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1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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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

슬픔 중의 희망(시편 126:1-3)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되었을때에 비파가 버드나무에 걸려 있었다. 왜냐하면 그 때에 하나님은 울고 통곡하라고 부르셨고, 그 때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슬퍼하시며 그들을 애곡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포로는 되돌려졌고, 그들의 비파는 다시 되찾았다. 섭리가 그들에게 외쳐지고 그들은 춤을 춘다. 이와 같이 섭리의 모든 활동에 순응해야 하며 그것에 적절하게 감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파는 슬프게 쓰이지 않게 되는 때를 지나서 멜로디를 타고 곡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자비에 대한 오랜 소망이 그들의 귀환을 크게 기쁘게 한다.

1.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구원. 그는 "시온의 포로를 돌리셨다." 시온이 그 타락의 형별로 인해 포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 포로가 그 목적이 달성되고 그 일이 감동되어졌을 때 되돌려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고레스가 나라의 사정으로 하나님의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했지만 그것은 수 년전에 하신 그의 말씀을 따라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포로로 보내신 것은 불에 태우기 위해 풀을 집어 넣는 것 같지 않고 오히려 금을 정화하기 위한 것과 같다. 이스라엘의 해방은 거룩한 산 즉 하나님의 성소와 거처인 "시온의 포로를 돌리신 것"이라고 불리워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거룩한 관심의 회복과 이스라엘 종교의 대종적 실행의 활기를 되찾음이 포로 귀환에서 얻은 가장 고귀한 이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2. 이것이 그들에게 향한 것이라는 기쁨의 놀라움. 그들은 그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이 갑자기 온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 그들은 혼동 중에 있었다. 무엇이 그렇게 했으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꿈꾸는 것같이" 생각했다. 우리는 그것이 너무 기쁜 소식이어서 사실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깨었는지 아닌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성 베드로가 그의 구원을 잠깐 생각했을 때와 같이(행 12:9)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때때로 그것은 예언자들에게도 있었던 일이다) 환상 중에 그 표현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로 의심했다. 때때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와 같이 그들이 알아 차리기 전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축복을 받는다." "우리는 건강을 되찾은 자들과 같았도다"[하몬드 박사(Dr Hammond)의 해석] 그것이 우리에게 임한 것은 위로의 행복한 변화와 같아서 마치 죽음에서 생명으로 격렬한 고통에서 갑작스런 평안에로 옮겨진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놀라움이 그들에게 황홀경과 같고 황홀한 기쁨과 같이 주어져서 그들도 좀처럼 그것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체면의 한계를 지킬 수 없었다.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들은 이와같이 그들의 기쁨을 발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큰 이적을 행하셨는가를 모두에게 알렸다. 과거에 웃었던 자들이 이제 웃으며 "새 노래가 그들의 입에 담겨졌다." 그것은 적들에 대한 경책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기쁨의 웃음이었다.

3. 저희의 이웃이 그것을 인식함. "그들은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백성을 위해서 다른 신들이 우리를 위해 할 수 없는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열방들은 그들의 환란을 보았고 그것을 승리하는 것을 보았다(렘 22:8, 9; 시 137:7). 이제 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책망받고 멸시받은 자들에게 명성이 주어지고 그들을 괄목하게 하였다. 그 외에도 그것이 크게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려졌고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섭리의 감사를 그에게 돌림으로써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을 무력했다.

4. 그들이 구원에 대해 감사함(3절). 열방들은 구경군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을 단지 뉴스거리로 만말했다. 들은 그 사건에 참여하지 못했고 아무런 업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에 대한 참여자로 그것에 말했다.

(1) 마음을 기울임으로써,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즐겁고 그로 인해 은택을 입었다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대로 행하신 구속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위로가 된다. "누가 나를 사랑하며 나를 위해 자신을 바쳤는가?"

(2) 감동되어서.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이 저희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간음하러 간 동안에 기쁨이 그들을 허락치 않았다(호 9:1). 그러나 이제 야곱의 불의가 포로에 의해서 속죄되었고 저희의 죄가 사해졌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신다. 기뻐하는 백성이며 장차 그렇게 기뻐할 백성은 참회하며 개혁하는 백성이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고찰해 볼 수 있다.



[1]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시는 것은 대사로써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은 교회를 위해서 이루신 모든 대사의 창시자로서 보여져야 될 것이다.

[3] 교회의 구원이 우리를 위해서 어떻게 나타나는 것인가를 관찰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기뻐하게 될 것이다.

 

126:2 없음.

 

126:3 없음.

 

126:4

희망의 자비(시편 126:4-6)

이 귀절들은 소망했던 자비를 바라 보고 있다. 포로에서 나온 자들은 여전히 고난 중에 있었으며, 그들의 본토에서도 고난을 당했다(느 1:3).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바벨론에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떨면서 기뻐하였고 아직도 회복되어야 할 슬픔을 마음 속에 담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1. 그들의 구원을 완전케 해달라는 기도(4절). "우리의 포로를 돌리소서. 자기 본토에 돌아간 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신음하던 고역을 풀게 하소서. 바벨론에 남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자유의 혜택을 부여받은 것처럼 저희의 마음이 뛰놀게 하소서." 자비의 시작은 그것을 완전케 하도록 간구하는 우리에게 격려가 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우리가 찬양할 일이 넘쳐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기도할 문제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유하게 되고 번영 중에 있게 될 때 우리는 고난과 속박 중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이미 돌아온 형제들과 함께 연합하여 포로 중에 있는 자들이 오는 것은 남방엔 놓여 있는 마르고 건조한 나라들에 물줄기가 양편으로 흐르는 것처럼 환영될 것이다. 목마른 영혼에게 냉수가 주어진 것처럼 이 좋은 소식은 먼 나라에서부터 오는 것 같을 것이다(잠 25:25).

2. 구인을 기다릴 수 있는 격려에 대한 약속. 그들이 지금은 슬픈 때에 있을지라도 그 약속을 확신하여서 장차 좋은 결과가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 약속이 일반적으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이 이러한 확신을 갖고 자신들을 위로할 수 있으며 그들의 눈물의 씨가 결국 기쁨의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다(5절).

(1) 고난당하는 성도들은 눈물의 씨를 뿌린다. 그들은 종종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인생의 고난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체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고난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울며 씨를 뿌린다" 그들은 고난의 상황에서의 의무를 수행하며 그리하여 그들이 지배받는 섭리의 목적에 응답한다. 눈물을 흘리는 일이 씨를 뿌리는 일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크게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더욱 잘 행동해야 하러 이다. 아니, 비를 맞고 땅이 씨를 받을 준비를 하며 농부가 젖어 있는 땅을 찾아 씨를 뿌리는 것과 같이 우리는 회개와 기도와 겸손을 행하여 고난의 때를 선용해야 할 것이다. 아니, 그 자체로써 씨가 되는 눈물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한 슬픔의 눈물과 고난받는 교회에 대한 동정의 눈물과 기도와 말씀에서 생기는 자비의 눈물을 뿌려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농부가 곡식이 귀할 때 씨를 뿌리며 그의 가족을 위해 적지 않은 것을 뿌려서 땅에 묻고 다시 수확을 얻어 그것을 받을 것을 기대하면서 뿌리는 것과 같은 귀중한 씨앗이다. 선한 사람은 이와 같이 눈물로써 씨를 뿌린다.

(2) 그들은 기쁨의 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성도들의 고난은 항상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저희의 업을 마치면 행복한 시기가 오게 될 것이다. 바벨론 포로는 오랫 동안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이었지만 드디어 그들은 기쁨으로 나아오게 되었고 견딜 수 있는 고난의 혜택을 수확했고 그들의 본토의 곡식의 단을 가져오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게 외었다. 단을 가져오며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욥과 요셉과 다윗과 많은 사람들이 슬픔의 씨 다음에 오는 기쁨의 수확을 경험했다. 경건한 슬픔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인봉한 용서와 안정된 평화의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이다. 눈물의 골짜기에서(이 세상에서) "성령으로 씨를 뿌리는 자들은 성령으로 영원한 생명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실로 기쁨의 추수가 될 것이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라."

 

126:5 없음.

 

126: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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