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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1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부름(시편 147:1-11)

Ⅰ. 찬양의 의무가 우리에게 맡겨졌다. 우리가 이와 같이 반복해서 찬양하라고 부르심을 받는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1절). 그리고 다시(7절)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우리의 모든 찬양이 그에게로 향해야하며 그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선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그 자체로 선하다. 그것은 우리의 심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선하다. 그것은 우리의 창조주를 영접하며 우리의 창조의 목적을 답해 준다. 그것에 대한 법칙은 거룩하고 공평하며 선하다. 그 실행은 선한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선하다. 왜냐하면

1. 즐겁기 때문이다. 거룩한 기쁨이나 즐거움은 그 원칙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과 같이 우리에게 즐거운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 목표이며 과제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헌신하는 성도들과 같이 우리에게 즐거운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삯을 받는 노동이다. 그것은 땅에 있는 하늘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성분에 따라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2. 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계약을 맺는 백성보다 더 이성적(理性的)인 피조물이 되게 하 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실제로 우리 자신들에게 많은 영광을 돌린다.

Ⅱ. 하나님은 여러 경우에 우리에게 가장 높고 확대된 찬양의 합당한 대상으로 추천되었다.

1. 그의 택하신 백성을 그가 돌보심(2절). 예루살렘이 적은 발단에서 세워졌는가? 그것이 파멸로부터 회복된 것인가? 두 경우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셨다." 복음의 교회. 위로부터 내려 온 예루살렘은 그가 지으신 것이다. 그가 자신의 뜻으로 그 모형을 이루었다. 그가 그의 복음을 가르치심으로 그것을 세우셨다. 그는 거기에서 날마다 구원받은 자를 증가하시며 교회를 전파하신다. 그는 완전하게 세우실 것이며 하늘과 같이 높게 지으실 것이다. 그 백성 중에 누가 버림을 받았는가? 그들이 저희의 어리석음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그는 그들에게 회개를 주심으로 도우시며 그들을 다시 성도들의 교제로 이끌어들이신다. 그들이 전쟁이나 기근이나 핍박으로 추방당했는가? 그는 그들의 귀환을 위해서 문을 여신다. 길 잃어 버렸다고 생각되는 많은 자들이 돌아오며, 구름이 낀 암흑의 날에 흩어졌던 자들이 다시 함께 모인다.

2. 진실된 회개를 하는 자에게 주시는 위로(3절). 그들은 고통스럽게 부상당한 자처럼 죄로 인해 "상심한 자"들이며 부상당하고 미천하게 되고 고통을 받으며 그것을 기억하면서 내적으로 고통을 느끼는 자들이다. 그들의 깊은 마음은 그들이 하나님께 행했던 수치감과 죄로 자신들을 상하게 한 것으로 찔림을 받을 뿐만 아니라 찢어지는 듯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의 위안으로 치료하시는 자들에게 그는 평화를 말씀하시며 그들의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확신케 하며 하나님께 그들과 화해하셨음을 말씀해 주신다. 그리하여 그들을 평안케 하시며 피흘리는 상처에 길르앗 향유를 부으시고 그 상처를 싸매시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신다. 이러한 경험을 한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부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저희를 "기가 막힐 웅덩이에서 끌어 올리시고 저희의 발을 반석 위에 두셨을 때" 그가 저희의 "입에 새 노래를 두셨기" 때문이다(시 40:2, 3). 이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3. 그가 하늘의 빛들을 다스리시는 주권적인 지배(4, 5절). 별들은 셀 수 없이 많고 그 중에 많은 별들이 육안으로 거의 구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는 별들을 계수하시며 그 정확한 수효를 아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모두 그의 손의 작품이며 그의 섭리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 크기와 힘은 매우 크다. 그러나 "저가 저희를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그것은 별들에 대한 그의 지배를 증명해 준다. 그는 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그들에게 명하시며 사용하신다. 그들은 그의 종이며 그의 군병이다. 그는 그들을 모으며 정돈시킨다. 그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오고 간다. 그리고 저희의 모든 동작은 그의 지휘 아래 있다. 그는 이것을 많은 것 중의 한 예로 언급하여 "우리 주는 광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 지혜가 무궁하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의 지식은 곧 소모되고 기껏해야 그 길이를 갖고 있다. 인간의 지식을 여기까지 도달할 수는 있어도 더 이상은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4. 교만한 자들과 높이는 자들을 낮게 꺾으시는 데서 취하시는 즐거움(6절). "여호와께서" 그 앞에서 자신들을 낮추며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겸손한 자를 붙드신다." 그러나 하나님께 무례히 행하며 모든 인류를 경멸하는 자들과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자신들을 높이 세우는 "악인을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때때로 이 세상에서 아주 겸손한 섭리를 행하심으로 먼 날에 저희의 얼굴이 "영원한 수치로 넘치게"될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교만한 자를 발견하여 낮추심"(욥 40:12)으로써 하나님이 되심을 입증하신다.

5. 그가 열등한 피조물을 위해 준비하신 식물. 그는 별들을 명령하실 만큼 위대한 분이지만 까마귀 새끼도 잊지 않으실 만큼 선한 분이시다(8, 9절). 어떤 방법으로 그가 사람과 짐승을 먹이시는 가를 관찰해 보자.

(1) 그는 하늘을 어둡게 하며 태양의 광선을 차단하는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신다." 그러나 그는 구름으로 열매 맺기에 필요하도록 "땅을 위하여 비를 예비하신다." 구름이 우울하게 보이지만 그것 없이 우리는 비도 받을 수 없고 따라서 열매도 얻을 수 없다. 현재에 있어서 고난은 이와 같이 검고 어둡고 불쾌하게 보인다. 우리는 때때로 하늘이 어둡게 될 때 우리를 둔하게 만드는 것과 같이 고난으로 인해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고난의 구름에서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히 12:11) 수확을 이루게 하는 소나기가 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난과 화해하도록 우리를 도와 줄 것이다. 땅이 하늘에 대해 갖는 필연적인 신뢰가 땅에 있는 우리를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신뢰하도록 인도해 주는 것을 주목해 보라. 땅에 내리는 모든 비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다.

(2) 그는 땅에 스며드는 비로 "산에," 사람이 돌볼 수도 없고 추수할 수도 없는 높은 산에서도 '풀이 자라게 하신다." 냇물과 강에서 물을 얻지 못하는 산과 계곡은 비를 공급받고 불모지(不毛地)가 되지 않는다.

(3) 그는 이 풀로 야생하는 산 짐승, "들짐승"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이것은 사람이 양식으로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미에게 먹이를 구하는 "우는 까마귀 새끼"도 하나님께 들려지며 그들을 먹이실 길을 찾으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둥지에서 멸망당하지 않게 보호될 것이다.

6. 그가 자기 백성에게서 취하시는 만족(10, 11절), 큰 일이 행해졌을 때, 그 성공에 대한 큰 기대 가있을 때,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알도록 관심하게 해 준다(그 문제가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승리로 영광을 받으시며 관을 쓰시기를 기뻐하실 것이다. 그것은 군대의 힘이 아니요 은총의 힘이다.

(1) 하나님은 군대의 힘이나 기병대의 힘을 갖지 않으시는 것을 기뻐하신다. "여호와는 말의 힘을" 전쟁에 사용하는 군마의 힘을(욥 39:19) 그의 용기를 위해 "즐거워하지 아니하신다." 보병도 기뻐하시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다리도 기뻐하시지 아니하신다." 그는 달리기에 민첩한 것이나 땅을 떠나는 발을 의미하지 않고 땅에 굳게 서서 돌격하는 발의 견고성을 나타내려고 했다. 어떤 왕이 다른 왕과 전쟁을 할 때에 성공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러 나아간다면 그것은 그에게 소용없는 걸이 될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훌륭한 군대를 갖고 좋은 질서를 가진 보병과 기병이 있나이다.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된다면 슬픈 일이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시 20:7). 여호사밧의 기도가 훨씬 더 좋은 것이었다. "여호와여,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나이다"(대하 20:12).

(2) 하나님은 오히려 은총의 힘을 소유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을 열심히 그리고 합당하게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눈에서 볼 때 그러한 경우에 크게 값진 것이다.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며" 용납하신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소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같은 마음으로 동시에 그의 위엄에 대한 존경과 그의 인자하심에 대한 만족이 있어야 하며 그의 진노에 대한 믿음의 두려움과 그의 은총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희망과 공포 사이를 모호하게 두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희망과 공포의 은혜로운 영향 아래에서 행동해야 한다. 우리의 공포는 의심에 빠지는 데서 우리의 희망을 건져내며 우리의 희망은 절망에 넘어지는 데서 우리의 공포를 건져낸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를 붙잡아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야 한다." 우리가 그의 보편적인 자비를 우리 안에서 특별한 약속으로 발견하지 못할 때에도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야 한다. 하나님의 본성의 인자하심에 대한 겸손한 확신이 그에게 큰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가 가장 영광 받으시는 그러한 속성의 영광을 돌리는 것과 같다. 영광 중에 있는 모든 사람은 신뢰받기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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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의 부름을 받은 시온(시편 147:12-20)

여기에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과 거룩한 산, 시온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부르심을 받고 있다(12절). 그의 제단이 있는 곳을 제외하고서는 어디에서 하나님께 찬양이 드려지겠는가? 거룩한 아름다운 곳을 제외하고서는 어디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겠는가? 예루살렘의 거민들은 자기 집에서 여호와를 찬송해야 한다. 예식의 도시, 시온에 참예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그것을 야할 이유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해야 하는 보다 많은 의무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저희의 업무이며 그것이 저희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너는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네가 주의 것이 되었으므로 모든 행복을 안은 것이다. 그러므로 찬양하는 일을 모자라게 하지 말아야 한다. 예루살렘과 시온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Ⅰ. 그들의 공공 재산의 번영과 국가의 풍요함을 위해서(13, 14절).

1. 그들의 공동적인 안전을 위해서 그들은 대문을 갖고 있었으며 위험한 때에 대문에 빗장을 질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희의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지 않고 저희의 요새를 강화해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효력있는 안전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의 보호를 위해서 고안해 낼 수 있는 가장 그럴 듯한 수단도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우리의 보호를 위해서 고안해 낼 수 있는 가장 그럴 듯한 수단도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수단을 주의깊고 부지런하게 사용하면서도 그 축복을 위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땅의 교란되지 않은 안정이 우리를 둘러싼 물 성곽보다 불 성곽으로 유지될 것이다(슥 2:5)

2. 저희 백성의 증가를 위해서. 이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문빗장을 강하게 한다. 그가 처음이자 가장 큰 축복으로 "너희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다. "생육하며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저희 자녀들이 여호와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보는 것은 부모들에게 위로가 된다(사 61:9).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가 창대하며 희망이 있는 것을 보는 것은 사라지는 세대에게 위로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이 축복을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3. 공공의 평안을 위해서. 그들은 전쟁의 공포와 슬픔에서 구출되었다. 주께서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전쟁을 그치게 하시며 위협하며 두려운 전쟁을 막아 주신다. 주께서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신다." 즉, 나라의 모든 부분에서 이웃의 불화를 조정함으로써 "네 경내에서" 내부의 싸움과 적대감이 없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밖의 침입에 의해서 공격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떤 환난이 있다면 그것은 국가의 경내에, 국경 안에 있는 것이다.

전방의 도시들은 가장 위험하다. 그러나 경내에 평화가 있다면 거기에는 우리가 충분히 감사할 수 없는 보편적인 화와 자비가 있다.

4. 평화의 공통적인 결과인 풍요함을 위해서. 그가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밀은 가장 갚진 곡식이며 지방이 많고 아름답고 충만한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가나안은 가장 좋은 밀로 풍부했다(신 32:14). 그리고 그것을 주지하다시피 외국에 수출했다(겔 27:17). 이스라엘 땅은 진귀한 돌이나 향료가 풍부하지 못했지만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해 주는 "아름다운 밀"로 빵이 풍요했다. 이것이 시온을 모든 나라의 영광이 되게 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시온에서 찬양을 받으셨다.

Ⅱ. 날씨에 나타난, 특히 겨울 날씨에 나타난 그의 권능의 놀라운 기사에 대하여. 시온과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자는 자연의 모든 권세가 그로부터 나오며 그들이 의지하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계절의 모든 변화를 일으키시며 그 변화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를 놀라게 만드신다.

1. 일반적으로, 이 낮은 세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지(이 세상은 계속적인 변화에 종속되는 세상이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권능과 섭리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다(15절). 대적할 수 없는 권위를 가 진자가 명령하듯이 그 명령을 실행하기 위 해수 많은 추종자들이 준비하며 일을 착수하는 것과 같이 "그 명을 땅에 보내신다." 세상이 처음에 창조된 것과 같이 전능한 권능의 말씀으로 세워지며 다스려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이루어지니라." 왜냐하면 모든 것이 그의 종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 질러 가는 번개와 같이 하나님의 섭리의 말씀과 그의 은총의 말씀과 그의 은총의 말씀이 명령되어 신속하게 달려 간다(눅 17:24). 그의 말씀을 전달하며 성취하는 천사들은 "빨리 날은다"(단 9:21)

2. 특별히, 어는 것과 녹는 것은 둘 다 놀라운 변화이며 우리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말씀을 고백해야 한다.

(1) 어느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에게는 "눈 곳간과 우박 창고"(욥 38:22, 23)가 있다. 그는 이 창고에서 기뻐하시는 대로 내리신다.

[1] 그는 "눈을 양털같이 내리신다." 눈은 그 흰 것과 부드러움 때문에 양털에 비교된다(사 1:18). 그것은 소리없이 떨어지며 양털의 뭉치가 떨어지는 것과 소리를 더 적게 낸다. 그것은 땅을 덮으며 양털과 같이 땅을 따뜻하게 해 주며 그 결실을 촉진한다. 하나님께서 정반대로 일하시며 먹는 것에게서 고기를 가져 오시며 차거운 눈으로 땅을 덥히시는 것을 보라.

[2] 그는 "서리를 재같이 흩으신다." 그것은 이슬이 응결된 것이다. 눈과 우박은 비가 응결된 것이다. 이것은 풀 위에 어진 재와 같이 보인다. 그리고 때때로 땅의 산물에 해를 끼치며 뜨거운 재처럼 소산물을 시들게 한다(시 78:47).

[3] 그는 "우박을 떡 부스러기같이 뿌리신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 오는 우박인 큰 얼음 덩어리나 물의 표면을 덮고 있는 얼음이 깨질 때 본래 그것이 마실 물이었지만 고깃덩어리 혹은 빵조각인 것같이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4] 우리가 서리와 눈과 얼음을 볼 때 그것이 퍼져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누가 능히 그 추위를 감당하리요." 짐승들은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들은 굴 속으로 물러 간다(욥 37:8). 그들은 쉽게 정복당한다(삼하 23:20). 사람들은 불이나 털가죽에 의해서 추위를 막지 않으면 감당해 낼 수 없다. 그러나 추위가 극도에 달하는 때와 장소에서는 그것도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가 그 결과를 느낄 때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그 추위'라고 불러야 한다. 그것은 그가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인내로써 참아야 하며 따뜻한 집과 의복과 잠자리로 우리를 계절의 가혹함에서 소생시켜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그의 지혜와 주권의 영광과 그의 권능과 신실하심의 영광을 그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겨울의 날씨에서 나타나며 여름에도 그치지 않고 나타날 것이다(창 8:22).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추론해 보자. 만일 우리가 그 서리의 추위 앞에서 지탱할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그의 진노 열기를 감당해 낼 수 있겠는가?

(2) 녹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가 기뻐하실 때(18절) "그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신다." 서리와 눈과 얼음은 모두 재빠르게 녹는다. "그가 바람을" 즉 "서풍을" "불게 하신 즉" 얼었던 "물"을 전과 같이 다시 "흐르게 하신다." 우리는 그 변화를 곧 느낄 수 있지만 그 원인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제일 원인(the First Cause)의 뜻을 풀어야만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갑자기 그리고 감지할 수 없게 기온과 땅의 표면에 크고 보편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하나님의 권능뿐만 아니라(이 겨울에 행하신 것을 모든 겨울에 행하실 수 없겠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달아야만 한다. 추운 날씨는 항상 계속되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슬프게 될 것이다. 그는 "영원히 주장하지 않으시며, 땅의 표면을 새롭게 하신다." 그가 노아를 기억하고 그를 해방하신 것과 같이(창 8:1), 땅을 기억하시며 땅과 맺은 그의 계약을 기억하신다(아 2:11, 12). 이 녹게 하시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며 녹게 하시는 바람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나타내 주고 있다(왜냐하면 성령이 바람에 비교되기 때문이다. 요 3:8). 이 둘은 얼어 불은 영혼을 녹이기 위해서 보내졌다. 시키는 은 녹이는 것과 같이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마음을 적시고 회개의 눈물로 녹아 내리게 한다. 그것은 좋은 애정을 따뜻하게 하며 감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것은 전에 냉기가 서렸으며 정지된 것이었다. 녹아 내리는 변화는 보편적이지만 점차적인 것이다. 그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전도(轉倒)에서 이루어진 변화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영혼을 녹이며 회복하기 위해서 보내진다.

Ⅲ. 이스라엘에서 저희와 평화와 풍요(14절) 보다 더 귀한 축복인 그의 말씀과 법령을 주시는 그의 특별한 은총에 대해서 육신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영혼이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그들 가운데에 갖고 있었다. 그들은 그의 특별한 지배 하에 있었다. 저희 국가의 내정법(內政法)은 그가 계획하고 제정한 것이요 그들의 정체는 신정정치(神政政治)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혜택을 받았다. 하나님의 율법의 위대한 것들이 그들에게 쓰여졌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모든 것을 위해 하나님의 성직을 맡은 제사장직과 모든 특별한 경우를 위해 예언자들을 갖고 있었다. 어떤 백성도 그들의 종교 이외에 다른 어떤 것에 확실한 근거를 세우지 않았다.

1. 이제 이것은 먼저 주시는 자비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발견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그의 "율례와 규례"를 그들에게 알게 하셨다. 저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갖는 것은 어떤 백성에게도 큰 자비가 된다. 왜냐하면 "신앙은" 말씀을 "들음에서 오고" 봉독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2. 구별되는 자비가 되었다. 그로 인해 더욱 의무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무 나라에게도" 어떤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다." 그리고 "저희는 그 규례를 알지 못하였다." 저희는 메시야가 오셔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는 격벽(隔璧)을 무너뜨리실 때까지 복음이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기까지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다른 국가들은 외적으로 좋은 것들을 풍부하게 갖고 있었다. 어떤 나라들은 매우 부유했고 또 어떤 나라들은 화려한 권세가 있는 방백들과 교양있는 문학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나라도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로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율례를 보고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찬양해야 한다." "여호와여 주는 세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얼마나 자신을 나타내시려고 하시는지요! 더욱이 성부여, 그것이 주의 눈에 선하게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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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 잠언 메튜 헨리 주석, 잠언 13장
548 잠언 메튜 헨리 주석, 잠언 14장
547 잠언 메튜 헨리 주석, 잠언 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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