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10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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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1

찬양에의 초대(시편 105:1-7)

우리의 신앙심은 여기에서 뜨거운 감정으로 자극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하라는 초청을 받고 있다.

Ⅰ. 우리가 여기에서 부르심을 받고 있는 의무들을 관찰해 보자. 많은 것이 있지만 저들 모든 것의 경향은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는 것이다.

1. 우리는 우리의 관대한 지혜자이신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은총을 인하여 그에게 감사하라고 요청된다. 그러나 그것은 풍요한 은사에 비해 빈약한 보답이 아닐 수 없다.

2. 더 많은 은혜를 바라는 자는 "그 이름을 불러 아뢰라."

더 많은 자비를 위한 간구는 앞서 베푼 자비의 인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나에게 그의 귀를 기울이셨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간구할 것이다"라는 것이다.

3. "그 행사를 알게 할지어다'(1절). 그러면 다른 자들도 너와 함께 그를 찬양하는 데에 연합할 것이다.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 지어다"(2절). 우리가 우리에게 충만한 것, 우리가 감화된 것을 말할 때 다른 사람들도 충만해지기를 희망하게 된다. 하나님의 놀라운 업적은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과의 친밀한 대화의 주제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저들을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신 6:7) 말해야 하며 단지 여홍으로서가 아니라 헌신을 북돋아 주는 것으로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희망을 격려해 주는 것으로 말해야 한다. 거룩한 것들일지라도, 만일 적합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대중적인 대화의 주제가 될 수있을 것이다.

4.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시를 노래하라"(흠정역). 그를 찬양하며 다른 사람들의 용기를 위해 기뻐하는 자들은 그것을 후대에 전하려는 목적에서 문자 기록이 거의 없었을 때에는 노래로써 전수시켰다.

5. "그 성호를 찬양하라."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저들의 성취나 업적을 자랑하도록 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알게 된 것과 그에 대한 저들의 관계를 자랑하게 하라(렘 9:23, 24). "너희는 그의 성호를 찬양할지어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하나로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를 찬양하는 데서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때문이다.

6. "여호와를 구하라." 너의 행복을 그에게 두며 그가 정하신 모든 길에서 행복을 구하라.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즉 그의 은총과 선한 것을, 네 안에서 작용시키는 그의 성령의 권능을 구하라. 우리는 그에게서부터 나온 힘이 아니고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이 이것을 요청하신다. "여호와를 구하며 강하게 되라"(고대의 여러 가지 번역판은 그렇게 읽었다). "내적인 사람에게 강해지려고 하는" 자들은 신앙과 기도를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야 한다. "그의 힘을 구하고 그의 얼굴을 찾으라. 왜냐하면 그의 권능에 의해서 - 우리는 야곱이 행한 것같이(호 12:3) - 그의 은총을 향하여 그와 겨루기를 희망한다. 더욱 더 그의 얼굴을 구하라. 영원까지 그의 은총을 갖기를 구하라. 그러므로 너의 시련의 때의 끝까지 그것을 계속해서 구해야 한다. 네가 이 세상에서 살동안 그것을 구하면, 저 세상에서 네가 살 동안 그것을 갖게 될 것이며, 거기에서도 영원히 무한한 진행 속에서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거기서 만족하게 되리라."

7.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3절). 왜냐하면 그들은 잘 선택되었고 잘 고정되었으며 잘 채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들의 노동이 공허하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발견될 뿐만 아니라 "그를 부지런히 찾는 자들의 보답자"로서 발견될 때문이다. 만일 "주를 찾는" 자들도 기뻐할 이유를 가진다면, "그를 발견한' 자들에게는 더욱 더 그러한 이유를 가질 것이다.

Ⅱ. 우리에게 이러한 의무들을 자극시켜 주는 몇 가지 논거(論據)를 연구해 보자.

1. "우리로 영원히 그를 위해 일하게 하려고 한 말과 행한 일을 생각해 보라. 만일 너희가 너희에게 심원하고 영속성 있는 인상을 주었던 기적들을 기억한다면, 너희는 그에게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할 의무를 지고 있음을 이해할 것이다. 그가 너희에게 행하신 그의 섭리의 기사와 그가 행하신 놀라운 기사는 너희 전에 간 사람들에게도 깊은 생각으로 감사함으로써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너희에게 써 준 그의 율법의 기적은 그의 손의 심판(공의)은 물론 그의 입의 심판(5절)과 더불어 너희에게 위임된 것이다."

2. "너희는 그와의 관계를 생각하라. 너희는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이다(6절). 너희는 그의 집에서 태어났고, 따라서 그의 종의 특권 즉 보호와 양식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에 너희는 또한 종의 의무를 행하고 너희 주인에게 수종들며 그의 명예를 높이고 그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끔 되어 있다. 너희는 택하신 야곱의 자손"이다. 그리고 조상들을 인하여 택함을 받고 사랑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유산으로 받은 영광스러운 자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너희는 신성한 조상들의 자녀들이다. 결코 번질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는 지상 위에 세운 하나님의 교회이다. 만일 너희가 그를 찬양하지 않는다면 누가 찬양할 것인가?"

3. 그에 대한 너희의 이해 관계를 생각해 보라.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7절). 우리는 그를 의존하며 그에게 헌신하며 그로부터 우리의 기대가 나온다.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사 8:19) 그리고 저들의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 아닌가?(단 5:4)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다. 우리의 하나님인 그는 자존하며 자족하신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강한 권능과 대적할 수 없는 주권을 갖고 계신다.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그는 전 세상을 지혜로 다스리시며 모든 나라에 율법을 주시며 심지어는 그를 모르는 나라들에게까지도 지혜로 다스리시고 율법을 주신다. 땅은 권능의 증거로 충만해 있다.

 

105:2 없음.

 

105:3 없음.

 

105:4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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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 없음.

 

105:7 없음.

 

105:8

족장들에게 주었던 약속(시편 105:8-24)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지난 일을, 특히 교회 창설 당시의 일을 크게 회고하고 이전의 시대에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이 행하신 것을 인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을 배워야한다. 창설된 교회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 은택을 누리는 자들은 마땅히 과거에 대해 감사를 드려야 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는 기독교회의 출현과 관계되는 복음의 역사와 사도들의 행적으로부터도 찬양을 위한 적절한 소재를 가져올 수 있다. 시편 기자는 여기에서 유대교의 출현과 관계되는 창세기와 출애굽의 역사로부터 찬양의 주제를 이끌어 낸다. 우리의 역사는 대부분 거기에서 보다 더 현저하게 빛난다.

두 가지 사실이 여기에서 찬양의 주제로 나오고 있다.

Ⅰ. 족장들에 대한 약속, 즉 하나님이 저들의 자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리라는 위대한 약속이다. 이것은 모든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주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에 대한 모형이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모든 기적에서 "그는 그의 언약을 기억하였으며"(8절) 앞으로도 그것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것 은"그가 천대에 명하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약속의 권능을 보라. 그것은 그가 명했고 실현하신 말씀이다. 약속의 영원성을 보라. 그것은 "천대에" 명한 것이며 결코 단절되지 않을 상속권이다. 이것과 병행귀절에서는 이것이 우리의 의무로 표현되어 있다(대상 16:15).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 하나님은 그것을 잊지 않으시므로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여기서는 약속을 "언약"(covenant)이라 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약속의 조건으로서 인간의 편에서 요구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1. 이 언약을 맺었던 사람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든 유명한 신앙인들(히 11:8, 9)을 관찰해 보라.

2. 언약의 확증을 보라. 그것은 성스러운 모든 사람에게 확증 되었다. 그것은 틀림 없이 맹세되었는가? 그것은 이삭과 아브라함에 대한 그의 맹세이다. 하나님이 "자기를 가리켜 맹세한" 자들을 보라(히 6:13, 14)하셨다. 그는 율법, 즉 결코 폐지되지 않는 율법을 세우셨다. 상호 계약과 약정으로 환원된 것은 확실한가? 이것은 신성하게도 "영원한 언약"으로 세워졌다.

3. 언약의 내용을 관찰해 보자.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리라"(11절). 족장들은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속에 의해서 그 땅에 대한 권리를 가졌다. 그리고 저들의 후손은 정착 국가의 통속적인 방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적에 의해서 가나안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이, 말하자면 직접 저들에게 가나안을 준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할당해 준 기업, 그리고 그들을 헤아려서 준 것으로서, "기업의 지경"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돈으로 구입함으로써가 상속으로, 그리고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써 주어진 것이다. 하늘나라는 우리가 얻을 상속물인 것이다(엡 1:11). 그리고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다"(가나안이 그가 저들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이는 또한 "영원한 생명"(요일 2:25; 딛 1:2)의 약속이기도 한다.

Ⅱ. 그들이 이러한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족장들에게 베푼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아직 거룩한 가나안 도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행한 것과 같이 믿음으로 사는 약속의 모든 상속자들에 대한 예증이며 격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 그들은 놀랍게도 보호받고 지켜졌다. 그리고(유대 지도자들이 그것을 표현한 바대로) "하나님의 위엄의 날개 아래 모아졌다." 이것이 12-15절에 잘 생명되어 있다.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여기에서 관찰할 수 있다.

(1)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손상을 입기 쉬었던가? 유명한 세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매우 풍부했었다. 그는 그들에게 반복해서 저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활동은 그 약속에 비하면 너무나 적어서, 그가 저 세상에다 "그들에게 하나의 도성도 준비하지 못했다면" "저희 하나님이라는 일컬음도 부끄러워했을 것이다"(히 11:16 참조). 왜냐하면 그는 항상 관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라도 그는 그들에게 결핍을 주는 분이 아니며, 저들에게 진귀한 것을 행하기시 위해 나타나시며, 그들은 진귀한 시험으로 연단시키신다.

[1] 그들은 수가 적었고 극히 적었다. 아브라함은 홀로 부르심을 받았다(사 51:2). 그는 단지 두 아들을 데리고 있었으나, 그 중 한 아들은 쫓아 내었다. 이삭도 두 아들 뿐이었으나 그 중 하나는 몇 년 동안 그의 고향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야곱은 많은 아들을 데리고 있었으나, 그들 중 몇 아들은 그에게 보호가 되기는 커녕 그를 부끄럽게 했다. 이삭은(그가 탄식하는 바와 같이, 창 34:30) 거의 수적으로 약했고, 따라서 토착인에 의해서 그와 그의 가족이 쉽게 파멸될 위험성이 컸다. 하나님의 선택은 적은 무리, 소수, 극소수에 있다. 그러나 저들을 들어 쓰신다.

[2] 그들은 객이 되었다. 그러므로 가장 능욕당하기 쉽고 낯선 관습에 마주치게 되며 무력하게 되기 쉬웠다. 저들의 종교가 그들을 객으로 여기게 만들었으며(벧전 4:4), "무늬 있는 매"(렘 12:9)처럼 조롱받았다. 비록 모든 땅이 약속에 의해서 저들의 것이었지만, 그들은 인수받고 청원하기에는 거리가 멀어서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증언하였다'(히 11:13).

[3] 그들은 유리하였다(13절). "그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갔다.' 그리고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유리하였다(당시 그 땅은 열방의 소유지며 점유지였기 때문이다. 창 12:8; 13:3, 8). 아니!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애굽에서, 팔레스타인 땅으로 유리하였다. 그것은 저들을 약하게 하고 헐벗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기근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빈번한 이주가 좋거나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이 가장 선한 사람들의 일부가 당하는 운명일 것이다.

(2) 어떻게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보호되었는가? 여러 번 위험을 당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은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14, 15절). 그들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1] 어떠한 사람들도 그들을 곤고케 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는 그들을 미워하고 해하려고 했던 자들은 손이 묶이고 그 하고자 했던 바를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창세기 35장 5절에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거기에서, "야곱의 아들들을 추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위험(헤아릴 수 없는 속박)이 그 사면이 고을에게 임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2] 그들에게 해를 끼쳤던 왕관을 쓴 자들까지도 제지받고 견책받았을 뿐 아니라 통제되고 좌절되었다. 그 꿈과 환상 속에서 "열왕을 꾸짖어 이르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라. 그것은 네게 위험이 된다. 아니! 네가 그것을 할 수 있는 힘도 없을 것이다. 나의 선지자를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애굽의 바로 왕은 재앙에 걸렸으며(창 12:17) 그랄의 아말렉왕은 준열히 책망받았다(창 20:6). 아브라함에게 악행을 한 댓가이다.

첫째, 왕들까지도 악을 행한다면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그의 기름 부음받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의 기름, "기쁨의 기름"을 받았기 때문이다(요일 2:27).

셋째,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해하려고 건드리는 자들은 여러 방식으로 보응될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방심하지 않으신다. "그들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지 그의 눈동자를" 건드리는 셈이다.

넷째, 선지자들을 해하고 아니! 그들을 죽이려하는 자들(많은 자들이 행한 바와 같이)은 저들에게 어떤 해도 줄 수 없다.

다섯째, 하나님의 기름 부음받은 선지자들은 기름 부은 왕들보다 그에게 더 소중하다. 여로보암의 손은 예언자에게 뻗쳐졌을 때 말라버렸다.

2. 그들은 놀랍게도 식량의 공급을 받고 채워졌다.

(1) 그들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도 "그는 기근을 불렀다'(16절). 모든 심판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명령을 내리면 어떠한 장소도 저들의 감시와 심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족장들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서 좋은 땅에서일지라도 그들이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이 과거보다 더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신 것을 명백하게 깨닫는다.

(2) 하나님은 저들의 안전을 위해 은혜롭게 돌보신다. 그들이 가나안 체류자가 된 것은 그의 말씀에 대한 복종과 그의 약속에 대한 신뢰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해하려는 어떤 악도 허락치 않으며 그들을 미혹시키는 선의 결핍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는 저들에게 악을 행하려는 바로를 제지하였듯이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다른 자를 들어 세우셨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목자요 초석이 되어졌으며 거룩한 "살아 있는 자손"을 구원하게 되었다(창 44:24; 50:20).

이것을 하기 위해서



[1] 그는 비천하고, 아주 비천하게 되었다(17, 18절). "하나님은 요셉을 앞서 보내셨다." 기근이 시작하기 수년 전에 기근에서 저들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은 먼저 그를 보내셨다. 하나님의 섭리의 통찰과 예보가 얼마나 광대한가! 그러나 거기에서 교회의 영접을 위해 준비하려 했던 그가 어떠한 모습으로 애굽에 갔던가? 그는 대사의 자격으로 가지 않았다. 대리인이나 대표자의 자격은 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유롭게 될 어떤 가망도 없는 노예, 즉 "종으로 팔려갔다." 이것은 완전히 낮아진 것이다. 그가 위대하게 될 가능성이란 전혀 없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욱 낮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그는 갇힌 자가 된 것이다(18절). "그들은 그 발을 차꼬로 상하게 하였다." 그의 여주인을 강간했다는 부당한 죄목이 그에게 매우 고통스러웁게 되었고, "그 혼은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그의 투옥의 원인이 되었던 거짓된 고발은 특별히 그를 슬프게 했으며 그의 마음을 찔렀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그가 더 좋게 되는 길이었다.

[2] 그는 높여졌고, 더 지극히 높여졌다. 그는 재판받거나 보석(保釋)되지 않고, 하나님이 그의 해방을 정한 때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19절) 계속 갇힌 자가 되어 있었다. 즉 그의 꿈 해몽이 전해지고 술 맡은 관원장에 의해서 바로의 귀에 그 보고가 전해질 때까지는 갇힌 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응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장차 될 일들을 예견하여 잘 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신 것이 그의 여주인이 그에게 지워주었던 불명예를 제거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러한 능력을 그런 나쁜 사람에게 주었으리라고 생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저를 단련하였다." 그리고 그의 신앙과 인내를 단련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의 석방을 위한 명령을 권능 가운데서 나타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신뢰하는 모든 자에게 위로로 나타날 때가 있는 법이다(합 2:3).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말씀으로 응하시고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석방하였다." 왜냐하면 왕의 마음도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왕은 요셉이 하늘의 지지를 받는 자인 것을 발견하고서

첫째, 그를 옥에서 석방했다(20절). 그는 "저를 석방하였다." 하나님은 종종 그의 놀라운 섭리로써 무죄로 억눌린 자의 소송을 변호한다.

둘째, 그는 요셉을 가장 높은 지위에 나아가게 했다(21-22절). 그는 자기 집의 궁내대신으로 삼았다("저로 그 집의 주관자로 삼았다"). 아니! 그는 그를 재무장관으로, "그의 모든 재산의 관리자"로 삼았다. 그는 그를 나라의 총리대신으로, 그의 의회의 주관자로 삼아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다." "내 백성이 다 네 명에 복종하리라"(창 41:40, 43, 44). 그는 요셉에게 대 재판관의 자격을 주어 그의 백관들까지라도 심판하며, 불복종하는 자들을 벌하게 하였다. 이러한 모든 이러한 모든 일에서 요셉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의 일을 당하게 되었다.

1. 기근으로 말미암아 멸망해 가는 이스라엘의 집을 구원할 교회의 아버지가 되어야 했다. 그는 히 믿음의 집안에서 선을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위대하게 된 것이다.

2. 그는 장차 올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장차 올 그리스도의 모습과 같이 요셉은 낮아지고 종의 형태를 입었기 때문에 높여졌고, 모든 심판권이 위탁되었기 때문이다. 요셉이 이와 같이 먼저 보내졌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모든 집을 유지시킬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가되었다"(23절). 거기에서 그와 그의 모든 가족은 명예롭게 안락하게 오랫동안 지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신약의 교회는 광야에서도 양식을 공급받는 처소를 가지며, 거기에서 교회는 "한 패와 두 패와 반패를 양육받는다'(계 12:14). 진실로 교회는 양육받게 될 것이다.

3.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창대케 될 것이라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에 따라서 놀랍게 번성하였다(24절), 애굽에서 '그는 그 백성을 크게 번성케 하였다."

그들은 물고기 떼와 같이 번성하였으며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은 "그들의 대적보다 강하게 되었으며" 저들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되었다. 바로왕은 그것을 인식했다(출 1:9).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때 는"하나의 작은 것이 천 개의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약속은 그 양속들이 비록 천천히 실행된다고 할지라도 확실하게 실행되는 것이다.

 

105:9 없음.

 

105:10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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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24 없음.

 

105:25

출애굽 상기(시편 105:25-45)

이 시편에서 족장의 역사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에 그들은 하나의 국가로 성장했다.

Ⅰ.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의 고난(25절). 그는 그들을 보호했던 애굽인들의 "마음을 변하게 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였다."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이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저들을 미워하게 하였다. 비록 히브리인들에 대한 저들의 옛 반감(창 43:32; 44:34 에서 읽은 바 있다)이 잠시 동안 잠자코 있었으나 이제는 이전보다 더욱 더 격렬하게 되살아나게 되었다. 전에는 그들이 히브리인들을 경멸했기 때문에 미워했지만, 이제는 두려워하기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 그들은 저들에게 "교활하게 행하고." 모든 술책을 다해서 저들을 약화시키고 황폐케 하며 저들의 성장을 억제하는 방법과 수단을 강구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의 짐을 무겁게 하고 애활을 혹독하게 만들고, 저들의 남자 아이는 낳자마자 죽였다. 악은 교활하게 파괴시킨다. 사탄은 독(毒)을 품은 뱀의 교활함을 지니고 있다. 애굽인의 마음을 그렇게 돌린 것은 하나님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은 우리에게 친구나 적이 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만들어낸 분은 아니지만 그것을 통하여 그는 그 자신의 목적을 이룬다.

Ⅱ. 애굽으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 즉 결코 잊혀질 수 없는 경이의 사건은 십계명에 대한 서문으로 삽입되었다. 다음의 사항들을 주의 깊게 연구해 보자.

1. 그 구원에 사용된 도구들(26절). "그는 그 종 모세를" 이 심부름을 위해 "보내시고, 그를 수행하도록 아론을 보내셨다." 모세는 저들의 율법 전달자로, 최고 통치자로, 그리고 아론은 대제사장으로 택함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인들로 그들을 존경하여 더욱 기쁘게 복종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사용하였다.

2. 그 구원을 성취하는 수단을 보자. 그것은 애굽의 재앙이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이 저들에게 명하신 바대로 저들에게 알림으로써 명령을 준수했다. 그리고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라고 보내진 요나가 다시스로 갔을 때 행해진 바와 같이 "그들은 그 말씀을 어기지는 아니하였다"(28절). 모세와 아론은 바로의 진노에 대한 어리석은 두려움에도,애굽의 불행에 대한 어리석은 동정에도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애굽인에게 가하라고 명하신 재앙의 어떠한 것도 늦추거나 완화시키지 않았다. 이 명하신 대로 저들에게 재앙을 가하기 위해서 손을 내뻗었다. 심판을 수행하라는 지시를 받은 자들은 자기들의 의무 불이행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애굽의 재앙들을 하나님의 "표징, ' '기사'라고 했다(27절). 그것들은 그의 권능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그의 진노의 표징이며 감탄과 거룩한 경외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의 표징의 말씀을 보였다'(원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모든 재앙은 그것에 수반되는 설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창조와 섭리의 일반 사건과 같이 암암리의 표징이 아니라 분명히 말하고 있는 표징이다. 그래서 그들은 크게 외쳐 말했다. 그들이 가한 재앙이 순서대로는 아니나 거의 모두 여기에 상술되어 있다.



(1) 흑암의 재앙(28절). 이것이 여기서는 처음에 언급되었지만 마지막 재앙이었다. 하나님이 "흑암을 보내시니," 그것은 효력을 발생하였다. 그의 명령은 그것으로 '어둡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즉,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다." 즉 할례받지 않은 자들은 모두 할례를 받으라는 명령이 주어졌고,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삼일 동안 흑암이 저들에게는 하나의 보호책이 되었다.

옛 번역은 70인 역(Lxx)을 따라 그것을 이렇게 읽는다. "그들은 그의 말씀에 복종치 않았다." 그것은 이러한 재앙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을 가도록 허락하지 않은" 바로와 애굽인들에게 적용될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 성경에는 그러한 근거가 전혀 없다.



(2) 나일강(그들이 우상화했던)을 "피가 되게"하고, 모든 물을 변하게 하여 "저희 물고기를 죽이셨다"(29절). 그리하여 그들은 음료수를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맛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민 11;5).

(3) 개구리가 저들의 땅에 떼를 지어 나타났고 그들에게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단지 수적으로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극성을 부리면서 나타나서, "왕의 궁실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해충이 많이 번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점점 메스꺼워졌으며 독에 접촉되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경멸하고 적대감을 품게 되었다.

(4) 여러 종류의 파리 떼가 공중에서 들꿇고 있었으며, 그들의 의복에는 이가 생겼다(31절; 출 8:17, 24). 하나님은 가장 미천하고 약하고 비열한 동물들도 사용하실 수 있다. 교만한 압제자의 심판과 굴욕을 오히려 무력한 도구들을 사용함으로써 커다란 수치가 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확신케 한다.

(5) 우박은 저들의 나무, 심지어는 "그들의 해안에 있는" 가장 튼튼한 수목(樹木)까지도 찍으며, 포도나무, 그리고 다른 과목들을 죽게 했다(32, 33절). 나무를 소중하게 하는 비 대신에 나무들을 부수기 위해서, 우박을 보내시고, 그것과 함께 천둥과 번개를 보내어 타오르는 유황불 줄기와 같이 "저희 땅에 화염을 내리셨다"(출 9:23).

(6) 메뚜기와 황충이 사람을 위해 예비된 채소를 모두 먹어 치우고 사람의 양식을 먹어 치웠다(34, 35절). 하나님이 얼마나 다양한 심판을 내리시는가를 보라! 강퍅한 압제자에게 재앙을 보냈으나, 그것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을 가도록 허락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나님은 똑 같은 재앙을 두 번 내리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화살통에 많은 화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메뚜기와 황충은 하나님의 군대이다. 그들이 개별적으로는 아무리 약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애굽인들이 무서워할 만큼 많은 수의 메뚜기와 황충을 일으킬 수 있다(욜 1:4, 6)

(7) 역병(疫病)과 독종의 재앙을 제외한 모든 재앙을 언급하고서 정복하는 최후의 일격이었던 "장자'의 죽음의 재앙으로 결론짓고 있다(36절). 죽음의 밤에, 애굽인들 가정의 기쁨과 희망, 즉 "저희 모든 기력"과 그 땅의 꽃들이 모두 파괴하는 천사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애굽인들은 하나님의 장자를 해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보복의 방식으로 저들을 갚아 주신 것이다. 그럼으로써 저들은 그의 심판을 면할 수 없었고, 너무 늦어서 이제는 저들 자신을 구제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그가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와 대적했던 자들은 확실히 패자(敗者)로 남게 될 것이다.

3. 이러한 구원에 수반된 자비를 보자. 이스라엘은 애굽의 속박 가운데서

(1) 곤궁하게 되었지만, 이제 그들은 부요하고 풍부하게 되어서 탈출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출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셨다"(37절). 하나님은 저들의 이웃에 대한 기부를 요청하고 모이도록 힘 주셨다(그것은 실로 이스라엘인들이 저들에게 행했던 봉사에 대한 대가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애굽인들은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저들을 번영하게 하려고 했다. 저들의 부요함은 하나님의 것이며 저들의 마음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따라서 그는 그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다.

(2) 그 때는 그들의 생활이 혹독했으며, 그들의 육체와 영혼은 종살이로 파괴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냈을 때는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아무도 없었으며," 병든 자도 쇠약한 자도 없었다. 그들은 재앙이 애굽의 모든 장자를 휩쓸었던 바로 그날 밤에 탈출했으며, 애굽의 어떠한 질병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수천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도 병들지 않은 것은 확실히 저들이 애굽과는 결코 같지 않았다는 것이 아닌가! 유대인의 적들이 후대에 이 문제에 대해서 한 표현은 거짓이었다. 저들의 말로는, 그들이 모두 나병을 앓았으며, 지긋지긋한 질병에 걸려 있어서, 애굽인이 이스라엘인들을 추방했다는 것이다.

(3) 그들은 애굽인들에게 유린당하고 모욕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광스럽게 탈출했다(38절). "그들이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놀랍게도 그들을 인정하셔서 저들의 단원을 들으시고, "이스라엘에 대한 두려움이 저들에게 임하고," 저들 자신을 좌절되고 낭패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교회를 괴롭히고 치우려고 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 교회가 "무거운 짐이 되는 반석"이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길로부터 나오게 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할 것이다(슥 12:3).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그가 승리하실 것이다."

(4) 그들은 나날을 슬픔과 탄식으로다. 그것은 애굽의 종살이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오게 하셨다(43절). 애굽의 비통에 찬 외침이 저들의 장자가 모두 살육당했을 때 크게 들려옴에 반하여, 이스라엘은 기쁨에 찬 환성을 크게 외쳐졌다. 그들은 기쁨의 성을 외칠 때, 그들이 떠나온 종살이의 땅을 되돌아 보았으며, 또한 그들이 서둘러서 나아가고 있는 기쁨의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하나님은 저들의 입에 새로운 노래를 주셨다.

4. 하나님이 광야에서 저들을 돌보셨다.

(1) 그들의 피난처를 마련하셨다. 그는 하늘의 덮게 외에도 저들에게 다른 하늘의 덮개를 제공하였다.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그것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장막과 우산이 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의 의복도 되게 하였다. 구름은 종종 하나님의 누각이었으나(시 18:11). 이제는 그것이 이스라엘의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감추인 보배였기 때문이다.

(2) 어두움 속에서도 그들을 안내하고 휴식케 하였다. 그는 "밤에는 불을 밝히는" 불 기둥을 예비하셨고, 그래서 그들은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그의 백성의 모든 불평에 대비하시며 그들에게 주야로 모든 조건에 대해서 그들이 하늘에 올라가서 영원에 이를 때까지 간편한 구조(救助)로 풍부케 하신다.

(3) 그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과 맛 좋은 것을 먹이신다. 때로는 그는 그들의 식탁에 메추라기를 풍성케 하셨다(40절).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를 오게 하셨다." 물 잔치를 열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하늘 양식으로" 풍요하고 만족하였다. 그렇게 만족하지 못한 자들은 호기심이 있어 더 좋은 것을 바라는 자들이다. 그들은 천사의 양식을 끊임없이, 값없이 먹었다. 그리고 그들이 먹었던 모든 음식물이 그 안에 기적을 삼고 있었던 바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마셨던 모든 물에도 그러하였다. "그가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 나다"(41절). 일반 섭리는 물을 하늘로부터 가져오고, 양식을 땅에서 나오게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권능이 양식을 구름으로부터, 물론 반석으로부터 가져오셨다. 그것은 자연의 법칙과 과정을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자연의 하나님과는 다른 활동인 것이다. 물이 단 한 번 흘러나온 것이 아니라 "강같이 흘렀다." 그리고 풍요하고 끊임없이, 가는 곳마다 저들의 장막에 공급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를 따르는 반석"(고전 10:4)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하며, 기적이 증가하여 "하나님의 강(이게 불려져야 옳을 것이다)이 마른 땅에 흘렀다"고 했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바대로 아라비아 사막의 모래에 의해서 그물이 삼켜지거나 상실되지 않았다. 여기에 약속이 암시되어 있다. "내가 사막에 강을 내리니,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사 43:19, 20).

5.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44절). "그는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셨다" 그리고 오랫동안 저들이 희망해 왔던 것을 소유하게 하였으며,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기쁨을 취한 것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열방들의 수고한 대가를 소유로 취하게 하셨다." 즉 죄인의 재물이 의로운 자를 위해 저축되었다. 애굽인들은 오랫 동안 이스라엘인들의 수고를 취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수고를 취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때때로 교회의 적은 다른 계산을 치르도록 되어 있다.

6.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저들에게 행하신 이유를 보자.

(1) 그것은 그 자신이 말씀의 약속들을 수행하려고 했기 때문이다(42절). 그들은 하잘 것 없었고 감사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은 "그 거룩한 말씀(즉, 그의 계약)과 그 중 아브라함을 기억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위대한 일들을 은총 가운데서 행하셨다. 그리고 그는 말씀이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신 7:8 참조).

(2) 그것은 그가 저들에게 말씀의 교훈을 수행하려고 하고, 그들을 그가 베풀었던 가장 큰 친절로 결속시키려 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저들에게 가나안을 소유하게 하신 것은 그들이 풍부와 기쁨속에 안락함과 영광 속에 살면서 열방 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로다." 한 백성을 형성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직접 통치 아래 있게 하려 함이며, 계시의 종교로 그들의 국가조직의 근거가 되도록 하려 함이었다. 즉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땅을 취함으로써 그 이익물로부터 하나님의 제단에 예물을 가져오게끔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선한 것을 행함으로써 그들은 그의 법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저들의 선한 것을 계획하며 그에게 복종하는 가운데서 살아가야 하는 감사의 의무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살아야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되었고 그에 의해 유지되고, 구속받기 때문이다.

이 시편이 결론으로 맺고 있는 할렐루야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써,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러한 커다란 의도에 기쁨으로 대하는 찬동으로써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과거에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행하셨다면, 그는 지금 우리에게서 적은 것을 기대하실 것인가? "여호와를 찬송하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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