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서약(시편 101:1-8)
다윗은 여기에서 좋은 정치인과 좋은 가장의 모범을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한다. 만일 이들이 저들의 지위의 의무를 주의 깊게 이행한다면 그것은 일반인들의 변혁에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Ⅰ. 이 시편의 선택된 주제를 살펴 보자. "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1절).
1.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는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에서 잘 볼 수 있다. 그가 왕으로 임명된 이래로, 그는 한편으로는 많은 책망과 곤고를, 다른 한편으로는 저에게 행하신 많은 놀라운 구원과 그에게 주신 은총을 경험했다. 그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서 하나님께 찬양하려는 것이다.(1)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는 "인자와 공의(심판)"로 점철되어 있다. 하나님은 자비와 공의(심판)를 동시에 두었고, 저들에게 봄날의 단비와 뜨거운 햇빛을 명했다. 그것은 다윗과 그의 가족에게도 그러했다. 언약궤의 귀환의 인자가 있었을 때 웃사의 죽음이라는 심판(공의)이 있었다.
(2) 하나님이 그의 섭리로 우리에게 인자와 공의를 합하여 역사할 때 그에게 이 두 가지로 인하여 노래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이 양자로 인하여 적절하게 감동되어 하나님께 적절한 찬사를 올려야 한다. 이것에 대한 갈대아 의역판은 주목해 볼만하다. "당신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면, 당신께서 나에게 어떠한 심판을 내리신다 하더라도 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찬송을 부르겠나이다." 우리의 외적인 조건이 기쁘거나 슬프거나 간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해야 한다. 순조로운 조건의 웃음이나 괴로운 상황의 눈물도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노래를 위한 곡조로부터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
2. 그것은 다윗의 인자와 공의(심판)에 관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 시편에서 그는 자비롭고 공평하고 현명하게 되기를 약속하고 있다. 왜냐하면 심판은 종종 자유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공평하게 행하는 것과 자비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의 요체이다. 가정의 자비와 가정의 불행은 모두 가정의 신앙을 불러 일으킨다. 다윗은 그의 맹세를 노래 또는 시편으로 서약한다. 그는 그것을 그의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잘 전하며 그의 자손들과 후계자들에 대한 모범을 위하여 그의 가족에게 보존토록하였다.
Ⅱ. 다윗은 그의 궁정에서 스스로 주의깊게, 양심적으로 행동하기 위하여 일반적인 서약을 했다(2절). 우리는 여기에서 그의 생활 즉 그의 일반적인 생활에 관한 좋은 목적을 보게 된다. 그는 모든 일에 그 자신이 처신하는 법과 규칙으로 사는 법을 자기의 모범으로 삼지 않고, 그 자신이 왕이었으나 엄숙한 계약에 의해 그 자신을 선한 행동에 결속시켰다. 그리고 특히 그의 가정에서의 생활에 관한 좋은 목적을 보게 된다. 그가 보좌에 앉았을 때, 그가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어떻게 행하여야 하는지 하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그가 세상의 눈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눈 아래서 그 자신을 볼 수 있는 "그 집 안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보게 된다. 우리가 밖으로 나아 갈 때, 곧 사람들 앞에 설 때 종교를 입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는 우리 가정에서도 그 종교로 우리 자신들을 다스려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도 저들의 가정을 돌보며 다스리는 것에서 면책될 수 없다. 오히려 저들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딤전 3:4) 좋은 본보기를 남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윗은 공중적인 업무로 바빴을 때에도 그의 가정을 축복하러 돌아왔다(삼하 6:20).
(1) 그는 양심적으로 온전하게 행할 것과 하나님의 계명의 길에서 완전한 길로 행할 것을 결심한다. "하나님의 계명은 완전한 길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완전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이나 인간을 속이지 않고 진실로써 곧 "완전한 마음으로" 행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규범으로 삼고 그로 인해 지배받을 때, 곧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의 목적으로 삼고 그를 향해 전진할 때 우리는 완전한 마음으로, 완전한 길에서 행하게 되는 것이다.
(2) 그는 신중하게, 분별력을 가지고 행할 것을 결심한다. "나는 자신이 현명하게 처신하고 완전한 길에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지도하겠나이다." 그는 신중하게 행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독교적 경건의 길에서 기독교적 분별력에 의해서 행하도록 결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현명하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빙자하여 완전한 길로부터 벗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길을 지키면서도, "뱀처럼 슬기로와야 한다."
2. 우리는 여기에서 좋은 기도를 본다. "오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사람이 자기 집을 가지고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그 집에 함께 계셔 주시기를 비는 일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리 고"완전한 길"에서 "완전한 마음"으로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가가 다윗에 대하여 진술한 것을 비교해 보면(삼상 18:14) 우리는 그의 목적과 기도가 얼마나 정확하게 응답받았으며, 또 그렇지 않았을 경우 얼마나 공허했겠는가를 발견할 수 있다. 다윗은 그가 목적했던 바와 같이 "모든 일에 지혜롭게 행하였으며," 그가 기도한 것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셨다."
Ⅲ. 그는 여기에서 그 자신이 악을 행하지 않기로 구체적 서약을 한다. "나는 비루 한 것을 내 눈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민중의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어떠한 것도 계획하거나 목표로 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의 신하들을 곤궁하게 함으로써 그 자신을 부하게 하거나 저들의 권리를 탈취함으로써 그 자신의 특권을 확대하는 일을 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세상적인 일에서도 올바르고 선한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금지된 열매와 죄짓지 않고는 할 수 없는 것을 꾀하려 해서는 아니된다. 이것이 바로 악을 보는 것으로부터 눈을 감아 버리는 선한 사람의 성품이다(사 33:15). 나는 공평의 길로부터 "멀어진 자들의 행실을 미워한다"(욥 31:7). 나는 그것을 피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꺼려한다. 그것은 내게 부착될 수 없다. 만일 내 손에 부정의 오점이 묻는다면 그것을 곧 씻어버리리라.
Ⅳ. 그는 악한 종들을 데리고 있지 아니할 것이며, 사악한 종들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사악한 종들을 고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떠한 은총도 저들에게 보여 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저들이 사악한 길을 계속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또 저들과 같이 행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계획된 것이다. 그는 저들과 친교하지 않을 것이며,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의 가정에 죄의 오염을 퍼뜨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저들을 신뢰하지 아니하며 권세를 주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개혁되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확실히 선한 모든 것의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다윗은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서 언급할 때 술취한 자, 간음한 자, 살인자, 불경한 자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러한 대역 죄인들을 집으로 받아들일 위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저들과는 친교를 맺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별로 죄가 될 것 같지는 않으나 역시 위험스러운 그런 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 그는 마음이 나쁜 짖?은 악한 사람들, 크게 원한을 품고 악한 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들, 저들이 행한 위해(危害)를 관심하지 않는 자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다. "사특한 마음(방해하고 심술궂게 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은 내게서 떠날 것이다(4절). 그는 자들은 사랑으로 맺는 친교에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알지 아니하리로다." 즉 "그러한 사악한 자와 함께 할 수 없으므로, 그런 자는 아는 바도 대화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은 악과 적개심의 누룩이 전체의 덩어리에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2. 그는 이웃의 평판을 비밀리에 손상시키고도 기쁨을 취하는, 남을 비방하는 자들과는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을 것이다.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5절), 남의 선한 이름에 침해 가되도록 거짓된 이야기를 하거나 퍼뜨리는 자를 나의 가족과 궁정에서 내가 멸할 것이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부정한 언사로 왕의 호의를 사 자기들의 지위를 올리려는 많은 노력을 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왕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원(지도자)이 거짓말을 경청하면, 그 하인은 모두 악하니라."(잠 29:12). 다윗은 저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환심을 사려고 희망하는 고관을 배제시킬 것이다. 그는 법정에서 다른 사람을 공공연히 거짓되게 고소하는 자를 벌할 뿐만 아니라 비밀리에 남을 비방하는 자를 심판할 것이다. 나는 다윗의 므비보셋과 시바의 경우에도 이 서약을 기억했더면 좋았으리라 생각한다.
3. 그는 불손하고 자만하고 야심 있는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을 것이다. 가정과 법정과 교회에서 위해(危害)를 행하는 어떠한 자와도 관계를 맺지 아니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만에서만 싸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모든 높은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자들을 참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들은 선을 행하려는 것보다 그들 자신과 가족을 확대시키려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며, 다윗도 그렇게 하고자 했다.
4. 거짓말을 예사로 하고 사기하며 속이는 자들과 다윗은 관계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거짓 행하는 자는 나의 가정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발견되는 즉시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리라." 다윗은 그러한 사람들을 관리로 고용하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오히려 분노로 집에서 추방될 것이다. 이 점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는 자"였다. 왜냐하면 교만한 모습과 거짓말하는 혀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심판날에 "거짓말을 좋아하고 또 지어내는 자마다"(계 22:15) 추방시킬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Ⅴ. 그는 그를 신뢰하는 정직하고 선한 자들에게는 "내 눈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피리라"(6절)고 서약한다. 그의 종과 나라의 장관을 선택할 때, 그는 이스라엘 땅에서 뽑으며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태생 이외에는 아무도 적합하지 않으며, 실제로 이스라엘인, 땅의 충성된 자를 원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조차 불 충성된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이러한 충성된 자들을 찾기 위해 살피고 찾아낸다. 저들은 온화하여 궁정의 높은 지위를 위해 도성으로 밀려오지 않으며, 땅에, 지방에, 도성 밖에 머물러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저들이 가장 즐겨하지 않는 영광과 진리의 자리에 가장 적합하다. 그러므로 현명한 왕들은 그러한 자들을 저들의 은둔소와 사생활에서 찾아내어 함께 거하며 함께 일하게 될 것이다.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고 했다. 나라는 정신(廷臣)을 만들기 위해 정직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다면 그가 틀림 없이 적합할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좋은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것을 지키지 않고 아히도벨을 그의 오른팔로 삼았을 때, 그의 판단은 잘못되었다. 종을 가정에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서 가장(家長)으로서의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다윗의 자손은 "땅의 충성된 자"에게 눈을 두며, 그의 비밀은 저들과 함께 있으며, 그들은 "그와 함께 거할 것이다." 사울은 종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선택했고(삼상 8:16), 다윗은 선량함을 보고 선택했다.
Ⅵ. 그의 결심은 궁정은 물론 도성과 나라의 개혁에 대한 열심히 확대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말하리라"(8절). 사악한 자가 아무도 남겨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모든 악인들을 멸할 것이다. 그는 그것을 아침마다 행하며 시간을 늦추지 않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는 태도의 개혁과 악덕의 폐지를 열심히 촉진시킬 것이다. 그리고 저들은 그 일에 계획된 어떤 것을 행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그의 나라의 회복과 그 나라의 평화뿐만이 아니라 교회의 순결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죄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예루살렘뿐만이 아니라 온 땅이 "여호와의 성"이다. 동시에 복음의 교회이다. 여호와의 성의 관심사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처지에서 그렇게 좋은 일을 향해 저들의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열심히 그것에 감동되는 것이 모두의 의무이다. 다윗의 자손(그리스도)이 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악한 자들을 제거해 버릴 날이 오고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불의를 행하는 자는 누구도 들어 갈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