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여, 찬양하라(시편 117:1,2)
이 시편에는 굉장히 큰 복음이 들어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그 열쇠를 준다(롬 15:11). 바울은 거기에서, 복음이 선포되고 이방인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나, 여전히 유대인들에게는 걸림돌이 된다는 증거로써 이 싯귀를 인용하고 있다.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자주 노래할 때, 왜 그들을 걸리게 했는지 모르겠다.
여러 유대학자들은, 이 시편이 메시야의 왕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고 공언한다. 아니,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이 시편이 메시야의 날에 하나님께서 두 종류의 백성에게 의해서 영광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두 구절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즉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유대인들에 의해, 그리고 노아의 아들들에 대한 일곱 언약에 따라서 이방인들에 의해 영광받으신다는 것이다. 이 두 구절이 하나의 시편으로 이뤄진 것같이, 그 둘은 한 교회로 이뤄질 것이다.
Ⅰ. 우리는 여기에서 복음적인 교회의 광대한 영역을 보게 된다.
1. 유대에서는 여러 세기 동안 오직 하나님만이 알려졌고, 그의 이름만 찬양되었다. 레위 지파의 자손들과 이스라엘의 후손들은 그를 찬양하였지만, 나머지 민족들은 "목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였고"(단 5:4),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그들은 살아계신 진실한 하나님께 어떠한 제사도 전혀 바치지 않았다. 적어도 아무도 공개적으로 드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 "모든 나라들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부르심이 있다. 이것은 구약 시대에 적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부르심은 어떤 이방 민족들에게 주어진 것도 아니었고, 또한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고 유대인들이 되지 못하는 한 저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가르치라고 명령되었고, 그에 의해서 장벽은 무너졌고, "멀리 떨어져 있던자들은 가까와졌다." 이것은 여러 세기 동안 예언 속에 감추였던 신비였다. 그러나 마침내 "이방인들이 후사가 되었다"는 성취에서 계시되었다(엡 3:3, 6).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해 보자.(1) 누가 교회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다. 원어(原語)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분노하는 열방과 허사를 경영하는 민족들"(2:1)에게 사용된 것과 같은 것이다. 그의 나라에 대해 적대자들이 되어 왔던 자들이 그의 기뻐하시는 신민이 될 것이다. 왕국의 복음을 "온 세상에,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해" (마 24:14; 막 16:15) 가르쳐야 했다. 모든 나라들은 부르심을 받게 될 것이며, 모든 나라들 중 어떤 나라에게는 그 부르심이 효과적일 것이며, 그들은 훈련받게 될 것이다.
(2) 저희가 교회에 들어오도록 허용된 것이 어떻게 예언되었는가? - "그를 찬양하라"고 반복되는 부르심에 의해서이다. 모든 민족에게 보내진 복음의 기쁜 소식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를 줄 것이다. 복음의 유례는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허락하고 기회를 줄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은총의 능력은 저희에게 그를 찬양할 마음을 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으로 초대하고 그의 성령으로 그를 찬양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어 주심으로, 그들은 크게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또한 그에게 이름과 칭예를 돌리는 자들은 큰 은택을 입은 자들이다(막 13:11; 렘 7:9, 10 참조).
Ⅱ. 복음의 은총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함이 우리가 찬양할 내용이 된다(2절). 하나님의 속성들, 즉 그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송축하는 자들은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가장 환하게 비추이며 가장 평화롭게 빛난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하는 두 가지 큰 사항을 이 시편을 인용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그 긍휼하심"(롬 15:8, 9)이라고 이해했다. 복음을 기뻐하는 우리들은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이유를 가진다.
1. 그의 인자하심의 능력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도다." 그것은 "강하다"(그 말은 이런 의미도 포함한다). 그것은 중한 죄의 용서를 위한 권능이며(암 5:12), 전능한 구원으로부터 활동하는 권능이다.2. 그의 진실하심의 불변성으로 말미암아서이다.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보내진 것은 자비이며 완전한 자비이다. 그것은 그들의 사막을 넘어서 그들에게 향한 힘있는 자비의 친절이었다. 그리고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것에 대한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하리로다." 비록 유대인들이 완고해지고 추방되었다고 해도 그 약속을 믿음을 가진 이방인들 즉 아브라함의 영적인 자손들에게서 그 결과가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모든 위로의 근원이다. 그의 진실하심은 우리의 모든 희망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로 말미암아 여호와를 찬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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