 무슨 상관 있느냐? 또는 그것이 좀 더 나은 것인들 다를 게 무엇이겠느냐?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 고 물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 이사야는 본문에서 그들을 해치는 현재의 대적 앗수르 사람과 블레셋 사람의 멸망을 예언함으로써 달하고 있다. 멀지 않아 그들은 앗수르와 블레셋의 멸망에 대한 목격자가 될 것이며, 그것 때문에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번영에 대한 믿음을 확증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현재의 위로가 될것이며, 미래의 구원에 대한 담보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 대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장래에도 동일하시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현재의 그 자신과 영원히 같으실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살펴보자.

Ⅰ. 앗수르 사람들의 멸망에 관한 확신을 보자(25절). "내가 앗수르 사람을 나의 땅에서 파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산헤립은 매우 거대한 군대를 유다의 땅으로 데리고 왔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파하셨다. 하나님은 멸망시키는 천사의 칼로써 그의 대군을 모두 파하셨다. 하나님의 땅을 부당하게 침입하는 자들은, 도리어 그것이 자기들에게 해롭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지 못한 발로 그의 거룩한 산을 밟는 자들은 거기에서 짓밟힐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그들을 치러온 큰 무리를 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일을 손수 행하신다. "내가 (직접) 앗수르 사람을 파하리라. 천사들 곧 천사들의 무리를 지휘하는 내가 홀로 그것을 행하리라." 그러므로 앗수르의 능력을 파괴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의 목에서 굴레를 끊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고 했다. 그 막대한 군대를 주둔시켜야 하고 군세를 내는 부담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앗수르 사람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 멸망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멍에와 짐이 되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어떠한 것을 예상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자.

1. 이 예언은 맹세에 의해 여기에서 비준되고 다짐되어 있다(2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뜻의 불변성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백성이 큰 안위를 받게 하시기 위해(히 6:17, 18) "맹세하셨다."

이 구체적 의도에 관해서 여기에 언급되어 있는 내용은, 하나님의 모든 목적에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리라." "그는 한 마음이시니, 누가 그 뜻을 돌이킬 수 있겠는가?" 예견하지 못한 일을 당하여 사람들이 흔히 하듯, 하나님은 결코 계획을 고쳐 짜거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경영하는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는 이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들의 안정도는 바로 그 사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2. 앗수르의 권력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과 당신의 교회를 대적하는 열방의 모든 권세를 어떻게 다루시는가에 대한 견본이 된다(26절). "이것이 온 땅을(칠십인 역대로) "온 세계를 향하여" (갈대아 역대로) "땅의 모든 거민을 향하여 정한 경영이다." 앗수르 제국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당시의 앗수르는 그 후의 로마 제국처럼 어느 의미에서는 온 세계로 간주되었다(눅 2:1), 그리고 로마에 종속되어 있던 많은 나라들이 로마와 함께 쇠망했던 것처럼, 그 당시도 그러했다] 언제고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산을 공격하는 나라와 주권자들에 대해서 정한 뜻이다. 앗수르의 운명은 바로 그런 자들의 운명이 될 것이다. 그들은 결국 자신을 상하게 하는 일에 관여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예루살렘은, 앗수르 사람처럼, "모든 국민에게 무거운 돌이 될" 것이다. 그래서 "무릇 그것을 드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다" (슥 12:3, 6).

하나님의 백성을 침입했다는 이유로 지금 앗수르를 치기 위해 펼쳐질 바로 그 권능과 정의의 손이, 그런 짓을 행하는 "열방을 치기 위해 펴질" 것이다. 이것은 지금도 사실이며, 앞으로도 항상 그러할 것이다. "그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민 24:9).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원수에게는 원수가 되실 것이다(출 23:22).

3. 땅 위의 어떤 권세이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없다(27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앗수르의 멍에를 꺾고 의인의 분깃 위에 놓여 있는 악인의 막대기를 꺾으려고 경영하셨은 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랴? 누가 그를 설득하여 그것을 취소하거나 그것을 피할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뜻을 수행하기 위해 그 손을 펴셨은 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또는 그의 심판의 진노를 멎게 할 수 있으랴?

Ⅱ. 블레셋 사람들과 그들의 권력은 반드시 멸하리라는 확신이 제시되어 있다. 그들을 몰락시키는 짐으로서 그들에게 짊어지워진 이 짐, 곧 이 예언은, "아하스 왕이 죽던 해" 에 왔다. 그것은 히스기야 즉위 제1년이었다(28절). 선한 왕이 악한 왕대신 즉위했을 때 그 때에 이 훌륭한 메시지가 그들에게 보내어졌다. 우리가 개심하는 그 때, 그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하늘로부터의 좋은 소식을 바랄 수 있다.

이제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웃시야 왕의 죽음을 기뻐했다는 이유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에게 내려진 책망이 있다. 웃시야 왕은 뱀과 같이(29절) 그들을 물어뜯고 죽였으며, 그들을 매우 비천하게 만들었다(대하 26:6). 그가 "블레셋 사람과 싸우고 그들의 성을 헐고 그들 가운데 성읍을 건축하였다" 고 했다. 그러나 웃시야가 죽었을 때, 또는 퇴위했을 때는, 그 사실이 가드에 기쁨으로 전해졌고 "아스글론 거리에서 공표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이웃이 망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은 몰인정한 일이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안심하지 않도록 하라. 비록 웃시야가 죽자, 그들이 아하스에게 복수하여 유다의 여러 성읍을 빼앗었을지라도(대하 28:18), 웃시야의 "뿌리에서 독사가," 즉 웃시야보다 더 엄청난 원수 곧 히스기야가 "나겠고" 그 통치의 열매는 그들에게 "나는 불뱀" 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엄청난 날렵함과 맹렬함으로 그들에게 엄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히스기야의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왕하 18:8). "저가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유용히 쓰시던 도구 중의 하나를 제거하신다 하더라도, 다른 것을 일으키시어 그것이 하다가 아직 끝마치지 않은 바로 그 일을 수행하고 완성하도록 만드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기근과 전쟁으로 블레셋 사람들이 멸망하리라는 예언이 있다.



(1) 그것은 기근에 의한 멸망이다(30절). 불레셋 사람들이 쇠약하게 만들고 괴롭히고 가난하게 만들어졌던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풍족함을 즐기고, "가난한 자의 장자가 먹게 될" (즉 가장 가난한 유다인들도 손쉽게 음식을 얻게 될) 그 때에, 오히려 블레셋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다. 그들의 기력이었던 자, 나무가 뿌리에 의해 세워지듯이 그들 스스로를 세워 주고 있다고 생각한 자가 기근으로 죽는 자들처럼 굶주려서 점차로 말라버릴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그는 남은 자를 살륙할 것이다." 하나님의 멸망을 모면한 자들은 또 다른 멸망을 위해 보존될 뿐이다. 그리고 남은자가 극소수에 불과할 때, 그 극소수도 결국 잘리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철저히 일하시기 때문이다.

(2) 그것은 전쟁에 의한 멸망이다. 하나님의 백성 중 "빈핍한 자가 평안히 누울" 때, 전쟁 경보에 의해 무서움을 당하지 않고 평안의 노래를 부르며 기뻐할 그 때, 블레셋 사람의 각 문과 각 성읍은 고함을 치고 부르짖을 것이며(31절), 그들의 나라는 완전히 황폐케 될 것이다. 왜냐하면 블레셋 북방에 있는 유대로부터 "연기가" (곧 큰 먼지를 일으키는 거대한 군대요, 그 가까이에는 삼키는 불이 있다는 표시인 연기가) "오는데 그 항오를 떨어져 행하는 자가" 그 모든 군사 중에 아무도 "없느니라." 즉 그들이 교전하려 할 때, 탈주하거나 행방불명되는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공격할 시간이 왔을 때, 모두 일치단결하여 활기있게 그 공동의 적을 칠 것이다. 드보라 시대에 르우벤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았고 아셀은 해변에 앉았던 것처럼(삿 5:16, 17), 그들에게는 공적인 일을 거절하는 자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할 일이 있을 때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마음을 놀랍게 부여하실 것이다.

Ⅲ. 이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격려하는 데에 선용되어야 한다(32절).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1.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시는 그 큰 일은 그 이웃들도 알게 되고 또 알 수밖에 없다. 열방 중에 있는 자들이 그것에 대해 논평한다(시 126:2).

(2) 사신들이 그 일에 관해 묻기 위해 모여들 것이라는 뜻이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모든 사람들로부터 구별된 그리고 특별한 은총으로 존귀하게 된 백성이었다. 그러므로 선의에서건 악의에서건 모든 사람들이 호기심에 차 그것에 관해 알고 싶어한다.

(3)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소망에 관한 이유뿐만 아니라 소망에 관해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온유와 두려움으로" 언제나 그 이유를 대답할 준비를 하라는 교훈이다(벧전 3:15).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성한 진리 이외의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모든 행사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4)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거래하신 그 결과는 매우 명료하고도 분명하게 영광스러우므로, 어느 누구나, 각 사람이 그것에 관해 묻는 자들에게 그것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2. 이제 열방의 사신들에게 할 대답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하나님은 그의 교회와 백성들에게는 미쁘신 친구이시며, 또 앞으로도 친구가 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향상시키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다" 고 그들에게 말하라.

이 말은 되어진 일 자체와 그것에 대한 이유를 모두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가? 나라들의 모든 변혁, 곧 한 나라의 멸망과 다른 한 나라의 흥함에서 무엇을 의도하고 계시는가? 그는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시온을 세우고(건설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의 세력이 진보되는 것을 바라고 계신다. 그리고 그는 목적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다.

열방의 사신들이 히스기야가 블레셋 사람들을 이긴 것에 관해 묻고자 왔을 때는, 히스기야가 의도한 바를 성취한 그 정책과 계획과 전략에 대해 배우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성공이 그러한 종류의 것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와 그 속에 있는 하나님과의 이해관계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다. 그러므로 블레셋 사람들은 몰락해야 한다.



(2) 하나님의 교회는 그를 의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의지할 것이다.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것(시온)을 의지하리라" (개역:"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얼마 전에는 매우 비천하게 된 그의 곤고한 백성들이 심지어 그들 중 가장 곤고한 자까지도 시온을 의지하리라.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시온밖에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습 3:12, 13). "가난한(곤고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마 11:5). 그들은 이것을, 이 위대한 진리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세우신 것을 의지할 것이다. 이 위에 그들은 그들의 소망을 둘 것이며, 사람의 팔 위에 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공적인 일에 관하여 우리에게 풍성한 만족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개개인에게, 각 단체에게 그리고 사적인 이익에 어떤 영향을 주든지 간에, 교회는 하나님 자신을 그 설립자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그 토대의 반석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견고히 설 수밖에 없다.

"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가(혹자의 풀이대로:한글 개역과 같은 번역)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스스로 그의 교회에 연합하고 그 권익에 참여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세우시려는 그 계획에 협력할 것이다. 똑같은 계획 위에 모두 결속될 것이며, 그들의 모든 사소한 관심과 설계가 그것으로 향하도록 만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는 자들은 그들과 운명을 함께 하고, 기꺼이 그들 중에 자기들의 운명을 던져야 한다.

열방의 사신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난한 이스라엘인들은 - 시온과 같이 거룩한 산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시 87:1) - 시온과 같다는 것을 알리라. 시온은 "요동치 않고 영영히 있을 것이요" (시 125:1), 따라서 인간들이 무슨 짓을 가해오든 이스라엘인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14:25 없음.

 

14:26 없음.

 

14:27 없음.

 

14:28 없음.

 

14:29 없음.

 

14:30 없음.

 

14:31 없음.

 

14:32 없음.




































 


List of Articles
No. Category Subject
66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1장
65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2장
64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3장
63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4장
62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5장
61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6장
60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7장
59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8장
58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09장
57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0장
56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1장
55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2장
54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3장
»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4장
52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5장
51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6장
50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7장
49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8장
48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9장
47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0장
46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1장
45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2장
44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3장
43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4장
42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5장
41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6장
40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7장
39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8장
38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29장
37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0장
36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1장
35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2장
34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3장
33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4장
32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5장
31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6장
30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7장
29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8장
28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39장
27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0장
26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1장
25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2장
24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3장
23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4장
22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5장
21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6장
20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7장
19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8장
18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49장
17 이사야 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50장
List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All the Bibles, Commentaries and Dictionaries here have their own rights.
All rights are reserved for them, not for us. Thanks! Praise our great God, Christ Jesus!

HANGL Lingua Franca 한글 링구아 프랑카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