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때의 기도(시편 85:1-7)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실 준비가 이미 되어 있으므로, 말씀의 영과 마음에 작용하는 영을 통해서 그들이 하나님께 탄원을 내게끔 역사하고 계신다. 매우 천하고 연약한 처지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은 여기에서 그들 자신을 하나님께 아뢰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1-3절). "주께서는 우리와 우리 열조를 위해 이러이러한 것을 행하셨습니다." 라고 해야 한다. 현재의 고통에 대한 의식은 이전의 긍휼에 대한 기억을 잊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매우 비천하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기억해야 하고,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주목하여 그에게 찬미를 돌려야 한다. 그들은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즐겁게 말하고 있다.
1.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땅에 호의를 갖고 있음을 보이셨고, 그 땅을 자기의 소유지로 여기사 미소하셨다. "주께서 주의 땅에, 그것을 주의 것으로 여겨 특별한 은총으로써, 호의를 베푸셨나이다." 하나님의 은총은 각 사람에게는 물론 민족들에게 있어서도 모든 선의 원천이며,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탈취하여 소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었다.(44:3).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계속 큰 호의를 베푸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여러 번 멸망했을 것이다.2. 그는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출하셨고, 그들에게 자유를 회복시켜 주셨다. 주께서 야곱의 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하셨고, 쫓겨나서 낯선 땅의 나그네가 되었던 자들, 압제자들의 땅에 갇히었던 자들을 다시 그들의 땅에 정주하게 하셨나이다. 야곱의 포로된 자들은 비록 그 포로기간이 오래 계속될지라도, 때가 되면 돌아오게 될 것이다.
3. 그는 그들을 그들의 죄과대로 다루시지 않았다.(2절). "주께서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하나님은 죄를 사하실 때는 그 죄를 덮으신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온 것은, "그 당시" 그들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총의 일례였다. 그때에 그들의 죄를 사하셨던 것이다.
4. 그는 마땅히 그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그들에 대한 분노를 계속하지 않으셨다.(3절).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고 나서 주께서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왜내하면 죄가 무효로 될 때는 하나님의 분노가 중지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정결케 되면, 하나님의 노는 풀어진다. 죄사함이 무엇인가를 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즉 "주께서 우리를 불사를 정도로 뜨거운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주께서 주의 모든 분노를 발하지 않으셨나이다. 그리고 중재자가 주 앞에 서서 우리와 하나님 간의 간격을 메우셨을 때, 주께서는 분노를 거두셨나이다."
Ⅱ. 그들은 그들의 현재의 환란에 관하여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 "주께서 우리 열조를 위해 훌륭히 행하셨나이다. 이제 우리를 위해 훌륭히 행하소서. 왜냐하면, 우리는 같은 언약의 자손들이기 때문입니다."
1. 그들은 자기들을 개심시키는 은혜를 간구하고 있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우리를 돌이키소서, 우리를 죄악에서 돌이키소서, 우리를 주께로, 우리의 의무에로 돌이키소서, 우리를 돌이키소서, 그러면 우리가 돌아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원하실 모든 사람들을 조만간에 돌이키실 것이다. 개심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2. 그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표적을 제거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다.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에 그들에게서 주의 분노를 거두셨을 때, 여러번 노를 그치셨던 것처럼 지금도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그 순서를 주시하자. "먼저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시고 나서,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분노를 그치소서." 우리가 하나님께 화해할 때 그때에 그리고 그때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화해하심에서 오는 위로를 기대할 수 있다.
3.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한 선한 뜻을 표명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7절).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인자하시다는 사실을 보이소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그 긍휼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얻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우리를 위해 긍휼을 예비해 두셨다는 것을 알게 하소서,"
4.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롭고 그 자신에게는 영광스럽게 그들의 편으로 나타나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약속대로 구원을 허락하소서. 그리하면 틀림 없이 주께서 섭리에 의해 그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다는 것은 그의 구원을 상속받는다는 보장임을 기억하자. 그는 그가 구원을 주시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왜냐하면 구원은 오직 긍휼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Ⅲ. 그들은 그들의 현재의 환란에 관해 하나님께 겸손히 간언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있다.(5,6절).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자.
1. 그들이 두려워하고 면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겠나이까? 그러하신다면 우리는 파멸하나이다. 주께서 그러시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주께서 대대에 발분하시겠나이까? 아니, 주는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긍휼을 베푸시는 데에 빠르나이다. 그리고 영원히 다투시지 않을 것이옵니다. 주께서는 우리 열조에게 영원히 노하시지 않고 곧 주의 진노를 돌이키셨나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겠나이까? 그때처럼 지금도 주의 긍휼과 동정이 풍성하고 강력하지 않으시겠나이까? 영원히 계속되는 세대 속에 주의 분노가 임하는 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 지옥이겠습니까? 땅 위에 지옥이 주의 백성들의 분깃이 될 것이옵니까?2. 그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주께서 우리를 살리지 아니하시겠나이까(6절). 우리에게 위로를 말씀해 주시어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건지시어 살리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주께서는 이전에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셨고 그 일은 그것을 살렸습니다. 주께서 다시 은혜를 베푸시어 그것을 다시 살리시지 않겠나이까?" 하나님은 포로된 자손들에게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성하게" 하셨다.(스 9:8).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것은 "무덤을 열고 나온 생명과 같았다."(겔 37:11, 12). 이제 여호와여(그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다시 손을 펴사" 우리를 모으지 "아니하시겠나이까."(사 11:11; 시 126:1, 4)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합 3:2). "우리를 다시 소성케 하소서, 그리하여"
(1) "주의 백성으로 기뻐하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그 위로를 얻을 것이옵니다."(시 14:7). 그들에게 생명을 주어 그들로 기뻐하게 하소서.
(2) "그들로 주를 기뻐하게 하소서, 그러면 주께서 그 영광을 얻으실 것이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긍휼의 근원이시라면 그는 우리의 온갖 기쁨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시편 85:8-13)
여기에서는 앞에 나온 기도와 간언에 대한 응답을 볼 수 있다.
Ⅰ.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화평의 응답이다. 이것을 시편기자는 곧 깨닫고 있다.(8절). 왜냐하면 그는 하박국 선지자처럼(합 2:1, 2), "자기가 파수하는 곳에 서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실지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라." 이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하고 있다.
1. 그의 감정. 곧 그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일어난 그의 마음의 소요가 가라앉음. "내 영혼아, 겸손한 침묵 속에서 네 자신을 안정시켜,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뜻을 받들라. 내가 충분히, 또는 지나치게 많이 말했도다. 이제 내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그의 거룩한 의사를 환영하리라. 내 주께서 그 종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우리가 기도로써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그로 하여금 들으시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말씀으로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을 준비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2. 그의 기대가 일어남, 이제 그는 기도하고 나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매우 크고 매우 친절한 어떤 것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기도하고 나서, 우리의 기도를 살펴 보아야 하며, 응답을 기다려야 한다. 이제 여기에서 다음을 살펴 보자.
(1) 그가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그 자신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그 백성, 그 성도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어서 그에게 복종하고, 그에 의해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이 있다. 그의 모든 백성들은 그의 은혜로써 성별되고 거의 영광에 바쳐진 그의 성도들이다. 이러한 자들은 외적으로 싸움이 있고 내적으로 두려움이 있을 때, 때로 화평이 부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만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다. 그가 외부적인 화평을 명하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부적인 화평을 암시해 주시면서, 그의 말씀과 사역자들에 의해 그들의 귀에 이야기하셨던 것을 그의 성령에 의해 그들의 마음에 말씀하실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을 듣게 만드실 것이다.
(2) 그는 이 기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1] 그는 그 위로를 취하고 있다. 또한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의 하실 말씀을 들으리이다.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가 주신 화평에 대한 단언을 들으리이다." 하나님께서 화평을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귀를 막아서는 안되며 모든 겸손과 감사함으로써 그것을 받아야 한다.
[2] 그는 성도들에게 이것이 요구하는 의무를 행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저희는 다시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화평이 기대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관계 위에서이지 다른 것 위에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죄에서 돌아선 자들, 그리고 그러한 자들에게만 화평이 선포된다. 모든 죄는 망령된 것이다. 뒷걸음질 하는 것은 특히 그러하다. 우리가 죄에서 돌아선 것처럼 보인 후에 다시 죄에게로 돌아서는 것, 하나님께서 화평을 말씀하신 후에도 다시 죄로 돌아서는 것은 지독히 망령된 일이다. 하나님은 화평을 위하시나, 그가 말씀하실 때는 그렇게 뒷걸음질하는 것을 위한 것이 된다.
Ⅱ. 여기에, 이 화평의 응답에 대한 세부적인 것들이 나와 있다. 그는 모든 것이 잠시 후에 잘 되리라는 것 만큼은 의심하지 않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이 시편의 마지막 다섯 구절 속에서 교회의 번영하는 상태에 대한 유쾌한 전망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다섯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포로된 자손들의 큰 고생과 소요를 겪은 후 결국 그들의 땅에 정착했을 때, 자손들이 큰 고생과 소요를 겪은 후 결국 그들의 땅에 정착했을 때, 그들을 마침내 복되게 한 그 화평과 번영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롭게 행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약속, 즉 그들이 편하고 행복하리라는 약속으로서, 그리고 메시야 나라에 대한 예언과 그 나라를 풍요케 할 축복으로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가까이에 있는 도움(9절). 진실로 구원이 가까우리니, 우리에게 가까우리,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우니, 하나님의 때가 올 때에는, 우리의 역경과 환란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은 곧 이루어질 것이며, 그 때는 멀지 "않으리이다." 벽돌을 구어야 하는 노역이 가중될 때, 그 때 모세가 온다. 그것은 그를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가깝다. 환란이 가까울 때, 구원도 가깝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것인 모든 사람들이 환란을 당할 때에 신속한 도움이 되시기 때문이다. 반면에, "구원이 악인에게서는 멀어진다."(119:155). 이것은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인 그리스도께 적용될 수 있다. 비록 그들이 바라던 그 구속을 예루살렘에서는 볼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가까우며 환영받을 것이라는 확신은, 구약의 성도들도 지니고 있던 위로였다.2. 안전케 된 영예.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견고히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에 그 영광이 우리 땅에 거리하이다. 왜냐하면 그 영광은 땅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어질 때, 그 영광이 떠났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있을 때, 영광이 거하나이다." 이것은 메시야를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메시야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자로서, 와서 그들 가운데 거하셨던 것이다.(요 1:4).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들의 땅은 "임마누엘의 땅"이라 불리우고 있다.(사 8:8).
3. 은혜의 만남과 행복한 포옹(10,11절).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도다." 이것은
(1) 모든 은혜가 뚜렷하고 당당하게 나타나는 그러한 통치 속에서 백성과 정부가 개혁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배자와 피 지배자는 모두 자비하고 진실될 것이며, 의롭고 화평할 것이다. 진실이나 인애가 없을 때 모든 것은 파멸로 향한다.(호 4:1; 사 59:14, 15).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모든 일들에 대한 처리 속에서 만날 때, 이러한 것들이 목적을 줄 때, 이러한 진리가 풍성히 있어 땅의 풀처럼 솟아 나오고, 이러한 의가 풍성히 있어 하늘에서의 비같이 쏟아져 내릴 때, 그때 모든 것들이 잘 된다. 각 회중에서 긍휼과 진리가 만나고, 각 포옹에서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며, 보편적인 정직이 진정 보편적인 것이 될 때 ---- 부정적의 지배가 어느 백성에게나 치욕이 되듯 ---- 그러니 그 땅에 영광이 거한다.
(2) 땅에 하나님의 은총이 되돌아오고, 그것이 지속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 의무의 길에서 그를 신봉할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긍휼을 다시 베푸실 것이며, 긍휼의 길에 그들과 함께 머무르실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사람의 진실과 하나님의 긍휼이, 또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화평이 서로 만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에게 서로에게 진실됨을 발견하신다면, 우리는 그가 자비로우심을 발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의를 자각한다면, 우리는 화평의 위로를 얻을 것이다. "진리가 땅에서 솟아난다면," 즉 하몬드 박사(Dr. Hammond)의 해석처럼, 진리가 자라기에 적당한 토양인 사람들의 마음에서 솟아난다면, 의는(즉 하나님의 긍휼) 해가 땅의 산물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들을 소중히 여길 때 이 세상을 하감하는 것처럼, 하늘에서 하감할 것이다.
(3) 메시야의 사업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속성의 조화로 해석 할 수 있다.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의 영광이신 주 안에서,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난다." 하나님의 긍휼과 진리, 그리고 "그의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춘다." 즉, 우리 구원에 대한 큰 일이 매우 잘 계획되어 있고, 매우 잘 협조되어 있으므로, 하나님은 주의 진리와 의를 그르치심이 없이, 불쌍한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 수 있으며 그들과 화평하실 수 있다. 그는 그 경고를 지키시며 그의 통치에 공정하시지만, 죄인들을 용서하시며 그들로 하여금 그 자신과의 언약에 들어오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죄가 이간시켜 놓은 하늘과 땅을 서로 만나게 하셨다. 그로 인하여 "진리," 곧 하나님께서 "마음에 원하시는" 그 진리가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예수를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기 때문이다. 또는 그것은 메시야 나라에서 이 은혜들은 크게 번창할 것이며 우주적인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4. 바라는 모든 것이 매우 풍부함(12절). "여호와께서 좋은 것," 곧 그가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여기시는 모든 것을 "주시리라."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긍휼과 진리와 의가 사람의 마음과 생명에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할 때, 모든 좋은 것이 기대되어질 수 있다.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이 더해질 것이다"(마 6:33). 복음의 영광이 우리 땅에 거하는 그 때에, 이 모든 것의 증대를 가져올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의 번영은 그것과 함께 외적인 번영을 초래하거나 그것의 결핍을 감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시 67:6 참조).
5. 선한 길로 확실히 인도함(13절). 그가 우리에게 행복을 확신시켜 주시면서 하신 그의 약속의 "의와 성별의 의, 곧 그가 우리안에 역사하신 그 선한 사업," 이러한 것들은 주의 앞에 행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면서 주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일으키고 우리에게 그것에 대한 자격을 부여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도 또한 우리의 앞에 앞서 행할 것이며, 그가 긍휼의 길로 우리를 향해 오실 때, 우리가 그를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안내자로서, 우리로 하여금 "주의 종적으로 길을 삼게" 할 것이다. 즉 우리의 소망을 격려하며 우리의 행실을 안내할 것이다. 그리스도, 의의 태양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리고 가실 것이며, 그에게 이르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다. 세례 요한, 의의 선포자는 그리스도 앞에 행하여 그의 길을 예비할 것이다. 의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를 따르는 일에 있어서 틀림 없는 안내자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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