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잠언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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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가정의 화목과 다툼(잠언 17:1)

본문 말씀은 인생살이의 위안에 매우 큰 도움을 주는 일로서, 가족애와 화목을 권장하고 있다.

1. 일치하여 안온함 속에서 생활하며, 질투나 증오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투어가며 애정을 보이고 상호간에 편하게 고맙게 해 주려는 노력을 아깝지 않는 자들은 설령 이 세상에서 비천하며 고된 일과 험악한 운수로 시달림을 받는다 할지라도, 설사 각자에게 "떡 한 조각," 그것도 "마른 떡 한 조각"밖에 없더라도 안락하게 살아가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서 함께 만족하며 각자의 알뜰함을 서로 대견해 한다면 하루 세끼의 식사가 마련되지 못하더라도 화평과 평온함이 있을 수 있다. 거룩한 사랑은 오막살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2. 분쟁 속에서 생활하며 언제나 불협화음이 일고 말다툼이 끊이지 않은 채 서로 욕질하는 자들은 비록 고량진미가 있고 "육선이 집에 가득하다" 하더라도 그 삶이 평안하지 못하다. 그런 자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소유에 대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할 수 없고, 또한 자신의 향유물을 참되게 맛보지도 못한다. 하물며 저희 양심의 평안 같은 것은 말해 무엇하랴! 사랑은 "마른 떡 한 조각"도 달콤하게 해 줄 터이니 분쟁은 "집안에 가득한 육선"도 시고 쓰게 만들 것이다. 악의의 누룩은 조금도 있어도 온갖 즐거움을 누렇게 뜨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17:2

슬기로운 종과 아들(잠언 17:2)

1. 신분에 따라 참다운 장점이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한 가정에서 아들이 종보다 더 귀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이의가 없다(요 8:25). 그러나 종이 지혜로와 그 가정의 축복이 되고 명예가 되는가 하면 아들은 미련하여서 그 가문의 짐이 되고 치욕이 되는 수가 가끔 있는 것이다. 아브람은 다메섹의 엘리에셀이 자기 상속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였지만 그럼에도 엘리에셀은 이삭을 위해 아내를 얻어 주어 그 가문의 지주가 되었고, 이에 반해 아들인 이스마엘은 이삭을 희롱하여 그 가문의 수치가 되었던 것이다.

2. 참다운 신분은 장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종이라고 하더라도 슬기로와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하면 그는 한층 더 신임을 받아(주인과) 함께 "다스릴"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매한 자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과 자연의 정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슬기로운 종은 아마도 주인의 신망을 얻어 자녀 몫의 재산을 받고 "그 아들들 중에서 유업을 나눠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7:3

마음을 연단하시는 여호와(잠언 17:3)

1. 인생의 마음을 하나님의 시하에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판단의 지배에 속해있다.

"도가니는" 은의 순도를 증명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은을 연단하며," 마찬가지로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 그는 그 마음들이 표준형인지 아닌지를 살피시며, 그것들을 정제하시고 더욱 순수하게 만드신다(렘 17:10). 하나님은 환란에 의해서 마음을 시험하시고 단련하시며(시 66:10) 왕왕 고난의 풀무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사 48:10) 그들을 정선하신다.

2. "마음을 연단"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인간은 도가니와 풀무로 저희 은과 금을 연단할 수 있으나 서로의 마음을 연단시킬 수 있는 방안은 가지고 있지 않다. 마음의 감찰자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이일을 하시는 것이다.

 

17:4

악함과 거짓말(잠언 17:4)

1. 악을 행하려고 꾀하는 자들은 허위와 거짓말로 움직인다.

"악을 행하는 자는" 그의 악행을 정당화시켜 줄 "궤사한 입술"을 굉장히 즐거워하면서 "잘 듣고," 민중의 소요를 조성할 목적으로 정부나 통치자의 신망을 실추시키는 유언비어나 비난의 글에 탐욕스럽게 귀를 기울인다.

2. 마음대로 거짓말하는 자들은 다른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듣고 쾌감을 느낀다. "거짓말 하는 자는" 악의에 찬 험담가에게 "귀를 기울이는" 이는 자기 거짓말을 덧붙일 일이라고 얻고자 함이며 이로써 자기 거짓말에다가 다소 진실의 빛깔을 가미시켜 더욱 그럴듯한 거짓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하기 위해서이다. 죄인들은 서로의 손을 더욱 강화시켜 주려 한다. 악한 자와 친분을 닦고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악한 자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17:5

가난과 재앙을 기뻐하는 자(잠언 17:5)

1. 가난한 자를 유린하고 그들의 궁핍과 초라한 행색을 조롱하며, 그들의 곤궁을 욕하고 그들의 약함을 기화로 학대하거나 피해를 입히는 자들은 매우 큰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창조주를 크게 경멸하고 모독하는 자이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현재의 처지를 할당해 주시고 그들을 소유하시며 돌보고 계신 자일 뿐만 아니라 그가 하고자 하신다면 우리들도 그런 상태로 환원시키실 능력이 계실 분이다. 이와 같이 자기 조물주를 멸시하는 자들은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마 25:40, 41; 잠 14:31).

2.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듣고는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고통에 빠지게 될 위험이 매우 크다. 딴 사람의 파탄을 기초로 자신이 일어나기 위해 그들의 "재앙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 중일 때 그것을 진수성찬 즐기듯 기뻐하는 자는 자기가 "형벌을 면치 못할 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런 자의 손에 잔이 쥐어질 것이다(겔 25:6, 7; 사 51:22 참조).

 

17:6

부모와 자녀의 영광(잠언 17:6)

이들은 실로 그러하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하며 만약 이들이 고귀하게 처신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1. 부모에게는 늙어서 자녀와 "손자"를 두고, 그들이 장성하여 미덕의 길을 걸으며 가문의 명성을 유지 계승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영예로운 일이다.

자기 자녀의 자손을 볼 정도로 오래 살며(시 128:6; 창 50:23), 그들에게서 자기 가문이 튼튼히 세워짐을 보고 그들의 하나님의 뜻대로 자기세대에 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인간에게 명예가 된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면류관이 되고 저희 위안을 채워주는 것이다.

2. 자녀들에게는 현명하고 경건한 부모를 모시며 자기들이 장성하여 세상에서 정착한 뒤에까지 생존한 부모를 모신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 된다. 나이 많으신 부모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너무 오래 산다고 생각하는 자녀들은 패륜아이다. 반면에 지혜롭고 선한 자녀가 되어 노년의 즐겁지 못한 세월을 맞은 부모님께 위로가 된다면 이 보다 더한 명예도 없을 것이다.

 

17:7

분외의 말과 거짓말(잠언 17:7)

여기에서는 두가지 일이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1. 아무런 평판도 얻지 못한 자가 명령을 내린다는 것.

사리나 분별도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우매자가 분수에 넘치는 일과 자신에게 적합하지 못했던 일을 주장하는 것보다 어울리지 않는 일이 어디 있는가? 솔로몬의 잠언에서 미련한 자는 악한 자를 의미하는데, "분외의 말"(훌륭한 언사)은 그러한 악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그의 처신하는 것을 보면 그의 훌륭한 말이 거짓임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교훈을 미워하는" 자가 어찌 하나님의 율례를 전하랴! (시 50:16, 17) 그리스도께서는 더러운 귀신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안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셨다(행 16:17, 18 참조).

2. 큰 명성을 누리는 자가 기만한다는 사실. 보잘 것 없는 자가 철학자나 정치가로 행세하여 말하려 드는 게 합당하지 않고 그것이 그 자신의 분수에 어긋나기 때문에 누구도 그의 말에 주의하지 않는다면, 존귀한 자로서 통치자가 자기의 신분과 신망을 기화로 거짓말을 하고 시치미를 떼며 예사로 식언한다는 것은 더 더욱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거짓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보기 흉한 일이지만 통치자에게는 극히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군주는 자기 말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되며 차라리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권장하고, Qui nescit dissimulare nescit regnare-즉 본심을 감출 줄 모르는 자는 다스릴 줄 모르는 자이다라고 말하는 근대 정치는 심히 부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7:8

뇌물의 영향(잠언 17:8)

이 관찰의 목적은 다음 사실을 나타내는 데에 있다.

1. 수중에 돈 푼이라도 가지고 있는 자는 그것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 부자는 약소한 돈을 마치 "보석"이나 되듯 떠받들고, 또 마치 그 돈이 자기들의 장식이 될 뿐 아니라 권세도 주며, 누구든지 자기들의 후원자가 되고 법 그 자체까지도 자기들의 배경이 되기라도 하는 듯이 자기 돈을 자랑한다. 그들은 어디서건 이 번쩍거리는 다이야몬드를 굴리기만 하면 모든 사람의 눈이 현혹되어 자기들이 원하는 일을 해 줄거라고 생각한다. 지갑이 두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많이 주어라. 그러면 너는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 눈에 돈밖에 보이지 않고 자기 마음을 돈에 두고 있는 자들은 그것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고 간에 마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뇌물은 임자의 보기에 보석같으니라." 그것은 그에게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그는 그 뇌물이 끄는 대로 이리 저리 따라 갈 것이며 법에 위배되고 자신과 상치되는 길이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가고 말 것이다.

 

17:9

허물에 대한 묵인(잠언 17:9)

1. 친척과 이웃 사에에서 화평을 보존하는 일은 모든 일을 십분 선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딴 사람의 안위에 하등 관계가 없는 경우라면 그들에게 해로운 말이나 행동을 고잘질하지 말고, 누가 우리 자신에게 대해 거슬리는 말이나 행동을 하더라도 눈여겨 보지 말며, 남이나 우리에게 행해진 이 두 가지 일을 용서해 주며 아주 선의로 해석하는 것이 바로 화평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 일은 잘못 보고 한 일이니 그것을 그냥 넘겨버려라. 그것은 깜박 잊어버리고 한 일이니 잊어버려라. 그 일은 아마 너를 전혀 개의치 않고 한 일일 것이니 너도 그것을 하등 문제시하지 말아라."

2. 잘못을 헤쳐 놓는 것은 사랑을 찢어 발기는 짓이며, 이미 거리감이 있던 "일을 거듭 말하는 것"보다 친구를 갈라 놓고 틈바구니가 벌어지게 하기 쉬운 일은 없다. 흔히 그들 자신은 그 말의 반복에서 아무 것도 잃지 않으나, 그 일 자체는 더욱 악화되며 그것에 대한 악감정이 다소 소생하여 격노로 폭발하게 된다. 화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용서하거나 망각하는 일이다.

 

17:10

지혜로운 한 마디의 효과(잠언 17:10)

1. 지혜있는 자에게는 한 마디로 족하다. 온화한 꾸중 한 마디면 지혜로운 자의 머리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그 마음에도 들어가서 그에게 강력한 감화를 준다. 즉 양심에 한 가지 암시만 주어도 그것은 저절로 진행하여 할 일을 이루고 마는 것이다.

2. 미련한 자에게는 회초리로도 부족하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 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하며 장차 더욱 조심하게 하기 위하여매질을 해도 미련한 자들은 들어 먹지를 않는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고 고집센 자에게 엄격히 하여 성공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다윗은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니이다"란 한 마디에 깨달음을 얻었으나 바로는 온 애굽이 역병으로 신음할 때에도 여전히 강퍅하였던 것이다.

 

17:11

악한 자의 반역(잠언 17:11)

여기에는 악인의 죄와 벌이 나온다.

1. 그의 죄.

온갖 기회를 다 이용하여 하나님과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반기를 들며 자기 주위 사람들을 반박하며 다투려고 하는 자는 참으로 악한 자이다. Quoerit jurgia-즉 그는 다툼을 줍는 자이다(그렇게 이해하는 자도 있음).

반대하는 영의 화신처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으며 모든 규제와 억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악함 중에서 계속 패역하게 행하려는 자들도 있다. "반역하는 인간은 악을 힘쓰며"(이렇게 해석하는 이도 있음) 공안을 어지럽힐 기회만 노리는 것이다.

2. 그의 벌

그는 온화하고 점잖은 방법으로는 개심하려 하지 않으므로 "그에게 잔인한 사자(使者)가 보냄을 입을" 것이며,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자로서 이런 저런 두려운 심판이 그에게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인 천사들이 그를 벌하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사역자로 발탁될 것이다(시 78:49). 죽음의 사자인 사탄이 그에게 활개짓을 치며 덤빌 것이고 사탄의 "사자"들이 그에게 몰려 올 것이다. 그의 임금이 그를 처형할 집행관으로서 검찰관을 보내 그를 나포하게 할 것이다.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자는 칼이 기다리느니라."

 

17:12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고(잠언 17:12)

1. 격정에 사로잡히는 자는 약수 같은 사람이다. 지혜가 다소 번뜩이는 때가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자는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이다. 그 가슴에는 분노가 잠자며 그 얼굴에는 노기가 서려있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그는 사람을 놓치면 곰과 같이 되며 "새끼 빼앗긴" 성난 "암콤"같이 된다. 그는 곰이 자기 새끼를 귀여워하듯(추하고 못생겨도 자기 새끼이니까) 자기 정욕과 격정의 충족을 좋아하며 곰이 잃어버린 새끼를 찾을 때 모양으로 자기 격정의 추구에 열심이고 그 노력이 실패하게 되면 열화 같은 분노로 가득 차게 된다.

2. 그는 위험산 사람이다.

그는 도중에 방해가 되는 자라면 무고한 자든 친구든 할 것 없이 무조건 충돌한다. 그것은 마치 새끼 잃은 암콤이 맨 먼저 누네 띄는 사람을 강탈자로 보고 덤벼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Ira furor brevis est-즉 분노는 일시적인 발광이다.

성이 나서 광란에 가까울 정도로 난폭한 자보다는 성난 곰을 제지하거나 그에게서 도망치거나 방어하기가 더욱 용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혈기를 감시하여(뿔이 돋아 해를 끼치지 않도록) 자신의 명예를 돌보도록 하자. 그리고 격노에 떠는 자와의 교제를 삼가며 그들이 화가 나있을 때에는 그들의 길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자. currenti cedc furori-즉 분노에게는 자리를 양보하여라.

 

17:13

선을 악으로 갚은 자(잠언 17:13)

여기에서는 악의에 찬 흉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1. 자기 친구에게 배은망덕한 자.

이런 자는 흔히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자기가 받은 친절한 대우를 새까맣게 잊어버려 "선을 악으로" 갚는다. 다윗도 자기의 사람에 대해 원수로 돌변하였던 자들을 만났었다(시 109:4). 악에 대해 악으로 갚는 것은 짐승의 세계에서나 통하는 야만 행위이지만 선에 대해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적 행위이다. 호의에 대해 보답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하여 친절에 대해 나쁘게 갚으려 드는 자는 심술사나운 자이다.

2. 자기 가족에게 무자비한 자. 그는 자기 가족에게 저주를 상속시킨다. 이것은 너무나 흉악한 죄익 때문에 당자 뿐만 아니라 그 후손도 징벌을 당할 것이므로 그는 자기 후손에게 진노를 쌓아 두는 자이다. 우리야의 선한 봉사에 대해 악으로 보답한 다윗의 "집에서는 칼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선한 사업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러므로 그의 피가 그들과 그 자손에게 내려지는 것이다.

 

17:14

다툼에 대한 경고(잠언 17:14)

1. "다투는 시작"에 존재하는 위험.

한 마디의 거친 말이나 한 마디의 비뚤어진 비난, 한 가지의 성난 요구나 원한에 찬 반박 한 마디가 또 다른 말을 불러 일으키고, 그것이 또 다른 제 3, 제 4의 말을 초래하여 드디어는 뚝이 터지는 것같이 되고 만다. 물은 조그마한 구멍이라도 생기게 되면 스스로 그 터진 데를 넓혀서 나중에는 자기앞의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며, 그렇게 되면 그것을 막을 수도 되담을 수도 없게 된다.

2. 이런 이치에서 유도된 좋은 경고.

다툼이 일어나는 첫 불씨를 조심하여 나타나는 즉시 그것을 꺼버리라는 것이 곧 그 훈계이다. 일단 빙판이 깨지는 날에는 쫙 갈라지는 법이니 얼음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듯 하라. 그러므로 네가 다툼이 악화되는 것을 보기 전에(왜냐하면 악화되었다고 할 때는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네가 이것은 싸움이라고 여겨지는 그 처음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obsta principiis-즉 그 최초의 출현을 막아라.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치라. 즉 네가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가능하다면 시비를 중단하다.

 

17:15

그릇된 판단(잠언 17:15)

본문는 다음과 같은 경우가 얼마나 하나님을 불쾌히 만드는 것인가를 나타내 준다.

1. 공법의 행사를 위임맡은 판사, 배심원, 증인, 검찰관, 변호인 등이 죄인을 방면하거나 죄 없는 자에게 죄를 내리거나, 조금이라도 이런 일을 방조하는 경우,

이것은 통치의 목적을 폐기시키는 행위이다. 정치의 목표는 선한 자의 보호와 악한 자의 징벌에 있다(롬 13:3, 4). 비록 연민에 하는 짓이며 또 in favorem vitoe-즉 생명을 건지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악인을 의롭다"하는 것은 "의인을 악하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이다.

2. 어떤 개인이 죄와 죄인을 변호하며, 악한 것을 감춰 주고 너그러이 봐 주며, 미덕과 경건에 대해 논쟁을 전개하여 "여호와의 의로운 길을 사곡하게 만들고" 선악간의 영원한 구별을 혼동시키는 경우.

 

17:16

미련한 자와 지혜(잠언 17:16)

두 가지 일이 경악과 함께 표현되고 있다.

1. "미련한 자의손에 값"을 주셔서 "지혜를 사게"하며, 그로 하여금 두 세계에 합당할 지식과 은혜를 얻게 하시는 미련한 자에게 대한 하나님의 크신 인자가 나온다. 우리에게는 이성을 가진 영혼이 있으며 수단과 성령의 애쓰심이 있고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가 있다. 또 우리에게는 시간과 기회가 있다.

선한 재산을 가진(이렇게 해석하는 자도 있음)자는 훈계를 삼으로써 지혜를 얻게 되는 특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선한 부모나 친척, 목사나 친구는 지혜를 얻는 데에 보조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가치를 지니는 "값"이요 달란트이다. 그것은 "손에 가진 값"이요 소유하는 값이다. "말씀은 네게 심히 가까우니라." 그것은 사게해 주기 위한 값이요, 우리 자신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며 지혜를 사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인고로 우리가 극히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이 지혜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비록 우리가 그 말씀을 정당하게 활용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하시면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그리 고려하시어 그와 같은 특혜를 맡기셨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 자신의 이익을 무시해 버리는 인간의 큰 악함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매우 불합리하며 설명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그는 "그것에 무지하며"("마음이 없으며"), 사야 할 지혜나 사는 데 들여야 할 값에 대해 무지하다. 그는 자신의 잇점을 살릴 만한 마음이나 기술, 용기나 의지도 없다. 그는 마음을 딴 데에 두고 자기 의무나 자기 영혼의 큰 관심사에는 두고 있지 않는다. 이처럼 그것을 지닐 가치가 없는 자에게 값을 던져서 낭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17:17

친구와 형제의 사랑(잠언 17:17)

본문은 우리가 서로 맺어져 있는 결합력이 얼마나 굳센가 하는 것을 알려 주며, 이 점은 우리가 마땅히 깨닫고 있어야 하는 점이다.

1. 친구는 상호간에 "항상"변함이 없어야 한다. 항구여일하지 못한 우정은 참된 우정이 아니다. 성실하고 선한 원리를 따라 실체화되는 우정이라면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정이 변덕스럽고 이기적인 자들의 사랑은 기분이 좋고 저희 이해 타산이 충족되는 동안에만 유효하다. 그러므로 그들의 애정은 바람이 불면 바뀌고 날씨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름이 되면 너희에게 날아오나 겨울이 되면 가버리는 제비족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라면 잃어버려도 잃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별있고 관대하며 충정있는 우정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만약 내 친구가 지혜롭고 고결하며 선한 자이기 때문에 내가 그를 사랑한다면, 설령 그가 궁핍과 치욕 속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가 계속 전에 모습대로 남이있는 이상 그는 그를 여전히 사랑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는 친구이시므로(요 13:1) 우리도 그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롬 8:35).

2. 친척은 고난 중에 있는 딴 친척에게 특별히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돌보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형제는" 고통당하는 형제 자매를 구조하기 위하여 "났느니라." 그는 혈연에 의하여 딴 형제가 매와 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들의 무거운 짐을 더욱 피부로 지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본능에 의하여 도와 주고자 하는 충동이 한층 강렬하게 일어나서 그들의 일에 뛰어 들게 된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런 처지와 관계에 있는 자로서도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태어났는지"를 가끔 숙고해 보아야 된다. "우리가 이와 같은 대를 위하여" 그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게 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만일 그런 자로서의 의무를 행하지 않는다면 친척이 지는 목적에 응하지 못하는 셈이다. "그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는 친구"는 "위급한 가운데 있는 형제를 위해 난" 자이며(즉 형제에게 합당한 자가 되며) 또 그렇게 평가될 수 있다.

 

17:18

그릇된 보증(잠언 17:18)

솔로몬이 역경 중에 있는 친구를 위하는 우정에 대해 찬사를 던졌다고 해서(17절) 친구에게 후대한다는 구실로 자기 가족에서 부당히 하며 그들에게 몹쓸 대우를 하는 자는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무 중 한 부분이 딴 부분과 상충되게 하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

1. 될 수록 많은 빚을지지 않도록 하며, 특히 보증을 두려워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 중 하나이다. 부재 중인 자기 친구를 위해 그가 직접 책임질 때까지는 대신 보증을 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친구가 형장에 있는데도 "그 앞에서 보증이 되는 것"은 그 친구가 지불 불능자나 부정직한 자로 간주되고 그의 약속은 신빙성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안전하게 그를 보증할 수 있겠는가?

2. "지혜 없는 자"는 흔히 이런 함정에 빠져 자기 가족에게 피해를 준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에게는 그들 자신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깊이 맡겨 두어서는 안 되며 언제나 감독하에 두어야 한다.

 

17:19

다투는 자와 뽐내는 자(잠언 17:19)

1. 다투기 잘하는 자들은 매우 많은 죄를 내포한 자들이다.

"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이 세상 일로 법에 호소하기를 좋아하며, 신앙 생활에 있엇허는 논쟁을 좋아하고 일반의 교제에서는 반대로 싸움을 즐기며, 열에 들뜬 때 이외에는 만족하는 법이 없는 자로서 "죄과를 좋아하는"자이다. 이 죄에는 아주 많은 죄과가수반되며 이 죄의 길은 내리받이 길이다. 그는 진리를 위해 궐기하고 그 자신의 명예와 권리를 옹호하는 체하나 실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를 사랑하는 자이다.

2. 야심만만하고 포부에 불타는 자들은 자신을 많은 고통에 내어 놓는 자로서 왕왕 자신의 파멸로 끝이 난다. 그들은 "자기 문을 높이는 자니라."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하다 못해 집 앞면만이라도 훌륭하게 하여 자기 이웃집을 내려다 보며 그들보다 더 뛰어나게 보이려 하는 자는, 자신의 파멸을 구하는 자이며 자신의 파탄을 위해 무진 애를 쓰는 자이다. 그는 자기 문을 너무나 넓게 만들어서 자기 집과 재산이 그리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17:20

사특한 자와 패역한 자(잠언 17:20)

1. 나쁜 꾀를 꾸민다는 것은 아무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할 것이다.

악한 계교로 얻을 유익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마음이 사특한 자"는 불화를 심고 앙심이 그득한 자로서, 자기 휴식과 명예의 손실을 보상해 줄 만한 것을 얻으리라고는 기대할 수가 없다. 그는 그 일에서 어떤 합리적 만족도 얻을 수가 없다. 그는 "복을 얻지 못하느니라."

2. 나쁜 말을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해를 가져다 줄 것이다. "혀가 패역하고," 악의에 차고 입버릇이 사나우며, 상스럽고 험담 잘하는 자는 이런 저런 "재앙에 빠지며" 친구를 잃게 되고 자기 원수를 격분케 하여 고난을 자기 머리 위에 뒤집어 쓰게 된다. 많은 자가 자갈 물리지 않은 혀로 인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곤 한 것이다.

 

17:21

미련한 자식에 의한 고통(잠언 17:21)

대다수의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은 어리석고 악한 자식을 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통감하며 아주 잘 알고 있다. 본문은 이 사실을 아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1. 우리 피조물이 가지는 온갖 위로는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 우리는 자주 위로받을 것에서 실망을 느끼게 될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위안을 받게 될 것으로 학수고대하던 일에서 최대의 낭패를 맛보기도 한다. "사내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기쁨"이 있었지만 그 아이가 불량한 자로 되면 그 아버지는 차라리 낳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압살롬이란 이름은 그 "아비의 평화"를 의미하지만 그는 자기 아버지의 최대 환란꺼리가 되었던 것이다. 자녀가 부모의 슬픔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자녀를 갖고자 하는 부모의 바램이나 자녀에게서 얻으려고 하는 부모의 기쁨을 경감시킨다. 자녀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아비는 그것을 불평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 자녀가 우매한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그러한 우매자를 낳았다는 것에서 아비의 불평은 잠잠해져야 마땅하다. 따라서 그는 어리석은 자식일 망정 최대한으로 훌륭하게 키워야 하며, 아담은 자기 모습대로 닮은 아들을 낳기 마련이므로 그를 자기의 십자가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2. 우리는 수난을 당하는 방법에 있어서 얼마나 지혜롭지 못한가!(그나마도 여느 자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패역한 자식 하나 때문에) 한 가지 고난 때문에 일천 가지 자비로운 일을 모조리 망가치는 우리는 참으로 지혜롭지 못하다. "미련한 자의 아비는" 그 점만을 너무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딴 일에서도 아무 "낙이 없느니라." 이 점에 대해서는 자업자득이라 할 수밖에 없다. 비록 근심된 일이긴 하나 그것을 상쇄시키기에 족한 기쁨은 여러 가지 있는 법이다.

 

17:22

마음의 즐거움과 근심(잠언 17:22)

1. 쾌활하다는 것은 건강에 좋다. 주는 몸을 위해 계시며 또 신체를 위해 양식뿐만 아니라 의약도 마련하여 주셨고, 여기에서는 헛되고 세상적이며 감각적인 환락에 탐닉하는 마음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이 최선의 양약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ㄷ다. 솔로몬 자신도 그런 환락에 대해 이르기를 "그것은 양약이 아니라 미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것은 양식이 아니라 독약이다. "그것은 무엇을 이루는가?"

그러나 그가 지적하는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그를 즐겨 섬기며 그리고 나서 외적 향유물의 위안, 특히 즐거운 교제를 누리는 마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즐거워할 수 있도록 허락을 해 주시고 즐거워할 만한 사유를 주신다는 것은 크나큰 자비이다. 그의 은혜로써 우리에게 즐거워하는 마음을 주시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즐거운 마음은 "양약을 유익하게 한다"(이렇게 해석하는 이도 있다). 마음의 즐거움은 약을 한층 효과가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혹은 마음의 즐거움은 신체에 대하여 "양약과 같이 유익하게"하는 것이어서 몸을 편안하게 하고 일하기에 적당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환락이(오락과 유희로 이해될 때) 약으로 되는 경우에는 매우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되며 오직 필요할 때만 사용하도록 인색해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음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의약으로서, sub regimine-즉 처방된 식이요법으로서 규칙을 따라 사용되어야만 한다.

2. 마음의 근심은 흔히 몸을 아프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고난의 무거운 짐으로 침체된 "근심하는 심령"과 특히 죄책감과 진노에 대한 공포로 다친 양심은 "뼈를 마르게"하며 원기를 소모시키고 골수를 쇠잔시켜서 몸을 앙상한 해골과 같이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우울증에 조심하고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런 증세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 뿐만 아니라 고통으로 끌어들이기 것이다.

 

17:23

뇌물받은 악인(잠언 17:23)

1. 뇌물은 얼만 악한 것인가! 거짓 증언이나 판결, 거짓 재판을 하게 하는 "뇌물을 받는 자"자는 "악인"이다. 그가 이 일을 행할 때에는 수치감을 지니면서 행동한다. 그는 뇌물이 자기를 위해 어디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 품에서" 되도록 몰래 뇌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는 뇌물받는 일을 애써 숨기며 극히 남몰래 하기 때문에 할 수만 있다면 자기 자신의 양심으로부터도 숨기고 싶은 심정이다. "뇌물은 악인의 품에서 나온다"(그렇게 해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뇌물받는 자뿐만 아니라 뇌물 주는 자도 악인이기 때문이다.

2. 그것은 얼마나 유력한 것인가!

뇌물의 힘은 엄청나서 "재판(재단의 길)도 굽게 한다." 정의의 길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불의의 길로 바꾸어 버리기도 하는 것이 뇌물이다. 또한 바르게 행한다는 미명 하에 최대의 부정이 자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17:24

지혜로운 자와 산만한 자(잠언 17:24)

1. 지혜를 소유할 뿐만 아니라 필요할 때 즉시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 자는 지적인 사람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는 배를 조정하는 자가 방위반과 나침반을 놓고 있듯 자기 "지혜를 그 앞에" 두며, 글을 베끼는 자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듯 그 지혜를 주시한다. 이렇게 할 때에라야 지혜는 "그 앞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찾을 필요도 없이 계속 그 곁에 대기하고 있다.

2. 현기증이 일고 생각이 배희하며 주의가 산만한 자는 어떤 확고한 사업에도 합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미련한 자이며 아무데도 쓸모가 없고 "그 눈을 땅 끝에 두며," 마땅히 향해야 할 곳 말고는 여기저기에 그리고 어디에든지 한눈을 파는 자이다. 그는 자기 생각을 한 가지 대상에 고정시키지도 못하며 어떤 한 가지 목적도 꾸준히 추구하지 못한다. 자기 연구와 사업에 마음을 쏟아야 할 때에도 그의 마음은 쓸데없고 주제넘은 일천 가지 생각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17:25

미련한 아들로 인한 근심과 고통(잠언 17:25)

1. 악한 자식은 양친에게 고통이 된다. 그들은 아버지의 권위를 무시함으로써 아비의 "노여움"을 일으키고(단어의 의미는 그러하다), 어머니의 자애로움을 학대함으로써 어미의 슬픔과 "고통"이 된다. 부모는 그런 자식으로 인해 같이 고통받으므로 서로 버티어 나갈 수 있도록 위로해야 하며, 어머니는 아버지의 분노를 완화시키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비탄을 경감시키려고 노력함으로써 가능한 한 평안히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2. 솔로몬은 이런 말씀을 자주 하는데 그것은 아마 이 일이 자신의 경우였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17:26

위정자와 백성 간의 올바른 판단(잠언 17:26)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에 발생하는 의견 차이는 흔히 있는 일로서 각자는 다음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1. 위정자는 "의인을 벌하는 일"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착한 행실에 대한 두려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며 자기들에게 맡겨진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 된다. 그런 일은 "선치 못하고" 오히려 악한 일이며, 그들이 그 일로 노리는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결과는 나쁠 것이다. 지배자가 폭군이 되고 박해자가 될 때에는 그 권좌가 편안하지도 견고하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2. 민중은 할 도리를 다하는 부정에 대해 흠잡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직하다고 귀인을 때리는 것"은 악한 일이다. 이것은 반?한열 지파가 솔로몬이 필요한 세금을 부과한다고 하여 비난한 것같이 통치자의 정치를 비방하거나 정권을 전복시키려고 음모를 기도하는 일을 말한다. 어떤 이는 "정직하다고 솔직한 자를 때리는 것은 선치 못하다"고 해독한다. 치정자는 자기들의 치하에서 착한 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수난받는 자가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부모 또한 부당한 책망으로 "자녀를 노엽게"하지 말아야 한다.

 

17:27

신중한 언행의 유익함(잠언 17:27,28)

사람이 자기가 지혜있는 자라는 사실을 나타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나온다.

1. 선한 기질과 유화롭고 침착한 마음으로써. "성품이 안존한 자"나 "보배로운 자"는(이렇게 해석하는 자도 있음) "명철하니라."

그는 자기 성품을 잘 지켜 보아 그것이 당위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언제나 균형을 잃지 않게 하며 자신에게는 편안하고 남에게는 즐거운 성품이 되게 하는 자이다. 은혜로운 성품은 보배로운 성품이어서 귀여움을 받게 하며 "그 이웃보다 더 안존한 자"로 만들어 준다.

그는 "성품이 냉정한" 자이다(그렇게 해석하는 자도 있음).그는 격정으로 달아오르지 아니하며 부패한 애착심의 "충동"으로 말미암아 어떤 소요나 혼란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는 한결같고 지속적이다.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훌륭히 배합된 기질인 것이다.

2. 자기 혀를 잘 다스림으로써.

(1) 지혜로운 자는 실언을 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말이 적"을 것이다.

"지식이 있고" 또 그 지식으로 선을 행하려는 자는 말할 때 자기 목적에 꼭 맞는 말만 하려고 애쓰며 심사숙고할 시간을 가지기 위해 말을 적게 한다. 말이란 것은 그냥 낭비하기 보다 아끼는 게 더 나으므로 그는 "자기 말을 아낀다."



(2) 일반적으로 과묵은 지혜의 아주 확실한 증거로 간주된다. 미련한 자라 하더라도 입을 다물고 듣고 보기만 하고 말을 적게 할 만한 재치가 있으면 지혜로운 자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 우매한 자가 침묵을 지키면 솔직한 사람들은 그가 지혜로운 줄로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말을 하지 않으므로 어긋나는 것이 나타날 리 만무하며, 그가 딴 사람의 말을 관찰하여 경험을 얻고 있으며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할 말을 가다듬고 있는 줄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한테서 좋은 평판을 얻고 그들을 속여 넘기기란 얼마나 쉬운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그러나 "미련한 자가 잠잠할" 때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과 그 마음에 똘똘 뭉쳐있는 미련한 것을 아신다. 하나님께는 생각이 곧 말이 되며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판단에서 실수하실 리가 없는 것이다.

 

17:28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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