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여인과 미련한 여인(잠언 14:1)
1. 좋은 아내는 한 가문의 큰 축복이 된다. 아이 많이 낳는 아내로 인해 자녀들로 한 가문이 번창해지고 채워지며, 가문이 세워진다. 그러나 경건하고 부지런하며 신중한 아내, 곧 슬기로운 아내로 인해서는 가내 제절이 원만하게 되어 부채는 없어지고 소득이 증대하며 양식이 비축되고, 자녀들은 잘 교육되고 부양된다. 그래서 그 가정 안에는 위안이 있고 밖에서는 신망이 있는 가정이 된다. 이와 같이 하여 그 집은 세워진다. 이런 슬기로운 여인은 비록 가정을 주관하는 것이 남편이 본분이 줄 알지만(에 1:22) 집안을 보살피는 것을 자기 소관사로 간주한다.2. 많은 가정이 그릇된 남편의 도리뿐만 아니라 나쁜 아내의 도리로 인해서도 파탄에 이르게 된다. "미련한" 여인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없고 자기 일을 중시하지도 않으며, 고집이 세어서 방자하고 낭비벽이 심하며 변덕스러운 여자이다. 그녀는 자기 안일과 욕정을 탐하며, 나들이나 잔칫집에 가는 일, 노름이나 극장가는 일에 시간을 다 소비한다. 재산이 넉넉한 가정에 시집오더라도 그 집을 가난하게 만들고 황폐하게 되도록 낭비하여, 마치 "그집을 자기 손으로 허는"것처럼 파멸시킨다. 그런 여인의 남편은 아무리 애써도 그런 파멸을 방지할 수 없는 것이다.
정직한 자와 패역한 자(잠언 14:2)
1. 은혜와 죄의 본색. 은혜 주도형은 하나님을 추앙하고, 무한히 크시고 높으신 그에게 존귀를 드리며 모든 영광을 마땅히 돌려 드려야 할 그에게 영광을 돌린다.이성을 가진 피조물에게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일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죄가 주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멸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딴 어떤 일에서 보다도 천사들이 경배하는 하나님을 경멸한다는 점에서 죄는 극히 악하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교훈을 멸시하고, 그것과 그의 약속에게 다스림을 받지 않으려 하고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들은 하나님 자신과 그의 모든 속성을 경멸하는 자들이다.
2. 참 빛으로 드러난 은혜와 죄. 우리는 이로써 은혜와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을 지배하는 사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정직하게 행하며" 양심적으로 행동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충실하다. 그가 멈추어 서거나 한 걸음 내딛는 것은 무엇이나 다 규칙을 따라서 하는 것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이다.그러나 이에 반해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짐짓 자기의 욕망과 정욕을 따르며, 불공평하고 부정직하며 신앙과 모순되게 행동하는 자이다. 아무리 겉으로는 신앙이 독실한 체 가장하더라도 그는 악인이며, 하나님께는 자신을 모멸하는 자로 간주될 것이다.
미련한 자와 지혜로운 자의 입술(잠언 14:3)
1. 자신을 드러내 놓는 교만한 우매자. 심중에 교만이 있고 머리에는 그 교만을 억누를 만한 지혜가 없다면, 대개 그 말 가운데에서 교만이 스스로 나타나게 된다. "그 입에는 교만이 있으니," 교만하여 자랑하고, 교만하여 비난하고, 교만하여 냉소하고, 교만하여 명령하며 법을 베푸는 것이다. 이런 것은 "교만의 매," 혹은 가지이다.이 나뭇가지라는 말은 이사야 11장 1절과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이다. 그것은 마음 속에 있는 쓴 뿌리에서 자라 나오며, 그 줄기에서 나온 가지이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우리는 이 가지를 정복할 수가 없다.
이 말씀은 또 치고 때리는 회초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그것은 딴 사람을 치는 "교만의 매"이다. 자기 혀로 교만한 자는 자기를 전후 좌우로 공격하는 자요 쾌락을 향해 연방 주먹을 날리는 자여서 종내에는 자기 자신에게 대한 매가 될 것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의 입의 말로 인해 치욕스러운 징계를 당하게 될 것이며 군인처럼 칼로 베임을 당하는 게 아니라 종처럼 지팡이로 두들겨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몽둥이에 맞을 것이다(시 64:8).
2. 자신을 구하며 자신이 이익을 꾀하는 겸손한 지혜자.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지혜자의 입술은 딴 사람을 해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교만한 자들이 자기 혀로 남을 해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또 그의 입술은 자기 자신에게 해를 초래하는 일도 하지 않는데 반하여 거만한 냉소자들은 흔히 이런 자멸 행위에 빠지는 것이다.
근면의 유익함(잠언 14:4)
1. 농사의 태만은 빈궁에 이르는 길이다. 땅을 갈고 탈곡하는 "소가 없으면" 텅빈 "구유는 깨끗하느니라." 그러나 가축에게 줄 여물이 없으면 결과적으로 사람에게 공급할 빵도 없게 된다. 궁핍은 "이가 한가한 것"으로 표현된다(암 4:6). "소가 없으면" 밭에서 할 일이 없고 그렇게 되면 땅에서 얻을 것도 없다. 두엄이 없다면 "구유"는 참으로 "깨끗할"것이다. 이것은 깔끔하고 정결한 것을 만족시킬지는 모르나 농사에는 도저히 합당하지 못한 일이다. 농사에는 너무나 더러운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를 팔아 구유를 깨끗이 하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농사에는 수고 뿐만 아니라 소의 두엄도 소용이 되는데 더러움과 수고를 덜기 위해서 소를 판단 말인가? 이것은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느라고 농촌의 일마저 유의하지 않고, (소위)암소보다 말을 많이 기르며 돼지보다 개를 많이 키우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나타내 준다. 그런 자들의 가족은 틀림 없이 그로써 고통을 당하게 된다.2. 자기 땅 주위로 돌아다니며 수고하는 자는 그 땅의 이익을 거둘 것이다. 자기 주변에 외관이나 장식을 위한 게 아니라, 쓸모있고 용도가 있는 것을 가꾸며 종복보다 농군을 더 많이 거느리는 자들은 번성하게 될 것이다.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 짐승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지으심을 받았기에 사나 죽으나 유용한 동물인 것이다.
신실한 증언과 거짓 증언(잠언 14:5)
사법의 행사에서는 증인을 많이 의존한다. 그러므로 증인은 마땅히 해야 할 원칙을 따르는 것이 공익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1. 양심적 증인이라면 조금이라도 부실한 증언을 감히 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선의로든 악의로든 사실과 다르게 진술하지도 않고, 누구 귀에 즐겁든 거슬리든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대로 증언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판결도 일사천리로 진행된다.2. 그러나 뇌물을 먹거나 편견에 사로잡거나 협박에 넘어간 증인은 마치 자기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기라도 한 양 기꺼이, 그리고 자신있게 "거짓말을 뱉느니라"(그것을 망설이거나 놀라지도 않고).
지혜를 얻는 자의 명철함(잠언 14:6)
1. 지혜를 구해도 얻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올바른 원리 올바른 방법으로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만한 자들이어서 훈계도 냉소하는 가운데에서 구하며, 그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조롱하고 트집잡는다. 많은 자들이 그리스도께 질문을 던져서 그의 대답으로 혐의를 잡아 고소하려 그를 시험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지혜를 당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시몬 마구스가 자만심과 탐심을 충족시키려고 성령의 은사를 구하듯,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자들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자. 그들은 잘못 구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이다. 헤롯은 기적을 보기가 소원이었지만 거만한 자였기에 거절당했던 것이다(눅 23:8). 이와 같이 조롱하는 자들은 기도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2. 올바로 이해하고 "악에서 떠나는"자들은(바로 그것이 "명철"이므로) 하나님과 그의 의지에 대한 "지식을 얻기가 쉬우니라." 조롱하며 거만한 자들에게는 비유가 그들을 더 강퍅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욱 어렵게 하였으나, 배우기를 즐겨하는 자들에게는 비유가 그들을 밝혀 조명하여 똑 같은 것을 더욱 간명하고 알기 쉽게 친근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마 13:11, 15, 16). 동일한 말씀이라도 거만한 자들에게는 "사랑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나, 겸손하고 신실한 자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된다. "악에서 떠나고"(이것이 "명철"임으로) 편견을 버리며 모든 부패한 성향과 애착심을 던져버릴 정도로 "명철한 자"는 교훈을 쉽사리 이해할 것이고 그 감화를 받을 것이다.
미련한 자에 대한 경고(잠언 14:7)
1. 우리는 어리석은 자를 식별할 수 있으며, 그가 악인임을 발견할 수 있으니, 이는 그가 "미련한 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하며" 그의 담화 속에서 경건한 맛이나 향기를 찾지 못하고, 그의 전달이 전부 부패한 것이거나 부패케 하는 것이며 그 안에는 "교훈하기에 선하고 유익한"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창고가 나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2. 우리는 그런 자를 멀리해야 하고 그들에게서 떠나야 한다.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이는 그를 동무 삼아 얻을 유익이 없으며 오히려 그로 하여금 해를 입을 위험이 있는 줄 "네가 알기" 때문이다. 때로 우리가 악한 말을 견책하고 반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악한 무리를 결별하고 그 말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나가는 것이다.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잠언 14:8)
1. 지혜롭고 선한 자의 훌륭한 행실. 그는 스스로를 잘 관리한다. 본문이 칭찬하는 것은 사색에만 칩거하는 학자의 지혜가 아니라 "슬기로운 자의 지혜"이다. 그것은 실력이 있으며 우리의 계획과 행동을 지시해 주는 데에 쓸모가 있다. 그리스도인 슬기란 것은 "우리의 길을" 올바로 "아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그네 들이고 길가는 자의 관심은 노중의 경물을 음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로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이러쿵 저러쿵 비판하거나 참견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잘 들여다 보며 "우리 발이 달려갈 첩경을 평탄케 하고(헤아리고)" 우리 길의 방향을 아는 것이 바로 "우리 길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길을 아는 것은 우리 길에 있는 위험을 살피고 그 길의 난관을 피하고 그것을 돌파하기 위함이며, 또 우리 길을 잇점을 살펴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그것은 우리가 행하는 데에 기준을 삼아야 할 규칙과 우리가 향해야 할, 그리고 행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다.2. 악인의 악한 행실. 그는 자기자신을 속인다. 그는 자기 길을 올바로 알고 있지 못하면서도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길을 잘못가며 그 잘못된 길로 계속 행하게 된다. "미련한 자의 어리석음은 속이는 것이니라." 그들의 어리석음은 자신을 속여 파멸로 자초한다. 모래 위에 세운 자의 어리석음을 바로 속이는 것이었다.
미련한 자의 죄와 정직한 자의 은혜(잠언 14:9)
1. 악인은 어떻게 자신의 악함 중에서 강퍅해지는가? 그들은 "죄를 심상히 여기느니라." 그들은 딴 사람의 죄를 우스운 일로 여기고 마땅히 슬퍼해야 할 그것에 대해 자신과 그 친구들로 더불어 즐거워한다. 그들은 또한 죄의 유혹을 받거나 죄를 범할 때도 자신의 죄를 가볍게 여긴다. 그들은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사 5:20), 농으로 죄를 지으며 죄를 향해 달려가고(렘 8:6), 그것을 계속 행하더라도 평안을 누릴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기 죄로써 어떤 악을 행하든지 상관하지 않으며, 자기들에게 그 악에 대해 말해 주면 비웃기까지 한다. 그들은 죄를 변호하는 자들이며 죄에 대한 변명을 꾸며내는 데는 기막힌 재주를 가지고 있다. "미련한 자는 속죄제를 심상히 여기느니라"(이렇게 해독하는 이도 있다). 즉 죄를 경시하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얕보는 자들이다. 또한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자들은 우매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탄식하시고 그리스도께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을(암 2:13) 얕잡아 생각하므로 그들은 곧 달리 생각하게 될 것이다.2. 선한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들의 선함 속에서 격려를 받는가?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 그들은 어떤 일로 실족하게 되더라도 곧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다. 그들은 서로 서로에게 선의를 품으며, 그러한 그들의 모임에서는 범죄의 경우에라도 상호 긍휼이나 동정이 있을 뿐이며 심상히 여기고 우습게 보지는 않는다.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잠언 14:10)
이 말씀은 "사랑의 사정과 그 성미의 변화를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란 고린도 전서 2장 11절 말씀과 일치한다.
1. 누구든지 자신의 무거운 짐에 대해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그 자신이며, 자신의 심령에 대한 짐은 특히 그러하다. 흔히 심적 부담을 가리워져 있고, 직접 고통을 당하는 자 혼자서 그 고충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실제 당하는 고충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딴 사람의 비탄을 혹평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타격은 아마 그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보다 더 무거운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다.2. 많은 사람이 은밀한 즐거움을 누리며, 특히 하나님의 위안 하심을 은밀히 만끽하고 있다. 그런 위안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이며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참회자의 슬픔과 마찬가지로 신자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예하지 못하는"일이므로 그 즐거움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도 없다.
정직한 자와 악한 자의 흥망(잠언 14:11)
1. 죄는 큰 가문도 파멸시킨다. "악한 자의 집"은 아무리 견고하고 높게 지어져 있더라도 "망할"것이며, 빈궁과 치욕에 이르러 드디어는 사몰될 것이다. 하늘에 대한 그의 소망이나 그가 의지하는 집은 서지 못할 것이며 비바람이 몰아치면 넘어질 것이다. 홍수가 와서 그 집을 깨끗이 쓸어가버릴 것이다.2. 의는 보잘 것 없는 가문도 흥하게 하며 든든하게 한다. "정직한 자의 장막은" 설령 이동시의 누추한 천막이더라도 만약 무한하신 지혜자가 좋게 보시기만 한다면 외적 번영이란 면에서 뿐만 아니라 참 부귀와 명예라고 할 수 있는 은혜와 위로 속에 있는 모든 일에 있어서도 "흥할"것이다.
자기 기만의 종국(잠언 14:12)
우리는 본문에서 아주 많은 영혼이 스스로 속아 넘어가는 길과 그 종말을 대하게 된다.
1. 그들의 길은 외관상으로는 아름답다. 그 길은 그들 스스로 "보기에는 바르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습이 당위와 합치되며, 자신의 생각과 실행이 선하고 자기들을 끝까지 버티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을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러나 그 길은 무지와 부주의의 길이며 세속적인 것과 지상의 것에만 몰두하는 길이다. 또 그것은 육욕의 길이며 육을 즐겁게 하는 길이다. 이런 길은 그 길로 행하는 자들에게 바른 것같이 보인다. 더욱이 종교적 위선이나 의식하는 행위, 미봉적(彌縫的)개혁이나 맹목적 열성의 길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들은 이러한 길이 자기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국에 가서 만사가 잘 될 것으로 보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2. 그러나 그들의 종말은 실로 가공(可恐)할 만한 것이며, 그들의 실수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사망의 길"이요 영원한 죽음의 길이다. 그들의 불의는 정녕 그들의 파멸이 될 것이며, 그들의 자신의 오른팔같이 믿던 거짓말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를 기만하는 자들은 종국에 가서 자기를 멸망하시키는 자로 판명될 것이다.
세상 환락의 헛됨(잠언 14:13)
본문은 세상의 환락이 헛된 것임을 말해 주며, 솔로몬이 웃음에 대하여 "그것은 미친 것이라"고 한 말을 증명해 주고 있다.
1. 웃음 속에도 슬픔이 있는 것이다. 죄인들이 왕왕 확신을 가지게 되는 경우나 아니면 모종의 큰 곤란을 당하게 되는 때에는 굴복하는 듯한 인상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억지로 즐거운 듯이 하여 저희 근심을 은폐시키고 기쁜 얼굴로 그들의 슬픔을 얼버무린다. 그들은 그가 자기들을 휘감을 때에도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아니, 사람들이 실제로 즐거운 때조차 저희 열락 속에는 이런 저런 불순물이 들어 있으며 그들의 쾌활함에 찬물을 끼얹는 점이 있어서, 그들의 모든 명랑함으로도 마음으로부터 이 어두운 그림자를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양심은 그들이 즐거워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그들에게 말하고 있다(호 9:1). 그들의 볼 수 있는 것은 그 환락의 허무감밖에 없다. 영혼의 신령한 기쁨은 영혼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의식하는 자의 기쁨은 외면적인 잇빨에서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요 16:22; 고후 6:10 참조).2. 그 웃음 다음에 오는 것은 더욱 비참한 것이다.
"즐거움의 끝에도 근심이 있느니라." 솔 밑에서 따닥거리면서 타논 가시나무와도 같이 즐거움은 곧 끝이 난다. 만약 양심이 눈을 뜨고 있다면 모든 죄스럽고 속된 즐거움은 씁쓸하게 반성될 것이고, 양심이 잠자고 있다면 "이 모든 일에 대해" "죄인을 하나님께서 심판에 회부"하실 때에는 근심이 훨씬 더 크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성도의 근심은 영원한 기쁨으로 끝이 나지만(시 126:5) 미련한 자의 웃음은 끝없는 울음과 통곡으로 끝날 것이다.
죄인과 의인에 대한 보응(잠언 14:14)
1. 죄인의 불행은 저희 죄에 대한 영원한 범람이 될 것이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고생을 두려워하고, 이익이나 쾌락을 바라 하나님과 자기 의무를 저버리는 자로서 "자기의 행위로 만족하게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런 일을 지겹도록 주실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수용과 정욕을 버리지 아니하고 고수할 것이어서, 그것은 저희의 영원한 공포와 고통이 될 것이다. "더러운 자는 여전히 더러울 것이다." "아들아, 기억하라"는 말이 "그들 자신의 행위로 그들을 만족하게" 하겠고 그들의 죄를 그들 앞에 진열시킬 것이다. 배교(背敎)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는 불신앙의 악한 마음이다. 모든 죄인 중에서도 특히 배교자는 "자기의 형편"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 가장 많은 두려움을 가지게 될 것이다(눅 11:26)2. 성도의 행복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에 대한 증거와 조건으로서 은혜 중에 영원히 만족될 것이다. "선한 사람도 자기 행위로,"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신 것으로 풍성히 "만족하리라." 그는 "기뻐할 것이 자기에게만 있다"(갈 6:4). 죄인들은 지옥에 이를 때까지 죄를 지어도 결코 충분히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같이, 성도 역시 천국에 이르기까지 은혜를 족하게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신중한 행동의 이로움(잠언 14:15)
1. 남을 쉽사리 믿고 뜬 소문에 유의하며, 극히 가능성이 희박한 온갖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세평이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신뢰하고, 우호적으로 대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의지하며,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신용해 버리는 일은 미련하다. 이처럼 "온갖 말을 믿는 자"는 실로 "어리석은"자이다. 이런 자는 하나님과 비교하면 어떤 면에서 거짓말쟁이가 아닌 자는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가 없는 분이시므로 우리는 그의 모든 말씀을 분명한 신앙으로 믿어야 하는 것이다.2. 신중한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슬기로운 자는 신뢰하기 전에 시험해 볼 것이며 증거의 확실성과 증언의 가능성을 달아보고나서 그 일이 나타나는 대로 판단을 하거나, 아니면 분명히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보류할 것이다. "범사를 시험해 보고," "영을 다 믿지 말라"(요일 4:1)
두려움과 방자함(잠언 14:16)
1. 경건한 두려움은 모든 거룩한 일을 훌륭히 수호해 주며 거룩하지 못한 모든 것에서 지켜 준다. "악에서," 악의 재앙으로부터 떠나며, 따라서 모든 죄에서 떠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것, 즉 경건한 질투로써 자신에게 대해 질투하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경외심을 품으며 죄의 구역에 접근하거나 죄의 시초에 닿게 되기라도 할까봐 두려워하는 것도 지혜이다. 지혜로운 자는 해(害)를 두려워하여 해로운 길에서 스스로 멀리하며, 자기가 시험에 드는 것을 자각할 때는 깜짝 놀라 돌이킨다.2. 주제넘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기 위험에 대해 경고를 받을 때, "방자하여 스스로 믿고" 저돌적으로 계속 밀고 나가며, 제지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무시하며, 자기의 반역을 고집하고, 대담하게도 범죄를 야기시키며 위태한 곡예를 부리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그는 자기 이성과 이익에 반대되게 행동하는 미련한 자이며 급속한 파멸이 그의 어리석음을 증명해 줄 것이다.
분노와 악한 계교(잠언 14:17)
1. 객기를 부리는 자는 조소를 당해 마땅하다. 성질이 꼬여서 불칼같고 조금만 자극되어도 무슨 일에나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느니라." 그들은 우스꽝스런 말과 행동을 하여 자신을 천대의 표적으로 드러내놓는다. 그러나 열기가 가시면 성냈던 일을 그들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유의할 때, 특히 지혜와 명예로 정평이 난 자들이라면 자신의 격정을 극히 조심하여 제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2. 악의를 품은 사람들은 경원되고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한층 위험하고 유해로운 인간들인 것이다.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자기가 복수당할 기회가 돌아올 때까지 그 분노를 눌러 끄고 있으며, 가인이 아벨을 죽일 때 그랬던 것처럼 어떻게 하면 자기 이웃을 해하며 골려 줄 수 있을까 하고 은밀히 음모를 꾸민다. 이런 사람은 온 인류에게 증오를 받는다. 성내는 사람의 특성은 그래도 동정할 만하다. 급히 밀어닥치는 시험으로 말미암아 그는 안정을 잃고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하지만 그의 분노는 곧 가라앉으며, 그는 그것을 후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한과 복수심에 불타는 자기 특성은 보기에 역겹다. 그런 자는 막을 담도 없으며 치료책도 없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지식(잠언 14:18)
1. 죄는 죄인의 수치이다. 어리석음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자는" 그 어리석음으로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느니라." 그들은 "기업에 의해" 그 어리석음을 받는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 타락된 본성은 우리의 첫 조상으로부터 유래하였는데 우리는 이에 부수하는 모든 재난을 현품으로 상속받는 셈이다. 그것은 아담과 해와가 타락한 인류에게 전해 준 상속물이었고 유전병이었다. 인간은 상속받은 자가 유산을 꼭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 만큼이나 이 타락한 본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이 귀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실제로는 어리석은 것이다. 저희 어리석음의 결과는 미련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들은 자신의 미련한 선택에 대하여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이다.2. 지혜는 지혜로운 자를 존귀하게 한다.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으며" 지식을 가장 찬란한 장식물로 간주하는데, 그들이 그것만치 탐내는 것은 달리 없는 것이다. 그들은 지식을 면류관으로서 자기들의 머리에 매며 그것을 절대로 벗어 놓지 않으려 할 것이다. 지식의 정상과 완전함을 향해 강행군하며 그것은 그들의 시작과 발전을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에 대한 칭송도 받을 것이다. 즉 지혜로운 머리는 마치 면류관을 쓴 머리와도 같이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들은 "지식에다 면류관을 씌운다"(그렇게 읽는 자도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종교에게 명예를 입힌다.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들로부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광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악인의 비참함(잠언 14:19)
1. 악한 자는 때때로 가난하게 되고 비천하게 된다. 그들은 악함 때문에 곤경에 떨어지게 되어 구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반면 선한 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부유하게 되고 구제할 능력이 생기며 심지어 악인에게도 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생명을 허용하시는 이상 생계도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2.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악인에게조차 자기 백성의 훌륭함을 인정하도록 강요하신다. 악인은 언제나 "선인 앞에 엎드려야" 마땅하다. 때로 악인이 선인에게 복종하게 되고 "하나님이 선인을 사랑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계 3:9). 따라서 악인은 선인의 은총(에 7:7)과 기도를 희구하는 것이다(왕하 3:12).
3. 정직한 자가 다스리게 되는 날이 오고 있다(시 49:14). 그날에는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와서 기름을 구걸할 것이고 의인이 들어간 주님의 문 앞에서 두드릴 터이나, 그것은 허사일 것이다.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잠언 14:20)
이 말씀은 세상의 당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상례가 어떠한지를 보여 주는데, 그것은 곧 빈한 자가 기피되고 부한 자는 애호받는다는 사실이다.
1. 딴 점에서는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라고 하더라도 세상이 이맛살을 찌푸리는 자면 거의 어느 누구도 따뜻한 얼굴로 맞아 주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자"는 긍휼히 여겨 주고 격려하며 구제해 주어야 당연한데, 오히려 그는 "자기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고" 이상한 시선을 받으며 소외된다. 그가 수치를 당하게 되기 전에는 이웃도 그와 흉허물 없이 지내며 그에게 친절을 베푸는 척하였는데 이렇게 표변한 것이다. 거개의 사람은 제비 족속의 친구들이어서 겨울이 되면 떠나가 버리고 만다. 따라서 하나님을 우리 친구로 모신다는 것이 좋다. 그는 우리가 가난하게 되더라도 버리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2. 세상이 미소를 보내고 있는 자들에게는 달리 가치있는 자도 아닌데 누구든지 비위를 맞추려든다.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이 친구들은 재물의 친구가 되려는 자들로서 그들에게서 무엇인가 얻어 보려는 바램으로 친구인 척하는 자들이다. 세상에는 이기심이나 이해타산의 조종을 받는 것을 제외하면 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이런 것은 결코 참된 우정이 아니며 지혜로운 자는 그런 것을 존중하거나 신용하지 않는다. 세상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자들은 세상의 좋은 것들을 거의 다 우상화하고 그런 것이 참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은총의 산물이기도 하는 양 그것을 구한다.
멸시와 동정(잠언 14:21)
여기에서는 사람들의 성품과 처지가 어떻게 평가되며 파단되는지 살펴 보자.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그들의 태도로 되어 있다.
1. 불쌍한 이웃을 괄시하는 자들에게는 나쁜 특징이 지적되어 있으며, 그 처지도 그것에 준하게 될 것이다. "자기 이웃"이 세상에서 지위가 낮으며 미천한 신분의 출신에다 조야한 교육을 받은 자로서 초라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하여 그를 "업신여기며," 그를 아는 체하거나 사귀거나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자기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자기의 양지키는 개와 동렬에 두는 자는 "죄인"이며 죄를 범하는 자요, 더 악한 길에 서 있는 자로서, 죄인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한 자는 불행하다.2. 자기 이웃을 측은히 여기는 자들은 그들의 특성에 따라 좋은 형편에 처할 것이라고 본문은 말해 주고 있다.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딱한 이웃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도리를 선뜻 행하며 그로써 그를 존중하는 자이다. 그런 자는 "복이 있느니라." 그는 하나님께 즐거움이 될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그 자신이 후에 생각해 보아도 크게 흡족해 할 일이 될 것이다. 그 일로 인해 가난한 자의 허리가 그들을 복되다고 축복해 줄 것이며, 그 일은 의로운 자의 부활시에 풍부하게 보상될 것이다.
악행과 선행에 대한 도모(잠언 14:22)
1. 악을 행할뿐더러 도모하기도 하는 자들은 매우 비참한 실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릇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 참으로 그들은 잘못가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 점은 안다. 그들은 교묘한 재주와 기발한 꾀로 범죄하고, 딴 사람들보다 한층 지능적으로 술책을 부려 음모를 진행시키면 자기들의 죄가 타인들보다 더 훌륭히 처리하게 될 것이고 결과도 더 나을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떤 기지로도 능가할 수가 없다. 자기 이웃에게 대하여 악을 도모하는 자는 크게 그릇가는 자이므로 틀림 없이 그 일은 자신에게로 돌아오고 자신의 파멸로 끝날 것이다. 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인가!2.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도모하기도 하는 자들은 매우 지혜로와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들이다. 그들에게는 "인자와 진리가 있으리라." 이것은 부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그들은 자기들이 아무 것도 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고백할 것이다) 자비의 상급이며, 단지 인자하시기 때문에, 약속에 따르는 인자이며, 하나님께서 스스로 빚쟁이가 되기를 즐거워하시는 인자와 진리의 상급이다. 아낌없이 줄 것을 도모할 정도로 후하고, 선행할 기회를 찾으며,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자선을 가장 광범위하게 베풀 수 있으며 그 자비를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가장 기쁘게 용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는 자들은 "고명한 일(혹은 "후한 일")에 서리라"(사 32:8).
말과 실천의 차이(잠언 14:23)
1. 말하지 않고 일만 하는 자는 부하게 될 것이다. 머리나 손의 "모든 수고에는 이익이 있느니라." 그런 수고는 이모저모로 유익하게 환산될 것이다. 근면한 사람들은 대체로 번영하며 무엇인가 행하면 무엇인가 얻어지는 게 있는 법이다. "움직이는 손이 한 푼이라도 번다." 그러므로 일을 쉬지 않으며 계속 활동하고 우리 손이 해야 할 일이면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2. 일하지 않고 말만 하는 자는 가난하게 될 것이다. 자기 일을 자랑하기 좋아하고 떠들어대기를 즐기며, 아덴 사람들같이 잡담이나 새로운 일을 말하거나 듣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화제를 통해 향상해 보겠다는 구실로 자기 위치에서 그 날 해야 할 일을 태만히 하는 자들은 가진 것을 낭비하여 자이며,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궁핍을 이룰" 뿐이고 곤궁으로 끝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영혼의 문제에 있어서도 타당한 이치가 된다.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 수고하며 간절한 기도로 애쓰는 자들은 그 일에서 이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신앙이 모두 잡담과 헛소리에서 끝이 나고 기도는 입술의 움직임에 지나지 않게 되면 그들은 영적으로 가난하여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재물(잠언 14:24)
1. 만일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이 재물까지 있으면 그들은 그로인해 더욱 존귀하게 되고 유능하게 된다.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니라." 재물로 인하여 그들은 더욱 많은 존경을 받게 되고 더 많은 권위를 지니게 되며 타인들에게 대한 영향력도 더욱 커지게 된다. 큰 재산과 아울러 그 재물을 사용할 수 있는 지혜도 같이 소유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세상에서 선을 행할 수 있는 큰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다. "지혜"는 "유업"이 없어도 아름다우나 그것이 있으면 더욱 훌륭하게 된다.2. 악하고 부패한 자에게는 그들의 재산이 그들을 더욱 노출시켜 줄 뿐이다. "미련한 자의 소유는" 어떤 상황에 둔다고 해도 "미련한 것이어서," 미련함이 스스로 드러나 그들에게 수치를 안겨 줄 것이다. 그들에게 재물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으로 악행을 하고 자기들의 미련한 행위 속에서 한층 강퍅케 될 것이다.
진실한 증인과 거짓 증언(잠언 14:25)
1. 진실한 증인에게는 매우 많은 칭찬이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는 결백한 허위로 무고당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 못지 않게 소중한 그들의 아름다운 이름까지도 구해준다. 성실한 자는 허위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은 자들을 구조하여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극히 큰 자의 노여움조차 불사하려 들 것이다. 죄에 대항하여 하나님을 참되이 증거하는 신실한 목사는 이로써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생명을 구원하는 데 이바지한다.2. 거짓된 증인은 손톱만치도 존중을 받지 못한다. 그는 "거짓말"을 날조하면서도 무죄한 자들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극히 자신만만하게 그 거짓말을 내뱉는다. 그러므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위증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거짓말까지도 색출하여 엄단하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 된다. 즉 진실은 국가 단결의 집합체가 되는 것이다.
여호와에 대한 경외(잠언 14:26,27)
이 두 성귀는 경건한 신앙 생활에 수반되는 이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한 경외 속에서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격려해 준다. "여호와께 대한 경외"는 여기에서 은혜로운 실례를 산출하는 모든 은혜로운 원리로서 표현되고 있다.
1. 이 원리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거룩한 안보와 마음의 평정이 생겨난다. 그 원리 안에는 "견고한 의뢰"가 있다. 무슨 사례가 발생하든지 간에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여전히 자기 순수성과 화평을 능히 고수할 수 있도록 해 주며, 하나님과 세상에 대해 담대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내가 의롭게 여김을 받을 줄로 아노니 이런일들로 요동하지 않노라." 하는 것이 바로 이 견고한 의뢰의 상용어가 되는 것이다.2. 이 원리는 후손에게 축복을 상속해 준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자기 의로자로 삼는 이들의 자녀는, 하나님이 믿는 자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이요 그 자녀에게는 도피할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 때문에 용기를 얻게 될 것이며, 또 하나님 안에서 피난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독실한 부모의 자녀들은 때때로 부모의 훈계와 모범보다 더 나은 훌륭한 행동을 나타내며 저희 믿음과 기도로 하여 더욱 행복하게 된다. "우리 아비가 당신을 신뢰하였사오매 우리도 그렇게 하겠나이다."
3. 이 원리는 넘쳐 흐르고, 항상 흐르는 위로와 기쁨의 셈이다. 그것은 "생명의 샘"이어서 영혼에게 항구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가져다 주며 순수하고 신선한 기쁨을 공급해 준다. 그리고 그 기쁨은 영혼에게 생명이 되며 갈증을 해소시켜 주고 다시는 메마르지도 않는다. 그것은 "생수의 샘"이어서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며 또 영생의 증거가 된다.
4. 그것은 죄와 유혹에 대해서는 둘도 없는 특효약이 된다. 신실하고도 경건하게 하나님을 따라 사는 생활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맛본 자들은 죄의 미끼에 혹하여 낚시 바늘을 삼키는 법이 없다. 그들은 "자! 줄테니 따라오라"고 큰 소리치는 것이 있어도 그것보다 더 나은 것을 획득할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 따라서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며" 자기 발이 그 그물에 붙잡히지 않도록 지키기가 용이하다.
왕의 영광과 패망(잠언 14:28)
여기에는 두 가지의 정치적 금언이 나오는데 그 금언은 그 자체의 논증을 동반하고 있다.
1. 백성이 많은 나라를 소유한다는 것은 임금의 커다란 명예가 된다. 그것은 그 임금이 잘 다스린다고 하는 것과 그의 시민이 안락하게 산다는 것을 표시해 준다. 타국인들조차 그의 보호 아래 와서 정착하도록 이끌려질 정도이다. 그것은 또 그와 그의 나라가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축복은 다산적이고 번식시키는 효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그의 힘을 나타내며 그를 무시할 수 없는 자로, 두려운 자로 만들어 준다. "화살을 그 전통에 가득히" 가지는 임금, 곧 그 나라의 아비는 복되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시 127:4, 5). 이와 같이 온화하고 절도 있게 다스리며, 교역과 농업을 장려하고, 자기 치하에 있는 모든 자를 편안히 해줌으로써 국민의 증가를 촉진시키는 통치자는 지혜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나라와 그의 영예가 일취월장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여 그의 교회에 많은 것을 추가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2. 백성이 줄면 그 통치자는 약화된다.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교역이 침체되고 경작되지 못하는 땅이 생기며 군대는 보충할 신병이 딸리고 전함에는 승선할 인원이 부족하게 되는 모든 현상은 인구가 충분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된다. 이와 같이 통치자의 존영과 안전은 자기 국민에게 많이 달려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 왜 통치자가 사랑으로 다스려야 하고 가혹하게 통치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무엘 하 24장 13절에서 보듯 군주는 인구를 감소시키는 심판을 통하여 징계를 당한다.
격정의 억제(잠언 14:29)
1. 겸손은 지혜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자기 자신과 그 의무와 그의 이익이 무엇인지, 인간성의 약점과 인간 사회의 제도가 무엇인지를 올바르게 깨닫는 자이다. 그는 자신의 잘못 뿐만 아니라 타인의 허물도 용서해 줄줄 알고, 자기 분노를 지체시키고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자로서 어떤 자극에 의해서도 자신의 영혼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다. 온화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은 참으로 이지적인 자로서 지혜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라고 간주할 수 있다.2. 주체하지 못하고 격정을 발하는 것은 어리석음을 광고하는 것이 된다.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조금만 자극되어도 마음이 가랑잎 타듯 하고, 소위 그 성정이 온통 불과 화약덩어리 같은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위엄이 나타나고 자기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줄로 생각하나, 실제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높이 쳐들면 누구에게나 잘 보이듯 그는 자신의 우매를 알리며, 높아진 자의 통치에 자신을 내어 주는 셈이된다(본문의 "나타낸다"의 단어는 "높인다"의미이다:역주)
마음의 화평과 시기(잠언 14:30)
이 앞의 구절은 우리의 신망이, 그리고 이 구절은 우리의 건강이 격정을 잘 조절하고 성미를 잘 다루는 데에 따라 얼마나 많이 좌우되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 간곡하고 우호적이며 명랑한 기질, 그리고 사랑과 온유함으로 구성된 치료의 심령은 "육신의 생명"이다. 그러한 마음은 신체가 좋은 상태를 갖도록 한다. 마음이 너그럽고 활달한 사람은 살이찌기 마련이다.2. 마음이 초조하고 샘이 많으며 불만투성이인 자는 그런 마음자체가 형벌이 된다. 그런 마음은 육신을 초췌하게 만들고 동물적인 심령을 파먹고 살며 용모를 창백하게 만들기에 "뼈의 썩음"이라고 할 수 있다. 딴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자들은 "이를 갈면서 소멸해야"할 것이다(시 112:10)
Rumpatur, quisquis rumpitur invidia.-즉 시기심이 폭발하는 자는 그 자신을 폭발할지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학대와 동정(잠언 14:31)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자들에게 가해지는 대우를 보시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관심을 가지시고 계시다는 것을 본문이 말해주고 있다.
1.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가해진 피해를 자신에게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신다. 가난한 자에게 몹쓸 짓을 하고 그가 가난한 자이며 도와 줄 이도 없는 자라고 하여 착취하는 자들은 그들 "지으신 이"를 모욕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지으시고 그 존재를 부여하셨으며, 그와 같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도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다 한 아버지, 한 조물주를 모시고 있다. 욥이 이 점을 얼마나 유의했는가를 살펴 보라(욥 31:15). 하나님께서는 빈자를 가난하게 지으시고 그의 분깃을 그렇게 정해 주셨다. 따라서 누구에게든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대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비난을 돌리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들이 짓밟힐 수 있도록 낮고 천하게 만드심으로써 그들에게 가혹한 대접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2. 하나님께서는 불쌍한 자에게 주어지는 온정을 보시면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로 받아들이신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 대우를 받으신 것으로 여기시고 따라서 그들에게 자신의 흡족하심을 표명하실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도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대한 경의를 품은 자들은 그것을 빈자에게 대한 동정심으로 표현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특별하신 방법을 사용하셔서 불쌍한 이들을 보호하시고 후원하신다.
악인과 의인의 종말(잠언 14:32)
1. 이 세상에서 나갈 때 악인이 처하게 되는 절망적 상황. "악인은 그 환난에 엎드러지느니라." 그는 세상에 너무나 집착심이 강하여 세상을 떠나갈 마음이 추호도 없지만 거기서 ?겨나게 된다. 그의 영혼이 그에게서 나오도록 요구되며 강요된다. 또한 죄는 그에게 너무나 굳게 밀착되어 있어서 그와 분리가 불가능하다. 죄는 저 다른 세상에까지 그와 더불어 간다. 그는 "자기 환난에 엎드러지고" 자기 죄 가운데서, 범죄와 죄의 권세 아래서 죽으며, 불의한 자로 여겨지고 성별되지 못한다. 그의 악함은 바람 앞의 겨와 같이 그를 빨리 날려 버리고 이 세상으로부터 축출해 버리는 폭풍이다.2. 경건한 자가 자기의 길을 끝마칠 때 누릴 안락한 상황. "의인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그에게는 죽음 저편에도 행복이 있고, 이 세상에서 평생 누렸던 것보다 더 훌륭한 것들이 저 세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때에는 "의인"이 그 속에서 소망의 은혜를 얻게 된다. 비록 고통이 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다소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는 소망이 있다. 그들은 소망하는 선한 것들을 목전에 가지고 있으며, 거짓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소망의 축복을 자기들 앞에 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에 대한 겸손 (잠언 14:33)
1. 겸손은 지혜의 표지이다. 진정으로 현명한 자는 자기 보물을 자랑하지 않도록 그것을 감춘다(마 13:44). 그는 비록 자기가 받은 재능을 묻어두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팔고 사지는 아니한다. 그의 "지혜는 그 마음에 머무느니라.: 그는 자기가 있는 것을 소화하여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준비해 두기는 하나 그것을 가지고 불필요하게 말하거나 떠들어대는 법이라곤 없다. 마음은 애정의 온상이며 지혜는 그곳에서 마음의 실천적 사랑 속에 안주해야 하며 머리속에서 헤엄치고 있어서는 안된다.2. 겉으로 나타내고 허세부리는 것은 어리석음의 표시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수박 겉핥기식의 지식나부랭이라도 조금 가지게 되면 매우 걸맞지 않은 경우에조차 그 지식을 과시하려 하며, 그 지식을 머리와 어깨로 실현하려 한다. "미련한 자의 속에 있는" 우매는 그들의 입빠른 말로 "나타나느니라." 미련한 자는 지혜로운 자가 자기 지혜를 나타내는 게 가치있는 일인가의 여부를 생각하느라고 고심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자기 어리석음을 나타내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다.
나라를 영화롭게 하는 의(잠언 14:34)
1. 한 나라를 지배하는 정의는 곧 그 나라의 명예가 된다. 정부의 의로운 정치, 사람과 사람간의 공평 무사한 평등, 경건한 신앙에 대한 공적인지지, 미덕의 전반적 실천과 공인, 유덕한 자의 보호와 보존, 타국인에게 대한 동정과 자선("보시"(布施)는 때로 "의로움"이라 칭호해진다) 등등, 이러한 것들은 "나라를 영화롭게 하느니라." 그러한 것들은 권좌를 받들어 주고 국민의 마음을 고양시키면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적합한 국가를 만들어 주며, 그 하나님의 은총은 그들의 "성민"으로서 높은 민족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신 26:19).2. 한 나라를 지배하는 악은 곧 그 나라의 수치가 될 것이다. "죄는" 어떤 성읍이나 나라든지 "욕되게 하며," 그들을 자기 인근 도시나 국가 가운데서 멸시받게 만든다. 흔히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면에 대한 본보기가 되었던 백성이다. 그들이 선했던 때에는 크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저버렸던 때에는 그 주위의 모든 민족들이 그들을 모욕을 하고 유린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악의 억압과 덕의 옹호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 것이 통치자의 권세요 도리이다.
슬기로운 신하와 욕된 신하(잠언 14:35)
본문은 질서가 잘 잡힌 조정이나 정부에서는 공적소임을 맡은 자들의 공적에 따라 웃음과 은총이 돌아간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솔로몬은 다음 규칙을 따라 행하겠노라고 하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1. 슬기롭게 행하는 자들은 그들을 남몰래 해치려고 노력하는 원수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존중될 것이며 총애를 입게 될 것이라는 사실 어떤 사람이든지 봉사를 하기만 하면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아 한 집단을 즐겁게 하거나 그를 좋아하는 이의 마음에 들게 될 것이다.2. 이기적이고 거짓되며 자기 조국을 배반하고 빈자를 압제하며, 불화를 심고 이처럼 "욕을 끼치는" 자들은 어떤 후원자가 그들을 변호해 주더라도 축출당하고 조정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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