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튜 헨리 주석, 시편 09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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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여호와의 행사를 찬송함 (시편 92:1-6)

이 시는 안식일에 성소에서, 적어도 통폐적으로 노래하도록 정해졌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사업과 그 사업으로부터의 휴식, 그리고 섭리 가운데 계속하시는 하나님의 사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된 휴식의 날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라." 그러므로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1. 안식일은 거룩한 휴식의 날일 뿐 아니라, 거룩한 일을 하는 날이 되지 아니하면 아니 된다. 휴식은 일하기 위한 것이다.

2. 안식일에 적합한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매 안식일은 감사의 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날의 다른 일들은 이것을 위하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결코 이것을 모퉁이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유대인의 학자 중 한사람은 이것을 메시야 왕국에다 연결시킨다. 그래서 "장차 올 시대에 관한 시' 혹은 "노래"라고 부른다. 그 시대는 모든 날이 안식일이 될 것이다.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는 안식일"을 즐긴다(히 4:9)(이 날은 영원한 안식일의 시작인 것이다.)

Ⅰ.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초청되어지고, 고무되어진다(1-3절). '여호와께 감사함이 좋으니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은 그 자체가 좋은 것이며, 우리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요, 채무요, 바쳐야 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위대하신 하나님께 지불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만일 지불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용납된다는 것과 그것이 하나님에게 열납되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찬양은 즐겁고 유익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보상이 되는 좋은 일이다. 그것은 천사들의 일이며, 하늘의 일이다. 우리가 받는 자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유익하다. 이는 더 많은 자비를 얻는 길이기 때문이다. 모든 축복과 찬양 위에 뛰어난 지존자의 이름을 노래하는 것은 적합하다. 여기서 관찰해 볼 것이 있다.

Ⅱ.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할 것인가? 우리는 그의 "인자와 신실을 나타냄으로써" 찬양하여야 한다. 그의 영광스러운 속성과 완전하심을 확신하여 우리 자신이 그것들에게 크게 감화된 사람으로서, 또한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들을 감화시키기를 원하는 사람으로서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크게 찬양하고 우리를 두렵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장엄하심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뿐만 아니라 그의 인자와 신실을 또한 나타내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선하심은 그의 영광이요"(출 33:18, 19). 이것으로써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선포하시기 때문이다. 그의 자비와 진실은 우리의 믿음과 희망을 크게 부지하고, 우리의 사랑과 순종을 크게 고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이것들을 간절히 원함을, 또한 우리가 기뻐함을 나타내어야 한다.

이것은 당시에 노래로 뿐만 아니라, "십현금"이라는 악기를 동반해서 찬양되어졌다(3절). 그러나, 그것은 소란하고 정신을 흐트러뜨리게 하는 소리가 아니고, 진지하고 정신을 고정시키는 "정숙한 소리"로 찬양되게 되어 있었다.

2. 우리는 어느 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나? "아침에 그리고 밤마다"해야 한다. 안식일 뿐만 아니라 매일이다. 그것은 매일 요구되는 의무이다. 우리는 공중 집회에서 뿐만 아니라 사실(私室)에서 그리고 우리 가족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우리 자신에게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한다. 우리는 매일을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시작하고, 끝마쳐야 한다. 우리는 신선하고, 그 날의 일을 시작하기 전 매일 아침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하고, 우리가 다시 정돈하고 자리에 들 때 그리고,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매일 밤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밤에 베푸신 자비를 감사해야 한다. 나가며, 들어오며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Ⅲ. 우리는 시인 자신 안에서 이 일을 행하도록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를 지시하는 우리 앞에 놓인 하나의 실례를 가진다(4절).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나를 기쁘게 하였나이다." 유의할 것이 있다.

1. 찬양의 즐거움을 경험한 사람들이 찬양할 의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잘 추천할 수 있다. "하나님의 행사는 찬양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여러 번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지간에 나는 그것을 좋게 생각하고 찬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일로써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다면 그것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셨는가? 그러면, 그의 찬양을 영광스럽게 하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그의 섭리의 행사를 통하여 우리를 기쁘게 하셨으며,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의 은혜를 통하여 위대한 구속 사업을 이루셨는가?

(1)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믿음과 희망에 대한 격려를 받자. 시인은 그와 같이 한다. "주의 손의 행사로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기쁜 기억으로부터 우리는 장차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실 것에 대한 즐거운 기대를 증대시킬 수 있다. 그리고 확신 가운데 기뻐하며 그것에 대한 보증을 모든 반대자들 앞에서 노래할 수 있다(살후 2:13, 14).

(2) 거기로부터 거룩한 경배와 하나님께 대한 경탄이 나오게 하자(5절). "여호와여1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상상을 넘어선, 표현을 넘어선 크심(위대함), 위대한 능력과 지혜의 산물, 그 크신 중대함과 중요성, 사람의 행사는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사의 위대함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에 대해서 존경과 두려운 경탄을 하고, 그것들의 장엄함에 놀라게 되기까지 한다. "사람의 행사는 작고 사소하나이다. 이는 그들의 생각이 얕기 때문이니이다. 그러나, 주의 행사는 크고 측량할 수 없나이다. 이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어서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이 행하심이 우리 능력의 결과를 능가하듯이 하나님의 지혜는 우리 지혜의 책략을 능가한다.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9).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요!(롬 11:33)" 하나님의 행하심의 위대함과 그의 생각의 깊음을 생각하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그 자신의 뜻은 모든 것을 행하시는 그의 행하심과 일치한다. 그의 생각의 범위가 얼마나 넓게 뻗으며, 그 생각이 도달하는 길이가 얼마인가!

Ⅳ.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하는 사람들의 성품을 따라 그렇게 하지 말라는 훈계를 받는다(6절). 이 사람들은 어리석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짐승 같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행사를 알려 하지 아니하며, 그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아니한다.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함으로써(시 28:5) 그들 자신이 번영하는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그것은 7절에도 나온다).

그들은 그것을 그들의 행복의 증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파멸을 위한 준비이다. 섭리의 설계를 알지 못하며,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도 많다 할지라도 은혜를 통하여 그것을 알게 되는 사람, 또 그러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감사할 이유를 더 많이 가진다.

 

92:2 없음.

 

92:3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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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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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거하는 자의 안전 (시편 92:7-15)

시인은 하나님의 행사로부터 높이 찬양할 것이 있다고 말하였다(4절). 여기에서도 그는 그와 같이 한다.

Ⅰ. 그는 하나님의 적들에 대하여 개가를 부른다(7,9,11절). 같은 동포가 재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의 정의롭고, 거룩한 영광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들의 파멸을 예견하여 개가를 부른다. 그는 죄인들의 파멸을 높이 찬양한다.

1. 그들은 흥왕한다. 그러나 "악인은" 봄에 일어나는 "풀과 같이 생장하고"(그렇게 많이, 그렇게 두텁게, 그렇게 푸르고, 그렇게 빨리 자라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화려하고 힘있게 흥왕한다(7절). 모든 외부적 번영의 실례들은 그들의 사업의 성공을 약속한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그것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고 그리고, 그것은 선(善)이나 또는 더 좋은 어떤 것의 진정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그것은 "영원히 멸망할 것이다." "어리석은 자의 번영은 자기를 죽이며"(잠 13:2), 죽이기로 작정한 양은 가장 기름진 목초를 먹이는 법이다.

2. 그들은 대담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적이다(9절). 그들 스스로가 그러한 것을 쉽게 인정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반대자요, 하나님과 싸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에 대하여 반역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멸망하리라고 예견하는 것은 쉽다. "누가 하나님께 대하여 그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서 번영할 것인가?" 불의를 행하고, 회개치 않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적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와 같이 그들은 멸망하고 흩어질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지금 서로 밀접히 연결되고 하나님과 종교에 대항하기 위해 결합하여 제휴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흩어질 것이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에 대항하여 서로 협력하는 것이 불가능 할 것이다. 장차 오는 세상에서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시 1:5).

3. 그들은 시인에 대하여 특별한 악의를 가지고 있으며 (갈대아판은 그러하다), 그 때문에 그가 그들을 두려워할 시험에 빠질 수 있기는 하지만, 그는 그들에게 대하여 개가를 높이 부른다(11절).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 귀로 들었도다." 나는 그들이 아무런 심한 해악도 나에게 행하지 못하는 것을 볼 뿐만 아니라, 그들이 나에게 행한 해악으로 인하여 그들이 헤아림을 받는 것을 볼 것이다. 히브리서에서는 "내 눈이 내 원수를 볼 것이요, 내 귀가 악한 자에 대하여 들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그가 볼 것 또는 들을 것을 말하지 않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러므로, 그가 만족하여질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말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리스도를 가리킬 것이다. 사탄과 죽음, 음부, 그리고 그를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그의 복음을 반대하고 최후의 날에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의 멸망에 대하여 언급한 것일 것이다. 그리스도를 대항하여 일어나는 사람들은 그 앞에 엎드려지고, 그의 발등상이 될 것이다.

Ⅱ.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높이 찬양한다.

1. 하나님의 영광에 대하여(8절),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우리를 대항하여 싸우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한때 높여질는지 모른다. 그리고, 높은 손으로 그를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빼앗으리라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는 높으시고,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그들의 높음은 낮아지고, 꺾여질 것이나, 당신은 영원하시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교만과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무력한 협박으로 인하여 낙담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좀이 옷과 같이 그들을 먹을 것이지마는, "하나님의 의는 영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사 11:7, 8).

2. 하나님의 애정과 그 열매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10절).

(1) 그 자신에 대하여(절). "스스로 지존하신 여호와여 내뿔을 높이소서." 위대하신 하나님은 명예의 샘이시다. 영원히 높으신 그 자신이 자기 백성을 영원히 높이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모든 성도의 찬양이시기 때문이다(시 148:14). 행악자들은 "뿔을 높이는 것"이 금지된다(시 75:4, 5). 그러나 하나님은 섬기고 하나님의 나라의 명예와 권세의 중요성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그리고,그가 기뻐하시는 대로 그 명예와 능력을 지키고 높이고 사용하며 처리하도록 위탁하는 사람들은 그가 이 세상과 저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까지 "그들의 뿔을 들소뿔처럼" 높이실 것이라고 희망 할수 있다. "주의 적들이 패망할 때에" 주께서 내 뿔을 높이실 것이다. "악인들이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도록 심판을 받을 그 때 "의인들은 해와 같이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추가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어셨나이다." 그것은 그가 그의 직무를 위하여 기름 부음받은 성례식을 의미한다. 또는 그가 좋아하는 대로 자주 그 신선한 기름을 가질 수 있을 만큼 풍성함을 의미하고 또는 그의 영혼이 시들어질 때 그를 소생시키기 위하여 새롭게 하는 풍성한 위로를 의미한다. 여기에 있는 경우와 같이 필요 한때에 돕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으로부터 이것이 주어질 때 그때 우리는 신선한 기름으로 부음을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내가 늙었을 때에 주께서 신선한 기름으로 나에게 부으시리이다. 주께서 나의' 늙은 나이를 풍부한 자비로 높이시겠나이다. 70인 역 성경에는 그와 같이 되어 있다(14절과 비교하라). "결실하며" 하나님의 영의 위로와 그의 구원의 기쁨이 의의 길에서 발견되는 백발의 머리에 신선한 기름부음이 될 것이다.



(2) 모든 성도들에 대하여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의로운 나무"로써 묘사된다(사 6:3)

[1] 그들이 심겨진 좋은 장소.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13절) 의로운 나무는 그들 스스로 자라지 않는다. 그들은 심겨졌다. 보통 땅에도 아니고 낙원에,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다. 나무는 일반적으로 집에 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무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말씀과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에 심겨졌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집에 심겨졌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영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살게 하고 결실하게 하는 진액과 힘을 수여받았다 .그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에 그들 자신을 고정시키고, 그 속에 뿌리박고, 그 곁에 머무르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 그들 자신을 두며,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결실한다.

[2] 그들이 보호를 받는 좋은 계약, 다음 것이 여기에 약속되어 있다.

첫째, 그들이 장성할 것이라는 점이다(12절). 하나님께서 참된 은혜를 주시는 곳에 더욱 은혜를 주시어서 하나님의 나무는 레바논에 있는 키 큰 백향목과 같이 높이 자랄 것이다. 그들은 하늘에 가까지 자랄 것이며, 거룩한 야망을 품고 위에 있는 세상을 갈아할 것이다. 그들은 백향목과 같이 더 강하게 자라고, 사용하기에 더 적합하게 될 것이다. "손을 깨끗이 하는 사람은 더욱 더 강하게 될 것이다.'

둘째, 그들은 직업에 있어서의 신용과 그들 자신의 영혼의 의로와 기쁨에 있어서 번성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당당한 몸과 큰 가지를 가진 종려 나무와 같이 번성'할 것이다(아 7:7; 레 23:40; 삿 4:5). 그 열매는 대단히 달다. 특별히 여기서는 그것은 항상 푸르러 있는 것으로 암시되어 있다. 악인은 번성하나 곧 시들어 버리는 풀과 같고(7절), 의인은 오래 살며 겨울에도 변치 않는 종려나무와 같다. 종려나무에 관한 말이 있으니, sub pondere crescit - 즉 종려나무는 압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자란다. 그와 같이 의인은 압박을 받으면서도 번성한다. 그들은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번성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겨졌기 때문에"(뿌리가 그 곳에 있음)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한다. 거기에서 그들의 나뭇가지가 퍼진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졌다." 그러나 그들의 빛이 또한 사람들 앞에 비친다. 선한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뛰어난 목표를 가지게 하라. 그것은 그들이 탁월하여지고 번성하는 하나님의 궁정을 장식한 번성한 나무같이 우리의 구주, 하나님의 교회를 장식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에서 번성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번성하는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게 하라. 그것은 이 약속 때문이다. 그들은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할 것'이다. 그들의 외양의 청청함은 속의 진액이 풍족하기 때문이다. 뿌리로부터 감람나무의 진액이 풍족하기 때문이다(롬 11:17). 심령에 살아 있는 은혜는 정신이 없으면 하는 일이 오래 번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집에 심긴 나무는 또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할 것이다'(시 1:3). 여호와의 나무가 풍족함이여!(시 104:16; 호 14:5, 6 을 보라)

셋째, 그들이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점이다. 잎 이외에 아무 것도 없으면 그들은 어떤 가치있는 나무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실하며" 성화의 결실들과 모든 생기 있는 헌신의 실례들과 유용한 대화와 선한 사업들은 그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다른 사람들로 교화를 받는다. 이것들이 의로움의 열매들이며, 그 의로움 속에는 의인들을 풍성하게 하는 의무만큼의 특전이 있다. 그 열매들의 풍성은 계명의 소재요 약속의 소재이다. 그들은 늙어서도 열매 맺을 것이다. 약속되어 있다. 다른 나무들은 늙었을 때 열매 맺는 것을 멈추지만, 하나님의 나무에는 은혜의 힘이 자연의 힘과 함께 떨어지지는 않는다. 성도들의 마지막은 때때로 그들에게 가장 좋은 날이며, 그들의 마지막 일은 그들의 가장 좋은 일이다. 이것은 실로 그들이 정직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내는 성실의 가장 확실한 증거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여호와는 정직하시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는 그의 약속에 대하여 참되시며 그의 하신 모든 말씀에 대하여 신실하시다. 그는 그가 시작하신 것을 변치않고 계속하여 일하신다. 약속으로 말미암아 믿는자들이 처음에 신성(神性)에 참여하는 것같이 또한 약속으로 말미암아 신성이 보존되고 지켜진다. 그러므로, 그 약속이 발휘하는 힘은 "여호와께서 정직하시다"는 증거이며, 그러므로 그는 정직한 사람에게 그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다(시 18:25). 시인은 이것을 소리 높여 외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나는 그를 나의 반석으로 선택하였다. 그 위에 집을 짓고, 그 틈 속에 피난하며, 그 꼭대기에 나의 발을 놓는다. 나는 그가 강하다"(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가 안전한 것과 같이 말하게 하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시다." 그의 맘씀이 그 자신을 그러한 상태로 말한 것과 같이 현재도 그러하시며, 미래도 그러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항상 신뢰한 모든 사람들은 그가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분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로서 그 소망을 부끄러워하게 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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