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잠언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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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유순한 말과 격한 말(잠언 15:1)

솔로몬은 공안의 유지자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1. 어떻게 하면 화평을 유지할 수있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각자의 위치에서 평화를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한 말씀이다. 그 비결은 부드러운 말에 있다. 마치 폭우와 뇌성 벽력을 잔뜩 품은 험악한 구름과도 같이 격노가 터지는 경우에라도, 한 마디 "유순한 대답"이면 그 먹장 같은 구름을 ?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성을 내거든 온화하게 말하며 좋은 말을 들려 주라. 그리하면 그들은 진정될 것이다. 에브라임인들은 기드온의 유순함 때문에 화가 가라 앉았으나(삿 8:1-3), 이와 비슷한 경우인 데도 입다가 거칠었기 때문에 격노하게 되어 나쁜 결과가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삿 12:1-3). 성내서 말하는 것보다 온화하게 사리를 따져 말하는 게 더 나으며, 의로운 주장도 그렇게 하여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논쟁이 딱딱한 것일수록 부드러운 말로써 하는 것이 좋다.

2. 어떻게 하여 평화가 깨뜨려지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아무 것도 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말씀이다. "과격한 말"보다 분노를 유발시키고 불화를 조장하는 것도 없다. "라가," 즉 "이 바보야"하는 식으로 나쁜 이름을 부르며, 사람들의 약점이나 불운을 들어 힐난하며, 문벌이나 교육 정도나 그외에 그들을 깎아 내리고 초라하게 만들 어떤 것이라도 들추어 내어 비난한다면 그것은 과격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자기의 기지와 악의를 돋보이게 하려고 과장하는 냉소적이고 가시돋친 비난은 타인의 노를 격발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분노도 더 많아지게 하며 부채질하는 것이다. 또한 농담을 하다가 친구를 잃고 원수를 만들게 되는 자도 있을 것이다.

 

15:2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입(잠언 15:2)

1. 착한 마음을 지닌 자는 혀로써 매우 유용한 자가 된다.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자신의 오락을 위해 그 지식을 즐길 뿐만 아니라 타인의 훈도를 위해 그것을 올바로 사용하기도 해야 한다.

경건하고 유익한 담화나 적시 적소의 훈계, 충고, 위로 가운데에서 온갖 가능한 겸손과 사랑의 표현으로 지식을 활용해야 할 수단은 혀이다. 그렇게 할 때에라야 "지식을 선히 베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것을 이처럼 선용하는 자에게는 더욱 많은 것이 주어질 것이다.

2. 악한 마음의 소유자는 혀로써 매우 해로운 존재가 된다. "미련한 자의 입은" 매우 역겨운 "미련한 것을 쏟는" 때문이다. 속에 있는 악한 마음으로부터는 부패한 것을 전달하는 말이 나오며(더러운 것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 그것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예절을 부패하게 하고 미풍양속을 타락시키며, 타인의 선한 마음을 슬프게 만들고 혼란시킨다.

 

15:3

여호와의 감찰(잠언 15:3)

신의 속성에 관한 위대한 진리는 도덕적 교훈을 시행시키는 데에 매우 쓸모가 있으며, 본문의 사실-즉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인간의 자손들 위에 임하여 있다는 것보다 더 유용한 것도 없다.

1. 그 눈은 모든 것을 식별하신다. 그 어떤 것도 그 눈에서 숨길 수가 없으며, 모든 것은 실제로 감시를 당하고있고 어떤 것도 간과되거나 가볍게 보아 넘겨지는 일이 없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감찰하시느니라." 그는 높은 데서 만물을 내려다 보실 뿐만 아니라(시 33:13) 어디에든지 임재하고 계신다. 천사들은 "눈으로 가득하지만:(계 4:8)하나님은 눈 자체이신 것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는 그의 전지하심을 의심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지지하시고 다스리시는 그의 우주적 섭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은밀하게 짓는 죄나 남몰래 하는 봉사, 남모를 슬픔도 모두 그의 시야 아래 있는 것이다.

2. 그 눈은 사람됨됨이와 그 행동을 아울러 다 구별하신다. 그는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은 노여워하시나 선인은 받아주시며, 당신의 눈이 보신 대로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다(시 1:6; 11:4). 하나님께서는 이 양자를 다 눈여겨 보시며 그들의 참 모습을 아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벌받지 않고, 의로운 자가 상받지 않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은 죄인들에게 공포를 주는 만큼 성도들에게는 많은 위로를 주는 말씀이다.

 

15:4

선한 혀와 악한 혀(잠언 15:4)

1. 선한 혀는 치유하는 혀이다. 상처입은 양심에게는 위로를 주어 치료하고 죄로 병든 영혼은 확신을 부어 줌으로써 치유시키며, 평화와 사랑이 깨어지는 곳에서는 상이한 일들을 타협시키고 이견을 빚은 쌍방을 화해시켜 화평과 사랑을 되찾게 해 주는 것이 곧 선한 혀가 하는 치료이다. 그것은 "생명 나무로"서 그 잎사귀는 소성하게 하는 덕을 가진다(계 22:2). 온량하게 말할 줄 아는 자는 자기가 사는 곳을 낙원으로 만들 것이다.

2. 악한 혀는 상하게 하는 혀이다(거기서 나오는 "패려함"과 격노와 거짓과 더러움은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그것은 악한 말을 하는 자의 양심을 상하게 하고 듣는 이에게는 범죄하게 하거나 슬프게 만드므로, 양자가 다 "마음이 상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강퍅한 말이 실제로 뼈를 꺾는 것은 아니라 많은 심령이 그로 인해 파괴를 당해왔다.

 

15:5

웃사람의 훈계와 책망(잠언 15:5)

1. 손 윗사람들은 회계하는 날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므로 자기들의 보호 하에 있는 자들에게 훈계와 책망을 해야 한다. 그들은 지식의 등불을 들고 가르쳐야 할 뿐만 아니라 뜨거운 열성으로 견책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일은 아버지로서의 권위와 사랑으로써 행해져야 하며,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더라도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을 나무라고 불안하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마음 좋은 자들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긴 하나, 그래도 그들이 멸망으로 가는 탄탄대로를 방해 하나 없이 가도록 버려두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다.

2. 손 아랫사람들은 훈계와 책망에 순종해야 할 뿐만 아니라(비록 승복하기 곤란한 일이더라도 복종해야 한다), 그것을 은총으로 존중하고 업신여겨서는 안 되며, 자기들의 나아갈 방향 제시로 받아들이고 언제나 그것에 유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곧 그들의 지혜로운 자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이고 또 지혜롭게 만들어 주는 방편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훌륭한 교육을 태만히 알고 경시하는 자는 우매한 자요, 우매한 자로 살다가 죽게 마련이다.

 

15:6

의로운 자의 재물과 악한 자의 재물(잠언 15:6)

1. 의로움이 있는 곳에는 부요함이 있고 그 위로가 있다.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느니라."

우리의 종교는 인간들에게 근면과 절제와 공의를 가르쳐 주며, 일반적으로 재산은 이런 수단에 의해 불어나는 법이다. 그러나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거소를 복되게하시나니" 그 축복은 별 어려움없이 부자가 되게 해 준다. 설사이 세상의 재화가 많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은혜가 있는 곳에는 진정한 보물이 있다. 적은 것을 소유하는 자가 그로써 만족하고 그 적은 것에서 나오는 위안을 누린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은 온갖 재물보다도 귀한 것이다. 의인들 자신은 부유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집에는 보물이 있으며 축복이 창고에 쌓아져 있어서 그들의 후손이 그 이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세속적 인간은 그 보물로써 자기 배만 채우고 자신의 감각적 욕구를 충족시키려 한다(시 17:14). 그러나 의로운 자의 첫 번째 관심은 자기 자신의 영혼과 그 다음엔 자신의 자손을 향해 있고, 자기 자신의 마음에 보물을 쌓은 다음에는 자기 집에 보물을 쌓아 자기 친척과 그 주위 사람들이 그 보물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는 데에 있다.

2. 비록 재물이 있더라도 악이 있는 곳에는 심령의 도로(徒勞)가 있다. "악인의 소득" 비록 큰 수입이라 하더라도 "고통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거기에는 죄와 저주가 있는 까닭이다. 거기에는 자만과 격노, 시기와 분쟁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것들은 고통스럽게 하는 정욕들로서 소득의 기쁨을 빼앗아가며 그 이웃 사람들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15:7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입술(잠언 15:7)

이 말씀은 2절의 취지와 같은 것으로서 지혜로운 자가 그 주위 사람에게 얼마나 축복이 되며 미련한 자는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다만 여기서 좀 더 관찰해 볼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이다.

1. 우리가 지식을 확산시키는 것은 그 지식을 올바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사실.

우리가 선한 지식을 우리가 아는 몇몇 천지들에게만 한정시키지 말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선하게 활용할 자에게 전달하기를 아까와하지 아니하며, 이 신령한 의연금을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 주고 겸손한 슬기로써 이 선한 재물을 전파하고 확산시킬 때 우리는 자식을 올바로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유용한 지식을 퍼뜨리고 보급하기 위해 고심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일부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 그들도 딴 사람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선한 지식은 보급되는 것이다.

2. "미련한 것을 쏟아 내는" 것만 잘못일 뿐 아니라, "지식을 전파"하지 않는 것이나 최소한 몇 가지 지혜로운 말이라도 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 "미려한 자의 마음은 정함이 없느니라."(혹은 "그렇지 않느니라") 미련한 자의 마음에는 전파할 만한 선한 것이 없거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로써 선을 행할 만한 기술이나 의지가 없으므로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다.

 

15:8

악인의 제사와 정직한 자의 기도(잠언 15:8)

1. 마음이 악의에 차 있고 그 삶이 해로운 악인을 하나님께서 너무나 증오하시는 까닭에 그들의 "제사"조차 "미워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제사에는 악인들도 나아오는데 그것은 양심의 입을 막고 세상에서 저희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행악자가 지성소로 들어오는 것과 같다. 그들의 그 지성소가 거룩한 곳이기 때문에 들어오는게 아니라 공의로부터 피난할 수 있는 곳이기에 숨으러 오는 것이다. 그러한 악인의 제사는 아무리 비싼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그 제사는 성실로 봉헌한 것도 아니며 선한 원리에서 나온 것도 아닌 까닭이다. 그들의 하나님을 속이고 저희 처신과는 달리 거짓말로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와 경건은 죄에 대한 위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잠 7:14),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의 제사는 여호께서 "미워하신다."(사 1:11 참조).

2.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선인에게 대하여 매우 지극한 사랑을 품고 계시는 까닭에 그들이 비용을 들여 제사를 드리지 않더라도(바로 그렇게 준비하신 이가 하나님 자신이므로) 그들의 "기도는 기뻐하시느니라." 기도할 수 있는 은혜는 바로 하나님의 은사요, 그들 안에서 작용하는 그자신의 성령의 역사이며, 그는 이를 아주 기뻐하신다. 그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말을 거는 그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에게 선대하기를 즐거워하시는 것이다.

 

15:9

의인과 악인의 길(잠언 15:9)

이 말씀은 8절에 대한 이유가 된다.

1. "악인의 제사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의식의 여러 가지 요목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 아니라 "악인의 길"은 그들의 전 진로와 행정(行程)이 악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죄 가운데로 행하려고 작정한 자들에게서는 화목제가 열납되지 않았고, 그것을 죄에 대한 묵과와 계속 죄를 행하겠다는 허락을 얻어낼 목적으로 드리는 경우에는 가장 가증한 제사가 되었던 것이다.

2. "정직한 자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처럼(빌 3:13) 비록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의를 따라가며" 그것을 목적삼고 매진하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15:10

징계와 견책(잠언 15:10)

이 말씀은 징계를 견디지 못하는 자들은 멸망당할 것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나타내 준다.

1. 의로운 길을 알았다가 버린 자들은 흔히 견책과 훈계를 큰 모욕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책망을 매우 못마땅해 하며, 견딜 수 없이 참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개조되고 책망듣는 일을 싫어하며 자기들에게 충실하고 친절하게대해 주는 자들을 미워하기 때문이다. 모든 죄인들 중에서 책망하는 성내는 자는 매우 나쁜 배교자인 것이다.

2. 책망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확실히 멸망을 당할 것이다. "견책을 싫어하고" 책망에 거스려 자기 마음을 강퍅케 하는 자는 자기 우상과 결합되어 있는 자이다. 그런 자는 혼자 내버려 두라. 그는 자기 죄로부터 떠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죽을 것이며," 자기 죄 가운데에서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책망이 받지 않으려 하니 하나님이 당신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대하 25:16; 잠 29:1 참조)

 

15:11

여호와의 감찰(잠언 15:11)

이 말씀은 선과 악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에 대해 설명한 3절 말씀을 보다 확실하게 해 주고 있다.

1.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며, 모든 산 자의 눈에서 감추어져 있는 것조차 아신다. "음부와 유명(혹은 멸망)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느니라." 지구 중심부와 지하 암굴 뿐만 아니라 무덤과 우리시야에서 사라져 거기 매장돼 있는 모든 시체들조차 다 "여호와의 앞에" 있다. 모든 것은 "여호와의 앞에" 있고 다시 부활할 때는 하나도 망실되지 않고 그의 시선하에 있어서 찾아질 것이다. 그는 모든 자가 매장되어 누워 있는 곳을 아신다. 모세도 아시며 아무리 애매모호한 곳에 매장된 자라 하더라도 아신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Hioc Jacet-즉 여기 그가 누워 있노라고 죽은 자를 가리키는 기념비조차 필요로 하시지 않는다. 각개의 저주받은 자의 장소와 그들의 형언할 길 없는 고통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는 갈라진 영혼의 상태와 그들의 모든 상황까지 하나님이 시선 하에 있다. 본문의 "유명(혹은 "멸망")이란 말에는 아바돈이란 단어가 사용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귀의 이름 중 하나이다(계 9:11). 그 멸망자조차 우리를 기만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의 인지는 피하지도 면하지도 못한다. 하나님은 악마가 어디서 오는지 주시하시며(욥 1:7) 그가 비록 교활하고 간교하며 재빠르다 하더라도 그의 모든 가면을 꿰뚫어 보고 계신다.

2. 그는 "인생의 마음"을 하나하나 알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사탄의 깊은 간계를 통찰하고 계시다면, "하물며" 인생의 마음을 더 많이 살피지 않으실 리 없는 것이다. 인생이 사탄에게서 사술을 배워 아무리 속임수에 능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크신 분"이시며 우리 자신보다 우리 마음을 더 잘 알고 계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인간의 성격에 대해 일호차착도 없는 재판관이신 것이다(히 4:13).

 

15:12

거만한 자와 지혜있는 자(잠언 15:12)

거만한 자는 하나님과 거룩한 신앙을 희롱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확신시켜 주고 개선시켜 주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조차 무시하는 자이다.

다음 사실을 이에 대한 증거이다.

1. 그는 자기 양심의 억제를 견디지 못하며 그 양심이 자기에게 터 놓고 직언하는 것 또한 허용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견책받기를 좋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으로 침잠하여 그것과 사귀는 일도 차마 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흉허물 없는 생각이나 공정한 비판도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 마음이 자기를 치도록 내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잘 알게 될까봐 두려워하거나 자신과 논쟁하기를 꺼려하는 자의 경우는 비참하게 되고야 만다.

2. 그는 자기 친구들의 충고와 권면도 차마 견디지 못한다. 그는 "지혜로운 자"가 자기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해 줄까봐 그들에게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우리는 지혜있는 자가 우리에게 오면 마땅히 영접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거지가 적선 받기 위해 부잣집 대문에 찾아가듯 지혜로운 자들에게 가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거만한 자는 이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자기 잘못을 지적받고 개심하도록 설득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5:13

마음의 즐거움과 근심(잠언 15:13)

1. 본문은 해롭지 않은 즐거움을 우리에게 권장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을 활기있게 하고 일하기에 적합하도록 하여 신체를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며, 얼굴을 빛나게 해 주고 우리들이 서로 즐거운 낮으로 대하게 만들어 교제를 원만하게 하도록 해 주는 것이다. 지혜와 은혜의 다스림 아래서 기뻐하는 마음은 신앙을 크게 장식해 주는 것으로 거룩한 아름다움에 한층 더 광택을 더해 주며 사람들로 하여금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많아지게 된다.

2. 우리의 신앙과 처세에 있어 큰 원수로 조심해야 할 것은 우울증의 해독이다.

마음이 잠시 방심하게 되면 근심이 왕노릇하게 되기가 쉽다. "마음의 근심"이 지배권을 장악하고 폭군 행세를 하게 될 때에는 "심령이 상하게"되고 소침하게 되어 하나님께 대한 종사에 부적당하게 된다.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울지 않는 자같이 울어서" 우리 자신에게 정직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섭리에 순응하도록 하자.

 

15:14

명철한 자와 미련한 자(잠언 15:14)

여기에는 놀랄 만한 두 가지 일이 나온다.

1. 지혜로운 자가 자신의 지혜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계속 지혜의 증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는 지혜를 얻으면 얻을수록 더 많이 가지려고 한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자기가 도달한 지식에서 얻는 기쁨이 너무나 커서 계속 더 많은 것을 탐내며 지식의 수단을 사용하여 더욱 많은 것을 얻기 위해 계속 수고하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은혜 속에서 더욱 자라나게 된다." si dixisti, sufficit, periisti-즉 네가 만약 이만하면 나는 족하다고 말한다면 너는 파멸할 것이다.

2. 우매자는 자신의 미련함에 만조하고서 그 치료를 구하지 않는다는 사실.

선한 자가 확고한 은혜의 만족을 바라면서 굶주려 하는 때에 속된 마음은 육욕과 호사스런 허상의 잔치를 벌이며 포식한다. 공허한 환락과 감각적 쾌락은 속된 마음의 기쁨이 되며 그것은 이들로써 만족한 가운데 안식을 누리고 어리석은 길 가운데서 자화자찬하는 것이다.

 

15:15

고난과 즐거움(잠언 15:15)

인생 중에서 전자와 후자의 상황 및 기질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자.

1. 사람들 중에는 고난이 극심하고 슬픈 마음에 차 있으며, 노년의 날처럼 그 세월이 험난하여 "낙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을 보내는 자도 있다. 그들은 "어두운데서 먹으며"(전 5:17) "복을 맛보지" 못하는(욥 21:25)자들이다.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자의 고난이 어찌 그리 많은 것인가! 그런 자들은 혹평하거나 멸시할게 아니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 주며, 원조하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그런 운명이 우리 자신의 분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며 현재로서는 즐거워하고 있더라도 우리 운명이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2. 또 어떤 이들은 크게 번영을 누리며 명랑한 마음을 지니기도 한다.

그들은 좋은 세월을 보낼 뿐만 아니라, "항상 잔치하느니라." 만약 그들이 풍부한 모든 것으로 기꺼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 풍족한 것이 저희 순종의 수레 바퀴에(이 모든 것과 천국에) 기름이 된다면 그들은 선하신 주인을 섬기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자라도 두려움 없이 잔치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돌연한 변화가 이를지도 모르는 것이니 "떨면서 기뻐하라."

 

15:16

경외와 사랑(잠언 15:16,17)

솔로몬은 이 앞의 절에서 광대한 토시나 큰 수입이 없더라도 즐거운 마음을 지니는 자는 "항상 잔치하는"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게서 얻은 만족과 기쁨은 삶을 편하고 즐겁게 만들어 준다. 이제 여기에서는 그가 그런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자서면 어떤 것이 필요한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다. 즉 이 세상에 가지는 게 적더라도 "항상 잔치하"는 것 같은 즐거운 기분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다름 아닌 거룩함과 사랑이다.

Ⅰ. 거룩함.

"자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가운데 그것을 경영하고 누리며, 선하게 양심을 지키고 의무의 길로 행하며 우리가 가진 바 적은 것으로 하나님을 충직하게 섬긴다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한층 안락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며 보다 낫게 활용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음 사실을 살펴보라.

1. 이 세상에서 조금밖에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흔히 겪는 운명이다.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으나"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약 2:5).

2. "크게 부한"자들이 왕왕 그로써 "번뇌하느니라." 그들의 거재가 그들을 편안하게 해 주기는 고사하고 근심을 더욱 증가시키며 한층 분주히 뛰어 다니게 만든다.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

3. 큰 재물이 번뇌를 몰고 오는 경우에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만일 큰 재산을 가진 자가 그 재물로써 자기 의무를 행하고자 하며 그런 다음 그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그다지 많은 번뇌가 따르지 않을 것이다.

4. 그러므로 세상에서 극히 풍족한 것을 지니면서도 하나님 없이 사는 것보다 세상 것을 조금만 소유하면서도 선한 양심으로 그것을 소유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며, 적은 소유 중에서 하나님을 향유하고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나으며 보다 바람직한 일인 것이다.

Ⅱ. 사랑.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 다음으로 이 생의 위로에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게 지내는 일이다.

1. 만일 "형제가 화합하여 함께 거하고"일상 식탁에서 뿐만 아니라 보다 엄숙한 향응에서도 그들의 우애있으며 진심으로 대하고 즐거움을 느낀다면 "여간 채소를 먹는" 소찬도 부족한 것이 없는 잔치상같이 될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재산이 너무 적어 더 이상 어찌할 여유가 없을 정도라고 하더라도 사랑만 있다면 그 것은 그 소찬을 달콤하게 만들어 줄 것이며 마치 온갖 고량진미가 그득한 식탁을 대하듯 즐거워하게 해 줄 것이다.

2. 비록 살진 소를 통채로 내어 놓은 식사라 하더라도 상호간의 반목과 분쟁이 있다면 아무런 안락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미워하고 미움을 받는 악의의 누룩은 전 식구를 다 시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이 말씀이 접대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빈약한 상이라도 진심으로 환대받는 것이 진수성찬을 차려 두고 원한에 찬 실쭉한 홀대(忽待)받는 것보다 물론 나은 것이다.

cum torvo vultu miho coennla nulla placebt, cum placido vultu comenula ulla placet,-극히 호화판 향응도 찡그런 얼굴로 대접하면 불쾌하게 하나, 반면에 극히 수수한 식사라도 친절히 접대하면 기쁘게 만드는 것이다.

 

15:17 없음.

 

15:18

다툼을 일으키는 분노(잠언 15:18)

1. 여기에는 극심한 싸움을 일으키는 분노가 나온다. 따라서 그로부터 "싸움과 다툼이" 야기된다. 분노는 여러 도시와 교회를 불타오르게 하는 불씨이다. "분을 내는 자는" 격정적이고도 비꼬인 욕설로 "다툼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이간시킨다. 그는 타인들의 언쟁을 야기시키며,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도 타인이 주는 기회를 이용하여 다툰다.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성을 내게 되면 하나의 언쟁은 또 다른 싸움을 낳게 되는 것이다.

2. 또한 위대한 화해자인 온유함이 나온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분쟁의 불이 당기지 않도록 "예방"할 뿐만 아니라 설렁 이미 불이 붙었다고 하더라도 "시비를 그치게 하며," 불길에 물을 끼얹어 다툰 당사자들을 재결합시키고, 온화한 방법으로써 서로 화평을 위해 양보하도록 만든다.

 

15:19

게으른 자와 정직한 자의 길(잠언 15:19)

1. 사람들이 저희 의무의 길에서 봉착하여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체하는 어려움들은 어디서 발생하는가? 그런 난관들은 의무의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무에 실질적으로 유의하지 않는 자들의 게으름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자기 일에 전심하지 않는 자들은 저희 길이 가시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전혀 자기들의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거나(마치 하나님께서는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려고 하는 엄한 주인인 것처럼), 최소한 저희 길에는 가시가 뿌려져 있어서 아주 많은 난관과 위험을 돌파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일을 해낼 수 없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가시 울타리를 맨발로 통과해야 되기라도 하는 듯이 아주 싫어하며 그 길에서 물러서는 것이다.

2. 이런 가상의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되는 것인가? 우리의 의무를 행하려는 정직한 욕구와 노력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 길을 편안하고 쉽게 만들 것이어서 우리는 그 길에 장미 꽃이 뿌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이니라."

그 길은 울통불퉁하지 않고 밟기에 편하며, 복잡하지 않아 찾기가 쉽다.

 

15:20

지혜로운 아들과 미련한 아들(잠언 15:20)

1. 선한 자녀가 부모의 기쁨이 된다는 것은 그들의 칭찬이 된다. 부모는 자녀를 매우 잘 보살피고 무진 애를 쓰셨던 분들이므로 자녀에게서 기쁨을 얻어 마땅하다. 착한 자가 만약 악한 날이 이르는 말년에 부모에게 위로가 되었다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만족에 한층 더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2. 그러나 악한 자녀가 자신의 악한 마음으로써 부모를 멸시하고 그들의 권위를 무시하며, 그들의 온정에 악한 보답을 한다는 것은 그들의 수치가 된다.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매우 수고하였고, 아마 그를 너무 응석을 받아 주며 키웠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자기 어머니를 멸시하는 그의 죄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어머님의 슬픔도 따라서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다.

 

15:21

무지한 자와 명철한 자(잠언 15:21)

1. 죄를 즐거워하는 것은 악인의 특성이다. 그는 미끼를 보면 군침을 흘리다가 탐욕스럽게 그것을 삼키며, 낚시 바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삼키고 나서도 그것으로부터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는 미련한 것을 즐겨하느니라." 그는 또한 타인의 미련함도 즐거워하나 자신의 우매함을 더욱 더 사랑한다. 그는 유감없이, 그리고 기뻐하면서 죄를 지으며, 자기 죄를 회개하기는 고사하고 그것을 자랑하기까지 한다. 이것이 바로 은혜 없는 자에게서 드러나는 확실한 표시한 것이다.

2. 자기 의무를 본분으로 삼는 것은 지혜롭고 선한 자의 특성이다.

우매한 자는 되는 대로 살며 아무 규준이 없이 온갖 모험을 다행해 보고 성실성이나 항구성이 결여된 행동을 한다. 그러나 그 눈이 성령에 의해 개명(開明)된 "명철한 자는(선한 명철을 가지지 않은 자는 명철한 자가 아니다) 그 길을 바르게 걸으며," 건실하고 질서정연하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모든 일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그에게" 항구적 즐거움과 "기쁨"이 된다. 그러나 자기 안에 남아 있거나 어느 때고 간에 자기에게서 나오는 미련함은 그에게 슬픔이 되고 그는 그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이러한 특성으로써 우리는 자신이 무지한 자인지 명철한 자인지를 시험해 볼 수 있다.

 

15:22

의논과 모사(잠언 15:22)

1. 다급해 하고 경솔하며, 충고를 받지 않고 행동하면 얼마나 그릇된 결과가 되는지를 살펴 보자. 사람들이 의논을 구하러 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경영이 파하고" 실패하며, 요점을 얻지 못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이 심사숙고할 시간과 수고를 가지려하지 않거나 자기 판단을 과시한 나머지 타인과 상의하는 일을 우습게 안다면 어떤 중요한 일도 성취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조금만 협의했더라도 예견하고 방지할 수 있었을 일이지만 그들은 그 일로 인해 낭패를 하고 만다. 일을 성급히 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머리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사를 막론하고 일 처리를 하는 데에 있어서 좋은 철칙이 된다.

plus vident oculi quam oculus-즉 여러 눈은 한 눈보다 더 많이 본다. 우리들 자신의 행하는 몫이 가장 적을 때 가장 잘된 일로 나타나는 수가 종종 있는 것이다.

2. 우리 친구들에게서 조언을 구하는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이로움을 주는지 살펴 보자. "모사가 많으면(단 그들이 분별력이 있고 정직하며, 모순된 심정으로 충고하려는 게 아닌 경우에 한하여)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솔로몬의 아들이 노인의 권면에 묵종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잠언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많은 모사"를 원하기는 하였으나 무게보다 수를 더 중시하였던 까닭에 소년들과 상의를 하였기 때문이다.

 

15:23

알맞은 말의 유익함(잠언 15:23)

1. 우리는 알맞은 때에 말해야 지혜롭게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신망과 기쁨을 얻게 되는 것은 곧 그말이 적절하고 요령이 있으며 "때에 맞은 말"이 되고, 또 그 말이 꼭 필요하고 존중될 만하며 소위 정곡을 찌르는 말이 될 때이다. 선한 말이라 해도 시기를 잘못 타기 때문에 소기의 선한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되는 수가 많다. 말의 아름다움 중에서도 기회를 따라 즉석에서 적절한 응답을 하는 것보다 더 보기 좋은 것은 없는 것이다.

2. 우리가 말을 지혜롭게 잘 얘기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위안뿐만 아니라 타인의 유익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느니라." 그의 말이 아주선뜻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잘한 말이어서, 듣는 자들이 찬사를 던지며 "그 말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유익한 말인지!" 하고 말하게 될 때 그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그 일로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15:24

지혜로운 자의 길(잠언 15:24)

여기에서 우리에게 권장하고 있는 것은 지혜롭고 거룩한 길로서, 그 특수성은 아래와 같다.

1. 매우 안전하고 안락함. 그것은 "생명길"이요 영생에 이르는 길로서 우리는 거기서 영혼의 생명이 될 기쁨과 만족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길 끝에서는 완전한 축복을 얻게 될 것이다. 지혜있는 자가 되고, 그리하여 생명을 얻어라. 우리는 자신이 불행에 노출돼 있고 비참하게 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음을 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으나, 이 길은 바로 그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 그 길은 "그 아래 있는 음부를 떠나게"하는 길이다. 지옥의 함정과 사탄의 유혹과 그의 모든 궤계와 우리의 죄로 인해 감당해야 마땅한 지옥의 고통과 영원한 멸망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바로 이 길인 것이다.

2. 매우 숭고하고 존귀함. 그것은 "위로 향하고"있다. 선한 자는 "위에 있는 것을 사모"하며 그런 일만 관계한다. 그의 "교제는 하늘에 있다." 그의 길은 바로 거기로 뻗쳐 있다. 그의 보물도 위에 있어서 원수의 손이 미치지 못하며 이 하계의 변화에도 무관하다.

선한 자야말로 참다운 귀인이며 위인이다. 그의 소망과 계획은 높으며 그는 범상한 타인들의 수준 위에서 산다. 그 길은 어리석은 자들의 기량을 초월하고 그들의 시야밖에 있는 것이다.

 

15:25

교만한 자와 악한 자(잠언 15:25)

1.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높아진 자를 낮추시기를 기뻐하시며 일반적으로 그의 섭리의 과정 속에서 그 일을 이루신다.

자존자고하여 자기들 위에 계신 하나님을 무시하며 자기 주위 사람들을 짓밟는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는 대적하셔서 "멸망"시키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멸망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랑하고 영원히 존속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하는 그들의 집도 "헐어 버리실"것이다. 이와 같이 교만은 많은 사람을 파멸케 하는 장본인이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는 풀죽은 자들을 후원하는 일이며 그는 흔히 이 일을 훌륭히 이루신다. 그는 불쌍한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음흉한 교만자가 불쌍한 과부의 땅을 침해하나 그 과부는 그것을 방어하고 정당한 권리를 지킬 능력도 없다. 약자를 보호하며 억압받는 자를 위해 나타나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15:26

악한 꾀와 선한 말(잠언 15:26)

이 말씀의 전반부는 생각에 대하여 언급하며 후반부는 말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모두가 다 한 가지다. 생각은 하나님께 대한 말이며 말은 그것이 유출되는 생각에 의해 판단되는 까닭이다.

1. "악인의 꾀"와 말은 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악하여 해 입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이런 저런 나쁜 경향을 지니기 때문에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미워하시며 그것을 책하실 것이다. 악인의 생각은 대개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그런 것뿐이며 그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그는 심령을 감찰하셔서 마음에서 일어나고 거기서 새로 생기는 모든 생각을 아실 뿐만 아니라, 마음 속의 가장 깊숙하고 가장 높은 자리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2. "선한"자의 생각과 "말은" 그들답게 순수하여서 깨끗하고 정직하고 성실하여 즐거운 말이여, 즐거운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런 것은 순수함을 기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아주 즐거움을 준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기도(기도와 찬미로 드리는 "저희 입의 말고 마음의 묵상은 하나님께 열납된다." 시 19:14; 69:13)와 사람들에게 훈계의 말을 가르치는 그들의 담화, 이 두 가지를 다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이 양자가 순수하고 정결하게 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야 즐거운 것이 되는 것이다.

 

15:27

탐욕스런 자와 의로운 자(잠언 15:27)

1. 탐욕스러운 자들은 자기 가족들에게 곤란을 가져온다. "이(利)를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느니라."

그는 스스로 세상의 노예가 되어 꼭두새벽에 일어나 밤 늦도록 앉아서 세상 것을 추구하며 근심의 떡을 먹는 자이다. 그는 분주히 뛰어다니며 사업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을 혹사하고, 손해를 입거나 계획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을 때마다 초조와 번뇌를 맛보며, 자기 이익의 길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자와 언쟁을 일삼는다. 그런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며 자기 자녀와 하인들에게 부담스럽고 성가신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이익을 탐하며 뇌물을 받고 돈을 버는 데 비합법적 방법을 사용하는 자는 벌어들인 것으로써 자기 자손에게 저주를 끼치는 자이며, 이것은 조만간에 그 집에 화를 초래할 것이다(합 2:9, 10).

2. 의로울 뿐만 아니라 관대한 자는 자기 가족에게 축복을 부과시키는 자이다. 그러한 자는 "뇌물을 싫어하고" 정의를 굽혀 달라면서 손에 억지로 쥐어 주는 뇌물을 한사코 뿌리치고 죄스럽고 비정상적인 모든 축재 수단을 혐오하는 자이다. 그는 돈 몇 푼에 구애되거나 돈만 아는 것을 질색으로 알며, 기회있는 대로 자선을 베풀고자 한다. 이런 자는 살게 될 것이다. 그는 생명의 안락을 누릴 것이며, 번영과 명망 가운데서 살게 될 것이다. 그의 이름과 그의 가족도 살게 되고 장구하게 될 것이다.

 

15:28

의인과 악인의 입(잠언 15:28)

1. 자기 혀를 잘 다스리는 선인은 이 일로써 지혜로운 자로 판명된다.

그렇게 행하는 자는 동시에 "온전한 사람"이기도 하다(약 3:2). 자기가 해야 할 말의 중요성과 그 말이 타인에게 미칠 유익한 점 및 악영향을 깊이 생각하여 진실하게 말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는 것은 의인이 갖는 특성 중의 일부이다("대답"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다. 즉 그는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감히 달리는 말하지 않으며, "그 마음의 진실을 말한다," 시 5:2). 그리고 그는 적절하고도 유익한 말을 하는 것이 자기 본분이라고 생각하므로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자기 말이 은혜스럽도록 한다(느 2:4; 5:7).

2. 악인은 자기가 할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법이 없고 그 입은 악을 쏟아서" 하나님과 거룩한 신앙을 욕되게 하고 자신의 수치가 되게 하며 타인에게는 해가 되게 한다는 점에서 어리석은 자임이 입증된다. 이처럼 악한 것으로 충일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악한 마음인 것이다.

 

15:29

악인과 의인에 대한 여호와(잠언 15:29)

1.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무시하는 자들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계신다.

악인은 전능자께 "우리를 떠나소서 하고 말하여," 그분은 이에 따라 그들을 "멀리 하신다." 그분은 그들에게 나타내시지 않고 그들과 교제하지도 않으시며 그들의 말을 들어 주시지도 않고 그들을 도와 주지도 않으실 것이며, 그들이 곤핍한 때에라도 응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그의 존전에서 영원히 추방될 것이며 그는 그들을 멀리 떨어져서 보실 것이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2. 하나님은 의무의 길로 자기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자들에게는 자비의 길로 가까이 나아가신다. "그는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용납하시며, 그것을 기뻐하시고 화평의 응답을 내리실 것이다. "역사하는 힘이 많은 것"은 바로 "의인의 간구"이다(약 5:16). "그는 그들에게 가까이 나아 가셔서," "그들이 자기를 부르는 모든 일에" 큰 구조자가 되어 주신다.

 

15:30

눈의 밝음과 좋은 기별(잠언 15:30)

여기에는 두 가지 일이 즐거운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1. 좋은 시력을 갖고 태양의 밝은 것을 보며(전 11:7)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업적을 바라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며, 그로써 이 아랫 세상은 아름답고 풍부하게 된다.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라야 자비의 귀중함을 평가할 줄 안다. 그렇다면 "눈의 밝은 것은" 얼마나 "마음을 기쁘게 하는가!" 이런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의 시력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2. 선한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과 선한 백성에게 "좋은 기별"(혹은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한층 즐거운 일이다. 이것은 "보배로운 기름과" 같다(전 7:1). 그것은 "뼈를 윤택하게 하며" 은밀한 즐거움을 주고 강하게 해 준다. (그리고 혹자가 해독하듯이)타인들에 대한 "좋은 기별"을 듣는 일 또한 매우 안락한 일이 된다. 선한 사람에게는 자기 친구가 진리 가운데에서 행한다는 것을 듣는 일보다 더 큰 기쁨은 없는 것이다.

 

15:31

생명의 경계(잠언 15:31)

1. 지혜로운 자의 특징은 책망을 아주 기꺼이 들으려 하며, 따라서 자기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과 행실로 친히 보여 주는 자들과 사귀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경계"를 받아들이리 수 있는 "귀"는 훈계자를 사랑할 것이다. 신실하고 우정어린 견책을 여기서는 "생명의 경계"라고 칭하고 이다. 이는 그 책망이 활기 있게, 그리고 사려깊은 열성으로 주어질 뿐만 아니라(그리고 우리는 우리 신조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 생명을 따라서 책망해야 한다), 이 책망이 잘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신령한 생명의 수단이 되고 영생에 이르게 하며, (혹자가 생각하듯)잘 행동한다고 해서 견책하고 꾸중하는 것과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망이나 비난은 오히려 사망의 책망으로써, 우리가 존중하거나 영향을 받아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2. 책망을 참고 들을 만큼 지혜로운 자는 이로써 "더욱 지혜로와질 것이며"(잠 9:9), 드디어 그 시대의 현자 중에 들어가게 될 것이고 딴 사람들을 견책하고 훈계할 만한 능력과 권위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잘 배우고 잘 순종하는 자는 때가 되면 잘 가르치고 잘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5:32

훈계와 견책(잠언 15:32)

1.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 하고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의 미련함을 살펴 보자.

그들은 훈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등을 돌리거나, 아니면 그것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저희 마음이 돌아서 버린다. 그들은 징계받기를 싫어한다"(난외주는 그렇게 해독한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오는 "징계를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 막대기에게 발길질을 한다. 이렇게 행동하는 자들은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자들이다. 이성을 개발하고 영원 불멸의 상태를 위해 준비시킬 목적으로 베풀어지는 훈계를 거부해 버림으로써, 그들은 이지적이고도 불멸의 존재로 간주되는 영혼에 대해 자신들이 낮고 천박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 영혼에 대해 거의 보살핌과 관심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혼을 먹이고 입히는 데에 소홀하며 영혼을 학대하고 위험에 노출시킨다. 더구나 육체를 영혼보다 중히 여기고 몸을 즐겁게 하기 위해 영혼에게 몹쓸 짓을 한다.

2. 가르침받는 일 뿐만 아니라 견책 받는 일도 흔쾌히 하는 자들의 지혜로움을 살펴 보자. "견책을 받고" 책망당한 잘못을 고치는 "자는 지식을 얻게 되며," 이로써 그의 영혼은 악한 길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되며 선한 길로 지향하게 된다. 이것은 그가 자신의 영혼에 대해 존중심을 품고 있으며 자기 영혼을 존귀하게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 된다.

 

15:33

경외와 겸손(잠언 15:33)

1. 우리의 하나님께 복종하고 그에게 대한 경외의 마음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큰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살피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혹은 지식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지혜의 훈계"요 징계이기도 하다. 신앙의 여러 원리들을 틀림 없이 고수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지식을 향상시키고 잘못을 교정시켜 주며, 우리의 길의 가장 훌륭하고 확실한 안내자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경외는 우리가 몰지각한 말이나 행동을 하게 될 때 우리에게 가장 현명한 훈계를 베풀어 주고 징계해 줄 것이다.

2. 우리 형제에게 허리를 굽히며 그들에게 대한 존경심을 계속 품는 일 또한 우리에게 매우 큰 이익이 된다. 겸손이 있는 곳에서는 존귀하게 될 길조가 보이며 그것은 명예롭게 되는 예비 단계가 된다. 스스로 낮추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이 후에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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