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이사야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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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찬미의 노래 (이사야 12:1-3)

이것은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해 노은 찬송가의 전편(前篇)이다. 즉, 하나님께서 유대 교회를 위해 큰 구원을 역사하실 때 유대 교회가 사용하고, 흑암 권세의 모든 방해에도 불구하고 메시야의 나라가 이 세상에 세워질 때 그리스도인들의 교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찬송가이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즉, 흩어졌던 교회가 한 몸으로 연합하여서, 한 사람처럼, 한 마음 한 입으로, 하나이시며 그 이름도 하나인 하나님을 찬미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해 이처럼 큰 일을 행하실 "그 날에 네가 발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즉,

Ⅰ. "너는 그렇게 말할 만한 이유를 갖게 될 것이다." 그 약속은 확실하며 그 안에서 풍요한 축복이 들어 있다. 그리고 교회가 그 축복을 받게 될 때는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따라서 감사할 일이 풍성할 것이다.

복음의 시대에 대한 구약의 예언은, 종종 그 당시에도 감격스러울 만한 기쁨과 찬미로 표현되어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누릴 헤아릴 수 없는 혜택은 가장 드높고 넓은 감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Ⅱ. "너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다른 모든 은사는 이 은사로 인하여 빛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어떤 경우에나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돌리게 하는 은총을 그들에게 베풀 것이다. "네가 말할 것이니라" 고 한 것은 "네가 그렇게 말해야 한다" 는 뜻이다. 비둘기가 자기들의 창가에 모이듯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안식을 얻는 "그날에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이 받은 은총을 싫어하듯, 저들이 그리스도에게서 찾은 자비를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는 말하게 되리라, 오 주여! 내가 주를 찬양하리이다!" 라고.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까지도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1.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진노를 돌이키시고 다시 은총을 베푸시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을 여기서 얻어야 한다(1절).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으나, 이제는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하나님이 분노한다고 하여서, 그에 대한 우리의 찬미의 가락을 끊어서는 안 된다. 비록 그가 우리에게 노하실지라도, 비록 그가 우리를 죽이실지라도, 우리는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종종 정당한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노를 발하시지만, 우리는 그에게 화를 내고, 나쁜 말을 할 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가 우리를 견책하실 때에도, 우리는 그를 찬미해야 한다.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나이다." 그러므로 다음 사실을 명심하자.

(1) 하나님은 때로 그의 백성에게 노하시며, 그의 분노의 결과가 겉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 아래 겸비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2) 비록, 하나님께서 잠시동안 그의 백성에게 노하실지라도 그의 노는 결국 제거될 것이다. 그것은 잠시뿐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다투시지는 않을 것이다. 이새의 뿌리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제거되었다. 왜냐하면 "그(그리스도)는 우리의 화목 제물" 이시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당신이 화해하신 자들에게 위로를 주신다. 하나님의 분노가 사라지기만 해도 그들에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린"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다(롬 5:1, 2). 아니, 하나님은 때로 그의 백성을 거친 들로 데리고 가시어 거기에서 그들을 "말로 안위하신다" (호 2:14).

(4) 하나님의 노가 제거되고, 우리에게 그의 위로가 돌아오는 것은 기쁘고 감사한 우리의 찬미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2. 신자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찬양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2절), "보라. 그리고 경탄하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그는 나의 구세주로서 나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의 구원으로서 나를 안전케 해 주신다. 나는 그를 나의 구원주로서 의지한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참으로 그러하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위해 역사하신 모든 구원의 사건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직 그에게서만 구원을 기대하겠다고, 작은 산이나 큰 산에게서 구원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라면, 즉 그가 내 영원한 구원을 보증하신다면, 나는 그가 내게 구원을 마련하고 또 보존해 둘 수 있도록 그를 의뢰하리라. 나는 그가 내게 유익하도록 모든 일을 역사하리라는 사실 만큼은 의심하지 않고서, 내 모든 현세적인 관심을 기울여 그를 의지하겠다. 나는 자신을 가지리라. 즉 나는 항상 마음이 편할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의 구원처로 삼는 자들은 거룩한 보호와 마음의 평정을 누릴 수 있다. 우리의 구원주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1) 우리의 두려움을 진정시키자. 우리는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의뢰하는 그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한다. 아니, 그럴 염려는 없다. 또한 아무리 거대하고 위협적인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는 두려움을 막을 수 있는 최상의 대책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2) 우리의 소망을 튼튼히 하자. 주 여호와는 우리의 구원이신가? 그렇다면, 그는 우리의 "힘이시요 찬송" 이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고, 대항해야 할 시험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두 가지의 능력을 얻기 위해, 즉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 사람을 능력으로 보강하게 하기" (엡 3:16) 위해서 구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의 힘이시기 때문이다. 그의 은혜도 그러하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충족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겪어야 할 많은 고통이 있다. 그리고 눈물의 골짜기에서 근심하게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역시 어떤 역경에서도 그를 의지하여 우리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찬송이시기 때문이다. 즉 그는 "밤 중에 노래를 주신" 분이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힘의 근원으로 삼고 그를 의지한다면, 그는 우리의 힘이 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를 우리의 찬송으로 삼고 그에게 우리의 위로를 둔다면, 그는 우리의 찬송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의 찬송으로 삼지는 않으면서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힘으로 삼고 있다. 그들은 흑암 속에 행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빛이 비춰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자기의 힘으로 삼는 자들은 반드시 또한 그를 자기들의 노래로 삼아야 한다. 즉 힘이 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시 68:35 참조), 그것으로부터 위안을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께 붙여진 칭호를 보라, "야 여호와" 라고 했다(한글 난외 참조 - 역주). "야" 는 여호와란 말의 축약어로서, 야나 여호와(야웨)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의미하며, 이것은 그를 힘과 노래로서 의뢰하는 자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혹자는 "야" 를 사람으로 된 성자(聖子)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성자는 여호와이시며, 우리는 그를 우리의 힘과 노래와 구원이라고 자랑할 수 있다.

3.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사랑에 대한 모든 표징을 통해서 위로를 받아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3절).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너희 힘과 노래이시며 너희 구원이 되실 것이니, 너희가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로다" 고 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셨다는 확신과 그의 은혜에서 온 혜택과 위로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그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기대를 크게 하는 용기가 되어야 한다. "그의 백성에 대한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안에 있는 구원의 우물에서, 너희가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로다. 하나님의 은총이 너희에게로 흘러갈 것이며, 너희는 그 위로를 받고 그 복된 열매를 향유할 것이다" . 다음 사실들을 유의해 두자.

(1) 규례를 통해서 나타났고, 비준되었고,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곧 우리에게 구원의 우물이다. 또한 "구주" 의 우물이다(혹자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약속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구주와 구원이 알려지고, 허락되기 때문이다.

(2) 믿음으로써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리고, 그 물을 먹으며, 그 우물이 우리에게 예비해둔 모든 위로를 취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의무이다. 그 우물에는 온갖 신선한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시 87:7).

(3) 구원의 우물물은 지극히 즐겁고 흡족히 길어 올릴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고(신 21:11), 기도하는 집에서 기뻐하고(사 56:7) 기쁘게 하나님의 잔치를 즐기는 것(행 2:46)이 하나님의 뜻이다.

 

12:2 없음.

 

12:3 없음.

 

12:4

시온아 찬양하라 (이사야 12:4-6)

이것은 이 복음적인 노래의 후편으로서, 전편과 같은 취지를 지니고 있다. 앞에서는 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서로를 초대하며 격려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찬송을 널리 전하며 다른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그 일에 참가하도록 하고 있다. 다음을 살펴보자.

Ⅰ. 여기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요청 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산헤립의 학대에서 보호해 주셨던 "시온" 과 예루살렘의 "거민" 이다(6절). 하나님에게서 뛰어난 은총을 받은 자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그를 찬송해야 한다. 복음의 교회는 곧 시온이다. 그리스도는 시온의 왕이시다. 교회에다가 자기들의 처소와 이름을 두고 있는 자들은 직접 그리스도의 지식을 선포하고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로 인도해야 한다. "시온의 거민아" 라고 한 단어는 실상 여성 명사이다. 그러므로 여자들로 하여금 주 안에서 강건해지게 하라. 그러면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가 온전케 될 것이다.

Ⅱ. 어떻게 그들은 여호와를 찬송해야 하는가!

1. 기도로써 해야 한다. "그 이름을 부르라." 이전에 받은 긍휼에 대해 감사드리는 것이 앞으로의 긍휼을 구하는 퍽 좋은 방법인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긍휼을 구하는 것은 우리가 이미 받은 긍휼을 감사하게 인정하는 것으로서 은혜롭게 수락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의 유력하고 자비로운 은인이신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다소나마 그에게 돌리게 된다.

2. 전도하고 기록함으로써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말씀(기도)드려야 할 뿐 아니라. 그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선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님의 계시 매체에 대해 이전보다 더 잘 알 수 있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그의 행하심을," (혹자의 해석대로) 그의 "계획" 을 "선포하라" 고 했다. 구속 사업은 하나님 계획에 따른 것이다. 그리고 그가 행하신 일과 기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여호와의 생각" 을 파악해야 한다(시 40:5). 그리고 그것을 "만국 중에," 곧 이방 중에 선포하여, 그들이 이스라엘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어올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도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만방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그 때에, 그 행하심이 만국 중에 선포되리라는 것과 그가 행하신 것이 온 땅에 알려지리라는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3. 거룩한 기쁨과 환희로써 해야 한다. "소리를 높여 부르라. 승전가를 부르는(출 32:18), 또는 왕을 부르는(민 23:21) 자들처럼, 너희 자신이 복음을 환영하여 맞아들이고, 환호와 환성으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 는 것이다.

Ⅲ. 무엇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를 찬송해야 하는가?

1. 그가 자신을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기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름이 높다하라" 고 했다. 그 이름이 더욱 혁혁하고 뛰어난다 하라는 것이다.

2.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존귀케 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을 위해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시어," 그들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했다.

3.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서 위대하시며, 앞으로 위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자는 우매하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심이 곧 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그는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크시다. 참으로 선한 것은 참으로 위대한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로서 크시며, 그들 중에서 그 자신을 알리시며, 영광스럽게 그들의 편이 되어 나타나시므로, "그들에게서" 찬미를 받으신다(시 76:1). 이스라엘과 언약하시고 그들 중에 계신 하나님이 무한히 크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영예이며 행복이다.

 

12:5 없음.

 

12: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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