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기쁨과 근심(잠언 10:1)
솔로몬은 자녀에게 이르듯 우리에게 말하면서 혈연적인 지배, 피지배의 정치적인, 교회적인 관계에서의 부모의 위안이란 자기 보호하에 있는 자녀의 착한 행실에 매우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주목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은 다음 사실에 대한 이유가 된다.
1. 왜 부모는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 경건한 신앙의 길을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가? 만약 이런 경건한 훈련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그들 자신이 위로를 받을 것이며, 설혹 바라던 효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자기들의 의무를 다하고 노력을 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기들이 괴로울 때에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2. 왜 자녀들은 지혜롭고도 선하게 처신해야 하며 부모의 선한 교육에 맞춰 살아가야 하는가? 이는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슬프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1) 경건하고 사려깊은 청년들에게는 그들이 부모의 모든 보살핌과 수고에 대해 다소나마 보상을 해 주게 되며 위로를 극히 필요로 하는 노후의 약한 날에 부모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위로를 덧보태 준다. 또한 자녀의 지혜와 선행을 기뻐하는 것은 부모의 도리이다. 설령 자식의 지혜나 바른 처신이 자기들의 업적을 가리워 버릴 만큼 혁혁함에 이르게 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2) 그것은 잘못 처신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마땅히 기쁨이 돼 주어야 할 자들에게 근심이 되며 특히 불쌍한 어머니에게 비애가 된다는 사실이 그들의 죄를 더해 준다. 그들의 어머니는 근심으로 그들을 낳았는데 자식이 악하고 흉칙하게 되는 것을 보면 더욱 큰 근심을 느낄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소욕(잠언 10:2,3)
이 양 구절은 같은 취지로 말하고 있으며 후자는 전자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1. 인간이 부당하게 취득한 재물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날려 버리실 것이기 때문에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다.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다(2절). 악인의 재물, 더군다나 악인이 어떤 악한 재주나 착취나 사기로 소유하게 된 재물은 아무리 많은 보화라고 하더라도, 또 보물처럼 쌓아 두고 아무리 안전하게 숨겨 두었다 하더라도 "무익하다." 이익과 손해를 달아서 계산하게 될 때에는 보물이 준 이익도 악이 입힌 손해를 결단코 상쇄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마 16:26). 재물은 영혼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며, 보물로도 참 위로나 행복을 살 수 없다. 그것은 죽을 때나 저 큰 심판의 날에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악인의 소욕을 물리치시기" 때문이다. 그는 그들에게서 부당하게 얻은 물질을 탈취하신다. 그는 재물에 대한 고려를 배겨하시며 빈자보다 부자를 더 중히 여기시지도 않으신다. 우리는 사람의 부정에 의해 끌어 모아진 재물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 흩어지는 것을 흔히 목격한다. 비록 재물이 실체로 여겨진다고는 하나 하나님이 그것은 물리쳐 버리셔서 그것이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리게 된다면 악인의 재물이 어찌 유익을 줄 수 있겠는가?2. 정직하게 얻은 재물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즉 정당한 방법으로 벌고 간직하고 사용하는 재산은 곧 의리이다(의로움은 정직과 자비를 모두 의미한다). 의리의 재물은 재물의 목적에 부합하고 우리를 살아 있게 하며 우리의 방위물이 된다. 그것은 인간들이 자신의 악함으로 자초하게 될 심판에서 구출해 줄 것이다. 의리의 재물은 사망의 일격에서 구출해 주지는 못하나, 죽음의 찌름으로부터, 즉 그 공포로부터 건져내 줄 정도로는 유익할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며"(3절) 따라서 저들에 대한 하나님의 순수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리는(또는 저희 "의로움이") "건져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들의 생명이고 생계이며, 그들을 기근 속에서도 살도록 지켜 줄 것이다. 의인의 영혼은 "젊은 사자가 주리고 궁핍할"때에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인하여 살 것이다.
부지런한 자와 게으른 자(잠언 10:4)
이 말씀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부자이지만 "가난하게 되는"첩경에 선 자는 누구인가? 그는 곧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이다. 그들은 자기 일에 부주의하고 태만하며, 어느 목적을 최상의 것으로 해야 할지 생각해 보지도 않으며, 힘차게 착수하지도 않고 꾸준히 고수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손을 속이며 놀리는 자"이다(이렇게도 해독할 수 있다). 사술(詐術)과 눈가림으로 부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소유에 하나님의 저주를 초래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신망도 잃게 되어 가난해질 것이다. 손이 재빠르게 속임수를 행하는 자들과는 아무도 거래하려 들지 않을 것이며, 정직한 자들만이 거래의 대상으로 기대되어질 것이다.2. 가난하면서도 부자가 되는 첩경에 선 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근면하고 정직하며 자기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요, 자기 손이 찾아낸 일이면 당당하고 명예로운 방법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행하는 자이다. 그런 자들은 십중 팔구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증가시킨다. 어떤 이는 "손을 빨리 놀리는 자"라고 해석하는데 이 말은 민첩한 자를 말하는 것이지 협잡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또 어떤 이는 "손을 활발히 놀리는 자"라고 해석하는데 쏘다니는 손이 한 푼이라도 더 버는 법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세상사뿐만 아니라 영혼의 일에도 타당한 이치이다. 게으르고 사특한 자는 영적 빈궁에 이르게 되나 "열심을 품고 여호와를 섬기는 자(롬 12:11)"는 "믿음으로 부요하게"되며 "선한 행실로 부자"가 된다.
지혜로운 아들(잠언 10:5)
1. 여기에는 자기 기회를 활용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칭찬이 나온다.그들은 거둬 드리는 수고를 하여 영육간에 자기 소유를 늘리며, 준비할 수 있는 동안에 나중에 위해 대비하고, 수확기인 "여름에 거둔 자"이다.
이와 같이 행하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며, 그것은 그의 명예가 된다. 그는 부모를 위해서도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가 있을 때면 자기 부모를 봉양하여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가문과 자기가 받은 교육에까지 이름을 날리게 한다.
2. 반면에 이런 기회를 쓸데없이 낭비해 버리는 자들에게 대한 당연한 비난과 책망이 나온다.그는 "자는 자"이며 편안을 사랑하고 자기 시간을 무료히 보내며 자기 일에 태만하고, 더구나 "추수 때에 자는 자"이다. 즉 겨울을 위해 저장해야 할 때에 자기 안일을 꾀하고, 자기가 나중에 필요로 하게 될 것을 준비해야 할 철에 그 공급의 시기를 놓쳐 버리는 자이다. 이와 같은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다. 그는 어리석은 아들이기에 그렇다. 그는 겨울이 올 때까지 자신을 위해 치욕을 예비하는 자이며 자기의 모든 친구들에게도 수치를 입히는 자이다.
이와 같이 자기 청년의 때에 지혜와 지식을 얻는 자는 "여름에 거두는 자"이며 이는 자기의 근면에 대한 위로와 신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청년의 날에 빈둥거리며 보내는 자는 늙어서 자기의 나태에 대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의인의 복(잠언 10:6)
1. "의인의 머리"에는 "축복"의 면류관이 씌워진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모두의 축복을 의미한다. 다양하고 풍부한 복이 위로부터 내려와 선량한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진실된 축복이다. 그것은 칭송되어질 뿐만 아니라 잘 대해질 것이다. 그들의 머리 위에 임하는 축복은 아름답게 장식해 주고 위엄있게 해 주는 화관과 같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해 주는 투구와도같을 것이다.2.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그들의 입은 자기들이 행한 독함 때문에 치욕으로 막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변명할 만한 말 한 마디도 갖지 못할 것이다(욥 5:16). 그들의 독한 행실이 자기들의 머리에 돌아오며 이(齒)로 갚아질 때, 그들에게 행해질 독함으로써 그들의 숨길이 막힐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이름(잠언 10:7)
의인도 악인도 그들의 날이 다 채워지면 모두 죽어야 한다. 무덤에 누운 그들의 시체에서는 어떤 차이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이 양자의 영혼 사이에 굉장한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그들보다 오래 살아 남는 그들에 대한 기억에도 큰 차이가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할 것이다.
Ⅰ. 선한 사람들은 죽고 나서도 사람들이 좋게 말해 주며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것은 비록 머리가 눕혀진 뒤에라도 "의인의 머리에 임하는" 복 중 하나이다. 복된 사람들은 자기들 뒤에 복된 기억을 남기는 것이다.
1. 죽은 뒤에도 존경으로 추모된다는 것은 성도들, 특히 덕행으로 빼어나고 뛰어나게 유능한 성도가 누릴 존엄 가운데 한 부분이 된다. 그들의 꽃다운 이름은 선한 일로 인해 선한 자들이 추앙하는 바가 될 것이며, 특히 그렇게 될 때에는 "보배로운 기름"과 같은 것이 된다(전 7:1).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시 112:3, 6, 9). 선진들은 믿음으로 "아름다운 소문(혹은 증거)를 얻었고"(히 11:2), 죽었으면서도 아직까지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2. 그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할 본분 중의 일부이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복되게 하라"고 유대인들은 해석하며, 그들은 그것을 계율로서 준수하고 저명하게 의롭던 고인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꼭 "그의 기념은 복될지어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우리는 가고 없는 사람일지라도 그 선한 자들을 명예롭게 말하는 것을 기뻐해야 하고, 그들에 대해 하나님을 송축하고 그들에게 나타난 은사와 은혜를 송축하며, 특히 "선한 그 점에서" 그를 본받도록 해야 한다.
Ⅱ. 악인은 현재나 미래 할 것 없이 망각될 것이며 사람들의 입에 천대 꾸러기로 오르내릴 것이다. 그들의 시체가 무덤에서 썩고 있는 동안 그들의 "이름" 역시 "썩을" 것이다. 악인의 이름은 전혀 보존되지 못하고 망각 속에 매장되거나(그들에 대해 얘기해 본들 좋은 말은 하나도 나오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은 전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그들의 이름은 몸서리쳐지는 것이어서 말할 때에는 혐오감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명예의 규칙인 De mortuis nil nisi bonum-즉 사자(死者)에게 불리한 말은 절대로 하지 말라 라는 말도 그들에게만은 예외가 될 것이다. 악행으로 추명을 날리던 사람에게 대해 말하지 않을 수가 없을 때에는 혐오감을 품고서 입에 올려야 하는 것이다.
지혜자와 우매자(잠언 10:8)
1.여기에는 순종하는 자의 명예와 행복이 나온다. "그들은 명령을 받으리라" 그들은 이것을 하나의 특권으로서 받게 될 것이며 실제로 그들에게는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이 편하게 해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을 위해 심사숙고하며 선택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그들은 자기 의무를 말해주고 그것에 관해 충고를 해 주는 은총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지혜이다. 순종하는 자들은 "마음이 지혜로운 자"이며 이처럼 굽히고 구부리는 자는 서게 될 것이고 요동함이 없이 든든해질 것이며 훈계를 받아 형통하게 될 것이다.2. 반대로 불순종하는 자의 치욕과 파멸이 나온다. 그들은 제어 당하기를 원치 않으며, 어떤 멍에도 견디어 내지 않으려 하고 어떤 가르침이나 충고도 받으려고 하지 않는 자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그 자신을 거스리며 자신의 이익에 상반하는 행동을 하는 우매한 자들이다. 그들은 보통 "입이 미련한 자들"이며 입술이 우매한 자여서 많은 말로 가득하나 헛소리뿐이고, 자신의 자랑만 늘어 놓는가 하면, 자기들을 충고하는 자들에게는 악의에 찬 말을 퍼붓고(요삼 10절), 딴 사람들한테는 잔소리와 훈계를 하겠다고 나선다. 모든 어리석은 자들 중 입이 미련한 자보다 더 말썽 많은 자는 없으며, 또한 그들보다 자신을 더 많이 드러내는 자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폐망할" 것이니, 즉 죄악에 떨어지며 지옥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 이유는 저희가 명령을 받지 않은 때문이다. 입에 말이 가득한 자는 자기 밑을 잘 보지 않으므로 비틀거리고 실족하게 되는 법이다.
바른 길과 굽은 길(잠언 10:9)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듣게 되며, 우리는 그것에 의존할 수 있다.
1. 인간의 순전함은 자신의 안전 보장이 되리라는 것. 하나님과 인간을 향해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즉 의롭게 행하고, 이양자에게 충실하며 마땅히 해야 하는 대로 계획하고 표리가 부동하지 않는 자는 "그 걸음이 평온하고 확실하다." 그는 하나님의 기호 아래 안전하며 거룩한 안보 가운데에서 편안하다. 그는 사탄의 유혹과 세상 풍파와 세인의 비난에 대해서 잘 무장하고, 겸손하면서도 담대하게 자기 길을 계속해 간다. 그는 자기가 어떤 기초 위에 서 있으며 어떤 안내자를 따라가고 있고 어떤 호위자에게 둘러 쌓여 있으며 어떤 영광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안다. 그러므로 그는 확신과 "큰 평안으"로써 나아 가고 있다(사 32:17; 33:15, 16).혹자는 이것을 온갖 모험적인 걸음을 반대하고 "평안한 걸음"(혹은 "확실한")만 걷는다면 외로운 자의 특성 중 일부로 이해하기도 한다. 정직한 자는 양심상 그 합법성에 대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감히 행하려 들지 않으며 만사에 있어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명백하게 보고 있을 것이다.
2. 인간의 부정적인 자신의 치욕이 될 것이라는 점.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옳지 않은 길로 비껴나서 하나님과 인간을 모른 척하며 이쪽 길을 바라보다가 저쪽 길로 나아가는 자는, 설사 한 때에는 자신을 위장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기어이 그 본색이 무엇이며 정체가 무엇인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속인다고 하는 것조차 천에 하나될까 말까 한 일이지만 이제나 저제나 그는 자신의 직면목을 자기도 모르는 새 드러내고 말 것이다. 적어도 하나님께서 저 큰 날에는 그를 드러내실 것이다.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타인을 경고하기 위한 document erit-즉 귀감으로 될 것이다(이렇게 해석하는 자도 있다).
미련한 자의 해(잠언 10:10)
여기에는 다음 두 가지 부류의 인간에게는 화가 미친다는 말씀이 나오고 있다.
1. 계략에 차 있고 음모를 꾸미며 자신을 가장하고 있는 죄인.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친다. 그는 내게 가해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으면서도 전혀 너를 눈여겨 보고 있지 않기라도 하는 듯이 꾸미고 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자기 공범자에게 악한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 도우러 들어와야 할 때를 가리키는 신호인 것이다. 악한 계획은 전부가 속임수나 술책으로 행해진다. 이렇게 "눈짓하는 자"는 타인에게나 자신에나 다 "근심(슬픔)을 끼친다." 교묘하다고 해서 그들의 불의가 면죄받지는 못 할 것이다. 죄인은 회개하거나 더욱 악을 행하거나 해야 할 것이고 그 악행에 대해 후회하든지 아니면 그로 인해 멸망을 당하든지 해야 할 것이다.2. 공개적이고 미련하며 자기를 드러내는 죄인. "입이 미련한 자는" 그 죄가 심판에 이르게 되며, 앞에서도 말했듯이 "패망하리라"(8절). 그러나 이 경우는 양자 중에서 덜 위험하며 비록 자신은 멸망시키지만 "눈짓하는 자"만큼 타인에게 근심을 끼치지는 않는다. 짓는 개라고 하여 늘 무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일(잠언 10:11)
1. 선한 사람은 자기의 선함을 전달함으로써 선을 행하기에 얼마나 열심인지 살펴 보자. 마음의 출구가 되는 "그의 입은 생명의 샘이다." 그의 입은 끊임없이 흐르는 샘이어서 땅을 적시며 비옥하게 하는 시냇물처럼 타인을 교화시키기 위한 선한 담화가 계속 나오며, 피곤한 나그네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는 냇물처럼 남을 위로하기 위해 아름다운 말을 계속 내보낸다. 그것은 "생명의 샘"과 같아서 순수하고 깨끗하여 그 안에는 독이 없고 어떤 타락된 의사의 전달로도 혼탁해 있지 않다.2. 악인은 자기의 악함을 은폐시키면서 악으로써 악을 행하기에 얼마나 열심인지 살펴 보자. "악인의 입은 독이 가리워 있으며" 우호적인 고백으로써 흉칙한 모의를 위장시키고 있다. 이것은 요압이 입을 맞추면서 살인을 하고 가룟 유다가 입맞추면서 배신을 자행한 것처럼 좀 더 확실하고 효과적으로 악한 계교를 수행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것이 악인의 죄이며 형벌은 그 지은 죄대로 따라간다. 즉 "악인의 입은 독이 가리워 있느니라." 그러므로 그가 폭력(독이란 듯도 있음)으로 얻은 것은 폭력으로 빼앗길 것이다(욥 5:4, 5).
미움과 사랑(잠언 10:12)
1. 여기에서는 크게 재앙을 일으키는 것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악의라는 것이다.명백한 분쟁의 조짐이 없는 곳에서도 "미움은" 기회를 노리다가 "다툼을 일으켜서" 악마의 역사를 행한다. 이웃의 귀를 모아 놓고 고자질과 나쁜 추측과 허위 진술로써 파묻혀 있던 불화의 불꽃을 폭발시켜 불사르게 하는 데에 즐거움을 느끼는 자들은 가장 악의 깊고 나쁜 성미의 인간들이다. 그들은 분쟁의 불을 당겨놓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쾌감을 느끼며 그 불에 손을 쬐는 것이다.
2. 또 여기에는 큰 화해자가 나오는데, 그것은 "사랑"이며 사랑은 "모든 허물(혹은 죄)을 가리운다." 즉 사랑은 불협화음을 유발시키는 관계 간의 잘못을 덮어 준다. 잘못을 고발하고 선언하고 악화시키는 대신 사랑은 할 수 있는 데까지 그 허물을 감추어 주고 경감시켜 준다. 사랑은 우리가 실수와 무분별로 인해 저지르는 허물을 감싸 줄 것이다. 우리가 거기에는 달리 나쁜 뜻이 없고 그것은 불찰로 인한 것에 불과하였다고 말할 수 있으며 여전히 우리가 친구를 사랑할 때, 사랑은 그 허물을 가리워 준다. 또 사랑은 남이 우리에게 입힌 허물도 간과해 버리며 가리워 주고 최고의 선의로 해석해 준다. 이 사랑의 수단에 의해서 분쟁은 예방되며, 설사 다툼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화평이 급속히 회복되고 되찾아진다. 사도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이르고 있다(벧전 4:8)
명철한 자의 지혜(잠언 10:13)
1. 지혜와 은혜는 선한 사람이 지니는 명예이다. "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다." 좋은 명철은 계명을 행하는 자들이 소유하며 그의 입술에서는 지혜가 발견된다. 지혜가 발견되는 장소는 그들의 입술이므로 결과적으로 그 안에는 지혜의 훌륭한 창고가 있고 타인의 혜택을 위해 지혜가 거기서 흘러나온다. 지혜를 소유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명예가 되지만 딴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어 주는 데에 이바지한다는 것은 더 더욱 존귀한 것이 될 것이다.2. 우매와 죄는 악인이 받는 치욕이다. "지혜없는 자(또는 마음이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그는 자기 양심의 채찍에 자신을 알몸둥이로 노출시키며 구설의 앙화와 사직 당국의 견책과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에 자신을 드러내놓는 자이다. 어리석게도 악한 길로 일부러 나아가는 자들은 자신을 위해 몽둥이를 예비하는 자가 되며, 그 매의 흔적은 그들에게 영원한 수치가 될 것이다.
지혜로운자의 지식(잠언 10:14)
1. 자신을 보존하게 해 주는 유용한 지식을 쌓는 것이 곧 지혜자의 지혜이다. "그들의 입술에 지혜가 있는"(13절) 까닭은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비축되어 있기 때문이며, 그들은 훌륭한 집 주인같이 이 지혜의 보고에서 새 것과 헌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우리에게 쓸모있는 지식이면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그것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니 이는 우리가 언제 그것을 필요로 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한 끊임없이 지식을 간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필요로 할 때 새삼 찾지 않도록 그 지식을 안전하게 간직해 둘 것을 명심하도록 하자.2. 자기 심중에 화를 저장해 두는 것은 우매자의 어리석음이다. 그 화는 그들이 하는 모든 말에서 즉시 그들에게 달려오며, 자타를 막론하고 공포와 멸망을 안겨다 준다. 그들은 "잡아먹는 말을 좋아하며"(시 52:4), 이런 말이 맨 먼저 나온다. 즉시 쏠 수 있는 "독한 말의 뾰족한 화살"을 언제나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입은 멸망에 가깝다."
부자와 빈자의 재물(잠언 10:15)
이 말씀은 다음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우리가 우리 사업으로 부지런해야 할 이유로서. 부지런함으로써 우리는 가난에 따르는 침체와 의기소침과 불편함을 피할 수 있으며 이 세상에서 넉넉한 자들이 갖는 혜택과 위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로 수고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가족을 편안하게 만드는 비결이다.2. 혹은 오히려 부자나 빈자가 자기의 외적 상태에 대해 저지르는 공통적 실수를 묘사하는 것으로서.
(1) 돈 있는 부유층 인사들은 자기들이 부자이기 때문에 행복한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이다. "부자의 재물"은 제딴에는 "그의 견고한 성"이라고 하난 그것은 너무나 췌약하여 부자를 최악의 재앙에서 보호해 주기에는 전혀 불충분한 것이다. 그 재물은 부자들이 상상하는 만큼 안전하지 못하다고 하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위험에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2)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는 생각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가난하다는 사실은 그의 의기를 침체하게 하고 그의 모든 위안을 망쳐 버린다. 그러나 먹고 살 것이 조금 뿐이지만 족하게 여기고 양심을 지키며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은 매우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의인의 수고(잠언 10:16)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가 말했던 것(시 37:16)을 여기서 재확인하고 있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
1. 아마 의인은 자기가 열심히 일하는 것 이상의 소득은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단지 "자기 손이 수고한" 것만 먹을 따름이지만 그 "수고는 생명에 이른다." 그는 정직한 생계 유지만 목표로 삼고 부유해지거나 크게 되는 것에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 그는 단지 즐거이 살며 자기 가족을 부양하는 것으로 족하게 여긴다. 이 같은 생활 태도는 그를 생명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그로 하여금 타인들에게도 선을 행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는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도록 하기 위해"수고를 한다(엡 4:28). 그의 모든 사업은 저런 선한 목적에 전용된다. 이것은 그의 신앙적인 수고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그는 영생으로 이르게 하는 일을 위해 극히 많은 수고를 한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거두기"위해 성령을 위하여 씨를 뿌린다.2. 아마도 악인의 재물은 그가 수고하지 않고 쉽사리 입수한 소득일 것이다. 따라서 악인의 소득은 "죄에"이른다. 그는 그 재물을 자기 육욕의 양식과 연료로 삼으며, 자기의 자랑과 사치의 도구로 삼는다. 그는 소득으로써 서늘 행하기는커녕 해를 끼친다. 그 자신 또한 그 재물로 인해 해를 입으며 그 소득 때문에 자기의 악한 길에서 더욱 경화(硬化)되고 강퍅해진다. 이 세상에 있는 물건은 사용되는 데에 따라, 또 그것을 소유하는 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선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악한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생명이 될 수도 있고 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훈계와 징계(잠언 10:17)
여기에서는 다음 사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훈계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켜 간직하는 자는 올바른 자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들은 부주의로 그 훈계를 빠뜨리지 않으며, 그것을 강탈해 갈 자에게 내어 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훈계를" 안전하게 "지키고" 순수하고 완전하게 지키며, 그 훈계를 자기들의 전용물로 간직하여 그것에 따라 자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한다. 또 그들은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그것을 간직하는데 이는 자기들이 남을 가르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행하는 자들은 "생명의 길로 행하는" 자들이다. 그 길에는 참 위로가 있고 그 목적지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2. 훈계를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기들 앞에 제공될 때에 고의로 완고하게 그것을 거절하는 자는 그릇된 자들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무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자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 훈계가 자기들의 과오를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안에 책망이 담긴 훈계를 특히 싫어하며, 그것은 그들의 참으로 잘못된 점이다. 그것은 그들이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선과 악에 대해 그릇된 견해를 품고 있다는 증좌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그릇된 처신을 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자기 길을 잃고도 그 사실에 대한 지적이나 바른 길의 제시를 받으려 하지 않을 수 없으며 끝없이 잘못 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분명 "생명의 길"을 잃게 되는 것이다.
미움과 참소(잠언 10:18)
여기에서는 악의는 미련한 것이요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관찰하자.
1. 그것이 아첨과 은폐로 위장될 때도 그러하다. 탄로난다면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자기 악의를 충족시킬 기회를 놓치게 될까 하여 "거짓의 입술로 자기의 미워함을 감추는 자는" 제딴엔 스스로 모사군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미련한 자이다." 거짓의 입술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악하지만 그것이 악의를 품은 가면으로 돼 버릴 때에는 특유한 악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것이든 숨길 수 있을 줄로 생각하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2. 그것이 원한에 찬 해로운 말로 발설될 때 역시 더 나올 것도 없다. "참소하는 자"는 역시 "미련한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구름에 가리워진 빛이 나타나듯 조만간에 그 의로우심의 광선을 발하실 것이며 누명을 벗겨낼 방편을 찾으실 것이다.
말조심의 지혜(잠언 10:19)
우리가 여기에서 훈계받는 것은 혀의 제어에 대한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인의 필수적 의무이기도 하다.
1. 말을 되도록 적게 하는 것이 유익함은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웁거나," "허물이 그치지 않기"때문이다. 보통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실언을 많이 하게 되며 많은 말 가운데에는 실없는 말이 많이 섞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말이 많은 자는 짤막하게 표현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지껄이는 것을 듣기 좋아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회개해야 할 일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자이다. 왜냐하면 "허물을 면키 어려운"곳에서는 회개가 필요할 것이며, 처음이든 나중이든 그것은 얻어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2. 그러므로 "우리 입을 제갈 물리듯 지키는" 것은 유익하다. "입수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자주 스스로를 억제하며, 자신이 생각한 바를 억압하고 밖으로 발산되려는 것을 자제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그것은 그의 지혜에 대한 증거이며 이 일로 그는 자신의 평안을 도모하고 있다. 되도록 적게 말하는 것이 속한 보상을 받는 것이다(암 5:13; 약 1:19).
의인과 악인(잠언 10:20,21)
우리는 여기에서 사람의 가치판단은 이 세상의 재산이나 입신 양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미덕에 의해서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Ⅰ. 착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위해 유익하다. 선한 자는 비록 세상에서 빈궁하고 비천하며 선을 베풀 권세나 재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할 입을 가지고 있는 한 그것은 그들을 가치있고 유용한 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존귀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그의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오기"(마 12:35) 때문이다.
1. 이것은 그들을 귀한 자로 만들어 준다. "의인의 혀는 천은과 같다." 그들은 진지하며 악한 의도나 궤사의 찌꺼기를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련한 은"에 비유되는데(시 12:6) 이는 그것이 믿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직한 자의 말도 그와 같다. 그들의 말은 무게와 가치가 있으며, 지혜를 가지고 듣는 자들에게는 풍부하게 해 주는 것이 될 것이므로 그것은 "천은"보다 더 나은 것이다.2. 이것은 그들을 유용하게 만들어 준다. "의인의 혀는 여러 사람을 교육하느니라"(혹은 "먹여 준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되어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곧 생명의 덕이며 그 완전한 영혼을 양육시켜 주는 것이다. 경건한 담화는 궁핍하고 굶주린 자에게 영적 양식이 된다.
Ⅱ. 악한 사람은 아무것에서도 유익하지 못하다.
1. 악인으로 말미암아서는 누구도 유익을 얻을 수 없다. "악인의 마음은 가치가 적으니라." 그러므로 그의 마음에 가득한 것으로 부터도 가치 많은 것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그의 주의나 견해, 사상, 목적 따위의 그를 채우고 있는 그를 감동시키고 있는 모든 것은 세속적이고 육욕적이어서 아무런 가치도 없다.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한 것을 말하며," 하나님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맛보지도 못한다(요 3:31; 고전 2:14). 악인은 비록 의인이 하듯 경건한 신앙에 대해 말하지는 않더라도 자기 안에 그것을 품고 있는 척하며 자기의 마음이 선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러나 심령을 감찰하시는 이는 그 반대의 것을 본문에서 말씀하시고 있다. 그러나 아무 가치도 없다.2. 어느 누구도 악인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의인의 입술"로 먹고 살게 되는 반면 "미련한 자는 지식이 없으므로 죽는다." 그토록 쉽사리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죽는다니 그들은 얼마나 미련한 자들인가! "미련한 자는 마음이 없으므로 죽는다"(이 말씀을 직역하면 그런 뜻이다). 그들은 성찰과 결심이 없어서 멸망한다.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그 어떤 일도 행할 마음이 없다. 따라서 의인들이 딴 사람들여 먹여 살리는 반면 우매자들은 굶어 죽는 것이다.
여호와의 복(잠언 10:22)
세상 재물은 거개의 사람들이 매우 마음을 많이 두는 대상이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신이 바라는 물건의 성질과 자신이 얻기를 원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있어서 실수를 범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의 가르침을 듣게 된다.
1. 참으로 바랄 만한 재물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곧 풍성히 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재물의 소유와 아울러 "근심을 겸하여" 받지 "않는 것"이다. 즉 그 재물을 얻는 데에나 지키는 데에 불안과 걱정이 없으며, 그것을 누리는 데에 있어서도 마음의 애씀이 없고, 그것을 잃어도 근심과 고통이 없으며, 그것을 남용함으로써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소유함으로써 위로받을 수 있는 마음도 소유하고, 그것으로 선을 행함과 아울러 그것을 사용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것 등이 바로 바랄 만한 재물이다.2. 이 바람직한 재물은 어디에서 기대할 수 있는가? 이것은 세상에 대해 악착같이 달라 붙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에 의하여 얻어진다(시 127: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 길 동무로 동반하고 온다. 이것은 재물에 대한 격렬한 욕망과 정욕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재물의 증가는 흔히 극렬한 탐욕과 정욕을 유발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는 4절에서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고 하여 부의 방법으로 근면을 내세웠는데 여기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을 "여호와의 복"의 결과로 돌린다. 그러나 바로 그 축복은 "부지런한 자의 손"위에 임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재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신령한 부를 획득함에 있어서 부지런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의무이지만, 우리가 획득한 것은 모든 영광은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에게 돌려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신 8:17, 18).
미련한 자와 명철한 자의 낙(잠언 10:23)
1. 여기에는 극히 악한 죄가 나온다.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다." 웃는 일이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듯이 그 미련한 자에게는 악을 행하는 일이 웃음처럼 자연스럽고 즐겁다. 행악은 그의 이삭(Issac)dlek(원문의 단어는 그렇다). 행악은 그의 기쁨이요, 애인이며 그 스스로 즐거워하는 대상이다. 그는 죄를 재미있는 일로 삼고 있다. 하나님의 법과 죄악에 대한 진노하심의 계시 사실에 의해 범죄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아도, 그는 그 훈계를 농담으로 돌리며 번쩍이는 창날의 휘두르는 것을 보고도 비웃는다. 그는 죄를 짓더라도 근심하는 대신 그것을 자랑하며, 책망을 조소하고 자기 양심의 회오를 웃어넘긴다(잠 14:9).2. 여기에는 또 극히 현명한 지혜가 등장하는데, 그 지혜는 자신의 훌륭함에 대한 증거를 휴대하고 다닌다. 그 지혜는 자신의 지혜로움을 저절로 나타내고 있으며 이것만 해도 충분한 찬사가 된다. 여러분은 "명철한 자"를 칭찬할 때 달리 말할 필요가 없이 이렇게 말하면 그것이 곧 찬사가 된다. 즉 "그는 명철한 자이다. 그는 지혜를 갖고 있다"(우리 성경과 다름:역주)라고만 하면 그것으로 칭찬이 포함된다. 이 말은 "그는 악을 행하지 않을 만큼 지혜로우며 그가 설혹 잘못 보고 허물을 저지른다고 해도 그 일을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지혜롭다"는 칭찬이 된다.
혹은 지혜가 참으로 지혜롭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이렇게 해석해 보자. "미련한 자는 행악으로 낙을 삼는 것같이 명철한 자는 지혜로 낙을 삼느니라." 선량한 자는 미래의 보상 말고도 신앙의 제약과 경건의 실천 속에서 현세적 즐거움을 많이 누리는데, 그러한 그의 즐거움은 마음껏 죄를 향락하는 가운데서 죄인이 얻는다고 자부하는 쾌락에 비하여 보다 많고 보다 훌륭한 것이다.
악인과 의인의 성취(잠언 10:24,25)
의인에게는 "만사가 잘 돼 나갈 것"이며 악인에게는 "화로다"라고 하는 것이 본문에서 재차 반복하는 말씀이며, 상호간의 설명을 위해 의인에 대한 말씀과 악인에 대한 말씀을 서로 대조시키고 있다.
Ⅰ. 악인에게는 만사가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만큼 흉하게 될 것이며 의인에게는 소원하는 만큼 길하게 될 것이다.
1. 악인이 때로는 자기들을 기만시킬 따름인 헛된 망상으로 행악 중에서 붕붕 떠 있는 게 사실이나, 다른 때가 되면 번번히 나타나는 당연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며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라라." 그들이 최대한 좌절 속에 빠지게 되는 때에는, 자기들이 노엽게 만든 하나님께서 자기들이 염려하는 만큼 추호도 에누리 없이 두렵게 나타나실 것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 대로 주의 진로를 알리이까?(시 90:11).악인은 죄에 대한 벌을 두려워하긴 하나 자신의 도피를 꾀할 뿐 그 두려움을 극복할 만한 지혜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그들이 두려워하던 일은 그들에게 임하며 그들의 현재적 공포는 장차 올 저들의 고통에 대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2. 사실 의인에게도 때로 공포가 있으나, 그들의 소원은 하나님의 은총과 그 안에서 행복을 향하고 있기에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그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의 두려워하던 대로가 아니라 믿음에 따라서 "그들에게"이루어질 것이다(시 37:4)Ⅱ. 악인의 번영은 곧 끝이 날 터이지만 의인의 행복은 결코 끝이 없을 것이다(25절). 악인은 굉장히 시끄러우며, 자기 앞에 있는 것은 죄다 쓰러뜨리겠다고 위협하는 "회리 바람"같이 자기나 남을 함께 허둥지둥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은 "회리 바람"처럼 곧 사라져 버리며 회복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지나가 버린다. 그들은 더 이상 "없어진다." 그리고 폭풍이 지나가 버리면 그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정적을 되찾고 즐거워하게 된다(시 37:10, 36; 욥 20:5).
이에 반해 의인은 겉으로 과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밑바닥에 있어 보이지 않는 "기초"같이 숨어 있지만, 하나님께 집착하려는 결의로 굳어져 있으며 미덕으로 든든히 서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한 기초"같을 것이며 그 선함이 영영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거룩한 자는 계속해서 거룩할 것이며 그 행복은 요지부동일 것이다. 그의 소망은 반석 위에 세워져 있으므로 폭풍이 몰아쳐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마 7:24). "의인은 세상의 기둥이다"(혹자는 이렇게 해독하기도 한다). 세계는 그들을 위해 존재하며 거룩한 자손은 이 세상의 실상이 된다.
게으른 자(잠언 10:26)
다음 사실을 관찰하자.
1. 게으른 사람은 자기의 안일을 탐하고 어떤 일에든지 마음을 쏟지 못하는 자로서 고용하기에 적합치가 않다.그들은 부탁받은 전언을 조심해서 전달하지도 않을 것이고 재빨리 돌아오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심부름조차 보내지도 못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자는 목사, 즉 그리스도의 사자가 되기에는 매우 적합하지 않는 자들이다. 그는 자기의 추수 밭에 그런 자들은 내 보내시려 하지 않으실 것이다.
2. 그런 나태한 자에게 무슨 일을 맡길 정도로 큰 과실을 범한 자들은 틀림 없이 그들 때문에 성가심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게으른 종은 그 주인에게 "이에 초같고 눈에 연기같이" 부란하고 말썽 많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는 식초가 이에 신물이 나게 하듯 자기 주인의 노를 격발시킬 것이며, 연기가 눈에 눈물이 나게 하듯 태만함으로써 사업이 망하게 되는 것을 주인으로 보게 하여 그를 근심하게 만들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소망(잠언 10:27,28)
1. 경건한 신앙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며 그들의 소망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게 해 준다."생명을 사랑하는 자가 누구냐?" 그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그리하면 그것이 그의 생명을 노리는 많은 것에서 그를 안전하게 지켜 주고 이 세상에서 충분한 삶을 누리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도 보장해 줄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기대하던 것보다 연한이 더 늘 것이며 그 수명을 끝없이 늘게하여 영원의 날까지 연장시켜 주실 것이다.
"좋은 세월을 보기 원하는 자가 누구이뇨?" 그는 경건할지어다. 그리하면 그는 장수할 뿐만 아니라 행복하리라. 그의 나른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매우 복될 것이다.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룰"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이루 다 할 수 없는 만족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자기 행복을 두고 있는 것은 장차 올 것이요 보이지 않는 것이며(롬 8:24, 25), 그들이 손에 가지고 있는게 아니라 소망 중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곧 향유하는 기쁨으로 휩싸이게 될 것이며, 그것은 그들의 "영원한 즐거움"이 될 것이다. "너는 네 주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3).
2. 악은 인간의 수명을 단축시키며 그들의 희망을 무참히 꺾어 버린다. 죄의 쾌락과 이 세상의 악착한 일에 소모되는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지면에 방해가 되는 나무는 찍어버려라. 악인이 이 세상에나 저 세상에서 어떤 위안을 고대하든지 간에 그의 그 기대는 좌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악인의 소망은 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희망은 끝없는 절망으로 변할 것이다.
의인과 악인의 결말(잠언 10:29,30)
이 두 성구는 이 앞에 나온 본문과 같은 취지를 가진 것으로 경건한 자의 행복과 악인의 불행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생각하는 일을 매우 지겨워 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우리에게 계속 반복하여 가르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1. 완전함 위에는 힘과 안정이 부과되는 것이다. "여호와의 도(하나님의 섭리, 즉 그가 우리를 향해 행하시는 방법)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혹은 "강한 힘")이며, 그를 그 정직 속에서 굳게 해 주신다. 자비로운 것이든 고난을 주시는 것이든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모든 조처는 본분에 충실할 수 있도록 그를 자극시키는 데 도움을 주며 그를 낙심케 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항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부여한다. 아니면 "여호와의 도가(그가 우리에게 행하라고 지정하신 경건의 길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혹은 힘)이다." 우리가 그 길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우리 마음은 더욱 더 확대되어서 그 길로 매진하게 되며, 봉사와 고난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죄로부터 깨끗이 간직한 양심은 위험할 때에도 사람을 담대케 하며, 의무를 행하는 꾸준한 열성은 바쁜 때에도 사람의 일이 수월하도록 해 준다.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많아지면 질수록 더욱 많은 일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욥 17:9).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여호와의 도"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의 힘이 될 것이다(느 8:10). 그러므로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않으리라." 덕을 확실히 세워가지고 있는 자들은 그어떤 것도 빼앗아 가지 못할 확고한 평안과 행복을 소유할 것이다. 그들은 "영원한 기초를 가진다"(25절).2. 악의 확실한 결과는 파멸과 멸망이다. "악인은" 땅에 저희 보화를 쌓아 두면서도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땅에 거하지도 못하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그들을 뿌리채 뽑아 버리실 것이다. "멸망"이, 즉 신속하고도 확실한 멸망이 "행악하는 자들에게 임할"것이니, 그 멸망은 여호와와 그의 영화스런 권능이 임하시는 데에서 올 것이다. 정직한 자의 산성인 여호와의 그 도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는 소멸시키는 것이요,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이 된다. 같은 복음이 이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맛)"가 되고 저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사망에 이르게하는 향기(맛)"가 된다. 즉 동일하신 섭리가 태양처럼 한사람은 부드럽게 하는가 하면 딴 사람은 강퍅케 하는 것이다(호 14:9).
의인과 악인의 말(잠언 10:31,32)
사람은 앞에서처럼 자기 말로 판단받으며, 따라서 자기의 말로 인해 의롭게 여김을 받기도 하고 정죄되기도 한다(마 12:37).
1. 사람이 지혜롭고 선한 말을 한다는 것은 그의 지혜와 인자함에 대한 증거와 칭찬할 만한 점이 된다. 선한 자는 자기 담화 속에서 타인에게 유익한 "지혜를 낸다." 하나님은 그의 의로움에 대한 상급으로서 지혜를 그에게 주시며(전 2:26), 그는 주시는 분의 은사와 공의에 감사하여 받은 지혜로써 선을 행하며 자기의 지혜롭고 경건한 담화로써 많은 사람을 교화시킨다. 그는 "기쁘게 할 것을 알며," 어떤 대화가 하나님께 즐거움이 될지를 알고(왜냐하면 그가 친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더 많이 궁리하였으므로), 말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 다 유쾌한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 또 어떤 말이 자기에게 어울리고 남에게 은혜가 되는지도 안다. 그는 이러한 말만 할 것이다.2. 악인이 자기답게 악한 것을 말한다는 것은 죄악이며 그것은 자기의 파멸이 될 것이다. "악인의 입은 패역한 것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고 같이 담소하는 자들은 화나게 한다. 그러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패역한 혀"는 "아첨하는 입술"(시 12:3) 만치 확실하게 "베임을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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